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연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백건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남자의 눈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속삭였다.“전부 사실이야.”남서연은 경악하며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대체 왜요?”백건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진우석이 다가가 남서연의 손목을 잡고 돌아섰다.“이런 사람이랑 말 섞지 말고 돌아가.”남서연이 아직도 충격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진우석에 의해 끌려갔다.백건은 손에 잡힐 듯 다가온 여자가 그렇게 눈앞에서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이 칼로 찌르는 듯 아팠다.남서연처럼 순진하고 착한 여자가 어떻게 그의 행각을 이해할 수 있을까?그는 소파로 가서 힘없이 털썩 주저앉아 등받이에 기대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팔로 눈을 가리고 모든 슬픔을 막았다.그의 온몸은 짙은 스모그로 뒤덮여 있었고 사라지지 않는 음울함과 고독이 퍼졌고 가슴은 쥐어뜯는 듯 아팠다.남서연을 얻고부터 잃은 것까지 불과 며칠. 천국에서 지옥은 단 한 순간이었다.밖에서.진우석은 남서연을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매준 후 자신도 운전석에 올라타서 안전벨트를 맸다.남서연은 그제야 반응을 보이더니 슬픈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왜 가야 해요? 나 아직 답을 못 들었어요.”“감히 대답 못 하는 거야. 묻지 마.”남서연이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자 진우석이 빠르게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뭐 하는 거야?”“백건은 내 약혼자예요. 오빠가 무슨 짓을 했든 난 꼭 설명을 들어야겠어요.”남서연은 자신이 이렇게 가버리면 백건과의 결혼이 깨질까 봐 걱정했다.“어떤 이유에서든 그 수단이 더럽고 비열한 건 변하지 않아. 저런 수준 미달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진우석이 화를 내며 묻자 남서연이 눈물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다.“어제 방금 돌아온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알고 있어요? 어떻게 조사했어요?”진우석은 멍해졌다.그러자 남서연이 화를 냈다.“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우린 절교야.”진우석이
말을 마친 남서연은 성큼성큼 별장으로 향했다.진우석이 차에서 내려 뒤쫓아갔지만 남서연은 별장에 뛰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진우석이 밖에서 문을 두드렸지만 남서연은 열어주지 않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기척을 들은 백건은 팔을 내리고 입구에 있는 여자를 보았다.그는 남서연이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암울하고 슬픈 눈에는 격앙된 희망이 가득했다. 그는 몸을 곧게 펴고 앉아 붉고 촉촉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문밖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남서연은 그 앞에 가서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진우석이 오빠가 나를 오랫동안 노렸다고 하는데 사실이에요?”백건은 괴로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남서연은 긴장하여 주먹을 꽉 쥐었다.“노렸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아요?”“알아. 자기 것이 아닌 걸 욕심내는 거잖아.”남서연은 괴로워하며 물었다.“단어를 좀 바꾸면 안 돼요? 좋아하는 거로 바꿀 수도 있잖아요.”백건은 경악에 찬 눈으로 남서연을 보았다.남서연은 눈물이 그렁해서 울먹였다.“난 개인재산도 아니고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데 왜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노렸다고 표현해요?”백건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널 좋아해서 그랬어. 널 좋아해서 비열하고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어. 널 미행하고 조사하고 네 주변의 모든 이성을 차단했어. 너와 진우석이 함께 유학 가려고 했던 일도 포함해서...”남서연이 말을 끊었다.“그러니까 해외 출장 갔을 때, 나와 잔 것도 계획 중 하나였어요?”백건이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나와 자고 난 다음에는요? 그다음 계획은 대체 뭐였어요?”백건은 이제 아무것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사실대로 말했다.“널 임신하게 만들고 너와 결혼하려고 했어.”“하마터면 성공할 뻔했네요.”남서연이 말한 건 자신의 임신이었다.그러나 백건은 쓸쓸한 미소를 짓더니 눈이 붉어져 고개를 숙이고는 슬픈 어조로 중얼거렸다.“내가 아무리 머리를 써도 진우석을 이길 수는 없네.”남서연
