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조씨 가문 저택에는 불빛이 가득했다.조기강과 조태희 두 사람은 거실에 앉아 국안부가 올린 게시물을 보고 있었다.휴대폰을 내려놓은 후, 조태희는 조기강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서준과 김평안이라는 두 사람, 네 검존 명성을 완전히 가로챈 셈이구나.”조기강은 무덤덤한 표정만 지을 뿐, 전혀 화내지 않았다.“명성은 그저 허울일 뿐이야. 중요한 건 무엇을 이루었느냐지. 이 둘 중 한 명은 강남에서 악명이 자자한 두 악인을 처단했고 다른 한 명은 국안부의 대종사들을 구한 것도 모자라 섬나라 강자 7명을 단번에 베어 버렸어. 이 정도면 충분히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해.”동생이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자 조태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태희는 혹시나 조기강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진서준이나 김평안과 겨루려 할까 봐 걱정했었다.만약 진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안부는 분명 김평안과 진서준 편에 설 것이다.지금 조씨 가문의 위상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동북의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이 서서히 조씨 가문을 넘어설 기세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북은 세 가문이 세력을 나누는 삼국지 양상이 될지도 모른다.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조민영은 가문의 앞날을 위한 정치적 혼인의 운명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하지만 내 검도 무디진 않았어.”조기강은 천천히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북쪽 변방에 외국 이족이 출몰한다 들었는데 내일 아침에 직접 가서 한번 살펴봐야겠어.”조태희는 그 말에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좋은 생각이야. 검존의 실력이 그 둘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야.”진서준과 김평안이 최근에 벌인 일들이 조기강의 자존심을 강력하게 자극한 모양이었다.조기강은 진서준과 김평안을 질투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기 검존 봉호가 헛되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다음 날 아침, 조기강은 동북에서 북쪽 변방 초원으로 향했다.같은 시간, 진서준도 바이올렛을 데리고 서북의 안성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진서준은 호국장 외에는 천의방에 오른 다른 강자를 본 적이 없었다.“나조차 신왕을 마주한다면 도망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네가 서북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바이올렛이 본인 안전을 위해 진서준을 설득했다.바이올렛은 사실 올림푸스의 신왕이 진서준을 제거하길 바랐다.하지만 올림푸스와 바이올렛의 조국 용란과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만약 신왕이 바이올렛에게도 적대감을 품는다면 상황은 상당히 복잡해질 것이다.바이올렛이 올림푸스 신전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게 설명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바이올렛은 진서준이 이 정보를 듣고 포기하길 바랐고 자기를 데리고 같이 죽으러 가는 걸 원치 않았다.“천의방 강자라고? 오히려 흥미가 생기는군.”진서준이 덤덤하게 웃으며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김평안, 제정신이야?”바이올렛은 눈을 부릅뜨며 따졌다.“나조차도 신왕을 상대하기엔 버거울 정도야. 물론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사실 둘이 정면으로 싸운다면 진서준이 바이올렛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그렇게 실력이 상당한 바이올렛조차 신왕을 보고 도망가야 할 판이니, 진서준이 나선다고 해도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하지만 지금 넌 내 부하가 된 신세지.”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비꼬았다.“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협력 관계야.”바이올렛이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진서준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근처의 5성급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진서준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호텔 로비에 진서준이 잘 아는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바로 유연비였다.유연비 옆에는 그녀와 약간 닮은 중년 남성이 함께 있었다.남자는 유연비의 아버지이자 서북 최고 가문인 유씨 가문 가주 유경풍이었다.서북을 주름잡는 유경풍은 이 순간, 동안 백발의 노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고 있었다.깍듯하게 인사하는 유경풍의 얼굴에는 오로지 경외심만이 가득했다.유경풍이 이렇게까지 존경심을 표하는 인물이라면 분명
진서준이 유경풍에게 귀싸대기를 날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멍해졌다.진서준이 방금 귀싸대기를 날린 상대는 바로 서북의 왕이라 불리는 유씨 가문의 가주 유경풍이었다.이렇게 신분이 고귀한 인물에게 대놓고 귀싸대기를 날리다니, 이 남자는 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걸까?유경풍은 몇 초 동안 얼어 있다가 얼굴이 선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죽고 싶어?”눈에서 분노와 살기가 거의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유경풍은 심지어 옆에 있던 신용수조차 완전히 무시한 채 진서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뺨을 맞다니, 이런 치욕은 유경풍이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오늘 이 중년 남자가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유경풍 본인의 체면을 물론, 유씨 가문의 체면은 바닥에 추락할 것이다.