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원?지우는 그 천문학적인 수치를 듣자 그 자리에서 혈압이 치솟고 화가 치밀어 지성에게 따져 물었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평범한 그들에게 4억 원은 평생 벌 수 없는 돈이었다.지성은 눈물범벅이 되어 온몸을 떨며 울먹이며 죄책감 가득 말했다.“누나. 나도 내가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될 줄 몰랐어. 그저 친구랑 놀러 왔다가 갖고 온 몇십만 원 다 잃으면 갈 생각이었는데 계속 이기는 거야. 돈을 엄청 많이 땄어...”지우가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그런데 이긴 돈을 다 잃고도 빌린 4억 원도 모조리 잃었다 이거야?”지성이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었다.지우는 불끈 쥔 주먹을 떨고 화가 나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멍청한 동생을 당장 한바탕 패주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돌대가리야. 이건 분명 짜인 판이잖아. 너 바보야?”“누나...”지성은 울면서 소리쳤다. 그는 속으로 진작 후회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짜인 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간의 욕심이 발동하면 지능이 마이너스가 되고 사고할 능력도 잃게 된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지성을 지키고 있던 남자에게 물었다.“당신네 사장 어딨어?”남자가 옆방을 가리키며 진작 그녀를 들여보내고 싶었다는 듯 보였다.지우는 철없는 지성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방으로 갔다.그녀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녹음 기능을 켜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깔끔하고 넓은 사무실이었다.긴 사무용 책상에 간단한 사무용품과 카메라 화면을 모니터하는 콘솔용 대형 컴퓨터가 있었다.사무실 책상 앞에 한 사무용 의자가 지우를 등지고 있었다.“안녕하세요.”지우가 먼저 인사하자 사무용 의자가 천천히 돌아왔다.그러자 온화하고 점잖은 외모의 중년 남자가 보였는데 그는 마른 편이었고 얼굴에 온화한 눈빛과 친절한 미소가 보였다.남자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얼굴의 미소가 더욱 밝아졌다.“그쪽이 지우?”지우는 이 남자의 목적이 자신이라는 걸 순간 확신했다.
지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나 그 사람이랑 헤어졌어요.”육건우는 의외라는 듯 여기는 표정이었지만 느릿느릿 말했다.“그렇다면 본인들이 알아서 빚을 갚아야겠군.”“그냥 진짜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지우가 여유 있게 말하자 육건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더욱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지우를 보며 감탄했다.“아주 총명하군! 난 지우 동생이 점점 더 맘에 들어. 이렇게 하지. 나를 도와 몇 가지 일을 하면 이 4억 원의 빚을 청산하는 것 외에도 10억 원의 상금과 20억 원짜리 별장을 한 채 주지.”지우는 속으로 더욱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어머니가 돈을 보면 눈을 반짝이는 것을 따라 배워 입을 떡 벌리고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육건우는 지우가 오랫동안 멍한 표정을 짓자 더욱 기뻐했다.즉시 서랍을 열고 그 안에서 상자를 꺼내 지우 앞에 내밀었다.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고 돌아가서 잘 고민하고 다시 찾아와. 이건 우리의 첫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지우가 천천히 상자를 열어보니 더욱 어리둥절했다.아주 비싸고 호화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 세트였다.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싼 액세서리까지 준비한 걸 보니 진작에 그녀를 매수할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었다.지우는 잠시 생각에 잠겨 일의 자초지종을 정리했다.이 사람들은 그녀가 남태준과 만나는 이유가 그의 재벌가 신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녀의 어머니부터 손을 써서 그녀가 남태준에게 시집갈 가능성을 짓밟아 그녀의 돈줄을 끊었다. 그런 다음 그녀의 남동생을 함정에 빠뜨린 다음 엄청난 재산으로 그녀를 유혹했다.그야말로 인간성에 대한 큰 시험이었다.지우는 방긋 웃더니 탐욕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보석함을 닫고 손에 쥐고 일어나 남자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건우 오빠 선물 감사해요.”육건우는 지우의 모습을 보며 천하의 가난한 여자들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허영심이 많고 탐욕스러우며 고액의 빚을 감당할 수 없고 돈의 유혹도 이겨낼 수 없다고.“집에 가
