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람이라면 올기처럼 거대한 교룡이 갑자기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도망가겠지만 레일린은 달랐다.해외에서 수년간 활발하게 움직였던 레일린은 특이한 괴물들을 많이 봐왔다.올기라는 교룡은 레일린에게 있어 단지 체형이 일반 괴물보다 조금 더 큰 괴물일 뿐이었다.두 사람의 모습이 순간 번쩍이며 순식간에 요트 갑판에서 사라졌다.두 사람은 10여 미터를 훌쩍 뛰어오르며 올기 앞에 나타났다.살기 가득한 두 사람은 올기를 더욱 화나게 했다.올기는 이래 봬도 고귀한 교룡 일족이기 때문이었다.“으르렁!”용의 울음소리와 매우 비슷한 포효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철썩! 철썩!그 포효에 바닷물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미친 듯이 출렁이기 시작했다.무려 천 톤이 넘는 대형 유람선인 천하 유람선도 요트와 함께 떨기 시작했다.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은 급히 난간을 잡고 두려움에 떨며 올기를 바라보았다.“저 두 사람은 누구지? 어떻게 감히 교룡까지 건드릴 수 있지?”“보아하니 해외에서 온 사람인 것 같은데, 저 사람들이 왜 요트를 타고 여기로 왔을까?”사람들이 불안하고 궁금해하는 가운데, 올기와 레일린은 이미 충돌이 일어났다.이 두 사람은 천의방 강자답게 강기를 다루는 능력이 대단했다.두 사람은 올기의 무시무시하고 신속한 공격을 연속으로 막아냈다.올기의 발톱과 입속에서 나오는 화염이 두 사람 앞에 펼쳐진 강기에 닿자 고작 작은 균열만 만들었을 뿐, 그들 두 사람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레일린은 올기의 힘을 이용해 올기의 뒤로 돌아갔다.레일린이 손에 쥔 붉은 장검의 칼날 위에는 늑대인간이 새겨져 있었다.레일린이 강기를 다루자 칼날 위에 새겨진 늑대인간의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다음 순간, 레일린은 장검을 거세게 휘둘러 올기을 향해 내리쳤다.올기의 비늘은 강철처럼 단단해 심지어 스나이퍼의 총알도 관통할 수 없었다.칼날이 떨어지자 금속이 부딪히는 충돌 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찢었다.순간 올기는 등에서 찌릿한 아픔이 느껴졌고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그때는 올기의 실력이 대단했지만 천 년 동안 봉인된 후, 그 실력은 이미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만약 올기의 오만한 성격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죽는 길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이 짐승은 온몸이 보물 창고야. 죽인 후에 이 짐승을 그대로 가져가자.”레일린이 루도프에게 소리쳤다.올기는 두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욕망 가득한 눈빛을 보고 순간 두 사람이 자기를 먹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자기가 이 두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올기는 갑자기 몸을 낮추어 바다로 향해 질주했다.올기의 몸이 바다에 떨어지며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처럼 주변 백 미터의 바닷물이 솟구쳐 백 미터의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그 거대한 파도가 천하 유람선을 향해 몰려갔다.천하 유람선이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릴 것 같아지자 갑판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인물이 일제히 힘을 합쳐 그 거대한 파도를 갈랐다.유람선이 무사히 파도를 뚫어버리자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그 다섯 명은 이씨 가문에서 초빙한 칠급 강자였다.이때, 피로 물든 채 비참한 모습의 올기가 다시 바다에서 튀어나왔다.레일린과 루도프 두 사람은 여전히 올기의 몸을 꼭 붙잡고 있었다.“크악!”올기는 거대한 몸을 바다 위에 드러내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며 진서준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듯했다.진서준은 한 걸음씩 다가가 갑판의 가장자리에 섰다.올기는 즉시 몸을 낮추고 머리를 갑판에 놓아 진서준이 그 위에 올라설 수 있게 했다.“어마나? 이 거대한 용 주인이 저 사람인가?”“용존이란 칭호가 농담이 아닌가 보네.”“이 용존은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신화에서나 나오는 존재인 거대한 용이 사람을 머리 위에 태우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 경악했다.올기는 진서준에게 주인을 대하는 반려동물처럼 경건한 자세로 섬기고 있었다.레일린과 루도프 신왕도 이 모습을 주목했다.“이봐, 이 짐승을 키운 사람이
