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동은 결국 심국도 형제가 군사 기지로 이송되며 끝을 맺었다.심씨 가문의 다른 직계들도 자연스레 전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수년 동안 동북에서 위세를 떨쳤던 심씨 가문은 이렇게 단 몇 시간 만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일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더욱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군대의 부장급 고위 인사도 상대할 수 없다니, 용존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진서준은 허사연 자매를 먼저 조씨 가문에 보내고 동북 군구의 일인자와 또 다른 조용한 곳으로 가서 대화를 나누었다.“아직 이렇게 새파란 나이에 벌써 영웅급 실력이구먼.”최해준이 진서준을 보는 눈빛에는 칭찬과 감탄이 가득했다.스무 살 남짓한 아이에 벌써 이렇게 대단한 성과를 올리다니,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이런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최 수장님, 과찬입니다.”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탁자 위에 반짝이는 소장 계급 훈장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났다.진서준은 그 훈장을 흘끗 보고 나서 물었다.“최 수장님이 직접 오신 걸 보니 제게 단지 군대 계급 증서를 전해주시려는 것만은 아니죠?”“똑똑한 사람은 눈치가 빨라 참 좋아.”최해준은 웃으며 진서준을 칭찬했고 이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번에 널 찾은 건 사실 네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야.”“설표 특전대 훈련을 맡으라는 겁니까?”“그것도 부탁 중의 하나긴 해. 네가 참 잘 훈련했던 것 같아. 설표 특전대 그 애들이 정말 눈에 띌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생겼어.”설표 특전대의 변화는 최해준도 유심히 눈여겨보았기에 진서준에게 소장 계급 훈장이 내려진 것이다.“최 수장님, 이전에 소 사령관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전 요즘 급히 해야 할 일이 었어서...”“네가 바쁜 건 나도 알아. 근데 이 일은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최해준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우리는 최근에 정보를 하나 받았어. 며칠 후, 우리 내부에 숨어 있는 간첩이 명주시에서 유람선을 타는데 그 배에서 초아국 사람
“진서준 씨, 정말 그렇게 무정하신 건가요?”허순재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무정하다고? 아까 호텔에서 내가 너희에게 기회를 안 줬어?”진서준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기회를 놓친 건 너희잖아. 지금 와서 날 탓한다고? 웃기지 마. 너희 집안이 이렇게 망한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진서준이 감옥에서 막 나왔을 때, 허성태는 진서준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모든 걸 진서준에게 걸었다.허성태가 부유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진서준을 제대로 알아본 덕분이었다.사람 보는 눈이 예리하지 않다면 결국 눈앞의 허씨 가문처럼 가난과 몰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허씨 가문 사람들을 밀쳐내고 진서준은 냉랭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조씨 가문 저택으로 걸어갔다.“할아버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뭘 어떻게 하겠어? 당연히 집에 돌아가야지.”허순재가 이를 악물고 핀잔을 줬다.“쳇, 자기가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저렇게 싸가지 없게 굴어? 저 녀석 없어도 우리 허씨 가문은 무조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야.”강정숙은 비굴하게 아첨하던 표정을 지우고 대신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허씨 가문이 진짜 돈 많은 명문대가로 부상해 동북 지방 가문의 정점에 오르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수준이었다.“진서준 오빠, 오늘 바로 떠나려는 건가요?”진서준이 오늘 오후에 떠난다는 말을 들은 조민영은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사실 조민영만 아쉬운 게 아니라 조태희도 진서준이 떠나는 게 아쉬운 듯했다.진서준이 여기에 있으면 조민영은 진서준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고 자연스레 조민영이 진서준과 감정을 발전시킬 기회가 생길 터였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오늘 떠나야죠. 제가 동북에 있은 시간이 꽤 길었어요.”“그렇군요, 그럼 다음엔 언제 또 오시나요?”조민영이 또 질문을 던졌다.“그건 저도 잘 모르
