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범은 미친 사자처럼 포효했다.“너희 둘은 거기서 뭘 멀뚱히 보고만 있어? 나 방금 맞은 거 안 보여?”하경범의 두 부하는 겁먹은 표정을 지을 뿐, 선뜻 나서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얼마 전 링 위에서 벌어진 처참한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었다.진서준이 천의방 고수를 어떻게 박살 냈는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진서준 씨, 당신이 싸움을 잘하는 건 알겠는데 우리 하씨 가문에도 천의방 고수는 많습니다.”하씨 가문의 중년 남자가 경고했다.“우리 르벨의 하씨 가문을 건드리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당장 우리 도련님을 놓아주세요.”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술렁였다.“뭐? 저 사람들이 르벨 하씨 가문 사람이었어?”“하씨 가문이 그렇게 대단한 집안이야? 난 처음 듣는데?”“당연히 대단하지. 르벨 도박왕이 바로 하씨 가문의 현 가주야. 자산만 해도 조 단위를 넘고 세력이 어마어마하지. 경성 최고급 가문들도 하씨 가문은 함부로 못 건드려.”“헐, 그렇게 대단한 집안이었어? 그럼 저 세 사람은 완전히 끝난 거 아니야?”사람들은 하씨 가문의 실력에 감탄하며 웅성거렸다.“때릴 거면 얼른 때려, 때릴 용기 없으면 그냥 닥치고 서 있어.”진서준은 싸늘한 눈길로 상대를 내려다봤다.그러고는 도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더 때릴래? 다 때렸으면 밥이나 먹자. 근데 내가 너라면 한 대만 때리고 끝내진 않을 거야.”도지아는 그 말에 이를 악물고 양손을 번갈아 휘둘러 열 대도 넘게 따귀를 날렸고 너무 거칠게 후려쳐 손바닥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꺼져.”진서준이 발차기를 날려 하경범의 배를 거칠게 걷어차자 하경범은 공중으로 날아가 10미터나 떨어진 테이블에 처박혔다.테이블과 의자가 넘어지며 식당은 난장판이 되었다.식당 주인은 그 장면을 보고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바닥에 쓰러진 하경범은 어제저녁에 먹은 것까지 다 토해 버렸다.“너희 셋, 가만두지 않겠어. 두고 보자.”하경범은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진서준 일행을 손가락으
하씨 가문은 확실히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가문이었다.하지만 하경범은 단지 하씨 가문의 직계 중 한 명일 뿐이었다.하씨 가문의 직계만 해도 백 명이 넘는데 하 어르신이 손자 하나 때문에 황씨 가문과 전면 전쟁을 선포할 수가 없었다.조금 전 하경범이 한 말 중에 틀린 건 사실 없었다.상인의 세계에서는 이익이 가장 중요했다.황예은은 하경범 한 명만 때렸을 뿐이지 하씨 가문 자체를 모욕한 게 아니었다.그러니 하씨 가문 전체가 황예은을 상대로 복수하지는 않을 것이다.“진서준, 아까 네 덕에 일이 잘 풀렸어. 한잔 받아 줘.”도지아는 술을 한 잔 따라 올렸다.“난 술 안 마실 거야. 밤에 할 일이 좀 있어서 그래.”진서준이 거절하자 황예은이 즉시 질문을 던졌다.“누구랑 데이트라도 하려고?”“전신전 사람들이랑 볼일이 있어.”진서준은 대충 둘러댔다.“그래? 이젠 남자들도 좋아하게 된 거야?”황예은이 정색한 얼굴로 말하자 도지아의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황예은이 설마 저런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밥 먹을 때는 제발 입 좀 다물고 밥만 먹어.”진서준이 한숨 쉬며 눈을 흘겼다.‘이 여자가 점점 선을 넘네. 혹시 내가 이 여자의 이상한 취향을 깨워버린 건가? 설마 그럴 리 없겠지?’저녁 식사가 끝난 후, 진서준은 경호원 역할을 하며 두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황예은은 이번에 오기 전에 강남에 대뜸 별장을 하나 사버렸다.이게 바로 부자의 삶이었다.뭐든지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게 돈의 힘이기에 사람들이 돈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도지아는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많이 마셨고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었다.진서준은 도지아를 업고 방까지 데려다주었다.“난 이만 가볼게. 여긴 명주가 아니야. 오늘 네가 하경범을 그렇게 개망신 줬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진서준이 마지막으로 귀띔했다.“응, 너도 조심해.”황예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너 정말 남자들이랑 데이트하러 가는 거 아니지?”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헛디
