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상자에서 그가 지우에게 준 선물들이 보였고 다시 그녀의 눈을 올려다보니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울었던 흔적이 있었다.남태준이 가까이 오자 지우는 후다닥 뒷걸음질 쳤다.매번 그를 만날 때마다 먼저 껴안고 키스했기 때문이었다.남태준이 다시 그녀에게 키스하면 헤어지자는 말을 할 용기가 없을까 봐 걱정했다.“이거 뭐야?”남태준은 얼굴이 어두워지고 약간 서글픈 말투로 물었다. 그녀가 가져온 물건을 보고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며 가슴이 조여들었다.지우는 주먹을 천천히 움켜쥐고 눈물을 참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미안해요. 태준 씨 우리...”헤어지자는 말도 하기 전에 남태준이 바로 말을 끊었다.“지우야,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지우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런 거 아니에요.”“네 동생 빚 때문에 그래?”“아니요. 육건우를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니 문제 될 것 없어요.”“그럼...”남태준의 목소리가 더욱 긴장되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우가 불쑥 내뱉었다.“우리 헤어져요.”가볍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며 강력한 통증이 일었다.말을 내뱉은 지우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구멍이 시큰했지만 애써 괜찮은 척 꿈 참았다.남태준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시울을 붉히더니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지우야. 내가 뭐 잘못했어? 말해줘. 고칠게.”‘아니요. 당신은 정말 좋아요.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자격이 없어요.’지우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고 목이 메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저었다.남태준은 긴장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굽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들어? 아니면 내 옷차림이? 나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로 변할 수 있어. 내가.”“남태준 씨.”지우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눈물이 비 오듯 흘러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매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남태준은 그녀의 어깨를 풀고
“그건 우리가 헤어질 이유가 될 수 없어.”남태준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지우야. 난 정말 너를 사랑해. 내가 가장 힘들고 막막할 때, 이미 인생을 포기했던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내가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널 좋아했기 때문이야.”“널 좋아해서 열심히 재활 치료했고, 널 좋아하니까 눈 수술도 했어. 널 좋아해서 이 마을에 와서 일하는 거야.”그는 말할수록 괴로워하며 애원하는 투로 중얼거렸다.“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네가 날 좋아하기에는 두 달로 부족해.”지우는 진작 눈물범벅이 되었다.감동 받을수록 가슴이 더욱 아파졌다. 수만 개의 바늘로 심장이 찔린 것처럼 아리고 그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어떻게 이렇게 좋은 남자가 그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만약 그녀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태준에게 마약 형사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면 그들은 계속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사랑은 한순간이고 오래가지 못하는 감정이지만 그의 위대한 직업은 평생이었다.지우는 힘껏 그의 손을 비틀어 그의 품에서 나와 눈물을 훔치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남태준 씨처럼 잘생기고 돈 많고 직업도 좋은 훌륭한 남자는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죠. 우린 어울리지 않아요.”남태준의 빨갛게 달아오른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아주 처량해 보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우리는 원래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나에 대한 감정은 일시적인 신선함이고 심지어 감사한 마음일 수도 있어요. 그 감정이 지나가면 내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여자가 아니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거 발견하게 될 거예요. 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그럼 우리 친구로 지내자. 응?”남태준은 어떻게든 그녀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관계가 강등되더라고 기꺼이 원했다.하지만 지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친구나 남자친구나 사실
남태준의 집에서 나온 지우는 스쿠터를 타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그녀도 자신이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줄 몰랐다.남태준은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남자를 좋아했고 처음으로 진지하게한 연애였다.불꽃놀이처럼 짧지만 찬란했다.집에 돌아온 그녀는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식사 시간 외에는 방을 나서지 않았다.나올 때마다 금방 운 사람처럼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진효연은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그녀가 이미 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진효연은 맞선 얘기도, 지성의 빚에 대해서도 다시 거론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매점을 운영했다.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 여겼다.햇빛이 짱짱한 오후.진효연이 매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체크하고 있을 때 매점 입구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이건 지우가 설치한 센서로 사람이 들어오면 소리가 울렸다.“뭐 필요하세요?”