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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나랑 연극 해줘

Author: 연의 수정
“강 선생님이 허락했어.”

민여진은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방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몸에 안 좋으니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고 하셨거든.”

“그렇다고 이렇게 얇게 입고 나오면 어떡해. 또 감기 걸리겠네. 내일 민영미 만날 기운이나 있겠어?”

민여진의 손에서 정원 가위가 떨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텅 빈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뭐라고?”

“민영미가 곧 올 거라고.”

박진성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이미 떠날 채비를 했으니까 열흘 뒤면 여기로 올 거야.”

민여진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었다. 그녀는 박진성의 멱살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려 했다.

“거짓말하지 마. 박진성. 희망 고문하지 말라고...”

“너한테 거짓말할 이유 없어.”

박진성은 민여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기쁨과 감격, 여러 감정이 뒤섞여 민여진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했다. 너무나도 진실되고 생생한 표정이었다.

박진성은 문득 이 거짓말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병원에서 보존 치료를 받느라 외부와 연락을 완전히 끊고 있었어. 지금은 상태가 많이 안정됐고 예전처럼 아이처럼 굴지도 않아.”

“정말?”

민여진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보면 놀라지 않을까?”

“괜찮아. 이미 다 설명해 뒀어. 얼굴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그럼 됐어... 다행이네...”

민여진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머니 걱정하시게 하고 싶지 않아... 어머니는 내가 잘 지내고 행복하다는 것만 알면 돼... 내가 잘 지내면 어머니도 안심하실 거니까.”

박진성은 말없이 민여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다. 민여진의 중얼거림 속에 담긴 간절한 바람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가 말했다.

“걱정 마.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 어머니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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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사이?”박진성은 불쾌한 듯 물었다.“우리 진정한 사이는 어떤데?”그의 질문에 민여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박진성이 짐짓 모르는 척하고 있으니 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박진성은 민여진의 손목을 잡고 잘생긴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민여진, 우리는 부부 사이야. 그 사실만 기억해. 난 여러 여자를 사랑할 만큼 마음이 넓지 않아. 네가 채연에게 쓸데없는 짓만 안 하면 영원히 널 지켜줄 거야. 우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그 말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박진성은 스스로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예전처럼 돌아간다고?민여진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귓가에는 박진성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무슨 뜻일까? 문채연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걸까?’머리가 지끈거렸고 바깥바람이 너무 매서워 생각하기 힘들었다. 눈을 감자마자 박진성이 그녀를 품에 끌어당겼다.코트가 그녀를 감쌌다.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박진성의 체취만 남았다.낯선 감각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박진성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껴안고 물었다.“너랑 연기해 달라며?”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나는 배우가 아니라서 네가 뭘 원하는지 몰라. 그러니까 오늘부터 연습하는 거야. 네가 만족할 때쯤이면 네 어머니도 눈치 못 챌 거야.”확실히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민여진은 두 사람의 거리가 불편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예전처럼 하면 돼.”“예전이 언제인데?”“결혼한 그 2년 동안.”민여진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박진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때 너한테 잘해 주지 않았는데.”오히려 그 시절은 끔찍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그는 민여진을 단순한 욕구 해소 대상으로 여겼다. 잠자리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서재나 3층으로 향했다.“그걸로 충분해.”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9화 악몽

