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유씨 가문과 장씨 가문은 유난히 조용했다.진서준은 묘강의 독충 의술에 관한 기록을 마친 후, 유정과 함께 출퇴근하며 유정의 신변을 보호했다.한편, 조슬기 일행은 이 기회를 틈타 금도 곳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사흘째 아침, 천궁 호텔.장씨 가문의 신제품인 회연단 발표회가 정식으로 개최됐다.지난번 연회장에서의 홍보 효과와 며칠간의 입소문이 더해져 회연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누구나 젊고 아름답고 멋있어지고 싶어 하는 법이다.게다가 이 회연단은 수명 연장의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금도의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덕분에 오늘 발표회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귀빈들로 가득 찼다.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다.심지어 평소 장씨 가문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가문들까지도 발표회에 참석할 정도였다.정오 무렵.고급 차량 몇 대가 호텔 정문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자 진서준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진서준은 주변을 빠르게 살펴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유정이 차에서 내리도록 했다.그 뒤를 이어 조슬기와 신수란도 차에서 내렸다.세 여자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됐다.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며 등장한 세 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안 끌려야 안 끌 수가 없었다.진서준은 여전히 예전처럼 인피면구를 쓴 채였다.조슬기 일행이 떠나기 전까지는 이 가면을 벗을 일이 없었다.“이거 유정 씨 아니에요? 장씨 가문 발표회에 참석하러 온 겁니까?”박진용이 반갑게 다가왔다.“아니요.”유정이 무심하게 답했다.“네? 그럼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박진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선은 조슬기와 신수란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이 두 여자는 분명 금도에서 본 적이 없는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발표회에 참석하러 왔죠.”유정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박진용이 순간 당황했다.“방금 전엔 아니...”박진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정이 말을 끊었
“혹시 박 도련님이 장씨 가문에서 회연단을 사셨나요?”“그건...”박진용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애초에 이 회연단이라는 약은 본래 유씨 가문에서 개발한 거였는데 장씨 가문이 빼돌린 셈이었다.그러니 이걸 사들였다고 말하는 게 좀 껄끄러웠다.“맞아요, 꽤 많은 양을 샀죠.”박진용은 어차피 숨길 필요가 없었다.박진용이 직접 확인한 결과, 회연단의 효과는 확실했다.그래서 이 회연단으로 시세를 조정해서 큰돈을 벌 생각이었다.박서명이 이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칭찬해 줄 것이다.“박 도련님, 선의로 한마디 하자면 지금이라도 회연단을 전부 처분하세요. 안 그러면 손해가 어마어마할 겁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네요.”박진용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유정 씨, 제가 아까 도와드리려고 했던 거 아시죠?”“알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충고하는 거예요.”유정의 말에 박진용은 코웃음을 쳤다.“유정 씨, 혹시 질투하는 겁니까?”“질투요?”유정이 피식 웃으며 박진용을 쳐다봤다.“박 도련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요.”어차피 할 말은 다 했으니 믿든 말든 그건 상대방의 몫이었다.박진용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박진용이 사라지자 여전히 텅 비어 있는 발표회장을 보며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서두를 필요 없어요. 진짜 재미있는 건 이제부터니까요.”유정의 눈빛이 반짝였다.“유정 씨, 제가 뭐 도와드릴 일 있을까요?”조슬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조슬기 씨는 저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유정이 무대 위 한가운데에 놓인 눈에 띄는 좌석을 가리켰다.“네? 그게 다예요?”조슬기가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이제 막 뭔가 중요한 걸 시키는 게 아닐지 긴장하고 있었는데 앉아만 있으라니, 조슬기는 이해할 수 없었다.“네, 그리고 혹시 누군가 조슬기 씨와 신수란 씨를 알아보면 국색천향을 홍보해 주시면 됩니다.”“네, 그 정도야 문제없죠.”조슬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시각, 장씨 가문의 발표회 현장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몰려와 북적거리고 발 디딜 틈도 없었다.금도의 모든 부자가 한자리에 모인 듯했다.