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사실 그날의 일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그날 일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그녀는 사람의 뇌는 의식적으로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을 일부러 잊고 회피하며 자기를 보호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심리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 못지않기 때문이다.유월영은 그때가 여름이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매우 바빴고 거의 반달 동안 연속으로 야근했으며 며칠 동안은 회사에서 잔적도 있었다.짧은 오전 시간 동안 그녀는 고객을 만나 계약을 체결하고 마케팅 부서와 회의를 하여 계획을 논의했으며 연재준의 다음 주 스케줄을 정리했다.마지막으로 확인하려고 그의 사무실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마침 하정은이 그녀 앞을 지나가자 그녀는 하 비서를 잡고 물었다.“정은 씨, 연 대표님 어디 계셔?”“바빠서 잊었어? 오늘은 신주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가 있는 날이잖아. 연 대표님 초대를 받고 조 비서랑 같이 거기에 가셨어.”‘맞다. 이제야 기억나네.’유월영은 손에 든 파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이틀 전부터 어찌 된 일인지 자꾸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 약간 정신이 멍하네.”하정은이 웃었다.“반년에 한 번 있는 결산 때라서 나도 정신을 못 차리겠어. 바쁜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유월영은 손에 든 파일을 보고 말했다.“신주대학에 가서 연 대표님 모시고 올게. 이 일정을 결재받아야 해서.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단계가 진행이 안 돼.”하정은은 주먹을 쥐고 응원의 제스처를 했고, 각자의 일을 하러 갔다.유월영은 문서를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정오쯤이라 길에 택시가 없어서 예약해야 했다.여름의 강렬한 햇빛이 너무 밝아 그녀는 손으로 화면을 가려야만 글씨를 볼 수 있었다.그 순간 갑자기 그녀 앞에 한 검은색 밴이 급정거했다. 유월영은 영문도 모른 채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다음 순간, 차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네 개의 손이 그녀를 강제로 차 안으로 끌어 올렸다!쿵 소리와 함께 그녀
유월영이 말한 사람은 연재준이었다.비록 그때의 연재준은 왜인지 그녀를 반년이나 냉대해 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연재준이라면 그녀를 모르는 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는 그녀가 절망 속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구원자였다.유월영은 목이 아파왔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몇 번이고 애원했다. “정말이에요, 그가 반드시 당신들에게 돈을 줄 거예요.”네 명의 남자 중 하나는 여우 같은 얼굴에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얼마를 줄 수 있는데?”유월영은 밀려오는 공포 속에서 억지로 진정하며 말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 다 줄 수 있어요!”가운데 서 있던 키 큰 남자는 분명히 우두머리 돼 보였다. 그는 음산한 표정으로 유월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둘째!”둘째는 갈등하는 듯했다. “형님, 우리가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다면 최대한 벌어야 하지 않겠어요?”“이 여자가 말한다고 다 믿어? 괜히 일을 크게 만들어서 경찰이 오면, 우리 모두 다 잡히고 만다고! 바이어가 오면 이 물건들을 처리하고 우리는 바로 철수해야 해. 신주시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바이어? 무슨 바이어?’‘저놈들 정말로 나를 팔아버리려는 건가? 산골에서 결혼도 못 한 남자들에게 애 낳는 도구로 팔아넘기려고?’유월영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의 추측이 맞았다. 그들이 그녀를 납치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다른 사람들이 우두머리의 호통에 조용해진 것을 보며 그녀는 이어 말했다. “내 계좌에 육천만원 있어요! 계좌 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줄게요. 은행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뱅킹으로 바로 당신들 계좌로 돈을 이체할 수 있어요. 제가 그냥 식사 한 끼 대접한다고 생각하세요!”둘째가 즉시 말했다. “이거 좋네요! 형님, 은행에 가지 않아도 경찰에게 잡히지 않잖아요. 빨리 말해! 비밀번호가 뭐야!”유월영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우두머리의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유월영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직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둘째는 뒤를 힐끗 돌아보며 형이 없는 걸 확인한 후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내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해. 너 정말 육천만 원 있어?”“...”유월영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낡은 공사 현장에는 불빛 하나 없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달빛만 있었다.‘그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그녀에게 물어보러 온 것인가?’ 유월영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며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읍, 있어.’둘째는 그녀의 입에 붙어 있던 테이프를 뜯어내고 핸드폰을 꺼냈다. “빨리 말해! 계좌와 비밀번호!”그의 형이 계좌를 남기면 경찰에게 추적당할 거라고 경고했는데도 그는 겁내지 않았다. 돈에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유월영은 한순간에 그가 그녀의 탈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유월영은 입술을 깨문 채 하나하나 자세히 말했다. 