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마음대로 나올 수 있다니, 누군가 이걸 풀어놓은 게 분명하구나.”진서준은 눈앞의 악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아마도 장국주와 그 일행이 추적하고 있던 묘족마을의 살인범일 것이다.묘족마을은 단지 독충과 독을 만드는 것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악귀와 같은 존재에 관해서도 상당한 연구를 해온 곳이었다.악귀는 갑자기 나타난 이 청년이 자기가 내뿜는 악기에 영향을 받지 않자 붉은 눈동자 속에 인간이 보일 법한 놀라움이 스쳤다.“크르릉!”“귀신처럼 짖긴 뭘 짖어? 아 맞다, 넌 원래 귀신이었지.”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악귀는 순간 분노를 터뜨리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기의 기운이 더욱 강렬해졌다.악귀의 눈은 당장이라도 피를 흘러나올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악귀는 두 손을 쭉 뻗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몸을 한 번 휘두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그 직후, 공기 속에서 연달아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무도를 익힌 고수라 하더라도 지금은 그저 흐릿한 그림자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진서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자기를 향해 돌진하는 악귀를 보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장청의 힘이 진서준의 단전에서부터 흘러나왔고 진서준의 손바닥은 옥처럼 빛나며 자줏빛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진서준이 손바닥을 휘두르자 번개가 순식간에 자신에게 달려드는 악귀를 감쌌고 악귀의 살기를 산산이 부숴버렸다.악귀의 비명 속에서 그 형체는 서서히 흐려져 가더니 몇 초 뒤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함박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그 악귀가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은 전혀 남지 않았다.진서준의 뒤에서 세 명의 인물이 급히 달려왔다.“이게 무슨 일이야? 국주가 왜 기절했지? 방금 그 귀신 울부짖는 소리는 대체 뭐였어? 넌 또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말해, 우리가 오기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국주는 왜 기절한 거냐고?”양복준은 진서준을 노려보며 질문 폭탄을 던졌다.사실 양복준도 진서준을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장국주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뭐 하겠어? 당연히 이 녀석이 국주에게 사과해야지.”양복준은 굳은 얼굴로 사과를 요구했다.“네 체면을 봐서 사과만 요구하지, 네가 아니었다면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야. 알겠어?”“사과는 불가능하네요.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내가 왜 사과해야 하죠?”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이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아까 과연 악귀가 내려왔는지 아닌지를 말이죠.”“좋아, 그렇게 확인 사살을 원한다는 거지? 지금 당장 국주를 깨워 물어볼 거야.”양복준은 바로 장국주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장국주는 악기에 영향을 받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조금만 흔들어도 금방 깨어날 수 있었다.“내가 방금 뭐한 거지?”깨어난 장국주는 머리를 흔들며 혼란스러워했다.장국주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조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장국주, 아까 악귀를 본 적 있어?”양복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악귀? 기다려, 생각해 보자...”장국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악귀 얘기를 하니까 생각이 나네. 방금 눈보라 속에서 앞쪽에서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왔어. 처음에는 그 그림자에 경고했는데 그놈이 전혀 반응하지 않더니 갑자기 튀어나와서 날 깜짝 놀라게 했어. 그 후 난 기절했어. 악귀였는지는 사실 잘 기억이 안 나.”장국주는 기절하기 전의 일은 일부만 기억나고 대부분은 잊어버렸다.“이 자식이 일부러 귀신인 척하면서 널 습격해 네가 이 자식을 모욕한 복수를 하려고 한 거야.”양복준은 진서준을 가리키며 격하게 말했다.“응? 이 자식이 한 짓이라고?”장국주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유는 모르지만 장국주는 진서준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기절하기 전 장면이 떠올랐다.하지만 그 장면은 너무 흐릿해서 도저히 무엇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이봐, 지금 목격자도 있으니 너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겠지?”양복준의 눈빛에서 살기가 뿜어나왔다.“당장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고인권도 널 보호
