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죠. 하지만 놈들이 숨어버렸습니다. 설마 위치를 찾아냈다는 겁니까?”그 말에 진서준이 흥미를 보였다.“당연하지. 우리 전신전의 사람 찾는 기술은 최고야.”성미영이 자랑스럽게 말했다.대한민국 군부의 정점에 있는 조직 전신전은 전투력뿐만 아니라 정보 수집 능력 또한 최고 수준이었다.며칠간의 추적 끝에 전신전은 드디어 개조인들의 은신처를 정확히 파악했고 심지어 연구소의 위치까지도 밝혀냈다.이제 남은 건 놈들을 한꺼번에 소탕하는 일뿐이었다.“오늘 밤 바로 작전을 개시할 겁니다. 그때 진서준 씨도 협력해 주길 부탁드립니다.”용홍권의 말에 진서준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문제없습니다. 용 사령관님께서 시간과 장소를 보내주시면 제가 꼭 맞춰 가겠습니다.”진서준은 국안부 소속으로서 이 개조인들을 처리할 책임이 있었다.놈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였다.최선의 해결책은 개조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뿐이었다.“감사합니다, 진서준 씨. 그럼 저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용홍권이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그때, 성미영이 절친을 향해 신신당부했다.“지은아, 너 저 사람한테서 멀리 떨어지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나중에 다치는 건 너뿐일 거라고.”“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가서 일 봐.”서지은의 대수롭지 않아 하는 태도에 성미영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용홍권 일행이 떠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김태영 그 자식은 어디 갔지?”진서준은 아까 링에서 리앙 곁에 앉아 있던 김태영을 이미 눈여겨봤다.그리고 이제 김태영이 리앙의 충실한 개가 된 걸 확신했다.“몰라.”김연아가 고개를 저었다.김연아는 온 신경을 진서준에게 집중하느라 김태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김태영이 리앙에게 붙어 다닌 걸 삼촌도 알고 있었을까?”김혜민이 불쑥 한마디 던졌다.김태영은 김형산의 아들인데 대놓고 진씨 가문 이익을 해치는 일을 저지른 걸 보면 김형산이
김태영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자 모두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아까 리앙이랑 같이 돌아갔는데 리앙이 아담을 개처럼 욕했어.”김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서?”진서준이 물었다.아담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했기에 리앙이 엄청난 욕설을 날릴 거란 건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뻔한 사실이었다.리앙 같은 명문대가 도련님은 돈도 많고 여자도 많았지만 단 하나, 체면만큼은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그런 놈한테 망신을 준다는 건 차라리 죽이는 것보다 더한 굴욕이었다.“리앙이 술병까지 들어서 아담 대가리를 내리쳤어.”김태영이 한마디 덧붙였다.“이 자식아, 핵심부터 말해.”김형산이 답답한 나머지 발로 김태영을 걷어찼다.“결국 빡친 아담이 리앙을 죽여버렸고 그 죄를 진서준한테 전부 뒤집어씌웠어.”그러자 김태영이 즉시 본론을 꺼냈다.“뭐라고?”모두가 그 말에 깜짝 놀랐다.아무리 아담이 성질이 더러워도 감히 차이더리스 가문의 셋째 아들을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아담이 바로 리앙 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내용은 잘 못 들었어. 근데 전화 너머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라.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김태영이 진심으로 충고했다.솔직히 말해 이건 꽤나 큰일이었다.차이더리스 가문의 가주가 직접 대한민국에 올 가능성이 높았다.죽은 건 먼 친척도 아니고 월런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이다.“근데 왜 널 그냥 보내줬어?”진서준은 의아한 듯 물었다.이런 일을 아는 놈이 많을수록 불리한 법이었다.진서준이라면 절대 김태영 같은 놈을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놈은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놈이었다.“우리 집에 파괴된 단전을 회복하는 약이 있다고 둘러댔어. 그러니까 그놈이 날 보내주더라고. 대신 하루 안에 가져오라고 했어.”김태영이 머리를 긁적였다.“그러길래 네가 그렇게 쥐새끼처럼 기어다녔구나.”김형산이 또 거칠게 발길질을 날렸다.사실 김형산은 김태영을 찾으러 나갔다가 김태영이 마침 몰래 도망치는 걸 발견한 거였다
