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다음 날, 유월영은 팀과 함께 전세기를 타고 13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신주시에 도착했다.긴 여정을 마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쉴 틈도 없이 공항에서 바로 경찰서로 향해 사건을 정식으로 신고했다.이 모든 과정은 이미 대기 중이던 언론에 의해 촬영되었고, 그 영상은 빠르게 온라인에 퍼졌다.처음에 네티즌들은 단순히 해외에서 열린 화려한 귀족 결혼식을 구경하며 레온 가문의 신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그들은 금빛 화려한 장식을 보며 “부자면 부자답게 조용히 결혼식을 치를 것이지.”, ‘드디어 유럽 재벌 가문의 결혼식을 보는군.’ 같은 농담을 하며 대체로 구경하는 분위기였다.그러나 하룻밤 새,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억울한 사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결혼식 연회에서 한 연회 부인의 발언은 편집되지 않은 채 외국 인터넷에 그대로 올라갔고, 그 내용은 다시 국내 주요 플랫폼으로 퍼졌다.곧바로‘고해양’, ‘4대 재벌 가문’, ‘음모’, ‘장부’ , ‘재심’ 등의 키워드가 연이어 검색어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조용했던 시기에 터진 이 충격적인 사건은 대중의 관심을 단숨에 끌며 뜨거운 토론으로 이어졌다.유월영의 경찰 서 방문은 이미 뜨거운 사건에 또 다른 불씨를 던졌고, 논란은 더욱 격렬해졌다.하지만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해서 바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경찰은 최대 7일이 걸릴 수 있다고 답했지만, 4일이 지나도 유월영은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이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이승연이 미리 충고했듯이, 이 사건은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이라 여러 방면에서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5일째가 되자, 유월영은 한 권위 있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중의 관심사에 대해 차분히 답했다.특히 한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다. “고해양 씨 사건이 잘못된 판결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잘못된 판결이라면 단순히 네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건을 다룬 사법 체계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였다.유월영은
유월영은 상대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 고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대중들이 그녀를 ‘선택적 복수’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윤영훈, 신현우, 오성민을 고소하면서 연재준에 대해서만 감춘다면, 사건이 불분명하게 보일 수 있고, 진심으로 공정한 판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편 가르기’로 비춰질 위험이 있었다.연재준의 죄목을 따져보면 유일한 범죄는 그녀에게 화살을 쏜 후 바다에 던진 고의적 상해죄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죄목이 없었다.인터뷰 방송 이후 큰 논란이 일었다.유월영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일부는 그녀가 자작극으로 관심을 끌며 여론을 선동하려 한다고 주장했다.심지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다니,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그러나 유월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부정적인 목소리 때문에 3년 넘게 준비한 복수 계획을 멈출 그녀가 아니었다.신고한 지 7일이 지나도 경찰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건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특별 수사가 필요하며 수사 시작까지 최대 30일이 걸릴 수 있다고 답했다.이 사건에서 유월영은 어떤 인맥도 이용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극도로 외부에 노출된 상황에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확대 해석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사건 심사를 재촉하려는 행동마저 왜곡될 수 있었다.유월영은 자신이 원하는 공정한 판결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기로 다짐했다.그녀는 조급해하지 않고 신주시와 마르세유를 오가며 통보를 기다렸다.그 사이, 유월영은 다니엘 부인에게서 받은 10%의 주식을 기존에 갖고 있던 10%의 지분과 합쳐, 레온 그룹 내에서 현시우 다음으로 큰 주주가 되었다.현시우의 친여동생인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편에 섰고, 레온 가문에 속한 후 현시우가 그룹을 지배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주식 상속을 논의하는 자리에 현시우 대신 한세인이 참석했으며, 정작 현시우는 모습을 드러내
