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내리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안색이 굳어졌다.“나 때문에 일 그만두는 거라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난 기쁘지도 않고 감동하지도 않아요. 심지어 나 난처하게 만드는 거예요.”“나 네가 다치는 거 원하지 않아. 내가 약속을...”남태준의 소리가 뚝 그쳤다.지우는 그가 또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며 설명했다.“난 당신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돈 벌어 나 부양할 필요도 없고 나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것도 싫어요. 난 폐물이 되고 싶지 않고 당신 사업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알아요?”남태준은 그녀의 자존심이 강한 것도 알고 그녀가 지금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지우가 말을 이었다.“만약 이 일이 싫어서 개인적으로 그만두고 싶은 거라면 나 아무 의견 없어요. 난 당신 선택 존중하니까. 하지만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강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건 안 돼요.”“몇 년 뒤에 당신이 후회하면서 나에게 소리 지르는 거 듣고 싶지 않아요. 다 나 때문이라고...”지우는 말을 할수록 괴로워져 단호하게 말했다.“난 당신이 후회하는 거 싫어요.”남태준은 기분이 가라앉아 숨을 크게 내쉬었다.“일 그만두지 말아요. 네?”지우가 추궁하자 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진연우가 또 무슨 말을 했어?”“그때 나를 차버린 이유.”남태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해서 말했다.“그 녀석 입은 정말!”“왜 나에게 설명하지 않았어요?”남태준은 답하지 않고 물었다.“그때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알게 돼서 나와 잠자리를 가진 거야?”지우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긴장된 표정으로 부엌을 쳐다보았다. 부부 사이의 사적인 이야기가 외부에 알려질까 봐 두려웠다.그러나 너무 아프다고 멈춰달라고 애원했을 때 그가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언제 동의했어요?”남태준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왜 설명하지 않았어요?”“네 어머니를 헐뜯고 싶지 않았어.”지우는 가슴이 뭉클했지만 눈물이 고여 억울해서 말했다.“그러니까. 당신은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 한 선택이니 내가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난 당신이 나에게 준 타격과 상처를 잊어야 하는 건가요?”“지우야. 내 잘못이야. 인정해.”남태준은 너무 마음이 무거워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넌? 너는 나 사랑한 적 있어?”지우는 그가 왜 이렇게 묻는지 몰라 의문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남태준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가장 슬픈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덧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덤덤하게 가슴을 찌르는 말을 내뱉었다.“내가 너를 좋아할 때 너는 나를 병자처럼 돌봤잖아.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네가 있는 마을로 가서 진심을 다해 대시했을 때, 넌 나를 다른 맞선 상대와 비슷하게 대했어. 넌 계속 우리가 어울리는지 재면서 정말 나를 사랑한 적은 있어?”“지금 우리는 결혼했지만 난 네 사랑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 심지어 네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난 매일 이렇게 너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설명하면 뭐가 달라져?”지우는 고개를 떨구고 가슴을 졸이며 괴로워했다.그녀는 가슴이 켕겼다.애초에 남태준을 만나기도 전에 백완자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이미 이 남자를 숭배하고 좋아했다.사실 그녀의 짝사랑은 그를 만난 첫날부터 시작되었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열등감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 감히 남태준을 좋아하는 티를 내지 못했고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연애할 때도 그녀는 항상 자신이 남태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럴수록 그녀는 남태준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줄 수 없었다.자존심일 수도 있고 자기 보호일 수도 있는데 그녀는 항상 자신이 자격이 없어 남태준과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결혼한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감이 없었다.심지어 남태준이 프러포즈할 때 한
