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준은 모든 게 자신의 통제 아래 있는 걸 좋아했다. 유월영과 키스할 때도 그랬다. 그는 유월영의 목덜미를 잡고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면서, 정확하고 빠르게 그녀의 입술을 공략했다.두 사람의 부드러운 입술이 잠시 맞닿았다가, 마치 마른 장작이 타오르는것 마냥, 순간적으로 불길이 치솟았다.오랜만의 친밀한 순간은 열정적이고 길게 이어졌다.사랑 나눌 때의 키스보다, 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키스가 오히려 더 사람을 유혹했다. 유월영은 거부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연재준의 옷을 꽉 쥐며 눈을 살짝 감고 그의 입술에 응했다.그 순간, 연재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미친 듯이 자라났다.잠시 후, 두 사람은 떨어졌고, 연재준은 가까이에서 유월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로 화가 풀린 것 같았다.“자기야, 한 번 더 ‘준아’라고 불러줘.”유월영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그 이름이 그렇게 좋아요?”연재준은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아마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면 한 번도 얻어본 적이 없어서 잊을 수 없는 걸 거야.”유월영은 그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술이 조금 떼였다. 거의 부를 뻔했지만,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유월영은 즉시 말을 삼켰다. “전화가 울려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감싸안고 말했다. “먼저 부르고, 그다음에 받을게.”“밤늦게 중요한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빨리 받아봐요.” 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 “며칠 후 결혼식이 끝나면, 부를 기회가 없을까 봐요?” 연재준은 그 말이 마음에 든 듯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유월영은 그의 품에서 살며시 벗어나 소파로 향했다. 그는 전화를 꺼내 들었고 전화를 건 사람은 서지욱이였다.“무슨 일이야?”서지욱의 웃음소리가 들렸다.“집에서 아내랑 있지만 말고, 우리 다 서덕궁에 있으니 형만 오면 돼.”“모임이야?”“그래.”연재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알았어, 곧 갈게.”전화를 끊자 유월영은 하
노현재는 다른 소파에 앉아 있다가 연재준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맥주병을 든 채 다가왔다. 그는 여우 눈을 한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맥주병을 흔들어 자리를 비키라고 손짓했다.“형, 무슨 일이야?”“내일모레 있는 나와 월영이의 결혼식에 사람을 더 많이 배치해.”노현재는 잠시 흠칫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무슨 일 있어? 지금 계획된 인원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누가 감히 결혼식을 방해할 수 있겠어?”연재준은 다른 설명 없이 말했다. “그냥 사람을 두 배로 늘려.”노현재는 맥주병으로 그의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알겠어, 형. 걱정하지 마. 내가 형수를 잘 보호할게.”여우 눈을 한 여자는 그제야 그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슬퍼졌다....풍습에 따르면 신부는 친정집에서 출가해야 했다.하지만 유월영은 사실상 자신만의 집이 없었다.동해안은 연재준의 집이었고, 그녀가 전에 조서희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도 임대였으며, 마을은 그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 결혼식을 할 수 없었다. 어느 곳도 적합하지 않았다.그러나 연재준에게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그는 자신 명의의 집을 유월영에게 바로 증여했다.집 명의가 그녀의 것이 되었으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기 집에서 출가할 수 있었다.주말 저녁에 유월영은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갔다.집은 크지도 작지도 않아 60평 남짓했고 신주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아마도 100억 정도는 돼 보였다. 유월영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연재준의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애인을 위해 가방, 차, 집을 선물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는데, 그녀만 연재준과의 3년 동안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물론, 그녀도 받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이제 연재준이 주는 집을 한 채 그냥 받으려니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시간이 촉박했지만 연재준은 그래도 집을 준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유월영의 들러리는 조서희였다. 보통