데이터를 삼킨 교룡이 깊은 바다로 도망쳤다.이 상황에서 지선이 오더라도 그 교룡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두 사람이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발톱으로도 예상할 수 있었다.유일하게 죽음을 피할 방법은 진서준의 시체를 가져가는 것뿐이었다.용존이자 국안부의 상경은 대한민국 일인자 천재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다.그런 대단한 인물을 죽이면 오히려 두 사람은 공을 세운 셈이 될 것이다.“이세아 씨, 우리도 내려가서 도와줄까요?”이세아 뒤에 있던 한 노인이 물었다.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진서준이 혼자서 둘을 상대하는 걸 보고 다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개입한다면 명양사해 경매회가 이후 멸용 조직과 올림푸스 신전 두 대형 조직에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이세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그냥 놔두는 게 나을 거예요. 국안부를 위해서 세계급 조직 두 개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죠.”다른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놨다.멀리서 박서명이 데려온 대종사 세 명도 진서준을 도와야 할지 묻고 있었다.“잠깐 기다려보자. 용존이 이길 가능성이 보이면 그때 도와주자.”박서명이 결정을 내렸다.“저 두 사람은 천의방 강자야. 함부로 나섰다간 자칫 우리만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어.”천의방에 있는 강자들의 정보를 거의 다 파악한 박서명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바로 정보가 떠올랐다.레일린은 천의방 46위로 황혼 기사보다 강했고 루도프 신왕은 천의방 79위에 있었다.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명주시에서 아무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한낱 상인으로서 박서명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이익을 추구하고 위험을 피하는 쪽이었다.“스승님, 진 마스터가 위험에 빠진 것 같습니다.”곽윤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섣불리 움직이지 마. 내게 조금만 회복할 시간을 주면 그때 용존님을 도울 거야.”손원순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아까 황혼 기사의 공격을 받고 크게 다친 손원순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지금
그런 레일린이 올림푸스 신전의 신왕과 힘을 합친 지금 이 청년을 이기지 못한다니, 너무나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가는 상황이었다.루도프도 마찬가지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편, 진서준의 뒤에 있던 네 마리 용이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하늘을 누비다가 진서준의 등을 향해 모여들어 두 팔로 뻗어갔다.그러자 진서준의 두 팔꿈치에 각각 용 두 마리가 나타났다.“이제 내 차례야.”진서준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조금 전 그 일격은 진서준이 두 사람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이제 진서준은 반격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찌지직!순식간에 진서준의 옷이 찢어지며 완벽한 근육이 드러났다.진서준의 손가락에 낀 천용 반지는 더욱 눈부시게 빛났고 그 빛은 심지어 하늘의 달빛을 능가할 정도였다.진서준이 힘을 모아 주먹을 날리자 천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주먹이 날아가는 동시에 진서준의 두 팔에 있던 네 마리 용이 동시에 레일린과 루도프를 향해 돌진했다.거대한 용이 하늘로 솟구치자 바다가 갈라지며 거센 파도가 일었다.모두가 이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일이 있을 수 있지? 저 녀석이 멸세급 강자도 아닌데 이런 실력을 갖췄단 말인가?”이 한 방에서 멸세급 강자 수준의 실력을 감지한 레일린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이 힘은 산을 부수고 달도 짓밟을 수 있는 수준의 힘이었고 심지어 천지의 의지도 조금 응축한 것처럼 보였다.천지와 소통할 수 있는 건 오직 지선급 강자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눈 속에서 살기와 분노가 모두 사라지고 대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만 남은 두 사람은 느닷없는 공포가 밀려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두 사람의 강기는 이 거대한 용 앞에서 종이처럼 쉽게 찢어졌고 곧이어 그 거대한 용은 두 사람의 가슴에 거세게 부딪혔다.쿵!다음 순간, 두 사람은 발사한 폭탄처럼 뒤로 날아가 요트에 그대로 부딪혔다.풍덩!요트는 두 사람의 충격에 그대로 뒤집혀 바닷속으로 침몰했다.용이 사라지자 하늘과 바다가 순간 깊은 정
