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닥에 뒹구는 과일들을 주워 바구니에 담았다.유월영도 바닥에 쭈그려 앉아 쏟아진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안내 데스크로 찾아가서 나중에 강 간호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그쪽에서 거부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성의 표시는 꼭 필요했다.유월영은 신연우와 함께 입원 병동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다.신연우가 그녀에게 말했다.“너무 속상해하지 말아요.”유월영이 웃으며 말했다.“저 괜찮아요. 그분도 딸을 생각하는 마음에 화가 나서 그런 거잖아요. 이해해요. 저였어도 아마 화를 참지 못했을 거예요.”신연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피해자 가족들을 더 이상 찾아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그래도 만나야죠. 그쪽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합의서를 받아야 아빠가 재판 때 형량을 적게 받을 수 있어요.”엘리베이터가 일층에 도착하고 둘은 함께 밖으로 나갔다.유월영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힘들 거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여러 번 찾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제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까요? 그쪽에서 용서만 해주면 적절한 보상이나 탄원서에 대해 얘기를 꺼내기도 수월해지겠죠.”신연우는 그녀의 처지가 안타까워서 표정을 풀 수가 없었다.“그래서 이제는 뭐 할 거예요?”“병원 관계자를 만나서 병원 측 합의서도 받아내야죠.”신연우가 말했다.“워낙 여론이 좋지 않아서 그쪽에서 만나주지 않을 거예요.”유월영도 그 말에 동의했다.“알아요. 그래도 친구 중에 병원 관계자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게 해준다고 했어요. 일단 만나서 얘기는 들어보려고요.”그들은 병원 후문에서 조용히 만나기로 했다.그 병원 관계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가와서 말했다.“이미 사건 동영상이 인터넷에 쫙 퍼진 상황이라 병원 측도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에요. 지금은 뭐라고 확답을 드릴 수 없어요.”그 말인 즉, 여론이 유현석에게 우호적으로 흘러가면 합의를 해줄 의향이 있지만 여론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단호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였다.유월영이
그녀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백유진은 고집스럽게 우산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말했다.“그래도 쓰고 가요. 이런 날씨에 비까지 맞으면 감기 걸려요.”유월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유진을 빤히 바라봤다.백유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감기 몸살 쉽게 보다가 큰일 나요. 우리 아빠도 처음에는 그냥 감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하도 안 나아서 병원에 갔다가 심장병 진단을 받았잖아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요.”“다행히 위급한 상황에서 심장 이식을 받아서 망정이지 다시는 아빠를 못 보는 줄 알았어요.”유월영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심장 이식이라니?”백유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말 그대로예요. 위급한 환자에게 건강한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죠. 기증자가 안 나타나서 고생한다던데 아빠는 행운이었어요. 어제 금방 수술을 받았거든요. 연 대표님이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를 추천해 줘서 아빠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요.”‘그러니까 엄마보다 위급해서 먼저 수술 들어갔다던 환자가 백유진 아버지였어?’유월영은 갑자기 온몸에 피가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게 과연 우연일까?의심은 했지만 그래도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병원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면 그 환자는 이식을 못 받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숨을 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했다.하지만 그 관계자 말이 과연 사실일까?아니면 단지 환자가 백유진 아버지라서 연재준의 입김에 의해 수술 대상자가 바뀐 것일까?연재준은 자신이 이 일과 관련이 없다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이미 싹 트기 시작한 의심의 씨앗은 분노가 되어 활활 타올랐다.백유진이 계속해서 말했다.“그 얘기도 들었어요. 어제 수술 취소된 환자 가족이 병원 관계자들에게 난동을 부렸다면서요? 좀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모든 게 다 운명이고 순서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무조건 떼 쓰고 강요한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아요.”모든 걸 다 앗아간 주제에 어떻게 저 순진한 얼굴로 저런 뻔뻔한 말을 할 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유월영이 조서희의 입을 틀어막았다.“서희야, 그만!”뒤돌아선 연재준이 유월영을 빤히 쳐다보았다.마침 차를 입구에 대고 들어오던 신연우도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연재준은 백유진을 놓아주고 유월영에게 다가갔다. 백유진도 넋을 잃은 표정으로 유월영을 바라봤다.“아이를 유산했었어?”아무런 감정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말투였다.“그게 언제야?”유월영은 울컥하며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연재준은 최근 몇 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불신의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거짓말도 정도가 있어야지. 유월영 네가 임신하고 유산한 걸 내가 왜 몰랐지?”유월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마음대로 생각하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조서희의 손을 잡고 뒤돌아섰다.연재준이 손을 뻗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말은 똑바로 하고 가. 네 친구도 직장을 잃게 하고 싶어?”유월영이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고 조서희는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난 거짓말한 적 없어! 나한테 증거가 있어! 연재준 씨 당신이 저 백여시랑 희희낙낙거리고 다닐 때 우리 월영이는 홀로 병원에서 수술을 견뎌야 했다고. 그리고 몸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신 때문에 지방으로 쫓겨나야 했잖아. 지금 월영이 건강이 나빠진 거, 그거 다 당신 탓이야!”“당신은 항상 월영이가 당신한테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아니, 월영이는 빚진 거 없어! 처음부터 당신이 월영이한테 항상 빚을 지고 있었던 거야!”연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서희한테 말했다.“증거 가져와.”“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 집에 있어.”연재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집으로 가서 확인할 거야. 거짓말인 거 밝혀질 시에 두고 봐.”유월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 그에게 말했다.“연재준 씨, 나한테는 아무렇게 해도 상관없지만 내 엄마, 그리고 내 친구까지 건드리면 정말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지만 연재준은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내가