장국주 일행은 진서준과 고인권을 보고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그들은 그저 두 사람을 차가운 시선으로 한번 쏘아본 후 고개를 돌렸다.“조언 하나만 할게요. 낮에 그 묘족마을 사람을 찾으러 산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이 산의 악귀를 불러내게 할 수 있다는 건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뜻입니다. 내 생각에 이 산은 아마 그 사람이 함정으로 가득 채워 놓은 곳일 겁니다. 여러분이 그대로 올라가면 분명 크게 다칠 겁니다.”진서준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선의로 경고했다.“애송이가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호령질이야?”양복준이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가 임무 수행할 때, 넌 어딘가에서 진흙장난이나 하고 있었을 거지? 뭐 악귀라고? 분명 네가 일부러 우리를 속이려고 꾸민 거겠지. 우리가 고인권 같은 바보처럼 쉽게 속아 넘어갈 거라 착각하는 거야?”양복준은 분노를 담아 무자비하게 조롱했다.“그만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랑 뭘 그렇게 해명해?”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일단은 산에 올라가서 사람 잡는 게 우선이야.”다들 진서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고인권도 즉시 나서서 진서준을 거들었다.“오영수, 너희 셋이 진 교관님을 믿지 않는 걸 알아. 근데 진 교관님 말은 틀린 적 없어. 너희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 우리 일은 너와 상관없어.”장국주가 차갑게 내뱉었다.“차라리 돌아가서 어떻게 상부에 해명할지나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거야.”그 말을 끝으로 장국주 일행은 함께 무명산을 향해 걸어갔다.“진 교관님, 이따가 저 녀석들을 좀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고인권이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먼저 천년홍련을 찾아야 합니다.”진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이 무명산은 규모가 엄청나 해가 지기 전에 천년홍련을 찾아야 합니다. 천년홍련을 찾은 후, 저 사람들을 도와주죠.”“진 교관님, 감사합니다.”고인권은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했다.고인권은 산기슭에서 진서준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
“흑기린이라고?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그 특전대를 말하는 거야?”전원경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다시 물었다.“네, 근데 지금 흑기린은 더 이상 8대 특전대 중 최강 특전대가 아닙니다. 가장 강한 특전대는 동북 설표 특전대로 변했습니다.”고인권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표 특전대? 그 병사들은 예전에 내가 봤을 때 전혀 대단한 게 없었는데?”전원경이 설표 특전대를 비웃었다.“그건 예전 얘기입니다. 지금 설표 특전대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됐어, 그런 얘기 말고 너 여기서 뭐 하는 건지 그것만 말해.”전원경이 고인권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난 너희 특전대와 국안부가 이곳을 금지구역으로 지정했다는 걸 잘 알아.”“맞습니다, 전 이번에 8대 특전대 총교관인 진 교관님과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고인권이 솔직하게 털어놨다.“그 사람과 함께 여기에 뭐 하려고 온 거야?”“이 산에 천년홍련이라는 약초가 있다고 들었고 진 교관님이 그 약초가 필요하다고 해서 온 겁니다.”고인권의 대답에 전원경의 눈빛이 반짝였다.“뭐라고? 천년홍련이라고?”전원경은 고서에서 천년홍련에 관해 읽은 적이 있었다.그 약초는 매우 희귀한 약초로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전설에 따르면 설령 구급 영선 경지 술법 마스터라고 해도 이 약초를 복용하면 곧바로 십급 영선 경지를 넘어 전설속의 지선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전원경은 지금 육급 영선 경지에 갇혀 십 년을 보내고 있었다.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면 평생 육급이라는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전 도사님, 이 약초는 우리 진 교관님께 매우 중요한 약초입니다.”고인권이 서둘러 한마디 보탰다.“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가져가는 거야.”전원경이 당당하게 말했다.“그 녀석이 먼저 가져간다면 나도 강제로 빼앗지는 않을 거야. 근데 내가 먼저 그걸 손에 넣게 되면 내가 무정하다고 나무라지 마.”고인권은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조금 전 고인권이 쓸데없이 천년홍련을