진서준은 배로 돌아갔다.진서준을 바라보는 주변 권력자들의 눈빛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하룻밤 사이에 천의방에 오른 절세 강자 세 명이 모두 한 사람의 손에 죽었다.지선이 아닌 이상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더 무서운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혹시 이 앞에 있는 청년은 이미 지선 경지에 오른 건가?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 것 같았다.진서준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황예은과 바이올렛 앞에 섰다.“날 죽여.”황예은의 눈은 흐릿하게 가라앉았다.나라를 배반하고 외부 세력과 결탁한 죄는 당연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진서준은 국안부 상경으로서 사후보고의 권한이 있었다.진서준이 여기서 황예은을 죽이지 않더라도 그녀가 명주시에 돌아가면 국가의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널 죽이면 황씨 가문은 어떻게 되지?”진서준이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다른 사람도 충분히 날 대신해 황씨 가문을 이끌 수 있어.”황예은은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하려고 했다.데이터를 넘기지 못했고 해외 조직도 천의방 강자 두 명을 잃었다.자기 아버지가 어떤 처지가 될지 상상만 해도 뻔했다.“그럼, 황현호는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죽으면 황현호는 과연 어떻게 될까?”진서준이 또 질문을 던졌다.황현호라는 단어에 황예은의 표정이 일시적으로 흔들렸다.황예은이 가장 염려하는 건 언제나 가족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나라를 배반하는 일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황현호가 막 부귀전승을 얻었는데 네가 황경영과 함께 처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녀석이 어떻게 할 것 같아?”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하자 황예은은 눈을 뜨고 무거운 말투로 대답했다.“당연히 원수를 찾아 복수하겠지.”“그렇겠지.”진서준이 말을 이어갔다.“왕권 부귀전승은 아무리 국내 4대 최강의 은세 종문이라고 해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비법이야. 그 전승이 세상에 드러나기라도 하면 상처 입은 사람이 바다에 빠진 것과 같아서 상어들이 끊임없이 몰려올 거야. 상황이 그렇게 번지면 황현호는
“네게 기회를 줄게. 서울에 남아서 우리 가족 안전을 책임져.”진서준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바이올렛을 쳐다보며 말하자 바이올렛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이제 내가 해외에 갔을 때 네 가족이 살아 있다면 내가 꼭 네 가족을 네게 데려다줄게.”진서준이 약속하자 바이올렛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고마워, 진서준.”바이올렛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진서준이 그녀를 처단하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주었다.“진 마스터님은 정말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강한 실력을 갖춘 것 같네요. 저 박서명은 진 마스터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이때 박서명이 급히 다가와 아첨하기 시작했다.박서명은 상인으로서의 눈매와 감각이 항상 예리했다.인터넷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박서명은 모든 자산을 전자상거래에 투자했다.그만큼 박서명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일화였다.“진 마스터님, 이제부터는 저희 박씨 가문 귀인이 되실 겁니다. 박씨 가문은 영원한 진 마스터님의 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박서명은 명주시 모든 권력자 앞에서 대놓고 입장을 밝혔다.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둘씩 다가가 명함을 건넸다.“진 마스터님, 저는 경동 그룹 강시찬입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진 마스터님, 저는 행다 그룹 허준우입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진 마스터님, 저는...”수많은 사람이 진서준을 겹겹이 둘러쌌다.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들 상류사회의 권력자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다들 순서대로 진서준 앞에서 공손히 대했다.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힘이 가져오는 영광이었다.진서준은 권력자들의 명함을 하나하나 받았다.이 명함들이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이 흩어진 후, 진서준이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은 20센티미터가 넘었고 그는 그 명함을 전부 허윤진에게 건넸다.“아버님에게 전해줘. 그분은 사업을 하시니 분명 이 명함들이 필요할 거야.”허윤진은 명함을 받아 들고 그 위에
