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우리가 헤어질 이유가 될 수 없어.”남태준은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지우야. 난 정말 너를 사랑해. 내가 가장 힘들고 막막할 때, 이미 인생을 포기했던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내가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널 좋아했기 때문이야.”“널 좋아해서 열심히 재활 치료했고, 널 좋아하니까 눈 수술도 했어. 널 좋아해서 이 마을에 와서 일하는 거야.”그는 말할수록 괴로워하며 애원하는 투로 중얼거렸다.“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네가 날 좋아하기에는 두 달로 부족해.”지우는 진작 눈물범벅이 되었다.감동 받을수록 가슴이 더욱 아파졌다. 수만 개의 바늘로 심장이 찔린 것처럼 아리고 그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어떻게 이렇게 좋은 남자가 그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만약 그녀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태준에게 마약 형사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면 그들은 계속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사랑은 한순간이고 오래가지 못하는 감정이지만 그의 위대한 직업은 평생이었다.지우는 힘껏 그의 손을 비틀어 그의 품에서 나와 눈물을 훔치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남태준 씨처럼 잘생기고 돈 많고 직업도 좋은 훌륭한 남자는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죠. 우린 어울리지 않아요.”남태준의 빨갛게 달아오른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아주 처량해 보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우리는 원래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나에 대한 감정은 일시적인 신선함이고 심지어 감사한 마음일 수도 있어요. 그 감정이 지나가면 내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여자가 아니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거 발견하게 될 거예요. 난 당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그럼 우리 친구로 지내자. 응?”남태준은 어떻게든 그녀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관계가 강등되더라고 기꺼이 원했다.하지만 지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친구나 남자친구나 사실
남태준의 집에서 나온 지우는 스쿠터를 타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그녀도 자신이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줄 몰랐다.남태준은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처음으로 이렇게 남자를 좋아했고 처음으로 진지하게한 연애였다.불꽃놀이처럼 짧지만 찬란했다.집에 돌아온 그녀는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식사 시간 외에는 방을 나서지 않았다.나올 때마다 금방 운 사람처럼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진효연은 그녀의 상태를 보자마자 그녀가 이미 헤어졌다는 것을 알았다.진효연은 맞선 얘기도, 지성의 빚에 대해서도 다시 거론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매점을 운영했다.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라 여겼다.햇빛이 짱짱한 오후.진효연이 매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체크하고 있을 때 매점 입구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이건 지우가 설치한 센서로 사람이 들어오면 소리가 울렸다.“뭐 필요하세요?”진효연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들고나오다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를 보고는 떨떠름했다.맑은 눈동자를 가진 젊은 남자는 매우 잘생겼고 몸매가 늠름했으며 옷차림이 단정하고 기품이 넘쳤다.이런 차림의 남자는 마을 사람이 아니라 도시 사람 같았다.남자는 손에 몇 개의 큰 봉지를 들고 웃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아무리 나이가 많은 여자라도 잘생긴 남자를 만나면 미혹되는 법이다. 진효연도 예외는 아니었고 미소 지으며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뭐 필요하세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지우 전 남자친구 남태준입니다.”전 남자친구라는 말에 진효연의 미소가 굳어지고 말았다.남태준은 손에 쥔 물건을 내려놓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우에게 매달리려고 온 건 아니에요.”진효연은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그가 가져온 선물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뭐죠?”“오래전부터 직접 찾아뵙고 싶었는데 마땅한 기회를 찾지 못했어요. 지금이나 미래에도 그 기회는 없겠죠. 외람되지만 저는 단순히 지우