사건이 공식적으로 접수된 후, 경찰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범죄 혐의자들의 수법이 은밀했던 탓에 수사는 쉽지 않았다.다행히 유월영과 현시우가 지난 3년간 수집한 방대한 증거를 정리해 제출하면서 경찰의 수사 난이도를 크게 낮췄다.그로부터 1년 뒤인 다음 해 5월,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고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법원은 사건을 접수한 지 보름 만에 공개 재판을 열었고, 모든 관련자를 법정에 소환했다.이미 사망한 연민철과 신민우는 출석할 수 없었고, 해외에 숨어 있던 오정훈과 윤이창은 체포되어 송환되었다.그러나 연재준은 출석하지 않았다.경찰 조사 단계에서 오성민은 연재준이 과거 유월영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경찰은 이를 확인한 후 연재준을 고의 상해죄로 체포하기로 결정했으나, 당시 연재준은 마르세유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결국 보석을 신청한 그는 석방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건강상의 이유로 변호사를 통해 대신 출석했다.한편, 연회 부인은 마르세유에서 신주시로 날아와 고해양 사건의 중요한 증인으로 출석했고, 유월영과 이영화는 이른바 ‘2세 사건’의 증인으로 나섰다.‘2세 사건’은 네티즌들이 붙인 이름으로, 네 재벌 가문의 2세들이 저지른 범죄를 가리킨다.공개 재판이었기에 법원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를 진행했다.비록 사건 발생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접속자 수는 천만 명을 돌파하며,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받는 사건이 되었다.두 사건 모두 하루 8시간 이상의 재판이 이어졌고, 결국 판결이 내려졌다.오정훈과 윤이창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9년 동안 도망친 두 사람은 결국 60세에 가까운 나이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2세 사건’에서, 법원은 오성민에게 고의 상해죄, 고의 살인죄, 살인 미수죄, 뇌물죄, 불법 감금죄, 범죄 교사죄, 공공 안전 위협 죄, 국제 범죄 등 수많은 혐의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오성민은 이 판결을 듣고 전혀 놀라지 않
결국 신현우는 벌금과 서면 경고를 받았고 재판이 끝난 후 바로 석방되었다.하지만 그는 더 이상 회사의 대표가 아니었다.지난해, 그는 심각한 손해를 입은 기업을 매각했고 상당한 매각 대금을 얻었다.그러나 그중 삼 분의 일은 폭발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되었다.비록 법적으로는 이미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신현우는 다시 한번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그도 오성민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였으며, 본질적으로 고해양 사건과 ‘2세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신현우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하여 법적 제재를 피했지만 신현우는 아버지가 고씨 가문을 억압해 얻은 이익을 누렸다는 점에서 그 역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남은 돈의 삼 분의 일을 그는 유월영에게 보상으로 전달했고, 유월영은 이를 자신과 윤영훈이 공동 창립한 ‘비상’ 자선 재단에 전액 기부했다.처음에는 윤영훈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이었지만, 지금은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재단은 지난해 말 시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경찰이 신현우의 수갑을 풀어주자, 그는 배심석을 바라보았다.윤영훈보다 운이 좋았던 그는 그곳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강수영을 발견했다.연재준은 신현우와 마찬가지로 공모 범죄에 해당하지 않았다.다만, 고의 상해죄는 증거가 명확했지만 피해자인 유월영의 용서를 받은 점, 경찰이 오성민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기여한 공로, 당시 상황의 불가피성을 참작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모든 피고는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했고 항소하지 않았다.이로써 두 사건은 완전히 종결되었다.29년에 걸친 이 사건은 재심이 시작된 시점부터 계산하더라도 정확히 1년 1개월이 걸려 마침내 결말을 맺었다.판결이 내려지자 법정에 있던 유월영의 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를 쳤다.이는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찬사이자, 긴 세월 동안의 한을 푼 유월영을 위한 박수였다.유월영은 그제야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조서희가
유월영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연재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연재준은 한 발 앞으로 다가가 유월영이 떨어뜨린 외투를 집어 들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어린애처럼 옷을 던지며 놀고 있네?”익숙한 향기가 유월영의 코끝을 스쳤다. 덥게 느껴지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그녀는 편안함을 느꼈다.정신을 차린 유월영이 물었다.“언제 돌아왔어요?”“방금.”사실 연재준은 며칠 전에 비행기를 탔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재판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가 태풍을 만나 다른 나라에 비상 착륙해야 했다. 결국, 다음 날에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그의 손에는 유월영이 좋아하는 수국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축하해. 네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져서 다행이야.”유월영은 두 손으로 꽃다발을 받아 가슴에 안았다.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사건이 마무리된 건 좋은 일이었다.그동안 한 번도 진정으로 쉬거나 행복했던 적이 없었지만, 이제 마음이 비어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꽃을 들여다보며 향기를 맡았다. 사실 수국은 향이 거의 없었지만, 그녀는 수국의 화려함과 다채로운 색상을 좋아했다.유월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 큰 일에 겨우 꽃 한 다발이에요?”