“해외 이족과 내통한 배신자는 바로 처단할 권리가 있단 말이야. 오늘 널 죽인다고 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고, 알겠어?”김형산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이 멍청한 아들은 자기가 얼마나 큰 사고를 친 건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네? 날 죽인다고요? 설마 그러겠어요?”김태영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냥 팔 하나 부러뜨리고 끝날 줄 알았는데 아예 사형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네가 그 인간들을 너무 몰라서 그래.”김형산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런 절세 고수들에게 인간의 목숨은 잡초 같은 거야. 근데 넌 김연아를 건드린 것도 모자라 심지어 적과 내통한 죄까지 지었어. 아까 너도 봤잖아? 아담이 리앙을 죽일 때 조금이라도 망설였어?”“아니요...”김태영이 고개를 저었다.아까 아담이 리앙을 죽일 때 보였던 그 냉혹한 표정을 떠올리니 김태영은 또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놈한테 걸렸으면 김태영의 목숨도 끝장이었을 거였다.“태영아, 네가 가주 자리를 탐내는 건 잘 알아. 근데 이것 하나만 명심해. 앞으로 가주 자리 따위는 절대 넘보지 마. 그건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야.”김형산은 김태영의 머리를 붙잡고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예전에 김연아가 자리에 오르는 걸 막지 못한 건 실수였지만 이제 와서 김연아에게 반기를 들 생각도 없어. 왜냐고? 김연아의 뒤에 있는 그 남자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 부자는 단숨에 네 큰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될 거니까. 이 집안에 있는 이상 먹고 살 걱정은 없어. 너도 여자나 고급 차가 넘쳐나잖아. 그냥 이대로 부유하고 평안하게 살면 돼.”총과 대포보다 강한 힘을 가진 자에게 세상의 규칙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법과 도덕은 약자를 위한 족쇄일 뿐, 강자에겐 아무런 구속도 되지 않는다.이것이 세상의 진리였다.하지만 김태영은 아직 어려서 이런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진씨 가문의 오래된 대종사들도 마찬가지였다.김형산이 그 대종사들을 직접 찾아가도 예의를 차려야 할 정도였다.그 대종사들은 진씨 가문의
한 여자가 진서준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그 여자는 양손을 등 뒤로 돌려 애써 검은 속옷의 단추를 채우려는 중이었다.진서준의 눈앞에 펼쳐진 건 새하얀 피부와 살짝 드러난 앵두 빛이었는데 반쯤 가려진 듯한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치명적이었다.진서준은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이 여자는 다름 아닌 아까 전화로 진서준을 부른 황예은이었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진서준을 보자마자 몇 초간 머리가 하얘졌다.그러더니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왜? 다 못 봤어? 더 볼 거야?”싸늘한 기운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그 말에 진서준은 황급히 돌아섰다.“미안해, 네가 사무실에서 속옷을 갈아입을 줄은 몰랐거든.”대놓고 확인 사살을 하자 황예은은 더 화가 났다.하지만 황예은은 본래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지라 30초 후 다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들어와. 문 닫고.”허락이 떨어지자 진서준은 그제야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황예은의 머리는 아직 축축했다.딱 봐도 방금 샤워했기에 이 시간에 속옷을 갈아입고 있었던 거였다.진서준은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금 전까지 황예은이 이상한 취향이라도 있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날 부른 이유가 뭔데?”최대한 황예은의 관심을 돌려야 했기에 진서준은 빠르게 본론을 꺼냈다.그렇지 않으면 아까 그 사건을 다시 들추고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일단 방금 그 일부터 얘기하자. 어떻게 보상할 거야?”황예은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무슨 보상?”황예은이 갑자기 보상 타령이나 하자 진서준은 어이가 없었다.진서준이 예전에 명주에서 황예은을 구해줬을 땐, 보상 같은 거 요구한 적이 없었다.“방금 그건 단순한 사고였어. 네가 옷을 갈아입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어.”진서준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그게 네가 빠져나갈 핑계가 될 것 같아?”황예은의 목소리는 여전히 싸늘했다.“그럼 어떻게 하라고?”진서준은 눈썹을 올리며