방금 일어난 요란한 소동 때문에 천하 유람선은 방향을 돌려 명주시로 향했다.진서준은 이세아에게 끌려 유람선의 10층으로 갔다.이 층의 인테리어는 호텔의 연회 스타일과 비슷했는데 중앙에는 아주 큰 무도장이 있었다.무도장 한가운데서 한 서양 청년이 부드러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몇 쌍의 남녀가 무도장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사교춤은 아주 간단한데 허사연이 진서준에게 그 춤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자리에서 이세아와 춤추고 싶지 않았다.그 이유는 이세아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권력자들이 진서준과 이세아 사이의 관계를 오해할까 봐 걱정스러웠다.만약 그 소문이 허사연에게까지 전해진다면 진서준은 아무리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할 수 없을 것이다.“난 진서준과 춤을 출 거야.”허윤진은 단호한 태도로 진서준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허윤진 씨는 진서준 시누이잖아요. 이런 자리에서 진서준과 춤추는 건 적절하지 않죠.”이세아가 부드럽게 귀띔했다.“왜 적절하지 않죠?”허윤진이 이를 악물고 되물었다.이세아와 같은 여우도 진서준과 춤을 출 수 있는데 왜 자기는 안 된다는 거지?허윤진은 이미 이세아를 적으로 간주했다.“난 진서준과 그냥 친구일 뿐인데 허윤진 씨와 진서준은 이제 가족이 될 거잖아요. 가족 사이, 특히 시누이와 형부 사이에서 이런 춤을 추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죠.”이세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당당하게 말했다.같은 여자라 이세아는 허윤진의 생각을 눈치챘다.시누이와 형부 사이는 누구나 다 흥미진진하게 얘기할 수 있는 독특한 관계였다.“난 다른 사람 오해 따윈 두렵지 않아요. 어차피 진서준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허윤진도 당당하게 나왔다.진서준은 이 둘이 자기 생각을 하나도 물어보지 않아 좀 답답했다.여자란 본래 이렇게 강압적인 동물인가?“그래요? 허윤진 씨가 뜬소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그럼 첫 번째 춤은 허윤진 씨에게 양보하죠.”이세아가 갑자기 시원시원하게 진서준을
“진서준 씨, 모범수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높은 담장 밖엔 잡초가 무성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진서준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먼 곳을 바라봤다. 두 눈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감옥에 있는 3년 동안 엄마랑 서라는 잘 있나 모르겠네.”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엄마와 여동생은 단 한 번도 그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다. 이에 진서준은 걱정이 스치기 마련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서준은 헝겊을 가득 꿰맨 가방에서 편지 한 통 꺼냈다.편지봉투를 열자 안에는 쪽지와 ‘천기각’이라고 새겨진 옥패 한 개가 들어 있었다.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옥패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아마 가장 좋은 화씨 옥으로 조각한 듯싶다.진서준은 옥패를 허리춤에 차고 쪽지를 펼쳐보았는데 단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서준아, 넌 앞으로 천기각의 주인이고 이 옥패가 바로 그 증표야.」「내년 3월 꽃 필 무렵에 옥패를 가지고 신농산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이건 진서준이 출소 전에 감방 동기 구창욱 어르신께 받은 편지이다.구창욱 어르신은 종일 신경질적이어서 감방에 아무도 그와 얘기 나누려는 자가 없다. 오직 진서준만 별일 없을 때 어르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눈다.어르신은 매일 자신이 천기각 주인이라고 허풍을 치셨다. 천문학과 지리학을 꿰뚫고 의술도 뛰어나다고 하셨다.진서준은 애초에 어르신이 자신을 속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어르신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온갖 기이한 것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3년 동안 진서준은 많은 재능을 습득했다.이젠 그의 두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감옥에 들어온 이유는 바야흐로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3년 전 진서준은 여자 친구 유지수와 함께 갓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어느 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이지성이라는 바이어가 유지수를 탐내면서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다.진서준은 한창 젊고 패기가 넘쳐 술병을 번쩍 들더니 이지성의 얼굴에 가차 없이 내리쳤다.결국...