지금 이 상황은 장정범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머지않아 장씨 가문의 건실 그룹은 서남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게 될 것이고 유씨 가문은 서서히 몰락해 그들의 발밑으로 떨어질 터였다.장정범의 야망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장정범은 단순히 제약 산업에만 머물 생각이 아니라 서남 전역을 노리고 있었고 서남 지역의 절대적 패권을 원하고 있었다.“장정범 씨, 신제품 출시 축하합니다.”박진용이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박 도련님, 오셨어요? 어서 앉으세요.”장정범은 극진한 태도로 맞이했다.박씨 가문은 서남 지역 출신이 아니지만 현재 그들은 협력 관계였기에 장정범도 박진용에게 충분한 존중을 보였다.“장정범 씨 덕분에 이번에 제대로 한몫 벌게 생겼습니다.”왔다 갔다 하는 손님들을 보며 박진용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고작 발표회 하나 열었을 뿐인데 이 정도라면 약이 정식 출시되는 날에는 서남 전역을 들썩이게 할 것이다.위층에 있는 유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아까 유정이 박진용에게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다고 하던 헛소리를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었다.“앞으로 우리 장씨 가문 사업에도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박 도련님.”장정범이 씩 웃었다.박씨 가문은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재력을 자랑하는 가문이었다.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협력한다면 장정범의 건실 그룹에는 엄청난 이득이 될 터였다.사업은 단순히 부동산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든 분야를 섭렵해야 했다.그 분야에서 정상에 서려면 간단하게 돈을 때려 박으면 된다.이번에 장정범은 제약업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건실 그룹 자금을 전부 회연단에 투자했다.투자한 만큼 수익도 따라오기 때문이었다.“장정범 씨, 오늘 유씨 가문도 발표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알고 계셨습니까?”박진용이 뜬금없이
“그래, 바로 우리 위층에서 연다고 해.”“아까 박 도련님이 가봤다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네가 가서 유정 씨한테 간단히 위로라도 해주고 와.”장정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자 장우림은 즉시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죠.”장우림은 호탕하게 웃으며 부하 몇 명을 이끌고 위층으로 향했다.같은 시각, 유씨 가문의 발표회장은 여전히 한산했고 손님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유정이 의외로 침착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자 진서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그때였다.“유정! 너희 유씨 가문도 오늘 발표회를 열 줄은 몰랐네.”장우림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웃으며 들어왔다.장우림을 본 유정의 표정이 불쾌해졌다.“아래층에 있으면 될 텐데 여기엔 왜 왔어?”“당연히 너희 인원수라도 좀 채워주려고 온 거지. 여기 현장이 이렇게 한산한데 내가 손님 몇 명 데려와서 분위기라도 살려줄까?”장우림이 비아냥댔다.“필요 없어.”유정이 냉랭하게 대답했다.“유정,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 유씨 가문은 회연단도 없이 도대체 뭘 발표하겠다는 거지?”장우림이 미간을 찌푸리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장씨 가문이 이미 중요한 자료를 전부 빼돌렸는데 무슨 발표회를 연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게 망신당하고 싶은 건가?“네가 알 필요 없어.”유정이 담담하게 말자 장우림은 콧방귀를 꼈다.“그래, 나야 알 필요 없겠지. 대신 오늘이 지나면 유씨 가문은 금도의 웃음거리가 되겠군.”“누가 웃음거리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유정이 물러서지 않고 야무지게 맞받아쳤다.“그럼 두고 보자고.”말을 마친 장우림은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장우림이 떠나자 유정은 서두르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몇 곳에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세련된 차림의 여성들이 몇 명 들어왔다.“혹시 성 신의님이 여기 계시는가요?”“성 신의님께서 피부 미용에 좋은 약을 개발하셨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한 여성이 물었다.“그럼요, 당연히