갑자기 그냥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어....이 말은 이후 많은 밤, 유월영의 꿈속에서도 들려오곤 했었다.그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칼에 베인 것처럼 아파왔고 그녀는 몸은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고통스러워졌다. 그녀가 그를 향한 감정은 증오해서 한이 맺혔는지 사랑해서 한이 맺혔는지 헷갈리게 했다.다만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이 분명했다. 만약 그들의 관계가 그녀가 사직서를 제출한 날에 끝났더라면...그녀가 SK그룹에 입사한 날에 끝났더라면...그것도 아니면 그가 백유진을 감싸 돌고 백유진이 다치지 않게 신주시를 떠나보냈을 때 끝냈더라면...심지어 유영우가 자살한 날에 끝났더라면 나중의 핏빛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었다.그렇게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내지 않았고, 결국 서로가 반쯤 목숨을 잃게 했다.유월영이 잠들었지만 연재준은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침대 옆에서 그녀가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밤바람이 불어와 그의 목을 간지럽히자 그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기침했다. 그리고 급히 일어나 창문을 잘 닫고 방을 나왔다.하정은은 그의 기침이 멈추지 않자 급히 물 한 잔을 가져왔다.그녀는 계속 그를 따라다녀 그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대표님, 싱가포르에서 돌아오신 이후로 계속 기침을 하고 계십니다. 검사를 받아보시죠.”그는 자주도 아니고 가끔 기침을 할 뿐, 그 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연재준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저었다.그는 물컵을 입에 가져가다 불쑥 물었다. “월영, 요즘 이상한 점은 없었어?”하정은은 잠시 망설였다가 대답했다.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했었다...하지만 그가 보기에는 유월영이 순순히 결혼을 받아들인 게 아무래도 수상하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하정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표님, 싱가포르에서 사모님이 대표님 따라 신주시로 돌아온 건 이영화 씨의 안전을 위해서였잖아요. 사모님의 1순위는 언제나 어머니의 안전이었습니다. 이번 결혼식도 이영화 씨의 안전을
유월영이 일어나서 하정은의 옆을 지나가자 하정은은 진심으로 말했다.“사모님, 정말 아름다워요. 신혼 축하드려요.”유월영이 살짝 미소 지었다.계단을 내려오니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아홉 대의 화려한 차들이 이미 대기 중이었다.연씨 가문의 규칙은 신랑이 직접 신부를 맞으러 가지 않고, 손윗사람들이 신부를 맞이하러 갔으며 보통 신랑의 부모가 데리러 갔으며 이는 신부에 대한 존중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연재준은 아버지를 부르지 않았으며 윤미숙은 더욱이 청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는 삼촌과 숙모가 신부를 맞이하러 갔고, 노현재가 차 행렬을 이끌고 함께 유월영의 집으로 향했다.그는 차 문 옆에 기대서서 하정은이 유월영을 부축하며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자세를 바로 했다.연재준의 삼촌과 숙모는 기쁜 마음으로 다가와 유월영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차 문을 열어주었다.유월영은 차에 타기 전에 노현재와 잠깐 눈을 마주쳤고, 잠시 후 고개를 숙이고 차에 탔다.노현재는 껌을 씹으며 돌아서서 외쳤다. “시간 되었으니 출발——”결혼식은 호텔에서 열렸으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연재준은 하객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하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그의 시선은 때때로 문밖을 향했으며 그런 그를 하객들은 신부를 빨리 보고 싶어 그런 거라며 놀렸다.연재준은 부정하지 않은 채 마음속으로 도착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한 하객이 그에게 다가와 예식장의 장식을 칭찬하자 연재준은 뒤돌아보면서 말했다. “모두 그녀가 준비한 거죠.”이 ‘그녀’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한순간에 유월영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보다‘그녀’라는 표현이 더 친밀하고 애틋해 보였다. 그래서 모두 유월영의 미적 감각과 취향을 칭찬하고 있었다.연재준도 예식장을 한번 둘러보았다.예식장은 주로 생화로 꾸며져 있었으며 유월영은 유럽의 나무수국을 골랐다. 