방금 일어난 요란한 소동 때문에 천하 유람선은 방향을 돌려 명주시로 향했다.진서준은 이세아에게 끌려 유람선의 10층으로 갔다.이 층의 인테리어는 호텔의 연회 스타일과 비슷했는데 중앙에는 아주 큰 무도장이 있었다.무도장 한가운데서 한 서양 청년이 부드러운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몇 쌍의 남녀가 무도장에서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사교춤은 아주 간단한데 허사연이 진서준에게 그 춤을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자리에서 이세아와 춤추고 싶지 않았다.그 이유는 이세아의 외모 때문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권력자들이 진서준과 이세아 사이의 관계를 오해할까 봐 걱정스러웠다.만약 그 소문이 허사연에게까지 전해진다면 진서준은 아무리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할 수 없을 것이다.“난 진서준과 춤을 출 거야.”허윤진은 단호한 태도로 진서준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허윤진 씨는 진서준 시누이잖아요. 이런 자리에서 진서준과 춤추는 건 적절하지 않죠.”이세아가 부드럽게 귀띔했다.“왜 적절하지 않죠?”허윤진이 이를 악물고 되물었다.이세아와 같은 여우도 진서준과 춤을 출 수 있는데 왜 자기는 안 된다는 거지?허윤진은 이미 이세아를 적으로 간주했다.“난 진서준과 그냥 친구일 뿐인데 허윤진 씨와 진서준은 이제 가족이 될 거잖아요. 가족 사이, 특히 시누이와 형부 사이에서 이런 춤을 추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죠.”이세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당당하게 말했다.같은 여자라 이세아는 허윤진의 생각을 눈치챘다.시누이와 형부 사이는 누구나 다 흥미진진하게 얘기할 수 있는 독특한 관계였다.“난 다른 사람 오해 따윈 두렵지 않아요. 어차피 진서준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허윤진도 당당하게 나왔다.진서준은 이 둘이 자기 생각을 하나도 물어보지 않아 좀 답답했다.여자란 본래 이렇게 강압적인 동물인가?“그래요? 허윤진 씨가 뜬소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그럼 첫 번째 춤은 허윤진 씨에게 양보하죠.”이세아가 갑자기 시원시원하게 진서준을
“네게 기회를 줄게. 서울에 남아서 우리 가족 안전을 책임져.”진서준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바이올렛을 쳐다보며 말하자 바이올렛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이제 내가 해외에 갔을 때 네 가족이 살아 있다면 내가 꼭 네 가족을 네게 데려다줄게.”진서준이 약속하자 바이올렛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고마워, 진서준.”바이올렛은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진서준이 그녀를 처단하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주었다.“진 마스터님은 정말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강한 실력을 갖춘 것 같네요. 저 박서명은 진 마스터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이때 박서명이 급히 다가와 아첨하기 시작했다.박서명은 상인으로서의 눈매와 감각이 항상 예리했다.인터넷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박서명은 모든 자산을 전자상거래에 투자했다.그만큼 박서명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일화였다.“진 마스터님, 이제부터는 저희 박씨 가문 귀인이 되실 겁니다. 박씨 가문은 영원한 진 마스터님의 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박서명은 명주시 모든 권력자 앞에서 대놓고 입장을 밝혔다.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둘씩 다가가 명함을 건넸다.“진 마스터님, 저는 경동 그룹 강시찬입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진 마스터님, 저는 행다 그룹 허준우입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진 마스터님, 저는...”수많은 사람이 진서준을 겹겹이 둘러쌌다.평범한 사람들에게 이들 상류사회의 권력자는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다들 순서대로 진서준 앞에서 공손히 대했다.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힘이 가져오는 영광이었다.진서준은 권력자들의 명함을 하나하나 받았다.이 명함들이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이 흩어진 후, 진서준이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은 20센티미터가 넘었고 그는 그 명함을 전부 허윤진에게 건넸다.“아버님에게 전해줘. 그분은 사업을 하시니 분명 이 명함들이 필요할 거야.”허윤진은 명함을 받아 들고 그 위에