“자네...”진효연은 마음이 누그러져 말문이 막혔다.“이건 지우도 모르는 일이니 아주머니도 지우에게 말씀할 필요 없으세요. 지우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남태준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인사를 했다.“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말을 마친 남태준은 돌아서서 떠났고 진효연이 급히 선물을 들고 쫓아나갔다.“이봐요. 물건 가져가게나...”이미 차에 올라탄 남태준은 진효연에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귀중한 물건도 아니니 받아주세요.”말을 마친 남태준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진효연은 문 앞에 멍하니 서서 손에 든 선물 몇 봉지를 내려다보았다.마약 형사라는 신분만 아니었다면 남태준은 지우가 맞선 본 남자 중에 가잘 잘생기고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진효연은 선물을 갖고 돌아가 뜯어보았다.그녀는 찻잎, 유제품, 혹은 음식 같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부 값비싼 물건들이었다.동충하초, 제비집, 비싼 브랜드 스킨케어 제품, 그리고 매우 비싸 보이는 진주 장신구 세트였다.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본 진효연은 멍해졌다.헤어졌는데도 이렇게 귀한 물건을 줬으니 만약 안 헤어졌으면 어느 정도일까?진효연은 긴장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지우에게 전화했다.벨이 잠시 울렸다.지우가 이불을 뚫고 나와 휴대전화를 귓가에 갖다 대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야. 너 아직도 전 남자친구와 연락해?”이 말을 들은 지우는 화가 솟구쳤다.“엄마,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궁금해서 그래.”“아니에요. 연락 안 해요.”지우는 짜증스럽게 물었다.“갑자기 무슨 일인데요?”진효연이 궁금해서 나지막이 물었다.“그냥 그 친구가 네게 무슨 선물을 했는지 궁금해서. 모두 돌려줬니?”“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돌려줬어요. 됐어요?”며칠 동안 겨우 마음을 추슬렀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남태준을 언급하며 그녀의 상처를 후벼 파니 짜증이 났다.“대체 나더러 어쩌라
수술은 이미 4시간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우는 더욱 두려웠다.어머니가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감히 그녀에게 말할 용기가 없었다.그저 지성이 버텨내길 바랄 뿐이었다.잠시 후 간호사가 서류철을 들고나오면서 다급히 말했다.“지금 상황이 안 좋아요. 환자의 모든 가족에게 빨리 오라고 알리세요. 그리고 이 문서에 서명해 주세요.”지우는 손이 계속 떨리고 머리가 하얘지며 가슴이 아련히 조여왔다.서명을 마친 후,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식을 전해 들은 진효연은 전화기 너머로 울기 시작했다.30분 후, 진효연이 달려왔고 그녀는 수술실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통곡했다. 그녀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 때문에 자식들을 다사다난하게 만들었다고 한탄했다.그녀는 아주 슬프게 울었고 지우도 참다못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지우는 어머니를 일으켜 벤치 위에 앉혔다.오랜 기다림 끝에 수술 등이 꺼지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지우는 어머니의 팔짱을 낀 채 다급하게 물었다.“선생님, 제 동생 어떻게 됐어요?”“환자분 목숨은 건졌지만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는 환자분 의지에 달렸어요.”진효연은 얼굴을 가린 채 통곡했다.“대체 왜? 멀쩡하던 내 아들이 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왔어요?”“산기슭에서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채로 누워 있다가 발견돼 우리 응급실로 이송됐어요.”의사가 심각한 태도로 말했다.“환자 상처를 보면 구타를 당한 것 같았어요.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습니다.”“네.”지우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서 신고 전화를 걸었다.의사는 진효연에 몇 가지 사항을 설명하고 떠났고 지성은 ICU 관찰실에 입원했다.그리고 경찰이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 목격자를 찾아 상황을 물었다.지성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 입건할 수도 없어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지우가 이미 적지 않은 금액의 응급 수술비용을 냈지만 지성이 ICU에 있으니 매일 물 쓰듯 돈이 나갔다.지우는 동생이 다친 원인을 찾기 위해 친구 송수빈을 불러 지성이 다친 채