    박진성이 민여진에게 끌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첫 반응은 그에게 불쾌감을 안겨 주었다. 마치 자신이 섹스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쉬러 왔어.”“쉬러?”“어.”박진성이 말했다.“지금 우리 상태로는 민영미가 금방 눈치챌 거야. 네가 나한테 거부감을 느끼는 게 보여. 다행히 열흘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자연스러워지도록 노력해 보자.”민여진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박진성은 한발 물러섰다.“불편하면 거절해도 괜찮아.”‘거절?’민여진은 잠시 멍해졌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 민영미 때문이기도 했지만 박진성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박진성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뭐라고 하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일이 생겼는데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민영미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괜찮아. 당신만 괜찮다면 여기서 쉬어.”그녀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박진성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민여진은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박진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민여진이 잠들자 박진성은 눈을 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마음속에 만족감이 차올랐다.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결국 악몽을 불러왔다.악몽 속에서 민여진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의 목을 졸랐고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민여진은 끔찍한 얼굴로 울부짖었다.“살인자! 네가 우리 엄마를 죽였어! 그런데도 날 속이려고 해? 절대 용서 못 해! 평생 후회하게 만들 거야!”마지막에 민여진은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안 돼! 민여진!”박진성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목에는 아직도 숨 막히는 느낌이 남아 있어 그는 숨을 크게 쉬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팔이 저린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자, 여자가 그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었다.꿈이었다.다행히 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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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화 아이는 지워

    “축하드려요, 임신 4주 차예요.”의사의 축하에도 민여진은 전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검사가 잘 못 된 건 아닌가요..? 임신일 리가 없는데... 한 번만 다시 검사해주세요.”“혹시 한 달 전에 관계를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있긴 한데...”“피임조치를 했다거나 약을 드신 적은 있으세요?”비가 오던 날, 박진성과 보냈던 뜨거운 밤을 떠올리던 민여진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그러자 의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검사 다시 할 필요도 없잖아요. 관계도 하고 약도 안 먹었으면 원래도 임신 가능성이 높은데 결과가 잘못됐을 리는 없어요.”의사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민여진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진단서만 좀 고쳐주시면 안 될까요? 임신 아니라고 적어주세요 제발...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민여진 씨, 여긴 합법적인 병원입니다. 환자들의 진단서를 마음대로 고치는 건 불법이에요, 다른 용건 없으시면 이만 나가주세요.”“다음 환자분!”미간을 찌푸리며 축객령을 내리는 의사에 민여진은 진단서를 손에 꼭 쥔 채 비틀대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소란스러운 거리 한복판에 서 있던 민여진은 도무지 발을 뗄 수가 없었다.저를 받아들인 것도 박진성으로서는 많이 양보한 건데 아이까지 가졌다는 걸 알게 되면 당장 지우라고 할 게 뻔했기에 민여진은 이 진단서를 들고 그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민여진이 배 속의 아이를 지킬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박진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전화를 받자 박진성의 낮은 음성이 귀에 내려꽂혔다.“검사 끝났으면 빨리 집으로 와.”박진성은 인내심이 그리 깊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민여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30분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차에 타서 별장에 도착한 그녀는 마침 3층 금지구역에서 내려오는 박진성을 보게 되었다.실크 잠옷의 윗단추를 두어 개 풀어헤친 탓에 남자의 탄탄한 근육이 그대로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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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들은 민여진은 선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전화를 할 때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때는 아무 말 않다가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할 때가 돼서야 잔인하게 아이를 지우라는 말을 하는 그가 민여진은 너무나 야속했다.하지만 저의 우는 모습을 싫어하는 박진성을 알기에 민여진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말했다.“진성 씨, 나 앞으로 말도 잘 들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아이만은 지키게 해주면 안 돼요? 절대 진성 씨 귀찮게 안 하고 문채연 씨 깨어나면 바로 애 데리고 나갈게요. 이 세상에 없는 아이처럼 키울게요.”하지만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박진성의 동정은커녕 오히려 비웃음만 샀다.“민여진, 착각하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건데 네 그 얼굴이 아니었으면 넌 박씨 집안 사모님 자격으로 지금처럼 누리고 살지도 못해. 가끔 선 넘는 거야 그렇다 쳐도 내 아이는 안돼. 나를 위해 아이를 낳을 여자는 채연이뿐이야. 너한테는 그럴 자격 없어.”자격이 없다는 그 말은 채찍이 되어 곧바로 민여진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내었다.그녀가 박진성의 무정함을 원망하고 있을 때 현관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양경호가 안으로 들어섰다.“얘 좀 은밀한 병원으로 데려가서 수술시켜, 아무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게 신경 쓰고.”배 속의 아이한테는 아버지인 사람이 저토록 매정하니 민여진은 오장육부가 베이는 것처럼 아파왔다.“진성 씨...제발요... 안돼요!”하지만 박진성이 그 애원도 무시한 채 양경호를 향해 눈짓하자 민여진은 바닥에 꿇어앉아 버렸다.“진성 씨... 제발요, 나한테 무슨 짓을 시켜도 좋으니까 제발 아이만은 지키게 해줘요. 낳기만 하면 바로 보낼게요, 제발 살려만 줘요...”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애원한 탓에 민여진의 이마는 온통 피투성이였고 그걸 본 박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민여진, 넌 진짜 그 얼굴을 가지지 말았어야 했어. 채연이는 너처럼 비굴하진 않을 거야.”문채연이야 머리를 박지 않아도 박씨 집안 후계자 박진성의 사랑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3화 우스운 생각

