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룡파천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장청결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이 기술은 진서준이 자기 혈해를 각성시킨 후, 자연스럽게 진서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었다.그 느낌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몸에 새겨져 있었던 것 같았다.진서준은 이 사실을 깨달은 후,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그러자 거울 속에 진서준의 등에 하나의 붉은 빛이 나는 거대한 용이 새겨져 있는 듯한 모습이 비쳤다.혈해의 힘을 발동하면 그 거대한 용이 나타났고 그렇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현재 진서준의 힘으로는 최대 여섯 마리의 혈용을 응집할 수 있었다.그것도 천용 반지의 힘을 빌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천용 반지가 없었다면 네 마리 혈용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기절해 버렸을 것이다.하늘에 떠오른 그 생동감 넘치는 여섯 마리 혈용을 바라보며 역천신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역천신뿐 아니라 진서훈과 다른 이들 역시 숨이 턱 막혔다.“진용 혈맥이라니...”이 혈맥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전해지는 얘기로는 2천 년 전 대한민국 대륙을 통일한 초대 황제가 바로 진용 혈맥을 지녔다고 했다.그 후 2천 년 동안, 진용 혈맥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진서준의 아버지인 진요한조차도 이 기술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이 주먹에 죽는 것은 네게도 영광일 거야...”이 말과 함께 진서준의 모습은 사라졌다.여섯 마리 혈용이 압도적인 기세로 몰려오자 역천신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 찼다.역천신은 지금 태어나 처음으로 이런 절망적인 곤경에 빠지게 됐다.심지어 25년 전, 대한민국의 지선과 맞섰을 때도 이런 무력함은 없었다.‘말도 안 돼. 내가 이런 애송이에게 죽을 리 없어. 이 몸은 지선이란 말이야!’“애송이야, 누가 살고 죽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천신은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역천신은 스스로 세상에 본인의 생명을 위협할 자는 없다고 믿었으나 진서준의 이 주먹 앞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호국사들은 신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진서준은 바람에 흩어진 역천신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이제 돌아갑시다.”진서준이 모두를 모시고 돌아가겠다고 했으면 무조건 약속을 지킬 것이다.진서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일을 책임지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다.“좋아, 우리 다 함께 돌아가자.”진서훈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진서훈이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진서준이 그대로 바다 위로 쓰러졌다.“진 마스터!”“서준아!”“진 청년!”진서준이 쓰러지는 모습을 본 진서훈 일행은 긴장한 기색으로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진서훈은 서둘러 진서준의 맥을 짚어보고는 한참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야. 단지 기력이 소진돼 기절했을 뿐, 큰 문제는 없어.”그 말에 다른 이들 역시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진서준을 성도로 데려간 뒤, 진서훈 일행은 곧바로 진서준을 병원에 보냈다.그리고 진서훈 일행도 치료를 받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언니, 지금 한밤중인데도 진서준이 아직 안 돌아왔어. 설마...”허윤진 자매는 여전히 해변 별장에서 진서준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제발 그런 불길한 말 좀 하지 마.”허사연이 눈을 흘기며 나무랐다.“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벌써 거의 네 시간이 지났는데도 진서준이 안 돌아왔잖아. 난 혹시라도 진서준이...”허윤진은 말을 점점 흐리더니 이내 눈가가 붉어졌다.만약 진서준이 정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허윤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진서준을 따라가는 것이 답일까?허윤진도 모든 걸 끝내고 싶었지만 아직 그녀에게는 허성태가 남아 있었다.아버지를 두고 떠난다면 아버지는 과연 어떻게 될까?허사연은 비록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몹시 불안했다.하지만 언니로서 허사연은 반드시 침착함을 유지해야 했다.“전화 한번 해볼게.”허윤진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진서준에게 전
성도시 병원.창문에 걸린 별무늬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잘게 쪼개져 진서준의 생기가 도는 얼굴 위에 점점이 내려앉았다.어젯밤 창백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의 진서준은 평범한 사람처럼 건강을 되찾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의사 선생님, 상태가 어떻습니까?”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팬 진서훈이 우려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신체가 강인한 환자는 처음 봅니다.”진서준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어젯밤 환자를 데려오셨을 때는 상태가 아주 악화한 상태였습니다. 환자의 장기가 거의 한계에 이르렀기에 저는 솔직히 오늘 밤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정상인처럼 회복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진서준이 정상적인 상태로 완전히 회복됐다는 말을 듣고 진서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젯밤 진서준을 병원에 데려온 뒤, 진서훈도 서둘러 상처를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진서훈은 바로 진서준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가 깨어날 겁니다.”의사가 진서준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진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그렇다면 참 다행이군요.”의사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상에 누워 있던 진서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진서준은 놀랍게도 어젯밤 몸이 산산이 찢어질 것 같던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고 대신 몸이 거의 회복된 것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어제 만용파천으로 역천신을 죽일 때, 진서준은 천용 반지의 힘 중 10분의 1을 사용했다.비록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그 막대한 힘은 진서준의 몸을 자칫 산산조각 낼 뻔했다.그 순간, 진서준은 천용 반지의 엄청난 위력을 뼈저리게 깨달았다.10분의 1만으로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일 수 있는데 그 힘을 전부 다 사용할 수 있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서준아, 깨어났구나.
