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하고 우아한 외모에 고급스러운 차림을 한 여자는 동네 사람 같지 않았고 아주 낯설어 보였다.그리고 같이 들어온 남자는 남태준이었다.지우는 자리에 털썩 앉자 긴장하며 빠르게 몸을 낮추고 소파 등받이로 자신을 가렸다.송수빈이 의문스러워 하며 물었다.“왜 그래? 글이 안 써져?”지우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잠깐 쉬려고. 너 계속해.”“너 타이핑 속도 완전 거북이잖아. 언제 나 따라올지도 모르는데 이젠 게으름까지 피우네?”지우의 마음은 이미 줄거리를 떠나 있었고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몰래 머리를 위로 올려 소파 등을 넘어 앞에 있는 남녀를 노렸다.남태준이 그녀를 등지고 앉자 그녀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앉았다.세 자리 떨어져 있어서 그녀는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남태준의 반대편에 있는 여자는 정말 기품이 넘쳤다.그녀는 분명 남태준을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는데 괜히 질투가 나고 괴로웠다.‘저 여자 누구지? 남태준이 왜 단둘이 저 여자와 커피를 마시지?’‘설마 널 좋아해, 너와 결혼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야. 이런 말을 나 말고 많은 여자에게 한 거 아니야?’지우는 머릿속 생각을 떨쳐버리고 뒤통수를 껴안고 탁자 위에 내리찍었다.펑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나자 송수빈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서두르지 마. 줄거리 막히는 건 흔한 일이야. 머리 쉬고 천천히 생각해.”“생각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울먹이며 말했고 머릿속은 온통 남태준으로 가득해 짜증이 몰려왔다.“너 아직 업데이트 안 했잖아? 생각하지 않으면 연재 중단이야. 개근 상금 15만 원 포기하려고?”개근 상금 15만 원?지우는 순식간에 힘이 솟구치더니 몸을 곧게 펴고 머리를 정리하며 자기 주문을 외쳤다.‘그래. 일이야말로 진짜 사랑이고 돈이 최고지. 남자는 중요하지 않아.”그러자 그녀는 곧 줄거리에 몰입해 타이핑하기 시작했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좌석.남태준은 우유와 설탕을 넣은 커
임다희가 살짝 긴장한 채 말했다.“지난 일 년 동안 수도 없이 너 찾아가서 사과하고 싶었지만 일이 너무 바빴고 매니저가 혼자 못 나가게 해서...”남태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너 무명 배우에서 인플루언서로 전락했잖아? 그렇게 바빠?”임다희는 긴장해서 냅킨을 집어 들고 눈물을 닦으며 속으로 지금의 남태준은 전혀 배려심이 없어 휴지도 건네주지 않는다고 원망했다.임다희가 자신 있게 말했다.“나 이젠 여주 급이야.”남태준이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물었다.“제목이 뭔데?”임다희는 얼굴이 어두워지고 난처해졌다. 남태준의 돌직구 성격에 참사당할 것 같았다.남태준은 범인 심문이라도 하듯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며 말투가 엄숙해졌다.“제목이 뭐냐고?”임다희가 쭈뼛쭈뼛 제목을 말하자 남태준이 검색해서 한 번 보더니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덤덤하게 말했다.“웹 단막극 여주도 주인공이긴 하지.”임다희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녀는 당시 운이 좋아서 한 드라마의 조연에 출연했는데 그 배역이 갑자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순간에 많은 감독과 광고주들이 그녀를 찾았다.그녀는 자신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고 연애가 그녀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까 봐 남태준을 차버렸다.다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가 사그라지는 건 한순간이었고 잠깐 반짝하더니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그녀는 줄곧 후회하고 있었다.1년 전, 그녀는 여주인공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연예계의 한 거물을 따라 접대하러 요트에 올랐다.접대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한 돈줄에게 맘에 드는 여자를 골라주는 일이었다.뜻밖에도 그때 요트에서 남태준을 만난 것이다.남태준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를 보트에서 쫓아내려 했고 심지어 그녀를 데려다주라고 사람을 붙여주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감사하기는커녕 남태준에게 벌컥 화를 냈다. 전에는 그래도 멀쩡한 경찰이더니 지금은 다른 사람의 심부름꾼이나 한다며 욕했다.그 말이 나오자 돈줄은 즉각 알아채고 그녀를 체포했다. 조금 위협하자 그녀는 남태준의 생년
지우가 정신없을 때, 옆에 갑자기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녀와 송수빈이 테이블을 닦고 노트북을 막 내려놓았을 때, 귓가에 남자의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남태준의 목소리를 들은 지우는 바짝 긴장했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애써 침착한 척 그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안녕하세요. 대장님.”그녀의 대장님이란 호칭에 남태준은 씁쓸해 예의 미소조차 짓지 못했다.“요 며칠 계속 네 전화 기다렸어. 네가 나 찾아오길 기다렸다고.”송수빈은 충격적인 얼굴로 남태준을 보고 또 지우를 바라보았다.지우가 언제 이렇게 멋지고 잘생긴 남자를 알았는지 궁금했다. 대장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아마 경찰일 것이다.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얘기를 하기 싫어 지우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요 며칠 바빴어요.”그때 임다희가 남태준 곁으로 다가가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훑어보더니 눈 밑에는 비우호적인 빛이 어려 있었다.지우도 그녀가 다가온 걸 보고 급히 말했다.“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저와 친구는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녀는 말을 마치자 서둘러 물건을 정리했고 송수빈도 눈치껏 아무 말도 없이 덩달아 짐을 챙겨 나가려 했다.지우가 남태준의 곁을 지나갈 때, 그가 지우의 팔을 잡고 살며시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또 무슨 일이죠?”지우는 당황스러움을 감추려고 애써 미소 지었다.남태준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녀는 아직도 얼떨떨했다. 속으로 남태준을 좋아하고 그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두 사람의 신분 차이 때문에 그녀는 열등감을 느꼈고 자신이 이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무엇보다 어머니가 크게 반대했다.그런 상황에서 바로 선택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그런데 마침 그가 다른 여자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질투심이 타오르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복잡했다.그래서 지우는 지금 남태준을 마주할 수 없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일이든 감정이든 항상 적극적으로 나섰고 절대로 겁