얼굴에는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고 부끄러움이 살짝 섞여 있었다.“예은아, 누가 왔다고 좀 말해 주지 그랬어?”도지아가 황예은 옆에 앉으며 화난 말투로 따졌다.“저 녀석 내 몸도 봤거든. 너보다 훨씬 더 많이 봤어.”황예은은 태연하게 받아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절친끼리는 좋든 나쁘든 동고동락해야 하는 거 아니야?”“야!”도지아는 미칠 것 같았다.아무리 동고동락한다고 해도 이런 건 절대 같이 겪고 싶지 않았다.“그럼 너 결혼할 때, 나도 신혼 첫날밤 같이 보내줘야 해?”도지아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황예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난 상관없어.”그 순간, 도지아는 벙쪘고 옆에서 듣고 있던 진서준도 얼이 빠졌다.이게 진서준이 아는 황예은이 맞나 싶었다.그 차갑고 도도한 빙산 미녀 사장님은 어디로 간 거지?“본론으로 들어가자.”황예은이 화제를 돌렸다.“소개할게, 이쪽은 진서준인데 유명한 의사야.”“진서준 씨, 안녕하세요. 저는 황예은 절친 도지아예요.”도지아가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도지아 씨.”가볍게 악수를 주고받은 후, 황예은이 말을 이었다.“이번에 널 부른 이유는 지아 치료를 부탁하기 위해서야.”“어떤 치료?”진서준은 살짝 의아했다.아까 도지아를 봤을 때 딱히 아픈 곳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그때, 황예은이 갑자기 도지아의 치마를 확 올렸다.“꺄악! 너 뭐 하는 거야?”도지아는 깜짝 놀라며 허벅지 위를 급히 가렸다.“의사한테 병을 보여줘야지.”황예은이 태연하게 말했다.“내가 직접 올리면 되잖아.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도지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신속하게 반응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진짜 크게 노출될 뻔했다.“여기 봐봐, 치료할 수 있어?”황예은이 도지아의 종아리 바깥쪽을 가리키자 진서준은 그곳을 바라보았다.도지아의 종아리 바깥쪽에는 약 15cm 길이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한눈에 봐도 도드라지는 상처는 지네가 기어가는 것처럼 흉측했다.이 정도면 피부를 완전히 덮는 검은 스타킹을 신
한마디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여니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진서준과 도지아는 미친 사람 보듯 황예은을 바라봤다.‘이 여자 대체 왜 이래? 본성이 해방된 건가? 왜 이렇게 거침없이 대담한 발언을 하는 거야? 다리를 1년 동안 논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네 다리나 주지 그래, 진서준 씨가 1년 내내 마음껏 놀게 말이야.”도지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 다리는 흉터 없거든?”황예은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진짜 나락으로 가는구나, 너.”도지아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예전엔 그래도 말조심하던 황예은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거침없이 말을 뱉어냈다.“진서준 씨, 원하는 가격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가능한 한 맞춰 드릴게요.”도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바라봤다.물론 진서준이 다리를 1년 동안 논다는 보수는 절대 불가능했다.도지아는 자기 다리 흉터를 치료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다.자존심 따위 신경 안 썼다면 애초에 이렇게 큰 흉터가 남지도 않았을 터였다.“보수는 필요 없습니다. 황예은과 친구잖아요. 저도 황예은을 봐서 온 거니까요.”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그 말을 들어보니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은 것 같은데요?”도지아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에 짙은 흥미를 보였다.여자의 직감으로 봤을 때, 진서준과 황예은 사이에 분명 뭔가 있었다.그렇고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황예은이 그런 장난스러운 성희롱을 던질 리 없었다.“그냥 평범한 친구일 뿐입니다.”진서준이 침착하게 설명했다.“그래요? 정말인가요?”하지만 도지아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그만 가자, 밥 먹으러 가.”황예은이 벌떡 일어나면서 도지아의 추궁을 끊어버리려 했다.“뭐가 그렇게 급해? 아직 시간 많잖아? 난 그냥 너희 둘 관계가 궁금할 뿐이야.”도지아의 마음속에서 이미 활활 불타오르는 남녀 관계에 관한 궁금증의 불꽃을 이제 와서 꺼뜨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아무