남태준은 지우의 뒤에서 그녀를 꼭 껴안고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왜 밥을 두 입 먹고 마는 거야? 내가 너 화나게 했어?”“정말 배가 안 고파서 그래요.”남자의 숨결이 살갗에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지우는 얼굴이 뜨거워지며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그래도 조금 먹어야지.”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돌아와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남태준도 자리에 앉더니 그녀에게 고기를 집어주고는 그윽한 눈동자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자의 시선에 지우는 부끄러워서 젓가락을 들고 고개를 숙여 식사를 이어갔다.식사 후 남태준은 그녀를 데리고 정원 밖으로 나가 소화 겸 산책을 했다.저녁, 지우는 서재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서 네 시간 동안 계속 일하다가 11시가 넘어서야 서재를 떠났다.그녀는 안방과 객실의 문을 번갈아 보며 고민했다.대체 어느 방에서 자야 할까?서로 각방을 쓰며 필요할 때만 함께 자는 부부도 있다.그렇게 되면 서로 방해받지 않고 좋은 숙면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만의 사적인 공간도 얻게 되는 장점이 있다.단점이라면 부부간의 감정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지우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남태준과 따로 자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첫 경험으로 인한 통증에 그녀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다.만약 오늘 밤에도 남태준이 그녀를 원한다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지우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우선 좀 숨어 있다가 남태준이 잠든 후에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그녀가 객실에서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니 이미 12시가 넘었다.지금쯤이면 남태준이 잠들었을 거로 생각한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다.안은 따뜻한 색의 야광등으로 어둡고 부드러웠다.남태준은 이미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호흡이 고르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잠이 든 것 같았다.지우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올라가 가능한 한 그를 깨우지 않으려 노력했다.옆으로 누워 잘생긴 남자의 옆모습을 보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두근 뛰며 은근슬쩍 긴장하기 시작했다.그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싶지
남자가 한밤중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고백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을 원한다는 신호일까?지우는 계속 긴장한 상태에서 그가 만약 키스하거나 옷을 벗기면 몸이 불편하다고 직접 말해야 하나 생각했다.그러다 갑자기 툭 내뱉었다.“다음에 하죠.”뜬금없고 엉뚱한 말에 지우도 난감해졌다.남태준은 먼저 어리둥절해 하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속삭였다. “다음에 뭐? 다음에 너 사랑하라고?”지우는 민망하고 어이가 없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품에 묻힌 채 그의 단단한 가슴을 천천히 만지며 말했다.“나 잘래요.”남태준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잘자.”“잘자요.”지우는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은 평화로웠고 지우가 두려워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그 후부터 며칠간 남태준은 매일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그녀와 함께 하루 세 끼를 먹고,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정원의 꽃과 식물을 관리했다. 지루하고 시간을 때우는 영화를 함께 보고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해주었다.지우가 그에게 지루하지 않으냐고 물으면 그는 지우가 하는 일이라면 절대 지루하지 않다고 말했다.지우는 애초의 행복을 되찾은 것 같고 점점 가족이 생긴 듯한 귀속감이 들었고 남태준의 아내라는 신분에도 적응하고 있었다.일주일 뒤.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지우는 그녀를 보는 순간 두피가 저리고 영문 없이 긴장하고 불안했다.전에 남태준을 돌볼 때 남태준의 고모를 만난 적이 있었다.남연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거침없이 달려와 단풍나무 집에서 지우를 본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안색이 극도로 어두웠다.“고모님, 안녕하세요.”지우가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남연희는 그녀를 무시한 채 벌컥 화를 내며 물었다.“태준이는 어딨어? 당장 나오라 해. 내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 황당한 소리를 듣고 얼마나 화가 난 줄 알아?”“이 세상에 여자가 그렇게 없어? 하다못해 집안이라도 비슷한 여자를 찾아도 되잖아? 형제 중에서 태준이가 장가를 가장 못 들었어