그러나 여자 둘이서 울창한 산속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건 너무 무서워 송수빈이 침을 삼키고 말했다.“지우야. 네 남자친구 보고 와서 조사하라 해. 우리보다 프로잖아.”“헤어졌어.”지우가 덤덤하게 말하자 송수빈은 멍해졌다.“뭐? 헤어져?”“응. 일주일 됐어.”송수빈은 마음이 아파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마. 지우야. 그 남자 여자 보는 안목이 없는 거지. 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지우가 여유롭게 대답했다.“내가 찼어.”송수빈은 완전히 얼떨떨해졌고 화가 나서 그녀를 밀쳤다. “미쳤어? 그렇게 좋은 남자친구를 차버려? 네가 싫으면 나라도 주지!”“그 사람은 너 안 좋아해.”지우는 똑바로 서서 철조망 안을 들여다보았다.“대단하다 정말. 자기 발로 굴러온 복을 뻥 차버렸으니. 언제 그렇게 좋은 남자를...”송수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거대한 티베탄 마스티프 세 마리가 나무 사이로 달려오고 있었다.“악! 악견이야. 빨리 도망쳐!”지우와 송수빈은 황급히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했고 둘은 로켓에 탄 듯 험한 산길을 힘차게 질주했다.티베탄 마스티프는 철망을 뚫을 수 없지만 그 기세는 그녀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산을 뛰어 내려와 헐떡이며 도로변에 기대었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손발과 몸 곳곳에 나뭇가지에 긁혀 있었다.“괜찮아 수빈아?”지우가 걱정스럽게 그녀의 몸을 훑어봤다.“나 괜찮아.”지우가 산을 뒤돌아보려 중얼거렸다.“저기 분명 뭔가 있어.”“촬영하는 곳에 개를 몇 마리 두는 게 뭐가 이상해?”송수빈은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우는 왠지 이상했다.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이렇게 외진 곳에 숨어서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은밀한데 큰 산 전체를 대절하다니. 기자가 슈퍼맨도 아니고 철조망을 뚫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사람을 무는 티베탄 마스티프도 몇 마리 있었다.이 산
깨끗한 대숲 다실.향기가 모락모락 나는 향차 한 주전자와 디저트가 있었다.지우는 조용히 임다희가 차를 우려내는 모습을 보니 그 자태가 아름답고 일거수일투족이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알고 보니 여배우는 브라운관에서 우아할 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임다희가 꽃차를 우려내는 모습도 일종의 시각적 즐거움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남태준이 임다희 같은 전 여자친구를 만나다가 어떻게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의심했다.입맛이 돌변한 걸까?그녀는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가끔은 멋없는 개그우먼의 모습인데 정말 이상했다.“지우 씨. 차 드세요.”임다희가 예의 있게 차 한 잔을 건네주었고 지우가 즉각 받았다.“고마워요.”정교한 유리잔에 노랗게 물든 맑은 찻물을 보고 있자니 꽃향기가 풍겨와 세월이 고요한 느낌이었다.물론 한순간의 착각이었다. 지금의 지우는 온몸에 고민과 슬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어머니는 자살 시도를 했고 자신은 첫사랑과 막 헤어졌고 친남동생은 아직 ICU에 누워있어 그녀는 삶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지우는 차를 술처럼 한 모금 마시고 입술을 오므리고는 잔을 내려놓았다.임다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한 번 쳐다본 후 입가에 약간의 조소가 떠올랐고 그녀는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놓고 지우에게 또 한 잔 따랐다.지우가 담담하게 물었다.“저한테 할 얘기가 뭐죠?”임다희는 조용히 그녀 앞에 놓인 다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나와 태준이 일에 대해 알고 있죠?”“조금이요.”“그때 내가 태준이 찼어요.”이건 지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훌륭한 남태준이 여자에게 연속으로 두 번이나 차였으니 너무 불쌍한 것 같았다.분명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임다희는 화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들었다.“태준이 나 많이 사랑해요.”지우는 순간 얼어붙었고 임다희가 무거운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난 태준이 첫사랑이에요. 그때 내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많이 아쉬워하면서 나 붙잡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우는 울지 않았고 울 수도 없었다.테이블 밑에 놓인 그녀의 손은 일찌감치 주먹을 불끈 쥔 채 눈 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화가 나서 눈앞의 징그러운 여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이 여자는 지금 무슨 자격으로 우는 거지? 정말 미치겠네!’임다희는 휴지를 꺼내 계속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난 무사히 귀국했지만 태준이는 이미 살아날 확률이 전혀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어요. 모두 태준이가 죽은 줄 알고 해변에 시신을 버렸어요.”지우는 눈시울을 붉히고 이를 갈며 물었다.“겨우 살아난 태준 씨가 가장 절망적이고 어둡던 시절에 당신은 어디 있었죠?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잖아요? 대체 왜죠? 태준 씨가 장애를 얻어서?”임다희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이며 지우를 보았다.“아니에요. 난 태준이 동생 때문에 감히 보러 가지 못했어요.”“남하준?”지우가 묻자 임다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태준이가 사고 난 후로 우리나라 미사일이 바로 이웃 섬으로 날아가 순식간에 초토화됐어요. 국제적으로는 미사일이 빗나간 우발적인 사고라고 보도됐죠.”“하지만 난 그 섬이 태준이가 계속 조사해온 가장 큰 마약 굴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섬 전체가 마약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었거든요.”