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주석철은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었다.주석철은는 검을 든 채 서 있는 진서준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방금 그 일격은 주석철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쉽게 패할 리는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단 한 번의 정면충돌에 진서준은 주석철의 팔 하나를 부러뜨려버렸다.주석철은 난생처음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아 말 못 할 두려움에 휩싸였다.이 청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거기 누구 없어! 다들 들어와!”장정범이 바로 고래고래 소리치자 곧 외부에서 부하들이 달려 들어왔다.“이 남자 머리통 잘라서 죽여. 여자는 건드리지 마. 누가 이 남자 목을 가져오면 2억을 주겠어!”사람은 돈에 죽고 새는 먹이를 쫓아 죽는다는 진리를 장정범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2억이라는 거액의 보상을 내걸자 바로 이 깡패들의 잔인한 본능이 폭발했다.어마어마한 금액에 깡패들이 눈이 빨갛게 충혈되며 미친개처럼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이 깡패들을 보며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서준 오빠...”유정은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진서준의 이름을 외쳤다.깡패는 실력이 약하긴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무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걱정 마,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널 감히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유정의 등을 톡톡 치며 안심시켰다.진서준의 품에 꼭 안긴 유정은 그 말을 듣자 하늘이 무너져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유정은 부드러운 팔로 진서준의 허리를 더 꽉 감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쥐고 자기에게 달려드는 깡패들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어제 너희들에게 살아갈 기회를 줬지만 너희가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 그러니 오늘은 너희를 지옥으로 보내줄 거야.”말이 떨어지자 진서준은 참선검을 휘둘렀고 무시무시한 검기가 놀라운 속도로 앞으로 돌진했다.검기에 스친 깡패들은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졌고 시체가 널브러지며 바닥은 시뻘건 피가 흥건해졌다.유정은 그 광경을 보고 소름이
“얼른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이 녀석 죽여버려!”하지만 방금 진서준이 휘두른 그 일격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2억은 유혹적인 금액이지만 단 하나뿐인 목숨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무슨 소용인가?이 사람들은 전부 극악무도한 깡패라서 가족에 대한 애정과 미련 따윈 버린 지 오래된 사람들이었다.그런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서 큰돈을 남겨주려고 할 리가 없었다.말을 마친 진서준은 다시 검을 들어 주석철을 향해 내리쳤다.“이 자식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네. 말이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지.”주석철은 이를 악물고 어쩔 수 없이 검기를 정면으로 받아내려고 했다.주먹과 검기가 충돌하자 주석철의 강기가 순식간에 검기의 충격으로 깨졌고 잇따라 참선검이 그의 목을 가로질렀다.피가 검날을 따라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고 주석철은 분노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쏘아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주, 주 어르신이 죽은 거야?”장우림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주석철은 서남 지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대종사인데 이 청년과 몇 번 정식으로 교전하지도 않고 허무하게 죽어버렸다.이 녀석이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우림아, 빨리 도망쳐!”장정범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장우림을 밀쳐 도망가려 했다.“도망치려고? 어림도 없어.”진서준은 몸을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장정범 부자를 쳐다보았다.그 순간, 진서준은 이들 눈에 누구든 찢어버릴 수 있는 거침없는 악마처럼 보였다.공장 밖에서는 8대 특전대 병사들과 국안부 고수들이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버리듯 깡패들을 전면적으로 청소하고 있었다.이 깡패들은 그들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천 명도 안 되는 병력을 상대로 이들 2만 명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연신 후퇴하고 있었다.이건 정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이 분명했다.대다수 깡패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뿔뿔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달아났다.