“이혼시켜야지. 태준이 마누라는 내가 찾아!”남연희는 노여움을 금치 못하고 허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내가 아무렇게나 찾아도 집안이 비슷한 재벌가 아가씨를 데려올 수 있어. 학력과 수양을 막론하고, 집안 형편도 모두 이 시골 촌뜨기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허윤미는 지우의 안색이 극히 어두운 걸 보고 초조한 듯 두리번거리며 물었다.“태준이는? 태준이 지금 어딨어?”허윤미는 원래 이 시누이의 적수가 아니어서 도저히 지우를 도울 수 없었다.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2층에서 들려왔다.“태준 도련님 내려왔어요.”둘째 형님이 감격하며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2층을 향했다.남태준은 옷을 걸치면서 성큼성큼 뛰어 내려왔다.그는 막 운동을 마치고 땀이 흥건해서 위층에서 목욕을 했는데 절반쯤 씻다가 고모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황급히 거품을 깨끗이 헹구고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들을 건 이미 다 들었다.남연희는 남태준을 보자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이놈! 너 마침 잘 왔다. 너 경찰 노릇 하더니 머리가 어떻게 됐어? 네 신분을 잊은 거야? 그래서 이런 여자를 집안에 들인 거야?”남태준은 빠른 걸음으로 지우 곁으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끌어당겨 보호했다. 그는 얼굴이 새파랗고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당장 사과하세요.”남연희는 경악하더니 물었다.“뭐라고?”남태준의 온몸에 강한 냉기가 감돌았고 그는 위엄 있고 분노한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남연희 당신, 당장 내 아내에게 사과하고 당장 이 집에서 나가. 그렇지 않으면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모두가 남태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남연희는 더욱 기가 막힌 듯 그를 쳐다보며 웃기 시작했다.“지금 장난해 태준아? 누구에게 사과하라고? 나 네 고모야. 이게 다 너를 위해서...”남태준이 버럭 소리쳤다.“가문의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 외에 당신이 할 줄 아는 게 뭐야? 무슨 자격으로 내 아내에게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떠들어?”“태준아. 너
“언니 아들 좀 어떻게 해봐요!”남연희는 눈물을 닦으며 억울한 듯 허윤미를 바라보았다.허윤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솔직히 말해서, 그녀도 그의 아들이 이렇게 사납고 독한 것은 처음 보았고 약간 두려웠다.다행히 그녀는 지우를 매우 좋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오늘 남연희의 꼴이 될 것이다.생각만 해도 진땀이 났다.허윤미가 급히 입을 열었다.“태준이 말이 맞아요. 얼른 지우에게 사과하세요. 지우는 착해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 거예요. 만약 사과하지 않겠다면 바로 돌아가세요. 앞으로 태준이 집엔 다시 오지 마시고요.”남연희는 이를 악물고 지우를 노려보며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시골 촌뜨기에게 사과하라니. 어림도 없었다.“꿈 깨!”그녀가 코웃음을 치자 남태준이 차갑게 물었다.“자기 발로 나가시겠어요? 아니면 내가 쫓아낼까요?”“너!”남연희는 주먹을 불끈 쥐며 핏대를 세우고 붉어진 눈시울은 눈물투성이가 되었다.고모가 화가 나서 우는 것을 보고 큰 형수와 작은 형수는 더욱 기뻐했다.허윤미가 급히 남연희를 끌고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아가씨 어서 나가세요. 더 있으면 태준이가 아가씨를 내던질 거예요.”남연희는 마지못해 세 사람에게 끌려갔고 끝까지 남태준을 욕하며 걸어갔다.그러자 집안이 마침내 조용해졌다.남태준이 돌아서니 지우가 그의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그녀는 촉촉한 눈으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남태준은 허리를 굽혀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이듯 물었다.“아직도 마음이 불편해?”지우는 가슴이 뭉클해서 고개를 저었다.“그런데 왜 울고 있어?”지우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이게 다 당신 때문에 감동하여 그런 거잖아요!’“앞으로 이런 얄미운 사람을 만나면 강하게 나가. 전에 나를 상대하던 그런 태도로 무섭게 반격하라고. 알겠어?”“만약 상대가 당신 부모님이라면요?”“중요하지 않아. 상대가 누구든 네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