늦은 밤에 진서준 일행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시에 도착했다.오랫동안 진서준을 보지 못한 조희선 일행은 진서준이 갑자기 돌아온 것에 놀라며 기뻐했다.“서준아, 오기 전에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어?”조희선은 무척 기뻐하며 진서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혔다.“어머님, 서준이 어머님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말하지 않고 온 거예요.”허사연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사연아, 그동안 우리 아들 서준이를 잘 돌봐주느라 수고했어.”조희선은 허사연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니에요, 저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허사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진서라도 허사연을 거들었다.“엄마, 그렇게 말하면 사연 언니가 너무 부담스러울 거잖아요.”“맞아, 그 말이 맞아. 엄마가 선 그은 것 같구나.”조희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아참, 어머님, 이번에 동북에서 돌아오면서 작은 선물을 몇 개 준비했어요.”허윤진은 급히 가방에서 작은 상자 몇 개를 꺼냈다.상자 안에는 얼음 조각상이 들어 있었다.이 얼음 조각들은 조희선 일행의 모습을 본떠 만든 귀여운 캐릭터였다.얼음 조각은 고온에 노출되면 녹지만 진서준이 영기를 얼음 조각에 부여해 영기가 유지되는 한, 이 얼음 조각들이 녹을 일은 없었다.선물은 비싸고 싸고를 떠나 그 선물에 깃든 정성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을 보자 조희선 일행은 신나서 어쩔 바를 몰랐다.“어머님, 저랑 윤진은 먼저 집에 가볼게요. 내일 다시 뵐게요.”잠시 한담을 나눈 후, 허사연과 허윤진이 일어나 집에 돌아가려고 했다.“서준아, 사연 자매를 배웅해 줘야지.”조희선의 말에 진서준도 벌떡 일어났다.“알았어요.”진서준은 차를 몰고 허사연 자매를 허씨 가문 별장까지 데려다준 뒤,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서준아, 이번엔 집에 얼마나 있을 거야?”조심스레 묻는 조희선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조희선도 아들 진서준이 더
두 사람이 올라가자 김연아는 그제야 진서준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눈빛 하나로 천 마디 말을 대신하는 듯했다.진서준도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앞으로 다가가 김연아를 품에 안고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탐욕스럽게 들이켰다.“요 며칠 다치거나 아픈 데는 없었어?”김연아는 눈을 반쯤 감고 진서준의 따뜻한 품에 몸을 맡긴 채 물었다.잠시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다치긴 했어.”“응? 어디 다쳤어?”김연아는 깜짝 놀라며 진서준을 쳐다보았다.“네가 직접 확인해 볼래?”진서준은 김연아가 자기 말에 속았다는 걸 눈치채고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김연아는 말없이 진서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윗옷을 벗기고 나서 온몸을 훑어봤지만 이상하게도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위가 아니고 아래를 다친 거야?”김연아는 얼굴이 붉어졌다.“응, 아니면 방으로 가서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볼래?”진서준의 숨결이 거칠어졌고 그의 손은 김연아의 부드러운 허리선 위를 가볍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그제야 김연아는 진서준의 의도를 파악했다.진서준은 사실 다치지 않았고 그저 김연아와 장난치려고 한 수작이었다.김연아가 고개를 숙이던 순간, 갑자기 그녀의 발밑에 하얀 작은 원숭이가 나타났다.“어머, 여기서 원숭이가 왜 나와?”김연아는 깜짝 놀라며 진서준의 품으로 뛰어들었다.“하얀아, 밖에 나가 누렁이랑 놀아.”진서준은 하얀이를 발로 가볍게 툭툭 쳤다.주인에게 발로 차인 하얀이는 화내지 않고 머리로 진서준의 바지를 비비더니 거실을 나갔다.“이제 괜찮지? 하얀이는 나갔어... 네가 걷기 불편하면 내가 안고 올라갈게.”진서준은 품속에 안긴 김연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김연아의 하얀 목덜미는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녀가 이 상황이 얼마나 쑥스러운지 고스란히 드러났다.“대답하지 않으면 인정한 걸로 할게.”진서준은 김연아를 안고 자기 방으로 갔다.방문을 잠그고 진서준은 재빨리 남은 옷을 벗어 던졌다.