신용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유경풍을 말렸다.“그만해,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그 말을 듣자 유경풍은 다시 멍해졌다.이쯤에서 끝내라니? 자기가 뺨을 맞았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란 말인가?“진군님, 혹시 이 자를 아십니까?”유경풍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나뿐만 아니라 너희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신용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어젯밤 동남 해변에서 고한수 일행 일곱 명을 처단한 사람이야.”“이 사람이 김평안이라고요?”유경풍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고 신용수가 이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건 이유도 알 것 같았다.하지만 유경풍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진군님, 이 자가 김평안이라 하더라도 제 뺨을 때린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건 저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우리 유씨 가문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유연비는 아까부터 쭉 진서준을 관찰하고 있었다.거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 중년 남자는 왠지 유연비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비슷해 보였다.신용수는 유경풍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그래서 어쩌겠다는 건가?”유경풍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유경풍은 진서준을 죽이고 싶었지만 신용수가 쉽게
“진군님, 그럼 저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유경풍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호텔을 나섰다.유연비도 곧장 아버지의 뒤를 따라 호텔에서 나갔다.두 사람이 사라지자 진서준은 신용수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굳이 저를 위해 나섰습니까? 유씨 가문 정도는 제가 두려워할 자격도 없는 가문입니다.”신용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너무 날카로운 기운은 거두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괜히 귀찮은 일만 생길 테니까.”“귀찮은 일이라뇨? 유씨 가문 따위는 문제 될 것도 없어요. 게다가 유씨 가문은 워낙 저와 오래된 원한이 있습니다.”진서준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진서준과 유씨 가문 사이에 원한이 있다는 말을 듣자 신용수는 순간 멈칫했다.신용수는 진서준이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는 걸 몰랐고 진서준이 바로 김평안이라는 사실도 미처 알지 못했다.“유씨 가문과 무슨 원한이 있는가? 우리 국안부는 국내 무인끼리의 살육을 원하지 않아.”“그렇게 엄청난 원한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유씨 가문 전원의 사죄만 요구할 뿐입니다.”진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유씨 가문이 진서준에게 사죄하고 유연비를 혼내는 것, 그것이 진서준의 목표였다.하지만 유씨 가문 전체가 사죄하게 하려면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진서준이 유씨 가문을 짓누를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신용수는 한숨을 쉬며 질문을 던졌다.“복잡한 상황만 일으키지 않으면 돼. 오늘 네가 안성에 온 건 북오런 올림푸스 신전과 대항하기 위해서인가?”“맞습니다, 다만 제 실력으로는 저항하기 어려울 듯합니다.”진서준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천의방에 올라간 강자들 앞에서 진서준도 자신감이 넘쳐나긴 힘들었다.“그래도 솔직하군.”신용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때가 되면 북오런 올림푸스 신전의 신왕은 내가 맡을 테니 나머지 자들은 네가 처리하면 돼.”호국장군 신용수가 일선 전장에 나선 것도 바로 올림푸스 신전의 신왕을 겨냥한 것이었다.서북 변방의 다른 호국사들은
4대 금강은 유씨 가문이 서북의 최고 가문으로 군림할 수 있는 강력한 전력이었다.”소문에 따르면 이 네 사람은 한때 중부의 소림사에 머물며 소림의 금강불괴공을 완성 단계까지 연마했다는데, 그들의 신체는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했다.이전 봉호전에서 문호동이 수련했던 것도 바로 금강불괴공이었다.비록 문호동이 오급에 불과한 횡련 대종사였지만 육급 정점 대종사와 겨루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게다가 유씨 가문의 4대 금강은 전부 육급 정점 대종사 실력이었다.네 사람이 힘을 합치면 팔급 이하의 대종사는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적어도 현재까지 4대 금강에게 맞설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아버지가 4대 금강을 동원할 계획을 밝히자 유연비는 순간 당황했다.“아빠, 이 4대 금강은 진서준을 처리하려고 부르신 게 아니었나요?”유경풍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똑같아, 우선 이 김평안이라는 자부터 처단해야 해. 서북의 유씨 가문이 절대 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해.”“알겠어요, 즉시 그 네 마스터님을 모셔올게요.”...밤이 깊자 진서준과 신용수, 그리고 바이올렛은 막북의 황량한 사막 지대에 도착했다.은은한 달빛이 세 사람을 비추어 그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그 모습은 나라를 위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열사처럼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본래 유씨 가문에서 지원이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신용수도 유경풍이 더 이상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우리 셋만 남았군.”신용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신용수가 혼자 남았다 해도 그는 반드시 이곳에 왔을 것이다.호국장군으로서 전장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그의 숙명이자 영광이었다.“무양진군님, 이따가 제가 잡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서 무양진군님을 돕겠습니다.”진서준이 신용수를 바라보며 계획을 밝혔다.하지만 신용수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팔급 이상 대종사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 게 좋