“요 며칠 사이에 시간 내서 가볼게요. 사령관님과 대원들은 금도에서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절 기다리세요.”진서준의 말에 소정태는 감격에 찬 표정으로 경례했다.“네, 감사합니다, 진 교관님!”“감사합니다, 진 교관님!”“감사합니다, 진 교관님!”8대 특전대 전원이 우렁찬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경례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진 교관님, 그럼 우리는 먼저 금도 군구로 가서 진 교관님을 기다리겠습니다.”소정태는 즉시 8대 특전대 모든 병사를 이끌고 현장을 떠났다.“한 어르신,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진서준은 한창순 등 대종사들을 향해 다시 감사의 뜻을 표했다.“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한창순은 깜짝 놀라며 급히 말했는데 그 모습은 이전 명주에서 보인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진 상경님은 우리 국안부를 위해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진 상경님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주저 없이 달려올 겁니다.”한창순이 진심을 보인 후, 진서준과 몇 마디 얘기를 더 나누고 한창순 일행도 자리를 떠났다.이제 현장에는 소하비의 친위대만 남았다.“소하비 왕자는 어디 있나요?”진서준이 물었다.“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친위대 대장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절 거기로 안내해 주세요.”“유정아, 너 스스로 걸을 수 있겠어?”진서준이 유정을 바라보며 물었다.“네.”진서준 품에 꼭 안겨 있던 유정은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유정은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느낌이 참 좋았다.하지만 유정은 자기와 진서준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은 유정을 단지 가족으로만 여길 뿐이었다.하지만 유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진서준 씨, 난 당신이 여기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소하비는 진서준이 나온 걸 보자 바로 다가갔다.“오빠, 왜 그렇게 저주하는 말을 해?”예린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냥 농담한 거잖아. 봐, 진서준 씨는 확실히 아무렇지도 않잖아.”소하비는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여자는 정말 감정이
허윤진의 부러진 팔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그녀가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상처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맞아요, 윤진 언니, 앉아서 좀 쉬어요.”진서라가 허윤진을 앉히며 말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달려왔다.“진서준 씨와 저희 아가씨가 돌아오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허윤진은 벌떡 일어나며 허사연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달려갔다.“서준아! 유정아! 괜찮아?”“우린 괜찮아, 이분들을 소개해 줄게.”진서준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이 분은 샛터 소하비 왕자님이고 이 분은 샛터 예린 공주님이야.”허윤진은 이 두 사람을 본 적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늘이 초면이었다.샛터 왕실이라는 말에 진서라와 허사연은 깜짝 놀랐다.진서준이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을 이 자리에 초대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 일행은 응접실로 향했다.“진서준 씨, 사업 얘기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소하비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유정아, 국색천향 몇 알 가져와.”진서준의 말에 유정이 바로 사람을 보냈다.잠시 후, 하인들이 국색천향을 들고 다가왔다.그 약을 보자 소하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이건 무슨 약이죠? 어떤 효능이 있죠?”진서준이 느긋하게 설명했다.“국색천향이라고 불리는 이 약은 피부를 보호하고 미용에도 좋으며 수명을 연장하는 효능까지 있습니다.”“뭐라고요? 수명 연장이요? 정말인가요?”소하비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믿기지 않으면 일단 하나 먹어봐요.”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약을 건넸다.“좋아요.”소하비는 약이 독약이 아닐지 걱정할 새도 없이 바로 한 알 삼켰다.약은 소하비 입안에서 바로 사르르 녹았다.소하비가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그 편안한 느낌에 소하비의 표정은 계속 바뀌었다.“이거, 이거 너무 신기하네요.”소하비는 감탄을 연발했다.소하비는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와 지금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국색천향을
송산은 소림의 발원지, 불교 선종의 조종, 천하제일의 명찰이기도 했다.20여 년 전, 대한민국이 대재앙을 겪을 때, 소림의 주지가 열여덟 나한을 이끌고 국경으로 달려가 해외 강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그 전투에서 주지가 입적했고 열여덟 나한 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소림은 그 전투 이후 급속도로 몰락했고 한때의 자자한 명성을 잃어버렸다.옛날의 소림은 다섯 번째 은세 종문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기세를 보였지만 대한민국 대재앙으로 소림은 큰 피해를 보고 말았다.국안부는 그 은혜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최근 서북 전투에서 부주지 지현진도 거기서 사망하자 소림의 상황은 더더욱 급격하게 악화했다.배수정은 서북에서 돌아온 후 주지 지현민에게 정식 제자로 받아들였다.그 후, 배수정은 매일 방 안에서 경을 외우고 도를 닦았다.송산 소림은 이번 4대 종문 대회의 개최 장소로 지정된 후 그 어떤 방심도 할 수 없어 한 달 전부터 이미 대외적으로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그 후로 더 이상 어떤 관광객도 숭산에 오를 수 없게 되었다.절은 한 점 먼지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었다.소림이 모집한 제자들 대부분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고 무도 세계를 잘 아는 제자들만 남아 있었다.며칠 전, 장백에서 사람들이 왔다.곤륜처럼 장백도 장로 한 명이 젊은 제자들을 이끌고 왔었다.하지만 그중 한 명은 장백의 제자가 아니었다.그 사람은 예전에 배수정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썼던 양지천이었다.양지천은 배수정이 송산 불문에 입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 그 진위를 확인하려고 왔다.응접실에 장백 일행이 앉아 있었다.삼장로 백운성이 먼저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지현민 지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풍채가 여전하군요.”백운성과 지현민은 나이가 비슷했는데 두 사람 모두 100세에 가까웠다.젊었을 때는 한 번 승부를 겨뤘던 사이로 두 사람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저는 나이가 들 대로 들었으니 장백의 삼장로인 백 장로님처럼 될 수는 없지요.”
