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아는 마치 이상한 사람이라도 만난 듯 되물었다.“대체 왜?”“첫째, 그건 다른 사람이 언니에게 준 선물이니 언니 거예요.”“둘째, 그런 물건들은 비싸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어요. 잘 보관했다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하니 어쨌든 제 물건이 아니죠.”“그리고 오빠가 예물을 줄 때 이미 저에게 많은 장신구를 선물했으니 그걸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 되죠.”유승아는 심호흡하며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황당하기 짝이 없었다.유승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에게 한 방 먹은 것 같았다.그녀는 백건이 왜 남서연을 좋아하는지 정말 묻고 싶었다. 그녀는 정말 단순한 바보였다.자신의 수법이 남서연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느낀 유승아는 도리어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또 알 것도 같았다.백건은 늘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서로 속고 속이는 비즈니스계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익을 탐하는 복잡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그래서인지 그는 남서연을 특히 좋아했다.유승아가 백건을 보며 물었다.“정말 필요 없어?”“엄마에게 물어봐.”유승아는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을 챙겨 일어나며 말했다.“나 먼저 갈게.”그녀는 몸을 돌려 떠났다.입구까지 가서 그녀는 백건이 그녀를 배웅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돌아서 보니 백건이 몸으로 남서연을 누르고 속삭이는 모습을 보았다.그들은 두 사람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서 그녀를 상대할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문이 열리자 하현우가 입구에서 그녀를 배웅했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울분에 차서 떠났다.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휴대전화를 찾아 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자 유승아는 악에 받쳐 말했다.“고모, 나 정말 열 받아 죽겠어요. 나 좀 도와줘요...”...사무실 안.남서연은 긴장된 듯 눈을 깜빡이며 몸을 기울인 백건을 보며 침을 삼키고 물었
남서연은 그가 화가 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 “화내지 말아요. 승아 언니를 일부러 나쁘게 말하려는 게 아니라...”백건이 서둘러 말을 잘랐다.“나 화 안 났어. 그냥 궁금해서 그래. 승아가 여우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지.”“승아 언니가 여우인 건 맞지만 난 그 꼼수에 넘어가지 않으니 아무런 쓸모도 없죠.굳이 내 이미지를 망가뜨리며 그 가면을 벗길 필요는 없다는 거죠.”백건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흐뭇해했다.“아주 지혜로운걸?”남서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백건은 어느새 그녀의 촉촉한 입술을 주시하고 저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살짝 만지더니 그윽한 눈동자에 욕망이 끓어올랐다.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는 것을 느끼자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쿵쾅 마구 뛰었다.그녀는 백건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올라왔다.그러나 매번 그와 단둘이 있을 때마다, 백건은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어 했고 두 사람의 시간은 모두 몸의 얽힘에 사용되었다.“오빠.”남서연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백건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침입적인 키스를 퍼부으며 천천히 그녀의 볼을 감싸 안았다.“음!”그녀는 눈을 감았고 백건의 몸은 천천히 그녀를 눌렀다.갑자기 노크 소리가 두 번 나더니 하현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남서연은 황급히 백건을 밀어내고 긴장한 채 일어나니 얼굴이 붉어지고 수줍고 난처해졌다.하현우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남서연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고, 백건이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두 사람의 숨결과 안색만으로 방금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하현우는 너무 난처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바로 나가겠습니다.”백건은 화를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숨을 돌렸다.남서연이 그를 불러세웠다.“나갈 필요 없어요. 제가... 제가 갈게요.”남서연은 사무실에서 이런 애정행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이곳은 사무적인 공간이지 남녀 간에