“그때가 되면, 신농은 전력을 다해 널 잡으려 들 거야.”진서훈이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진서준이 죽인 건 비록 중상을 입은 지선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진서준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다.이 일은 너무 충격적인 일이기에 절대로 외부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됐다.일단 외부에 퍼진다면 진서준은 평생을 쫓기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알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그래서 우리 네 늙다리가 염치없게도 네 공을 빌려다 쓰려고 해.”진서훈은 미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할아버지, 제 안전을 위해 그러시는 거라는 걸 잘 압니다.”진서준은 담담히 받아들이며 미소를 지었다.“게다가 저는 명예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실 할아버지들 네 분이 먼저 역천신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떻게 역천신을 처치할 수 있었겠습니까?”진서준의 말은 사실이었다.역천신이 중상을 입지 않았다면 진서준이 천용 반지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진서준과 지선 사이의 격차는 단순한 재능이나 선법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어젯밤 역천신과의 전투를 통해 진서준도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바로 이른바 지선이라는 인물은 전부 장청결에서 언급된 금단 수사라는 점이다.다만 이들은 진정한 선법을 익힌 수사와 비교하면 그 실력이 엄청나게 부족해 그저 가짜 금단 수사에 불과했다.“그럼 다행이야.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구나.”진서훈은 자기 턱수염을 만지며 흐뭇하게 웃었다.“좋아, 여기서 좀 더 쉬어. 난 이만 가볼게.”“잠깐만요, 할아버지. 혹시 휴대폰 좀 구해 주실 수 있을까요?”진서준은 집에서 자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허사연과 허윤진 자매를 잊은 적이 없었다.하룻밤 동안 연락 없이 사라진 자기 때문에 허사연 자매가 분명 걱정했을 것이다.혹여 허사연 자매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알겠어. 잠시만 기다려.”진서훈은 병실에서
“우리가 도와줄게.”허사연은 진서준을 화장실에 데려가는 일이 누워서 떡 먹기처럼 간단한 일인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그건... 좀 불편하지 않을까?”진서준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성인 남자가 화장실에 가는데 두 여자가 도와준다는 게 너무 창피한 일인 것 같았다.이게 소문이라도 나면 앞으로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 것 같았다.“뭐가 어때서? 난 네 여자친구잖아. 네가 지금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데 내가 못 도와줄 이유가 있나?”허사연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럼 너 혼자 도와주면 돼. 윤진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진서준이 허윤진의 호의를 거절했다.진서준과 허사연은 이미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허사연 앞에서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허윤진은 달랐다. 허윤진은 허사연의 여동생일 뿐, 진서준과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진서준, 혹시 날 싫어하는 거야?”허윤진은 눈을 부릅뜨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아니야, 내가 왜 싫겠어? 그냥 이건 네가 돕기엔 좀 부적절하잖아.”진서준이 급히 해명했다.“넌 남자잖아, 뭐 그런 걸 갖고 쑥스러워해?”허사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근데 윤진까지 따라오면 좀 그렇긴 하네. 윤진아, 넌 여기서 기다려.”허윤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마지못해 소파에 앉았다.“가자.”허사연은 진서준을 부축해 천천히 화장실로 데려가 문을 잠갔다.“왜 문까지 잠그는 거야?”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은 허윤진은 얼굴이 굳었다.단순히 화장실 가는 건데 굳이 문까지 잠글 필요가 있나?혹시... 화장실에서 뭔가 하려는 건 아닌지 허윤진은 의심이 들었다.허윤진은 이런 부부 사이의 일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어느 정도 상상은 할 수 있었다.순식간에 허윤진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고 잠잠하던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허윤진은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몰래 화장실 문 앞으로 갔다.그러고는 귀를 문에 대고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래 듣기 시작했다.그 순간, 허윤진의 얼굴은 잘 익은