배수정이라는 이름을 들은 양지천은 입술이 살짝 떨렸다.옛날 양지천이 구애하려고 애썼던 여자가 이제는 지선의 자질을 가졌다니,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양지천, 넌 지현민 지주님의 그 제자랑 아는 사이인 거야?”백운성의 질문에 양지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배수정이 불문에 입문하기 전 우리는 친구 사이였습니다.”“지현민 지주님, 그 제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평온은 아직 수련 중입니다.”지현민이 차분하게 대답했다.“그 제자의 지금 실력은 어떤가요?”백운성이 궁금해하며 다시 물었다.“평온의 천부적인 재능은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이 말에 백운성을 비롯한 사람들은 전부 할 말을 잃었다.현재 소림 지주인 지현민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이라니,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불법은 너무나 깊고 어려워 대다수 사람은 불법의 의미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그런데 지현민이 말하는 20대의 여자가 불법에 대한 깨달음이 자기보다 뛰어나다니, 이건 단순하게 자기 제자를 칭찬하려는 의도가 아닐까?“승려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지현민이 한마디 덧붙였다.백운성은 그 말에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말했다.“그렇다면 그 제자가 정말 궁금하군요.”“평안은 불문에 입문했으니 평온에 대한 다른 생각은 접어두세요.”지현민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자기가 살짝 드러낸 작은 욕심을 이내 지현민이 눈치채자 백운성은 살짝 당황했다.각 종문은 천재를 놓치지 않고 앞다투어 모셔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이 젊은 천재들이 바로 종문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이었다.배수정이 불법에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무도도 틀림없이 강할 것이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 갑자기 문밖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스승님, 평온이 스승님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그 말을 들은 모두가 급히 고개를 돌리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여자의 두 눈은 깊은 호수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표정도 차분했다.여자의 시선은 오직 앉아 있는 지현민에게만 향해 있었고
“뭐라고요? 김평안 씨가 오셨다고요?”김평안의 이름을 들은 조슬기는 눈을 반짝이며 바로 일어섰다.조금 전의 우울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은청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서남 지역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은청준은 진서준을 싫어했고 심지어는 거의 손을 대며 싸울 뻔했을 정도였다.그렇게 불편한 진서준이 오자 조슬기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은청준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지현민 지주, 김평안 씨는 우리 조슬기 씨 생명의 은인이십니다.”곤륜 이장로가 일어나서 말했다.“그 김평안 씨를 들여보내.”지현민이 말했다.다른 사람들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김평안의 정체에 대해 수군대고 있었다.대기실 안에는 세 종문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종문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이들은 대부분 4대 종문 천재들 간의 싸움을 관전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4대 종문에 입문할 수 있는 청년들은 전부 절세 천재였는데 이들의 전투를 볼 수 있는 건 정말 운이 좋은 일이다.하지만 숭산 소림에 들어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들어온 사람은 반드시 명성이 자자하거나 지의방에 이름을 올린 유명 인사여야 했다.이외에도 4대 종문이나 숭산과 일정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저 사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듣기로는 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해. 검도만 따지고 보면 동북 검성 조기강과 견줄 만하다고.”“그 사람의 실력도 상당하다고 하더라고. 이번에 온 이유는 관전하러 온 건지, 아니면 직접 참가하러 온 건지 모르겠네.”“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4대 종문 천재들 앞에서는 찍소리도 내지 못할 거야.”사람들이 수다를 떨며 김평안을 토론하는 걸 보니 대다수가 김평안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던 배수정은 그 이름을 듣자 동공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배수정은 김평안이 바로 진서준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이 왜 여기 온 건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소림에서