지우는 차갑게 웃고는 차를 마시고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남하준이 그 일로 당신에게 복수할까 봐 감히 태준 씨를 보러 가지 못했다?”임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하지만 태준 씨는 당신을 언급하지도 않았어요. 그 일도 남하준이 직접 조사한 거고.”“그분 성격으로는 당신을 죽이고도 남았겠지만 태준 씨가 원하지 않았죠.”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밝은 태도를 보였다.“그걸 난 이제야 알았고 그래서 지우 씨에게 태준이는 아직도 날 많이 사랑한다고 알려주고 싶었어요.”지우는 참다못해 차갑게 웃고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려 창밖의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다시 임다희를 바라보았다. “당신 남태준 씨에
“전에 출연했던 작품 투자자였어요.”“당신들은 촬영이 끝났는데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죠?”“새로운 작품 촬영 중인데요?”“육건우 뒤에 있는 보스와 아직도 연락할 수 있어요?”임다희는 차갑게 웃었다.“태준이한테 배웠어요? 마치 범인을 심문하는 듯한 말투네요.”“만약 남태준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도와주세요. 하마터면 그 사람을 죽일 뻔했던 배후를 잡아야죠.”“그건 그쪽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예요.”“그럼 오늘 날 왜 찾아왔죠?”“그쪽이 태준이와 깨끗하게 끝났으면 해서요.”“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끝난 거죠?”지우가 물으니 임다희는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과 명함 한 장을 꺼냈다.“카드 안에 6천만 원 들어 있어요. 동생 병원비로 쓰세요. 그리고 이건 내 친구 명함이에요. 다른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지우 씨가 그 회사에 출근해도 돼요. 조건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알고 보니 그녀는 지우를 남태준에게 멀리 떨어지게 하려는 목적이었다.지우는 명함과 은행 카드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내가 아직도 다희 씨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내가 소질이 있어서지 당신 같은 사람과 거래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은 여전히 내게 태준 씨를 팔아넘겨 죽일 뻔한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여자니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당신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이야.”“태준 씨가 만약 당신을 사랑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면 난 그 사람 축복해. 나와 태준 씨는 이미 끝난 사이니까 이딴 짓 하지 마. 역겨우니까.”말을 마친 지우는 일어나 차갑게 인사했다.“당신 같은 사람이랑은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당신의 그 더러운 손이 우리 가족에게 뻗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이만.”지우가 몇 걸음 갔을 때 임다희가 뒤에서 외쳤다. “당신들 남동생 병원비를 전혀 감당할 수 없잖아? 내 돈을 받지 않겠다면 태준이 찾아가 돈을 빌리는 일도 없었으면 해. 이미 끝난 이상 더 이상 얽히지 말라고.”지우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경찰이 한 달간 배치한 작전이 오늘로 끝이 났다.산에서 거대한 독극물 재배 기지와 원자재가 발견되었고 2t의 현물도 압수되었다.남태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촬영기지의 투자자 육건우는 체포되어 입건되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그의 변호사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 없었다.취조실.남태준은 쇠 옥에 갇힌 육건우를 향해 말했다.“침묵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에요. 당신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증거가 확실하다면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할 수 있어요.”육건우는 피식 웃더니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여유작작한 모습이었다.경찰이 아무리 검문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대장님, 잠깐 나와보셔야겠어요.”취조실 문이 열리면서 오신우가 그를 불렀다.남태준이 일어나서 떠나려고 할 때, 육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남태준, 난 그저 평범한 영화 투자자일 뿐이야. 마약 같은 거에 손댄 적 없으니까 나 풀어줘.”남태준은 얼굴이 어두워져서 육건우를 돌아보니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눈가에 냉기가 돌았다.남태준이 나가 문을 닫는 순간 오신우가 긴장해서 말했다.“대장님. 지성이가 신고하러 왔어요.”“지성이가?”남태준이 긴장하며 얼굴을 찡그리자 오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밖으로 나가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이야?”“누나가 실종됐대요.”오신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태준은 황급히 달려나갔다.그는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종일 꺼둔 전원을 켰다.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고 그중에 지성도 있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찰 프런트 데스크에서 뛰쳐나왔고 표정은 엄숙하고 무거웠다.지성은 남태준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초조해서 말했다.“형...”남태준이 다급히 물었다.“지우가 왜?”지성은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아침에 장 보러 간다고 나갔다가 계속 집에 안 돌아왔어요. 누나 스쿠터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는데 사람은 안 보여요.”그때 옆에
