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원?지우는 그 천문학적인 수치를 듣자 그 자리에서 혈압이 치솟고 화가 치밀어 지성에게 따져 물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평범한 그들에게 4억 원은 평생 벌 수 없는 돈이었다.지성은 눈물범벅이 되어 온몸을 떨며 울먹이며 죄책감 가득 말했다.“누나. 나도 내가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될 줄 몰랐어. 그저 친구랑 놀러 왔다가 갖고 온 몇십만 원 다 잃으면 갈 생각이었는데 계속 이기는 거야. 돈을 엄청 많이 땄어...”지우가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그런데 이긴 돈을 다 잃고도 빌린 4억 원도 모조리 잃었다 이거야?”지성이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었다.지우는 불끈 쥔 주먹을 떨고 화가 나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멍청한 동생을 당장 한바탕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돌대가리야. 이건 분명 짜인 판이잖아. 너 바보야?”“누나...”지성은 울면서 소리쳤다. 그는 속으로 진작 후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짜인 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간의 욕심이 발동하면 지능이 마이너스가 되고 사고할 능력도 잃게 된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지성을 지키고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당신네 사장 어딨어?”남자가 옆방을 가리키며 진작 그녀를 들여보내고 싶었다는 듯 보였다.지우는 철없는 지성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방으로 갔다.그녀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녹음 기능을 켜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깔끔하고 넓은 사무실이었다.긴 사무용 책상에 간단한 사무용품과 카메라 화면을 모니터하는 콘솔용 대형 컴퓨터가 있었다.사무실 책상 앞에 한 사무용 의자가 지우를 등지고 있었다.“안녕하세요.”지우가 먼저 인사하자 사무용 의자가 천천히 돌아왔다.그러자 온화하고 점잖은 외모의 중년 남자가 보였는데 그는 마른 편이었고 얼굴에 온화한 눈빛과 친절한 미소가 보였다.남자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얼굴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그쪽이 지우?”지우는 이 남자의 목적이 자신이라는 걸 순간 확신했다.
지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나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요.”육건우는 의외라는 듯 여기는 표정이었지만 느릿느릿 말했다.“그렇다면 본인들이 알아서 빚을 갚아야겠군.”“그냥 진짜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지우가 여유 있게 말하자 육건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더욱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지우를 보며 감탄했다.“아주 총명하군! 난 지우 동생이 점점 더 맘에 들어. 이렇게 하지. 나를 도와 몇 가지 일을 하면 이 4억 원의 빚을 청산하는 것 외에도 10억 원의 상금과 20억 원짜리 별장을 한 채 주지.”지우는 속으로 더욱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어머니가 돈을 보면 눈을 반짝이는 것을 따라 배워 입을 떡 벌리고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육건우는 지우가 오랫동안 멍한 표정을 짓자 더욱 기뻐했다.즉시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상자를 꺼내 지우 앞에 내밀었다.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고 돌아가서 잘 고민하고 다시 찾아와. 이건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지우가 천천히 상자를 열어보니 더욱 어리둥절했다.아주 비싸고 호화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 세트였다.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싼 액세서리까지 준비한 걸 보니 진작에 그녀를 매수할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었다.지우는 잠시 생각에 잠겨 일의 자초지종을 정리했다.이 사람들은 그녀가 남태준과 만나는 이유가 그의 재벌가 신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녀의 어머니부터 손을 써서 그녀가 남태준에게 시집갈 가능성을 짓밟아 그녀의 돈줄을 끊었다. 그런 다음 그녀의 남동생을 함정에 빠뜨린 다음 엄청난 재산으로 그녀를 유혹했다.그야말로 인간성에 대한 큰 시험이었다.지우는 방긋 웃더니 탐욕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보석함을 닫고 손에 쥐고 일어나 남자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건우 오빠 선물 감사해요.”육건우는 지우의 모습을 보며 천하의 가난한 여자들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허영심이 많고 탐욕스러우며 고액의 빚을 감당할 수 없고 돈의 유혹도 이겨낼 수 없다고.“집에 가
지우는 남태준의 집에 도착했다.그녀는 남태준에 미리 알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연애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그의 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내부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심플한 분위기였고 큼직한 거실은 밝고 깨끗하여 매우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지우가 신발장을 열어보니 안에 새 여성용 슬리퍼가 있었고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휴대전화와 보석함을 탁자 위에 놓고 조용히 소파에 기대어 남태준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어떻게 설명해야지?’그렇게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남태준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남자가 이 정도로 바쁠 줄은 정말 몰랐다.