밤 10시.공항 대합실.남서연은 손에 꽃을 들고 출구에 서서 기다렸다.멀지 않은 곳에 진우석이 캐리어를 끌고 트렌디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멀리서 진우석을 발견한 남서연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진우석은 감격에 겨워 캐리어를 끌고 성큼성큼 남서연에게 달려갔다.그가 껴안으려고 손을 벌렸지만 남서연은 생화를 그의 품에 밀어 넣었다.진우석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꽃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고마워. 하지만 꽃보다 너의 포옹을 원해.”남서연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손을 놓았다.진우석은 다가가서 그녀를 안고 등을 쓰다듬어주었다.“보고 싶었어. 서연아.”“왜 갑자기 돌아왔어요?”“박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증을 손에 넣자마자 너 보러 돌아왔어. 너무 보고 싶었어.”남서연은 천천히 그를 밀치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장난치지 마요. 가요. 밖에 차 있으니까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진우석은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면서 물었다.“아저씨 아주머니는 잘 계시고?”“그럼요.”남서연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손에 잡혀 있는 자신의 손에 향했다.예전 같았으면 지극히 흔한 일이었다.진우석은 그녀와 소꿉친구로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좋았으니 이런 친밀한 행동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미 약혼했고 약혼자 백건이 있었다.그녀에게 가까운 이성 친구가 있는 것을 백건을 신경 쓰든 안 쓰든 그녀는 이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남서연이 힘껏 손을 빼자 진우석이 경악하며 물었다.“왜 그래?”남서연은 미소를 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이제 성인이에요. 툭하면 손을 잡으면 남들이 오해해요.”진우석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서연이 다 컸네. 부끄러움도 알고.”부끄러움?남서연은 움찔 놀랐다.“집에 가자. 내가 네 선물 사 왔어.”남서연은 별생각 없이 그와 나란히 공항을 떠났다.기사가 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남서연은 진우석과 차에
남우영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매우 난처했다.“아저씨, 그런 뜻이 아니라 그게...”“집사람이 서연이를 잘 돌봐 줄 거야. 왜 취한 서연이를 더 힘들게 해? 자, 어서 돌아가서 자.”“서연이 이미 약혼했어요. 이 집에 머무는 건 적합하지 않아요.”진연우는 당연히 그녀의 약혼을 알고 있었다.갑자기 일어난 일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빨리 아들을 돌아오라고 했다.그렇지 않으면 며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생겼다.“약혼하면 자유도 없는 거냐?”“그런 뜻이 아니라 저...”남우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연우가 말을 끊었다.“돌아가. 잘 자고.”말이 끝나고 곧 대문이 닫혔다.남우영은 잿빛이 된 얼굴로 풀이 죽어 핸드폰을 꺼내서 백건에게 전화를 걸었다.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삼촌, 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전화기 너머로 백건의 흐릿한 목소리가 들렸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진우석이 돌아왔어요.”남우영이 말하자 백건은 침묵했다.한바탕 정적이 깔렸다.“서연이가 진우석의 집에서 환영 파티를 하다가 술을 많이 마셔서 취했어요. 내가 서연이를 데리러 왔는데 못 가게 해요. 오늘 밤은 진우석의 집에서 잔대요.”백건은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말투가 싸늘하고 엄숙했다.“위치 보내.”“두 사람 오해가 생길까 봐 내가 미리 말해두는 데 서연이 이 집에서 안전해요. 전에도 자주 이 집에서 잤으니까 오늘은 안심하고 내일 다시 얘기해요. 이 늦은 시간에...”백건이 차갑게 소리쳤다.“위치 보내라고!”화들짝 놀란 남우영은 하마터면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그는 이렇게 통제 불능으로 난폭한 백건을 본 적이 없었다.남우영의 마음속에 백건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여유롭고 담담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다.지금의 그는 전혀 이성적이지도 않고 침착하지도 못한 경솔한 소년 같았다.남우영은 더 이상 그를 화나게 할 수 없었다.바로 전화를 끊고 그에게 주소를 보냈다.백건은 기사를 부르지 않고 직접 차를 몰
