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는 이승연을 빤히 노려보았다.이승연은 이혁재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시간이 남아돌아 할 짓이 없으면 너처럼 한가한 사람을 찾아 치근덕거려. 난 사건 자료를 봐야 하니까 널 상대할 시간이 없어.”이혁재는 이승연의 무관심하고 차가운 태도에 화가 치밀어올라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변호사인 너에게 내가 어떻게 말로 널 이길 수 있겠어.”이혁재는 무릎을 들어 이승연의 치마 안에 집어넣으며 거친 쌍욕을 퍼부었다.“시X 네년을 존X 따먹을 거야.”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여 이승연의 입술을 거칠게 물었다.이승연은 갑자기 닥친 이 관계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제야 약간 동요하며 이혁재의 손을 붙잡으려고 시도했다. “이혁재! 미쳤어? 그만해!”하지만 이혁재는 그 소리에 더 미친 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한 손으로 이승연의 양손을 잡아 벽에 댔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A라인 스커트를 허리까지 올렸다. 이승연은 자기 섹시한 몸매로 이런 직업 복장을 하면 얼마나 유혹적인지 알고나 있을까? 그 늙다리 오성민이 이승연을 보는 눈빛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이혁재는 씩씩대며 이승연의 스타킹과 속옷을 함께 찢어버렸다.이승연은 전혀 저항할 수 없었고 반항할 방법도 없었다. 이혁재는 심지어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현관 입구에서 바로 거칠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이혁재는 평소에 관계를 맺을 때 이승연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내심이 있게 움직였지만 오늘만큼은 좀처럼 그녀의 상태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남편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그렇게 반대하더니 남편이라는 소리는 오성민에게 남겨주려고 그런 거였어? 너랑 혼인 신고한 사람은 나야. 내가 네 남편이라고.”이승연은 이혁재의 반응이 이 정도로 과격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관계를 맺으니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숨 고르기도 힘들었다.“이혁재, 넌...”“그 자식이 학교 후배랑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넌 지금쯤 그 자식의 아내가 되어 있겠지?
연재준은 이혁재를 힐끔 쳐다보고는 대답하기 귀찮아 무시하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바에서 뿜어나오는 몽롱한 불빛 때문에 연재준의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혁재는 연재준을 자기와 동고동락하는 형제로 여기고 핑거스냅을 하고는 바텐더에게 한 잔을 주문하며 구시렁댔다.“왜 여자들은 다 이렇게 다루기 힘들지?”이혁재는 담배를 꺼내어 연재준에게 한 개를 건넸다.담배에 막 불을 붙였는데 바 저쪽에서 갑자기 두 남자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됐어. 최근에 임신을 준비하고 있어서 담배와 술은 다 뗐어. 난 레몬주스만 마시면 돼.”이 말을 듣자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려던 두 남자는 약속이나 한 듯 순간 멈칫했다.그러고는 또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담배를 끊었다....연재준은 확실히 지성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유월영과 아침을 먹고 하정은을 데리고 신주시로 돌아갔다.유월영은 연재준을 바래다주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겼다.이승연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유월영을 발견했고 자기도 음식을 챙겨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두 사람은 식사하며 얘기를 나눴다. 서씨 가족과 합의했지만 사건이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기에 이승연은 마무리 단계까지 참여해야 했다.유월영은 식사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려 헛기침했다. “승연 언니, 그 약이 아직 남아 있어?”유월영은 어젯밤에 피임하지 않았다. 마침 지난번에 이승연이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약국에 가기 귀찮아 두 알을 요구했다.이승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방에서 약을 꺼내 유월영에게 두 알을 건네며 무심하게 물었다.“어젯밤에 재준 씨와 화해했어?”유월영도 현재 연재준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머리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승연도 눈치가 빠른 편이라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기도 두 알을 꺼내 삼켰다.어젯밤의 이혁재는 사나운 들개처럼 달려들었고 당연히 피임을 하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끝내고 유월영은 정식으로 SK그룹에 출근하러 갔다.신현우