이른 아침, 첫 번째 햇살이 얇은 커튼을 통과해 진서준의 얼굴에 비쳤다.새로 떠오른 태양의 온도를 느끼며 진서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연아아...”눈을 뜬 첫 번째 일이 바로 김연아를 찾는 거였지만 그녀가 옆에 없다는 걸 진서준은 이내 깨달았다.진서준이 깨어나기 전에 김연아는 이미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비록 조희선과 진서라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김연아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진서준의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는 걸 원치 않았다.진서준은 찬물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1층으로 내려갔다.“엄마, 서라야, 벌써 일어났네?”엄마와 여동생이 벌써 일어나서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본 진서준은 깜짝 놀랐다.“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어. 누워 있으면 오히려 불편해지더라.”조희선은 웃으며 대답하더니 이내 진서준에게 눈짓을 보냈다.“연아는 일어났어?”다른 사람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진서준도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이미 자기 방으로 갔어요.”진서준은 말을 끝내고 바로 거실을 허겁지겁 빠져나갔다.“어머, 서준이 쑥스러워할 줄은 몰랐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조희선은 빙그레 웃었다.“엄마, 오빠가 저렇게 하면 사연 언니가 뭐라고 안 할까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럴 리 없어, 사연은 똑똑한 아이야.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었다면 연아가 집에 있을 수 없었을 거야. 대신 진서준이 이 여자애들에게 좀 미안한 게 많겠지.” 조희선은 한숨을 쉬며 자기 속내를 털어놨다.앞마당에 도착한 진서준은 그곳의 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본래 거울처럼 깔끔하고 평평했던 잔디밭은 지금 구덩이들로 가득했고 흰색과 노란색 털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그 털들을 보자 진서준은 곧바로 누가 이곳에서 소란을 피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누렁이야, 하얀이야! 너희 둘, 얼른 이리 와!”진서준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진서준의 목소리를 듣자 바닥에 엎드려 자던 둘은 즉시 일어나 벌벌 떨며 진서준에게 다가갔다.“이 구덩이들은 너희가
허사연 자매가 이렇게 화사하게 꾸민 이유는 바로 진서준을 위해서였다.“서준아, 왜 두 귀염둥이를 괴롭히고 있어?”누렁이와 하얀이가 일하는 모습을 보자 허사연이 웃으며 물었다.진서준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난 지금 괴롭히는 게 아니야. 이 난장판은 이 두 녀석이 만들어낸 거야.”두 귀염둥이가 이 난장판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자 허윤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두 귀염둥이가 힘이 꽤 센가 보네.”허윤진의 지금 실력으로는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난장판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조기강도 하얀이 상대가 안 돼. 이 정도면 대충 얘네 실력이 짐작돼?”진서준이 웃으며 해명하자 이번에는 허사연도 깜짝 놀랐다.“뭐? 조기강도 하얀이 상대가 안 된다고?”조기강은 검존이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로 그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그렇게 강력한 인물도 하얀이를 상대하지 못했는데 진서준은 도대체 어떻게 이 하얀이를 자기 애완동물로 길들인 걸까?그 순간, 허사연 자매가 진서준을 향한 경외심이 더 커졌다.“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그때 이 녀석을 만났을 때 이 녀석도 다친 상태였어.”솔직하게 해명한 진서준이 화제를 돌렸다.“너희 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버님이랑 더 있지 그래?”“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어.”허사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젯밤 집에 돌아가자마자 허성태는 딸들을 붙잡고 한참 근황을 얘기한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부탁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실실 웃으며 말했다.“한 집안 사람끼리 이렇게 격식 차리지 말고 편하게 말해.”그러자 허사연도 더는 숨기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부시장 서정훈을 기억해?”당시 진서준과 서정훈의 아들 서현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을 때, 그 시장은 의외로 자기 아들을 편들지 않았다.그 사람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청렴하고 정직한 정치인으로 소문난 인물인지라 진서준이 진심으로 감탄하는 관료였다.“기억나,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진서준이