“서연이는 술 안 마셔. 일부러 취하게 한 거지?”진우석은 코웃음을 쳤다.“그쪽과 안 마시는 거지 나랑은 마셔요. 게다가 내가 돌아와서 서연이가 아주 기뻐했거든요.”백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서연이는 아주 단순한 애예요. 대체 어떤 수단으로 애를 속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떳떳한 방법은 아니겠죠. 저번에 애를 데리고 해외 활동에 참여했을 때부터 당신 동기를 의심했어요. 당신처럼 속이 시커멓고 성격이 비뚤어진 남자는 서연이와 어울리지 않아요. 난 절대 서연이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걸 볼 수 없어요.”백건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걸어가 그를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진우석이 쫓아가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백건은 그대로 그의 옷깃을 잡고 벽에다 꽉 눌렀다.백건의 몸에 냉기가 응축되어 있었고 눈동자에 무서운 살기가 서려 있었다.“잘 들어. 남서연은 내 약혼녀야. 두 사람이 전에 어떤 관계든, 얼마나 친했던 이제 모두 과거형이야. 오늘부터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거야. 이제부터 나 백건의 여자니까.”진우석은 이를 갈며 말했다.“당신의 그 추악한 얼굴을 내가 반드시 찢어버릴 거야. 대체 어떤 사람인지 서연이에게 똑똑히 보여줄 거야.”백건은 코웃음을 쳤다.“기대할게.”말을 마친 백건은 그를 벽으로 확 밀쳤고 등이 부딪친 진우석은 통증이 몰려왔다.백건은 방으로 가서 문을 비틀어 열고 들어섰다.불을 켜자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자는 남서연이 보였다.그는 걸어가서 이불을 젖히고 남서연을 가로로 안았다.잠에 푹 빠질 정도로 취한 그녀를 안고 방에서 나왔다.진우석이 다시 백건의 앞을 가로막자 백건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만약 서연이가 지금 제정신이라면 서연이는 절대 날 두고 당신을 따라가지 않았을 거야.”백건은 마음이 아팠다.그도 진우석과 비교해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억지로 얻은 사람일지라도 백건은 꼭 가져야만 했다.“오늘 밤 난 무조건 서연이를 데리고 갈 거야. 비켜.”진우석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았다.분위기가 상당히 억
아침 햇살이 베란다에 비쳐 따뜻함이 넘쳤다.남서연은 잠에서 깨어났다.그녀가 눈을 뜨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청춘을 가득 채운 그 잘생긴 얼굴이었다.남자는 눈을 감은 채 옆으로 누워 그녀와 마주 보고 잠을 잤다.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다.어떻게 자고 일어났는데 백건이 눈 앞에 있을까?그녀는 자신이 분명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컨디션을 조절한 후 다시 눈을 떴다.눈앞의 남자는 여전히 진실하게 느껴졌다.그녀의 기억으로는 어젯밤에 진우석의 집에서 진우석의 축하파티를 하며 술을 몇 잔 마신 후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술에 취했다고?남서연은 문득 깨달았다.‘내가 술에 취해서 오빠 침대에서 잤다고? 그러니까 어젯밤에 누가 나를 이 집에 데려온 거지?’남서연은 생각할수록 떨리고 이상해서 괜히 불안했다.백건의 얼굴을 만지고 싶은 충동에 그녀는 이불 속에서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여전히 겁이 나서 남자의 잘생긴 미간을 살짝 건드리고 미간을 타고 오똑한 콧날까지 내려왔다.문득 남자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남서연은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몇 초 동안 굳어 있다가 즉시 손을 거두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수줍음과 긴장감을 보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남서연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갑자기 백건이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서연아, 우리 오늘 혼인 신고하러 가자.”남서연은 뜬금없는 말에 놀라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오늘 혼인신고라니, 너무 갑작스러워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우리 이미 약혼했잖아요? 왜 그렇게 서둘러요?”“약혼했으니 언젠가 꼭 결혼할 거고, 그러니 빨리한다고 문제 될 것도 없잖아.”남서연이 설명했다.“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갑자기 오늘 혼인신고를 한다니. 아직 오빠 부모님께 인사도 안 드렸어요.”“혼인신고하고 만나러 가도 늦지 않아.”그는 자기 자