무명산에 큰 눈이 내리고 산길이 막혔다.눈은 무릎까지 쌓여 있어서 평지에서도 일반인은 백 미터도 걷기 힘든 상태였다.이 험난한 무명산에서 그 난이도는 훨씬 더 커졌다.전신전 출신인 오영수 세 사람도 계속 걸어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이렇게 오래 걸었는데 쥐새끼 한 마리도 못 봤네.”양복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그 묘족마을 자식이 벌써 여기서 굶어 죽은 건 아닐까?”“살아 있으면 흔적이 있어야 하고 죽었으면 시체가 있어야 할 게 아니야?”오영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시체를 안 들고 돌아가면 전주가 서남 지역 유씨 가문에 어떻게 설명해야 해?”장국주가 눈앞의 눈을 치우며 고개를 돌려 물었다.“반장, 유씨 가문 사람이 그 녀석 독에 중독됐어?”“전주가 말하길, 유씨 가문 가주 딸이 중독됐다고 하더라. 그 딸은 20년 넘게 실종됐다가 작년에야 겨우 다시 만났다고 하던데 지금 갑자기 고약한 독에 걸렸으니 유씨 가문 가주가 단단히 화가 난 상태야. 독을 놓은 자를 잡지 못하면 유씨 가문은 묘족마을로 쳐들어가서 그 마을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다투게 될 거야.”오영수가 본인이 아는 사실을 전부 털어놨다.그 말을 들은 양복준과 장국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이해했다.그들의 딸이 독에 걸렸다면 그들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범인과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진 교관인가 뭔가 하는 그 자식도 산에 올랐다고 하지 않았나? 도대체 어디 간 거지?”양복준이 갑자기 그들 뒤에 있던 진서준을 떠올렸다.처음에 진서준은 세 사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하지만 세 사람이 다시 뒤돌아봤을 때, 진서준은 그들 뒤를 따라온 적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눈보라가 휘몰아치며 진서준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그 자식은 산길이 너무 험해서 그냥 돌아갔을 거야. 뻔한 결말이지.”장국주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정말 이해할 수 없어, 고인권 그 녀석은 왜 그런 애송이를 위해서 우리 셋과 얼굴을 붉히는 건지.”“됐어, 고인권 얘기는 그만하자
처음에 묘족마을 괴물을 추적할 때, 이 녀석이 기른 독충에게 여러 번 기습당했다.다행히 세 사람은 해독할 약을 많이 준비했기에 생명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이 녀석의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일단 지휘관인 저 녀석부터 잡아야 해, 우리 저 녀석부터 찾아내자.”오영수가 공중에서 명령했다.세 사람은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허리춤에서 후크를 꺼내 주변의 나무에 걸어 평온하게 나무에 올랐다.독사 무리는 세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는 즉시 눈 속으로 다시 숨었고 계속해서 세 사람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너희 전신전 전사들이 그렇게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제는 도망만 치고 있는 거지?”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이번에는 냉랭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겁쟁이는 너겠지. 우리 셋이랑 마주칠 용기도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헛소릴 지껄이는 거야?”양복준이 즉시 맞받아쳤다. 상대를 유인해 내려는 의도였다.하지만 묘족마을 사람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눈이 계속 쌓여갔고 세 사람은 계속 독사 무리를 피하며 바삐 움직였다.세 사람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숨이 가빠지며 이마에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젠장, 이 자식이 죽어도 나오지 않네.”장국주가 이를 악물며 투덜댔다.“일단 이 독사 무리를 처리하자.”끊임없이 몰려오는 독사 무리를 보며 오영수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세 사람은 배낭에서 화염병을 꺼내 다시 한번 뛰어내렸다.바닥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세 사람은 즉시 강기를 방출했고 그 강기가 눈을 날려버리며 검은 독사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화염병을 던졌다.순간, 작은 불꽃이 확 일어나며 폭풍처럼 불길이 확산했다.검은 독사 무리는 한순간 불길에 휩싸여 모습을 감췄다.하지만 세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불길 속에서 독사 몇 마리가 튀어나왔다.독사의 이빨은 매우 날카로워 강기조차 막을 수 없었다.양복준이 피할 새도 없이 독사에게