“넌 그렇게까지 지은이 날 떠났으면 해?”진서준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당연하지. 지은은 내 가장 소중한 친구야. 내가 어떻게 절친이 너라는 심연에 빠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어?”성미영이 콧방귀를 끼며 말을 이었다.“너 실력은 강한데 사람 상대하는 건 진짜 꽝이야.”성미영은 남자가 여자 여럿을 끼고 다니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맞아, 사람 상대하는 거 난 진짜 서툴러.”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응? 너 오늘 좀 이상한데?”진서준이 순순히 인정하자 성미영이 의아해했다.“아무것도 아냐.”진서준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쳇, 말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마. 나도 별로 듣고 싶지 않으니까.”성미영이 새침하게 돌아섰다.30분 후, 차는 오래전에 폐쇄된 한 병원 앞에 멈춰 섰다.“도착했습니다.”용홍권의 말에 진서준이 차에서 내려 폐허가 된 병원을 바라보았다.병원 밖에서 보기만 해도 뭔가 섬뜩한 기운이 감돌았다.“이 병원은 10년도 더 전에 폐쇄됐습니다. 그놈들이 연구 장소로 여길 택한 것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을 겁니다.”용홍권이 천천히 설명했다.“연구소는 이 병원의 지하 주차장에 있습니다.”용홍권이 오늘 밤 작전을 지시했다.“우린 두 팀으로 나뉠 겁니다. 진서준 씨와 성미영, 오영수랑 한 팀이고요. 나머지는 저랑 같이 움직일 겁니다. 동쪽과 서쪽 입구로 나뉘어 진입한 후, 나중에 지하 주차장 앞에서 합류하죠.”일행 중에서 진서준과 용홍권이 가장 강했다.두 사람이 각각 팀을 나눠 이끌어야 다른 사람들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였다.“그렇게 하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팀을 나눈 후, 일행은 즉시 움직였다.병원에 들어서자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얼마 가지 않아 어둠 속에서 그림자 여러 개가 모습을 드러냈고 바로 운대산에서 마주쳤던 그 개조인들이었다.“설마 여길 쫓아올 줄이야.”개조인 무리의 두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살기 싫다면 그냥 여기서
개조 전사가 되고 나면 고통이 뭔지도 모르고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된다.게다가 뼈와 근육의 강도도 예전보다 열 배 이상 강해진다.천의방 강자라 해도 개조 전사를 한 방에 터뜨려 핏물로 만들어버리는 건 불가능했다.그런데 지금 그 신기한 장면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이... 이게 진서준 씨 진짜 실력인가?”오영수가 침을 꿀꺽 삼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예전에 자칫 자기를 죽일 뻔한 개조인이 진서준 앞에선 장난감처럼 한순간에 박살 났다.이 압도적인 격차를 오영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 순간, 오영수는 동북 무명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설마... 그때 모든 게 진서준 씨가 한 거였어?”생각할수록 그럴 가능성이 컸다.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 묘강의 수배범을 처리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을 거였다.“너... 넌 도대체 누구지?”개조인의 두목이 공포에 질려 진서준을 바라봤다.“당장 죽을 놈이 알 필요 없어.”진서준은 덤덤하게 말을 마치고는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그리고 다음 순간, 진서준은 개조인 두목의 바로 앞에 나타났다.그리고 전력을 다해 두목에게 주먹을 내리꽂았다.펑!두목은 아무런 반항도 못 한 채 다른 개조인처럼 핏방울이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오 대장, 저 녀석 등에 있는 문신 봤어요? 움직이는 거 같던데요?”성미영이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그건 문신이 아니야.”오영수가 고개를 저었다.“아니라고요? 그럼 뭔데요?”성미영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태어날 때부터 생긴 건 아니겠죠?”성미영은 저런 이상한 걸 설명할 방법이 문신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대한민국에는 특별한 혈통을 갖고 태어난 이들이 있어. 그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보통 인간과는 다른 강대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지. 대한민국의 후손이 용의 후손이라 불리는 이유가 뭔지 알아? 수천 년 전, 문명을 처음 개척한 자들은 등에 오조금용을 새기고 있었어. 그리고 외부인들은 자연스레 그 사람들을 용맥의 일족이
진서준의 아버지 진요한은 진혁이 주워 키운 아이였다.그렇다면 진서준과 진요한의 진짜 성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었다.“뭐,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토론하죠. 지금은 일단 저 개조인들을 처치하는 게 우선입니다.”진서준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먼저 눈앞의 일을 해결한 다음, 전력을 다해 아버지의 행방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아버지만 찾을 수 있다면 진서준 마음속의 수수께끼들도 하나씩 풀릴 것이다.