    ...문채연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서야 아래로 내려온 박진성은 사라져버린 민여진에 미간을 찌푸리며 양경호를 바라보았다.“민여진은?”그 질문에 양경호도 어리둥절해 할 때, 박진성은 본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진성아, 넌 이렇게 기쁜 소식을 왜 이제야 전해? 채연이 임신했대, 얼른 집으로 와.”본가에 도착한 박진성은 소파에 앉아 음식을 먹는 민여진을 보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민여진도 자신이 잘못한 건 아는지 박진성을 보자마자 고개를 푹 떨구고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하, 대단하네 진짜.”가엾은 토끼처럼 굴던 애가 이런 식으로 반항할 줄 몰랐기에 그 분노가 배가 되는 것 같았다.박진성의 분노를 마주한 민여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이정화가 나서서 박진성을 나무랐다.“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넌 무슨 애가 말을 그렇게 하니? 채연이가 임신했다는 데 안 기뻐?”박진성은 이를 악문 채 민여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아주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은데요 뭘.”“그래야지, 이게 얼마나 기쁜 일이니. 결혼한 지 2년 만에 드디어 아기가 생겼으니, 딸이든 아들이든 다 박씨 집안의 경사지. 넌 채연이 잘 좀 챙겨. 혹시라도 애한테 문제 생기면 너한테 따질 거니까.”말을 하던 이정화를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어머, 주방에서 국 끓이고 있는데, 난 가서 좀 봐야겠다.”“어머님, 저도 같이 가요!”“거기 서.”하지만 민여진은 사냥감을 노리듯 번뜩이는 눈으로 한기를 뿜어내며 말하는 박진성 때문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넌 나랑 얘기 좀 해야지.”이정화는 둘이 사랑싸움을 하는 줄로만 알고 민여진의 손을 꼭 잡으며 웃어 보였다.“채연아, 긴장할 필요 없어. 쟤가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속으로는 네가 자기 애 가졌다고 엄청 기뻐할 거야. 진성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둘이 얘기 나누고 있어 그럼.”사랑? 그래, 박진성이 문채연을 사랑하는 건 맞지.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4화 눈을 뜬 문채연