“응... 그래...”허윤진은 어딘가 집중하지 못한 모습이었다.허윤진의 눈길은 자꾸만 어떤 특정한 곳으로 향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시선이 몹시 불편했다.‘설마 이 아이가 방금 뭔가 들은 건 아니겠지?'방에 진서준과 허윤진만 남자 분위기가 더 어색하고 묘해졌다.진서준은 숨 막히는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윤진아, 며칠 동안 할 일이 별로 없는데 이제 우리 셋이 해변 구경하러 가자.”“응... 좋아.”허윤진은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너 왜 그래? 뭔가 마음이 딴 데로 가 있는 것 같은데.”진서준이 질문에 허윤진은 얼굴이 빨개진 채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앞으로 내가 있을 때 언니랑 좀 자제해줄래?”진서준은 그 말에 얼굴이 화끈해졌다.아무래도 화장실 안의 소리가 밖에 들렸던 것 같았다.“저기... 나 목이 좀 말라, 물 좀 떠줄래?”이 화제를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든 진서준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더 이상 얘기했다가는 앞으로 처제 얼굴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었다.허윤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떠 왔다.“조금 뜨거운데, 내가 불어서 식혀줄게.”허윤진은 물컵을 들고 침대 옆으로 왔다.“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진서준은 서둘러 손을 뻗어 물컵을 받으려 했다.“내가 해줄게...”허윤진과 진서준이 물컵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그만 뜨거운 물이 허윤진의 가슴 쪽으로 쏟아졌다.“아야!”뜨거운 물이 닿자 허윤진은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윤진아, 괜찮아?”진서준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괜찮아, 괜찮아...”허윤진은 서둘러 젖은 겉옷을 벗어 던졌다.하지만 물이 너무 많이 쏟아진 탓에 겉옷뿐만 아니라 안쪽의 하얀 셔츠에도 물 자국이 생겼다.“여기 드라이기가 있어. 드라이기로 말리는 게 어때?”진서준이 서둘러 물었다.진서준이 머무는 곳은 고급 병실로 무려 17평 정도 크기였다.최첨단 의료 장비만 없다면 누가 봐도 이곳은 고급 스위트룸처럼 보였을 것이다.허윤진은 고개
허사연의 장난기 어린 시선을 보자 허윤진은 언니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직감했다.언니는 자기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허윤진과 진서준 사이는 아무런 특별한 것도 없이 깔끔했다.넘지 말아야 할 선을 허윤진은 단 한 번도 넘은 적이 없었다.지난번 온천 사건도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허사연은 흥미로운 미소를 띤 채 아침 식사를 들고 진서준 쪽으로 걸어갔다.“아까 어땠어? 기분 좋았어?”허사연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뭐가 좋았다는 거야?”진서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모르는 척은. 윤진이 셔츠를 빨러 갔던데 너희 둘이 아까 화장실에서 뭐 했던 거 아니야?”허사연의 눈에서 야릇한 빛이 반짝였다.진서준은 그 말에 피를 토할 뻔했다.“그게 아니야. 내가 목이 말라서 윤진에게 물을 부탁했는데, 그 애가 가져오다가 실수로 자기 몸에 쏟은 거야.”진서준은 급히 해명했다.만약 무슨 일을 정말로 저질렀다면 허사연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이었다.“윤진은 지금 마스터 급인데 그런 애가 물 한 잔도 제대로 들지 못할 것 같아?”허사연은 진서준을 째려보며 말했다.“거짓말을 하더라도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지?”“정말 거짓말이 아니야...”진서준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됐어, 나도 내 친동생한테 질투하진 않을 거니까.”허사연은 두유와 삶은 달걀을 꺼내며 말했다.“단백질 보충 좀 해. 아까 그렇게 많이 소모했잖아.”허사연의 말이 점점 더 이상해지자 진서준은 황급히 외쳤다.“그만, 그만하라고!”“푸흡...”허사연은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넌 왜 자꾸 날 여자 변태로 만드는 거야?”진서준은 속으로 투덜댔다.‘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물론 이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만약 말했다간 한 달 동안 허사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게 뻔할 것이다....대한민국에서는 해가 막 떠오른 시간이었지만 서반구에 있는 초아국에서는 밝은 달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깊은