아침을 먹고 진서준과 허사연, 허윤진은 차를 타고 서정훈의 집으로 갔다.작년과 마찬가지로 집 앞에는 대문짝만한 설날 글귀 외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내가 문 두드릴게.”허사연이 바로 앞장서서 문을 두드렸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집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사모님, 저예요!”허사연이 이내 대답했다.심해윤은 허사연의 목소리를 듣자 얼른 문을 열었다.“사연아, 왜 또 왔어?”심해윤은 문을 열고 의아한 얼굴로 허사연을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허사연 자매가 왔었고 이제 겨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또 왔다니, 혹시 허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겨서 자기와 서정훈에게 부탁하러 온 걸까?심해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심해윤은 인사처의 처장이었고 서정훈은 서울시의 시장이었다.이런 높은 신분을 갖춘 부부였기에 매일 그들 부부에게 뭔가를 부탁하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서정훈이 공정하고 청렴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서씨 가문 문턱을 드나들며 닳았을 것이다.“사모님, 오늘 서현욱을 치료하려고 진서준을 데리고 왔어요.”허사연이 즉시 설명했다.“응? 진서준도 왔다고?”진서준을 발견하자 심해윤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이내 눈빛에 걱정이 스쳤다.심해윤은 진서준의 의술 실력을 잘 알지만 진서준과 서현욱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현재 서현욱의 상태는 매우 불안정했고 이따가 두 사람이 재회해 서현욱이 다시 진서준을 욕하며 흥분한다면 큰일이었다.“사모님, 오랜만이에요.”진서준이 웃으며 선뜻 인사했다.“정말 오랜만이네. 얼른 들어와.”심해윤은 세 사람을 친절하게 집 안으로 안내했다.집 안에 들어간 진서준이 거실을 둘러보자 작년보다 더 간소하게 꾸며져 있는 걸 발견했다.이런 인테리어는 시장이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을 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편하게 앉아. 내가 물 좀 갖다줄게.”“그렇게 번거롭게 안 해도 돼요. 진서준이 서현욱 치료하는 게 더 빠를 거예요.” 허사연은
심해윤의 설명을 들은 후, 진서준과 허사연은 즉시 상황을 파악했고 서정훈 부부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상대방이 이렇게 부모의 아픈 약점을 건드리는 비겁한 수단까지 사용하는데 이런 유혹도 버텨내는 걸 보니 이 부부는 정말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청렴한 관료였다.진서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사모님, 서현욱과 서 시장님은 지금 어느 병원에 있죠?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서울시 시립병원에 있어. 나도 너희와 함께 갈게.”망설일 시간이 없이 진서준과 심해윤은 바로 차를 몰고 시립병원으로 향했다....서울시 시립병원 고급 병실.서현욱 부자 외에도 세 명이 있었다.그중 한 명은 정장을 차려입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한 중년 남성이었는데 그는 바로 명주에서 온 상인 박운기였다.박운기 외에도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박운기가 모신 명의였다.그리고 또 한 명은 염소수염을 기르고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신비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자였다.“우 의사님, 서 도련님의 병은 언제쯤 치료될 수 있나요?”박운기의 질문에 서씨 부자의 마음도 덩달아 들떠 올랐다.그들 두 사람도 이 질문의 답을 정말 듣고 싶었다.하얀 가운을 입은 우도운은 그 질문에 미간을 찌푸렸다.“박 사장님, 방금 모든 기계를 이용해 검사해봤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 제 생각엔 환자가 몸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서현욱은 뜻밖의 대답에 놀랐다.“내가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요?”“맞아요.”우도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설명했다.“어떤 남자들은 이런 일에 심리적 장애가 생겨서 제 노릇을 못 하는 경우가 있어요. 서 도련님님, 과거에 그런 심리적 장애가 있었던 적이 있나요?”우도운의 질문에 서현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심리적 장애를 유발할 만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동안 자기와 관계를 맺었던 여성들은 모두 자발적이었고 하나같이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 그런 심리적 장애는 있을 리가
그러니 박운기의 협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그럼 박씨 가문 사람들이 서울시로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서정훈은 쌀쌀하게 한마디 한 후, 휴대폰을 꺼내 시청에 전화를 걸었다.잠시 후, 정장을 입은 일행이 호텔에 도착했고 서정훈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바로 박운기를 체포했다.돌아오는 길에 서정훈은 진서준의 손을 잡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서준아, 오늘 정말 고마워. 우리 아들 병을 치료해 줘서 우리 서씨 가문에 후손이 없을 가능성은 사라졌어. 게다가 지금은 또 이렇게 악당을 잡아줘서 서울시를 구해줬잖아. 진짜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서정훈를 보며 진서준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서 시장님,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실 건 없어요. 