자욱한 뜨거운 물안개가 욕실 전체를 가득 채웠다.지우는 샤워기 아래에 서서 뜨거운 물을 맞으며 몸을 헹궜다.그녀의 머릿속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 건장한 체구, 그리고 그가 한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지우는 남자가 한 번 카타르시스를 느낀 뒤 원기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자신 때문에 계속 참아왔을 줄은 정말 몰랐다.샤워를 마친 지우는 짧은 잠옷 치마를 입고 방을 나섰다.남태준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지우가 느릿느릿 그에게로 걸어갔다.그가 고개를 들더니 눈이 반짝이고 온몸이 굳어졌고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의 시선은 더욱 뜨거워졌다. 지우의 얼굴은 불그스름했고 날렵하고 예쁜 눈빛은 맑았고 어렴풋이 수줍음이 배어 있었다.그녀의 몸매는 정말 훌륭했다. 통통하고 쭉 뻗은 다리는 희고 보드라워 아주 매력적이었다.남태준은 호흡이 가빠지고 마음이 심란하여 목이 말라 침을 꿀꺽 삼켰다.그가 지우에게 손을 내밀자 지우는 그의 손을 잡고 침대에 올라가 그의 허벅지에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갑작스러운 열정에 남태준은 놀라고 기뻐하며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목젖을 굴리더니 말했다.“잠옷 너무 예쁘다. 오늘 정말 이 옷 입고 잘 거야?”지우가 수줍게 웃으며 물었다.“당신이 사 놓은 옷이잖아요?”“난 패션도 모르고 여자들이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도 몰라. 전부 코디네이터가 골라준 건데 마음에 들어?”지우는 당연히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당신은요? 맘에 들어요?”“넌 뭘 입어도 예뻐.”남태준은 다시 침을 삼키고 따가운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호흡이 거칠어졌다.지우는 그의 욕망을 알아차렸고 또 느낄 수 있었다.남태준의 목을 잡고 천천히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숙이고 먼저 그에게 키스했다.남자는 고개를 들고 두 손으로 그녀의 등을 꼭 껴안고 흥분하며 그녀의 깊은 키스를 맞이했다.그녀의 주동성은 산사태나 쓰나미처럼 남태준의 감정을 쉽게 흔들
엎치락뒤치락, 소용돌이치는 밤.무더위가 일파만파로 이어져서 멈출 수가 없었다.그의 키스는 깊고, 그의 가슴은 따뜻하며, 그의 체력은 매우 좋았다.지우는 매번 만족하면서도 힘이 빠졌고 마침내 모든 체력을 소비하고는 그가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그날 밤, 남태준은 두 개를 꺼내서 세 시간 동안 쓴 후,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까워 더 이상 계속하지 않았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따뜻한 물에 목욕을 마친 후 부드럽고 향기로운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웠다.“내가 정말 많이 사랑해. 지우야.”지우는 잠결에 남태준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그는 그녀의 이마에 뽀뽀하고 그녀를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지우는 남태준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결혼 후, 그는 프러포즈할 때 말한 것처럼 대충 지내지 않았다.결혼 휴가 기간 남태준은 정말 그녀의 껌딱지처럼 붙어있었다.그녀의 기분을 신경 쓰고, 그녀의 취향을 헤아리며 섬세하고 다정하게 배려했다.아침 일찍 일어나서 직접 그녀에게 아침상을 차려줬다.그녀가 일에 지쳐서 목뼈가 좀 아프다고 하니 그는 안마사를 불러 안마 기술을 배워 매일 그녀에게 꾸준히 안마를 해줬다.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그녀에게 다양한 선물을 주며 정성껏 이벤트를 준비했다.그녀를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걱정 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시시각각 그녀에게 뽀뽀하고 싶어 하고 침대에 닿기만 하면 그녀와 생리적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깊이 교류했다.그의 휴대전화 주소록에 적힌 그녀의 이름은 사랑하는 아내였다.그러나 지우는 그를 남태준이라고만 저장했다.고모 남연희는 남태준이 무서워 감히 지우를 다시 찾아와 귀찮게 하지 않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캐리어를 끌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한 달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휴가가 끝난 남태준은 아쉬운 마음으로 출근했다.아침에 일어난 지우는 마음이 허전하고 남태준이 옆에 없는 것이 익숙하지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