    “싫어요! 진성 씨, 제발 하지 마요!”“싫다고? 이 와중에도 밀당을 하겠다는 건가? 진짜 너답다.”민여진의 애원은 박진성에게 그저 거슬리는 울음소리일 뿐이었다.“진성 씨, 아이가 위험해져요!”“우리 아이잖아요...”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려대던 민여진이 애원하자 박진성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우리 아이? 걔는 그냥 인정도 못 받는 혼종일뿐이야.”말을 마친 박진성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워졌다.이건 그가 감히 제게 반항한 민여진에게 내리는 벌이기도 했고 또 아이를 죽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진성 씨...”하지만 민여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발버둥 쳤고 하늘이 그녀를 돕듯 누군가가 박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양경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박진성은 스피커 핸드폰으로 돌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대표님, 문채연 씨가 깨어나셨습니다!”...박진성은 전화를 받자마자 1분 만에 뛰쳐나가 운전대를 잡았다.더 이상 그 역겨운 여자와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드디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그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고민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한편 혼자 남은 민여진은 벗겨진 옷을 주섬주섬 껴입으며 멀어져가는 박진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그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질수록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고 온몸이 찌릿찌릿하며 아파 났다.6년 전, 기부금을 받을 때 박진성을 처음 본 뒤로 민여진은 그에게 첫눈에 반해버렸었다.그리고 그들이 두 번째로 만날 때, 박진성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민여진이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그를 구해 나올 때 꼭 다시 찾아오겠다고, 너를 아내로 맞이해서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던 게 박진성이었는데 그는 민여진을 문채연 대용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대타 노릇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았다.진짜가 돌아왔으니 가짜는 더 이상 필요 없겠지....눈물을 머금은 채로 잠들었던 민여진은 이튿날 아침,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5화 이혼 합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민여진은 화상을 입은 손보다도 마음이 더 아파왔다.울먹이는 문채연은 다정하게 달래주면서 다친 민여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게 박진성이었다.민여진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박진성은 우는 여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란 걸. 그는 그저 우는 민여진을 유독 싫어할 뿐이었다.“그런 거 아니에요...”억울함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민여진이 부어오른 손을 박진성에 들어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의 상처를 매정하게 쳐냈다.“그 손 안 치워?!”민여진은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고통을 참아냈지만 박진성은 그걸 연기라고만 생각하며 치를 떨어댔다.“어디서 변명이야, 너한테 물이 튄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만약 다친 게 채연이였다면 너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당장 나가!”박진성의 말에 걸음을 옮기던 민여진은 그만 문채연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봐버렸다.“진성 씨, 그만 해요. 여진 씨도 진성 씨 사랑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2년 동안 부부로 지내서 쌓인 정도 있을 텐데 나 때문에 싸우지 마요.”“정?”박진성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나랑 쟤 사이에 정 따위는 없어. 네가 깨어났으니까 쟨 이제 가야지. 본가에서 너랑 결혼하는 걸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쟤랑 결혼할 일은 없었어. 쟤가 박씨 집안 사모님 행세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겠지.”닫혀버린 문 때문에 뒤에 이어지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이미 들은 말로도 민여진은 가슴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눈앞이 새까매질 정도로 어지러워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그렇게 겨우겨우 1층으로 내려온 그녀가 소파에 앉아있은 지 한참 지나자 마침내 박진성이 아래로 내려왔다.“사인해.”그런데 그와 함께 제 앞에 놓은 이혼 합의서에 민여진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오늘은... 이혼 안 한다고 했잖아요.”“안 하면 네가 계속 채연이 해치는 거 보고만 있을까? 빨리 사인하고 나가. 그래야 내가 채연이랑 다시 시작하지.”짜증 가득한 투로 말하는 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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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로 가는 걸까?’민여진은 물어봐야 답을 듣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순순히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현관문에 도착했을 때, 박진성은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민여진에게 둘러 주고 나서야 문을 나섰다.민여진은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잠시 후, 그녀는 조심스럽게 목도리를 풀어 손에 쥐었다.“다 왔어.”박진성은 안전벨트를 풀었다. 민여진도 차에서 내렸다. 주변은 사람들의 소음과 차량 경적 소리로 가득했다. 아마도 번화가 한복판인 듯했다.박진성은 민여진과 나란히 서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 손 잡고 가.”그는 전에 없이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민여진은 머리가 텅 빈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따라갔다. “어서 오세요.”그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여긴 어디야?”민여진은 혼란스러웠다. 오늘 박진성의 행동은 평소와 너무 달랐던 것이다.“곧 알게 될 거야.”박진성은 대답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거라는 그의 말처럼 그곳은 강아지 카페였다. 그녀가 입구에 서 있자마자 작은 강아지들이 몰려들어 낑낑거렸다.직원이 웃으며 민여진에게 말했다.“원래 여기는 유기견 보호소였는데, 박 대표님께서 후원을 해 주셔서 카페로 바뀌었어요. 지금도 유기견들을 돌보고 있지만 예전처럼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아요.”“박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세요.”민여진은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녀는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셨지만 오히려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박진성이 유기견 보호소에 후원을 했다고? 왜? 그는 원래 고양이나 개를 싫어하지 않았나?’그녀가 아직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박진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여진, 손 내밀어 봐.”그녀는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그녀의 팔에 안겼다. 부드러운 털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강아지는 낑낑거렸다.박진성은 강아지를 보며 말했다.“네가 얘를 버렸을 때 내가 여기로 보냈어. 네가 볼 수 있었다면 알았겠지만,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9화 악몽