세 사람은 곧장 진서준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하씨 가문 사람들이 왜 왜 강남에 온 거지?”도지아가 기분 나쁜 얼굴로 중얼거렸다.“아마도 체육관 결투를 보러 온 거겠지.”황예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이번 진서준과 아담의 대결은 워낙 장안의 화제인지라 대한민국 무인뿐만 아니라 해외 강자들까지 대거 몰려들었다.하씨 가문은 르벨에 기반을 둔 집안인지라 강남과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도지아 씨, 저 사람들이랑 아는 사이인가요?”진서준이 도지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 물었다.“네... 저 중 한 명은 제 전 직장 상사였어요.”도지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제 다리 흉터도 저놈이 남긴 거예요.”그 말이 떨어지자 황예은의 몸에서 살기를 머금은 냉기가 퍼졌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황예은은 도지아의 다리 흉터가 단순한 화상 자국인 줄 알았지 누군가 일부러 만든 상처라곤 예상한 적 없었다.도지아는 쓴웃음을 지었다.“됐어. 어차피 이제 그 회사에 충성할 일도 없으니까.”“안 돼.”황예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넌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그런데 누가 널 괴롭힌다고? 절대 용서할 수 없어.”두 사람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하씨 가문의 세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황예은 씨, 여기서 우연히 만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네요.”선두에 선 젊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남자의 이름은 하경범이었고 하씨 가문의 직계이자 젊은 세대 중에서도 손꼽히는 천재였다.“지아 다리의 흉터는 당신이 남긴 거예요?”황예은이 뜬금없이 본론을 꺼내며 싸늘한 눈빛으로 하경범을 노려봤다.“네?”하경범이 잠깐 멈칫하다가 피식 웃으며 도지아를 바라봤다.“도지아 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비록 지금 우리 회사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제가 감히 그런 무례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직접 당신 손으로 한 건 아니죠. 대신 당신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한 거잖아요?”도지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오해입니다. 전 그런 비열한 짓을 절대
하경범의 눈빛에는 도발이 가득했다.하씨 가문은 르벨의 최정상급 명문대가였고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외 세력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내에서 최고 부자일지 몰라도 실력으로 따지면 하씨 가문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그래서 하경범은 이렇게 거리낌 없이 나올 수 있었다.게다가 하경범은 황예은이 단순히 남을 위해 하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리 없다고 확신했다.사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이익이기 때문이었다.“네가 당한 대로 그대로 이 사람에게 돌려줘.”황예은이 쌀쌀하게 도지아를 재촉했다.“예은아, 그냥 없는 일로 하자. 됐어.”도지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도지아, 황예은 씨가 너 대신 날 심판하려고 하는데 넌 이렇게 쪼그라들기만 할 거야?”하경범이 얄미운 밀투로 계속 도발했다.“마음껏 해 봐. 어차피 황예은 씨가 네 뒤를 봐줄 거잖아.”허경범은 도지아가 절대 섣불리 나서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도지아는 르벨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그녀의 가족도 전부 그곳에 있었다.만약 도지아가 하씨 가문과 정면으로 맞선다면 그녀의 가족이 위험해질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왜? 못 하겠어? 그럼 내가 할게.”다음 순간, 황예은이 테이블 위의 뜨거운 커피를 그대로 집어 들어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하경범의 얼굴에 들이부었다.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하씨 가문의 세 사람은 제대로 반응할 틈도 없었다.“아악!”뜨거운 커피 벼락을 맞은 하경범은 순식간에 비명을 내질렀다.“이년이 미쳤어?”하경범은 얼굴을 감싸 쥔 채, 분노에 찬 눈으로 황예은을 노려봤다.“예은아!”도지아도 황예은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랐다.1초의 망설임도 없이 뜨거운 커피를 사람 얼굴에 들이부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저 인간 별거 아니야. 봐, 결국 병신처럼 소리만 질러대잖아.”황예은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한 태도를 유지했다.하경범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이를 악물었다.“황예은, 감히 날 건드려? 널 작살내 버릴 수도 있는 거 몰라?”
