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 빨리 도망쳐... 도망쳐...”악몽을 꾸는 듯한 허사연은 점점 더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양손으로 허사연의 손을 꽉 잡았다.“미안해, 사연아. 내가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 네가 나랑 함께한 이후로 난 너에게 부귀영화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끔찍한 경험이나 겪게 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널 볼 면목이 없어.”진서준의 눈에는 자책이 가득했다.허사연은 익숙한 안전감을 느낀 듯, 잔뜩 찌푸렸던 미간은 서서히 펴지고 불온정한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다.진서준의 양손에 허사연의 손가락이 전부 들어갔는데 지금 이 열 손가락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유씨 가문, 너희는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진서준의 눈에서는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진서준은 속으로 유씨 가문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다.며칠이 지나는 동안 진서준은 집에서 허사연을 세심하게 돌봤고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허사연의 곁을 지켰다.단지 허사연이 다시 악몽을 꾸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어느 날 아침.그동안 의식이 없던 허사연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의식을 되찾은 허사연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텅 빈 낯선 방이 허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내가 살아있었다고? 서준이 구해준 거야?”허사연은 양손을 침대에 대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느꼈다.아무리 애써도 허사연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내 손...”허사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솟구쳤다.본래 진서준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허사연은 지금 오히려 진서준의 짐이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었다.“사연아, 깼어?”진서준은 의식을 회복한 허사연을 보자 기쁨에 차서 다가갔다.진서준을 본 허사연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나왔다.“서준아. 난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날 밤, 유지수가 허사연에게 가한 고문은 그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한낱 평범한 여자가 이토록 잔인하게 변할 줄은
진서준은 이미 1년 동안 유지수를 만나지 못했다.현재 유지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진서준도 확신할 수 없었다.왕권 부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승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하지만 유지수와 직접 겨뤄보기 전까지 진서준은 유지수를 무조건 죽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허사연을 안심시키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도록 진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유지수가 왕권 전승을 얻었다고 해도 나보다는 못해.”진서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야...”그러나 허사연은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지수 스승은 실력이 분명 강력할 거야. 네가 유지수 스승과 유지수 본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까 봐 걱정돼.”진서준은 이미 유지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지선 급의 절세 강자인 구지범이 바로 유지수의 스승이었다.천용 반지 내의 힘은 진서준이 명주시 바다에서 소모해 버렸고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이 상태에서 정말 구지범을 만나게 된다면 진서준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없으면 도망가면 돼. 걱정 마.”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허사연의 예쁜 얼굴을 쓰다듬었다.“넌 지금 건강을 빨리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서준아, 난 너무 쓸모없는 것 같아. 네게 폐만 끼치고 한 번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허사연이 진심으로 자책했다.“아니야, 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야.”진서준은 허사연을 꼭 껴안았다.“이제 그만 좀 해. 나 아직 여기 있어.”허윤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두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고 대놓고 꽁냥꽁냥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허사연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허사연도 허윤진이 방에 있다는 걸 까먹었다.“그만 놔줘...”허사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쑥스러움이 많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응? 그 왕자가 날 만나서 뭘 하려고?”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유람선에서 소하비는 진서준이 필요한 약재를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사 갔다.“소하비 여동생이 위독하대.”황예은이 차분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흠칫 떨었다.“뭐라고? 그 왕자가 칠색정화를 사서 동생을 살리려던 거 아니었어? 혹시 칠색정화가 효과가 없었던 거야?”“구체적인 상황은 소하비가 얘기하지 않았어. 그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만 했어.”“물론 도울 수 있어. 근데 나도 조건이 있어. 그 칠색정화을 내가 받아야겠어.”진서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아무 조건 없이 소하비를 돕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소하비의 여동생을 구하는 대가로 진서준이 꼭 필요한 칠색정화를 손에 넣어야 했다.“난 이미 그 요구를 말했어. 소하비도 동의했어. 오늘 밤에 서울에 도착할 거야.”황예은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칠색정화가 진서준에게 중요한 약재라는 걸 잘 아는 황예은은 진서준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소하비에게 이렇게 제안할 것이다.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고 난 황예은은 이제 진서준과 같은 편이었다.