진서준은 배로 돌아갔다.진서준을 바라보는 주변 권력자들의 눈빛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하룻밤 사이에 천의방에 오른 절세 강자 세 명이 모두 한 사람의 손에 죽었다.지선이 아닌 이상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까?더 무서운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혹시 이 앞에 있는 청년은 이미 지선 경지에 오른 건가?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 것 같았다.진서준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황예은과 바이올렛 앞에 섰다.“날 죽여.”황예은의 눈은 흐릿하게 가라앉았다.나라를 배반하고 외부 세력과 결탁한 죄는 당연히 사형에 처해야 한다.진서준은 국안부 상경으로서 사후보고의 권한이 있었다.진서준이 여기서 황예은을 죽이지 않더라도 그녀가 명주시에 돌아가면 국가의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널 죽이면 황씨 가문은 어떻게 되지?”진서준이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다른 사람도 충분히 날 대신해 황씨 가문을 이끌 수 있어.”황예은은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하려고 했다.데이터를 넘기지 못했고 해외 조직도 천의방 강자 두 명을 잃었다.자기 아버지가 어떤 처지가 될지 상상만 해도 뻔했다.“그럼, 황현호는 어떻게 할 거야? 네가 죽으면 황현호는 과연 어떻게 될까?”진서준이 또 질문을 던졌다.황현호라는 단어에 황예은의 표정이 일시적으로 흔들렸다.황예은이 가장 염려하는 건 언제나 가족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나라를 배반하는 일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황현호가 막 부귀전승을 얻었는데 네가 황경영과 함께 처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녀석이 어떻게 할 것 같아?”진서준이 차분하게 말하자 황예은은 눈을 뜨고 무거운 말투로 대답했다.“당연히 원수를 찾아 복수하겠지.”“그렇겠지.”진서준이 말을 이어갔다.“왕권 부귀전승은 아무리 국내 4대 최강의 은세 종문이라고 해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비법이야. 그 전승이 세상에 드러나기라도 하면 상처 입은 사람이 바다에 빠진 것과 같아서 상어들이 끊임없이 몰려올 거야. 상황이 그렇게 번지면 황현호는
그런 레일린이 올림푸스 신전의 신왕과 힘을 합친 지금 이 청년을 이기지 못한다니, 너무나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가는 상황이었다.루도프도 마찬가지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편, 진서준의 뒤에 있던 네 마리 용이 우렁차게 울부짖으며 하늘을 누비다가 진서준의 등을 향해 모여들어 두 팔로 뻗어갔다.그러자 진서준의 두 팔꿈치에 각각 용 두 마리가 나타났다.“이제 내 차례야.”진서준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조금 전 그 일격은 진서준이 두 사람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이제 진서준은 반격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찌지직!순식간에 진서준의 옷이 찢어지며 완벽한 근육이 드러났다.진서준의 손가락에 낀 천용 반지는 더욱 눈부시게 빛났고 그 빛은 심지어 하늘의 달빛을 능가할 정도였다.진서준이 힘을 모아 주먹을 날리자 천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주먹이 날아가는 동시에 진서준의 두 팔에 있던 네 마리 용이 동시에 레일린과 루도프를 향해 돌진했다.거대한 용이 하늘로 솟구치자 바다가 갈라지며 거센 파도가 일었다.모두가 이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일이 있을 수 있지? 저 녀석이 멸세급 강자도 아닌데 이런 실력을 갖췄단 말인가?”이 한 방에서 멸세급 강자 수준의 실력을 감지한 레일린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이 힘은 산을 부수고 달도 짓밟을 수 있는 수준의 힘이었고 심지어 천지의 의지도 조금 응축한 것처럼 보였다.천지와 소통할 수 있는 건 오직 지선급 강자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눈 속에서 살기와 분노가 모두 사라지고 대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만 남은 두 사람은 느닷없는 공포가 밀려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두 사람의 강기는 이 거대한 용 앞에서 종이처럼 쉽게 찢어졌고 곧이어 그 거대한 용은 두 사람의 가슴에 거세게 부딪혔다.쿵!다음 순간, 두 사람은 발사한 폭탄처럼 뒤로 날아가 요트에 그대로 부딪혔다.풍덩!요트는 두 사람의 충격에 그대로 뒤집혀 바닷속으로 침몰했다.용이 사라지자 하늘과 바다가 순간 깊은 정
데이터를 삼킨 교룡이 깊은 바다로 도망쳤다.이 상황에서 지선이 오더라도 그 교룡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두 사람이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발톱으로도 예상할 수 있었다.유일하게 죽음을 피할 방법은 진서준의 시체를 가져가는 것뿐이었다.용존이자 국안부의 상경은 대한민국 일인자 천재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다.그런 대단한 인물을 죽이면 오히려 두 사람은 공을 세운 셈이 될 것이다.“이세아 씨, 우리도 내려가서 도와줄까요?”이세아 뒤에 있던 한 노인이 물었다.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진서준이 혼자서 둘을 상대하는 걸 보고 다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개입한다면 명양사해 경매회가 이후 멸용 조직과 올림푸스 신전 두 대형 조직에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었다.이세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그냥 놔두는 게 나을 거예요. 국안부를 위해서 세계급 조직 두 개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죠.”다른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어놨다.멀리서 박서명이 데려온 대종사 세 명도 진서준을 도와야 할지 묻고 있었다.“잠깐 기다려보자. 용존이 이길 가능성이 보이면 그때 도와주자.”박서명이 결정을 내렸다.“저 두 사람은 천의방 강자야. 함부로 나섰다간 자칫 우리만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어.”