지우는 남태준의 집에 도착했다.그녀는 남태준에 미리 알리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연애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그의 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내부 인테리어는 전체적으로 심플한 분위기였고 큼직한 거실은 밝고 깨끗하여 매우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지우가 신발장을 열어보니 안에 새 여성용 슬리퍼가 있었고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슬리퍼로 갈아 신고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휴대전화와 보석함을 탁자 위에 놓고 조용히 소파에 기대어 남태준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어떻게 설명해야지?’그렇게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남태준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남자가 이 정도로 바쁠 줄은 정말 몰랐다.저녁 식사를 준비해놓고 그가 돌아오면 함께 먹으려고 기다렸지만 어느새 깊은 밤이 되었고 그녀는 휴대전화를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남태준의 차가 집 앞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불빛이 왜 켜져 있지?’남태준은 차에서 내려 느릿느릿 문을 열고 들어섰다.그가 경계하며 거실을 훑어보니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고개를 숙이고 신발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우의 신발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방긋 웃으며 행복한 감정이 순간 밀려왔다.그는 차 키를 놓는 동작도 가볍고 걷는 발걸음도 가벼웠다.남태준은 소파 앞에 와서 한쪽 무릎으로 쪼그리고 앉아 뜨거운 눈빛으로 잠든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얼굴은 뽀얗고 촉촉해 한입 물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고 풍성한 속눈썹이 눈가를 덮어 마치 인형 같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은 더욱 매혹적이었다.그녀의 잠자는 모습은 아주 귀엽고 온순하고 아름다웠다.남자의 기다란 손가락이 지우 이마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올렸다.지우가 무심코 움직이자 그는 머리를 내밀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응?”지우가 꿈에서 깨어나 소리를 지르려 하자 남자의 따뜻한 입술이 이미 그녀의 입술을 막아버렸다.익숙한 향긋한 향기와 익숙한 잘생긴 얼굴에 지우는 눈을 부릅뜨고 깜빡였고 번뜩 정신이 들었다.다만
지우는 자신이 그래도 화끈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남태준을 만나니 그야말로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지우는 수줍은 눈을 내리뜨고 중얼거렸다.“당신이랑 말하기 싫어요.”남태준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저녁 먹었어?”지우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밤 9시가 넘었다.그녀는 7시에 음식을 만들어 그를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두 시간 넘게 잤고 지금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배 안 고파요.”지우는 그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 위에 놓인 검은 상자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나 할 말 있어요.”남태준은 허리를 펴고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고 태도도 단정해졌다.지우는 남자에게 물건을 건네주며 진지하게 말했다. “육건우라는 남자가 내게 값비싼 다이아몬드 장신구 세트와 휴대폰 한 대를 주며 나 매수하려고 했어요.”남태준은 굳어진 얼굴로 보석함을 받아 열었고 안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보고 말했다.“이 물건이 진짜라면 겨우 2천만 원 정도밖에 안 해. 휴대전화는 더 싸고.”지우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이건 그냥 처음 만난 선물에 불과해요. 만약 내가 그 사람 요구를 들어준다면 몇억 원을 더 주겠다고 했어요.”“방금 육건우라고 했어?”남태준의 말투가 더욱 엄숙해졌다.“맞아요.”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남태준은 보석함을 천천히 내려놓았다.“너한테 뭘 시켰어?”“그건 아직 몰라요. 내가 바로 승낙하지 않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니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하라고 했어요.”남태준은 안색이 가라앉은 채 매서운 눈빛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지우는 그의 위엄 있는 눈빛에 당황하여 긴장해 침을 삼켰다.남태준은 육건우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가 지금 조사하려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육건우의 머리로는 절대 이런 저급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남태준은 소파에 기대어 한껏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육건우가 널 매수하려는 건 분명 나를 노리고 있는 거야.”“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남