저녁 식사를 준비해놓고 그가 돌아오면 함께 먹으려고 기다렸지만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고 그녀는 휴대전화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남태준의 차가 집 앞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불빛이 왜 켜져 있지?’남태준은 차에서 내려 느릿느릿 문을 열고 들어섰다.그가 경계하며 거실을 훑어보니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고개를 숙이고 신발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우의 신발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방긋 웃으며 행복한 감정이 순간 밀려왔다.그는 차 키를 놓는 동작도 가볍고 걷는 발걸음도 가벼웠다.남태준은 소파 앞에 와서 한쪽 무릎으로 쪼그리고 앉아 뜨거운 눈빛으로 잠든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뽀얗고 촉촉해 한입 물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고 풍성한 속눈썹이 눈가를 덮어 마치 인형 같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은 더욱 매혹적이었다.그녀의 잠자는 모습은 아주 귀엽고 온순하고 아름다웠다.남자의 기다란 손가락이 지우 이마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올렸다.지우가 무심코 움직이자 그는 머리를 내밀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응?”지우가 꿈에서 깨어나 소리를 지르려 하자 남자의 따뜻한 입술이 이미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익숙한 향긋한 향기와 익숙한 잘생긴 얼굴에 지우는 눈을 부릅뜨고 깜빡였고 번뜩 정신이 들었다.다만
지우는 자신이 그래도 화끈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남태준을 만나니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지우는 수줍은 눈을 내리뜨고 중얼거렸다.“당신이랑 말하기 싫어요.”남태준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저녁 먹었어?”지우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었다.그녀는 7시에 음식을 만들어 그를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두 시간 넘게 잤고 지금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배 안 고파요.”지우는 그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 위에 놓인 검은 상자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나 할 말 있어요.”남태준은 허리를 펴고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고 태도도 단정해졌다.지우는 남자에게 물건을 건네주며 진지하게 말했다. “육건우라는 남자가 내게 값비싼 다이아몬드 장신구 세트와 휴대폰 한 대를 주며 나 매수하려고 했어요.”남태준은 굳어진 얼굴로 보석함을 받아 열었고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보고 말했다.“이 물건이 진짜라면 겨우 2천만 원 정도밖에 안 해. 휴대전화는 더 싸고.”지우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이건 그냥 처음 만난 선물에 불과해요. 만약 내가 그 사람 요구를 들어준다면 몇억 원을 더 주겠다고 했어요.”“방금 육건우라고 했어?”남태준의 말투가 더욱 엄숙해졌다.“맞아요.”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남태준은 보석함을 천천히 내려놓았다.“너한테 뭘 시켰어?”“그건 아직 몰라요. 내가 바로 승낙하지 않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니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하라고 했어요.”남태준은 안색이 가라앉은 채 매서운 눈빛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지우는 그의 위엄 있는 눈빛에 당황하여 긴장해 침을 삼켰다.남태준은 육건우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가 지금 조사하려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육건우의 머리로는 절대 이런 저급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남태준은 소파에 기대어 한껏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육건우가 널 매수하려는 건 분명 나를 노리고 있는 거야.”“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남
지우는 코끝이 찡해졌다.알고 보니 남태준은 그녀가 조만간 그와 헤어지리라 추측하고 있었다.그녀는 친남동생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고 그의 돈으로 남동생의 빚을 갚을 수도 없었다.남태준은 그녀 눈 속에 비친 괴로운 감정을 보며 따라서 마음이 조이고 아팠다.“태준 씨, 육건우는 판을 짜서 지성이가 4억 원의 빚을 지게하고, 돈으로 나 협박하고, 돈으로 나 매수하면서 그를 도와 일하라고 했어요. 우리 집은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난 지금 매우 수동적이고 무력해요.”남태준은 괴로워하며 짧은 머리를 쓸어넘겼다.“그 돈 내가 있다니까.”“난 당신 돈 못 받아요. 내게는 지금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하나는 변호사를 찾아 그를 사기도박으로 고소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당신을 도와 그 사람 밑에 스파이로 들어가는 거예요.”지우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내가 육건우와의 대화를 녹음했어요. 하지만 증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남태준은 소파에 털썩 넘어져 힘없이 기대었고 눈가에 슬픔이 가득했다.“너 혹시 나랑 헤어질 생각이야? 그래서 절대 내 돈으로 이 일을 해결할 생각이 없는 거지?”지우는 가슴이 아파 고개를 떨구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의 그녀는 자신이 없고 막막하기만 했다.하지만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설득할 것이다. 그녀도 남태준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니.