연재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유월영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지만, 연재준은 입술이 아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거.”그는 접힌 A4 용지 한 장을 건넸다.유월영은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받아 펼쳤다. 그러나 한 줄의 문장이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보고서는 연재준의 이름이 적힌 의학 보고서였다.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유월영은 급히 연재준을 쳐다보았다.연재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계속 읽으라는 시늉을 했다.유월영은 서둘러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보고서에는 수술명, 진단, 수술 지시 사항, 과정, 병리 보고서, 그리고 수술 후 회복 상태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수술 후 환자의 회복 상태는 양호하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술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고객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에 태워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길가 가로등에 등을 기댔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듯이 아팠다.립스틱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고 파리한 입술에는 핏기 한 점 없었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연재준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했다.“유 비서님, 먼저 차에 타실래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문이 열리더니 밖에 연재준과 여자애가 서 있었다. 같이 타려고 했는데 유월영이 먼저 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연재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여자는 다급히 달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앞에 탈게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유진이 먼저 데려다줘.”유월영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산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술을 마시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차는 한 낡은 아파트 구역으로 들어섰다. 유월영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골목이 어두워서 위험해. 유 비서가 유진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백유진이 흑수정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대표님. 언니도 피곤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해요. 혼자 올라갈게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뒷좌석 차창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은 월영 언니 바래다줘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꿈 꿔요.”차갑기만 하던 연재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래, 좋은 꿈 꿔.”유월영은 차에 오르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유월영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신, 연재준의 동해안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연재준의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써 눈빛 하나로도 연재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집 안으로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소리가 남녀의 신음소리를 덮었다.연재준에 이끌려 욕조에 던져진 유월영은 갑자기 3년 전 그와의 첫만남이 떠올랐다.그날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작은 슈퍼를 운영했다. 부유하진 않지만 궁핍하지는 않았고 다섯 식구가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오붓하게 살았다.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사기꾼의 꼬임에 들어 10억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들은 슈퍼와 집을 팔고 집안의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지만 그래도 6억이나 부족했다.막다른 길에 다달았을 때, 사기군은 유월영을 데려다가 빚을 갚게 하겠다고 꼬드겼다.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녀는 비 오는 밤에 살기 위해 집에서 도망쳤다. 뒤에는 오토바이 소리가 그녀를 쫓고 있었다. 맹수에게 쫓기는 이 가여운 먹잇감은 도망치는 길에 신발까지 잃어버리고 머리는 산발이 된 채로 어두운 대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달리다 지친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자,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가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절망하던 순간에 차량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섰다.차 문이 열리고 반짝이는 구두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약간 들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검은 우산을 들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었다.그리고 조폭들에게 자기 사람이라고 당장 꺼지라고 말했다.처음 만났을 때 그는 꿈에서 나타난 구원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모습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어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대략 30분이 지나 유월영은 젖은 채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흑설탕을 따뜻한 물에 풀어 마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연재준은 아직 욕실에서 씻고 있었다.그녀는 유산한 사실을 그에게 알려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하지만 결국 비밀에 부치는 걸로 결론이 났다.3년 전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는 그의 곁에 남는 대가로 더 이상 귀찮은 일을