설마 이족들이 정말 공격 경로를 바꾼 건가?바로 그때, 신용수의 휴대폰이 울렸다.신용수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자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다시금 그의 마음속에서 떠올랐다.진서준도 긴장한 눈빛으로 신용수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무양진군님, 어젯밤 서북 사막이 조용하지 않았습니까?”“맞아, 북오런 올림푸스 신전 이족들이 공격 경로를 변경한 게 아니야?”신용수가 초조한 말투로 물었다.“아닙니다, 아마 시간 조정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본래 오늘 밤에 북부 변경에서 움직일 예정이었던 해외 이족들이 어젯밤 갑자기 움직였습니다.”“뭐라고? 피해는 어느 정도야?”신용수의 목소리가 떨렸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해외 이족들의 기습이라면 북부 변경에 남아있는 호국사들이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이 컸다.“피해는 크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동북 조씨 가문 검존이 어젯밤 북부 변경에 나타나셨습니다. 덕분에 검존 혼자서 대다수 해외 강자를 다 처단해 버렸습니다.”전화 건너편에서 상대방이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그 소식에 신용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다면 다행이군. 이족들이 시간을 바꾼 거라면 여기서 하루 더 기다리면 돼.”경성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신용수는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전화를 끊고 나서 신용수는 진서준을 보며 웃으며 소식을 전했다.“아마도 너와 진씨 가문 그 녀석 활약 때문에 조기강이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 그 녀석이 동북 조씨 가문에 가만히 있지 않고 홀로 북부 변경까지 갔다고 해. 조기강이 북부 변경에 갔으니 참 다행이야. 조기강만 없었더라면 북부 변경 방어선이 무너졌을지도 몰라.”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타고난 천재라 불리는 인물이라면 누구든 자존심이 다 강하죠.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 다른 지역에 있는 천재들도 이제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할 겁니다.”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자존심이 있었다.그중에서도 타고난 천재라 불리는 자들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용존 진서준, 검선 김평안, 검존 조기강, 이 셋은 반드시 죽여야 해!]이 댓글은 닉네임이 해외 멸용인 유저가 남긴 것이었다.해외의 이족들이 드디어 참지 못하고 무도 포럼에서 위협을 내뱉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해외 이족들은 대한민국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 세 천재를 반드시 무너뜨리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진서준은 이 댓글을 보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웃음이 나와? 멸용 조직 사람들이 진짜로 찾아올까 봐 두렵지도 않아?”바이올렛은 진서준이 태연히 웃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해외 강자였던 바이올렛은 멸용이라는 조직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멸용 조직은 처음 결성될 때부터 초아국의 여러 세력을 휩쓸고 통합해 이후 초아국에서 가장 강력한 초능력 강자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초능력 강자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의 종사와 다를 바 없었다.다만 조직 내 사람들은 자기를 종사라고 부르지 않고 선택받은 자라고 불렀다.그리고 단전의 강기는 에테르라고 불렀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대한민국 무도와 다를 게 없는, 그저 이름만 다른 강기였다.바로 이 멸용 조직이 25년 전 대한민국 천재들을 학살하려는 계획을 조직한 주범이었다.이번 용멸 계획 역시 이들이 주도하고 있었고 보해 쪽을 주요 공격 목표로 삼고 있었다.보해만 넘어선다면 곧바로 경성이 멸용 조직의 눈앞에 있을 것이다.멸용 조직 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이었다.조직원의 계획은 하나같이 미쳐있었고 심지어 경성으로 직접 쳐들어가 피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하지만 멸용 조직은 그럴만한 실력이 있었다.신용수와 또 다른 호국장군은 서북과 서남에서 수비를 맡고 있고 남은 호국장군들은 전부 보해로 향했다.다들 죽음을 각오하고 멸용 조직을 국경 밖에 막아두겠다고 결심했다.“서북쪽 이족을 해결하면 나도 보해로 갈 생각이야.”진서준은 차분하게 말했다.멸용 조직의 이번 공격 핵심이 보해에 있다는 걸 진서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진서준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 중에도 멸용