김혜민은 이렇게 쓰레기 같은 남자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그러니까 사회생활을 할 땐 항상 조심해야 해.”진서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맞다, 진서준. 너 곧 강남을 떠난다고 했어?”김혜민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응, 르벨에 볼 일이 좀 있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데려가면 안 돼? 집에 갇혀 있으니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김혜민이 갑자기 진서준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안 돼. 난 일 때문에 가는 거지 여행 가는 게 아니야. 놀고 싶으면 연아 상처가 회복한 후에 너희끼리 가.”진서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진서준이 르벨에 가는 이유는 용맥의 일족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여행하러 가는 게 아니었고 설사 여행이라도 김혜민과 단둘이 갈 이유는 없었다.“너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김혜민이 입을 삐쭉이며 화난 모습을 보였다.“응, 난 원래 매정한 사람이야.”진서준이 태연하게 대꾸했다.“너, 너 꼬박꼬박 말대꾸하지 마.”김혜민은 주먹으로 솜을 때리는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진서준이 집에 도착하자 김연아가 아직 자지 않을 걸 발견했다.“어때? 일 잘 해결했어?”김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응,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서광문 삼촌이 나타나서 상황을 제대로 수습해 줬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연아야, 나 내일 오영수랑 함께 르벨에 좀 다녀와야 해.”“알고 있어. 며칠 전에도 말했잖아. 걱정 마, 난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아.”김연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래, 그럼 푹 쉬어.”진서준은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가지 마.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김연아의 얼굴이 붉어졌고 촉촉한 눈망울이 반짝였다.그러자 진서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근데 네 상처가 아직...”“괜찮아. 살살 하면 돼.”김연아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속삭였다.김연아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진서준이 굳이 거절할 리 없었다.“그럼 먼저 씻자.”진서준은 김연아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곧 욕실에서 여자
귀로 듣는 건 믿을 수 없고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만이 진짜인 법이다.조상규는 진서준에 관한 소문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언제나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했다.스무 살 갓 넘긴 애송이가 육급 대종사급 실력을 갖췄다는 게 정말 가능하다고?대한민국 전역을 통틀어도 그런 무도 천재는 있을 수 없었다.심지어 은거한 4대 정통 종문조차도 그런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제자는 없었다.그런데 지금 직접 확인하니 눈앞의 진서준은 정말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조상규는 더욱 진서준의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방 안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곧 대대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듯한 순간,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경범아,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방에 들어온 사람은 서지은의 아버지이자 이 호텔의 주인인 서광문이었다.오늘 저녁, 서광문은 호텔에서 사업 파트너와 미팅하던 중, 매니저가 호텔에서 소란이 일어났다고 보고해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직접 나선 것이었다.“어라? 진서준? 너도 있었어?”서광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소란을 피우는 게 진서준과 하경범이란 말인가?“광문 삼촌, 이 녀석을 아세요?”하경범은 서광문을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진서준은 우리 딸의 절친이야.”서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둘이 혈기 왕성해서 다소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체면 봐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나?”서광문이 팽팽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하자 하경범은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광문 삼촌이 정 원하신다면 제가 삼촌 말씀 따를게요.”서씨 가문은 강남에서 서열 1위에 있는 가문이었다.굳이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엄청난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진서준, 넌 어때?”서광문이 진서준을 바라봤다.“도지아의 부모를 풀어줘. 그럼 나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도지아를 가리켰다.지금도 도지아의 부모는 하경범의 손에 있었다.서광문의은 그 말에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경범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야.