오영수 일행의 직업은 군인이었다.세 사람은 군의방 상위 10위의 강자 앞에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을 수 있었다.본인이 전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아도 군인으로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런 비인간적인 괴물이나 악귀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종사의 강기가 악귀의 악기와 부딪힐 때, 그 효과는 너무나 미미했다.“일단 다들 흩어져, 저 계씨 놈을 죽일 기회가 생기면 바로 처치하자. 저 녀석을 죽이면 이 악귀들이 알아서 흩어질 거야.”오영수가 즉시 긴급 전략을 세우자 세 사람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졌다.그 모습을 본 네 마리 악귀는 계속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다들 오래도록 살아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오영수 일해 세 사람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너희들 지금 쥐잡기 놀이라도 하는 거야? 당당한 전신전 강자가 네 마리 악귀한테 쫓겨 다니고 있다니, 소문나면 얼마나 창피할까?”높은 나뭇가지에 서 있는 검은 옷의 남자가 얄밉게 조롱했다.“자신만만한 것도 지금뿐이야, 이따가 널 저승에 보내주마!”장국주가 분노하며 욕설을 내뱉었다.“저승은 개뿔, 너희 실력으로 네 마리 악귀를 처치할 수 있기나 해?”검은 옷의 남자가 여전히 경멸스럽게 말했다.“너희가 악귀를 이렇게 두려워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너희를 유인했을 걸 그랬어.”남자의 지금 실력으로는 악귀를 직접 소환할 수 없었다.하지만 악귀가 이미 존재하는 상태에서 남자는 자기가 배운 음살술로 그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이 네 마리 악귀와 어젯밤에 나온 그 악귀까지 모두 남자가 음살술로 조종하고 있었다.십 분 넘게 추격을 받았지만 세 사람은 아직 검은 옷의 남자를 처치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세 사람은 이미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네 마리 악귀는 조금도 피곤해하지 않았다.음기만 충분하다면 이 악귀의 체내 살기가 사라질 일이 없었다.살기가 사라지지 않으면 악귀의 힘도 사라지지 않았다.아까 독사에게 물려 상처를 입은 양복준은 속도가 조금 느려져서 그중 한
“크르릉!”총상을 입은 악귀는 크게 분노하여 몸을 돌려 오영수에게 돌진했다.악기는 순식간에 오영수를 둘러쌌고 그는 순간 온몸이 찌릿찌릿 아프고 속도마저 느려졌다.오영수가 겨우 들었던 권총도 악귀의 공격으로 바로 부러졌다.펑!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속으로 달리는 화물차에 충돌한 것처럼 오영수는 날아가 멀리 떨어진 나무에 거세게 부딪혔다.오영수는 온몸이 골절된 것처럼 형편없이 바닥에 떨어졌고 입에서 시뻘건 피를 토해냈다.동시에 장국주도 악귀의 공격으로 멀리 날아갔다.세 사람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반면, 악귀 네 마리는 전혀 지치지 않은 듯했다.“얼씨구, 이따위 놈이 전신전 정예라고? 전신전도 한물갔구나.”오영수 일행이 반격하지도 못하고 쓰러진 모습을 보자 검은 옷의 남자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조롱했다.남자의 표정은 자만과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군의방에 올라와 있는 너희 군인이 악귀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할 줄 알았어. 뭐 남길 유언이라도 있어?”오영수는 극심한 고통을 억지로 버티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계문상, 넌 서남 지역 여러 가문을 독살했고 심지어 서남 유씨 가문 가주 딸까지 해쳤어. 유씨 가문 아가씨가 살아남지 못하면 너희 묘강에서도 피바람이 일어날 거야!”계문상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서남 지역 가문에 독을 퍼뜨린 건 그놈들이 자초한 일이야. 그리고 내가 묘강 사람들을 신경 쓸 것 같아? 그 사람들이 다 죽어도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야.”“묘강 묘주는 네 의부가 아니었어?”오영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의부가 어때서? 예전부터 의부를 죽인 사람은 물론, 친아버지를 죽인 사람도 적지 않아. 큰일을 해내는 사람은 절대 하찮은 일에 얽매이지 않아!”계문상은 흉악한 얼굴로 받아쳤다.“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천만 명이 죽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어.”미쳐 날뛰는 계문상을 보며 세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너 같은 미친놈 손에 죽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장국주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도지아는 그 표정이 왠지 묘하게 신경 쓰였다.