저녁을 먹고 나니 8시가 넘었고 남서연은 과일도 조금 먹었다.이렇게 큰 집에 그녀와 백건 두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소 긴장되고 어색했다.그녀는 시간을 보고 일어섰다.“시간이 늦었어요. 저 갈게요.”백건은 부랴부랴 일어나 다급하게 남서연의 손목을 잡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아.”남서연이 그를 뒤돌아보니 그의 눈빛에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조금만 더 앉아 있어. 조금만. 아직 9시도 안 됐으니 조급해하지 마.”남서연은 거절하기 미안하고 또 좋아하는 남자가 붙잡으니 다소 마음이 약해져 다시 자리에 앉았다.“그래요.”백건은 그녀가 심심할까 봐 물었다.“TV 볼래? 아니면 영화?”남서연은 2초간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애니메이션 영화 봐도 돼요?”백건은 2초간 어리둥절하더니 말했다.“그래. 어떤 애니메이션 보고 싶어?”남서연이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녀가 너무 귀엽고 동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그도 함께 볼 수 있었다.그녀와 함께라면 무엇을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남서연은 생각하다가 말했다.“아무거나요. 사랑을 다룬 애니메이션 아무거나 골라봐요.”백건은 그런 것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그는 평소에도 TV와 영화를 보지 않고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본 적이 없었다.그는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자신이 잘 못 골라서 남서연이 지루해할까 봐 휴대전화를 꺼내 하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당장 재미있는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 보내줘. 꼭 재밌어야 해.”잠시 후 하현우가 영화 링크를 그의 휴대전화로 보내주며 꼭 이어폰을 끼고 보라고 일러줬다.백건은 별생각 없이 거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휴대전화의 링크를 TV에 띄웠다.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영화가 시작되면서 남서연은 서서히 몰입했다.영화의 질감은 아름다운데 여주인공의 몸매가 너무 화끈하고 옷차림도 살짝 드러났다.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남녀주인공을 둘러싼 짝
사장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다.“감사합니다. 곧 보내드릴게요.”백건은 남서연을 끌고 나가 한적한 시장 거리에 서서 화가 난 채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남서연은 어렴풋이 백건의 화를 느끼며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는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화를 꾹 억누르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남서연, 마지막으로 알려두는데 난 남우영의 삼촌이지 네 삼촌이 아니야. 난 네 부모님과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고. 알아들어?”남서연은 그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거듭 사과했다.“미안해요. 알았어요. 다음부터는 그렇게 부르지 않을게요.”백건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허탈하게 그녀를 쳐다보았고 남서연도 그를 바라보았다.두 눈이 마주치자 눈빛 사이에 조금 다른 감정이 흘렀다.남서연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오빠, 진짜 승아 누나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에요?”“아니야.”남서연은 심장이 콩닥거렸고 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는 있어요?”“없어.”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자신이 웃지 못하도록 입술을 오므리고는 담담한 척 대답했다.“아!”마음을 진정한 백건이 말했다.“가자. 화분이 배달되면 어떻게 놓을지 네가 봐줘.”남서연은 바짝 긴장했다.“오빠 집에까지 가자고요?”백건은 그녀의 말투를 듣고 그녀가 싫어하는 줄 알고 급히 설명했다.“그냥 화분 놓을 위치만 봐줘. 끝나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쑥스러운 미소를 숨겼다.두 사람은 차에 올랐고 시동을 걸고 떠났다.가는 길에 남서연은 그에게 그때 무슨 마음으로 자기와 잠자리를 가졌는지 너무 묻고 싶었다.하지만 너무 어색해 결국 묻지 못했다.남자와 여자는 달랐으니 말이다.어떤 남자들은 사랑을 떠나 그저 외롭고 욕망이 끓어오르면 아무 여자나 찾아 생리적 수요를 해결하면 되었으니.산 중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다.그들이 막 집에 도착했을 때, 화분을 운반하는 차도 도착했고 일꾼들은 화분을 운반하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배달했다.남서연은 화분의 위치