그래서 그녀는 백건이 왜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지 미치도록 알고 싶었다.백건은 설명도 없이 남서연을 풀어주고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들어갔다.남서연은 그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았다.유승아가 전에 그녀를 찾아와서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다.그때, 유승아는 그녀에게 답을 알려주려 했지만 그녀는 나쁜 결과가 될까 봐 듣지 않기로 선택했다.그녀는 백건이 직접 이유를 알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백건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남서연은 침대에서 내려 맨발로 바닥에 서서 그녀의 신발을 찾았다.그제야 휴대폰과 신발이 모두 진우석네 집에 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침대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백건이 이미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옷방으로 가서 새 슬리퍼를 남서연의 앞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 직접 신겨 주었다.남서연은 남자의 곱상한 얼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가서 씻어. 세면도구 다 새것으로 준비해뒀어.”“오빠.”남서연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나와 결혼하고 싶어요?”백건이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데 많은 이유가 필요해?”“이유는 당연히 많죠. 예를 들면 권력, 재부, 미모, 생육, 강요 등등.”백건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사랑이 아니고?”남서연은 기분이 좋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대답이 진솔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어떻게 오빠가 나를 사랑해요.”백건은 일어나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가서 씻어.”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남서연은 깨끗이 씻고 방문을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오자 그녀는 걸음을 재촉하여 계단을 내려갔다.거실에 내려가 보니 진우석이 백건의 멱살을 잡고 격노하여 소리치고 있었다.“내가 있는 한 넌 절대 서연이를 못 속여!”“지금 뭐 하는 거예요?”남서연은 달려들
남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백건은 남서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화를 꾹 참으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 끝이 뭉클해졌다.그에게 다가올 행복이 곧 원점으로 돌아가는 걸까?백건은 당황했다.진우석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서연아, 난 정말 네가 이 남자에게 속고 있는 걸 지켜볼 수가 없어.”또 이 말이었다. 유승아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었다.그녀는 백건이 대체 어떻게 그녀를 속였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그럼 말해봐요. 대체 나한테 뭘 속였는데요?”진우석이 말하려는데 백건이 다가가 남서연의 손을 잡았다. 이미 호흡이 거칠어진 그는 긴장하며 말했다.“서연아, 지각하겠다. 출근하러 가자.”진우석이 백건을 밀어젖혔다.“그만해. 이제 무서워? 서연이를 속일 때는 무섭지 않았어?”화가 난 백건이 나지막이 화를 냈다.“내가 뭘 속였는데?”진우석은 남서연을 옆으로 밀어내고 백건에게 돌진해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이를 갈았다.“내가 당신의 더러운 수법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 이미 다 조사했어.”“수능이 끝나고 서연이와 난 외지에 있는 같은 대학에 합격했어. 근데 네가 돈을 주고 남서연의 통지서를 가로채서 현지 대학으로 바꿨잖아.”남서연은 놀라서 아연실색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백건은 할 말이 없었고 당황하고 두려울 따름이었다.그가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진우석이 아니라 남서연을 잃을까 봐서였다.결국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3년 전, 서연이는 나와 함께 유학을 가려고 했어. 근데 네가 면접관에게 돈을 줘서 서연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 출입국에도 손을 써서 서연이가 출국할 수 없게 만들었어. 그래서 서연이는 나와 함께 공부할 기회를 놓쳤어.”“그리고 전에 있은 그 해외 행사, 출장 명단에 서연이 이름은 없었는데 네가 일부러 넣은 거잖아. 게다가 호텔에서 같은 방을 배정해? 이 쓰레기 같은 놈아!”진우석의 폭로에 남서연은 멍하니 들으며 믿을 수 없었다.“그리고 서연이가 사고 날뻔한 거, 그것도 네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