진효연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들고나오다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를 보고는 떨떠름했다.맑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남자는 매우 잘생겼고 몸매가 늠름했으며 옷차림이 단정하고 기품이 넘쳤다.이런 차림의 남자는 마을 사람이 아니라 도시 사람 같았다.남자는 손에 몇 개의 큰 봉지를 들고 웃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나이가 많은 여자라도 잘생긴 남자를 만나면 미혹되는 법이다. 진효연도 예외는 아니었고 미소 지으며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뭐 필요하세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지우 전 남자친구 남태준입니다.”전 남자친구라는 말에 진효연의 미소가 굳어지고 말았다.남태준은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우에게 매달리려고 온 건 아니에요.”진효연은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그가 가져온 선물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뭐죠?”“오래전부터 직접 찾아뵙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어요. 지금이나 미래에도 그 기회는 없겠죠. 외람되지만 저는 단순히 지우
“자네...”진효연은 마음이 누그러져 말문이 막혔다.“이건 지우도 모르는 일이니 아주머니도 지우에게 말씀할 필요 없으세요. 지우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남태준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인사를 했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말을 마친 남태준은 돌아서서 떠났고 진효연이 급히 선물을 들고 쫓아나갔다.“이봐요. 물건 가져가게나...”이미 차에 올라탄 남태준은 진효연에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귀중한 물건도 아니니 받아주세요.”말을 마친 남태준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진효연은 문 앞에 멍하니 서서 손에 든 선물 몇 봉지를 내려다보았다.마약 형사라는 신분만 아니었다면 남태준은 지우가 맞선 본 남자 중에 가잘 잘생기고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진효연은 선물을 갖고 돌아가 뜯어보았다.그녀는 찻잎, 유제품, 혹은 음식 같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부 값비싼 물건들이었다.동충하초, 제비집, 비싼 브랜드 스킨케어 제품, 그리고 매우 비싸 보이는 진주 장신구 세트였다.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본 진효연은 멍해졌다.헤어졌는데도 이렇게 귀한 물건을 줬으니 만약 안 헤어졌으면 어느 정도일까?진효연은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지우에게 전화했다.벨이 잠시 울렸다.지우가 이불을 뚫고 나와 휴대전화를 귓가에 갖다 대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야. 너 아직도 전 남자친구와 연락해?”이 말을 들은 지우는 화가 솟구쳤다.“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 그래.”“아니에요. 연락 안 해요.”지우는 짜증스럽게 물었다.“갑자기 무슨 일인데요?”진효연이 궁금해서 나지막이 물었다.“그냥 그 친구가 네게 무슨 선물을 했는지 궁금해서. 모두 돌려줬니?”“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돌려줬어요. 됐어요?”며칠 동안 겨우 마음을 추슬렀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남태준을 언급하며 그녀의 상처를 후벼 파니 짜증이 났다.“대체 나더러 어쩌라
수술은 이미 4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우는 더욱 두려웠다.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감히 그녀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그저 지성이 버텨내길 바랄 뿐이었다.잠시 후 간호사가 서류철을 들고나오면서 다급히 말했다.“지금 상황이 안 좋아요. 환자의 모든 가족에게 빨리 오라고 알리세요. 그리고 이 문서에 서명해 주세요.”지우는 손이 계속 떨리고 머리가 하얘지며 가슴이 아련히 조여왔다.서명을 마친 후,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식을 전해 들은 진효연은 전화기 너머로 울기 시작했다.30분 후, 진효연이 달려왔고 그녀는 수술실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통곡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 때문에 자식들을 다사다난하게 만들었다고 한탄했다.그녀는 아주 슬프게 울었고 지우도 참다못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지우는 어머니를 일으켜 벤치 위에 앉혔다.오랜 기다림 끝에 수술 등이 꺼지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지우는 어머니의 팔짱을 낀 채 다급하게 물었다.“선생님, 제 동생 어떻게 됐어요?”“환자분 목숨은 건졌지만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는 환자분 의지에 달렸어요.”진효연은 얼굴을 가린 채 통곡했다.“대체 왜? 멀쩡하던 내 아들이 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왔어요?”“산기슭에서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채로 누워 있다가 발견돼 우리 응급실로 이송됐어요.”의사가 심각한 태도로 말했다.“환자 상처를 보면 구타를 당한 것 같았어요.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습니다.”“네.”지우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서 신고 전화를 걸었다.의사는 진효연에 몇 가지 사항을 설명하고 떠났고 지성은 ICU 관찰실에 입원했다.그리고 경찰이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목격자를 찾아 상황을 물었다.지성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 입건할 수도 없어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지우가 이미 적지 않은 금액의 응급 수술비용을 냈지만 지성이 ICU에 있으니 매일 물 쓰듯 돈이 나갔다.지우는 동생이 다친 원인을 찾기 위해 친구 송수빈을 불러 지성이 다친 채