저는 단지 우리나라와 고향을 위해 힘을 쓴 것뿐이에요.”“사실 나중에 네가 서울에서 머리 아픈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배후에서 널 후원할 생각이었어...”서정훈은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네가 벌써 날 훌쩍 뛰어넘어 국안부 사람이 된 건 생각지도 못했구나... 정말 먼저 난 머리보다 후에 난 뿔이 무섭다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것 같지 않구나.”서정훈의 점심 식사 초대를 거절한 후, 진서준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드디어 돌아왔구나.”진서준이 나타나자 허사연은 즉시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며 물었다.“다친 데는 없어?”“아무 일도 없어, 섬나라에서 온 벌레가 날 다치게 할 일은 없어.”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하자 허사연은 멈칫하며 물었다.“섬나라 사람이라고? 그 노인 말이야?”“응, 공교롭게도 전에 그 사람 형도 내가 죽였거든. 지금쯤 둘이 저승에서 재회했을 거야.”진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허사연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넌 뭐 스스로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응, 당연히 좋은 일이지.”진서준은 호텔에서 일어난 일을 천천히 털어놨고 다 듣고 난 허윤진은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내가 그때 거기 있었으면 그놈에게 주먹 두 방 날렸을
박운기는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우도운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두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며 말을 듣지 않았고 도망칠 용기도 없었다.진서준은 방금 박운기의 눈앞에서 대놓고 사람을 죽였다.평소 칼날 위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갑자기 누군가가 자기 앞에서 죽는 걸 목격하면 두려움에 떠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서정훈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정신력은 박운기보다 훨씬 강했기에 두려움에 벌벌 떨 정도는 아니었다.“서준아, 너 그렇게 대놓고 그 사람을 죽이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니야?”진서준이 서울시 시장 앞에서 사람을 죽인 건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었다.진서준은 서정훈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 사람은 섬나라 사람입니다. 무단으로 우리나라에 침입했으니 제가 국안부 상경이라는 신분으로 사후 보고할 권리가 있습니다.”국안부 상경은 물론, 심지어 호국사도 오다 하유를 죽일 권리가 있었다.진서준이 본인 입으로 국안부 상경이라고 밝히는 순간, 서정훈의 눈은 휘둥그레졌다.“너, 너 국안부 사람이었어?”국안부는 시장처럼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기밀 사항이었다.서정훈은 국안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신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낱 시장에 불과한 자기는 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그런데 마침 자기가 잘 아는 후배가 국안부 고위 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맞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고 이내 박운기를 바라보았다.머릿속이 이미 엉망진창이 된 박운기는 진서준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제발 절 죽이지 말아 주세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진짜예요!”진서준은 박운기의 반응에 헛웃음이 나왔다.“내가 묻기도 전에 네가 먼저 모른다고 딱 잡아뗀다고? 내가 뭘 물어볼지 알기라도 해?”이전에 최해준이 말했던 간첩을 잡겠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진서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명주시 박씨 가문이 외국 세력과 결탁했을 가능성이 높아
호흡을 한 번 하는 사이에 2미터 높이의 검은 무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했다.자줏빛 번개가 칼날처럼 검은 무사의 몸에 스쳐 지나가며 온몸을 순식간에 뒤덮었다.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검은 무사는 온몸이 공기 중의 검은 안개로 변했고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검은 무사가 사라지자 오다 하유는 비명을 지르며 시뻘건 피를 왈칵 토했고 옷은 순식간에 섬뜩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옆에서 진서준이 어떻게 갈기갈기 찢질지 지켜보려던 박운기와 우도운은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이... 이 자식이 이겼다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도대체 이 자식은 인간이야? 귀신이야?”두 사람은 마주 보며 서로의 눈에서 공포를 읽어냈다.음양술이 깨지자 서정훈에 체내에 심어놨던 표식도 자연스레 함께 사라졌다.