천의방에 있는 강자들의 정보를 거의 다 파악한 박서명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바로 정보가 떠올랐다.레일린은 천의방 46위로 황혼 기사보다 강했고 루도프 신왕은 천의방 79위에 있었다.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명주시에서 아무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한낱 상인으로서 박서명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이익을 추구하고 위험을 피하는 쪽이었다.“스승님, 진 마스터가 위험에 빠진 것 같습니다.”곽윤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섣불리 움직이지 마. 내게 조금만 회복할 시간을 주면 그때 용존님을 도울 거야.”손원순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아까 황혼 기사의 공격을 받고 크게 다친 손원순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지금
그때는 올기의 실력이 대단했지만 천 년 동안 봉인된 후, 그 실력은 이미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만약 올기의 오만한 성격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죽는 길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이 짐승은 온몸이 보물 창고야. 죽인 후에 이 짐승을 그대로 가져가자.”레일린이 루도프에게 소리쳤다.올기는 두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욕망 가득한 눈빛을 보고 순간 두 사람이 자기를 먹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자기가 이 두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올기는 갑자기 몸을 낮추어 바다로 향해 질주했다.올기의 몸이 바다에 떨어지며 운석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처럼 주변 백 미터의 바닷물이 솟구쳐 백 미터의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그 거대한 파도가 천하 유람선을 향해 몰려갔다.천하 유람선이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릴 것 같아지자 갑판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인물이 일제히 힘을 합쳐 그 거대한 파도를 갈랐다.유람선이 무사히 파도를 뚫어버리자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그 다섯 명은 이씨 가문에서 초빙한 칠급 강자였다.이때, 피로 물든 채 비참한 모습의 올기가 다시 바다에서 튀어나왔다.레일린과 루도프 두 사람은 여전히 올기의 몸을 꼭 붙잡고 있었다.“크악!”올기는 거대한 몸을 바다 위에 드러내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며 진서준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듯했다.진서준은 한 걸음씩 다가가 갑판의 가장자리에 섰다.올기는 즉시 몸을 낮추고 머리를 갑판에 놓아 진서준이 그 위에 올라설 수 있게 했다.“어마나? 이 거대한 용 주인이 저 사람인가?”“용존이란 칭호가 농담이 아닌가 보네.”“이 용존은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신화에서나 나오는 존재인 거대한 용이 사람을 머리 위에 태우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 경악했다.올기는 진서준에게 주인을 대하는 반려동물처럼 경건한 자세로 섬기고 있었다.레일린과 루도프 신왕도 이 모습을 주목했다.“이봐, 이 짐승을 키운 사람이
일반 사람이라면 올기처럼 거대한 교룡이 갑자기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도망가겠지만 레일린은 달랐다.해외에서 수년간 활발하게 움직였던 레일린은 특이한 괴물들을 많이 봐왔다.올기라는 교룡은 레일린에게 있어 단지 체형이 일반 괴물보다 조금 더 큰 괴물일 뿐이었다.두 사람의 모습이 순간 번쩍이며 순식간에 요트 갑판에서 사라졌다.두 사람은 10여 미터를 훌쩍 뛰어오르며 올기 앞에 나타났다.살기 가득한 두 사람은 올기를 더욱 화나게 했다.올기는 이래 봬도 고귀한 교룡 일족이기 때문이었다.“으르렁!”용의 울음소리와 매우 비슷한 포효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철썩! 철썩!그 포효에 바닷물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미친 듯이 출렁이기 시작했다.무려 천 톤이 넘는 대형 유람선인 천하 유람선도 요트와 함께 떨기 시작했다.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은 급히 난간을 잡고 두려움에 떨며 올기를 바라보았다.“저 두 사람은 누구지? 어떻게 감히 교룡까지 건드릴 수 있지?”“보아하니 해외에서 온 사람인 것 같은데, 저 사람들이 왜 요트를 타고 여기로 왔을까?”사람들이 불안하고 궁금해하는 가운데, 올기와 레일린은 이미 충돌이 일어났다.이 두 사람은 천의방 강자답게 강기를 다루는 능력이 대단했다.두 사람은 올기의 무시무시하고 신속한 공격을 연속으로 막아냈다.올기의 발톱과 입속에서 나오는 화염이 두 사람 앞에 펼쳐진 강기에 닿자 고작 작은 균열만 만들었을 뿐, 그들 두 사람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레일린은 올기의 힘을 이용해 올기의 뒤로 돌아갔다.레일린이 손에 쥔 붉은 장검의 칼날 위에는 늑대인간이 새겨져 있었다.레일린이 강기를 다루자 칼날 위에 새겨진 늑대인간의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다음 순간, 레일린은 장검을 거세게 휘둘러 올기을 향해 내리쳤다.올기의 비늘은 강철처럼 단단해 심지어 스나이퍼의 총알도 관통할 수 없었다.칼날이 떨어지자 금속이 부딪히는 충돌 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찢었다.