“좋아, 그럼 오늘 밤 그 왕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진서준은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칠색정화를 되찾을 기회가 이렇게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서라를 치료하는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오빠,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기뻐해?”진서라가 궁금해하며 묻자 진서준은 웃으며 설명했다.“네 독을 치료할 약재를 하나 더 찾았어.”“오빠,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진서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감옥에서 나온 이후 여태껏 가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진서준을 보니 진서라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너랑 엄마만 무사하면 난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진서준은 확고한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아름다운 바람이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이제 4대 종문 회전에 참가해
샛터 왕실의 로고가 새겨진 비행기가 공항에 서서히 착륙했다.막 착륙한 또 다른 비행기에서 몇몇 승객들이 그 비행기를 보고 수군거렸다.“저 비행기 로고는 처음 보는데?”“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지만 나도 처음 봐. 혹시 부자의 개인 비행기일까요?”“그건 개인 비행기가 아니라 샛터 왕실 전용 비행기야!”조금 안목이 있는 중년 남자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즉시 떠들썩한 반응이 일었다.샛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다.왕실 구성원의 재산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 오른 상위 3명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자랑했다.이토록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왜 갑자기 작은 도시 서울시에 전용기를 타고 왔을까?잠시 후, 왕실 전용기의 문이 열렸고 건장한 남자 네 명이 먼저 내려왔다.주변에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소하비와 그 일행이 내려왔다.“소하비 왕자, 지금이라도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베컨이 여전히 진지하게 고집을 부렸다.“그만하세요. 난 마음을 굳혔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소하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이 노인은 자기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자꾸 소하비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도대체 이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베컨은 소하비의 태도가 단호한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공항을 나온 소하비 일행은 차를 타고 시립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하비는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진 씨, 저는 소하비입니다. 황예은 씨가 이미 상황을 설명했을 거라고 믿습니다.”소하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제 여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칠색정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습니다.”칠색정화의 가격은 서울시 경제를 일으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소하비에게는 여동생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병원에서 기다리세요.”진서준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저희는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되도록 빨리 오세요.”전화를 끊고 소하비는 자기
“진서준 씨, 모범수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높은 담장 밖엔 잡초가 무성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진서준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먼 곳을 바라봤다. 두 눈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감옥에 있는 3년 동안 엄마랑 서라는 잘 있나 모르겠네.”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엄마와 여동생은 단 한 번도 그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다. 이에 진서준은 걱정이 스치기 마련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서준은 헝겊을 가득 꿰맨 가방에서 편지 한 통 꺼냈다.편지봉투를 열자 안에는 쪽지와 ‘천기각’이라고 새겨진 옥패 한 개가 들어 있었다.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옥패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아마 가장 좋은 화씨 옥으로 조각한 듯싶다.진서준은 옥패를 허리춤에 차고 쪽지를 펼쳐보았는데 단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서준아, 넌 앞으로 천기각의 주인이고 이 옥패가 바로 그 증표야.」「내년 3월 꽃 필 무렵에 옥패를 가지고 신농산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이건 진서준이 출소 전에 감방 동기 구창욱 어르신께 받은 편지이다.구창욱 어르신은 종일 신경질적이어서 감방에 아무도 그와 얘기 나누려는 자가 없다. 오직 진서준만 별일 없을 때 어르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눈다.어르신은 매일 자신이 천기각 주인이라고 허풍을 치셨다. 천문학과 지리학을 꿰뚫고 의술도 뛰어나다고 하셨다.진서준은 애초에 어르신이 자신을 속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어르신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온갖 기이한 것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3년 동안 진서준은 많은 재능을 습득했다.이젠 그의 두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감옥에 들어온 이유는 바야흐로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3년 전 진서준은 여자 친구 유지수와 함께 갓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어느 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이지성이라는 바이어가 유지수를 탐내면서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다.진서준은 한창 젊고 패기가 넘쳐 술병을 번쩍 들더니 이지성의 얼굴에 가차 없이 내리쳤다.결국...