결국 조서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방에서 나와 더듬거리며 말했다.“그게… 분명 진단서를 노트에 끼워 보관했는데… 그 노트를 찾지 못하겠어.”너무 황당한 변명이라 조서희 본인도 헛웃음이 나왔다.신연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유월영을 바라봤다. 유월영은 별다른 반응 없이 아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연재준도 마찬가지였다. 조서희는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유월영에게 말했다.“월영아, 나한테 있던 파란색 노트 봤어? 표지에 내가 이름을 써놨다고 네가 나 유치하다고 놀렸잖아. 기억 안 나?”유월영은 그 노트를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둘은 각자 방을 쓰고 있었고 평소에 조서희의 방에 놀러 가는 일도 적었기에 노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연재준의 등 뒤에 숨어 있던 백유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러니까 증거가 없다는 얘기 아닌가요?”그 말 한마디에 거실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조서희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유월영은 더 이상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연재준은 임신했다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조서희가 증거를 내놓지 못했으니 그에게 확신만 심어준 꼴이었다. 아마 그는 그녀와 조서희가 짜고 백유진에게 폭력을 가한 응징을 피해가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조서희가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나 기억 났어! 그날 밤에 고객사 직원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방안을 수정해 다라고 해서 급하게 그 노트 들고 회사에 간 적 있어. 노트 아직 회사에 있을 거야. 아마 월영이 네 진단서도 거기에….”하지만 점점 말할수록 그녀는 확신이 없어졌다.회사에서 그 노트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다른 사람의 손도 거쳤으니 그 찢어진 진단서가 무사히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회사, 우리 회사로 가볼래?”연재준이 싸늘하게 말했다.“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한테 그 따위 거짓말을 지껄이는 거지?”고저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럴수록 더 위험하다는 것을 유월영도,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그녀에게는 이제 보살펴야 할 부모님이 있었다.“당신이 우리 엄마 심장을 빼앗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새 삶을 얻을 기회를 놓쳤어요. 그래서 난 엄마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약간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여기서 그만하는 게 낫지 않나요? 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워서 연재준 씨에게 좋은 점이 뭐가 있나요?”“하, 사실인 것처럼 말하네.”연재준이 비웃듯이 말했다.“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사실 유월영도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당사자인 백유진의 입에서 그 심장이 백유진 아빠한테 갔다는 것을 들었는데 어떻게 이 일을 이해해야 할까?신연우가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꽉 잡아주며 말했다.“저한테 유월영 씨가 낙태 수술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사람들의 시선이 신연우에게 쏠렸다.신연우가 말했다.“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맥을 짚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신 교수가 진맥을?”연재준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신연우를 노려봤다.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도 의심스럽고 또 그가 유월영을 감싸고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신연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형님이 유명 한의사 신현준 박사님이십니다. 연 대표님도 아마 들어보셨을 테죠. 진맥은 형님한테 배웠습니다. 당시 형님은 제가 한의사를 해도 된다고 칭찬도 하셨고요. 비록 한의사로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환자가 낙태 수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정도는 쉽게 분간할 수 있습니다.”연재준의 시선이 유월영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닿았다. 그는 말없이 신연우를 노려보기만 했다.신연우가 유월영에게 말했다.“나 믿죠?”유월영은 긴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 앉았다.신연우는 그녀의 손목에 손을 가져가고 한참을 조용히 진맥에 집중했다.“어쩐지 오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요 며칠 기침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조서희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그런 것도 진맥으로 다 나와요? 월영이가 며칠 전에 지방에 면접