이승연은 처음에 유월영이 자기와 농담하는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진짜로 그녀를 서정희와의 식사 자리에 데려갔다.두 사람은 식당에 먼저 도착해 잠시 기다리다가 보디가드와 함께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서정희를 발견했다.서정희는 식당 문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면서 눈도 깜빡이지 않고 유월영을 빤히 노려보았고 유월영도 그녀를 바라봤다. 두 사람 사이의 시선은 서로를 향해 차츰차츰 가까워졌고 유월영은 서정희의 모습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단지 반 달 남짓이 되는 시간 사이에 서정희는 초췌하고 피곤기가 가득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서정희의 외모는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하고 눈가도 깊고 그윽해 보여 매력적인 진한 인상이었지만 지금은 볼살이 줄어들어 제 딴엔 정교한 화장하고 온 것 같아도 초췌한 몰골을 숨길 수 없었다.20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이에 비해 많이 늙어 보였다.반면에 유월영은 캐주얼한 정장 위에 민트색 외투를 입었는데 눈에 띄는 하얀색 피부를 소유하고 있어 이 색깔은 그녀에게 딱 어울렸다. 그에 비해 서정희는 다이아몬드 옆에 놓인 빛바랜 모래처럼 피부에서 아무런 광택도 나지 않았다.서정희는 자기의 비주얼이 유월영에게 미치지 못하는 사실을 가장 받아들일 수 없었고 유월영을 쳐다보는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래서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연 첫 마디는 유월영에 대한 조롱이었다. “월영 씨가 이 자리에 올 용기가 없을 줄 알았어요.”유월영은 솔직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의 꾐수에 한 번 속아 난 후에는 나 혼자서 당신을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해 오늘 이렇게 변호사를 데리고 왔고 손님이 많은 식당으로 선택했어요. 게다가 가장 중요한 건 우리 머리 위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우리의 모든 행동이 명확하게 찍힐 거니까 정희 씨도 이제 더 이상 허튼짓할 수 없을 거예요.”서정희는 감시 카메라를 힐끗 보고는 다시 유월영을 바라봤다. 쌀쌀한 눈빛은 점점 평온하고 은은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이승연이 두 사람
유월영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서정희는 몸을 약간 허우적거리다가 웨이터가 주문한 음식을 가져오는 순간 실수로 쟁반에 부딪혔다. 웨이터는 즉시 사과했지만 서정희는 쟁반에 놓여있는 음식을 와락 잡아 바닥에 거칠게 떨어뜨렸다.“날 양식집에 데려간 것도 길거리 음식을 먹으러 간 것도 결국엔 당신이 가서 그 사람이 따라간 것뿐이에요. 산책도, 영화도 그 사람은 다 당신을 따라간 거예요.”“당신과 난 다른 기숙사에 있어 당신을 만날 가능성이 없어서 그 사람은 날 기숙사까지 데려다준 적이 없었죠. 내가 단 한 번만이라도 데려다주라고 간절히 부탁해도 그 사람은 한 번도 데려다주지 않았죠. 전부 단칼에 거절했어요!”서정희는 15일 동안 쌓였던 감정을 더는 억누르지 못하고 전부 쏟아냈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핸드폰으로 찍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유월영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큰 충격을 받았고 눈동자도 약간 떨리고 있었다.“게다가 그 사람이 나와 사귀게 된 것도 그날 당신과 현시우가 함께 있는 모습을 봐서 현시우를 질투해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었죠.” 서정희는 비운의 주인공처럼 애처롭게 웃었다.“왜 내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요? 만약 당신이 나라면 자기가 누군가에게 쭉 도구로만 이용된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 사람을 증오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월영 씨, 당신이 그 사람과 함께 있게 된 사실을 내가 안 순간 내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는지는 알기나 하나요?”“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사람은 아직도 당신만을 좋아하고 심지어 당신과 함께 있게 되었죠. 그 사람이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해하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었어요. 내가 몇 년 동안 쭉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남자가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니까요.”‘도구로 이용됐다고...’유월영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누가 더 도구로 이용되었는지 따질 생각은 없었지만 서정희가 털어놓은 이 얘기는 그녀가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다.서정희