남태준은 경찰서로 돌아와 밤새 배치하고 새벽 4시에 많은 경찰 병력을 이끌고 이웃 마을 산꼭대기의 영화기지를 공격했다.산꼭대기에 가까운 사람들은 늦은 밤 총소리에 잠이 깼다.날이 밝자 많은 경찰차가 정적을 울렸고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지우가 한창 단잠에 빠져있는데 송수빈의 전화에 잠이 깼다.지우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송수빈의 전화를 받자 송수빈은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야. 지우야. 얼른 인터넷 확인해봐. 세상에. 우리 마을에서 큰 뉴스가 났어. 어젯밤 얼마나 짜릿했는 줄 알아?”“우리 마을에서?”지우는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을 비볐고 송수빈이 황급히 수정했다.“아니. 우리 마을 아니고 옆 마을. 산에 있는 촬영기지 있잖아. 새벽 4~5시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찰차가 잔뜩 오가고 난리가 났대.”새벽 4~5시? 지우는 남태준 생각이 나서 군말 없이 송수빈의 전화를 끊고 남태준의 휴대전화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지우는 그가 임무를 나갈 때 전원을 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음이 조마조마해진 그녀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인근의 기사를 검색했다.지우는 아침 내내 걱정하며 전화도 여러 번 했다.정오가 되자 지성이 밖에서 돌아와 득의만면한 얼굴로 물을 따라 마시더니 흥분해서 말했다.“누나! 육건우가 잡혔대. 하늘도 양심이 있지.”“육건우가 잡혔다고?”지우가 긴장하며 물었다.“마약 형사한테 잡혔대? 태준 씨는 괜찮아?”“누나 남자친구 괜찮던데? 내가 방금 육건우가 묵고 있는 호텔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태준이 형이 경찰 몇 명과 함께 육건우를 경찰차에 태우는 걸 봤어.”아침 내내 근심하던 지우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육건우는 잡히면 사형 아니면 종신형이야. 네가 진 빚도 갚지 않아도 돼.”지성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죽어도 싸지 뭐.”“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도박 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아.”지성은 테이블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소
남태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가 내게 선물한 반지 같아서 질투하고 기분 나빴던 거야?”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흥분하며 지우의 몸을 덥석 껴안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도 나 좋아하지? 그래서 신경 쓰고 있는 거지?”“맞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그 반지 돌려주면 안 돼요? 더 이상 갖고 있지 말아요. 네?”“지우야.”남태준은 흥분하는 말투로 달랬다.“다시 한번 말해주면 안 될까?”지우는 순순히 중복했다.“그 반지 돌려주라고요.”남태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긴장해서 말했다.“그거 말고 첫 마디.”지우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의 가슴팍에 묻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게 말했다.“좋아해요. 태준 씨.”“나도 너 좋아해.”남태준은 크게 흥분하여 매력적인 목소리로 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 지우야.”“그럼 그 반지는...”남태준이 바로 말을 끊었다.“그거 임다희가 준 반지 아니야.”지우가 호기심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럼 누구 거예요?”“그때 큰 마약 조직을 잡으면서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물건도 압수했지만 배후의 보스만 잡지 못했어. 그 신비로운 배후의 보스는 다들 준영이 형이라고 부르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어.”“그 반지는 그 사람이 잠자리에 들 왕비로 선택받은 중요한 증거야. 그것만 있으면 그 사람 배에 탈 수 있거든.”지우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남태준을 밀어내고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남색을 팔아 접근했던 거예요?”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난 선택받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신분이 폭로됐어.”“만약 폭로되지 않았다면...”지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용기가 없었고 남태준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쯤 아마 감옥에 갇혔겠지.”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사람은 잠자리에서 어떤 역할인데요?”남태준은 미간을 잔