매부리코 노인은 담담히 말했다.“아닙니다, 그런 뜻은 전혀 없습니다...”사람들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매부리코 노인은 방금 앞으로 나섰던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교회로 가서 내가 주교들과 대화하고 싶다고 전해. 대한민국 무도계를 멸망시키려면 이제 각자 따로 움직일 때가 아니야. 그리고 가는 길에 올림푸스 신전에 들러 약속한 물건을 전해줘. 신전이 대화에 응할 뜻이 있다면 신왕 한 명을 보내라고 해.”“알겠습니다.”중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천신님, 혈수 쪽에는 따로 지시하실 게 있습니까?”혈수라는 단어가 나오자 매부리코 노인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그 쓸모없는 것들과 대화할 필요 없어. 교회와 협상이 끝나면 혈수 놈들부터 먼저 무너뜨릴 거야.”혈수를 제거하라는 말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는 전투 의지가 번뜩였다.교회와 비교하면 혈수의 전력은 훨씬 약했다.교회와 멸용 조직이 손을 잡으면 혈수를 단 하루 만에 소탕할 수 있을 것이다.그것도 멸용 조직이 이미 엄청난 피해를 본 상황에서 말이다.이번 대한민국 무도계 공격으로 멸용 조직도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이 저택에 모인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멸용 조직의 남은 소수 정예였다.만약 이들이 또 죽는다, 멸용 조직은 지선 두 명만 남게 될 것이다....대한민국과 북조의 국경 지대, 눈이 소복이 쌓인 설산.피투성이가 된 두 남자가 북조 국경 안쪽으로 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빌어먹을, 호국장군이 왜 여기 나타난 거야?”박시윤은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박시윤과 함께 장라산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들어왔던 남조의 고수들과 몇몇 멸용 조직의 강자들이 모두 대한민국 땅에서 죽었다.사실 박시윤은 대한민국 무도계를 피로 물들일 계획이었다.하지만 장라산에서 호국장군과 검존 조기강을 마주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당시 그곳에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하지만 그 두 사람만으로도 박시윤 일행을 산산이 부수기에 충분했다.박시윤과
교관이 이상하리만큼 강한 건 이유가 있었다. 진서준은 진씨 가문 출신 천재였다.두 사람은 바로 진서준이 대단한 실력을 갖춘 원인을 속으로 추리해 냈다.대한민국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진씨 가문의 배경은 일반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진서준이 이런 신분을 갖췄다면 뛰어난 실력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그게 맞든 아니든, 너와 무슨 상관인데?”진서준이 되물었다.“이번엔 내가 패배를 인정할게. 근데 이제 다른 기회 잡히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행크는 진서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고는 바로 돌아서 호텔을 떠났다.“뭐야, 어디 가? 여기 남아 밥 먹어. 난 너처럼 인색해서 한 끼 밥도 못 먹게 하진 않아.”진서준이 빙그레 웃으며 살살 도발했다.행크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마음속 감정을 숨기지 않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지금의 행크는 분노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샛터 왕자라는 엄청난 자부심과 신분을 갖춘 사람이 대한민국의 한낱 평범한 천민에게 두 번이나 굴욕을 당하다니, 이 원한을 갚지 않으면 행크는 마음 편하게 잘 수 없을 것 같았다.“사장님, 이쪽으로 오세요. 식사는 꼭대기 층에서 준비했습니다. 오늘 밤, 꼭대기 층은 다른 손님을 받지 않고 오로지 사장님만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할 겁니다.”매니저는 행크가 떠난 후 바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부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매니저를 흘끗 쳐다보며 물었다.“꼭대기 층은 날 위해 준비한 거야, 아니면 저 왕자를 위해 준비한 거야?”매니저는 진서준이 숨겨진 사실을 알아차리자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당연히 사장님을 위해 준비한 겁니다...”“알았어,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그냥 우리에게 아무 방이나 찾아줘. 그리고 너희 대표 메뉴를 다 가져와.”진서준이 정색하며 말했다.진서준은 쓸데없는 사치와 낭비를 좋아하지 않았다.꼭대기 층 전체를 진서준만을 위해 비우게 하면 그만큼 돈을 벌 수 없게 될 것이다.세계적인 갑부 소하비를 만나고 나서야 진서준은 자기