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멍하니 있던 서정훈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변의 낯선 광경을 보고는 무척 혼란스러워했다.“여기는 어디지?”서정훈이 정신을 차리자 박운기와 우도운의 이마에서 콩알만 한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서울시는 작은 도시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많은 도시 중 하나였다.그런데 박운기 일당이 서울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서정훈 시장에게 이런 몹쓸 짓을 한 것이었다.서정훈이 이들이 저지른 일에 죄명을 씌우고 세 사람을 체포한다면 사형일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을 것이다.서정훈은 진서준과 박운기 일행을 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서준아, 내가 왜 여기 있지?”“서 시장님, 제가 아까 병원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시장님 몸에 저놈이 심어 놓은 표식이 있었습니다. 저놈이 그 표식을 이용해 시장님을 조종해 여기로 데려와 계약서에 사인하고 손도장을 찍게 했습니다.”진서준이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서정훈은 진서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지금 눈앞의 상황이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진서준의 말이 사실이란 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너희들 간탱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오다 하유가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모르는 모습을 본 진서준은 유유하게 말을 이었다.“맞아, 내가 그놈을 죽였어.”잠시 충격에 빠졌던 오다 하유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며 강력하게 부인했다.“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너 같은 애송이가 어떻게 우리 형을 죽일 수 있어? 우리 오다 가문에서도 그렇고, 섬나라에서라도 우리 형 검술 실력은 상위 20위 안에 드는 수준이야.”오다 하유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섬나라에서 오다 신유의 실력이 뛰어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서 설령 고필두가 그를 만났다고 해도 정면으로 대결하는 걸 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섬나라 사람들은 오다 신유가 국안부 사람에게 죽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고 구체적으로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이 자식 허풍에 속아 넘어갈 뻔했군.”오다 하유는 음침한 눈빛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옆에 있던 박운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오다 선생님, 이 애송이와 긴말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빨리 처단해 버리고 서정훈을 돌려보내죠. 서정훈이 여기 오래 있으면 저쪽에서 의심할 수도 있을 겁니다.”오다 하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으로 인결을 맺으며 주문을 중얼대기 시작했다.순식간에 오다 하유의 주위에 검은 안개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이 검은 안개는 빠른 속도로 모여지더니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검은 색의 무사 형태로 변했다.방이 충분히 높아서 다행이지 이 검은 무사가 손을 들면 천장이 뚫릴 뻔했다.갑자기 나타난 검은 무사를 보고 우도운은 깜짝 놀랐다.해외에서 한 가지 분야의 학문을 열심히 연구한 고학력자인 우도운은 신령이나 귀신 같은 건 믿지 않았다.그래서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전통 의학을 조금 무시하기도 했다.하지만 지금 검은 안개가 무사로 변해 나타나는 걸 보고 우도운은 지금까지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박운기는 우도운을 흘끗 보며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다 선생님은 섬나라의 음양술에 능한 분입니다. 지금 이 검은 무사는
“사모님!”진서준은 급히 심해윤을 제지했다.“서준아, 아직 안 갔어? 정말 다행이구나. 우리 서 시장을 좀 봐줄 수 없겠어? 아무리 봐도 상태가 이상해서 그래.”심해윤은 진서준을 보고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그의 팔을 꽉 붙잡으며 부탁했다.“저도 차 안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어요. 사모님, 나머지는 시름 놓게 제게 맡기세요.”진서준이 심해윤을 진정시켰다.“그래도...”서정훈을 전적으로 진서준에게 맡기자니 심해윤은 조금 불안해졌다.“사모님, 저를 믿어 주세요. 아까 제가 아드님의 병도 치료했잖아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알았어, 너만 믿을게.”심해윤은 진서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서준아, 서 시장 안전을 부탁할게.”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서정훈을 따라갔다.서정훈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었지만 걷는 내내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았고 심지어 차에도 부딪히지 않았다.