유월영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연재준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연재준은 한 발 앞으로 다가가 유월영이 떨어뜨린 외투를 집어 들고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어린애처럼 옷을 던지며 놀고 있네?”익숙한 향기가 유월영의 코끝을 스쳤다. 덥게 느껴지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그녀는 편안함을 느꼈다.정신을 차린 유월영이 물었다.“언제 돌아왔어요?”“방금.”사실 연재준은 며칠 전에 비행기를 탔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재판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가 태풍을 만나 다른 나라에 비상 착륙해야 했다. 결국, 다음 날에서야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그의 손에는 유월영이 좋아하는 수국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축하해. 네가 원하던 대로 이루어져서 다행이야.”유월영은 두 손으로 꽃다발을 받아 가슴에 안았다.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듯했다. 사건이 마무리된 건 좋은 일이었다.그동안 한 번도 진정으로 쉬거나 행복했던 적이 없었지만, 이제 마음이 비어 새로운 것들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꽃을 들여다보며 향기를 맡았다. 사실 수국은 향이 거의 없었지만, 그녀는 수국의 화려함과 다채로운 색상을 좋아했다.유월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 큰 일에 겨우 꽃 한 다발이에요?”연재준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유월영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지만, 연재준은 입술이 아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거.”그는 접힌 A4 용지 한 장을 건넸다.유월영은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받아 펼쳤다. 그러나 한 줄의 문장이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보고서는 연재준의 이름이 적힌 의학 보고서였다.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 유월영은 급히 연재준을 쳐다보았다.연재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계속 읽으라는 시늉을 했다.유월영은 서둘러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보고서에는 수술명, 진단, 수술 지시 사항, 과정, 병리 보고서, 그리고 수술 후 회복 상태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수술 후 환자의 회복 상태는 양호하
결국 신현우는 벌금과 서면 경고를 받았고 재판이 끝난 후 바로 석방되었다.하지만 그는 더 이상 회사의 대표가 아니었다.지난해, 그는 심각한 손해를 입은 기업을 매각했고 상당한 매각 대금을 얻었다.그러나 그중 삼 분의 일은 폭발 사고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되었다.비록 법적으로는 이미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신현우는 다시 한번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그도 오성민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였으며, 본질적으로 고해양 사건과 ‘2세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신현우의 아버지는 이미 사망하여 법적 제재를 피했지만 신현우는 아버지가 고씨 가문을 억압해 얻은 이익을 누렸다는 점에서 그 역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남은 돈의 삼 분의 일을 그는 유월영에게 보상으로 전달했고, 유월영은 이를 자신과 윤영훈이 공동 창립한 ‘비상’ 자선 재단에 전액 기부했다.처음에는 윤영훈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이었지만, 지금은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계속 운영되고 있었다.재단은 지난해 말 시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경찰이 신현우의 수갑을 풀어주자, 그는 배심석을 바라보았다.윤영훈보다 운이 좋았던 그는 그곳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강수영을 발견했다.연재준은 신현우와 마찬가지로 공모 범죄에 해당하지 않았다.다만, 고의 상해죄는 증거가 명확했지만 피해자인 유월영의 용서를 받은 점, 경찰이 오성민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기여한 공로, 당시 상황의 불가피성을 참작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모든 피고는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했고 항소하지 않았다.이로써 두 사건은 완전히 종결되었다.29년에 걸친 이 사건은 재심이 시작된 시점부터 계산하더라도 정확히 1년 1개월이 걸려 마침내 결말을 맺었다.판결이 내려지자 법정에 있던 유월영의 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를 쳤다.이는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찬사이자, 긴 세월 동안의 한을 푼 유월영을 위한 박수였다.유월영은 그제야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감을 느꼈다.조서희가