순간 올기는 등에서 찌릿한 아픔이 느껴졌고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네가 가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거야. 네가 날 구해준 은혜가 있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래서 널 해치고 싶지 않아. 그러니 제발 우리 가족을 구할 기회를 한 번만 줘.”바이올렛이 그 당시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멸용 조직 조직이 그녀와 진서준과의 관계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바이올렛은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황예은과 접선하게 된 것이다.“네가 돌아가면 네 가족은 살아남을 수 있어. 그 대신 우리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셀 수 없이 많이 사람들이 고통받게 될 거야. 물건은 두고 가. 네 가족은 내가 어떻게든 구출할 방법을 찾을 거야.”진서준이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대화가 진행될 때, 유람선 앞쪽에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2층 높이의 요트가 바다 위로 나타났다.요트의 2층 갑판 위에는 두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두 명은 모두 서양인 얼굴이었다.한 사람은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남자였는데 기운을 깊게 누르고 있었다.그 남자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거대한 산처럼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감돌고 있었다.다른 한 사람은 금발의 머리카락이 어깨에 흩날리는 남자였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바로 저 사람들이야.”바이올렛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눈 속에 증오의 기운이 번뜩였다.“저 사람들은 누구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그날 우리 혈수를 죽였던 자들이야. 저 금발 남자는 레일린이야. 멸용 조직 소속인데 실력이 거의 멸세급이야. 너희 대한민국의 말로는 구급 정점 대종사 실력이야. 붉은 머리 남자는 올림푸스 신전 신왕 루도프야. 팔급 대종사급 실력이지. 이 두 사람은 모두 천의방에 올라와 있어.”바이올렛은 진서준에게 두 사람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이따가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저 둘은 물건을 챙기면 바로 떠날 거야.”두 사람 다 천의방 강자였다.그중 한 명은 심지어 구급 정점 대종사급 실력이었다.진서준이 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어도 혼자서 이 두 사람을 상대할
바이올렛!멸용 조직, 올림푸스 신전, 그리고 교회라는 세 개의 최강 세력이 연합하여 혈수사들을 멸망시켰는데 유일하게 바이올렛만 혼자 탈출했다.당시 진서준도 조금 의문을 품었다.하지만 진서준이 누구를 시켜 자세하게 조사하기 전에 황예은에게 또 사건이 발생해서 모든 관심이 황예은에게로 집중되었다.방금 진서준이 서지은과 허윤진을 찾아갔을 때 황예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지금까지 황예은은 돌아오지 않았고 어떤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황예은과 바이올렛의 관계가 훨씬 더 의심스러웠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서준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유람선은 규모가 어마어마했기에 진서준은 매 층마다 돌아가며 그녀들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진서준이 유람선에서 내릴 때까지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이세아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이세아, 황예은을 찾아줄 수 있겠어?”진서준이 진지하게 말하자 이세아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응답했다.“알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소식이 들어왔다.한 웨이터가 황예은과 한 외국 여성이 갑판에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때 갑자기 선원이 급히 들어왔다.“이 아가씨, 유람선 앞쪽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요트가 정박해 있습니다.”진서준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즉시 갑판으로 달려갔다.서지은과 허윤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진서준이 이렇게 황급하게 움직이자 군말 없이 진서준을 따라갔다.갑판 위에 깊은 밤이 물들고 있었다.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서늘한 기운을 더했다.갑판 위의 사람은 몇 명 안 되었다.진서준은 갑판에 도착하자마자 황예은과 바이올렛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 순간, 진서준은 지금까지 틀린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고 황예은에게 완전히 속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황예은!”진서준은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이름을 불렀다.바이올렛은 진서준이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무섭게 다가오는 걸 보자 깜짝 놀라며 연신 뒤로 물러섰다.황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