셋은 계속 걸어가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부전주님 일행이 아직 안 왔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성미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부전주님은 워낙 강하시니까 이 개조인 따위는 상대도 안 될 거야.”오영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약 10분쯤 기다리자 드디어 용홍권 일행이 도착했다.하지만 용홍권을 제외한 나머지 몇 명은 정도가 다르게 다쳤다.“너희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할 줄은 몰랐어.”용홍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다 진서준 씨 덕분입니다. 저랑 미영은 딱히 한 게 없어요.”오영수가 씁쓸하게 웃었다.개조인을 주먹 한 방에 터뜨려 버리는 진서준을 보며 오영수와 성미영은 도저히 싸움에 낄 틈은 없었다.지금 진서준은 혈기가 사라진 상태라서 등에 있던 오조금용도 모습을 감췄다.그래서 용홍권 일행은 그 신비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용맥의 일족은 철저히 숨겨진 존재였기에 전신전의 부전주라 할지라도 오영수가 먼저 밝힐 순 없었다.“진서준 씨를 모셔 오길 정말 잘한 것 같군요.”용홍권이 웃으며 말했다.“잡담은 그만하죠. 지금 당장 이 연구소를 박살 내고 배후에서 지시하는 흑막을 찾아내죠.”진서준이 앞장서며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용홍권 일행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지상은 폐허처럼 엉망진창이었지만 지하 주차장은 오히려 새것처럼 깔끔했다.주차장 깊숙한 곳에서 환한 불빛과 함께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서두르자, 얼른 사람 살려야 해.”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철판으로 만들어진 연구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진서준이 구해주고 있던 노인은 바로 며칠 전 김혜민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그 장애인이었다.노인은 눈, 귀, 입이 온전치 않았고 얼굴의 절반은 망가진 상태였다.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누군가가 쇠판을 용접해 강제로 붙여놓았다.진서준은 설마 이곳에서 다시 이 노인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르신, 나쁜 놈들은 우리가 전부 쫓아냈습니다. 이제 안전하니까 시름 놓으세요.”진서준은 노인의 손에 천천히 글씨를 적었다.그러자 노인은 그 자리에서 오열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정말, 정말 고맙네.”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답을 적었다.납치된 노숙자들을 모두 지상으로 보낸 뒤 용홍권은 곧바로 지역 군부에 연락을 취해 연구소의 모든 장비를 수거하도록 지시했다.“이런 실험실이 과연 여기 하나뿐일까?”용홍권이 깊은 고민에 잠겼다.“이번에 하나를 들켰으니 놈들이 더욱 조심할 게 뻔합니다. 앞으로 단속도 더 어려워질 거고요. 진서준 씨, 오늘 진서준 씨가 없었다면 이렇게 순리롭지 않았을 겁니다.”용홍권은 진서준을 향해 다시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별말씀을요. 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진서준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그때, 용홍권이 갑자기 제안했다.“아직 시간이 이르니 우리 다 같이 술 한잔하는 게 어떨까요?”다른 이들도 바로 동조했다.“좋죠. 오늘 큰일을 해냈으니 한잔할 만하죠.”“그러게요. 오랜만에 술 마시고 싶었는데 잘됐네요.”전신전의 규율은 매우 엄격해서 작전 중 술을 마시는 건 절대 금지 사항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무 종료인지라 다들 이 기회에 마음껏 마시고 싶었다.용홍권 일행이 열렬하게 초대하자 진서준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게다가 오영수에게서 용맥의 일족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생각이었다.“좋습니다. 초대해 주셨으니 저도 굳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모두 차에 올라 근처 호텔에서 내린 후, 술과 음식을 실컷 즐겼다.술자리가 끝난 후, 진서준은
“뭐, 귀찮긴 하겠죠. 하지만 이미 귀찮은 일에는 익숙해 있습니다. 게다가 그 녀석은 진짜 한 대 처맞을 짓을 했거든요?”진서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하경범은 도지아를 강제로 성추행하려다 실패하자 그녀의 커리어를 박살 내버렸다.그런 놈은 맞아도 쌌고 때려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솔직히 진서준의 여자가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진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녀석을 죽였을 것이다.“걱정 마세요. 르벨에 가더라도 절대 오씨 가문에 폐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이 오영수와 약속했다.