“다음 작전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일부 인원을 대한민국 서북, 서남, 동북 세 곳에 파견하겠어.”역천신이 천천히 계획을 밝혔다.“자원하는 사람이 있어?”역천신의 말이 끝나자마자 건장한 두 중년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천신님, 저희 둘이 서북으로 가겠습니다.”이어서 세 명의 인물이 서남으로 향하겠다고 나섰다.그러나 동북으로 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역천신은 손가락으로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너희 둘이 가. 남은 사람들은 모레 나와 함께 크루즈를 타고 보해로 이동할 거야. 대한민국 국안부가 우리 존재로 벌벌 떨게 만들어야 해, 알겠어?”...진서준과 국안부 인원들은 멸용 조직이 이미 세 갈래로 병력을 나누어 파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래서 그날 밤 진서준과 신용수 세 사람은 또다시 허탕을 치고 말았다.올림푸스 신전의 인물들이 밤새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늘 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다려 보자. 만약 이번에도 오지 않는다면 난 보해로 떠나야겠어.”신용수는 보해 쪽 상황이 내심 걱정되었다.보해는 수도와 너무 가까워서 무슨 일이 생기면 큰 문제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신전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저 역시 여길 떠나겠습니다.”진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보탰다.진서준이 떠날 예정이라 하자 신용수가 물었다.“어디로 가려는 건가?”“보해로 갈 겁니다.”그 말에 신용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곳은 별로 추천하지 않아...”멸용 조직이 공격을 감행할 때 보해는 최대의 전장이 될 것이다.그때가 되면 국안부의 호국장군이 전부 그곳에 집결할 것이고 팔급 이하의 대종사가 그곳에 가는 건 죽으러 가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굳이 가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널 막을 수는 없을 거야.”신용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바이올렛은 중간에 차에서 내렸다.“옷을 좀 사러 갈게.”바이올렛은 차에서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어느새 바이올렛이 준비한 옷을 이미 다 입었기 때문이다.결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
진서준과 곽윤상은 약속된 호텔을 향해 차를 몰았다.가는 길에 곽윤상이 말문을 열었다.“진 마스터님이 황씨 가문 따님을 데리고 떠난 직후, 경찰청과 군부 사람들이 모두 몰려왔습니다.”그 총격 사건에 관련된 총잡이들은 물론, 사건 현장과 가까웠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경찰서로 끌려가 진술을 받았다.하지만 진서준이 사람을 구할 당시 주변엔 이미 아무도 없었기에 누가 황예은을 구했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아마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할 겁니다.”진서준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쪽에서 고용한 사람은 대부분 죽음의 수행자입니다. 이런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자들이죠.”아까 진서준이 그 총잡이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이 이미 중독된 상태란 걸 알아챘다.그 독은 독성이 맹렬한 독이었고 섭취 후 12시간 안에 즉사하게 되어 있었다.이를 통해 배후의 진짜 범인은 상당히 잔혹한 수단을 사용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곽윤상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명문대가로 불리는 가문들은 흔히 이런 죽음의 수행자들을 양성한다.이 죽음의 수행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이 명령만 내리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었다.“명주시에서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어느 가문인지 알아요?”진서준의 질문에 곽윤상은 멈칫하다가 되물었다.“진 마스터님은 이 사건을 조사하려는 겁니까? 황씨 가문 따님과 친구 사이신가요?”“친구는 아니지만 내가 조사 중인 다른 일이 오늘 밤 사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진서준이 답했다.간첩 문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황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한 황예은이 확보한 자료 중에 진서준이 필요한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명주시에서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외에도 이런 죽음의 수행자를 양성할 능력이 있는 가문이 열 곳은 넘습니다.”곽윤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명주시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지만 이곳은 땅값이 금값입니
잠시 후, 황예은이 엎드린 채 갑자기 구토하기 시작했다.검은색의 악취 나는 물질들이 황예은의 입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하지만 진서준은 이 상황을 보며 여전히 긴장하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황예은이 이물질을 다 토해낸 후, 진서준은 그녀의 몸에서 침을 뽑아냈다.그러고는 입가의 검은 물질을 닦아내고 황예은을 소파에 똑바로 눕혔다.“실례할게요.”말을 마친 진서준의 두 손이 황예은의 쭉쭉빵빵한 몸 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일부러 황예은이 의식이 없는 틈을 타 뭔가를 시도하려는 게 아니었다. 황예은이 중독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침 치료만으로는 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탐운19수라는 특별한 마사지 기법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이 치료는 진서준에게도 고역이었다.의사 앞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은 달랐다.특히 이렇게 절세 미녀인 황예은 앞에서라면 어느 남자 의사라도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렸다.올기가 서지은을 집 안으로 들어보내고 곽윤상은 문밖에서 대기하게 했다.거실에 들어온 서지은은 알몸으로 누워 있는 황예은과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는 진서준을 보고는 황급히 문을 닫았다.“서준아, 너... 너 어떻게 예은 언니가 기절한 틈을 타 성추행할 수 있어?”서지은은 화난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그건 오해야. 난 지금 이 여자 체내 독을 제거하는 중이야.”