“이장로님, 그만하세요. 굳이 그분과 입만 아프게 해명할 필요는 없잖아요.”조슬기가 나서서 이장로를 설득했다.조슬기는 예전에 아버지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주자청과 문추원 사이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이렇게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한 여자로 인해 시작되었다.아버지의 말로는 두 사람이 젊었을 때 공교롭게도 한 여자를 좋아했는데 그 여자 때문에 둘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웠었다.직접적인 충돌은 열 번이 넘었고 승패는 반반이었다.하지만 나중에 그 여자는 두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두 사람은 서로가 없었으면 그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며 그 원한을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었다.둘이 실랑이를 벌리는 사이, 김평안이 스님 한 명을 따라 들어왔고 모두의 시선이 즉시 그쪽으로 끌렸다.“이 사람이 바로 김평안인가?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 동북 검선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겠어?”“저 곤륜 중주 따님이 이 중년 아저씨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조슬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김평안에게 다가갔다.“김평안 씨, 드디어 오셨네요.”조슬기는 이미 숭산에서 10일 정도 있었고 지루한 나날을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그러니 오매불망 그리던 김평안을 보니 신날 수밖에 없었다.“조슬기 씨, 안녕하세요.”진서준은 매우 공손하게 조슬기에게 인사했다.진서준이 갑자기 이렇게 격식을 차리자 조슬기는 순간 당황했고 이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조슬기는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물었다.“김평안 씨,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서남 지역에서 볼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늦었죠.”진서준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요 며칠 사이 진서준은 한가할 시간이 없었다.허사연의 다리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성약당에 부탁해 여러 가지 약재를 보냈고 매일 마사지와 침술을 해주었다.그
도지아는 그 표정이 왠지 묘하게 신경 쓰였다.부모님이 나가자 집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우리 집에 손님이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부모님이 좀 들뜨셨나 봐.”도지아가 무심하게 해명했다.“괜찮아, 이해해. 우리 집도 손님 올 때마다 우리 엄마 엄청 챙기시거든.”진서준이 웃으며 대응했다.“맞다, 아까 우리 동생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도지아가 본론을 꺼냈다.“이상한 점? 글쎄, 딱히 못 느꼈는데?”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네 동생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아까 네가 유흥업소에 갇혔을 때, 걔가 엄승현 찾아가서 인맥을 동원해 널 구해달라고 부탁했어.”도지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우리 동생이 진짜 요즘 이상해. 말로는 독설을 퍼붓는데 속은 여전히 착해.”“혹시 일부러 너희를 멀리하는 거거나 너희를 보호하려는 거 아닐까?”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뭔가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설마 민수가 잡혀갔을 때 하경범 부하들이 협박이라도 한 걸까?”도지아도 진서준의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날, 도지아의 부모와 도민수는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민수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해야겠어.”도지아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도민수가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꺼버렸다.“이 자식이 정말...”도지아가 인상을 찌푸렸다.“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일단 그냥 내버려둬. 말하고 싶으면 알아서 말하겠지.”진서준이 위로하듯 말했다.한편, 노래방의 한 방에서 도민수는 테이블에 엎드려 하얀 가루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고 있었다.그러고는 완전히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때? 기분 좋아?”노란 머리 청년이 민수의 머리채를 잡고 비열하게 웃었다.