“너희들 들었어? 유씨 가문도 발표회를 열었대. 바로 위층에서 말이야. 듣자 하니 성 신의님 도움을 받아서 국색천향이라는 보약을 출시했대. 효과가 장씨 가문 회연단보다 더 무시무시하대.”“진짜야? 회연단도 이미 대박인데 그보다 더 강력한 보약이 있다고?”“당연히 진짜지. 내 친구가 바로 위층에 있어. 나도 곧 올라갈 생각이야.”“좋아, 나도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진짜인지 아닌지.”소식은 빠르게 퍼졌다.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몇몇 사람들은 아예 인사도 없이 바로 떠나버렸다.지금은 좋은 시간대도 아니었기에 회연단의 발표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이 상태로 가다가는 발표회가 시작될 때쯤엔 아예 현장이 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도대체 무슨 일인지 빨리 알아봐! 왜 사람들이 다 떠나는 거야?”장정범은 즉시 집사를 호출해 상황을 파악하게 했다.그때 박진용이 다가왔다.“장정범 씨, 이게 무슨 일이죠? 왜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드는 거죠?” 박진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모르겠어요, 아마 다들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나 마시려고 그러나 봐요. 내가 이미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고 있어요.”장정범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곧 집사가 허겁지겁 달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가주님, 큰일 났습니다! 나간 사람들 전부 위층으로 갔습니다!”“뭐? 위층으로 갔다고?”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장정범과 박진용은 모두 깜짝 놀랐다.유씨 가문의 발표회는 바로 위층에서 열리고 있었다.박진용과 장우림이 아까 올라갔을 때 위층은 텅 비어 있었다.그런데 왜 지금 모든 사람이 위로 올라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또 다른 손님들이 위층으로 향했다.“올라갑시다. 우리가 가서 직접 상황을 확인해 봐야죠.”장정범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혹시 위층에 있는 보물이 장씨 가문이 발표하려는 회연단보다 더 대단한 보물인 걸까?그럴 리가 없었다.하지만 장정범 일행이 위층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조금
“설마 우리 발표회 때문에 너희 귀빈들이 전부 이쪽으로 온 건 아니겠지?”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장정범의 가슴을 찔렀다.‘이년, 말하는 거 진짜 독하네.’“유정, 너희 가문은 성 신의를 앞세워 가짜 약을 내놓고 있는데, 성 신의가 이 사실을 알면 너희 가문과 관계를 끊겠다고 하지 않겠어?”장정범의 얼굴이 새파래졌다.성동석이라는 이름은 장정범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그야말로 신출귀몰하는 명성이 자자한 명의였는데 서남 최고의 유씨 가문이라 해도 그런 인물을 함부로 불러들일 수 없을 것이다.“무슨 말이야? 저기 앉아 계신 분이 바로 성 신의님이야.”유정은 자신만만하게 무대 위의 성동석을 가리켰다.성동석의 얼굴을 확인한 장정범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못 믿겠으면 가서 직접 인사라도 해봐.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유정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제아무리 성 신의라 해도 고작 사흘 만에 회연단보다 더 나은 보약을 만들 수 있을 리 없어.”장정범이 이를 악물었다.“그걸 판단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자리의 손님들이 아니겠어?”유정이 여유롭게 웃었다.바로 이때, 유명 인사 한 명이 다가왔다.“유정 씨, 유씨 가문의 국색천향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몇 년 동안 없애지 못한 다크서클이 한 알 먹고 싹 사라졌어요. 피부 미용뿐만 아니라 신장 강화에도 효과가 있대요. 저는 지금 무릎도 안 아프고 허리도 안 뻐근해 계단 열 층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래층의 회연단이랑 비교하면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죠. 어라? 장정범 씨, 여기 계셨네요?”이 사람은 장정범을 보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장정범의 면전에서 이 정도로 회연단을 까는 건 솔직히 좀 심했다.무엇보다 장정범은 본래 지하 세계 출신이었다.괜히 장정범을 기분 나쁘게 했다가는 이후의 삶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장정범, 사람들의 반응을 똑똑히 들었어?”유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아니면 직접 한 알 먹어볼래?”“필요 없어.”장
주최자로서 유정은 국색천향을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다가갔다.“당신 말대로라면 당신 아버지가 우리 약을 먹고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요?” 유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당연하지!”청년은 유정을 노려보며 큰 소리로 외쳤는데 딱 봐도 감정이 격앙된 모습이었다.“너희 가문에서 불량 약품을 팔아서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잖아!”“일단 진정하세요.”유정이 달래듯 말했다.“우리 약은 각 부서의 검사를 거쳤기 때문에 절대 문제가 있을 리 없습니다.”이 말은 현장에 모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만약 사람들이 청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다면 이번 발표회는 완전한 실패로 끝날 게 뻔했고 그렇게 되면 제일 기뻐할 사람은 장씨 가문일 것이다.“헛소리 마! 어쩌면 너희도 그 부패 관리들과 한패일지도 모르지.”청년은 전혀 믿지 않는 태도로 소리쳤다.“정말 약에 문제가 없다면 우리 아버지가 왜 죽었겠어?”