진서준은 그렇게 서정훈을 따라가다가 결국 한 호텔에 도착했다.그 후, 둘은 8층까지 계단을 올라갔고 서정훈은 한 호텔 방 앞에서 멈췄다.서정훈이 문을 두드리자 방문이 벌컥 열렸다.“서 시장님, 오셨군요.”서정훈의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을 보고 박운기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서정훈이 들어가자 문은 곧바로 닫혔다.“병원에서 제대로 말씀드리려 했는데 제 말을 듣지 않더군요. 그럼 제가 이런 비상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죠.”방 안에서 박운기는 이미 준비된 계약서를 꺼내며 서정훈 앞으로 걸어갔다.“자, 계약서에 사인하고 손도장도 찍어주세요. 다 하시면 돌아가도 좋습니다.”서정훈은 마치 로봇처럼 계약서와 펜을 받아 들고 계약서에 서명한 후 손도장까지 찍었다.모든 것이 끝난 후, 박운기는 서정훈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처음부터 이렇게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다 선생님, 이제 됐습니다.” 박운기가 웃으며 산양수염 노인에게 말했다.쾅!갑자기 누군가 발차기를 날려 꼭 닫혀 있던 방문을 열어젖혔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산양수염은 말을 마친 후, 두 손을 모아 박운기와 우도운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주문 같은 무언가를 중얼거렸다.십여 초 후, 산양수염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큰 소리로 외쳤다.“여기로 와!”노인의 말이 끝나자 병원을 떠나려던 서정훈의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심해윤과 서현욱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여보, 괜찮아요?”심해윤이 급히 서정훈을 부축했다.“어머니, 아버지는 그냥 피곤해서 쓰러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서현욱은 별일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심해윤은 그런 아들을 쏘아보며 명령했다.“당장 의사 불러, 멍하니 뭐 하고 있어?”“알았어요.”서현욱은 바로 돌아서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데리러 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서현욱은 대량의 의료진과 함께 서정훈을 응급실로 옮길 준비를 했다.그때, 서정훈이 갑자기 깨어났다.하지만 서정훈의 눈빛은 멍해졌고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누가 조종하는 인형처럼 영혼이 이탈된 것 같았다.“여보, 왜 갑자기 쓰러졌어요? 병원 가서 검사받아보세요,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심해윤은 서정훈의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서정훈은 심해윤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는 그대로 병원 밖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여보, 어디 가세요?”심해윤의 얼굴에 초조함이 스쳤다.심해윤은 뭔가 서정훈이 평소와 다르게 변한 느낌을 받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이상한지는 콕 집어 말할 수 없었다.서정훈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계속 밖으로 나갔다.“어머니, 아버지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런 거예요. 그냥 두세요, 밖에 좀 나가 산책하면 나을 거예요.”서현욱은 어머니를 끌어당기며 말렸다.“네 아버지가 평소랑 달라진 거 못 느꼈어?”심해윤은 화가 나서 아들을 꾸짖었다.“다르긴 뭐가 달라요? 아버지는 평소에도 저런 스타일이었잖아요?”서현욱은 별생각 없이 유유하게 대답했다.서현욱은 사실 서정훈과 거의 접촉하지 않아서 서정훈의
박운기가 염소수염 노인을 데리고 왔을 때, 그 노인에 대해 소개한 적이 없었다.“서준아, 너 1황과 2박에 대해 들어봤어?”서정훈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물론 알죠. 1황은 우리나라 최고 부자고, 2박 중 한 명은 북쪽, 한 명은 남쪽에서 활동하는 국내에서 굉장히 유명한 기업가들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눈빛을 번쩍이며 물었다.“설마 저 박운기가 그 박씨 가문 사람인가요?”“맞아. 박운기는 명주시에 있는 애리 그룹 박씨 가문 출신이야.”“근데 이상하네요. 애리 그룹은 인터넷 관련 사업만 하지 않았나요? 왜 갑자기 공장을 세우려고 하죠?”진서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애리 그룹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인터넷 업계의 선두 주자였다.공장을 세운다는 소문은 단 한 번도 떠돌아다닌 적이 없었다.“나도 처음엔 애리 그룹이 서울시에 첨단 산업을 들여오려는 줄 알았어. 근데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공장을 세우겠다고 해서 난 단칼에 거절했지.”서정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서울시는 인구가 적고 신규 산업도 별로 없는 작은 도시였다.박씨 가문의 거대 기업이 서울에 자리 잡으면 도시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박운기가 원하는 건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환경을 희생시키는 것이었다.서정훈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서울시는 서정훈의 고향이었다.그러니 서정훈은 자연스레 고향이 외부인의 욕심으로 황폐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이 공장 때문에 서울시가 진짜 발전한다고 해도 서정훈은 동의할 수 없었다.“경고하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진서준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설마 저 사람들이 내게 복수라도 하겠다는 건가?”서정훈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걱정 마. 난 이래 봬도 서울시 시장이야. 그렇게 대놓고 날 건드릴 순 없을 거야.”도시 시장을 상대로 복수를 한다는 건 국가를 상대로 대적하는 셈이었다.박씨 가문이 아무리 대단해도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서정훈은 믿고 있었다