연두색 잎이 연두색 꽃봉오리를 감싸고 있고 꽃봉오리가 쌍을 이루어 우아하고 몽환적이며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이영화는 문밖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삐삐 소리를 듣고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 흰 가운을 입은 낯선 남자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당신들은...”앞장선 남자가 즉시 손가락을 올리며 소리 내지 말라는 시늉 했다.“겁내지 마세요. 저는 지남이라고 합니다. 유월영 씨의 친구예요. 유월영 씨랑 상의하고 당신을 데리러 왔습니다.”“월영이! 우리 월영 괜찮나요?”지남이 대답했다. “네. 월영 씨 괜찮습니다. 시간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드릴게요. 우선 우리와 함께 가시죠!”“그래요. 그래요...”지남은 이영화에게 넓은 망토를 입히고 모자를 씌워 얼굴을 가린 뒤 곧장 이동했다.병원에는 24시간 연재준의 사람들이 이영화를 지키고 있었지만, 지남 일행은 경비가 교대하는 짧은 1분을 틈타 움직였다.그들이 계획된 경로를 따라 철수하는 동안 경비원들은 바로 이영화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당황하여 사람들을 조직해 지남을 추적하는 한편 바로 연재준에게 소식을 보고했다!보고를 받은 연재준은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꽉 움켜쥐었다. 그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가까이 있던 꽃병이 갑자기 터졌다!펑!도자기가 산산이 부서지고 연재준은 빠르게 몸을 피했다. 경호원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연 대표님, 조심하세요!”연재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이층 난간에 저격총이 보였다...아니, 한국에서는 총기를 소지할 수 없었기에, 그건 사격 클럽에서 사용하는 공포탄이 장전된 총이었다!이 총의 살상력은 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총을 들고 있는 여자는 세련된 단발머리에 깔끔한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한세인이였다. 그녀는 아래에 있는 연재준에게 도발하며 경례했다.연재준은 실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한세인은 다시 탄을 장전하고, 총대를 옆으로 휙 돌리며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가 스치는 곳마다 연회장에 꽂혀 있던 크고 작은 수국 화병이 하나하나 터졌다!펑! 펑! 펑!갑작스럽고 연속적인 폭
신부차 탈취와 예식장의 혼란은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신부차 행렬은 앞뒤로 두 대씩 차가 배치되어 중앙의 신부차를 둘러싸며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신호등을 지날 때 몇 대의 SUV가 갑자기 나타나 신부차를 고립시키려고 했다.신부차의 운전기사는 원래 연재준의 운전기사여서 매우 민첩했다. 주위에 차들이 몰려들자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노현재에게 연락했다.“노 대표님, 누군가 차를 미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노현재가 지시했다.“앞쪽에서 좌회전하세요.”문제의 SUV들도 신부차를 좌회전시키려고 했으며 좌회전하면 놈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거나 더 위험이 있을 텐데 노현재가 왜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라고 하는 건지 운전기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운전기사는 핸들을 꽉 잡고 말했다.“노 대표님! 안 됩니다! 좌회전하면 결혼식장과 더 멀어져요!”노현재는 신부차 우측에서 따라오다가 갑자기 바짝 붙으며 말했다.“좌회전하라고!”신부차는 거의 부딪힐 뻔하면서 피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좌회전하여 다른 길로 들어섰다.뒷좌석의 유월영은 손에 들고 있던 부케를 꽉 쥐었다.신부차에 같이 타고 있던 연재준의 숙부와 숙모도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깜짝 놀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왔다. 오직 유월영만이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날 노현재는 동해안에 가서 유월영에게 현시우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 그녀의 생일이므로 결혼식으로 변경하여 그들은 혼란을 틈타 행동할 계획이었다.유월영은 잊지 않고 안전벨트를 맸다.다음 순간, 뒤에 있던 차들 중 한 대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노현재의 차를 뒤에서 세게 들이받았다!노현재의 차는 몇 미터 앞으로 밀려났고, 그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사람으로 바꿔서 그럴 일이 없었다.그러다가 앞 유리창을 통해 그는 운전하는 사람이 이혁재인걸 알아챘다.‘이혁재가 어떻게?’이어, 큰 도로에서 하얀 승용차 몇 대가 빠르