“정말 숨이 끊어진 게 맞는지는 좀 더 확인해 봐야겠네요.”유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다.아무리 독약이라고 해도 독이 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고작 몇 분 만에 노인이 숨을 거둘 수 있을까?“우리 아버지는 이미 숨도 쉬지 않아. 이래도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혹시라도 불에 태워서 뼛가루로 만들어야 죽었다고 인정할 거야?”청년이 분노에 차서 고래고래 소리쳤다.“여러분! 절대 이 집 약을 사지 마세요. 정말 사람 죽이는 약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매일 8층까지 가쁜 숨도 안 쉬고 오르내리셨는데, 그런 건강한 몸도 이 약에 중독돼 돌아가셨어요. 난 지금 딱 하나만 묻고 싶어. 도대체 너희들이 파는 게 보약이야? 아니면 독약이야?”손님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졌다.“이거 가짜처럼 보이지 않는데? 설마 진짜 약에 문제가 있는 거야?”“내가 듣기로는 장씨 가문에서 발표한 회연단이 본래 유씨 가문 거였대. 그런데 장씨 가문이 훔쳐 가서 유씨 가문이 급하게 새로운 약을 만들어서 내놓은 거래.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보면 되잖아.”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못 살려내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지. 그리고 직접 외쳐줄게. 이 약은 독약이라고 말이야.”이 소동은 결국 성동석까지 불러들이게 했다.성동석이 급히 달려와 진서준에게 물었다.“김평안 씨, 무슨 일이죠?”“별일 아니에요. 이 사람 아버지가 국색천향을 먹고 중독돼 죽었다고 주장하더라고요.”진서준이 간단하게 설명했다.“말도 안 돼!”성동석은 단번에 부정했다.“국색천향은 나도 직접 먹어봤고 연구도 했어. 이 약의 성분은 대부분 온화한 약재라서 절대 독성이 있을 리가 없어.”“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너희 약을 먹고 죽었어. 팩트 앞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아!”청년은 국색천향 때문이라는 주장에 집착했다.청년의 흥분한 모습을 본 성동석은 아무 말 없이 앉아 노인의 맥을 짚었다.약 30초 후, 성동석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맥상으로 보면... 확실히 살 가망이 없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맙소사! 성 신의님도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 노인은 정말 국색천향을 먹고 죽은 게 틀림없어.”“망했다... 나도 방금 한 알 먹었는데 이제 나도 죽는 거 아냐?”“유씨 가문이 돈에 눈이 멀어서 반쯤 완성된 약을 내놓은 거야.”분노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퍼져갔다.현장에 있던 박진용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내 회연단... 이거 팔아야 해 말아야 해?’한편,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청년은 노인을 업고 떠나려 했다.그때였다.“거기 서, 아직 네 아버지를 살려내지 못했어.”진서준이 길을 막아섰다.“꺼져! 우리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어. 네가 뭐로 살린다는 거야?”청년은 다시 버럭 화를 냈다.‘이놈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냐? 사람이 이미 죽었다는데 아직도 신선인 척하면서 헛소리하네?’“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 곧 알게 될 거야.”진서준은 대꾸도 없이 청년의 어깨에서 노인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쾅!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가 바닥에
이 모든 상황이 삼형제에게는 너무나도 우스워 보였다.“덤벼! 이 애송이들에게 제대로 된 고통을 맛보게 해.”장강수가 사악하게 웃으며 선두로 나서서 신수란을 향해 돌진했다.신수란의 날카로운 검세를 앞에 두고도 장강수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오히려 주먹을 불끈 쥐고 정면으로 맞섰다.주먹과 유연검이 부딪치는 순간, 금속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연검이 대여섯 토막으로 부서졌다.곧이어 장강수의 주먹이 신수란의 어깨를 강타했다.쾅!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신수란은 그대로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장강수는 단 한 방에 신수란을 완전히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이 끔찍한 광경을 본 조슬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수란 언니! 수란 언니!”조슬기는 급히 신수란에게 달려갔다.신수란은 입안 가득 피를 토하며 눈을 붉혔다.단 한 방의 충격으로 외상뿐만 아니라 내장까지 심각하게 다친 신수란은 체내 경맥이 이미 절반이나 끊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계속 무리하게 싸우면 주해준처럼 완전히 폐인이 될 게 뻔했다.이때,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전투에 뛰어들었다.하지만 장강수 일행 세 명은 열 명이 넘는 제자들과 싸우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한 번씩 공격할 때마다 반드시 한 명씩 날려버렸다.