짝사랑...바람이 불자 유월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믿기지 않았지만 어떻게 진위를 증명할지 가늠이 안 됐다.그에게 밥을 사던 날, 그는 그녀에게 연애편지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그때 그녀는 그가 이 일을 너무 신경 쓴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도 아마 당시 그녀에게 연애편지를 썼을 수도 있었다.유월영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그 연애편지들은 그녀가 봉현진에 있는 집에 두었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이승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출발했어?”“막 출발하려던 참인데 무슨 일이야?”"언니랑 같이 신주시로 돌아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이승연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괜찮아. 아까 그 식당 앞이야? 내가 데리러 갈게.”곧 이승연의 차가 도착했고, 유월영은 바로 차에 탔다.이승연은 그제야 이유를 물었다. “연 대표 때문이야?”갑자기 심장 박동이 빨라진 유월영은 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대답했다. “응, 맞아.”이 시간에 신주시로 가는 고속도로는 길이 막히지 않았고 그들이 봉현군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2시가 넘었다.이승연이 입을 열었다.“아니면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갈래? 너무 늦은 시간이라 부모님이 놀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유월영은 고개를 저었다.“확인할 게 있어.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오늘 밤 잠을 못 잘 것 같아.”이승연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유월영은 가방 안에서 집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금 이 시간이면 부모님과 가정부 모두 잠에 들 시간이었다. 그녀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바로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전에 그들은 한번 이사를 하면서 많은 물건을 버렸었다. 그래도 중요한 물건들은 모두 보관하고 있었으며 그녀의 기억에 그 연애편지들도 버리지 않았었다. 구석에 있는 몇 개의 종이 상자에는 그녀의 학생 시절 물건들을 담고 있었다. 그녀가 하나하나 뒤지면서 소리를 내자, 가정부들은 도둑이 든 줄 알고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한 손에는 부엌칼을 들고 다
다음 날 아침, 유월영은 윙윙거리는 휴대전화 진동 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4~5시 돼서야 잠을 청한 그녀는 간신히 눈꺼풀을 뜨며 휴대전화를 찾았다.그러다 발신인이 연재준인걸 본 그녀는 순식간에 졸음이 가셨다. 그녀는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고, 침대 탁자 위의 옅은 노란색 편지봉투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그 일들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는 길게 숨을 내쉰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연재준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자 유월영은 자기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뭐 하고 있어?”“자고 있어요...”“어디서?”남자의 목소리는 금세 가라앉았다.“내가 지금 당신 방에 있어. 사람이 안 보이는데 어디서 자고 있는 거야?”그의 말투는 마치 그녀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유월영은 멍하니 있다 이내 정신 차리고 물었다.“내 방에 있다고요? 지성에 나 찾으러 갔어요?”"어제 마지막 출근이었잖아. 당신과 같이 신주시에 돌아가려고 데리러 왔어.”연재준은 끈질기게 물었다.“그래서 어디서 잤는데?”유월영은 이불을 둘러쓰고 시간을 봤다. 겨우 일곱 시였다.“이렇게 이른 시간에요? 설마 밤새 차를 몰고 지성에 간 건 아니죠?”"어젯밤에 일 끝나고 왔어.”연재준은 미간에 주름이 잡히면서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왜 이리저리 말을 둘러대?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어디길래 내가 알면 안 되는 데야? 윤영훈이야? 아니면 신연우인가? 당신 도대체 누구랑 같이 있어!” 유월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연재준은 전화를 끊었다.그녀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영상통화가 울렸다. 이 남자가 진짜..연재준은 정말 현장을 잡으려고 결심한 듯했다. 유월영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전화를 받았다. 연결되자마자 남자의 청초하고 날카로운 미간이 화면에 나타났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유월영은 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봉현진의 집에 있어요.”