진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서지은은 아무 말 없이 진서준을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바닥에 있는 이 검은 물질은 전부 독이야. 이 여자가 방금 토한 거거든.”진서준이 바닥을 가리키며 한마디 덧붙였다.서지은도 바닥에 가득한 물질에서 풍기는 악취를 맡았다.“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순 없었어?”“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게 가장 빠른 방법이야. 이따가 곽 선생님과 함께 약왕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 그 사람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어.”진서준은 이 수단을 사용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르며 검은 그림자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존재가 있었다.주변 사람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이,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진서준은 황예은을 등에 업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기와 서지은이 머무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에 들어가자 진서준은 서둘러 불을 켜고 황예은을 소파에 눕혔다.이때 황예은은 아직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에 묻은 핏자국은 이미 바람에 말라 피비린내가 거의 다 사라졌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 총상 자국이 있었고 꽤나 참혹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요 부위는 피해 가서 치명상은 아니었다.“넌 밖에 나가서 별장을 지켜.”진서준은 어깨에 앉아 있던 올기를 향해 말했다.올기는 순순히 밖으로 날아가 진서준을 위해 문을 지켰다.올기가 떠난 후, 진서준은 황예은의 몸에 남은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 작품처럼 완벽한 몸매가 진서준의 눈앞에 드러났다.비록 여자의 몸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은 자연스럽게 동작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핏자국이 없었다면 황예은의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몸매만으로도 진서준의 피를 끓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진서준은 마음을 다잡고 손바닥을 황예은의 몸에 놓았다.진서준 체내의 영기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황예은의 온몸에 퍼져나갔다.치료가 거의 다 끝나자 진서준은 손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황예은 몸 안에 흩어진 영기가 터진 풍선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속 총알을 튕겨냈다.총알은 무려 다섯 개나 체내에 있었다.여자는 고사하고 건장한 남자라고 해도 총알 다섯 발을 맞고 살아남는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체내의 총알이 빠져나간 후, 진서준은 바로 젖은 수건으로 황예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몇 군데 피가 황예은의 허벅지 안쪽에 흘러내렸다.“이건 다 널 살리기 위한 거야...”진서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황예은의 피를 닦아내는 데만 해도 수건 세 개가 전부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렸다.황예은의 몸에
게다가 지금 황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그룹은 황예은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황예은이 죽으면 황씨 가문는 크게 요동치며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그때는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큰 일이 될 수 있었다.진서준은 급히 황예은을 부축해 차에서 끌어냈고 영기를 그녀의 몸에 주입해 출혈로 인한 상처를 치유했다.“주인님, 제가 도와드릴까요?”올기가 급히 물었다.“괜찮아, 여긴 보는 눈이 많아 넌 그냥 조용히 있어.”진서준은 황예은을 안고 단 몇 걸음 만에 곽윤상의 차로 돌아갔다.진서준이 차 안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진서준이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서지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예은 언니!”황예은이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본 서지은은 얼굴이 급격히 창백해졌다.“서준아, 아까 공격받은 사람이 예은 언니였어?”진서준도 놀라며 되물었다.“너 이 여자 알아?”“명주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입니다.”곽윤상이 대신 대답했다.“이 여자는 명주시 최고 재벌 황경영의 딸입니다. 지금 황씨 가문 실권도 이 여자가 꽉 쥐고 있고요.”보아하니 황예은은 명주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인 듯했다.“예은 언니와 난 같은 대학에 다녔고 언니는 내 선배였어. 우리는 학교에서 꽤 친하게 지냈어.”서지은은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며 초조하게 말했다.“서준아, 제발 예은 언니를 살려줘.”“걱정 마, 이 여자를 죽게 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곽윤상에게 말했다.“곽 선생님, 오늘 약왕과의 만남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여자를 치료하는 게 시급한 것 같아요.”“알겠습니다, 바로 약왕에게 연락할게요.”곽윤상은 곧바로 약왕에게 전화를 걸었다.약왕은 약속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자 불쾌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명주시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약왕은 누군가가 약속을 잡았다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있는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곽윤상, 난 당신 스승 체면을 봐서 만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