곤륜의 제자들이 실력이 턱없이 부족한 게 아니라 다만 제자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반면, 장강수 일행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오래된 악당이었다.그러니 그들의 공격은 한 방 한 방이 전부 치명적인 기술이었다.곤륜의 제자들은 평소에 목숨을 건 결투를 해본 적이 없었다.살의를 품지도 않고 치명적인 기술도 쓰지 않으니 자연스레 이런 악랄한 악당들을 이길 수 없었다.결국,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곤륜의 제자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졌고 피를 토하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쳇, 쓰레기 같은 것들. 이런 주제에 감히 우리에게 덤비겠다고?”장강수가 대놓고 비웃었다.“우리 청준 선배가 없어서 네가 날뛰는 거야. 청준 선배만 계셨다면 너희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너 지금 뭐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진서준이 입을 떼자마자 곤륜 제자들이 일제히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이제야 확실해졌네. 넌 겁쟁이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흔히 보는 악플러잖아?”“자기가 잘난 것도 없으면서 남이나 비웃고. 이따가 해준 선배가 이기면 넌 제대로 혼날 줄 알아.”“지난번 유씨 가문에서 네놈 안 팬 건 유씨 가문 가주 체면을 고려해서 그런 거였어. 네놈을 때리지 않으니까 아주 신났구나?”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진서준을 비난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허공으로 날아갔다.모두가 시선을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고 날아간 사람이 누군지 확인한 순간,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뭐야, 이 자식 입 터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네?”“해준 선배가 날아갔다고? 저 대머리가 그렇게 강해?”조금 전까지 위풍당당하던 주해준이 지금은 죽은 개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해준 선배.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제자들이 황급히 다가가 주해준을 부축하려 했다.그런데 손을 대려는 순간, 주해준이 울부짖듯 소리쳤다.“건들지 마! 허리가 부러졌어! 팔도 부러졌어! 다리도 부러졌어!”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면 당장 죽기라도 하는 게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제자들이 주해준의 몸을 살펴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주해준의 뼈가... 온몸의 뼈가 전부 부러져 있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주해준의 단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무인에게 단전이 부서진다는 건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비록 목숨은 건졌다고 해도 더 이상 무인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결국 곤륜에서 쫓겨날 게 뻔했다.“감히 우리 해준 선배의 단전을 파괴해? 네놈들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한 제자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철썩!그 순간, 대머리가 거침없이 그 제자의 뺨을 후려쳤다.“왜? 내가 파괴하면 안 돼?”“너... 네놈, 우리가 누구인지나 알아?”따귀를 맞은 청년이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그럼 네놈은 내
주해준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는데 그 표정은 당장이라도 혼자서 백 명도 상대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외칠 기세였다.“해준 선배, 고마워요.”조슬기가 감사를 표했다.“슬기 후배, 우리 사이에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있나?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난 어떤 겁쟁이처럼 이런 상황에서 구석에 처박혀 숨어 있지는 않아. 평소에는 잘난 척하는 끝판왕인데 막상 일이 터지니까 입도 뻥끗 안 하네? 같은 남자로서 진짜 창피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야.”주해준은 엄청나게 비꼬면서 일부러 진서준을 바라봤다.도대체 누구를 비꼬는 말인지는 누구나 다 뻔히 알 수 있었다.“이봐 김씨, 아까는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왜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어?”“그러게 말이야. 아까 해준 선배가 싸울 때는 거북이처럼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었잖아. 이런 겁쟁이는 또 처음 봐.”“슬기 후배, 저런 남자랑은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사람들은 순간 수군거리며 진서준에게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한쪽은 위풍당당하게 나서서 싸웠고 다른 한쪽은 구석에서 몸을 사렸으니 두 사람을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컸다.