“오빠. 우리 둘뿐이에요?”“응.”“그래요.”남서연은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서둘러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문을 닫은 백건은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떠났다.석양이 서쪽으로 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에 가득했다.차 안의 분위기는 다소 답답하고 억압되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니 분위기가 점점 더 어색해졌다.남서연은 그 정적을 깨려고 화제를 찾으려 했지만 너무 떨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그때 백건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우영이는 네가 나와 꽃 사러 가는 거 알아?”“몰라요. 다혜랑 쇼핑 간다고 말했어요.”백건의 안색이 굳어지며 마음이 좀 언짢았다.꽃을 사러 시장에 가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의 존재를 숨겼을까? 그와 쇼핑하러 가는 것도 가족을 속여야 하는 일일까?새가 지저귀고 꽃이 향기로운 꽃 시장에 간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그들은 모두 처음 와서 이 시장이 6시부터 문을 닫는 것을 몰랐다.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두세 군데 가게에 그래도 녹색 식물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화분 필요하세요?”마감 정리를 하던 사장이 반갑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백건과 나란히 가게로 걸어가서 사방을 둘러보았다.백건은 남서연의 곁에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뭐가 맘에 들어?”남서연은 그제야 모든 녹색 식물이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대나무 같은 녹색 식물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예쁘네요.”그러자 백건이 사장에게 말했다.“이 친구가 좋아하는 거 다 포장해 주세요.”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습니다.”많은 희한한 녹색 식물이 정교하고 예쁘게 생겼다. 처음 본 남서연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이것도 예쁘네요.”“이건 무슨 꽃이에요? 실내에서 키울 수 있어요?”“태양이 조금 필요한 베란다에 심을 수 있어요.”“그것도 사죠.”백건이 말했다.남서연은 구석에 있는 이상한 식물을 보고 얼른 백건의 팔을 잡아끌었다.“오빠. 저것 좀
남서연은 심장이 움찔하더니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꼭 잡은 채 백건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며 매 글자의 뜻을 모두 이해했다.‘지금 나와 단독으로 만나겠다는 건가? 가야 하나?’남서연은 고민하다가 운전석의 남우영을 돌아보고 떠보듯 말했다.“오빠, 내일 퇴근 후에는 나 집에 데려다줄 필요 없어요.”“왜?”“그게...”야근한다고 하면 남우영이 곧바로 조사해서 거짓말이라는 걸 알 테니 거짓말을 지어냈다.“친구랑 쇼핑하려고요.”“어느 친구? 어디서 쇼핑하는데?”남우영이 묻자 남서연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회사 동료 다혜랑요. 회사 근처에서 쇼핑할 거예요.”남우영은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그래. 그럼 조심하고 일찍 집에 돌아와.”남서연은 속으로 기뻐하며 남우영에게 기대어 애교스럽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빠.”남우영은 어리둥절했다.“나한테 왜 고마워해? 재미있게 놀아.”이어 주머니에서 블랙 카드 한 장을 꺼내 남서연에게 건넸다.“마음껏 사.”“괜찮아요. 나 돈 있어요. 충분해요.”남우영은 웃으며 카드를 남서연의 손에 쥐여주고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넣어둬. 오빠 돈 써. 네 돈은 모아서 부자 돼야지.”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빙그레 웃었다.“고마워요.”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보았지만 아직 백건에게 답장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채팅창에 입력 중이라고 떴는데 갑자기 취소되고 조금 있다가 다시 입력 중이라고 떴다.한참이나 메시지를 받지 못하자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타이핑을 했다.서재에 있는 백건은 휴대폰을 보고 또 보았다. 책상 위에 놓았다가 또 들고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그녀의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다.‘왜 답장을 안 하지? 나와 함께 나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모르는 건가?’뚜뚜.백건은 방금 내려놓은 핸드폰을 빠르게 집어 들고 열어보았다.[좋아요. 하지만 내일 출근해야 해서 퇴근 후에 시간 있어요.]백건은 미간을 구부리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바로 답장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