사건이 공식적으로 접수된 후, 경찰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범죄 혐의자들의 수법이 은밀했던 탓에 수사는 쉽지 않았다.다행히 유월영과 현시우가 지난 3년간 수집한 방대한 증거를 정리해 제출하면서 경찰의 수사 난이도를 크게 낮췄다.그로부터 1년 뒤인 다음 해 5월,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하고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법원은 사건을 접수한 지 보름 만에 공개 재판을 열었고, 모든 관련자를 법정에 소환했다.이미 사망한 연민철과 신민우는 출석할 수 없었고, 해외에 숨어 있던 오정훈과 윤이창은 체포되어 송환되었다.그러나 연재준은 출석하지 않았다.경찰 조사 단계에서 오성민은 연재준이 과거 유월영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경찰은 이를 확인한 후 연재준을 고의 상해죄로 체포하기로 결정했으나, 당시 연재준은 마르세유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결국 보석을 신청한 그는 석방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건강상의 이유로 변호사를 통해 대신 출석했다.한편, 연회 부인은 마르세유에서 신주시로 날아와 고해양 사건의 중요한 증인으로 출석했고, 유월영과 이영화는 이른바 ‘2세 사건’의 증인으로 나섰다.‘2세 사건’은 네티즌들이 붙인 이름으로, 네 재벌 가문의 2세들이 저지른 범죄를 가리킨다.공개 재판이었기에 법원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를 진행했다.비록 사건 발생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다.접속자 수는 천만 명을 돌파하며,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받는 사건이 되었다.두 사건 모두 하루 8시간 이상의 재판이 이어졌고, 결국 판결이 내려졌다.오정훈과 윤이창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9년 동안 도망친 두 사람은 결국 60세에 가까운 나이에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2세 사건’에서, 법원은 오성민에게 고의 상해죄, 고의 살인죄, 살인 미수죄, 뇌물죄, 불법 감금죄, 범죄 교사죄, 공공 안전 위협 죄, 국제 범죄 등 수많은 혐의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오성민은 이 판결을 듣고 전혀 놀라지 않
유월영은 상대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 고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대중들이 그녀를 ‘선택적 복수’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 것이었다.만약 그녀가 윤영훈, 신현우, 오성민을 고소하면서 연재준에 대해서만 감춘다면, 사건이 불분명하게 보일 수 있고, 진심으로 공정한 판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편 가르기’로 비춰질 위험이 있었다.연재준의 죄목을 따져보면 유일한 범죄는 그녀에게 화살을 쏜 후 바다에 던진 고의적 상해죄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죄목이 없었다.인터뷰 방송 이후 큰 논란이 일었다.유월영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일부는 그녀가 자작극으로 관심을 끌며 여론을 선동하려 한다고 주장했다.심지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아들을 사랑하다니,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그러나 유월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부정적인 목소리 때문에 3년 넘게 준비한 복수 계획을 멈출 그녀가 아니었다.신고한 지 7일이 지나도 경찰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건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특별 수사가 필요하며 수사 시작까지 최대 30일이 걸릴 수 있다고 답했다.이 사건에서 유월영은 어떤 인맥도 이용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극도로 외부에 노출된 상황에서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확대 해석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사건 심사를 재촉하려는 행동마저 왜곡될 수 있었다.유월영은 자신이 원하는 공정한 판결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기로 다짐했다.그녀는 조급해하지 않고 신주시와 마르세유를 오가며 통보를 기다렸다.그 사이, 유월영은 다니엘 부인에게서 받은 10%의 주식을 기존에 갖고 있던 10%의 지분과 합쳐, 레온 그룹 내에서 현시우 다음으로 큰 주주가 되었다.현시우의 친여동생인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편에 섰고, 레온 가문에 속한 후 현시우가 그룹을 지배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주식 상속을 논의하는 자리에 현시우 대신 한세인이 참석했으며, 정작 현시우는 모습을 드러내
