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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고민 없는 섬마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3 14:30:30
그때, 뒤에서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랫동안 이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순간 나는 마음이 가볍게 떨리며 많은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소년은 새하얀 셔츠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소년은 원고지를 들고 나에게 가장 골치 아픈 수학 문제를 설명해 주었다.

소년은 나의 생리 주기를 알고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차가운 요구르트를 데워 주었다.

마지막, 하지원과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안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즐거웠던, 달콤했던, 아쉬웠던 지난날들이 한 줄기 연기처럼 천천히 사라졌다.

내 마음도 따라서 완전히 평온해졌다.

내가 돌아섰을 때 하석진이 보였다.

하씨 가문의 유전자는 정말 좋았는데 하지원이나 하석진이나 모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다.

한 명은 차갑고 예리하며 한 명은 온화하고 우아하다.

3년 만에 만난 하석진은 전보다 차분해졌고 금테 안경 아래로 보이는 두 눈은 빙설이라도 녹일 정도로 부드러웠다.

“오랜만이야.”

그가 다가와 웃으며 나를 향해 인사했다.

나는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예전에 나와 하석진은 늘 할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둘이 마주 보고 있어도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분위기는 나와 하석진 사이에서 점점 어색해졌다.

알고 보니, 어떤 감정들은 한 번 지나가면 정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다.

서로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조단비는 나와 하석진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피식 웃으며 하석진에게 말했다.

“안나는 이제 자유의 몸이니 기회를 잘 잡아.”

갑자기 나를 쳐다보는 하석진의 눈빛은 너무 그윽해서 나는 자기도 모르게 당황스러웠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갈게.”

“안나!”

하석진이 황급히 내 손을 잡아당겼다.

“너 지금... 이렇게 날 보는 게 싫어?”

“아니야.”

나는 지금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지금 하지원의 애인이라는 건 둘째치고, 내가 하지원과 정말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와 함께할 수 없었다.

예전에 나는 확실히 하석진을 좋아했고 풋풋한 짝사랑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마음속 감정이든 나 자신이든 이미 모든 것이 변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석진은 나를 그윽이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집 상황을 나...”

“괜찮아, 우리 집 지금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단비가 방금 한 말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나의 소원한 말투에 하석진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싱겁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넌 지금 이혼을 한다고 해도 나에겐 기회가 없는 거지? 그렇지?”

내가 그렇다고 말하려고 할 때 가방 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보고 나는 심장이 콩닥콩닥 뛰며 자기도 모르게 하석진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원의 전화였다.

‘집에 돌아갔다가 내가 없는 걸 발견한 건 아니겠지?’

하지원의 음흉한 모습을 떠올린 나는 도무지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전화벨 소리가 그치고 나서야 나는 서둘러 오미수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지원이 돌아갔는지 물었다.

아줌마에게서 하지원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석진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물었다.

“너 우리 형이랑 이미 이혼했는데 왜 아직도 형을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미안해. 석진아. 그냥 날 잊어.”

말을 마치고 난 나는 화장실에 갈 핑계를 댔다.

하석진과는 불가능하니 더는 나에게 기대를 걸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갚기 어려운 것이 바로 감정 빚이다.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서둘러 하지원에 전화를 걸었다.