“계속해. 바지도 벗어.”도지아는 천천히 바지 벨트도 풀었다.슬림한 청바지가 내려가자 속바지도 있었지만 도지아의 긴 다리가 완전히 드러났다.“음... 저 흉터는 확실히 보기 안 좋네. 나중에 유명한 의사를 불러서 깨끗이 없애 줄게.”하경범은 음흉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도지아에게 걸어가 짐승처럼 도지아를 덮쳤다.바닥에 쓰러진 도지아는 눈을 꼭 감았고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바로 그때,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걷어차 열어젖혔다.“누구야?”하경범이 벌떡 일어나 살기를 띤 얼굴로 문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문 앞에 선 남자를 확인한 순간, 하경범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또 너야?”진서준을 본 하경범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진서준!”도지아는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이름을 불렀다.진서준은 도지아가 아직 속옷을 입고 있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금만 늦었어도 황예은에게 뭐라고 해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날 레스토랑에서 내가 뭐라고 경고했는지 기억 안 나?”진서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봐, 그날은 내가 경호원을 안 데리고 가서 네가 좀 날뛸 수 있었던 거야.”하경범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오늘은 다르지. 오늘 이년을 즐기겠다고 결심한 이상, 준비가 없을 리가 있겠어?”“비겁한 놈, 부끄러운 줄 알아. 여자나 괴롭힐 줄 아는 쓰레기 같은 놈.”김혜민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날렸다.“어라? 네 옆에 있는 애도 괜찮은데? 진서준, 네 덕에 오늘 밤 두 명을 즐길 수 있게 됐네.”김혜민의 얼굴을 확인한 하경범의 눈이 번쩍였다.김혜민은 그 말에 구역질이 날 뻔했다.“진서준, 저 개자식 입을 찢어버려. 듣기만 해도 역겨워.”“입만 찢는 게 아니라 그냥 없애버릴 거야.”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날 없애겠다고? 일단 여기서 살아남고 허세를 부려.”하경범은 진서준을 비웃으며 손뼉을 쳤다.순간, 복도에서 방으로 달려
저녁을 먹던 진서준은 전화를 받고 눈썹이 꿈틀거렸다.“무슨 일이야?”“내 절친, 그 길쭉한 다리 자랑하는 애 있잖아. 하경범한테 속아서 호텔로 갔어. 당장 가서 구해줘. 난 지금 명주로 가는 중이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황예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서둘러 나왔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도지아가 사고를 친 것이다.“뭐? 어느 호텔인데?”“클라우드 호텔 308호 방이래. 근데 지금도 거기서 식사하는지는 모르겠어.”“알았어.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진서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연아를 바라봤다.“연아야, 난 사람 좀 구하러 가야 해. 이따가 피곤하면 먼저 자.”“알았어, 꼭 조심해.”김연아의 얼굴에 우려가 가득했다.진서준이 차고로 내려가자 막 차를 몰고 돌아온 김혜민과 마주쳤다.“진서준, 어디 가? 우리 언니 안 돌봐?”김혜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사람 구하러 가.”진서준은 짧게 대꾸하고 곧장 차에 올라탔다.“사람 구하러 가? 나도 갈래.”진서준이 말릴 틈도 없이 김혜민은 재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안전벨트 매. 바로 출발할 거야.”시간이 없었던 진서준은 굳이 김혜민을 말리지 않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그러자 차가 총알처럼 도로를 질주했다.한편, 308호 방.하경범은 느긋하게 와인잔을 흔들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하경범은 여자가 절망에 빠져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바쳐야 하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여자의 존엄과 순결을 짓밟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었다.“도지아, 결정했어? 네 순결을 지킬래? 아니면 네 가족 목숨을 지킬래?”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자 도지아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다른 요구는 안 돼?”“안 돼. 나 같은 놈은 원래 여자를 밝히거든. 네 예쁘고 기다란 그 다리를 예전부터 내가 탐났던 거 알아?”하경범의 미소는 여전히 음흉했다.“물론 강요는 안 해. 네가 거절할 수도 있어. 근데 네가 날 거절하면 네 가족이 어떤 끔찍한 일을
신도시는 이미 새 아파트가 가득 지어진 지역이었다.또한 발전도 활발한 곳이라 갑자기 다시 철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너 혹시 우리 가족을 납치했어?”도지아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철거는 핑계였고 가족을 납치한 게 진짜 목적이었다.하씨 가문은 르벨의 실세인지라 그들이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다.“아니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하경범은 태연하게 웃으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장명쇄 하나를 꺼냈다.그것을 본 순간, 도지아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왜냐하면 도지아의 동생이 딱 저런 장명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이 장명쇄는 어디서 난 거야?”도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아, 내 부하가 며칠 전에 르벨에서 가져왔어. 철거하려는 집에 있던 청년한테서 얻었다고 하더라고.”하경범은 느긋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그거 내가 확인해 봐도 돼?”도지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당연하지.”하경범은 장명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도지아 앞으로 밀었다.도지아는 서둘러 손을 뻗어 장명쇄를 집어 들었다.그 순간, 눈에 들어온 성씨를 확인하자 도지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틀림없이 도지아 동생의 장명쇄였다.이제야 도지아는 순식간에 지금 이 상황을 깨달았다.하경범은 처음부터 사과 따윈 생각도 없었다.하경범은 이미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했고 그걸 빌미로 도지아를 협박하려는 것이었다.“하경범. 너 인간이 맞아? 내 가족을 감히 납치해?”도지아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응?”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르쇠를 놓았다.“지아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이건 내 동생의 장명쇄야. 네놈이 내 가족을 납치했잖아?”도지아는 이를 갈며 하경범에게 따졌다.“어라? 벌써 알아차렸어?”하경범은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네 가족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안다는 사람이 감히 그런 태도로 말하는 거야?