유월영은 카메라를 이동시켜 보여주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재준은 고개를 숙여 키스를 퍼부었다.거칠게, 누구에게도 그녀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주위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은 채, 그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받히고 혀끝이 입안을 밀고 들어왔다. 유월영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그의 양복을 꽉 움켜쥔 채 말했다.“재,재준 씨.”연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동안 키스를 한 후에야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헐떡이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는 왠지 모르게 관능적으로 비춰졌다.“시작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그는 유월영의 손을 잡고 그녀가 알아채기도 전에 그녀의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유월영의 눈이 커졌다.연재준은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자기, 구청도 지금은 문 닫았으니 연휴 끝나고 출근하면 그때 혼인신고 하러 가.”뭐, 뭐라고?잠깐만!그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유월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그가 다시 헛소리할까 봐 황급히 그의 입을 틀어막다가 다시 반지를 벗으려고 했다. 하지만 반지의 다이아몬드 부분은 역 V로 짜여져 끼우기는 쉬운 데 빼내기 어려웠다. 게다가 반지의 치수가 꼭 맞아서 아예 벗을 수 없었다.“...”유월영은 급한 마음에 화가 났다. “내, 내가 언제 대답했어요? 난 단지 우선 시작해 보면 좋겠다는 뜻이었다고요. 같이 지낼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자는 거였다고요!”그러다 안 맞으면 헤어져야지! 이 남자는 왜 그냥 프러포즈...…아니, 프러포즈도 아니라, 이건 그냥 결혼이잖아!결혼...연재준과의 결혼이라니?유월영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가 연재준과 사귀고 그가 남자 친구라고 말하면, 말을 하면 조서희의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만약 그녀가 연재준과 결혼한다고 그녀에게 말하면...맙소사, 아마 조서희는 즉시 고향에서 날아와 그녀를 의사나 무당에게 데려가서 그녀의 머리가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귀신에 씌운 건 아닌지 물어볼 것이다. 두 사람은 한때 그렇게 관계를 감추려 했었지만, 지금은 갑자기 이렇게
회색 시멘트벽은 햇빛을 받아 약간 뜨거웠다. 유월영은 옷을 사이에 두고 열기가 느껴졌다. 유월영은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난 아무것도 대답한 적이 없어요. 당신 마음대로 정하지 마세요.”연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처음 방문하면서 빈손으로 가면 안 되는데. 나랑 같이 마을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부모님께 맞는 선물을 같이 골라주면 되겠다.”“...”“자기. 처음 부모님 뵙는 자리인데, 나 좀 도와줘.”“...”유월영은 가만히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자기야 소리에 마음이 동했는지, 아니면 그가 고개를 숙여 바라보는 모습에 정신 차리지 못한 건지, 그녀는 얼떨결에 그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래도 관광지인지라 마을에는 고급 브랜드들이 들어선 백화점이 있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기 전, 연재준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를 대할 때처럼 그렇게 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핸드폰 액정을 보았지만, 그는 이미 전화를 끊은 후였다. 그리고는 4천만 원 이체해 주면서 말했다. “자기. 우선 네가 좀 골라줘, 전화 좀 받고 올게.”“그래.”유월영은 돌아서서 백화점에 들어가면서, 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연 회장님 전화네.’혼자 백화점에 들어간 유월영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그냥 돌아보기만 했다. 그러다 반지를 빼내려고 시도했지만 빠지지 않았다.그녀는 명품 매장에 가서, 어머니를 주려고 작은 지갑을 샀다. 그러고는 매장 직원에게 혹시 이 반지를 어떻게 빼야 되는지 아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매장 직원은 반지를 보자마자 놀라 소리 질렀다.“어머! 이게 얼마 전 실시간 검색에까지 올랐던 그 비싸게 팔린 ‘에로스’잖아요!”유월영은 멍하니 있었다.‘ 뭐?’매장 직원은 소문으로만 듣던 반지의 실물을 보고, 유월영이 가격을 모르는 눈치이자 감탄을 하면 설명했다.“모르세요. 이게 ‘에로스’인데, 며칠 전 홍콩 크리스티즈 경매장에서 600억에 낙찰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