만약 그녀가 백건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일은 용서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백건은 그녀의 사랑을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백건을 매우 좋아했다.그녀가 보기에 백건이 저지른 악행은 단지 그녀를 너무 좋아해서 그녀가 진우석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을 시기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다.분명히 모두 나쁜 일인데 그녀는 조금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감동하기까지 했다.백건은 남서연을 부둥켜안고 다시 찾은 기쁨을 만끽했다.여태껏 백건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사랑했다.잠시 포옹한 후 남서연이 백건을 밀어내고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진우석이 아직도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안 갈 거예요.”백건이 긴장해서 말했다.“같이 가서 말하자.”남서연은 진우석을 너무 잘 알았다. 백건이 있으면 진우석이 충동을 못 이겨 주먹을 휘두를 것이니 절대 평화롭게 일을 해결할 수 없었다.“일단은 우석 오빠와 함께 돌아갈게요.”남서연은 손을 놓고 백건의 품에서 나왔다.백건은 그녀의 덥석 잡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다시 돌아올 거야?”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난 오빠를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다시 돌아오다니요?”백건은 움찔 놀랐다.남서연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발끝을 세워 남자의 얇은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수줍게 속삭였다.“나 먼저 집에 갈게요.”백건은 순수하고 귀여운 여자의 모습을 보니 거짓말 같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믿을 수 없었다.남서연이 돌아서서 떠나자 그는 여전히 우울한 기분으로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머릿속에 여러 가지 대안을 떠올리고 있었다.문밖에서 진우석은 남서연이 나오자 두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조수석에 태운 후 시동을 걸고 훌쩍 떠났다.차량은 남씨 본가로 향했다.진우석이 화를 내며 물었다.“세상에 남자가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 백건이야?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야. 백건의
진우석은 분노로 인해 눈시울을 붉히며 고함을 질렀다.“남서연, 정신 차리라고! 백건은 너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언젠가 너 후회해!”“나와 어울리는지는 내가 판단해요. 하지만 절대 후회하진 않아요. 이건 내 선택이니까.”남서연이 단호한 태도로 말하자 진우석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집에 도착하자 남서연은 진우석을 혼자 거실에 두고 급하게 뛰어 올라갔다.진우석은 할 일이 없어 집에 돌아갔다.저녁, 남서연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을 찾아가서 정중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나 건이 오빠와 동거하고 싶어요.”이 생각을 들은 그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반대했다.그러나 지우와 남태준은 그녀의 생각을 존중했다.“나와 오빠는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적어요. 결혼 전에 좀 더 끈끈한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결혼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겠어요?”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봉건적이지는 않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승아 언니가 오빠를 좋아해요. 고모를 이용해 계속 나와 오빠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어요.”몇 사람은 모두 경악했다.“유미를 말하는 거니?”남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두 서로를 쳐다보며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당시 유미가 남하준과 정안의 사이에 끼어든 걸 생각하면 그녀의 수법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지우가 먼저 생각을 말했다.“엄마는 널 응원해.”남서연이 방긋 웃으며 지우를 끌어안았다.“고마워요, 엄마.”이튿날 저녁.해가 서산에 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에 가득했다.고급 차 한 대가 천천히 별장 앞마당으로 들어섰고 하현우가 백건에게 문을 열어주었다.백건이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들어가자 하현우가 뒤를 따르며 물었다.“저녁 식사 준비할까요?”“됐어.”“점심도 적게 드셨는데 저녁은 드셔야죠.”백건은 귀찮아하며 말했다.“언제부터 잔소리가 늘었어?”하현우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별장에 들어서자 조명이 켜졌고 백건은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잡아당겨 하현우에게 건네주었다.하현우가 공손히 말했다.“더