“김평안 씨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조슬기가 나서서 또 진서준을 옹호했다.“그리고요,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른 거잖아요? 김평안 씨는 의사예요. 당신들처럼 무인이 아니라고요.”배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조슬기의 말을 들었다.“그딴 쓰레기들이랑은 상대할 가치도 없어.”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쓰레기는 개뿔, 실력은 형편없으면서 입은 왜 이렇게 살아있지?”“그러게. 해준 선배를 기습할 정도면 절대 쓰레기가 아닐 텐데?”“얼씨구, 딱 봐도 허세만 가득한 놈이네. 말발 하나는 끝내주겠어.”가만히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진서준이 한마디 하자마자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주해준도 이때다 싶어서 콧방귀를 끼며 진서준을 내려다보았다.“네가 무인이든 아니든 악당이 나타났을 때는 남자가 먼저 나서야 하는 거야. 네가 무도를 모
“오늘 내가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겠어.”주해준은 오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지금 당장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 이번 한 번만 봐줄 거야.”그러자 검은 옷의 우두머리가 싸늘하게 말했다.“너 따위가 감히 우리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전부 덤벼! 저 녀석 난도질해 버려!”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킬러가 주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러나 주해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싸늘하게 웃으며 번개처럼 이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내 강룡십팔권을 맛보게 해주마.”주해준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검은 옷의 킬러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졌고 반면, 누구도 주해준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이었고 간지가 철철 넘치는 장면이었다.“역시 해준 선배입니다. 저런 잡것들이 해준 선배 상대가 될 리가 있겠어요?”“해준 선배, 너무 멋집니다. 저 쓰레기들 깡그리 박살 내버려요.”“우리 슬기 후배를 납치하겠다고? 도대체 우리를 뭐로 보고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곤륜 제자들은 환호하며 주해준을 응원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킬러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기 시작했다.주해준은 거만하게 턱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이 쓰레기들이 그냥 무릎 꿇고 살길 찾지 그랬어? 맞고 나니 후회돼?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나 본데, 우린 곤륜 종문의 무도 고수야!”“해준 선배, 카리스마 넘치네요!”모두가 주해준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이곳에 은청준이 없으면 주해준이 곧 모두의 큰형이었다.하지만... 주해준의 간지는 오래가지 못했다.갑자기 누군가의 주먹이 주해준의 얼굴을 강타하자 주해준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고 코와 입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제기랄, 누가 기습질이야? 개싸가지 없네.”사람들이 황급히 주해준을 부축했다.주해준은 살기를 내뿜으며 검은 옷의 우두머리를 노려봤다.기습에 성공했다는 건 그만큼 실력도 상당하다는 뜻이었다.“이건 교훈이야. 싸울 땐 집중해야지 어디서 허풍이나 치고 있어?”검은
신수란도 주해준이 가리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김평안 외에는 은청준이 싫어할 만한 사람이 여기에 없었다.조슬기와 배수정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김평안은 그냥 방치되었다.“김평안, 경고하는데 넌 4대 종문 대회에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주해준이 김평안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4대 종문 대회에 외부인이 참가할 수 있는 건 맞지만 우승을 따내려면 각 종문에서 5번의 승리를 거둬야 해. 네가 혼자서 다섯 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냥 망상일 뿐이야.”진서준은 승리 조건에 대해서 이미 장로 세 명의 대황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5번의 승리를 거두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왜냐하면 이번에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전부 다 고수였기 때문이다.하지만 김평안은 반드시 천년병제련을 손에 넣어야 했다.진서라의 체내 독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초는 이제 이 천년병제련 하나만 남았다.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약초를 손에 넣어야 했다.