지우는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다른 서랍을 잽싸게 뒤지고 양말과 팬티를 챙긴 다음 옷장 문을 닫고 황급히 남태준의 집을 떠났다.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지만 그럴수록 바늘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파졌다.지우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 남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짐가방을 가볍게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옆을 지켰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보고 또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서글퍼졌다.‘임다희는 몇 번이나 당신을 해쳤는데 왜 그 여자가 준 반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전에는 당신을 죽일 뻔했고 지금은 당신을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데 왜 계속 마음속에 그 여자 자리가 있냐고요.’지우는 생각할수록 슬퍼져서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그의 큰 손 옆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남태준의 따뜻한 큰 손을 만졌고 천천히 그와 손깍지를 꼈다.지금의 지우는 너무 불안하고 조금의 안정감도 느끼지 못했다.남태준이 아직도 임다희를 사랑할까 봐 두려웠다.남태준은 은은히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지우의 거뭇거뭇한 머리가 그의 곁에 엎드려 자는 것이 보였다.여자의 손이 그와 맞닿았다.남태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가 금방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남태준은 달콤한 행복에 마음이 꽉 채워진 것 같았고 손바닥을 천천히 조여 여자의 부드럽고 작은 손과 더 단단하게 밀착시킨 후 다시 눈을 감았다.조용한 병실에서 지우의 존재가 가져다준 따뜻한 행복에 남태준은 그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날 밤, 남태준은 몸 안의 약효가 빠지자 서둘러 퇴원절차를 마쳤다.지우는 그에게 하루 더 병원에 머물며 지켜보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새벽 네 시에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지금 서둘러 경찰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남태준은 지우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
잠시 후 한 남자 의사가 들어와 남태준이 평온하게 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효과가 조금은 있네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의 아랫도리를 보더니 한마디 보탰다.“하지만 효과가 만족스럽지는 않네요. 휴. 환자분 물 많이 주시고 약효가 천천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세요.”말을 마친 의사는 자리를 떠났고 지우는 급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남태준의 아랫배를 슬쩍 쳐다봤다.병원의 이불이 너무 얇은 편도 아니었는데 남태준의 아랫배가 여전히 부풀어 올랐다.지우는 속으로 욕했다.‘늑대 같은 임다희! 빌어먹을!’“태준 씨. 물 좀 마셔요.”지우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남태준이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뜨고 몸을 지탱하며 일어나자 지우가 서둘러 그의 등을 부축해 주었다.“아직도 힘들어요?”지우가 관심하며 묻자 남태준은 대답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나 이제 괜찮으니까 너 집에 가서 쉬어.”“싫어요. 여기 있을래요.”남태준은 눈을 감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돌아가라고.”“혹시 무슨 일 생겼는데 옆에 돌봐줄 사람 없으면 어떡해요?”“여기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으니까 나 괜찮아.”“그래도 난 여기 있고 싶다고요.”남태준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흐릿한 검은 눈동자를 천천히 뜨고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몸 안의 불은 꺼졌지만 탄소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 넌 탄소 더미 옆의 디젤과 같아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비유를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남태준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지우는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여기 머무르는 게 어쩌면 그의 안정과 회복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좋아요. 나 먼저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줘요.”“그래.”