“진서준 씨,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오영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반박했다.“진서준 씨는 우리 전신전에 엄청난 도움을 줬습니다. 지금 진서준 씨는 우리 전신전의 은인이라고 봐도 됩니다. 게다가 진서준 씨는 용맥의 일족이잖아요. 우리 아홉 후손 가문은 용맥의 일족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하씨 가문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 오씨 가문과 부딪히게 된다면 우리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오씨 가문은 천 년을 이어온 가문이었고 가문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무도 강자였다.하씨 가문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면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좋아요, 그럼 저도 미리 준비할게요. 출발할 때 미리 연락해 주세요.”진서준의 말에 오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죠.”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둘이서 뭔 얘기 그렇게 길게 해? 얼른 들어와서 술 마셔.”용홍권이 두 사람을 안으로 불렀다.“네, 우리 들어갈게요.”강남 국제공항.차이더리스 특유의 마크가 새겨진 비행기 몇 대가 천천히 착륙했다.곧이어 비행기의 문이 열리더니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남자들은 공항 전체의 안전 상황을 빠르게 장악했다.모든 것이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비로소 가운데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그리고 선글라스를 낀 월런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월런의 뒤에는 금발 중년 남자 두 명이 따라 나왔다.겉보기엔 아담과 비슷한 나이였으나 사실 이
밤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 짙게 깔려 있었다.유령 같은 실루엣 두 개가 진씨 가문의 대문 앞에 나타났다.“멈춰, 너희는 누구야?”문 앞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즉시 경계 태세를 취했다.이들은 바로 아담과 함께 온 천의방 강자였다.한 사람은 천의방 79위에 올라와 있는 소르였는데 그는 평생 해외를 누비며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한때, 소르는 혼자서 초아국의 가장 삼엄한 감옥을 습격해 안에 갇혀 있던 부자를 한 명 구출해 냈다.그 일로 인해 초아국에서 몇 년간 수배당했고 결국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그 후, 소르는 얼굴과 신분을 바꾼 뒤 차이더리스 가문에 숨어들었다.또 한 사람은 천의방 77위에 올라와 있는 루돌프였다.소르와는 달리 루돌프는 한 차례 패배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건 결코 치욕적인 패배는 아니었다.루돌프가 마주한 상대는 바로 교회의 주교였기 때문이다.지선에게 패하고도 살아서 도망쳐 나온 것 자체가 오히려 공포스러운 일이었다.그런 천의방 고수 두 명이 직접 김연아를 잡으러 온 것이다.이것만으로도 진씨 가문에 대한 큰 예우라 할 수 있었다.금발의 남자가 어색한 대한민국어로 말했다.“김연아가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어.”“네 놈이 뭔데 우리 가주께서 따라가야 한단 말이야? 거기 사람 없어? 여기서 소란을 피우는 놈들이 있어!”경호원이 즉시 지원을 요청하자 순식간에 수많은 경호원들이 몰려와 소르와 루돌프를 단단히 포위했다.“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보안대장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어휴, 어쩔 수 없네. 또 손을 써야겠군.”소르가 고개를 저었다.“대한민국 놈들은 원래 그래. 직접 쓴맛을 봐야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아.”루돌프가 차가운 얼굴을 한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쿵!산을 뒤엎을 듯한 위압이 루돌프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순간 그 자리에서 열 명이 넘는 경호원이 그 기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루돌프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네