진서라의 병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유지수도 전에 자기가 이번 4대 종문 대회에 등장할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진서준은 천년병제련을 손에 넣을 뿐만 아니라 허사연의 복수도 해야 했다.진서준은 유지수에게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지옥에 떨어뜨리겠다고 결심했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주해준의 경멸이 가득한 말투에 김평안은 차분하게 되물었다.“내가 너라면 염치없이 여기 눌러앉아 있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나갈 거야. 네가 슬기 후배를 구했다고 해서 우리 곤륜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은 집어치워.”주해준이 차갑게 말했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진서준은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주제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야. 다음에 곤륜에서 제자를 모집할 때 너도 한번 지원해 봐. 아마 네가 슬기 후배를 구해 준 덕에 우리 곤륜에서 널 조금 봐줄 수도 있을 거야.”주해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그래서 뭐 어쩌라고?”진서준은
“이 제안 좋네요. 사실은 곤륜에 오기 전 난 경성에서 마이크를 한번 잡으면 놓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어요.”은청준이 겸손함 없이 당당하게 말하자 조슬기는 입을 삐죽이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평온 씨 앞에서도 감히 노래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나요?”“내 목소리는 평온 씨와 비교할 순 없지만 평온 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고 장담해.”은청준은 여전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럼 다들 동의했으니까 노래하러 가죠.”조슬기가 김평안을 바라보며 물었다.“김평안 씨, 이 제안 괜찮은가요?”“저는 괜찮습니다.”김평안이 고개를 끄덕였다.“40대 중반 아저씨가 우리 같은 젊은 청년과 어울려 놀 수 있어?”은청준이 슬슬 비꼬자 조슬기가 은청준을 쏘아보며 받아쳤다.“누굴 아저씨라고 하는 건가요?”“됐어, 나도 그만할게. 얼른 가자.”은청준은 조슬기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은청준은 도대체 왜 조슬기가 이 중년 아저씨를 이토록 챙겨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설마 새파란 20대인 자기가 이 40대 아저씨보다도 매력이 더 없단 말인가?조슬기 일행은 택시 몇 대를 잡아타고 얼른 시내로 향했다.송산 소림이라는 관광지 덕분에 시내 경제는 급성장해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현대적인 도시 느낌이 물씬 났다.배수정은 산에서 내려온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고 매번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여성용품을 사곤 했다.조슬기 일행은 인테리어가 화려해 보이는 유흥업소로 들어가 가장 큰 방을 예약하고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그 뒤를 따르던 제자들은 대부분 은청준 후배였고 곤륜 시험을 통과해 들어온 사람들이었다.그러니 노래 같은 건 이들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어서 굳이 한 명씩 따로 가르쳐줄 필요가 없었다.잠시 후, 모두가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반면, 진서준을 비롯한 몇몇은 소파에 앉아 지켜보기만 할 뿐, 이들과 함께 즐기지 않았다.“김평안 씨, 혹시 평온 씨와 아는 사이인가요?”조슬기가 의심스럽게 묻자 진서
조슬기는 바로 김평안을 잡으며 대꾸했다.“아니요, 이번엔 김평안 씨랑 함께 있으니까 절대 문제가 없을 거예요.”“이장로님, 저희도 슬기 후배와 함께 가겠습니다.”이때, 은청준이 갑자기 나섰다.은청준이 함께 가겠다고 하자 조슬기는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틀 후면 대회가 시작할 건데 너희는 아직도 내려가서 놀려고 해?”“우리 후배 신변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은청준이 진지하게 나오자 조슬기는 입술을 비쭉이며 말했다.“김평안 씨 하나만 있어도 안전은 문제없어요.”“그 사람은 실력이 부족해 널 보호할 수 없어.”은청준은 김평안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전혀 거리낌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만해, 그만 떠들어.”주자청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내려가고 싶으면 은청준 일행과 함께 내려가.”그제야 은청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은청준은 절대 조슬기와 김평안이 단둘이 있는 꼴을 지켜볼 수 없었다.“함께 가면 가죠.”조슬기는 은청준을 노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곤륜 사람들까지 산에서 내려가 놀려고 하자 장백과 남사에서 온 제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둘씩 장로에게 휴식을 요청했다.“그럼 오늘 하루만 허락할게.”장로의 한마디에 모두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감사합니다, 장로님!”그중 몇몇 제자들은 처음으로 숭산에서 내려가게 되었다.숭산에 오늘 길에 목격한 길가의 세속적인 풍경이 그들에게 잊지 못할 깊은 인상을 남겼다.이번에 어렵게 산에서 내려오게 될 기회가 생기자 다들 당연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김평안 씨, 우리 가요.”조슬기는 김평안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그때 지현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평온아, 너도 함께 내려가.”“네?”배수정은 스승님이 산에서 내려가라고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흠칫 놀랐다.“우리 숭산에 특별히 대접할 만한 게 없잖아. 산에서 내려가면 네가 알아서 손님들을 잘 대접해 줘.”지현민이 이유를 밝혔다.“네, 스승님.”“저놈들이 산에서 내려가서