결혼식 다음 날, 유월영은 팀과 함께 전세기를 타고 13시간의 긴 비행을 거쳐 신주시에 도착했다.긴 여정을 마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쉴 틈도 없이 공항에서 바로 경찰서로 향해 사건을 정식으로 신고했다.이 모든 과정은 이미 대기 중이던 언론에 의해 촬영되었고, 그 영상은 빠르게 온라인에 퍼졌다.처음에 네티즌들은 단순히 해외에서 열린 화려한 귀족 결혼식을 구경하며 레온 가문의 신부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그들은 금빛 화려한 장식을 보며 “부자면 부자답게 조용히 결혼식을 치를 것이지.”, ‘드디어 유럽 재벌 가문의 결혼식을 보는군.’ 같은 농담을 하며 대체로 구경하는 분위기였다.그러나 하룻밤 새, 수십 년 동안 감춰졌던 억울한 사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결혼식 연회에서 한 연회 부인의 발언은 편집되지 않은 채 외국 인터넷에 그대로 올라갔고, 그 내용은 다시 국내 주요 플랫폼으로 퍼졌다.곧바로‘고해양’, ‘4대 재벌 가문’, ‘음모’, ‘장부’ , ‘재심’ 등의 키워드가 연이어 검색어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조용했던 시기에 터진 이 충격적인 사건은 대중의 관심을 단숨에 끌며 뜨거운 토론으로 이어졌다.유월영의 경찰 서 방문은 이미 뜨거운 사건에 또 다른 불씨를 던졌고, 논란은 더욱 격렬해졌다.하지만 경찰서에 신고한다고 해서 바로 수사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경찰은 최대 7일이 걸릴 수 있다고 답했지만, 4일이 지나도 유월영은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이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이승연이 미리 충고했듯이, 이 사건은 지나치게 민감한 사안이라 여러 방면에서 신중함이 요구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5일째가 되자, 유월영은 한 권위 있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중의 관심사에 대해 차분히 답했다.특히 한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다. “고해양 씨 사건이 잘못된 판결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잘못된 판결이라면 단순히 네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건을 다룬 사법 체계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였다.유월영은
유월영이 연회 부인의 손을 잡고 빛나는 단상에 오르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그녀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중요한 내용은 어머니께서 다 말씀하셨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이 다시 연회를 즐기시길 바랍니다.”유월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이번에 돌아가서 공식적으로 고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28년의 이야기는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되었습니다.”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단호한 표정과 결의에 찬 눈빛은 어떤 말보다 강렬했다. 마치 반드시 정의를 되찾겠다는 굳은 의지를 말하는 듯했다.조용하던 연회장은 구석에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로 깨어났다. 가장 먼저 박수를 친 이는 어두운 불빛 아래 서 있던 현시우였다. 아무도 그가 시작한 것을 알지 못했지만, 곧 넓은 연회장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전 객석을 채웠다.이 박수는 다양한 의미로 들려왔다.누군가에겐 친척과 친구의 지지였을 수도 있고, 극적인 이야기에 대한 감탄이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단순히 구경꾼으로서의 흥미와 응원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선의든, 비꼬는 마음이든 상관없었다.어쨌든 오늘 밤, 이 엄청난 선언으로 인해 28년 전의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었다....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이혁재가 입을 열었다.“난 처음부터 월영 씨가 직접 무대에 올라 말할 줄 알았어.”그러자 서지욱이 말했다.“고씨 가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연회 부인이지, 유월영 씨가 아니잖아. 연회 부인이 나서야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설명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월영 씨가 무대에 올라 말했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의심했을 거야. ‘당신은 당시 갓난아기였는데 어떻게 이 모든 일을 알지? 이런 주장을 어디서 들었지?’ 혹은 ‘네 개 가문이 사법부를 압박했다고 주장하는데, 지금 당신이야말
연회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는 좋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이건 저희 남편을 대신해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현씨 가문을 떠나 크로노스를 데리고 레온 가문으로 돌아갔습니다.”연회 부인이 15년 동안 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있으면서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기에 사람들의 기억은 점차 흐릿해졌고, 그 사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였다.현 회장이 몇 마디 말을 흘리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씨 가문의 사모님이 레온 가문의 연회 부인이라고 믿게 되었고, 그로써 이야기는 완벽히 마무리되었다.연회 부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니엘 부인은 78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눈썰미가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그분은 크로노스를 주의 깊게 관찰했고, 레온 가문을 이끌 인물은 오직 크로노스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그녀는 말을 이어갔다.“다니엘 부인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크로노스를 위해 몇 가지 시험을 준비했고, 크로노스는 이를 완벽히 통과한 후 레온 가문의 후계자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후계자로 인정받은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니엘 부인은 세상을 떠났어요.”연회 부인은 담담히 회상하며 말했다.“그분은 생의 마지막 해에 모든 일을 정리하셨습니다. 어릴 적에는 다니엘 부인의 엄격한 교육 방식 때문에 항상 거리감을 느꼈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부인은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결혼, 자식, 감정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인생 목표는 레온 가문이라는 거대한 배가 끝없이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다니엘 부인은 저를 용서한 것이 아니었어요. 레온 가문에 필요한 후계자가 제 아들 크로노스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저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죠.”이야기를 듣던 유월영은 외할머니인 다니엘 부인을 직접