김혜민은 이렇게 쓰레기 같은 남자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그러니까 사회생활을 할 땐 항상 조심해야 해.”진서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맞다, 진서준. 너 곧 강남을 떠난다고 했어?”김혜민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응, 르벨에 볼 일이 좀 있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데려가면 안 돼? 집에 갇혀 있으니까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김혜민이 갑자기 진서준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안 돼. 난 일 때문에 가는 거지 여행 가는 게 아니야. 놀고 싶으면 연아 상처가 회복한 후에 너희끼리 가.”진서준은 단칼에 거절했다.진서준이 르벨에 가는 이유는 용맥의 일족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여행하러 가는 게 아니었고 설사 여행이라도 김혜민과 단둘이 갈 이유는 없었다.“너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김혜민이 입을 삐쭉이며 화난 모습을 보였다.“응, 난 원래 매정한 사람이야.”진서준이 태연하게 대꾸했다.“너, 너 꼬박꼬박 말대꾸하지 마.”김혜민은 주먹으로 솜을 때리는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진서준이 집에 도착하자 김연아가 아직 자지 않을 걸 발견했다.“어때? 일 잘 해결했어?”김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응,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서광문 삼촌이 나타나서 상황을 제대로 수습해 줬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연아야, 나 내일 오영수랑 함께 르벨에 좀 다녀와야 해.”“알고 있어. 며칠 전에도 말했잖아. 걱정 마, 난 이제 거의 다 나은 것 같아.”김연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래, 그럼 푹 쉬어.”진서준은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가지 마.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김연아의 얼굴이 붉어졌고 촉촉한 눈망울이 반짝였다.그러자 진서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근데 네 상처가 아직...”“괜찮아. 살살 하면 돼.”김연아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속삭였다.김연아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진서준이 굳이 거절할 리 없었다.“그럼 먼저 씻자.”진서준은 김연아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곧 욕실에서 여자
귀로 듣는 건 믿을 수 없고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만이 진짜인 법이다.조상규는 진서준에 관한 소문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언제나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했다.스무 살 갓 넘긴 애송이가 육급 대종사급 실력을 갖췄다는 게 정말 가능하다고?대한민국 전역을 통틀어도 그런 무도 천재는 있을 수 없었다.심지어 은거한 4대 정통 종문조차도 그런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제자는 없었다.그런데 지금 직접 확인하니 눈앞의 진서준은 정말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조상규는 더욱 진서준의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방 안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곧 대대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듯한 순간, 누군가가 방에 들어왔다.“경범아,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방에 들어온 사람은 서지은의 아버지이자 이 호텔의 주인인 서광문이었다.오늘 저녁, 서광문은 호텔에서 사업 파트너와 미팅하던 중, 매니저가 호텔에서 소란이 일어났다고 보고해서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직접 나선 것이었다.“어라? 진서준? 너도 있었어?”서광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소란을 피우는 게 진서준과 하경범이란 말인가?“광문 삼촌, 이 녀석을 아세요?”하경범은 서광문을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진서준은 우리 딸의 절친이야.”서광문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둘이 혈기 왕성해서 다소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체면 봐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나?”서광문이 팽팽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하자 하경범은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광문 삼촌이 정 원하신다면 제가 삼촌 말씀 따를게요.”서씨 가문은 강남에서 서열 1위에 있는 가문이었다.굳이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엄청난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진서준, 넌 어때?”서광문이 진서준을 바라봤다.“도지아의 부모를 풀어줘. 그럼 나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도지아를 가리켰다.지금도 도지아의 부모는 하경범의 손에 있었다.서광문의은 그 말에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경범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야.