그러나 여자 둘이서 울창한 산속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건 너무 무서워 송수빈이 침을 삼키고 말했다.“지우야. 네 남자친구 보고 와서 조사하라 해. 우리보다 프로잖아.”“헤어졌어.”지우가 덤덤하게 말하자 송수빈은 멍해졌다.“뭐? 헤어져?”“응. 일주일 됐어.”송수빈은 마음이 아파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마. 지우야. 그 남자 여자 보는 안목이 없는 거지. 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지우가 여유롭게 대답했다.“내가 찼어.”송수빈은 완전히 얼떨떨해졌고 화가 나서 그녀를 밀쳤다. “미쳤어? 그렇게 좋은 남자친구를 차버려? 네가 싫으면 나라도 주지!”“그 사람은 너 안 좋아해.”지우는 똑바로 서서 철조망 안을 들여다보았다.“대단하다 정말. 자기 발로 굴러온 복을 뻥 차버렸으니. 언제 그렇게 좋은 남자를...”송수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거대한 티베탄 마스티프 세 마리가 나무 사이로 달려오고 있었다.“악! 악견이야. 빨리 도망쳐!”지우와 송수빈은 황급히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했고 둘은 로켓에 탄 듯 험한 산길을 힘차게 질주했다.티베탄 마스티프는 철망을 뚫을 수 없지만 그 기세는 그녀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산을 뛰어 내려와 헐떡이며 도로변에 기대었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손발과 몸 곳곳에 나뭇가지에 긁혀 있었다.“괜찮아 수빈아?”지우가 걱정스럽게 그녀의 몸을 훑어봤다.“나 괜찮아.”지우가 산을 뒤돌아보려 중얼거렸다.“저기 분명 뭔가 있어.”“촬영하는 곳에 개를 몇 마리 두는 게 뭐가 이상해?”송수빈은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우는 왠지 이상했다.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이렇게 외진 곳에 숨어서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은밀한데 큰 산 전체를 대절하다니. 기자가 슈퍼맨도 아니고 철조망을 뚫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사람을 무는 티베탄 마스티프도 몇 마리 있었다.이 산
깨끗한 대숲 다실.향기가 모락모락 나는 향차 한 주전자와 디저트가 있었다.지우는 조용히 임다희가 차를 우려내는 모습을 보니 그 자태가 아름답고 일거수일투족이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알고 보니 여배우는 브라운관에서 우아할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임다희가 꽃차를 우려내는 모습도 일종의 시각적 즐거움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남태준이 임다희 같은 전 여자친구를 만나다가 어떻게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의심했다.입맛이 돌변한 걸까?그녀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가끔은 멋없는 개그우먼의 모습인데 정말 이상했다.“지우 씨. 차 드세요.”임다희가 예의 있게 차 한 잔을 건네주었고 지우가 즉각 받았다.“고마워요.”정교한 유리잔에 노랗게 물든 맑은 찻물을 보고 있자니 꽃향기가 풍겨와 세월이 고요한 느낌이었다.물론 한순간의 착각이었다. 지금의 지우는 온몸에 고민과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어머니는 자살 시도를 했고 자신은 첫사랑과 막 헤어졌고 친남동생은 아직 ICU에 누워있어 그녀는 삶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지우는 차를 술처럼 한 모금 마시고 입술을 오므리고는 잔을 내려놓았다.임다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본 후 입가에 약간의 조소가 떠올랐고 그녀는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놓고 지우에게 또 한 잔 따랐다.지우가 담담하게 물었다.“저한테 할 얘기가 뭐죠?”임다희는 조용히 그녀 앞에 놓인 다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나와 태준이 일에 대해 알고 있죠?”“조금이요.”“그때 내가 태준이 찼어요.”이건 지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훌륭한 남태준이 여자에게 연속으로 두 번이나 차였으니 너무 불쌍한 것 같았다.분명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임다희는 화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들었다.“태준이 나 많이 사랑해요.”지우는 순간 얼어붙었고 임다희가 무거운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난 태준이 첫사랑이에요. 그때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많이 아쉬워하면서 나 붙잡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우는 울지 않았고 울 수도 없었다.테이블 밑에 놓인 그녀의 손은 일찌감치 주먹을 불끈 쥔 채 눈 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화가 나서 눈앞의 징그러운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이 여자는 지금 무슨 자격으로 우는 거지? 정말 미치겠네!’임다희는 휴지를 꺼내 계속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난 무사히 귀국했지만 태준이는 이미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어요. 모두 태준이가 죽은 줄 알고 해변에 시신을 버렸어요.”지우는 눈시울을 붉히고 이를 갈며 물었다.“겨우 살아난 태준 씨가 가장 절망적이고 어둡던 시절에 당신은 어디 있었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요? 대체 왜죠? 태준 씨가 장애를 얻어서?”임다희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지우를 보았다.“아니에요. 난 태준이 동생 때문에 감히 보러 가지 못했어요.”“남하준?”지우가 묻자 임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태준이가 사고 난 후로 우리나라 미사일이 바로 이웃 섬으로 날아가 순식간에 초토화됐어요. 국제적으로는 미사일이 빗나간 우발적인 사고라고 보도됐죠.”“하지만 난 그 섬이 태준이가 계속 조사해온 가장 큰 마약 굴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섬 전체가 마약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었거든요.”지우는 차갑게 웃고는 차를 마시고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남하준이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할까 봐 감히 태준 씨를 보러 가지 못했다?”임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하지만 태준 씨는 당신을 언급하지도 않았어요. 그 일도 남하준이 직접 조사한 거고.”“그분 성격으로는 당신을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태준 씨가 원하지 않았죠.”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밝은 태도를 보였다.“그걸 난 이제야 알았고 그래서 지우 씨에게 태준이는 아직도 날 많이 사랑한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지우는 참다못해 차갑게 웃고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려 창밖의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임다희를 바라보았다. “당신 남태준 씨에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