“사... 사장님!”순식간에 호텔 매니저는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매니저는 눈앞의 청년이 진짜 자기 사장을 아는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앞으로 이 호텔은 네 눈앞 청년 진서준의 것이야. 내일 여기 돌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설명해.”진광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진광은 진서준이 이유 없이 이 5성급 호텔을 원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분명 호텔 쪽에서 진서준을 화나게 할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진씨 가문은 부유하지만 정작 진광 자신은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부유하지 않은 진광이 이 5성급 호텔을 그냥 내어주는 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호텔을 내어주는 사람이 바로 자기와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만약 진서준이 진광의 절친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알, 알겠습니다...”호텔 매니저는 침울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지금 이 순간 매니저는 진광이 자기에게 살길을 남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럼 아직도 날 쫓아낼 거야?”진서준은 전화를 끊고 차갑게 따졌다.“아, 아니, 아닙니다! 이 호텔은 이제 사장님 호텔입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사장님을 쫓아내겠습니까?”이마에 식은땀이 가득한 매니저는 즉시 실실 웃으며 말했다.“날 쫓아내지 않겠다면 누가 네게 그 명령을 내렸는지 얼른 말해봐.”진서준의 질문에 매니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 그건...”진서준은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행크 왕자 역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난 진광이 호텔을 내게 양도할 수 있게 할 수도 있고 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어.”진서준은 차가운 어조로 일부러 위협하듯 말했다.“알겠습니다. 아까 그 명령을 내린 건 샛터의 행크 왕자입니다.”매니저는 손가락으로 멀리서 지켜보는 행크를 가리켰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쌀쌀하게 웃으며 행크 쪽 방향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서로 멀리서 시선을 교환했다
허씨 가문은 서울에서 정말 영향력 있는 가문이지만 경성 진씨 가문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매니저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 허성태 갑부라고요? 당신이 갑부 딸이었네요. 근데 아쉽게도 오늘 우리 호텔은 만실이라 네 분은 나가셔야겠습니다.”매니저는 새로운 이유를 들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내쫓으려는 태도였다.“너무 억지로 괴롭히는 거 아니야?”허윤진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단지 너희가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기 때문이야.”매니저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그때,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호텔이 경성 진씨 가문 소유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야?”“맞아요.”매니저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이 호텔은 우리 진광 도련님이 개업한 곳입니다. 진광 도련님은 진씨 가문 직계 후손이고요.”매니저가 시원하게 인정하자 구경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 네 사람, 진짜 큰일 났네.”모두가 진서준 일행이 쫓겨날 거라고 여겼고 고소연과 박준명도 얼굴이 굳어졌다.경성 진씨 가문은 말 그대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명문대가였다.부사령관인 두 사람은 물론, 소정태 같은 사령관조차 진씨 가문과 대립할 수 없었다.이건 정말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거 참 공교롭네. 난 너희 진씨 가문 사람을 알거든.”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씩 웃으며 말했다.“네? 진씨 가문 사람을 안다고요?”매니저는 진서준의 말이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오늘 우리 사장님이 몸소 이곳에 오지 않는 한...”매니저의 말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진서준이 건드린 사람은 거의 이 호텔 사장과 같은 등급의 인물이었다.“사장님이라고?”진서준은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웬일이야? 난 네가 이 늙다리를 잊어먹었나 했어.”전화 속에서 한 노인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요 며칠은 너무 바빴어요. 이제 제가 경성에 가면 꼭 할아버지께 직접 사과드릴게요.”진서준은 무척이나 미안해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장사꾼은 보통 가게에서 손님을 쫓아내지 않았다.