지우는 코끝이 찡해졌다.알고 보니 남태준은 그녀가 조만간 그와 헤어지리라 추측하고 있었다.그녀는 친남동생을 나 몰라라 할 수 없고 그의 돈으로 남동생의 빚을 갚을 수도 없었다.남태준은 그녀 눈 속에 비친 괴로운 감정을 보며 따라서 마음이 조이고 아팠다.“태준 씨, 육건우는 판을 짜서 지성이가 4억 원의 빚을 지게하고, 돈으로 나 협박하고, 돈으로 나 매수하면서 그를 도와 일하라고 했어요. 우리 집은 빚을 갚을 돈이 없으므로 난 지금 매우 수동적이고 무력해요.”남태준은 괴로워하며 짧은 머리를 쓸어넘겼다.“그 돈 내가 있다니까.”“난 당신 돈 못 받아요. 내게는 지금 두 가지 방법밖에 없어요. 하나는 변호사를 찾아 그를 사기도박으로 고소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당신을 도와 그 사람 밑에 스파이로 들어가는 거예요.”지우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내가 육건우와의 대화를 녹음했어요. 하지만 증거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남태준은 소파에 털썩 넘어져 힘없이 기대었고 눈가에 슬픔이 가득했다.“너 혹시 나랑 헤어질 생각이야? 그래서 절대 내 돈으로 이 일을 해결할 생각이 없는 거지?”지우는 가슴이 아파 고개를 떨구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의 그녀는 자신이 없고 막막하기만 했다.하지만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설득할 것이다. 그녀도 남태준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으니.지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남태준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두 사람 관계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만약 미래의 어느 날 그녀가 남태준과 결혼한다면, 그녀의 어머니가 처음에 극구 반대해 그들의 감정에 걸림돌이 되었다면 남태준의 마음속에서 그녀 어머니의 이미지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지우가 마침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녀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그녀가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자 표시를 보니 어머니였다.그녀는 전화를 받고 일어서서 옆으로 가서 말했다.“엄마.”전화기 너머로 지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누나. 빨리 집에 와. 엄마가 자살하려
지우는 입술을 꽉 틀어막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슴이 아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지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누나. 나도 죽고 싶어. 누나와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 내가 어리석고 탐욕스러워서 이런 비극을 일으켰어.”지우는 지성이 돈에 대한 탐욕이 그의 무능에서 왔지만 어느 정도는 효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줄곧 큰돈을 벌어 어머니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어 했다.지우가 흐느끼며 물었다.“왜 엄마한테 도박 빚 얘기를 했어?”지성이 얼굴을 감싸고 폭풍 오열했다.“난 정말 말 안 했어.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울고 있었어. 아주 슬프게 울더니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고.”지우는 코를 훌쩍이고 아주 고통스럽게 눈물을 참으며 천천히 베란다 쪽으로 향했다.“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내려와요. 네? 우리 말로 풀어요. 엄마 이렇게 가면 나랑 지성이 어떡해요? 우린 평생 죄책감을 안고 고통 속에 살 거예요.”“엄마 제발...”지우는 말하더니 참지 못하고 또 울기 시작했다.“내가 빌게요. 제발. 내가 잘못했어요. 엄마 말 들을게요.”진효연은 여전히 감정이 격앙되어 비통해하며 흐느꼈다. “지우야, 엄마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아. 이번 생은 너무 힘들고 고단해.”“그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잘 먹지 못하고 잘 입지도 못했어. 집안에 형제자매가 많아서 굶는 날도 많았고. 난 그렇게 가난한 생활이 너무 두려웠어. 나중에 능력도 없는 네 아버지와 결혼해서 어렵게 살다가 너희 남매까지 낳고 나니깐 삶이 더 고됐어.”“흑흑... 이 집은 이미 망가졌어. 그런데 빚까지 그렇게 많이 졌으니. 난 정말 살고 싶지 않아. 그래도 지우 네가 능력이 있어 다행이야. 네 아빠 병 치료하느라 진 빚 모두 네가 어깨에 짊어지고 2년 안에 갚았으니.”“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경조금 몇천만 원 받고 드디어 노후를 보낼 돈이 좀 생긴 줄 알았더니... 네 동생에게 차를 사주고 차 대출까지 갚게 될 줄은 몰랐다.”진효연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울었고