유지수가 이지성에게 시집갔다고?본인은 그녈 위해 감방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정작 유지수는 원수 놈에게 시집갔단 말인가?진서준의 두 손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고 눈가에 살의가 굳었다.조희선은 손으로 가볍게 얼굴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돈을 모으기 위해 그녀는 유지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일전 한 푼 내놓지 않았고 심지어 조희선에게 고액 연봉의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그 당시 조희선은 그녀에게 엄청 고마워하기까지 했다!하지만 정작 유지수가 소개한 직장에 와 보니 그녀를 기다리는 건 배불뚝이가 된 몇몇 중년 남성들이었다.조희선은 일이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상대가 그녀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절망의 끝자락에 다다른 조희선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 제 얼굴을 그었다.그녀의 얼굴에 난 험상궂은 긴 흉터에 놈들은 분노가 차올라 그녀의 양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길바닥에 내던졌다.진서라가 퇴근하고 마침 그 길을 지나며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희선은 일찌감치 죽었을 것이다!“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내가 조만간 아작을 내고 말겠어.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이 뭔지 보여줄게!”진서준은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주먹으로 양철 벽에 구멍을 냈다.조희선은 연신 머리를 내저으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준아, 이제 막 나왔는데 또 싸워서 들어가면 어떡해! 일자리 구해서 열심히 일해. 더는 사고 치지 말고.”진서준은 손등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처럼 울화가 치밀었다.“그래도 이건 도저히 못 참겠어요!”이때 거친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왔다.“할망구, 돈 갚아야지!”순간 조희선의 수척해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극도로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진서준이 미간을 구기고 나가려 하자 조희선이 재빨리 그를 잡아당겼다.“서준아, 너 여기서 꼼짝 마. 엄마가 알아서 할게.”조희선의 애원하는 눈빛에 진서준은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진서준은 엄마를 보더니 몸에 스친 살의가 일찌감치 사라졌다.“엄마, 내가 감방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내게 무술과 의술을 가르쳐줬어요. 엄마 얼굴에 난 상처랑 부러진 다리까지 전부 치료해 드릴게요.”가슴이 움찔거렸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네가 이런 마음을 지닌 건 고맙지만 엄마는 네가 참 걱정이구나! 절대 두 번 다시 사고 치지 말아. 일자리 찾아서 이씨 일가에 진 빚을 다 갚고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꾸나.”진서준이 엄마를 다독이며 대답했다.“네, 엄마 말 들을게요. 지금 바로 나가서 일자리 찾아볼게요.”“그래, 일찍 돌아오너라. 이따가 서라한테 전화해서 퇴근하고 올 때 너 먹일 영양제 좀 사 오라고 해야겠어.”조희선은 마음속에 어렴풋이 희망이 생겨났다.집을 나선 진서준은 깊은 눈동자 속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지난날의 피맺힌 원한을 오늘 반드시 백 배로 갚게 해 줄 거야!’...“아빠, 조금만 버텨요. 병원 거의 다 왔어요! 언니, 좀 더 빨리 몰아!”창백한 얼굴에 겨우 숨을 몰아쉬는 아빠를 보며 허윤진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울지 마, 윤진아. 아빠 괜찮아.”허성태가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콰당!전력 질주하던 마이바흐가 갑자기 급정거했고 뒤에 앉은 허성태 부녀가 화들짝 놀랐다.허윤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언니, 왜 갑자기 급정거해?”운전하던 허사연이 안전벨트를 풀고 허둥지둥 차 문을 열었다.“나 사람 쳤어!”“뭐?”허 씨네 세 부녀가 함께 차에서 내렸다.진서준은 안 그래도 화가 나 있었는데 차에 부딪히기까지 하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운전 어떻게 하는 거야? 똑바로 못 해?!”그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병원 모시고 가서 검사시켜 드릴까요?”허사연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에 진서준은 분노가 많이 가라앉았다.한편 뒤에 서 있는 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언니, 이딴 사람에게 왜
두 자매가 아무리 의술을 몰라도 아빠의 혈색으로 보아 확실히 병세를 진정시켜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앞의 이 미쳐 날뛴 소년이 구해주었다!허성태가 비스듬히 눈을 떴다. 가슴에 꽉 막혔던 그 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아빠, 괜찮으세요?”허윤진이 감격에 겨워하며 물었다.“괜찮아. 아까보다 몸이 훨씬 개운해진 것 같구나.”허성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꼼꼼한 허사연은 아빠 몸에 꽂은 은침을 아직 빼내지 않았다는 걸 바로 발견했다.그녀가 막 빼내려 할 때 진서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움직이지 말아요! 지금 잠시 아버님 병세를 진정시켜 드렸을 뿐이에요. 침은 아직 빼면 안 돼요.”일곱 개의 은침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허성태의 몸에 꽂혀 있었다.이것은 청하13침 중의 일곱 번째 침, 이름하여 연명침이다!허성태가 두 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겨운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살려줘서 고맙네 젊은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따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줘서 아버님을 구해드린 겁니다.”