손님이 호텔에서 너무 지나친 행동을 했거나 호텔의 지배자와 손님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을 때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진서준을 포함한 네 사람은 오늘 이 호텔에 처음 방문했다.호텔 매니저가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자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나가야 하죠?”“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존재는 우리 호텔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매니저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는 5성급 호텔이고 얼마 전에 개업한 새로운 호텔입니다. 여기 오는 사람은 전부 이 지역의 유명 인사입니다. 제가 못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여긴 여러분이 올 만큼의 소비 수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입은 그 옷만 봐도 여러분 수준을 알 수 있겠군요.”매니저의 말에 다혈질인 박준명의 화가 폭발했다.“뭐라고? 그 입 다 찢어버릴까?”본인이 비웃음당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존경하는 진 교관을 비하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소연 역시 얼굴이 굳어지고 매니저를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봤다.“우리가 누군지 알아?”설표 특전대는 비록 8대 특전대 중에서 실력이 가장 약한 특전대였지만 일반인이 갈망하고 존경하는 존재였다.게다가 돈과 권력을 거머쥔 유명 인사들은 더욱 특전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게다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장 신분까지 갖춘 진서준에게 자격이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나야 당연히 모르죠.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지금 당장 나가 주세요.”매니저는 더욱 차갑게 입을 열었다.매니저의 단호한 태도에 허윤진 일행은 단단히 화가 났다.나가는 건 별거 아니지만 체면을 잃는 건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매니저가 목소리를 높인 덕에 주변 사람들이 슬슬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이게 무슨 일이지? 매니저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하는 건가?”“저 네 사람이 도대체 총매니저한테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된 거야?”“이 호텔은 경성 진씨 가문에서
능청스러운 말을 던지며 허윤진은 허사연에게 눈짓했다.그러자 허사연은 웃으며 말했다.“그냥 윤진이 따라가게 해.”“주변에 누군가 널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조희선도 입을 열었다.도대체 허윤진이 진서준을 챙기는 건지, 아니면 진서준이 허윤진을 챙기는 건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진서준은 속으로 답답하게 웃었지만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가족을 서남 금도행 비행기에 태우고 나서야 진서준과 허윤진은 집으로 돌아갔다.누렁이와 하얀이는 진서준 일행과 함께 가지 않았고 서울에 남아 집을 지키기로 했다.진서준이 어디로 가든 오직 올기만이 진서준의 뒤를 따랐다.“너희가 어쩌다 한번 온 거니까 내가 좀 대접해야겠어.”진서준은 고소연과 박준명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교관님, 식사는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다른 사람이 우리가 식사를 대접받았다는 소문을 들으면 우리가 기개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고 욕할 겁니다.”박준명이 서둘러 진서준을 말렸다.“맞아요, 교관님. 우리에게 기회를 주세요.”고소연도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했다.두 사람의 태도가 이 정도로 강경하자 진서준은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그리고 네 사람은 차를 타고 서울에 새로 생긴 5성급 호텔로 향했다.그 호텔은 향연 호텔이었다.롤스로이스 몇 대가 호텔 앞에 멈춰 섰다.차문이 열리자 서양인 얼굴을 한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주위에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뒤, 중간 롤스로이스에 있던 사람이 드디어 차에서 내렸다.그 사람은 바로 진서준 앞에서 여러 번 망신당한 행크였다.행크는 샛터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진서준에게 복수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행크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행크님이 오늘 와주셔서 향연 호텔이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호텔 총매니저는 서둘러 행크에게 아첨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환영했다.호텔에 드나드는 유명 인사들은 이 성대한 장면에 깜짝 놀랐다.“이 호텔 배후 지배자
