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다음 날, 유월영은 연재준과 함께 스미스를 대동하고 신주에 있는 카누 공장으로 갔다.

투자를 주 항목으로 하는 해운그룹은 국내 최고의 투자 회사 중 하나였다. 해외에도 많은 지사를 두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 투자 업계에서 그들이 가지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그들은 종종 국가에서 지원하는 산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스포츠 종목으 그 중 한 가지였고 카누 제작 사업에 대한 투자도 그러한 이유에서 시작했다.

유월영은 어제의 상실감을 잊고 회사의 주요 책임자로서 연재준의 옆을 지키며 완벽한 비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스미스의 곤란한 질문에 대답하는 쪽은 주로 그녀의 담당이었고 필요하지 않은 말은 아꼈다.

거대한 공장 내부에는 이미 제작이 완료된 각양각색의 카누가 진열되어 있었다. 공장장의 설명을 들은 스미스는 연신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장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길이가 18미터 되는 작은 카누도 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긴 카누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제작이 완료되면 101미터가 될 겁니다. 우린 이 카누로 기니스 세계기록에 도전해서 세계에 신주 카누 산업을 알릴 생각입니다.”

스미스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101미터나 되는 카누요? 그건 웬만한 건물 하나의 높이잖아요. 그런 거대한 배가 바다에 뜨면 정말 가관이겠는데요? 제가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공장장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사실 우리의 머리 위쪽에 있습니다.”

고개를 들자 허공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선박이 보였다.

공장장이 말했다.

“공간을 너무 차지해서 공간을 절약한다고 밧줄로 고정해서 허공에 매달아 두었습니다. 아직은 기본 골조만 완성된 상태이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람들이 거대 카누에 정신이 팔린 사이, 유월영은 어딘가에서 불편한 시선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구석진 곳에서 모자를 쓴 한 남자가 카메라를 들고 그들이 있는 곳을 촬영하고 있었다.

유월영은 바로 인상을 쓰며 공장장에게 물었다.

“공장장님, 저 사람은 누굽니까?”

공장장은 그쪽을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

“자기 말로는 인플루언서라는데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신기한 풍경이나 물건들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네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카누를 제작한다는 말을 듣고 촬영을 요청했는데 공장 홍보 차원에서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남자의 카메라는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분명히 카누가 공중에 달려 있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유월영은 그쪽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잠시 후, 연재준이 말없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연재준은 그녀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곧바로 인상을 썼다. 유월영은 뒤늦게 그의 손이 더러워진 것을 보고 티슈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연재준은 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바짝 세웠기에 그의 모든 습관을 기억하고 눈빛만 봐도 그가 뭘 원하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정신은 다른데 팔려 있었다.

유월영 자신도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무관심이 기분 나빴는지 연재준은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워낙 힘을 많이 주지는 않았기에 그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백유진도 오늘 현장에 따라왔다. 그녀는 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에게 오래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고 전에 화장실에서 들었던 동료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목청을 가다듬고 유월영을 불렀다.

“언니.”

유월영이 고개를 돌렸다.

구석진 곳에 서 있는 남자의 카메라는 정확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였다면 다가가서 뭐 하는 거냐고 따졌겠지만 오늘은 중요한 고객과 동행하고 있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참관도 곧 끝날 것이고 끝난 뒤에 찾아가도 늦지 않았다.

그녀는 백유진을 바라보며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나 불렀어?”

백유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거 돈을 버는 사업 맞나요?”

“이건 단지 돈을 바라고 하는 사업은 아니야.”

“그럼 이미지 때문인가요?”

백유진이 달달한 미소를 지었다.

“알 것 같기도 해요.”

유월영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연재준을 따라갔다.

참관을 마치고 점심에 뭐 먹을지 의논하고 있던 때에 2층에서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위험해요! 빨리 피해요!”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듣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10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선박이 기울고 있었다. 선박은 수십 개의 끈에 묶인 채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끈이 부러지면서 점점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유월영은 본능적으로 연재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옷자락만 스쳤을 뿐, 손이 닿지 않았다.

쾅!

거대 선박이 추락한 순간에 아래층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유월영도 연재준을 지키려다가 피신이 늦어 추락하는 선박 모서리에 종아리를 부딪히고 바닥에 쓰러졌다.

“악!”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위기의 순간에 그녀가 손을 뻗어 지켜주려고 했던 연재준은 백유진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는 백유진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벌써 저렇게까지 감정이 깊어진 걸까?

유월영은 다친 다리를 내려다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3년의 노력이 너무 허망해서 나온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