연회 부인은 차분히 대답했다.“그건 현씨 가문의 전 사모님이었던 방 여사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그분은 아주 온화하고 친절한 분일 뿐 아니라, 매우 뛰어난 항해 탐험가이기도 하죠.”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덧붙였다.“혹시 오늘 밤 이후 생길지도 모를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방 여사님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 여사님과 현 회장님의 이혼은 저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발 모든 여성을 사랑의 틀에 끼워 넣지 말아 주세요.”이어 방 여사님에 대해 설명했다.“방 여사님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이셨어요. 고양이와 강아지만 데리고 배로 카리브해를 건너며 그 시간을 즐기셨죠. 그녀의 용기와 추구하는 바는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신 방 여사님은 저희 비밀을 지켜주셨고, 저를 그녀의 신분으로 숨겨주셨습니다.”연회 부인은 방 여사님의 도움을 떠올리며 말했다.“그 15년 동안 저는 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네 가문의 사람들에게 쫓기지 않았죠. 현 회장님과 방 여사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그 15년 동안 연회 부인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고, 외부에는 병으로 요양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현 회장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아무도 그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현씨 가문의 사모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또한, 현 회장은 새로 가정부들을 고용했고, 가정부를 매수해도 비밀을 알아낼 수 없게 조치했기에 연회 부인은 아들 현시우와 함께 안전하게 숨어 지낼 수 있었다.연회장에는 외국인 손님들이 다수 참석해 있었고, 이들은 동시통역을 위해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 여겨졌던 이어폰의 진짜 용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그중 한 외국인이 질문했다. “왜 다니엘 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요? 그분께 복수를 부탁하거나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연회 부인은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대답했다.“우리 다니엘 부인
유월영은 이 사건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지금의 네 가문은 자신들을 보호하거나 반격할 능력을 잃었고 과거에 그들을 도와주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유월영이 한 가문씩 무너뜨리고 마지막에 한꺼번에 책임을 물으려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네 가문을 한 번에 무너뜨리면 국내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위에서 그녀의 계획을 방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 네 가문은 주목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게 되었다.판사 또한 공정하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연회 부인은 눈을 감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 했다.그녀는 10년간 함께했던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렸다.그들의 결혼식은 오늘 유월영의 결혼식처럼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않았지만, 고해양은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최고의 로맨스를 선사했었다.그는 해바라기 씨앗을 사서 한적한 땅에 뿌리고 날마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정성껏 돌보았다.그렇게 황금빛 해바라기가 만발했을 때, 그 꽃밭에서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그녀가 물었다.“언제 이 꽃들을 심었어요?”그가 대답했다.“당신을 좋아하게 된 그날부터요. 당신을 좋아하게 된 순간, 나는 당신과 결혼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이 꽃을 심기 시작했고, 여기에서 당신을 위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다짐했죠.”레온 가문에서 태어난 연회 부인은 이미 부와 명예를 모두 경험했기에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나 한 사람의 진심은 그녀를 평생 잊지 못하게 했다.추억에서 깨어난 연회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우연히 아래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임신 중이었던 딸이 혹시 고민서 씨 아닌가요?”연회 부인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말했다.“여러분의 추측이 맞습니다. 제 딸 고민서는 고해양 씨와 저의 딸입니다.”그 순간, 누군가 유월영의 손을 잡았다.고개를 돌려보니 연재준이었다.“그때 네 가문은 이 장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