거실은 의외로 조용했다.벽에 표시된 시간은 이미 12시 30분이었다.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지성을 보고 또 마음을 추스른 어머니를 보았다.그녀는 마음이 매우 무거웠고 돌에 눌려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이런 억압된 가정 분위기에 지우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엄마. 지성이는 함정에 빠진 거니까 경찰에 신고하면 돼요.”지우가 심호흡을 한 후 말을 이었다.“내 남자친구가 마약 형사는 맞지만 그 사람 일은 정말 우리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그러니까...”지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효연이 버럭 화를 냈다.“지성이를 함정에 빠뜨린 놈들이 노리는 건 바로 네 남자친구야. 만약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인간들이 왜 내 아들을 함정에 빠뜨렸겠어? 넌 왜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몰라?”지우는 고개를 떨구고 마음이 살살 아팠고 말문이 막혔다.그때 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누나. 엄마 말이 사실이야? 언제 형사 남자친구를 뒀어? 누나 남자친구 때문에 건우 형이 나 4억 원을 빚지게 한 거야?”지우는 정말 지성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리석고 탐욕스럽지 않았다면 일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거실에 침묵이 흘렀고 지우는 주먹을 천천히 쥐며 어느새 눈시울이 젖었다.“이 엄마 말 들어. 그냥 같은 동네에 있는 형편이 그런대로 괜찮은 남자와 만나면 좀 어때? 왜 굳이 형사를 만나겠다는 거야?”진효연은 다시 울음을 터뜨리며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지성이가 빚진 이 많은 돈을 우리는 정말 갚을 능력이 없어!”지우는 몰래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진효연을 바라봤다.“누가 엄마한테 지성이 빚진 거 얘기해줬어요?”“지난번에 찾아왔던 그 매니저라는 여자가.”임다희 매니저?역시 그녀였다. 그녀는 육건우와 한통속으로 뒤에서 틀림없이 많은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엄마가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지성이 도박 빚도 해결할 수 있어요.”진효연은 눈물로 흐릿한 눈으로 지우를 바라보았고 지성도 궁금해서
다음 날 아침, 지우는 육건우를 찾아가 휴대전화와 액세서리를 모두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물건들을 받을 수 없고 원하시는 일도 해드릴 수 없겠네요.”육건우는 담배를 꼬나물고 다리를 꼰 채 미간을 찡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이었다.“동생 빚 갚고 싶지 않아? 돈과 별장을 갖고 싶지 않아?”지우가 그의 선물을 가지고 간 것은 일단 육건우를 안정시킨 다음 돌아가서 남태준과 상의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스파이가 되어 육건우 곁에 있으면서 남태준을 위해 유용한 정보를 얻어내고 싶었다.하지만 남태준은 그녀가 스파이가 되는 걸 동의하지 않았으니 지우도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건우 오빠, 제 동생은 놔주셨으면 해요. 그 도박 빚은 당신들이 짜놓은 판이니 지성이는 억울해요. 빚을 청산해주면 안 될까요?”육건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어이 없어 했다.지우도 자신의 말이 허황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짐짓 덤덤하게 말했다.“만약 지성이를 놔주지 않는다면 법적 조치를 취해 우리 권익을 지킬 수밖에 없어요.”육건우는 담배 재를 털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람이 빚을 갚는 건 세상 도리야. 도박 빚도 빚이니 물론 갚아야지. 너무 순진하게 굴지 마.”“우리가 그날 나눈 대화는 제가 이미 녹음했어요. 경찰에 신고할 거고 법원에 고소해서 법적 수단으로 이 빚을 해결할 거예요.”지우는 단호한 태도로 말하고는 일어나 돌아섰다.육건우는 어리둥절했다.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그가 전에 했던 무슨 말을 녹음했을까?지우는 그녀의 스쿠터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넓은 도로를 달렸다.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마음이 허전했고 눈에서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햇볕이 그녀에게 내리쬐었지만 조금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보고 또 지역의 소박한 민풍을 보며 지금의 자신을 생각했다.남태준과 연애하는 동안 너무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좋은 꿈을 꾼 것 같았다.꿈에서 잘 생기고 재력 있는 왕자가 그녀를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