허사연과 허윤진은 진서준이 방금 말한 그 일이 떠올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 중 한 명만 진서준과 결혼하면 그녀들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뜻밖에도 둘 다 시집가게 생겼으니 차오르는 수치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 무슨 부탁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허성태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는 방금 혼미 상태에 빠져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아버님을 구해드리면 제게 20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진서준이 말했다.이건 허윤진이 방금 꺼낸 얘기이다.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하는 건 단지 오만한 허윤진을 처벌하기 위한 진서준의 장난일 뿐이다.설사 결혼한다고 해도 허사연처럼 온화하고 착한 언니와 결혼하겠지.진서준이 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해야 한다는 일을 언급하지 않자 그제야 허사연 자매도 본인들이 놀림을 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안도의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허윤진은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우리 두 자매가 설마
샛터 왕실의 로고가 새겨진 비행기가 공항에 서서히 착륙했다.막 착륙한 또 다른 비행기에서 몇몇 승객들이 그 비행기를 보고 수군거렸다.“저 비행기 로고는 처음 보는데?”“이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탔지만 나도 처음 봐. 혹시 부자의 개인 비행기일까요?”“그건 개인 비행기가 아니라 샛터 왕실 전용 비행기야!”조금 안목이 있는 중년 남자가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즉시 떠들썩한 반응이 일었다.샛터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였다.왕실 구성원의 재산은 포브스 부자 순위에 오른 상위 3명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자랑했다.이토록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왜 갑자기 작은 도시 서울시에 전용기를 타고 왔을까?잠시 후, 왕실 전용기의 문이 열렸고 건장한 남자 네 명이 먼저 내려왔다.주변에 위험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소하비와 그 일행이 내려왔다.“소하비 왕자, 지금이라도 돌아갈 기회가 있습니다.”베컨이 여전히 진지하게 고집을 부렸다.“그만하세요. 난 마음을 굳혔으니까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마세요.”소하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이 노인은 자기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자꾸 소하비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었다.도대체 이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베컨은 소하비의 태도가 단호한 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공항을 나온 소하비 일행은 차를 타고 시립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하비는 진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진 씨, 저는 소하비입니다. 황예은 씨가 이미 상황을 설명했을 거라고 믿습니다.”소하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제 여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칠색정화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비용도 받지 않겠습니다.”칠색정화의 가격은 서울시 경제를 일으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소하비에게는 여동생의 생명이 더 중요했다.“병원에서 기다리세요.”진서준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저희는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되도록 빨리 오세요.”전화를 끊고 소하비는 자기
“응? 그 왕자가 날 만나서 뭘 하려고?”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유람선에서 소하비는 진서준이 필요한 약재를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사 갔다.“소하비 여동생이 위독하대.”황예은이 차분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흠칫 떨었다.“뭐라고? 그 왕자가 칠색정화를 사서 동생을 살리려던 거 아니었어? 혹시 칠색정화가 효과가 없었던 거야?”“구체적인 상황은 소하비가 얘기하지 않았어. 그저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만 했어.”“물론 도울 수 있어. 근데 나도 조건이 있어. 그 칠색정화을 내가 받아야겠어.”진서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아무 조건 없이 소하비를 돕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소하비의 여동생을 구하는 대가로 진서준이 꼭 필요한 칠색정화를 손에 넣어야 했다.“난 이미 그 요구를 말했어. 소하비도 동의했어. 오늘 밤에 서울에 도착할 거야.”황예은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칠색정화가 진서준에게 중요한 약재라는 걸 잘 아는 황예은은 진서준이 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소하비에게 이렇게 제안할 것이다.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겪고 난 황예은은 이제 진서준과 같은 편이었다.“좋아, 그럼 오늘 밤 그 왕자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진서준은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칠색정화를 되찾을 기회가 이렇게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서라를 치료하는 목표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오빠,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기뻐해?”진서라가 궁금해하며 묻자 진서준은 웃으며 설명했다.“네 독을 치료할 약재를 하나 더 찾았어.”“오빠,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진서라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감옥에서 나온 이후 여태껏 가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진서준을 보니 진서라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너랑 엄마만 무사하면 난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진서준은 확고한 눈빛을 보이며 대답했다.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지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아름다운 바람이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이제 4대 종문 회전에 참가해