“계속해. 바지도 벗어.”도지아는 천천히 바지 벨트도 풀었다.슬림한 청바지가 내려가자 속바지도 있었지만 도지아의 긴 다리가 완전히 드러났다.“음... 저 흉터는 확실히 보기 안 좋네. 나중에 유명한 의사를 불러서 깨끗이 없애 줄게.”하경범은 음흉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도지아에게 걸어가 짐승처럼 도지아를 덮쳤다.바닥에 쓰러진 도지아는 눈을 꼭 감았고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바로 그때,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걷어차 열어젖혔다.“누구야?”하경범이 벌떡 일어나 살기를 띤 얼굴로 문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문 앞에 선 남자를 확인한 순간, 하경범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또 너야?”진서준을 본 하경범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진서준!”도지아는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표정으로 진서준의 이름을 불렀다.진서준은 도지아가 아직 속옷을 입고 있는 걸 확인하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금만 늦었어도 황예은에게 뭐라고 해명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날 레스토랑에서 내가 뭐라고 경고했는지 기억 안 나?”진서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봐, 그날은 내가 경호원을 안 데리고 가서 네가 좀 날뛸 수 있었던 거야.”하경범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근데 오늘은 다르지. 오늘 이년을 즐기겠다고 결심한 이상, 준비가 없을 리가 있겠어?”“비겁한 놈, 부끄러운 줄 알아. 여자나 괴롭힐 줄 아는 쓰레기 같은 놈.”김혜민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날렸다.“어라? 네 옆에 있는 애도 괜찮은데? 진서준, 네 덕에 오늘 밤 두 명을 즐길 수 있게 됐네.”김혜민의 얼굴을 확인한 하경범의 눈이 번쩍였다.김혜민은 그 말에 구역질이 날 뻔했다.“진서준, 저 개자식 입을 찢어버려. 듣기만 해도 역겨워.”“입만 찢는 게 아니라 그냥 없애버릴 거야.”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날 없애겠다고? 일단 여기서 살아남고 허세를 부려.”하경범은 진서준을 비웃으며 손뼉을 쳤다.순간, 복도에서 방으로 달려
저녁을 먹던 진서준은 전화를 받고 눈썹이 꿈틀거렸다.“무슨 일이야?”“내 절친, 그 길쭉한 다리 자랑하는 애 있잖아. 하경범한테 속아서 호텔로 갔어. 당장 가서 구해줘. 난 지금 명주로 가는 중이라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황예은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서둘러 나왔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도지아가 사고를 친 것이다.“뭐? 어느 호텔인데?”“클라우드 호텔 308호 방이래. 근데 지금도 거기서 식사하는지는 모르겠어.”“알았어.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진서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연아를 바라봤다.“연아야, 난 사람 좀 구하러 가야 해. 이따가 피곤하면 먼저 자.”“알았어, 꼭 조심해.”김연아의 얼굴에 우려가 가득했다.진서준이 차고로 내려가자 막 차를 몰고 돌아온 김혜민과 마주쳤다.“진서준, 어디 가? 우리 언니 안 돌봐?”김혜민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사람 구하러 가.”진서준은 짧게 대꾸하고 곧장 차에 올라탔다.“사람 구하러 가? 나도 갈래.”진서준이 말릴 틈도 없이 김혜민은 재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안전벨트 매. 바로 출발할 거야.”시간이 없었던 진서준은 굳이 김혜민을 말리지 않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그러자 차가 총알처럼 도로를 질주했다.한편, 308호 방.하경범은 느긋하게 와인잔을 흔들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하경범은 여자가 절망에 빠져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바쳐야 하는 이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여자의 존엄과 순결을 짓밟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었다.“도지아, 결정했어? 네 순결을 지킬래? 아니면 네 가족 목숨을 지킬래?”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자 도지아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다른 요구는 안 돼?”“안 돼. 나 같은 놈은 원래 여자를 밝히거든. 네 예쁘고 기다란 그 다리를 예전부터 내가 탐났던 거 알아?”하경범의 미소는 여전히 음흉했다.“물론 강요는 안 해. 네가 거절할 수도 있어. 근데 네가 날 거절하면 네 가족이 어떤 끔찍한 일을
신도시는 이미 새 아파트가 가득 지어진 지역이었다.또한 발전도 활발한 곳이라 갑자기 다시 철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너 혹시 우리 가족을 납치했어?”도지아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철거는 핑계였고 가족을 납치한 게 진짜 목적이었다.하씨 가문은 르벨의 실세인지라 그들이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하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이었다.“아니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어?”하경범은 태연하게 웃으며 천천히 주머니에서 장명쇄 하나를 꺼냈다.그것을 본 순간, 도지아는 온몸이 굳어버렸다.왜냐하면 도지아의 동생이 딱 저런 장명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이 장명쇄는 어디서 난 거야?”도지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아, 내 부하가 며칠 전에 르벨에서 가져왔어. 철거하려는 집에 있던 청년한테서 얻었다고 하더라고.”하경범은 느긋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그거 내가 확인해 봐도 돼?”도지아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당연하지.”하경범은 장명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도지아 앞으로 밀었다.도지아는 서둘러 손을 뻗어 장명쇄를 집어 들었다.그 순간, 눈에 들어온 성씨를 확인하자 도지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건 틀림없이 도지아 동생의 장명쇄였다.이제야 도지아는 순식간에 지금 이 상황을 깨달았다.하경범은 처음부터 사과 따윈 생각도 없었다.하경범은 이미 도지아의 가족을 납치했고 그걸 빌미로 도지아를 협박하려는 것이었다.“하경범. 너 인간이 맞아? 내 가족을 감히 납치해?”도지아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응?”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르쇠를 놓았다.“지아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이건 내 동생의 장명쇄야. 네놈이 내 가족을 납치했잖아?”도지아는 이를 갈며 하경범에게 따졌다.“어라? 벌써 알아차렸어?”하경범은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 냉소를 지었다.“네 가족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안다는 사람이 감히 그런 태도로 말하는 거야?