백건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남서연은 놀라서 손을 놓고 그의 얼굴 옆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난 줄 어떻게 알았어요?”순간, 차갑던 백건의 얼굴에 온기가 돌더니 미소가 번지고 눈매가 부드러워졌다.“네 손등을 만졌잖아.”남서연은 자기 손등을 보며 영문을 모르겠는 표정을 지었다.백건은 입술을 오므리고 웃었다.그는 추측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 이런 장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남서연은 똑바로 서서 소파를 돌아 백건의 맞은편에 앉았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하현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남서연도 하현우를 보고 말했다.“안녕하세요, 하 비서님.”백건은 하현우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손짓했다.하현우는 옷을 세탁실에 놓고 별장을 떠났다.문이 닫히는 순간 백건이 몸을 기울여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왔어?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 저녁은 먹었어? 배 안 고파?”남서연은 그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고 먼저 중요한 일부터 말했다.그녀는 백건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거절당할까 봐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단정히 앉았다.손을 비비고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여기 와서 오빠랑 같이 살고 싶은데 괜찮아요?”백건은 흠칫 놀랐다.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남서연은 조금 난처해졌고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서 다시 한번 말했다.“오빠랑 동거하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해요?”갑자기 다가온 행복에 백건은 어리둥절하여 잠시 반응이 없었다.남자의 의아한 표정을 본 남서연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그가 만약 거절한다면 얼마나 민망할까?그가 거절하기도 전에 남서연이 경직된 웃음을 지으며 여유롭게 말했다.“오빠가 싫으면 됐어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나...”말하면서 남서연은 일어나서 떠나려 했다.백건은 벌떡 일어나서 그녀의 팔을 잡고 다급한 말투로 말했다.“좋아. 난 좋아. 여긴 이제 네 집이야.”남서연은 기뻐했고
“하지만...”남서연이 고민하자 백건이 긴장하며 물었다.“하지만 뭐?”남서연의 볼이 점점 붉어졌고 여린 피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수줍게 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혼전임신이 두려워요.”백건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그녀를 꼭 껴안았다.그녀가 매우 부끄러워하니 그도 약간 부끄러워졌다.그녀를 꼭 껴안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포옹을 나눈 후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남서연은 백건의 품에 기대어 휴대폰을 보며 배달 음식을 고르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요리를 할 줄 몰랐고 늦은 시간에 요리사를 부르기 싫어 대충 한 끼를 때우기로 했다.백건은 평가가 높은 좋은 식당의 음식을 주문하고 싶었지만 남서연이 거절했다.가족들은 어려서부터 남서연의 식단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해로운 음식은 절대로 먹이지 않았다.그건 백건도 마찬가지였다.남서연은 백건이 그녀의 가족과 같을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바비큐 먹을래요?”“소고기 바비큐?”“아니요. 그런 거 말고 포장마차에서 파는 바비큐요.”“위생 상태가 좋지 않고 음식 신선도도 떨어져. 게다가...”남서연은 입술을 내밀며 애교스럽게 중얼거렸다.“먹어보고 싶단 말이에요.”백건은 그녀가 바라는 눈빛을 바라보며 그 음식들이 건강하지 않고 비위생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백건은 판매량이 가장 높은 바비큐 식당을 클릭하여 안에 있는 음식을 살펴보니 가격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저렴했다.남서연은 그의 품에 엎드려 휴대전화 화면을 기웃거리며 한마디 보탰다.“맥주도 마시고 싶어요.”백건은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서연이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백건은 움찔했다. 심장 박자를 놓치고 악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귀염뽀짝한 고양이처럼 동그란 큰 눈에 기원하는 빛을 띠고 있으며 눈매가 그림처럼 맑고 깨끗했다.그에게 뽀뽀한 후 불쌍한 척 말했다.“가족들은 나 술 못 마시게 한단 말이