천년홍련은 진서라의 체내 독을 치료할 수 있는 희귀 약재 중 하나였다.지금까지도, 진서준은 어디에서 천년홍련을 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소정태가 빨간 연꽃을 봤다고 말하자 진서준은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나타났다고 간주했다.진서라의 체내 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만약 독이 폭발하면 진서준도 그 독을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게 진 교관님이 말씀한 천년홍련인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게 아니라 망원경으로 멀리서 봤거든요.”소정태가 한마디 보탰다.“그리고 그 산은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데, 저는 우리 대원들 안전을 위해 깊은 산 속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진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말했다.“좋아요, 그럼 두 부사령관과 함께 설표 특전대에 가겠습니다. 8대 특전대 대회 후에 사령관님이 말한 그 죽음의 산을 한번 확인하겠습니다.”“알겠습니다, 진 교관님. 우리 설표 특전대 모든 대원이 교관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소정태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누를 수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사연에게 말하고 올게, 조금만 기다려.”“진 교관님, 내일 출발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모님과 더 시간을 보내세요.”고소연이 배려 깊게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빙그레 웃고는 허사연의 방으로 갔다.방에는 진서라도 함께 있었고 둘은 진서준을 보고 내심 반가워했다.“오빠, 돌아왔어?”진서준을 보자 두 사람은 기뻐하며 말했다.“사연아, 내일 설표 특전대에 가야 해. 방금 소정태가 전화했는데, 그쪽 사람 중 하나가 천년홍련을 봤다고 해. 진위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해 볼 거야. 서라의 체내 독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알겠어, 난 다 이해해.”허사연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사실 날 너무 걱정하지도 않아도 돼, 몸 상태가 거의 다 나아진 것 같거든.”“오빠, 이번에 가면 위험하지 않아?”진서라는 허사연과
“그럼 방금 시간 나면 연락하겠다고 말한 건 뭐야?”허윤진이 팔짱을 끼고 진서준과 따졌다.“그건 그냥 예의상 한 말이야.”진서준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웃기고 있네, 너희 남자들은 다 똑같아. 내가 모를 줄 알아?”허윤진은 눈을 굴리며 말을 이었다.“그 공주는 샛터 왕실 공주잖아. 그 공주를 아내로 맞으면 평생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거야. 그나저나 너 요즘 왜 그 용란 공주랑 연락이 없어?”허윤진은 갑자기 비꼬는 말투로 화제를 돌렸다.진서준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네가 말한 건 다 억측이야. 난 그 두 사람과 아무런 관계도 없어.”“그럼 명주시 황씨 가문 그 여자는?”허윤진이 또 묻자 진서준은 이내 대답했다.“그 사람도 아무 관계 없어.”“윤진아, 너 도대체 집에 갈 거야, 말 거야?”진서준은 답답한 나머지 바로 화제를 돌렸다.허윤진이 계속 이렇게 질문 공격을 한다면 결국 엄청난 질투에 빠진 허윤진을 달래줘야 할 게 뻔했다.집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집 앞에 군용차가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혹시 흑기린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건가?”진서준은 속으로 나름 추측했다.“무슨 일이야? 또 사람이 온 거야?”허윤진도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거실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낯익은 두 사람을 발견했다.어엿하고 늠름한 고소연, 그리고 이미 종사의 기세를 갖춘 박준명이었다.이 두 사람은 설표 특전대의 부사령관이란 신분 외에 진서준의 특별한 제자라는 신분도 있었다.“너희가 무슨 일로 여기 왔어?”진서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교관님, 안녕하세요!”두 사람은 재빨리 일어나 진서준에게 경례하며 경외와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진서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이렇게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앉아. 내 앞에서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두 사람에게 앉으라고 말했다.“교관님, 이틀 후면 8대 특전대 대회가 시작됩니다. 저희는 소 사령관님 명령을 받고 교관님을 모시러 왔습니다.”고소연이