“도지아, 나 하경범이야.”해 질 무렵, 도지아는 하경범의 전화를 받았다.상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도지아는 바로 전화를 끊으려 했다.“잠깐만, 끊지 마. 오늘 전화한 건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 사과하고 싶어서야.”하경범이 드물게도 저자세로 나왔다.“뭐? 사과라고? 나한테?”도지아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도지아가 아는 하경범은 절대 고개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설령 본인이 잘못했어도 어떻게든 상대를 조종해서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는 인간이 바로 하경범이었다.“그래, 그땐 내가 정신이 나갔던 것 같아. 어떻게 너처럼 훌륭한 모델을 억지로 따먹으려 했는지 모르겠어. 네 다리 다친 것도 내가 시킨 게 맞아. 정말 미안해. 며칠 전 너와 다시 만난 뒤로 계속 반성했어. 내가 너무 지나쳤더라고. 너한테 용서를 구할 기회를 줄 수 있겠어?”하경범의 태도는 의외로 진지했다.도지아는 순간 지금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이 정말 하경범이 맞나 싶었다.“됐어, 앞으로 다신 날 귀찮게 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해.”“당연하지. 앞으로 널 귀찮게 할 일은 없어. 이번에 전화한 건 너와 직접 만나서 사과하고 싶어서야.”하경범이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전화로 사과한 것만으로도 충분해.”도지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도지아도 경계를 완전히 내려놓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지아야, 네가 나랑 안 만나주면 솔직히 나도 불안해. 사실 이번에 내가 이렇게 나오는 건 황예은 때문이야.”하경범은 자세하게 자기주장을 해명했다.“황씨 가문의 세력이 어떤지 네가 더 잘 알 거야.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괜한 적을 만들고 싶진 않거든. 나도 황예은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하경범의 말을 듣자 도지아는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하경범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 전적으로 황예은 때문이었다.황씨 가문은 대한민국에서 최고 재벌이라고 불리는 가문이었다.어떤 명문대가라고 해도 황씨 가문 앞에선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하씨 가문이라고 예외
진서준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김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앞으로 네 말 잘 들을게.”“뭐 먹고 싶어? 내가 해줄게.”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아무거나 좋아. 네가 만든 거면 다 맛있으니까.”김연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걱정해 주는 이 따뜻한 느낌이 김연아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버섯 죽 한 그릇을 가져왔다.“그나저나 차이더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놈들이 가만있을 것 같진 않은데?”김연아가 죽을 먹으며 물었다.“군부에서 알아서 적절하게 처리했어.”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군부가 나섰다고?”김연아는 예상치 못한 소식에 놀랐다.“응. 놈들은 이제 절대 대한민국을 떠날 수 없어.”김연아는 순간 멈칫하다가 다시 진서준에게 확인했다.“설마... 다 죽은 거야?”“그래.”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가주 월런도 죽었어.”“차이더리스 가문이 무조건 가만히 있지 않고 복수하려 할 거야...”김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어쨌든 차이더리스 가문은 초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였다.그런데 그 가문의 가주가 대한민국에서 죽었으니 가문 전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걱정 마. 어제 일을 알고 있는 놈들은 전부 죽었어.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낼 수 없을 거야.”진서준은 태연하게 웃으며 김연아를 위로했다.사실 아버지를 찾는 일이 급하지 않았다면 김연아의 상처가 회복되는 순간, 진서준은 직접 초아국으로 쳐들어가 차이더리스 가문 자체를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넣을 것이다.진서준의 가족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이었다.용의 역린을 건드리면 대가는 파멸뿐이었다.“참, 며칠 후에 르벨에 좀 다녀올 거야.”진서준이 갑자기 다른 화제를 꺼냈다.“르벨에? 왜?”“오영수 대장한테서 내 출생에 관한 정보를 조금 들었어. 더 자세한 걸 알아보면 아버지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그럼 조심해야 해. 르벨은 대다수 대한민국 도시와 틀려. 거기에서 거