부모님이 나가자 집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우리 집에 손님이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부모님이 좀 들뜨셨나 봐.”도지아가 무심하게 해명했다.“괜찮아, 이해해. 우리 집도 손님 올 때마다 우리 엄마 엄청 챙기시거든.”진서준이 웃으며 대응했다.“맞다, 아까 우리 동생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도지아가 본론을 꺼냈다.“이상한 점? 글쎄, 딱히 못 느꼈는데?”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네 동생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아까 네가 유흥업소에 갇혔을 때, 걔가 엄승현 찾아가서 인맥을 동원해 널 구해달라고 부탁했어.”도지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우리 동생이 진짜 요즘 이상해. 말로는 독설을 퍼붓는데 속은 여전히 착해.”“혹시 일부러 너희를 멀리하는 거거나 너희를 보호하려는 거 아닐까?”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뭔가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설마 민수가 잡혀갔을 때 하경범 부하들이 협박이라도 한 걸까?”도지아도 진서준의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날, 도지아의 부모와 도민수는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민수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해야겠어.”도지아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도민수가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꺼버렸다.“이 자식이 정말...”도지아가 인상을 찌푸렸다.“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일단 그냥 내버려둬. 말하고 싶으면 알아서 말하겠지.”진서준이 위로하듯 말했다.한편, 노래방의 한 방에서 도민수는 테이블에 엎드려 하얀 가루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고 있었다.그러고는 완전히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때? 기분 좋아?”노란 머리 청년이 민수의 머리채를 잡고 비열하게 웃었다.
다들 그 말을 듣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진서준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깔끔한 상태로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엄승현은 눈을 굴리더니 이내 눈치 빠르게 잽싸게 뛰어가 아부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호랑이님, 아까 소란을 일으킨 그놈 찾으시는 거죠? 제가 어디 갔는지 압니다. 당장 안내해 드릴게요.”“뭐라고?”조호의 얼굴이 싹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사람을 찢어버릴 눈빛이 번뜩였다.엄승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호랑이 씨, 그놈 진짜 제대로 혼내줘야 합니다. 원하시면 제가 지금 바로 길을 안내할게요.”“닥쳐, 이놈아.”철썩!조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엄승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혼자 뒤져. 왜 애꿎은 사람까지 끌어들여? 꺼져!”힘들게 저 귀신 같은 무시무시한 녀석을 보내버렸는데 어디서 굴러온 개념 없는 놈이 다시 자기를 이끌고 저 녀석에게로 데려가겠다는 거지?조씨 가문 거물도 없는데 조호 본인이 감히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조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엄승현은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뭐, 뭐야? 호랑이가 지금 겁먹은 거야?”“이상하네, 저놈이 대단한 배경이라도 있나?”“말도 안 돼. 저놈 그냥 외지인이잖아. 배경은 개뿔.”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엄승현은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틀림없이 호랑이가 직접 손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동부 구역은 호랑이 구역이잖아. 근데 내가 길을 안내하면 체면이 안 서잖아. 소문이 퍼지면 체면도 구겨질 거고.”“승현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요.”다들 엄승현의 말에 공감하자 엄승현은 자신감을 되찾고 비웃었다.“두고 봐. 오늘 밤 도민수 그 녀석 가족이 다 뒤질 거야.”20분 후.진서준과 도지아는 차를 타고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건물에 들어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지아 집 문 앞에 섰다.“엄마