“도지아, 나 하경범이야.”해 질 무렵, 도지아는 하경범의 전화를 받았다.상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도지아는 바로 전화를 끊으려 했다.“잠깐만, 끊지 마. 오늘 전화한 건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사과하고 싶어서야.”하경범이 드물게도 저자세로 나왔다.“뭐? 사과라고? 나한테?”도지아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도지아가 아는 하경범은 절대 고개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설령 본인이 잘못했어도 어떻게든 상대를 조종해서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는 인간이 바로 하경범이었다.“그래, 그땐 내가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아. 어떻게 너처럼 훌륭한 모델을 억지로 따먹으려 했는지 모르겠어. 네 다리 다친 것도 내가 시킨 게 맞아. 정말 미안해. 며칠 전 너와 다시 만난 뒤로 계속 반성했어. 내가 너무 지나쳤더라고. 너한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줄 수 있겠어?”하경범의 태도는 의외로 진지했다.도지아는 순간 지금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이 정말 하경범이 맞나 싶었다.“됐어, 앞으로 다신 날 귀찮게 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해.”“당연하지. 앞으로 널 귀찮게 할 일은 없어. 이번에 전화한 건 너와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서야.”하경범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전화로 사과한 것만으로도 충분해.”도지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도지아도 경계를 완전히 내려놓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지아야, 네가 나랑 안 만나주면 솔직히 나도 불안해. 사실 이번에 내가 이렇게 나오는 건 황예은 때문이야.”하경범은 자세하게 자기주장을 해명했다.“황씨 가문의 세력이 어떤지 네가 더 잘 알 거야.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괜한 적을 만들고 싶진 않거든. 나도 황예은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하경범의 말을 듣자 도지아는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하경범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전적으로 황예은 때문이었다.황씨 가문은 대한민국에서 최고 재벌이라고 불리는 가문이었다.어떤 명문대가라고 해도 황씨 가문 앞에선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하씨 가문이라고 예외
진서준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앞으로 네 말 잘 들을게.”“뭐 먹고 싶어? 내가 해줄게.”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아무거나 좋아. 네가 만든 거면 다 맛있으니까.”김연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걱정해 주는 이 따뜻한 느낌이 김연아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버섯 죽 한 그릇을 가져왔다.“그나저나 차이더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놈들이 가만있을 것 같진 않은데?”김연아가 죽을 먹으며 물었다.“군부에서 알아서 적절하게 처리했어.”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군부가 나섰다고?”김연아는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랐다.“응. 놈들은 이제 절대 대한민국을 떠날 수 없어.”김연아는 순간 멈칫하다가 다시 진서준에게 확인했다.“설마... 다 죽은 거야?”“그래.”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가주 월런도 죽었어.”“차이더리스 가문이 무조건 가만히 있지 않고 복수하려 할 거야...”김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어쨌든 차이더리스 가문은 초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였다.그런데 그 가문의 가주가 대한민국에서 죽었으니 가문 전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걱정 마. 어제 일을 알고 있는 놈들은 전부 죽었어.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낼 수 없을 거야.”진서준은 태연하게 웃으며 김연아를 위로했다.사실 아버지를 찾는 일이 급하지 않았다면 김연아의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진서준은 직접 초아국으로 쳐들어가 차이더리스 가문 자체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이다.진서준의 가족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이었다.용의 역린을 건드리면 대가는 파멸뿐이었다.“참, 며칠 후에 르벨에 좀 다녀올 거야.”진서준이 갑자기 다른 화제를 꺼냈다.“르벨에? 왜?”“오영수 대장한테서 내 출생에 관한 정보를 조금 들었어. 더 자세한 걸 알아보면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그럼 조심해야 해. 르벨은 대다수 대한민국 도시와 틀려. 거기에서 거