지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남태준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두 사람 관계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만약 미래의 어느 날 그녀가 남태준과 결혼한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처음에 극구 반대해 그들의 감정에 걸림돌이 되었다면 남태준의 마음속에서 그녀 어머니의 이미지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지우가 마침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녀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그녀가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 표시를 보니 어머니였다.그녀는 전화를 받고 일어서서 옆으로 가서 말했다.“엄마.”전화기 너머로 지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누나. 빨리 집에 와. 엄마가 자살하려
지우는 입술을 꽉 틀어막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슴이 아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지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누나. 나도 죽고 싶어. 누나와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 내가 어리석고 탐욕스러워서 이런 비극을 일으켰어.”지우는 지성이 돈에 대한 탐욕이 그의 무능에서 왔지만 어느 정도는 효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줄곧 큰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어 했다.지우가 흐느끼며 물었다.“왜 엄마한테 도박 빚 얘기를 했어?”지성이 얼굴을 감싸고 폭풍 오열했다.“난 정말 말 안 했어.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울고 있었어. 아주 슬프게 울더니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고.”지우는 코를 훌쩍이고 아주 고통스럽게 눈물을 참으며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내려와요. 네? 우리 말로 풀어요. 엄마 이렇게 가면 나랑 지성이 어떡해요? 우린 평생 죄책감을 안고 고통 속에 살 거예요.”“엄마 제발...”지우는 말하더니 참지 못하고 또 울기 시작했다.“내가 빌게요. 제발. 내가 잘못했어요. 엄마 말 들을게요.”진효연은 여전히 감정이 격앙되어 비통해하며 흐느꼈다. “지우야, 엄마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아. 이번 생은 너무 힘들고 고단해.”“그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잘 먹지 못하고 잘 입지도 못했어. 집안에 형제자매가 많아서 굶는 날도 많았고. 난 그렇게 가난한 생활이 너무 두려웠어. 나중에 능력도 없는 네 아버지와 결혼해서 어렵게 살다가 너희 남매까지 낳고 나니깐 삶이 더 고됐어.”“흑흑... 이 집은 이미 망가졌어. 그런데 빚까지 그렇게 많이 졌으니. 난 정말 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지우 네가 능력이 있어 다행이야. 네 아빠 병 치료하느라 진 빚 모두 네가 어깨에 짊어지고 2년 안에 갚았으니.”“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경조금 몇천만 원 받고 드디어 노후를 보낼 돈이 좀 생긴 줄 알았더니... 네 동생에게 차를 사주고 차 대출까지 갚게 될 줄은 몰랐다.”진효연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울었고
거실은 의외로 조용했다.벽에 표시된 시간은 이미 12시 30분이었다.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성을 보고 또 마음을 추스른 어머니를 보았다.그녀는 마음이 매우 무거웠고 돌에 눌려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이런 억압된 가정 분위기에 지우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엄마. 지성이는 함정에 빠진 거니까 경찰에 신고하면 돼요.”지우가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내 남자친구가 마약 형사는 맞지만 그 사람 일은 정말 우리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그러니까...”지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효연이 버럭 화를 냈다.“지성이를 함정에 빠뜨린 놈들이 노리는 건 바로 네 남자친구야. 만약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인간들이 왜 내 아들을 함정에 빠뜨렸겠어? 넌 왜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몰라?”지우는 고개를 떨구고 마음이 살살 아팠고 말문이 막혔다.그때 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누나. 엄마 말이 사실이야? 언제 형사 남자친구를 뒀어? 누나 남자친구 때문에 건우 형이 나 4억 원을 빚지게 한 거야?”지우는 정말 지성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리석고 탐욕스럽지 않았다면 일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거실에 침묵이 흘렀고 지우는 주먹을 천천히 쥐며 어느새 눈시울이 젖었다.“이 엄마 말 들어. 그냥 같은 동네에 있는 형편이 그런대로 괜찮은 남자와 만나면 좀 어때? 왜 굳이 형사를 만나겠다는 거야?”진효연은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지성이가 빚진 이 많은 돈을 우리는 정말 갚을 능력이 없어!”지우는 몰래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진효연을 바라봤다.“누가 엄마한테 지성이 빚진 거 얘기해줬어요?”“지난번에 찾아왔던 그 매니저라는 여자가.”임다희 매니저?역시 그녀였다. 그녀는 육건우와 한통속으로 뒤에서 틀림없이 많은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엄마가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지성이 도박 빚도 해결할 수 있어요.”진효연은 눈물로 흐릿한 눈으로 지우를 바라보았고 지성도 궁금해서