    박진성이 민여진에게 끌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첫 반응은 그에게 불쾌감을 안겨 주었다. 마치 자신이 섹스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쉬러 왔어.”“쉬러?”“어.”박진성이 말했다.“지금 우리 상태로는 민영미가 금방 눈치챌 거야. 네가 나한테 거부감을 느끼는 게 보여. 다행히 열흘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자연스러워지도록 노력해 보자.”민여진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박진성은 한발 물러섰다.“불편하면 거절해도 괜찮아.”‘거절?’민여진은 잠시 멍해졌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 민영미 때문이기도 했지만 박진성의 성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박진성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뭐라고 하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일이 생겼는데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민영미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괜찮아. 당신만 괜찮다면 여기서 쉬어.”그녀는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박진성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점차 마음이 편안해졌다. 민여진은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박진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민여진이 잠들자 박진성은 눈을 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마음속에 만족감이 차올랐다.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결국 악몽을 불러왔다.악몽 속에서 민여진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의 목을 졸랐고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민여진은 끔찍한 얼굴로 울부짖었다.“살인자! 네가 우리 엄마를 죽였어! 그런데도 날 속이려고 해? 절대 용서 못 해! 평생 후회하게 만들 거야!”마지막에 민여진은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안 돼! 민여진!”박진성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목에는 아직도 숨 막히는 느낌이 남아 있어 그는 숨을 크게 쉬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팔이 저린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자, 여자가 그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었다.꿈이었다.다행히 꿈이었지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8화 예전으로 돌아가다

    “진정한 사이?”박진성은 불쾌한 듯 물었다.“우리 진정한 사이는 어떤데?”그의 질문에 민여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박진성이 짐짓 모르는 척하고 있으니 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박진성은 민여진의 손목을 잡고 잘생긴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민여진, 우리는 부부 사이야. 그 사실만 기억해. 난 여러 여자를 사랑할 만큼 마음이 넓지 않아. 네가 채연에게 쓸데없는 짓만 안 하면 영원히 널 지켜줄 거야. 우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그 말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박진성은 스스로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예전처럼 돌아간다고?민여진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귓가에는 박진성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무슨 뜻일까? 문채연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걸까?’머리가 지끈거렸고 바깥바람이 너무 매서워 생각하기 힘들었다. 눈을 감자마자 박진성이 그녀를 품에 끌어당겼다.코트가 그녀를 감쌌다.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박진성의 체취만 남았다.낯선 감각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박진성은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껴안고 물었다.“너랑 연기해 달라며?”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나는 배우가 아니라서 네가 뭘 원하는지 몰라. 그러니까 오늘부터 연습하는 거야. 네가 만족할 때쯤이면 네 어머니도 눈치 못 챌 거야.”확실히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민여진은 두 사람의 거리가 불편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예전처럼 하면 돼.”“예전이 언제인데?”“결혼한 그 2년 동안.”민여진은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박진성은 잠시 말을 멈췄다.“그때 너한테 잘해 주지 않았는데.”오히려 그 시절은 끔찍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그는 민여진을 단순한 욕구 해소 대상으로 여겼다. 잠자리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서재나 3층으로 향했다.“그걸로 충분해.”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7화 나랑 연극 해줘