방금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그가 화가 났을까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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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친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상민은 손바닥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죽고 싶어? 하 대표님의 여자도 감히 탐내?”“뭐라고? 하 대표님의 여자라고?”그 친구는 안색이 변하며 스스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안 볼래. 바로 나갈게.”그 남자는 줄행랑을 놓았다.나는 육상민에게 다가가서 진지하게 말했다.“앞으로 제가 하지원 씨 여자라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지원 씨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지원 씨가 사랑하는 여자가 알면 큰일 나요.”“네? 지원이가 사랑하는 여자가 안나 씨 아니에요?”육상민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다가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잘생긴 얼굴에는 어색한 표정이 역력했다.아마 하지원의 마음속에 여신이 있는 줄 몰랐을 거라고 짐작한 나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지원 씨가 사랑하는 여자는 저일 수 없어요.”말을 마친 후 나는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뒤에서 육상민의 의혹에 쌓인 혼잣말이 들려왔다.“안나 씨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저는 지원이가 그렇게 비천한 모습을 한 것을 본 적이 없어요.”육상민의 말을 들은 나는 웃음이 났다.하지원이 내 앞에서 비천한 모습을 한 것이 나를 좋아해서일까? 데릴사위가 되어 권력도 돈도 지위도 다 가지고 싶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아직도 비천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니다. 이젠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어르신처럼 나의 시중을 받고 있고 내가 시중을 잘하지 못하면 얼굴이 일그러졌다.아무튼 나는 하지원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사실 내가 하지원이었다면 나를 그렇게 억압하고 학대했던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나는 하지원보다 더 잔인하고 냉혹하게 나를 억압했던 모든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비교해보면 하지원은 나에게 정말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나에게 매혹적인 메이크업을 해 주었는데, 그 메이드복과 함께 어울리니 더욱 야릇한 분위기가 이루어졌다.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힐끗 보고는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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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지원에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필요 없어요.”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육상민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하지원이 안성시에서 출장 중인 것을 몰랐다면 나는 그가 현장에 있는 거로 착각할 뻔했다.육상민은 얼른 사람을 시켜 옷을 가져오라 했는데 나는 이 옷을 보자 입을 크게 벌렸다.“저기... 혹시 옷을 잘못 가져온 게 아닌가요?”육성민이 사람을 시켜 가져온 옷은 성욕을 자극할 수 있는 섹시한 메이드 복이었다.미니스커트에 검은색 양말을 신어야 하는 이 옷은 아무리 봐도 춤을 출 수 있는 의상이 아니었다.육성민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다 이런 옷이에요. 그나마 안나 씨를 위해 제가 특별히 제일 예쁘고 보수적인 옷을 남겼어요.”믿을 수 없었던 나는 밖으로 나가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정말 그랬다.다른 사람의 옷은 더 노출이 심했고 심지어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비키니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육성민은 나를 향해 웃었다.“이젠 믿을 수 있어요? 이 옷이 제일 보수적이에요.”나는 그래도 믿을 수 없어 다시 물었다.“이게 정말 댄스 대회가 맞아요?”“그럼요. 잠시 후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출 거고 관객들이 투표할 거예요. 득표수가 제일 많은 사람이 우리가 준비한 6억 상금을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안나 씨, 6억 상금을 받고 싶으면 열심히 춤을 춰야 해요.”이제야 나는 이것이 단순하고 정규적인 댄스 대회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전문적인 심사도 없었다. 득표수가 많아지려면 춤을 잘 춰야 할 뿐더러 관객들의 환심을 사야 했다.내가 머뭇거리자 육상민은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참가하기 싫으면 가셔도 돼요. 6억일 뿐인데 이 돈은 지원이에게 애교만 부려도...”“참가할래요.”나는 육상민의 말을 끊어버렸다.나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원에게 더는 손을 내밀지 않으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나와 하지원의 현재 관계로 내가 손을 내민다는 건 수모를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육상민은 껄껄 웃었다.“결정했으면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8화

    이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는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나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화내지 마. 난 정말 안성시에 가기 싫어.”내일 댄스 대회에 참가해 6억 상금을 타야 했던 나는 안성시로 갈 수 없었다.하지원은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1분 동안이나 음산한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라 바라봤다.불안해진 나는 손가락을 꼬며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담배 한 대를 다 피운 그는 담배를 비벼 끄며 담담하게 말했다.“가기 싫으면 가지 마.”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몸을 곧게 펴고 밖으로 나가다가 내 옆을 지나갈 때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없어도 얌전하게 있어. 날 화나게 하는 짓을 하지 마.”“응. 말 잘 들을게.”나는 약속했다.그는 나를 보지도 않고 곧장 나갔다. 화가 나서인지 그는 온 밤을 서재에서 보냈다.오미수 아줌마는 인삼차를 우린 후 나더러 하지원에게 가져다주라 했다.그의 비위를 맞추는 게 맞는 다고 생각한 나는 환하게 웃으며 인삼차를 가져다주는 나에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따뜻할 때 빨리 마셔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방에 돌아온 후 침대에 누운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머릿속에는 예전에 하지원을 못되게 굴던 짓거리가 생각났다. 예전에 그는 나에게 잘 보이려고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지만 나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지금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나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다음날 눈을 떠보니 하지원은 이미 떠났다.이튿날 아침 일찍이 출장 가는 것을 알면서도 일어나 배웅하지 않는 나를 보고 오미수 아줌마는 내가 양심이 없다고 했다.그러면서 하지원이 떠날 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는데 내가 배웅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나는 오히려 오미수 아줌마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여신이 배웅해주면 좋아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의 여신이 아니다. 내가 배웅하면 그를 화나게 할 것이 뻔하다.오후에 나는 육상민에게 문자를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7화