지우는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1층 로비에서 매니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약을 받는 임다희를 만났다.지우는 재빨리 기둥 뒤에 숨었다. 보아하니 그녀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지우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시골 옆집에서 종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매번 거래가 있을 때면 이웃 할아버지는 종돈에게 독한 약을 먹였고 약을 먹은 종돈은 열 몇 마리의 암퇘지와 교배를 했다.그녀는 그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처절하고 끔찍한 돼지 울음소리는 그녀 어린 시절의 악몽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지우는 두말없이 펑 하고 문을 닫았다.갑작스레 문을 닫는 모습과 지우의 창백한 얼굴, 당황하는 모습에 남태준은 피식 웃었다.지우는 부랴부랴 택시를 잡았고 15분 후, 남태준은 지우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응급실에 가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의사가 남태준 옆에 있는 지우를 가리키며 물었다.“환자분 여자친구예요?”남태준이 다급하게 말했다.“여동생이에요.”지우는 마음이 뭉클했다. 남태준은 스스로 고통을 참을지언정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여자친구 있어요?”“없어요.”“내가 주소를 줄 테니 가서...”의사가 간단한 방법을 추천하려 하자 남태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 경찰입니다.”의사는 말을 뚝 그치고 긴장된 듯 침을 삼키더니 웃어 보이며 애써 둘러댔다.“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도 해독제가 없어요.”“진정제 놔주세요. 진정제가 안 되면 마취제라도...”“그런 약은 함부로 처방할 수 없고 일정한 수치에 도달해야 처방할 수 있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의사는 난처해하더니 남태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의 강한 카리스마에 겁을 먹고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진정제 놓아드리겠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저 괴로움을 조금 억제하는 정도예요.”“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괴롭게 참아내느라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다른 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의사가 약을 처방하며 말했다.“여자친구도 없고 그런 서비스도 받기 싫다면 여동생분께 성인 가게에 가서 사달라고 하세요.”지우는 이렇게 난처한 적이 없었다.
지우가 만약 숫처녀라면 아마 고생할 것이다.남태준은 생각하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러 의사를 찾아 해결할 생각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아 다이얼을 돌리려던 순간,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지우가 다급하게 들어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태준 씨?”남태준은 움찔 놀랐다. 뜨거운 눈으로 지우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니 입이 바짝 마르고 욕망이 최고조에 달했다.지우는 남자가 머리와 몸이 흠뻑 젖어 숨도 약간 헐떡이는 것을 보고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타오를 듯한 고온에 지우는 화들짝 놀랐다.“태준 씨 열 나요.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남태준은 꾹 참으며 천천히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운전할 줄 알아?”“아니요.”지우가 긴장하며 말했다.“방금 택시 타고 왔어요. 택시 타고 병원에 데려다줄게요.”택시?남태준은 자신이 통제 불능이 되어 택시에서 무슨 엉뚱한 짓을 할지 몰라 걱정했다.지우는 휴지를 뽑아 그의 볼과 목의 물기를 닦아 줬다.여자의 몸에서 나는 향기, 손바닥의 부드러움은 치명적인 유혹처럼 그를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들고 싶게 만들었다.“지우야.”남태준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감고 감히 그녀를 쳐다보지도 못하며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말했다.“방금 다희를 만났어.”지우는 땀을 닦는 동작을 멈추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티 나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그리고요?”“그리고 이렇게 됐어. 너무 괴롭고 답답해 죽을 것 같아.”남태준은 침을 삼키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지우의 시선은 그의 고통스러운 안색에서 내려와 그의 가슴팍을 보니 기복이 아주 심했고 더 아래로 내려가니 운전석에 앉아도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임다희가 약을 먹였어요?”지우는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어쩔 줄 몰랐다.그러자 남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어떡해요?”지우는 부랴부랴 고개를 내밀어 근처에 호텔이 있는지 살폈다.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