    “강 선생님이 허락했어.”민여진은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방에만 있으면 답답해서 몸에 안 좋으니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고 하셨거든.”“그렇다고 이렇게 얇게 입고 나오면 어떡해. 또 감기 걸리겠네. 내일 민영미 만날 기운이나 있겠어?”민여진의 손에서 정원 가위가 떨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텅 빈 눈동자가 흔들리고 목소리가 떨렸다.“뭐라고?”“민영미가 곧 올 거라고.”박진성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이미 떠날 채비를 했으니까 열흘 뒤면 여기로 올 거야.”민여진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었다. 그녀는 박진성의 멱살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려 했다.“거짓말하지 마. 박진성. 희망 고문하지 말라고...”“너한테 거짓말할 이유 없어.”박진성은 민여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기쁨과 감격, 여러 감정이 뒤섞여 민여진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했다. 너무나도 진실되고 생생한 표정이었다.박진성은 문득 이 거짓말이 영원히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전에는 병원에서 보존 치료를 받느라 외부와 연락을 완전히 끊고 있었어. 지금은 상태가 많이 안정됐고 예전처럼 아이처럼 굴지도 않아.”“정말?”민여진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걱정스럽게 말했다.“그런데 내 얼굴을 보면 놀라지 않을까?”“괜찮아. 이미 다 설명해 뒀어. 얼굴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야.”“그럼 됐어... 다행이네...”민여진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어머니 걱정하시게 하고 싶지 않아... 어머니는 내가 잘 지내고 행복하다는 것만 알면 돼... 내가 잘 지내면 어머니도 안심하실 거니까.”박진성은 말없이 민여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다. 민여진의 중얼거림 속에 담긴 간절한 바람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그가 말했다.“걱정 마.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 어머니는 아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6화 모든 것은 제자리로

    편지에는 민여진을 향한 축복의 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간략하게 언급했는데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박진성은 가슴이 꽉 막히는 듯했다. 이렇게 의미 있는 편지를 자신의 손으로 찢어버리다니. 민여진이 알게 된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그는 복원 전문가에게 연락해 편지를 원래대로 복구해 달라고 부탁했다.민여진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종이 조각들을 찾았다. 하지만 허공에 흩뿌려졌던 종이 조각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민여진 씨, 뭘 찾아요?”서원이 묻자 민여진은 다급하게 말했다.“서원 씨, 바닥에 종이 조각 있는지 좀 봐주세요.”“없어요.”서원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뭐 잃어버렸어요? 찾아드릴까요?”민여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괜찮아요. 중요한 거 아니니까.”서원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민여진이 더 이상 묻지 않자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 후 며칠 동안 박진성은 오로지 편지 복원에만 몰두했다.똑같은 복사본을 만드는 건 쉬웠지만 완전히 똑같이 만들려면 시간이 걸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박 대표님, 찾았습니다. 지금 회사 아래에 있습니다. 올려보낼까요?”박진성의 눈에 파문이 일었고 턱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서류의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당장 올려보내!”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상우가 수수한 옷차림의 중년 여성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상우가 말했다.“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사람입니다.”박진성은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외모는 특별할 것 없었다. 중요한 건 목소리였다. 그는 말했다.“말해 보세요.”중년 여성은 잔뜩 긴장한 채, 앞에 선 남자의 강렬한 기세에 눌려 겨우 입을 열었다.“박... 박 대표님 안녕하세요...”그 어투와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순간, 박진성의 잘생긴 얼굴에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5화 그 편지는 그녀에게 유일한 물건이었다