진서준은 이미 1년 동안 유지수를 만나지 못했다.현재 유지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진서준도 확신할 수 없었다.왕권 부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승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실력이 약할 리 없었다.하지만 유지수와 직접 겨뤄보기 전까지 진서준은 유지수를 무조건 죽인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허사연을 안심시키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도록 진서준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유지수가 왕권 전승을 얻었다고 해도 나보다는 못해.”진서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허사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다행이야...”그러나 허사연은 다시 뭔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유지수 스승은 실력이 분명 강력할 거야. 네가 유지수 스승과 유지수 본인을 동시에 상대해야 할까 봐 걱정돼.”진서준은 이미 유지수의 스승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지선 급의 절세 강자인 구지범이 바로 유지수의 스승이었다.천용 반지 내의 힘은 진서준이 명주시 바다에서 소모해 버렸고 현재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이 상태에서 정말 구지범을 만나게 된다면 진서준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없으면 도망가면 돼. 걱정 마.”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허사연의 예쁜 얼굴을 쓰다듬었다.“넌 지금 건강을 빨리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서준아, 난 너무 쓸모없는 것 같아. 네게 폐만 끼치고 한 번도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허사연이 진심으로 자책했다.“아니야, 네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야.”진서준은 허사연을 꼭 껴안았다.“이제 그만 좀 해. 나 아직 여기 있어.”허윤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두 사람이 자기를 무시하고 대놓고 꽁냥꽁냥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다.허사연은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 허사연도 허윤진이 방에 있다는 걸 까먹었다.“그만 놔줘...”허사연은 얼굴이 붉어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쑥스러움이 많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그
“진서준, 빨리 도망쳐... 도망쳐...”악몽을 꾸는 듯한 허사연은 점점 더 흥분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그 모습을 본 진서준은 양손으로 허사연의 손을 꽉 잡았다.“미안해, 사연아. 내가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어. 네가 나랑 함께한 이후로 난 너에게 부귀영화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끔찍한 경험이나 겪게 했어. 진심으로 미안해, 널 볼 면목이 없어.”진서준의 눈에는 자책이 가득했다.허사연은 익숙한 안전감을 느낀 듯, 잔뜩 찌푸렸던 미간은 서서히 펴지고 불온정한 상태는 점점 안정되었다.진서준의 양손에 허사연의 손가락이 전부 들어갔는데 지금 이 열 손가락은 모두 부러져 있었다.“유씨 가문, 너희는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거야.”진서준의 눈에서는 냉혹한 기운이 감돌았다.진서준은 속으로 유씨 가문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다.며칠이 지나는 동안 진서준은 집에서 허사연을 세심하게 돌봤고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허사연의 곁을 지켰다.단지 허사연이 다시 악몽을 꾸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어느 날 아침.그동안 의식이 없던 허사연이 드디어 잠에서 깨어났다.의식을 되찾은 허사연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았다.텅 빈 낯선 방이 허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내가 살아있었다고? 서준이 구해준 거야?”허사연은 양손을 침대에 대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느꼈다.아무리 애써도 허사연은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내 손...”허사연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픔이 솟구쳤다.본래 진서준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던 허사연은 지금 오히려 진서준의 짐이 되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셈이었다.“사연아, 깼어?”진서준은 의식을 회복한 허사연을 보자 기쁨에 차서 다가갔다.진서준을 본 허사연은 목이 메어 눈물이 흘러나왔다.“서준아. 난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날 밤, 유지수가 허사연에게 가한 고문은 그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한낱 평범한 여자가 이토록 잔인하게 변할 줄은