“한의학을 못 믿어요?”신연우가 눈썹을 꿈틀하며 되물었다.“서의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 조상님들은 한의학으로 환자를 치료했다고요.”“믿어요. 그만큼 깊은 학문이라는 것도 알고요. 단지 전공도 아닌 신 교수님이 굉장히 한의학에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맥박의 신호로 그녀의 전반적인 몸 상태를 체크하는 건 천재가 아니고서는 수십 년 한의학에 종사한 의사들만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신연우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신연우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범히 인정했다.“맞아요. 사실 진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요.”유월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거짓말을 하셨군요.”신연우가 그녀를 빤히 보며 말했다.“네. 난 월영 씨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거든요.”유월영의 눈썹이 저도 모르게 꿈틀했다.따지고 보면 알고 지낸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사람도 이렇게까지 자신을 믿어주고 도와주려 하는데 대체 연재준은 왜 그러는 걸까?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연재준은 그녀가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단언했다.유월영은 우울한 마음에 신연우의 손에서 맥주캔을 빼앗았다.신연우가 손을 뻗자 그녀는 얼른 몸을 돌려 피하며 말했다.“지금은 술을 마시고 싶네요. 신 교수님도 같이 마셔요.”신연우는 안 된다고 하고 싶었지만 극도로 우울해 보이는 유월영의 눈을 보고 차마 거절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그녀가 지친 눈으로 신연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신 교수님도 의사나 다름없잖아요. 그럼 진짜 내가 쓰러져도 옆에 응급 조치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있는 거네요.”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라니! 신연우는 헛웃음이 나왔다.“세 캔만 마시는 거에요.”둘은 베란다로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애초에 유월영과 조서희가 이 오피스텔을 선택한 이유도 뷰가 좋은 베란다 때문이었다.둘은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마주 앉아 캔맥주를 땄다.유월영은 급하게 마시지는 않았지만 한 모금, 한 모금 계속해서 말없이 술만 마
눈물은 소리 없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누가 먼저 손을 뻗었는지도 모르게 유월영은 신연우의 품에 고개를 기대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남자의 반듯한 셔츠가 어느새 구겨지고 눈물에 젖었다.신연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처음 만났을 때도 울어서 셔츠를 적시더니, 월영 씨 나한테 셔츠 하나 더 물어줘야겠네요.”유월영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신연우에게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연재준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연재준은 가까이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신연우가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남자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건 안 좋은 습관이에요. 키스하고 싶어지잖아요.”유월영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한 번만 비겁해지기로 마음먹은 신연우가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하지만 안경이 먼저 그녀의 코끝에 닫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안경을 벗었다.남자의 부드러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유월영이 눈을 감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연재준 씨, 만약 그때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미 취해버린 그녀는 자신이 뭘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신연우가 뒤로 물러서자 유월영은 그대로 그의 품에 무너졌다.그는 바닥에 가득 널브러진 맥주캔을 바라보았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이 정도로 마셔댔으니 취할 수밖에 없었다.신연우는 고개를 흔들고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자요, 월영 씨. 앞으로는 내가 지켜줄게요.”한편, 연재준은 백유진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상처를 다시 소독했다.가벼운 상처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상처가 깊은 것도 아니라서 며칠 약만 발라주면 나을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의사는 바르는 약과 항생제를 처방해 주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백유진은 상처가 남을까 봐 발을 동
그는 차 창을 내리고 담배꽁초를 바깥에 버린 뒤 운전석에 앉은 비서에게 말했다.“병원 입구에 있는 CCTV 모두 가져와.”유월영과 조서희가 백유진과 싸움이 났던 당시의 CCTV 영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서 일을 크게 만들기 전에 확보하라는 의미였다.영상만 봐서는 누가 봐도 조서희가 다짜고짜 백유진을 공격했고 어쩌면 형사 사건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그리고 유월영 어머니 주치의랑 백유진 아버지 주치의 좀 불러줘.”조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우연인지는 몰라도 유월영의 모친과 백유진 아버지의 주치의는 동일했다.심장이식 수술을 집도할 실력을 가진 사람은 제일병원에서도 흉부 외과에 단 두 명뿐이었다.연재준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송 박사는 긴장해서 차에 오르지도 못 하고 밖에서 공손히 죄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숙이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장기 이식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센터에서는 남녀노소, 누가 먼저 왔는지 나중에 왔는지 이런 걸 따지지 않아요. 환자의 실제 상황에 맞춰서 더 치료가 시급한 환자에게 먼저 장기를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아무도 그 심사 과정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이영화 환자는 수술을 받지 않아도 6개월 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백철호 환자에게는 일주일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철호 환자가 비록 전날 오후에 데이터가 올라갔지만 이영화 환자보다 먼저 장기를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런 일은 병원에서 자주 있는 일이에요.”단지 우연이었다는 말이었다.연재준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환자의 병세로 선후 순서를 결정한다라… 그럼 환자의 데이터를 센터에 올릴 때 일부러 심각하게 써서 올리면 센터에서는 당연히 이 환자에게 먼저 수술을 안배한다는 말씀이 되겠군요. 내 말이 맞나요?”송 박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대… 대표님, 환자 상황은 실제 진료기록을 통해 데이터를 집계합니다. 저희가 사사로이 환자의 병세를 과장되게 보고하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