우도운은 강한 자존심 때문에 자기 의술이 진서준보다 뒤처질 리 없다고 확신했다.우도운은 어려서부터 서양 의학을 배웠고 열일곱 살에 해외 유학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하며 남성 의학 분야에서 노벨상까지 받은 바 있었다.그런 자기와 진서준 같은 애송이가 비교되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우도운은 연신 고개를 저으며 갑자기 서현욱 앞으로 다가갔다.“뭐 하는 거야?”거의 정신이 나간 듯한 우도운의 돌발 행동에 서현욱은 깜짝 놀랐다.허사연 자매는 우도운이 무슨 짓을 할지 알아차린 듯 서둘러 고개를 돌려 몸을 피했다.찌지직...서현욱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우도운은 그의 바지를 확 벗겨버렸다.평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서현욱의 소중한 부위는 지금 깃발 대처럼 곧게 서 있었다.이 장면을 목격한 우도운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당신 변태야? 내 바지를 왜 벗겨? 나 경찰에게 신고해 널 감옥에 처넣을 거야.”서현욱은 황급히 바지를 올리며 우도운을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았다.“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우도운은 혼란에 빠져 중얼거리다가 진서준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너, 대체 뭘 한 거야?”진서준은 우도운을 흘깃 쳐다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네가 알 필요 없어.”“분명 무슨 속임수를 쓴 거야. 네 의술이 나보다 뛰어나다고는 믿을 수 없어.”여전히 자기 의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우도운의 태도에 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믿든 말든 네 마음이지.”진서준은 자기 의술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이방인의 인정 따위를 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한편 박운기는 우도운보다 더 분통이 터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서구 절반 이상의 땅을 손에 넣을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단 한 평도 얻지 못하게 될 상황이었다.박운기의 눈에는 살기가 어렸고 그는 이미 마음속으로 진서준을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서 시장님, 아드님의 병이 나으셨다니 축하합니다.”박운기는
“내가 모셔 온 의사가 병신이라고 큰소리치는데, 그럼 네 대단한 실력을 보여줘 봐.”진서준은 박운기를 힐끗 보더니 바보를 상대하는 말투로 말했다.“너희가 여기서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난 벌써 치료를 시작했어.”박운기는 또다시 진서준의 말에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어지며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옆에 있던 염소수염을 기른 노인은 박운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박운기는 그 모습을 보고 심호흡을 크게 내쉬고 마음속의 분노를 잠시 가라앉혔다.“서 시장님, 정말 이 녀석에게 아드님 병 치료를 맡길 건가요? 충신이 두 황제를 섬기지 않듯, 환자도 마찬가지로 두 의사에게 맡길 순 없습니다. 시장님 아드님 병이 이렇게 심각한데 이 녀석이 치료하지 못하면 병이 더 악화할 겁니다. 그러면 우 의사님이 아무리 날고뛰는 능력이 있어도 속수무책일 겁니다.”서정훈은 박운기의 말을 들으며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만약 진서준이 서현욱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 병을 다시 우도운에게 넘긴다면 우도운도 치료하기 어려울 것이다.그래서 서정훈은 아들을 진서준에게 맡길지 아니면 우도운에게 맡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때, 허사연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서 시장님, 그냥 진서준에게 치료를 맡기세요. 진서준 의술은 제가 보장할 수 있어요. 전에 우리 아빠가 병에 걸렸을 때 진서준이 책임지고 치료한 거예요. 지금 우리 아빠 건강 상태가 어떠신지 서 시장님도 지금 잘 아시지 않나요?”박운기는 불쑥 대회에 끼어든 허사연을 노려보며 한마디 덧붙였다.“서 시장님, 제 생각은 이러합니다. 서 시장님 스스로 잘 판단해 보세요.”선택은 여전히 서정훈의 몫이었다.서정훈은 한참을 고민한 후, 진서준을 향해 말했다.“서준아, 네게 부탁할게.”“맡겨만 주십시오.”진서준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우도운과 박운기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전문가인 자기를 믿는 대신 어디서 굴러온 청년을 믿는다니, 이는 우도운에 대한 모욕이었다.“흥, 두고 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