상처투성이가 된 두 사람을 보자 허윤진은 얼굴이 창백해졌다.“진서준, 언니랑 아빠가 어떻게 된 거야?”허윤진이 울먹이며 묻자 진서준이 차분하게 대응했다.“먼저 깨끗한 침대 두 개를 준비해.”진서라와 나머지 여성들은 즉시 분주하게 움직였고 몇 분도 안 돼 침대 두 개가 정리되었다.두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 진서준은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약재 처방을 두 개 쓴 후, 진서준은 그 처방을 김연아에게 건넸다.“연아야, 여기 적힌 약재를 구해줘.”“알겠어.”“하얀이랑 함께 가.”진서준은 한마디 더 보탰다.김연아는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집을 나설 때, 하얀이를 데리고 갔다.허사연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허사연은 손뿐만 아니라 등에도 온통 상처가 나 있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옷을 조심스럽게 찢어냈다.피와 살이 뒤엉켜 피범벅이 된 등을 보자 진서준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어떤 빌어먹을 놈이 한 짓이야? 어떻게 우리 언니에게 이렇게 잔인하게 굴 수 있어?”허윤진은 분노에 치를 떨었고 눈시울도 어느새 붉어졌다.“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야!”서지은도 참을 수 없어 욕설을 날렸다.“깨끗한 물을 한 대야 가져와, 깨끗한 수건도 몇 개 더 가져와.”진서준이 지시하자 허윤진은 급히 몸을 돌려 준비하러 갔다.곧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가 들어왔다.진서준은 수건을 이용해 허사연의 몸에 묻은 피와 상처를 자세하게 씻어냈다.수건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의식을 잃은 허사연은 몸을 살짝 움찔했다.진서준은 더 신중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상처를 전부 닦아내자 김연아가 약재를 가지고 돌아왔다.진서준은 즉시 약재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나중에 거즈로 감싸며 모든 단계가 신중하고 세밀하게 진행되었다.모든 처치가 끝난 후, 진서준은 드디어 한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고 그제야 치료하는 과정에 자기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걸 발견했다.“언니는 어떻게 됐어?”허윤진이 급히 물었다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진서준은 어디선가 버들가지 하나를 꺼내 들고 유연비의 몸에 세게 내리쳤다.찰싹!한 대 맞자 유연비의 피부는 찢어지고 살점이 갈라졌다.유연비는 바로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아악! 진서준, 너 미쳤어?”유연비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유연비는 자기가 드디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서준이 살려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고문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진서준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가시가 달린 버들가지로 유연비를 마구 때렸다.몇 대 맞고 나자 유연비의 몸은 살점과 피로 뒤덮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폭우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유연비 주변의 바닥은 이미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제발 놔줘... 네 여자 몸의 상처는 내가 남긴 게 아니야.”유연비는 울면서 애원했다.“넌 죽어야 해. 유지수도 물론 죽어야 하고.”진서준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너희 유씨 가문 사람들 모두 오늘 유지수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 거야.”“국안부는 네가 이렇게 막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을 거야. 네가 폭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건 국안부와 적이 되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거야.”유연비는 바로 국안부를 꺼내 들었다.유지수가 이제 진서준을 위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유연비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국안부를 내세워 진서준을 제압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냉랭하게 말했다.“날 감히 제지하는 놈이 있으면 그게 누가 됐든 죽는 길밖에 없어.”말투는 매우 평온했지만 유연비는 소름이 돋아 발밑에서 차가운 기운이 뇌까지 치솟았다.버들가지가 다시 휘둘러지며 유연비는 하늘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아침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고 유연비는 그때까지 버들가지로 된 채찍을 계속해서 맞았다.유연비는 지금 목숨이 겨우 붙어있는 상태였고 그녀의 몸엔 온통 피와 살이 뒤엉켜 있었다.“날 죽여, 날 죽여줘!”진서준의 잔인한 고문을 견딜 수 없었던 유연비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유지수에게 전화해.”진서준이
구용소천!진서준의 체내에서 영기와 혈해가 거세게 뒤엉키더니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몸 밖으로 폭발했다.펑! 펑!진서준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전투병 두 명이 바로 폭발하듯 뒤로 튕겨 나갔다.혈해 속에서 거대한 용 세 마리가 진서준의 뒤에 나타났고 이 혈용은 이내 진서준의 체내로 흡수되었다.이 장면을 본 유연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유연비는 진서준이 오직 검도에만 능한 줄 알았는데 진서준이 횡련도 능숙하게 다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다들 함께 달려들어 저 녀석 죽여버려!”이 순간, 유연비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서서히 피어올랐다.“꺼져!”개조된 전투병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주먹을 휘두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로 앞의 전투병을 순식간에 산산조각 냈다.전투병의 몸에서 분출한 피는 폭우에 씻겨 순식간에 사라졌다.다른 전투병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다시 그중 한 명의 앞에 나타났고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러 그 전투병을 터뜨렸다.