백건은 그녀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그는 원래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남서연과 함께 있으니 식욕이 크게 증가했다.둘은 치킨과 바비큐를 먹으며 맥주를 마셨다.맥주 두 캔을 마시자 남서연은 곤드레만드레 취해 눈이 흐릿하고 말에 조리가 없었다.독한 술에 익숙한 백건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었다.그는 남서연의 곁으로 가서 그녀를 가로로 안고 2층으로 향했다.남서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착한 건이 오빠. 앞으로는 내가 지켜줄게요. 절대 상처받지 않게 해 줄 거예요.”백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서연아, 술을 못 마시면 앞으로 마시지 마.”남서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중얼거렸다.“백건,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야?”백건은 그녀를 안방의 큰 침대에 내려주고 신발을 벗겨주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답했다.“나 너 좋아해.”남서연은 눈을 감고 납작한 입으로 울먹였다.“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냐고!”백건은 그녀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고는 속삭였다.“나 너 좋아해 남서연. 아주 많이 좋아해.”남서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답했다.“그래.”입맞춤한 백건은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넌 주량도 약하고 술버릇도 안 좋아. 취하면 막말을 하잖아.”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백건은 일어나서 손목시계를 벗고 셔츠 단추를 풀면서 욕실로 향했다.백건은 욕실에서 샤워하고 머리를 감았다.잠시 후 문이 갑자기 열리자 그는 놀라서 재빨리 목욕 수건을 당겨서 막았다.남서연은 곧장 뛰어들어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속옷을 벗은 후 변기에 앉아 소변을 봤다.백건은 숨결이 어지럽고 뜨거워진 눈으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물보라가 그의 몸에 흐르고 그의 몸 온도는 점점 치솟았다.남서연은 반쯤 취한 눈을 들어 백건을 보았는데 알코올의 작용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초점을 잃어 더욱 마음을 홀렸다.그녀는 발목의 속옷을 걷어차고 일어나 셔츠 단추를 풀면서 백건에게 향했다.자동 변기의 세척 소리가 매우
남서연은 잠결에 몸을 돌렸다.그러자 머리카락이 욱신욱신거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졸린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는 뜻밖에도 백건의 팔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두 사람은 이불을 덮고 벌거벗은 채 서로 붙어 있었다.백건은 그녀의 비명에 잠이 깨어 흐릿한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말투로 긴장한 듯 물었다.“서연아, 왜 그래?”남서연은 서둘러 이불로 가슴을 덮고 얼굴이 뜨거워지며 수줍게 물었다.“내 머리카락이 눌렸어요.”백건은 황급히 팔을 들었다.남서연은 그의 팔에서 벗어나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다시 그의 탄탄한 복근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왜 오빠 방에 있어요?”백건이 웃으며 답했다.“이젠 네 방이기도 해.”남서연은 머리를 긁적거렸지만 어젯밤의 기억이 희미했다. 술을 조금 마신 후로 필름이 끊겨버렸다.그녀는 주량이 약해 쉽게 취했다.“우리...”남서연은 부끄러운 듯 이불을 들추고 몸을 보더니 또 덮고 물었다.“또... 했어요?”백건은 조금 실망했다.“기억이 안 나?”남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건은 가볍게 웃었다. 아쉽게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어젯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얼마나 잘 적응하고 그의 마음을 홀렸는지 모르고 있었다.사랑하는 여자가 침대에서 분방하고 능동적인 모습을 거절할 수 있는 남자는 없었다.갑자기 술이 좋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백건은 그녀의 허리를 덥석 잡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몸을 뒤척여 그녀를 누르고 다정하게 바라보았다.그러자 남서연은 바짝 긴장했다.“내가 어젯밤에 실수한 건 없죠?”그가 샤워할 때 뛰어들어 화장실을 간 것도 실수에 속할까?옷을 벗고 달려들어 그와 함께 목욕한 것도 실수에 속할까?백건은 사랑스럽게 속삭였다.“없었어.”“그럼 우리...”“내가 참지 못했어.”백건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다정하게 말했다.“어차피 동거할 건데 각방 쓰지 말자. 난 내 생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