이른 아침.반쯤 망가진 몸으로 돌아온 진서준을 본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 난 다시는 널 못 보는 줄 알았어.”눈이 벌겋게 충혈된 서지은이 곧바로 달려와 진서준을 꼭 껴안았다.“난 괜찮아, 지은아. 우선 연아 치료부터 해야 해.”진서준은 서지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뭐라고? 연아가 다쳤다고? 그럼 어서 가.”서지은은 깜짝 놀라며 급히 진서준을 놓아주고 그를 재촉했다.김혜민이 앞장서서 진서준과 함께 김연아가 있는 곳으로 갔다.“하문천 어르신께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셔서 언니 상처는 간단히만 응급처치했어.”김혜민이 이를 악물었다.“그 개자식들이 어떻게 여자한테 이 정도로 잔인하게 굴 수가 있어?”김연아의 상처를 직접 확인한 순간, 김혜민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일단 나가 있어.”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고 이내 조용히 김연아 곁에 다가갔다.혼수상태에 빠진 김연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힘없이 중얼거렸다.“진서준... 어서 도망쳐... 날 신경 쓰지 말고...”그 한마디가 진서준의 심장을 송곳처럼 찔렀다.이 지경까지 고문당했으면서도 김연아는 여전히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난 여기 남을 거야. 나도 도울게.”김혜민은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그럼 일단 따뜻한 물 한 대야랑 흰 수건 몇 장 가져와.”“알았어. 금방 가져올게.”김혜민이 다시 들어왔을 때, 진서준은 이미 김연아의 붕대를 모두 벗긴 상태였다.피는 이미 굳었지만 피멍과 자국으로 가득한 상처는 너무나도 끔찍했다.“이 상처를 치료한 후 언니 몸에 흉터가 남으면 어떡해?”김혜민이 흐느끼며 물었다.“걱정 마. 최고의 약으로 모든 상처를 깨끗이 지워줄 거야.”진서준은 직접 제조한 약 가루를 꺼냈다.본래는 도지아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김연아의 상태가 더 위중했다.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김연아의 상처를 닦아냈다.소독, 약 바르기, 붕대 감기... 진서준은 모든 과정을 신중하게 진행했다.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특
진서준은 무심하게 주머니에서 갈색 알약 하나를 꺼냈다.그 모습을 본 소르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알약은 입에 닿자마자 녹아들었고 엄청난 영기가 범람하는 홍수처럼 진서준의 단전에 쏟아져 들어갔다.“다음번 공격으로 널 지옥에 보내주마.”말을 마치자마자 막대한 영기가 참선검으로 흘러들었고 검신은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소르는 참선검에서 모든 걸 파괴할 듯한 어마어마한 힘이 분출되고 있다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소르의 머릿속에 꽉 찼다.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도망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소르는 재빨리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뛰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백 미터를 달려 나갔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이 발을 내디디는 순간, 이미 소르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이봐, 사람은 한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해. 그래야 나중에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소르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넌 날 다시 볼 기회 따위 없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선검이 소르의 목을 스쳤다.가는 실처럼 섬세한 검광이 스쳐 소르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곧이어 피가 샘물처럼 솟구쳤다.휘둥그레 뜬 소르의 두 눈에는 극도의 원한과 후회만이 가득했다.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천의방 두 고수가 차례로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도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들을 죽인 건 단 한 사람, 바로 진서준이었다.이 사실이 외부에 퍼진다면 아마 전 세계가 경악할 것이다.“쏴! 당장 쏴 죽이란 말이야!”월런이 격노하며 명령을 내렸다.그러자 주변의 총잡이들이 일제히 총구를 들어 진서준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며 진서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오늘 여기 있는 놈들은 모조리 쳐 죽일 거야.”선천의 힘조차 진서준을 상처 입히기 어려운데 하물며 이런 총알 따위가 위협이 될 수 없었다.진서준은 검을 휘두르며 총잡이 속으로 뛰어들었다.진서준이 지나가는 곳마다 아무런 저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