    의아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마침 그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또 왜 그래?”하지원은 날카로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댄스 대회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 혹시 너도 지원했어?”“아니, 아니야...”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하지원은 쌀쌀하게 웃었다.“아니면 다행이야. 이건 네가 참가할 수 있는 대회가 아니거든.”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댄스 대회일 뿐인데 내가 왜 참가할 수 없다는 걸까?그러나 지금은 더 깊이 물어볼 수 없었다.하지원은 나에게 경고를 한 후 또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여신이 걸어온 전화인 것 같다.그는 전화 받으면서 창가로 걸어갔는데 말투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여태껏 나에게 한 번도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를 쓴 적이 없다.두 사람이 달콤하게 대화하는 것을 듣기 싫었던 나는 욕실로 갔지만, 욕실에서도 하지원이 내일 안성시로 출장 간다고 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그럼 내일 댄스 대회를 볼 수 없겠지?’이렇게 생각한 나는 안심했다.하지원이 여신과 통화를 마친 후 그녀를 찾아갈 줄 알았는데 내가 목욕을 하고 나와보니 그는 여전히 방에 있었다.창가에 기대에 담배를 피우면서 넋을 잃고 창밖을 보고 있는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것 같다.나는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살금살금 침대로 갔다.“이리 와!”침대 끝에 다다르자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멍해 있다가 돌아서서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앞에 서자마다 그는 팔을 뻗어 내 허리를 껴안으며 나를 품에 안았다.담담한 담배 냄새가 풍겼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나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두 눈에서는 우울한 기색이 드리웠다.지금 이 순간 그는 마치 온순한 하지원으로 돌아간 것 같다.그는 말없이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봤는데 그윽하고 집중적인 시선에는 깊은 정이 엿들어 있는 것 같았다.만약 그가 마음속에 여신을 품지 않았다면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6화

    나는 황급히 부인했다.“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어찌 그런 남자랑 바람이 날 수 있겠어. 절대 아니야.”하지원은 가볍게 웃으며 믿지 않는 눈치였다.나는 정말 후회했다. 하지원이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으면 육상민의 전화를 받도록 내버려 둘걸 그랬다고 생각했다.마침 이때 육상민의 전화가 또 걸려오자 하지원은 눈썹을 치켜뜨며 나를 바라봤다.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어서 받으라는 손짓을 했다.그는 차갑게 웃으며 수신 버튼을 누르더니 일부러 스피커를 열었다. 육상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젠장, 두 번이나 해서 전화를 받다니. 왜? 좋은 일을 방해했어?”하지원은 나를 힐끗 보다가 코웃음 쳤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 말해.”전화기 너머로 육상민의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무정하게 굴지 마. 난 널 괴롭히던 도안나가 아니야.”나는 어색해서 콧등을 만졌다. 내가 하지원을 못되게 대했다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하지원이 나를 향해 차갑게 웃자 나는 당황해서 시선을 피했다.그는 시큰둥하게 말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용건이 없으면 끊어.”“아이참, 잠시만. 내일 댄스 대회가 열리니 구경하러 와.”“안 가.”하지원이 단칼에 거절하자 나는 오히려 시름을 놓았다.이 육상민도 참, 내가 댄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두렵다고 하면서 또 하지원이 참가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마치 하지원이 내가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모를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말이다.“내일 와봐. 서프라이즈가 있어. 중요한 서프라이즈.”육상민은 아직도 하지원을 설득하고 있었다.“관심 없어.”하지원이 담담하게 말했어도 육상민은 계속해서 요청했다. 하지원은 아예 전화를 꺼버렸다.나는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댄스 대회에는 미녀들만 참가할 수 있다고 하던데 너 정말 안 가볼 거야?”하지원은 눈썹을 치켜들었다.“왜? 넌 가보고 싶어?”나는 고개를 저었다.하지원은 내 옆에 앉으며 웃는 듯 마는 듯한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구경하고 싶으면 널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5화