다들 그 말을 듣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진서준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깔끔한 상태로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엄승현은 눈을 굴리더니 이내 눈치 빠르게 잽싸게 뛰어가 아부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호랑이님, 아까 소란을 일으킨 그놈 찾으시는 거죠? 제가 어디 갔는지 압니다. 당장 안내해 드릴게요.”“뭐라고?”조호의 얼굴이 싹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사람을 찢어버릴 눈빛이 번뜩였다.엄승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호랑이 씨, 그놈 진짜 제대로 혼내줘야 합니다. 원하시면 제가 지금 바로 길을 안내할게요.”“닥쳐, 이놈아.”철썩!조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엄승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혼자 뒤져. 왜 애꿎은 사람까지 끌어들여? 꺼져!”힘들게 저 귀신 같은 무시무시한 녀석을 보내버렸는데 어디서 굴러온 개념 없는 놈이 다시 자기를 이끌고 저 녀석에게로 데려가겠다는 거지?조씨 가문 거물도 없는데 조호 본인이 감히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조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엄승현은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뭐, 뭐야? 호랑이가 지금 겁먹은 거야?”“이상하네, 저놈이 대단한 배경이라도 있나?”“말도 안 돼. 저놈 그냥 외지인이잖아. 배경은 개뿔.”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엄승현은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틀림없이 호랑이가 직접 손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동부 구역은 호랑이 구역이잖아. 근데 내가 길을 안내하면 체면이 안 서잖아. 소문이 퍼지면 체면도 구겨질 거고.”“승현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요.”다들 엄승현의 말에 공감하자 엄승현은 자신감을 되찾고 비웃었다.“두고 봐. 오늘 밤 도민수 그 녀석 가족이 다 뒤질 거야.”20분 후.진서준과 도지아는 차를 타고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건물에 들어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지아 집 문 앞에 섰다.“엄마
갑자기 누군가 봉쇄된 유흥업소에서 걸어 나오니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어라? 진짜 저 녀석이네? 근데 왜 멀쩡하지?”엄승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조호가 직접 나서서 판을 깔았다면 피를 안 보고 끝날 리가 없었다.진서준이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만신창이가 됐어야 정상인데 지금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했다.“어서 나랑 가서 진서준한테 감사하다고 하자.”도지아가 도민수를 잡아끌었다.“가고 싶으면 혼자 가. 난 안 가.”도민수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뭐야, 너 왜 그래? 아까는 진서준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잖아?”동생의 앞뒤 다른 태도에 도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닥치고 신경 꺼.”도민수는 누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동생의 거친 행동에 도지아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진서준을 찾아갔다.“이상하네, 저 녀석 진짜로 멀쩡하잖아?”엄승현 일행은 의아해하며 웅성거렸다.“승현 오빠,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아세요?”“나도 몰라.”엄승현은 고개를 저었다.“혹시 저 녀석이 호랑이한테 뭔가 큰 보상을 약속한 거 아닐까요? 호랑이가 저 녀석을 저렇게 고분고분 풀어 줄 이유가 없잖아요?”단발머리 여자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가능성 있어. 아니면 어떻게 호랑이의 구역에서 저렇게 멀쩡하게 나왔겠어?”“그래, 직접 물어보자.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떠나 진서준 쪽으로 걸어갔다.“진서준, 괜찮아?”도지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다친 것처럼 보여?”진서준이 홀가분한 말투로 되물었다.“이깟 조무래기 건달도 못 이길 거면 내가 감히 하경범을 건드릴 수 있었겠어?”“그렇긴 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는 도지아도 잘 몰랐다.황예은에게 슬쩍 떠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 황당했다.황예은의 입에서 나온 진서준은 거의 만능 인간이었다.세상에 정말 그런 남자가 존재할까?“야, 너 대체 어떻게 호랑
“뭐? 네 개가 되라고?”정장 남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폭발했다.“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개 취급해? 거울이나 보고 네 꼴부터 확인해.”조호도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네가 종사인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귀도파에도 종사가 없는 게 아니야. 종사라는 이유로 날 얕볼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우리 귀도파도 그냥 조직이 아니야. 뒤에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진서준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그래? 그럼 너희 귀도파 주인은 누구야?”조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이 청년이 하는 말이 참 기분이 나빴다.진짜 주인이라니, 자기를 개 취급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기분 나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조호가 이렇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건 귀도파 뒤에 거물이 있기 때문이었다.“르벨 하씨 가문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조호가 음침한 얼굴로 물었다.익숙한 가문의 이름에 진서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결국 하씨 가문에 빌붙은 거였군.”“빌붙다니? 우리 조씨 가문은 단순히 의지하는 게 아니야. 하씨 가문에서 우리 조씨 가문의 대단한 인물을 공양하고 있거든. 그분은 대종사야.”조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래? 대종사였어? 하씨 가문에서 그 대종사를 공양하고 있어?”진서준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짙은 흥미를 보였다.“그럼 나도 한 번 보고 싶네. 네가 말하는 그 대단한 인물 말이야.”“좋게 말하는데 너 선 넘지 마. 얼른 여기서 나가. 네가 종사라 오늘은 특별히 봐주겠어.”조호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근데 계속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가문 거물을 보겠다고 떠들면 내가 장담하건대 넌 무조건 죽을 거야.”종사와 대종사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격차가 컸다.이 애송이가 조씨 가문의 거물을 이길 수 있다는 건 조호가 보기엔 한낱 망상일 뿐이었다.“상관없어. 마침 요즘 할 일도 없는데 잘 됐어.”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언제든 너희 집안 그 거물 불러내. 하씨 가문이 공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 좀 해보자고.”“죽고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