둘째는 핸드폰을 들고 몇 번의 터치로 그녀의 계좌에서 돈을 순조롭게 빼냈다. 그의 눈은 흥분해서 휘둥그레졌다. “젠장! 진짜 돈이 들어왔어! 젠장! 이 일로 내가 겨우 천육백만을 나눠 받았는데, 이제 나도 육천만 원이 생겼어!”유월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저 돈이 많아요. 당신을 속이지 않을거에요...이 짓을 해서 겨우 천육백만 원이요? 그럼 당신 형은 얼마나 가져가는 건가요?”둘째는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네 알 바 아니야! 얌전히 있어! 형에게 입이라도 뻥끗하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그는 다시 테이프로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고, 유월영은 급히 고개를 돌리며 빠르게 말했다. “당신은 돈을 위해서이고 나는 살기 위해서예요. 돈이 부족하다면 내 남자 친구에게 연락해 봐요. 그 사람 분명히 몸값을 낼 거예요. 당신이 돈을 받고 나를 놓아주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조용히 있을게요.”둘째는 잠시 망설였다. 유월영은 차가운 벽에 등을 붙인 채 말했다. “여자를 납치하는 건 중범죄에요. 걸리면 최소 10년은 감옥에 있어야 하는데 겨우 그 돈을 받잖아요. 게다가 형은 당
가장 두려웠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 유월영은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눈물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저리가!”“꺼져! 저리 가라고!"남자에게서 나는 역겨운 냄새는 썩은 하수구 냄새보다 더 그녀를 메스껍게 했다. 유월영은 그의 입을 피하려 고개를 돌리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살려줘! 살려주세요”“하하! 소리쳐봐, 목이 터져도 아무도 너를 구하러 오지 않아!” 남자는 그녀의 저항에 오히려 흥분하며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다!드러난 하얀 피부가 남자의 야성을 더욱 자극했다!유월영은 미친 듯이 몸부림쳤지만, 그녀의 두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두 다리도 밧줄로 꽁꽁 묶여 있어 그녀의 반항은 그저 애벌레가 땅에서 꿈틀거리는 것과 같았다.절망의 기운이 그녀의 온몸에 스며들었다. 이는 삼 년 전 그 비 오는 밤 이후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다.그때는 연재준이 갑자기 나타나 그녀를 구해줬지만, 이번에는 그녀를 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연재준도...그의 이름을 떠올리자 유월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요즘 그녀는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에게 그렇게 냉담해졌는지? 왜 더 이상 외출할 때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는지? 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왜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오지 않는지 그녀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유월영은 이 바쁜 시기만 지나면 기회를 잡아 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그녀가 이제는 질려서 헤어지고 싶은지.‘...아니지.’그들은 정상적인 남, 여 애인 사이가 아니었고 헤어진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그저 그의 도구일 뿐, 아마도 그가 이 도구에 싫증이 났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것이다.그래도 그녀는 묻고 싶었고 그의 입에서 하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다. 그들이 함께한 삼 년 동안, 아무도 그들의 관계를 알지 못했고, 두 사람이 사이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시작할 때는 흐지부지했지만 끝날 때만큼은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술자리가 끝나고 유월영은 고객사 직원들을 한 명씩 차에 태워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녀는 피곤한 얼굴로 길가 가로등에 등을 기댔다. 이미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듯이 아팠다.립스틱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고 파리한 입술에는 핏기 한 점 없었다.그녀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연재준의 운전기사가 다급히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했다.“유 비서님, 먼저 차에 타실래요?”유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문이 열리더니 밖에 연재준과 여자애가 서 있었다. 같이 타려고 했는데 유월영이 먼저 타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연재준이 그녀를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여자는 다급히 달려가서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앞에 탈게요.”연재준은 짜증스럽게 문을 쾅 닫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유진이 먼저 데려다줘.”유월영은 고통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유산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술을 마시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차는 한 낡은 아파트 구역으로 들어섰다. 유월영이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연재준이 갑자기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골목이 어두워서 위험해. 유 비서가 유진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백유진이 흑수정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다.“괜찮아요, 대표님. 언니도 피곤할 텐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어요. 조금만 더 걸으면 도착해요. 혼자 올라갈게요.”