    나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졌다.‘설마 육상민이 입 가볍게 내가 댄스 대회에 지원한 것을 하지원에게 알려주는 건 아니겠지?’비록 이 일은 비밀이 아니고 하지원에게 알려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변덕스럽고 나에게 원한이 많았기 때문에 알려주면 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돈을 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나는 어떤 사고도 허락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하지원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하지원이 전화를 받으려고 할 때 나는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하지원은 나의 손을 힐끗 보며 눈썹을 치켜들었다.“왜 그래?”“저기...”나는 그의 휴대폰 화면에서 뜬 이름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육상민 씨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안 돼?”하지원의 미간에는 의문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났다.“안 받아도 되는데 이유를 말해 봐.”“그건...”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둘러댔다.“그게 육상민 씨는 소문난 바람둥이야. 지금 너에게 전화한 건 나가서 놀자는 용건일 거야. 나는 네가 이 시간에 나가는 게 싫고 육상민 씨처럼 되는 게 싫어.”하지원은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 나를 쳐다봤는데 그의 그윽한 눈빛은 나의 영혼마저 꿰뚫어 볼 것 같았다.나는 그의 시선이 불편했다. 이때 하지원이 갑자기 물었다.“왜 내가 육상민처럼 될까 봐 두려워?”“그건... 그건 널 좋아하니까.”이 말을 꺼내자마자 나는 혀를 깨물고 싶었다.‘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역시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은 거짓말하지 말아야 해.’“날 좋아해?”하지원은 나를 보고 웃었다. 또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웃음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이때 전화벨 소리가 끊겼고 하지원은 휴대폰을 만지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 할 때 하지원은 내 귓가에 다가와 가볍게 웃었다.“내가 믿을 것 같아?”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그의 쌀쌀하고 비아냥거리는 웃음 볼 수 있었다.그는 몸을 곧게 펴며 천천히 말했다.“그때 넌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4화

    육상민은 팔짱을 끼고 웃었다.“이 호텔은 우리 집 거예요. 댄스 대회도 친구 몇 명이 심심해 미녀 구경이라도 하려고 벌린 일이에요. 그 때문에 댄스 대회에 참가하려면 몸매는 물론 얼굴도 아주 예뻐야 해요. 그래서 심사는 우리 친구 몇 명이 직접 하고 있어요. 엄숙하고 진지한 관리 인원이 미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겠어요? 우리 안나 씨, 제 말이 맞아요?”‘퉤! 감히 우리 안나 씨라고 부르다니! 양아치가 따로 없네,’나는 마음속으로 비웃었지만, 감히 말대꾸하지 못하고 비위를 맞추느라 웃음을 지었다.“그럼 제가 이 경연에 참여할 조건을 갖췄어요?”육성민은 턱을 만지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몸매와 외모가 모두 완벽하지만...”“그런데 뭐가요?”나는 황급히 물었다.육상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저 지원이가 저를 가만두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할 말을 잃은 나는 한참 후에야 말했다.“저는 이미 지원 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괜찮아요.”“그래요? 아이참, 저는 그래도 두려워요. 아시다시피 남자가 미쳐버리면 무섭거든요.”육상민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터치하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나는 육상민이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원이 돌아버리면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다.나는 그저 댄스 대회에 참가할 뿐, 하석진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그리고 그는 지금 여신과 함께 달콤하고 화끈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나를 관심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6억 상금과 아빠가 진 14억 도박 빚을 떠올린 나는 얼른 육상민에게 단호하게 말했다.“지원 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조금 상관이 있다고 해도 저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요.”“아...”육상민은 일부러 길게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요염한 웃음을 날렸다.“정말이죠? 나중에 하지원이 나에게 미친 짓이라고 따지면 그때 저를 도와야 해요.”나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육상민이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원이 어떻게 이런 사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3화