갑자기 누군가 봉쇄된 유흥업소에서 걸어 나오니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어라? 진짜 저 녀석이네? 근데 왜 멀쩡하지?”엄승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조호가 직접 나서서 판을 깔았다면 피를 안 보고 끝날 리가 없었다.진서준이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만신창이가 됐어야 정상인데 지금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했다.“어서 나랑 가서 진서준한테 감사하다고 하자.”도지아가 도민수를 잡아끌었다.“가고 싶으면 혼자 가. 난 안 가.”도민수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뭐야, 너 왜 그래? 아까는 진서준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잖아?”동생의 앞뒤 다른 태도에 도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닥치고 신경 꺼.”도민수는 누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동생의 거친 행동에 도지아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진서준을 찾아갔다.“이상하네, 저 녀석 진짜로 멀쩡하잖아?”엄승현 일행은 의아해하며 웅성거렸다.“승현 오빠,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아세요?”“나도 몰라.”엄승현은 고개를 저었다.“혹시 저 녀석이 호랑이한테 뭔가 큰 보상을 약속한 거 아닐까요? 호랑이가 저 녀석을 저렇게 고분고분 풀어 줄 이유가 없잖아요?”단발머리 여자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가능성 있어. 아니면 어떻게 호랑이의 구역에서 저렇게 멀쩡하게 나왔겠어?”“그래, 직접 물어보자.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떠나 진서준 쪽으로 걸어갔다.“진서준, 괜찮아?”도지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다친 것처럼 보여?”진서준이 홀가분한 말투로 되물었다.“이깟 조무래기 건달도 못 이길 거면 내가 감히 하경범을 건드릴 수 있었겠어?”“그렇긴 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는 도지아도 잘 몰랐다.황예은에게 슬쩍 떠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 황당했다.황예은의 입에서 나온 진서준은 거의 만능 인간이었다.세상에 정말 그런 남자가 존재할까?“야, 너 대체 어떻게 호랑
“뭐? 네 개가 되라고?”정장 남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폭발했다.“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개 취급해? 거울이나 보고 네 꼴부터 확인해.”조호도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네가 종사인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귀도파에도 종사가 없는 게 아니야. 종사라는 이유로 날 얕볼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우리 귀도파도 그냥 조직이 아니야. 뒤에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진서준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그래? 그럼 너희 귀도파 주인은 누구야?”조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이 청년이 하는 말이 참 기분이 나빴다.진짜 주인이라니, 자기를 개 취급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기분 나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조호가 이렇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건 귀도파 뒤에 거물이 있기 때문이었다.“르벨 하씨 가문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조호가 음침한 얼굴로 물었다.익숙한 가문의 이름에 진서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결국 하씨 가문에 빌붙은 거였군.”“빌붙다니? 우리 조씨 가문은 단순히 의지하는 게 아니야. 하씨 가문에서 우리 조씨 가문의 대단한 인물을 공양하고 있거든. 그분은 대종사야.”조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래? 대종사였어? 하씨 가문에서 그 대종사를 공양하고 있어?”진서준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짙은 흥미를 보였다.“그럼 나도 한 번 보고 싶네. 네가 말하는 그 대단한 인물 말이야.”“좋게 말하는데 너 선 넘지 마. 얼른 여기서 나가. 네가 종사라 오늘은 특별히 봐주겠어.”조호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근데 계속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가문 거물을 보겠다고 떠들면 내가 장담하건대 넌 무조건 죽을 거야.”종사와 대종사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격차가 컸다.이 애송이가 조씨 가문의 거물을 이길 수 있다는 건 조호가 보기엔 한낱 망상일 뿐이었다.“상관없어. 마침 요즘 할 일도 없는데 잘 됐어.”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언제든 너희 집안 그 거물 불러내. 하씨 가문이 공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 좀 해보자고.”“죽고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