“신농 사람들 뭐 하는 거야? 이틀 후면 시작인데 왜 아직도 안 오지?”남사 사장로 문추원이 참지 못하고 불평을 터뜨렸다.남사와 곤륜, 그리고 장백은 이미 숭산에 온 지 15일이 넘었는데 신농 사람들만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신농 사람들은 항상 잘난 척하며 온갖 허세를 다 부리잖아. 너희도 잘 알잖아.”“맞아, 매번 뭐 할 때마다 가장 늦게 온다니까.”“내가 듣기로는 작년 신농에서 제자 모집할 때 조건을 크게 낮췄다고 하더라. 그러니 이번에 모집된 제자들도 별로일 거야.”그 말을 듣자 은청준이 즉시 입을 열었다.“저 사람은 본래 신농 제자였습니다.”“뭐라고요? 이 사람이 신농 제자였다고요?”현장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고 장백과 남사에서 온 장로들도 전부 김평안을 의아하게 쳐다봤다.“그런데 왜 혼자 왔어? 신농 사람들은 어디 갔어?”그러자 은청준이 나서서 해명했다.“저 사람이 말하길 신농에 들어갔다가 스스로 신농에서 나왔다고 하던데요.”그 말에 현장은 한순간 술렁였다.“그건 무슨 헛소리야? 신농이 뭐 동네 화장실이야?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나가는 곳이야?”“신농은 비록 온갖 잘난 척은 다 하지만 실력은 있잖아. 절대 네가 쉽게 나갈 수 있을 리 없어.”“누구는 헛소리 칠 줄 몰라 안 치는 줄 알아?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사람들이 김평안을 비웃기 시작하자 은청준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김평안을 도발하기 시작했다.“김평안, 너 해명 안 할 거야?”“무슨 해명?”김평안이 의아해하며 되묻자 은청준이 차갑게 말했다.“무슨 해명이겠어? 난 네가 아예 신농 시험도 통과 못 했을 거라고 의심하는 거야. 신농은 4대 종문 중 하나잖아. 시험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신농에 어렵게 들어갔는데 네 마음대로 나온다고? 증거가 있기나 해?”그러자 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왜 내가 너한테 그걸 증명해야 하지?”사실 은청준이 증거를 내놓으라고 명령할 자격은 없었다.“이유는 없어. 단지 네가 증명할 용기가 없어서
“이장로님, 그만하세요. 굳이 그분과 입만 아프게 해명할 필요는 없잖아요.”조슬기가 나서서 이장로를 설득했다.조슬기는 예전에 아버지한테서 들은 적이 있어 주자청과 문추원 사이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이 두 사람이 서로를 이렇게 못마땅해하는 이유는 한 여자로 인해 시작되었다.아버지의 말로는 두 사람이 젊었을 때 공교롭게도 한 여자를 좋아했는데 그 여자 때문에 둘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싸웠었다.직접적인 충돌은 열 번이 넘었고 승패는 반반이었다.하지만 나중에 그 여자는 두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두 사람은 서로가 없었으면 그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며 그 원한을 지금까지 이어 온 것이었다.둘이 실랑이를 벌리는 사이, 김평안이 스님 한 명을 따라 들어왔고 모두의 시선이 즉시 그쪽으로 끌렸다.“이 사람이 바로 김평안인가?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 동북 검선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일 수 있겠어?”“저 곤륜 중주 따님이 이 중년 아저씨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조슬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웃으며 김평안에게 다가갔다.“김평안 씨, 드디어 오셨네요.”조슬기는 이미 숭산에서 10일 정도 있었고 지루한 나날을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그러니 오매불망 그리던 김평안을 보니 신날 수밖에 없었다.“조슬기 씨, 안녕하세요.”진서준은 매우 공손하게 조슬기에게 인사했다.진서준이 갑자기 이렇게 격식을 차리자 조슬기는 순간 당황했고 이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조슬기는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물었다.“김평안 씨,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서남 지역에서 볼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늦었죠.”진서준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요 며칠 사이 진서준은 한가할 시간이 없었다.허사연의 다리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성약당에 부탁해 여러 가지 약재를 보냈고 매일 마사지와 침술을 해주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