유월영은 재빨리 차에 올라탔고 차는 계속해서 부두를 향해 질주했다. 노현재는 고개를 돌려 넓은 도로를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그에게 다가온 것은 신부 행렬의 차 한 대였다. 차는 노현재 앞에서 급정거한 후 이혁재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그는 푸르딩딩한 얼굴로 노현재에게 달려와서 말했다. “전날 서덕궁에서 재준 형이 나에게 또 한 팀을 준비하라면서 몰래 신부차와 너를 감시하라고 하더라. 넌 형제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재준 형이 너무 쓸데없는 짓을 생각한다고 생각했지. 근데 네가 정말 이렇게 배은망덕한 놈이란걸 내가 몰랐네!”마지막 말을 하면서 이혁재는 발을 들어 노현재의 가슴을 세게 걷어찼다!“배은망덕한 놈아! 이기적인 놈! 너를 오늘 이 자리까지 올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이나 해 봤어? 재준이 형을 배신할 줄이야!”노현재는 서지욱의 발길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며 얼굴이 창백해진 채 씁쓸하게 웃었다. “재준이 형도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었구나...그런데 지욱이 형, 그때 우리 같이 술을 마시며 형이 나한테 그랬잖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뺏어오라고, 남을 위해 착한 척하지 말고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고.”이혁재는 잠시 멈칫하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유월영이라는 것을 깨닫고 화가 난 나머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다시 그를 걷어차려고 발을 들었다. ‘왜 하필이면 재준이 형의 여자를 좋아하냐고!’그때, 도로 옆에 몇 대의 차가 급정거하며 멈춰 섰고 연재준이 뒷좌석에서 내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한 연재준을 보자 노현재는 피하지 않고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 연재준은 그의 옷깃을 잡아챘다.“월영이 어디 있어?”노현재는 숨을 고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재준이 형, 월영 씨 모녀를 보내줘.”연재준은 얼굴이 굳어진 채 노현재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를 배신한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그렇게 보내면 월영의 목숨이 위험하다고!”노현재는 멍하니 서 있었고 연재준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
이영화는 그대로 풀밭에 쓰러졌고 유월영도 비틀거리다 따라 넘어졌다. 그곳은 작은 비탈길이었고 유월영은 넘어지면서 몇 미터나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들판에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유월영은 그 화살이 자신의 심장을 관통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낸 것처럼 느껴졌고 바람이 그 구멍을 통해 들어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유월영은 눈앞이 핏빛으로 물든듯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한가지 생각만 들었다.‘엄마, 엄마...’엄청난 고통이 온몸으로 번져왔다. 짧은 반 미터 거리도 유월영은 온 힘을 다해 기어가야만 이영화의 곁에 다가가 그녀의 옷소매를 잡을 수 있었다.‘엄마...’머릿속에는 마치 주마등처럼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조용한 오후, 두 모녀가 함께 실을 정리하며 나누던 대화들. 밖에서 일하는 자신을 생각하며 병상에서 목도리와 장갑을 떠주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밤마다 타주던 미숫가루, 몸에 좋다고 몰래 남겨두었던 꿀들. 유월영은 엄마와 밤새도록 이야기 나눈 그날 밤을 떠올렸다. 엄마는 그녀가 좋은 집안에 시집가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재벌 집으로 가서 괴롭힘을 당할가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딸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신이 나서서 보호해 주지 못할걸 알기 때문이었다.유월영은 오열하며 땅바닥을 기어가 피투성이가 된 엄마를 껴안고 외쳤다. “119 불러줘요! 빨리 구급차를 불러요! 구급-”그러나 그 순간, 땅에 엎드려 있던 엄마가 갑자기 움직이며 고개를 들었다!이건...유월영이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엄마는 망토 아래에서 숨긴 칼을 꺼내어 유월영을 향해 찔러왔다—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유월영은 아직 엄청난 슬픔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눈앞의 상황에 놀라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충격과 경악으로 그녀의 얼굴은 점차 하얗게 질려왔다.칼끝이 그녀의 동공에 점점 가까워지며, 웨딩드레스를 찢고 리본을 끊었다. 그녀의 머리 화환은 넘어지면서 떨어졌고,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칼이 살에 닿기 직전, 엄마는 달려온 연재준에게 걷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