이른 아침.반쯤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진서준을 본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 난 다시는 널 못 보는 줄 알았어.”눈이 벌겋게 충혈된 서지은이 곧바로 달려와 진서준을 꼭 껴안았다.“난 괜찮아, 지은아. 우선 연아 치료부터 해야 해.”진서준은 서지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뭐라고? 연아가 다쳤다고? 그럼 어서 가.”서지은은 깜짝 놀라며 급히 진서준을 놓아주고 그를 재촉했다.김혜민이 앞장서서 진서준과 함께 김연아가 있는 곳으로 갔다.“하문천 어르신께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셔서 언니 상처는 간단히만 응급처치했어.”김혜민이 이를 악물었다.“그 개자식들이 어떻게 여자한테 이 정도로 잔인하게 굴 수가 있어?”김연아의 상처를 직접 확인한 순간, 김혜민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일단 나가 있어.”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고 이내 조용히 김연아 곁에 다가갔다.혼수상태에 빠진 김연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진서준... 어서 도망쳐... 날 신경 쓰지 말고...”그 한마디가 진서준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렀다.이 지경까지 고문당했으면서도 김연아는 여전히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난 여기 남을 거야. 나도 도울게.”김혜민은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그럼 일단 따뜻한 물 한 대야랑 흰 수건 몇 장 가져와.”“알았어. 금방 가져올게.”김혜민이 다시 들어왔을 때, 진서준은 이미 김연아의 붕대를 모두 벗긴 상태였다.피는 이미 굳었지만 피멍과 자국으로 가득한 상처는 너무나도 끔찍했다.“이 상처를 치료한 후 언니 몸에 흉터가 남으면 어떡해?”김혜민이 흐느끼며 물었다.“걱정 마. 최고의 약으로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워줄 거야.”진서준은 직접 제조한 약 가루를 꺼냈다.본래는 도지아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김연아의 상태가 더 위중했다.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김연아의 상처를 닦아냈다.소독, 약 바르기, 붕대 감기... 진서준은 모든 과정을 신중하게 진행했다.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특
진서준은 무심하게 주머니에서 갈색 알약 하나를 꺼냈다.그 모습을 본 소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알약은 입에 닿자마자 녹아들었고 엄청난 영기가 범람하는 홍수처럼 진서준의 단전에 쏟아져 들어갔다.“다음번 공격으로 널 지옥에 보내주마.”말을 마치자마자 막대한 영기가 참선검으로 흘러들었고 검신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소르는 참선검에서 모든 걸 파괴할 듯한 어마어마한 힘이 분출되고 있다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소르의 머릿속에 꽉 찼다.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소르는 재빨리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뛰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백 미터를 달려 나갔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이 발을 내디디는 순간, 이미 소르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이봐, 사람은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해. 그래야 나중에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소르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넌 날 다시 볼 기회 따위 없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선검이 소르의 목을 스쳤다.가는 실처럼 섬세한 검광이 스쳐 소르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곧이어 피가 샘물처럼 솟구쳤다.휘둥그레 뜬 소르의 두 눈에는 극도의 원한과 후회만이 가득했다.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천의방 두 고수가 차례로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도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들을 죽인 건 단 한 사람, 바로 진서준이었다.이 사실이 외부에 퍼진다면 아마 전 세계가 경악할 것이다.“쏴! 당장 쏴 죽이란 말이야!”월런이 격노하며 명령을 내렸다.그러자 주변의 총잡이들이 일제히 총구를 들어 진서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며 진서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오늘 여기 있는 놈들은 모조리 쳐 죽일 거야.”선천의 힘조차 진서준을 상처 입히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런 총알 따위가 위협이 될 수 없었다.진서준은 검을 휘두르며 총잡이 속으로 뛰어들었다.진서준이 지나가는 곳마다 아무런 저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