차에서 내린 그녀는 뒷좌석 차창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은 월영 언니 바래다줘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꿈 꿔요.”차갑기만 하던 연재준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언뜻 스치고 지나갔다.“그래, 좋은 꿈 꿔.”유월영은 차에 오르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운전기사는 유월영을 집에 데려다주는 대신, 연재준의 동해안 별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연재준의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써 눈빛 하나로도 연재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집 안으로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소리가 남녀의 신음소리를 덮었다.연재준에 이끌려 욕조에 던져진 유월영은 갑자기 3년 전 그와의 첫만남이 떠올랐다.그날도 비가 오는 날이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작은 슈퍼를 운영했다. 부유하진 않지만 궁핍하지는 않았고 다섯 식구가 서로 이해하고 도우면서 오붓하게 살았다.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사기꾼의 꼬임에 들어 10억이라는 거액의 빚을 지게 되었다. 그들은 슈퍼와 집을 팔고 집안의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지만 그래도 6억이나 부족했다.막다른 길에 다달았을 때, 사기군은 유월영을 데려다가 빚을 갚게 하겠다고 꼬드겼다.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녀는 비 오는 밤에 살기 위해 집에서 도망쳤다. 뒤에는 오토바이 소리가 그녀를 쫓고 있었다. 맹수에게 쫓기는 이 가여운 먹잇감은 도망치는 길에 신발까지 잃어버리고 머리는 산발이 된 채로 어두운 대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달리다 지친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자, 오토바이를 탄 폭주족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녀가 모든 게 끝이 났다고 절망하던 순간에 차량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섰다.차 문이 열리고 반짝이는 구두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고개를 약간 들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검은 우산을 들고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 위에 우산을 씌워주었다.그리고 조폭들에게 자기 사람이라고 당장 꺼지라고 말했다.처음 만났을 때 그는 꿈에서 나타난 구원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모습은 그대로 그녀의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어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대략 30분이 지나 유월영은 젖은 채로 욕실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흑설탕을 따뜻한 물에 풀어 마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연재준은 아직 욕실에서 씻고 있었다.그녀는 유산한 사실을 그에게 알려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하지만 결국 비밀에 부치는 걸로 결론이 났다.3년 전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는 그의 곁에 남는 대가로 더 이상 귀찮은 일을
유월영이 물었다.“뭘 해명하라는 건가요?”“유진이 왜 해고했어?”유월영은 사무적인 말투로 대답했다.“한아의 계약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수점을 잘못 찍어 단가가 크게 차이 나는 실수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한아 쪽 관계자는 우리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 해프닝으로 넘어갔지만, 회사 이익에 큰 손해를 끼친 신입은 바로 퇴사 처리하는 게 우리 방침이잖아요. 책임을 안 물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그 말을 들은 백유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제가 원래 덜렁거리는 습관이 좀 있어요. 죄송합니다….”연재준은 그런 그녀에게 위안의 눈빛을 보내고는 다시 싸늘한 눈빛으로 유월영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서류 가져와.”유월영은 가지고 온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연재준은 맨 마지막 장을 확인하더니 서류를 도로 책상에 던지며 말했다.“날짜를 보니 유 비서가 무단결근 한 날짜에 벌어졌네. 유 비서가 무단결근만 안 했어도 이 계약서는 유 비서가 처리해야 할 서류였어. 신입인 백유진이 아니라.”유월영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그래서 제가 이걸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인가요?”“비서실 수석 비서로써 부하 직원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건 유 비서도 잘 알 텐데?”연재준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명백했다. 백유진에게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것!유월영은 치미는 화를 꾹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유진 씨가 입사한 날에 저는 휴가를 내고 회사에 없었고요. 그리고 모르겠으면 다른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그냥 방치해 둬도 되는 서류였어요. 혼자 의욕에 넘쳐 처리한다고 했다가 문제가 생겼으니 당연히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죠. 해운 비서실은 원래 전문 학과를 나온 탑클래스만 들어올 수 있는 자리 아니었나요? 아니면 경험이 풍부하거나 전 회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웠으면 모를까, 예술을 전공한 학생이 들어올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연재준이 물었다.“내가 꼭 유진이를 비서실에 둬야겠다면?”유월영은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비서실은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