다음 날 아침, 지우는 육건우를 찾아가 휴대전화와 액세서리를 모두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물건들을 받을 수 없고 원하시는 일도 해드릴 수 없겠네요.”육건우는 담배를 꼬나물고 다리를 꼰 채 미간을 찡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이었다.“동생 빚 갚고 싶지 않아? 돈과 별장을 갖고 싶지 않아?”지우가 그의 선물을 가지고 간 것은 일단 육건우를 안정시킨 다음 돌아가서 남태준과 상의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스파이가 되어 육건우 곁에 있으면서 남태준을 위해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고 싶었다.하지만 남태준은 그녀가 스파이가 되는 걸 동의하지 않았으니 지우도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건우 오빠, 제 동생은 놔주셨으면 해요. 그 도박 빚은 당신들이 짜놓은 판이니 지성이는 억울해요. 빚을 청산해주면 안 될까요?”육건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어이 없어 했다.지우도 자신의 말이 허황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짐짓 덤덤하게 말했다.“만약 지성이를 놔주지 않는다면 법적 조치를 취해 우리 권익을 지킬 수밖에 없어요.”육건우는 담배 재를 털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람이 빚을 갚는 건 세상 도리야. 도박 빚도 빚이니 물론 갚아야지. 너무 순진하게 굴지 마.”“우리가 그날 나눈 대화는 제가 이미 녹음했어요. 경찰에 신고할 거고 법원에 고소해서 법적 수단으로 이 빚을 해결할 거예요.”지우는 단호한 태도로 말하고는 일어나 돌아섰다.육건우는 어리둥절했다.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가 전에 했던 무슨 말을 녹음했을까?지우는 그녀의 스쿠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넓은 도로를 달렸다.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마음이 허전했고 눈에서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햇볕이 그녀에게 내리쬐었지만 조금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보고 또 지역의 소박한 민풍을 보며 지금의 자신을 생각했다.남태준과 연애하는 동안 너무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꿈에서 잘 생기고 재력 있는 왕자가 그녀를
경찰이 한 달간 배치한 작전이 오늘로 끝이 났다.산에서 거대한 독극물 재배 기지와 원자재가 발견되었고 2t의 현물도 압수되었다.남태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촬영기지의 투자자 육건우는 체포되어 입건되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그의 변호사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 없었다.취조실.남태준은 쇠 옥에 갇힌 육건우를 향해 말했다.“침묵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에요. 당신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증거가 확실하다면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할 수 있어요.”육건우는 피식 웃더니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여유작작한 모습이었다.경찰이 아무리 검문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대장님, 잠깐 나와보셔야겠어요.”취조실 문이 열리면서 오신우가 그를 불렀다.남태준이 일어나서 떠나려고 할 때, 육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남태준, 난 그저 평범한 영화 투자자일 뿐이야. 마약 같은 거에 손댄 적 없으니까 나 풀어줘.”남태준은 얼굴이 어두워져서 육건우를 돌아보니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눈가에 냉기가 돌았다.남태준이 나가 문을 닫는 순간 오신우가 긴장해서 말했다.“대장님. 지성이가 신고하러 왔어요.”“지성이가?”남태준이 긴장하며 얼굴을 찡그리자 오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밖으로 나가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이야?”“누나가 실종됐대요.”오신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태준은 황급히 달려나갔다.그는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종일 꺼둔 전원을 켰다.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고 그중에 지성도 있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찰 프런트 데스크에서 뛰쳐나왔고 표정은 엄숙하고 무거웠다.지성은 남태준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초조해서 말했다.“형...”남태준이 다급히 물었다.“지우가 왜?”지성은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아침에 장 보러 간다고 나갔다가 계속 집에 안 돌아왔어요. 누나 스쿠터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는데 사람은 안 보여요.”그때 옆에
남태준은 경찰서로 돌아와 밤새 배치하고 새벽 4시에 많은 경찰 병력을 이끌고 이웃 마을 산꼭대기의 영화기지를 공격했다.산꼭대기에 가까운 사람들은 늦은 밤 총소리에 잠이 깼다.날이 밝자 많은 경찰차가 정적을 울렸고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지우가 한창 단잠에 빠져있는데 송수빈의 전화에 잠이 깼다.지우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송수빈의 전화를 받자 송수빈은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야. 지우야. 얼른 인터넷 확인해봐. 세상에. 우리 마을에서 큰 뉴스가 났어. 어젯밤 얼마나 짜릿했는 줄 알아?”“우리 마을에서?”지우는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을 비볐고 송수빈이 황급히 수정했다.“아니. 우리 마을 아니고 옆 마을. 산에 있는 촬영기지 있잖아. 새벽 4~5시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찰차가 잔뜩 오가고 난리가 났대.”새벽 4~5시? 지우는 남태준 생각이 나서 군말 없이 송수빈의 전화를 끊고 남태준의 휴대전화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지우는 그가 임무를 나갈 때 전원을 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음이 조마조마해진 그녀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인근의 기사를 검색했다.