두 명을 연속으로 처치한 진서준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몸을 빨리 움직여 길을 막는 전투병을 모조리 해치웠다.절대적인 힘 앞에서 이 전투병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길 외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하지만 이 개조 약제를 칠급, 심지어 팔급 대종사에게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유연비가 데려온 20여 명의 개조된 전투병은 전부 진서준의 주먹을 맞고 산산조각 났다.바닥 위에는 부서진 뼈들 외에는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한 팔로 우산을 받쳐 들고 있던 유연비는 눈알이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유연비는 이 전투병들이 진서준을 기진맥진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뜻밖에도 이 전투병들은 진서준의 주먹에 의해 전부 시체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었다.사실 이 개조된 전투병들은 이급 횡련 대종사급 몸 상태를 자랑하는 자들이었다.전투병들은 피로나 두려움, 심지어 고통도 모르는데 사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절
허성태의 두 다리는 이미 부러진 상태였고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이었다.부녀의 비참한 모습에 진서준은 미칠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평범한 사람의 분노는 작은 범위 내에서 피를 튕기게 하지만 천재의 분노는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탁탁탁...사방에서 갑자기 빠른 발소리가 들려오자 진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진서준을 겹겹이 에워쌌다.“너희들 누구야?”이 사람들을 보자 진서준은 분노를 억지로 억제하며 급히 움직이지 않았다.진서준은 이 사람들이 명을 따르기만 하는 조무래기란 걸 알고 있었다.진짜 배후는 분명 이 사람들 뒤에 있을 것이다.그때, 화려한 우산을 받쳐 든 인물이 별장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자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터주었다.“너였구나.”진서준은 유연비를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분명 이 여자의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이 여자는 반성하거나 고맙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진서준의 여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허사연과 허성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너야?”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유연비는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아니야, 범인은 네 전 여자친구야.”“뭐라고? 유지수는 이미 죽지 않았어?”진서준은 믿기 어려워하며 소리쳤다.“그때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유지수는 네 아버지에게 처형당했다고.”유연비는 그 말에 조롱이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비꼬았다.“네가 내 말을 진짜 믿을 줄은 몰랐어. 유지수는 죽지 않았어. 오히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지. 네 여자 몸에 있는 그 상처들은 다 유지수가 한 짓이야.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서준이 주먹을 꽉 쥐자 주먹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릴 정도로 분노가 넘쳐흘렀다.“그 여자는 어디 있어?”“이 사람들을 물리치면 알려줄게.”유연비가 뒤로 물러서자 수십 명의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앞으로 나섰다.이들은 전부 강력한 기운을 발산했고 감정도 없는 로봇처럼
전화가 걸렸을 때, 진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휴대폰 소리에 깨어난 진서준은 전화를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전화를 건 사람이 서정훈이란 걸 발견한 진서준은 직감적으로 뭔가 큰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서정훈이 굳이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서 시장님, 무슨 일이에요?”진서준이 급히 물었다.“진서준, 허사연이 큰 사고를 당했어.”서정훈이 초조한 목소리로 급히 말했다.우르릉!순간 진서준의 머릿속에 천둥소리가 울리며 눈앞이 하얘졌다.“사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자세히 말해 주세요!”진서준은 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집에는 누렁이와 하얀이 두 마리의 이수가 지키고 있었다.칠급 대종사가 아닌 이상, 누렁이와 하얀이의 방어선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허사연이 허씨 가문 대문에 매달려 있어. 네가 빨리 돌아와 구해줘야 해. 하루라도 지체하면 허사연이 버틸 수 없을지도 몰라.”허씨 가문 대문에 매달려 있다고?진서준의 가슴 속에서 폭발적인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진서준은 허윤진을 비롯한 여성들을 깨우기 시작했다.“사연에게 큰 일이 생겼어.”언니가 크게 다쳤다는 말을 들은 허윤진은 눈물을 글썽이며 급하게 물었다.“언니가 어떻게 된 거야?”“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나도 잘 몰라. 서 시장이 방금 전화로 알려줬어.”상황을 대충 설명하면서 진서준은 또 다른 전화번호를 눌러 황예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두세 번 울리자 황예은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은 바로 용건을 말했다.“비행기를 준비해. 지금 당장 서울로 가야 해.”“알았어, 지금 우리 집에 와.”황예은은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진서준은 차를 몰고 허윤진 일행을 데리고 황씨 가문으로 향했다.황씨 가문에 도착하니 헬리콥터 한 대가 정원에 정박해 있었고 황예은은 검은색 잠옷을 입고 진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고마워.”진서준은 긴말하지 않고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