    ‘댄스 대회’라는 네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왔다.나는 저도 모르게 전단지를 주었다. 위에 커다랗게 적힌 ‘6억 상금’이라는 글을 보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나는 얼른 아래를 훑어보았는데 알고 보니 몇몇 큰 호텔에서 공동명의로 댄스 대회를주최한다고 했다.경연이 끝난 후 현장에서 투표 방식으로 춤을 제일 잘 춘 댄서를 뽑을 것이며 상금이 6억이라고 했다.상세한 소개를 보고 나는 마음이 설렜다. 이 돈만 있으면 아빠의 도박 빚을 절반이나 갚을 수 있지 않을까?나는 신청 마감 시간을 확인했데 마침 오늘 저녁까지였다.이미 저녁 8시가 되어 조바심이 난 나는 얼른 주소를 확인했는데 다행히 부근에 있었다.내비게이션을 따라 나는 럭셔리한 호텔 문 앞에 도착했다. 홀에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하지원이다.정말이지 나는 이 남자와 운명적으로 상극인 것 같았다. 가는 곳마다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이때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고 옆에는 한 여자가 동행했다.긴 생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여자는 날씬한 몸매를 가졌는데 이 뒷모습만으로도 ‘청순한 여신’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어쩐지 오늘 밤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더라니, 알고 보니 여신과 잠자리를 가지러 온 거네.’마음속으로 걷잡을 수 없는 시고 떫은 맛이 돌았지만 그 속에는 약간의 통증도 있었다.나는 애써 이런 나쁜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심호흡을 한 후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갔다.지금은 사랑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나에게 있어 현재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을 모으는 것이다.프런트 데스크의 직원은 댄스 대회의 신청을 2층 회의실에서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줬다.2층에 올라온 후 나는 문을 두드렸다.이내 안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오세요.”한참을 생각해도 이 목소리가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문을 열어보니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개를 들자마자 당구를 치고 있는 남자 몇 명이 보였고 방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옥했다.‘회의실’에서 신청한다더니... 문 앞에는 버젓이

  • 파산 후 데릴사위 남편이 내 주인님이 되었다   제22화

    아마 곧 내가 하지원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한때 부잣집 아가씨였던 내가 우스개가 되어 가십거리가 되겠지.부모님은 믿지 못하고 정말 하지원과 이혼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나의 확실한 대답을 들은 아빠는 하지원은 물론 가족까지 포함해서 욕설을 퍼부었다.오빠는 옆에서 쌀쌀하게 말했다.“이미 우리를 도와 빚을 청산했고 20억도 줬는데 뭘 더 바라세요? 저희가 예전에 어떻게 대했는지 잊었어요? 지금 이렇게 도와준 것만 해도 잘한 셈이에요.”“하지만 출세했다고 조강지처인 안나를 버리면 안 되잖아.”엄마도 씩씩거리며 말했다.나는 한숨을 내쉬었다.“왜 안돼요? 절 좋아하지도 않고 저한테 빚진 것도 없으니 절 버리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아빠는 그제야 당황해서 서둘러 나에게 물었다.“하지원과 이혼했다고 해서 14억을 달라고 하는 건 어렵지 않잖아? 안나야, 아빠를 도와줘. 응? 3일 후면 그들이 돈 받으러 올 거야. 아빠는 손목이 잘리고 싶지 않아.”엄마도 나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그래, 안나야. 제발 아빠를 도와줘. 하지원한테는 돈이 많으니 옛정을 봐서라도 네가 입을 열면 꼭 줄 거야.”옛정? 이 말을 들은 나는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저와 지원 씨가 언제 정이 있었어요?”아빠와 엄마는 여전히 나를 타이르며 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했다.오빠는 보다못해 소리쳤다.“그만 하세요. 안나도 사람이고 우리 집의 귀여운 막내자 한때는 부잣집 아가씨였어요. 어떻게 부모로서 안나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하지원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빌게 할 수 있어요?”엄마가 입을 가리고 통곡하자 아빠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실룩거렸다.오빠는 계속해서 덤덤하게 말했다.“안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사흘 간 내가 열심히 돈 벌더라도 아빠의 도박에 빠진 손을 지켜드릴게요. 그럼 됐죠?”말을 마친 후 오빠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아파트 단지에 내려온 후 오빠는 눈물범벅이 된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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