지우는 아침 내내 걱정하며 전화도 여러 번 했다.정오가 되자 지성이 밖에서 돌아와 득의만면한 얼굴로 물을 따라 마시더니 흥분해서 말했다.“누나! 육건우가 잡혔대. 하늘도 양심이 있지.”“육건우가 잡혔다고?”지우가 긴장하며 물었다.“마약 형사한테 잡혔대? 태준 씨는 괜찮아?”“누나 남자친구 괜찮던데? 내가 방금 육건우가 묵고 있는 호텔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태준이 형이 경찰 몇 명과 함께 육건우를 경찰차에 태우는 걸 봤어.”아침 내내 근심하던 지우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육건우는 잡히면 사형 아니면 종신형이야. 네가 진 빚도 갚지 않아도 돼.”지성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죽어도 싸지 뭐.”“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도박 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아.”지성은 테이블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소
남태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가 내게 선물한 반지 같아서 질투하고 기분 나빴던 거야?”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흥분하며 지우의 몸을 덥석 껴안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도 나 좋아하지? 그래서 신경 쓰고 있는 거지?”“맞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그 반지 돌려주면 안 돼요? 더 이상 갖고 있지 말아요. 네?”“지우야.”남태준은 흥분하는 말투로 달랬다.“다시 한번 말해주면 안 될까?”지우는 순순히 중복했다.“그 반지 돌려주라고요.”남태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긴장해서 말했다.“그거 말고 첫 마디.”지우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의 가슴팍에 묻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게 말했다.“좋아해요. 태준 씨.”“나도 너 좋아해.”남태준은 크게 흥분하여 매력적인 목소리로 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 지우야.”“그럼 그 반지는...”남태준이 바로 말을 끊었다.“그거 임다희가 준 반지 아니야.”지우가 호기심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럼 누구 거예요?”“그때 큰 마약 조직을 잡으면서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물건도 압수했지만 배후의 보스만 잡지 못했어. 그 신비로운 배후의 보스는 다들 준영이 형이라고 부르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어.”“그 반지는 그 사람이 잠자리에 들 왕비로 선택받은 중요한 증거야. 그것만 있으면 그 사람 배에 탈 수 있거든.”지우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남태준을 밀어내고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남색을 팔아 접근했던 거예요?”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난 선택받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신분이 폭로됐어.”“만약 폭로되지 않았다면...”지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용기가 없었고 남태준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쯤 아마 감옥에 갇혔겠지.”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사람은 잠자리에서 어떤 역할인데요?”남태준은 미간을 잔
지우는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다른 서랍을 잽싸게 뒤지고 양말과 팬티를 챙긴 다음 옷장 문을 닫고 황급히 남태준의 집을 떠났다.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지만 그럴수록 바늘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파졌다.지우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 남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짐가방을 가볍게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옆을 지켰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보고 또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서글퍼졌다.‘임다희는 몇 번이나 당신을 해쳤는데 왜 그 여자가 준 반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전에는 당신을 죽일 뻔했고 지금은 당신을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데 왜 계속 마음속에 그 여자 자리가 있냐고요.’지우는 생각할수록 슬퍼져서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그의 큰 손 옆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남태준의 따뜻한 큰 손을 만졌고 천천히 그와 손깍지를 꼈다.지금의 지우는 너무 불안하고 조금의 안정감도 느끼지 못했다.남태준이 아직도 임다희를 사랑할까 봐 두려웠다.남태준은 은은히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지우의 거뭇거뭇한 머리가 그의 곁에 엎드려 자는 것이 보였다.여자의 손이 그와 맞닿았다.남태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가 금방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남태준은 달콤한 행복에 마음이 꽉 채워진 것 같았고 손바닥을 천천히 조여 여자의 부드럽고 작은 손과 더 단단하게 밀착시킨 후 다시 눈을 감았다.조용한 병실에서 지우의 존재가 가져다준 따뜻한 행복에 남태준은 그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날 밤, 남태준은 몸 안의 약효가 빠지자 서둘러 퇴원절차를 마쳤다.지우는 그에게 하루 더 병원에 머물며 지켜보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새벽 네 시에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지금 서둘러 경찰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남태준은 지우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