이전에 예린이 이런 요청을 했다면 샛터 국왕은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아빠가 허락할게. 다만, 내가 다른 친위대를 보내 너희 안전을 지킬 거야. 너희는 너무 오랫동안 외국에 머물 순 없어.”샛터 국왕은 담담하게 조건을 내걸었다.“고마워요, 아빠. 저와 소하비 오빠는 될수록 빨리 돌아갈 거예요.”예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워했다.예린은 내심 기뻐했지만 허윤진은 속으로 불만이 슬슬 피어올랐다.허윤진은 이 공주가 지금 바로 귀국하지 않는 이유가 진서준 때문이라고 거의 확신했다.“정말 귀찮네.”허윤진은 속으로 터지는 화를 삭이지 못해 진서준의 허벅지 살을 꽉 꼬집었다.진서준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허윤진을 살펴봤다.자기가 분명 허윤진의 심기를 건드린 게 없을 텐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허윤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불만스럽게 콧김을 내쉬며 얼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허윤진의 뾰로통한 모습에 진서준은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다.예린은 영상 통화를 끊고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 씨, 앞으로 며칠 동안 잘 부탁드려요.”“네? 무슨 뜻이죠?”진서준은 얼굴이 굳어졌다.“설마 한동안 서울에 머무를 계획인가요?”“네, 진서준 씨, 혹시 절 환영하지 않나요?”예린이 웃으며 묻자 진서준은 넌지시 농담을 던졌다.“물론 환영하죠. 공주님과 왕자님이 우리 지역 경제 발전에 큰 지원을 해 준다면 더 환영이겠네요.”이 두 사람은 걸어 다니는 재벌 수준이었다.이 둘이 투자만 한다면 서울시 경제가 발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문제없어요, 이틀 동안 우리에게 서울 가이드를 해주세요. 항목이 괜찮아 보이면 직접 투자도 고려할 수 있어요, 여기 경제 발전을 지원할게요.”예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린 공주님, 미안하지만 실망하실 거예요. 진서준은 요즘 바쁘셔서 여기서 공주님을 데리고 놀러 다닐 시간이 없어요.”허윤진이 바로 대화에 끼어들어 진서준의 팔을 끌어당기며 미소를 지었
“혹시 침술 핑계로 이 아가씨를 어떻게 해보려는 건 아니지?”진서준은 허윤진의 질투 섞인 톤을 단번에 알아채고 급히 해명했다.“그렇게 걱정된다면 옆에서 지켜봐도 돼.”“당연히 안 나가. 난 여기서 철저히 감독할 거야.”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허윤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샛터 공주는 몸매며 외모며 자기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이렇게 경쟁력 있는 매혹적인 여자를 진서준과 단둘이 두게 할 순 없었다.안타깝게도 허윤진은 진서준이 이미 예린의 알몸을 다 만져봤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오빠, 먼저 나가 있어요.”예린이 부끄러운 듯 소하비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난 밖에서 기다릴게.”소하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을 나갔다.허윤진이 남아 있기에 진서준이 선을 넘는 실수를 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일단 고개 돌려.”허윤진이 손으로 진서준을 잡아 돌렸다.예린은 고마운 눈빛으로 허윤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바지를 벗었다.기다랗고 하얀 다리가 허윤진의 눈에 들어왔다.이 다리는 흠 잡을 데 없이 깨끗하고 부드러워 보여 같은 여자인 허윤진조차 부러움을 느꼈다.“됐어. 돌아봐도 돼.”허윤진이 마지못해 말하자 진서준은 몸을 돌렸다.비록 전에 이미 본 적 있었지만 다시 보니 여전히 눈부신 느낌이었다.“예린 공주님,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세요. 나머지는 저에게 맡기세요.”“그럼 잘 부탁드려요.”진서준의 말에 예린의 두 뺨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고 잘 익은 사과처럼 한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더 이상 빤히 쳐다보지 않고 곧바로 은침을 들고 다가가 침을 놓기 시작했다.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침술은 끝났다.“다 됐어요. 옷 입으셔도 됩니다.”“네? 벌써 끝난 거예요?”예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아까 은침이 몸에 닿을 때의 따끈따끈하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무척 좋았고 몸 안에 따스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았다.“네, 앞으로 며칠간 제가 적어준 처방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