    박진성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하려는데 민여진이 다시 말했다.“근데 난 그 사람이 가짜 경찰이라는 걸 알아. 오늘 갑자기 뜬금없이 이 별장으로 찾아온 것도 그렇고 하는 말도 그저께 그 사람과 똑같았거든.”“뭐라고?”박진성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가득했다.“무슨 말을 했는데?”“어머니가 1년 전에 투신자살로 돌아가셨다고 했어.”민여진의 말에 박진성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놈들은 다 헛소리하는 거야!”“어. 알아.”민여진이 말했다.“난 믿어. 당신이 날 속이지 않을 거라는 걸.”박진성은 다시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그가 물었다.“탁자 위에 있는 편지는 뭐지?”그는 급히 오느라 서원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민여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 “편지인데 별거 아니야.”난데없이 나타난 편지를 두고 민여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박진성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그는 다가가 편지를 집어 들었다. 겉면을 훑어보는 순간 민영미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이게 뭐지? 왜 민영미 씨 이름이 적혀 있는 거야?”민여진의 표정이 굳어졌다.“그 가짜 경찰이 만든 가짜 편지예요. 어머니가 투신자살한 후에 남겨진 유품이라고 했어요. 아무도 가져가지 않은 거라고.”“무슨 유품! 다 미친놈들이야!”박진성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는 이 일을 벌인 놈들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문득 그는 편지를 갈기갈기 찢으며 소리쳤다.“가짜야! 다 가짜라고!”민여진은 편지가 찢어지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박진성에게 달려들었다.“찢지 마! 박진성! 제발, 찢지 마!”박진성은 냉정한 표정으로 편지 봉투를 허공에 흩뿌리며 조각냈다.“뭘 그렇게 안달이야? 다 가짜인데. 그런 거 원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어. 그런 걸 갖고 있어 봐야 의심만 더 깊어질 뿐이야.”그는 민영미의 유품이나 편지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민영미의 옛 지인들이 가져갔다.민여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4화 마음속에 자리한 답

    서원은 바닥에 떨어진 편지를 주웠다. 인장 아래 적힌 ‘민영미'라는 이름에 그의 숨이 턱 막혔다.편지는 오래된 것처럼 보였고 위조된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 민영미가 살아생전에 남긴 편지인 것 같았다.그는 앞쪽에 서 있는 민여진을 바라보았다. 경찰이 떠난 후, 그녀는 철문에 매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벗겨진 외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앙상하게 마른 등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민여진 씨...”서원은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그러자 민여진은 철문에서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초점을 잃은 붉은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거짓말... 분명 거짓말이야! 우리 엄마는 아직 살아 있잖아. 나를 보고 싶어 하는 녹음도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일 년 전에 투신자살했다니 말도 안 돼. 이건 분명 문채연의 음모야!”서원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민여진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생각하기도 전에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이미 답을 내렸다.“분명해. 그 경찰은 가짜였어! 나랑 박진성을 이간질하려는 거야. 난 그의 수작에 넘어갈 순 없지. 내가 정말 박진성을 화나게 하면 어머니를 못 만나게 할지도 모르잖아. 서원 씨, 내 말 맞죠?”서원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붉어진 민여진의 눈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민여진은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놓은 게 아닐까?’그녀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편지...”민여진은 갑자기 바닥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편지 어디 있어요?”서원은 민여진의 행동을 제지하고 직접 편지를 건넸다. 민여진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어디 봐봐요. 이 편지 위조된 건지 아닌지...”그녀는 편지를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가 먼지 묻은 손을 수건으로 닦고 나서야 그녀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만졌다. 편지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니,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햇빛도 못 보는 곳에 다른 물건들과 함께 쌓여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3화 유품

    민여진은 초점 없는 눈으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경찰이 직접 찾아와서 어머니의 이름을 언급하다니. 설마 박진성이 보낸 사람들인가? 드디어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려는 걸까? 민여진의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경찰이시라고요? 우리 어머니도 온 거예요? 어디 계세요?”“민여진 씨!”서원의 얼굴빛이 변했고 민여진의 어깨를 움켜쥔 손이 무의식적으로 떨렸다. 그는 힘을 주어 그녀를 뒤로 밀어내며 말했다.“들어가세요!”민여진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반쯤 굳어지더니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며 말했다.“왜 그래요? 서원 씨, 간만에 엄마 소식을 들었는데... 이렇게 좋은 일인데 왜 절 들어가라는 거예요?”서원도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특히 민영미 사건 때문이었다. 민여진이 그녀 때문에 투신한 지 사흘도 안 돼서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으니 말이다.그는 불안한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 작게 말했다.“민여진 씨, 이상하지 않아요? 경찰이 어떻게 여길 알고 왔을까요? 당신 주소도 모를 텐데. 혹시 가짜 경찰일 수도 있어요.”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경찰은 그 말을 똑똑히 듣고는 미간을 찌푸렸다.“친구,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돼. 난 경찰증도 있고 내 경찰 번호 조회해 봐도 돼. 유품 전달하러 온 건데 굳이 가짜 경찰 행세를 할 이유가 없잖아.”민여진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는 멍하니 입을 열었다.“유품이요? 무슨 유품인가요?”경찰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모르고 계셨어요? 당연히 민영미의 유품이죠.”순간 민여진은 마치 목이 조여 오는 것처럼 숨이 막혔고 온몸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마치 지하실로 떨어지는 듯한 한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뭐라고요?”민여진은 목소리를 떨며 현관문으로 달려갔다.“뭐라고 했어요! 누구 유품이라고요!”서원의 얼굴도 순식간에 하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192화 경찰이 찾아오다

    “난 할 말 없어.”민여진은 입술 끝을 억지로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할 말이 없는 거야, 아니면 들통나서 더 이상 거짓말을 못 하겠는 거야?”박진성은 다시 물었다.“말해. 그날 누가 민영미가 죽었다고 말했어?”문채연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CCTV를 피해서 민여진을 만났다는 건, 분명 그녀의 마음을 흔들려는 의도였다...박진성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민여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방현수지? 그 자식이 돌아왔어?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려고!”“무슨 소리야?”민여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현수 씨랑 무슨 상관인데?”“방현수가 아니라면 네가 왜 그렇게 숨기려 들었겠어? 채연을 모함하면서도 그 사람의 행방은 끝까지 감추려 했겠냐고!”박진성은 점점 더 확신했다. 다른 도시에 있다고 해도 방현수가 몰래 돌아왔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는 민여진이 절망에 빠지고 우리 사이가 망가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다시 민여진을 차지할 수 있을 테니까.“방현수가 널 만나러 왔지? 너희 둘이 무슨 짓을 했어?”박진성은 술김에 탁자 위에 민여진을 밀어붙이고 그 나름의 처벌을 가했다.다음 날 아침, 민여진은 소파에서 눈을 떴다. 몸에는 담요가 덮여 있었지만 온몸이 차가웠다.어젯밤 일을 떠올리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박진성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모든 것을 방현수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민여진 씨, 일어나셨어요? 아침 식사가 다 식었는데 데워 드릴까요?”서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침부터 거실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민여진은 몸에 덮인 담요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이거 서원 씨가 덮어 준 거예요?”“네.”민여진은 미소를 지었다.“고마워요.”“별말씀을요. 신경 쓰지 마세요.”서원은 주방으로 향했다. 민여진은 자신의 옷을 만지작거렸다. 그나마 박진성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적어도 옷매무새는 단정하게 해 줘서 서원 앞에서 망신당하지는 않았으니까.물론 이미 숱하게 망신을 당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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