남태준의 얼굴빛이 흐려지며 엄숙한 말투로 수정했다.“간병인이 아니라 지금 내가 좋아하고 있는 여자야.”이 말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세 여자는 모두 놀라서 멍해졌고 지우는 볼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이 남자는 정말 직설적이고 숨기지 않으며 돌려 말할 줄도 몰랐다.이렇게 돌직구로 나오면 그녀는 어떡해야 할까?“나 먼저 가볼게요.”지우가 다시 남태준의 곁을 지나가자 남태준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이번에는 손을 놓지 않고 송수빈에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지우 친구분?”그러자 송수빈이 웃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송수빈입니다.”“수빈 씨, 지우 잠시 빌려도 될까요?”남태준이 예의 바르게 묻자 지우는 멍해졌다.잠시 빌린다니? 그건 무슨 뜻일까?송수빈은 바로 가라는 몸짓을 하며 기뻐했다.“네. 얼마나 오래 빌리든 상관없어요. 지우 이제 안 바빠요. 매일 두세 시간 일하는 것 빼고는 시간 많아요.”“고마워요.”남태준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우의 손을 잡고 돌아섰다.그러자 임다희의 안색은 잿빛이 되었다. 남태준이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떠나는 것을 보고 그녀는 슬프고 화가 났지만 질투와 증오가 더 많았다.질투 어린 눈빛으로 지우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며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남태준이 지우를 좋아할 리 없다고, 전부 자신을 화나게 하고 싶은 행동이라 믿었다.송수빈은 임다희를 힐끔 쳐다보고는 짐을 챙겨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주차장 밖에서 남태준이 지우를 차에 밀어 넣었다.남태준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려 하자 지우가 바로 안전벨트를 잡아당겨 왔다.“제가 할게요.”그녀는 평온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긴장되어 죽을 지경이었다.남태준은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돌아가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차량이 넓은 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차 안의 분위기가 다소 억압적이었고 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남태준이 먼저 정적을 깼다.“다희가 옆 마을에서 촬영하고 있어서 우연히
남태준은 흥분해서 설레게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극도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첫째, 절대 공개하지 말고 비밀에 부쳐야 하고 우리 가족에게 알려서는 더더욱 안 돼요.”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둘째,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무조건 응해야 해요.”그러자 남태준은 사람 전체가 어두워져서 불쾌하게 앞을 바라보며 핸들에 손을 얹고 천천히 움켜쥐었다.시작도 하기 전에 실연의 아픔을 느낀 것 같아 기분이 매우 나빴다.지우는 그의 안색이 극도로 어둡고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고 약간 당황해서 말했다.“어렵다면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요.”“약속할게.”남태준의 딱 잘라 말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순간, 지우는 미친 듯이 설레고 심장이 떨렸다.그 말 이후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변했고 한순간에 변한 묘한 느낌에 그녀는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랐다.“네.”지우는 대답하고 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잔뜩 긴장한 채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남태준은 다시 시동을 걸어 운전했고 10분 후, 차량이 작은 정원이 있는 민가로 천천히 들어섰다.지우가 차 유리창을 통해 사방을 살피니 앞에는 2층 높이의 큰 집이 있었는데, 인테리어가 아주 정교하고 보기 좋게 꾸며져 있었고 현대풍의 심플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집 주위는 투각된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고 마당 앞에는 화초와 나무들이 심겨 있고 그리 크지 않은 금붕어 장이 있었다.남태준이 차에서 내리자 지우도 따라 내렸다.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 인테리어가 고향답지 않다는 생각에 물었다.“여기 어디예요?”“내가 사는 집.”남태준이 그녀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셋집이에요?”지우가 경악해서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그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그러자 남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몇 달 전에 샀어. 친환경 소재로 리모델링해서 지금 여기에 살고 있어.”“왜 여기에 집을 사요? 나중에 여기서 노후를 보낼 생각이에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은
방문?이미 사귀기로 한 사이에 자신을 손님 취급하는 걸까?남태준은 다시 한번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커다란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눈빛이 흔들리는 거 보니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볼이 빨개지고 정신이 긴장한 거 보니 넌 지금 겁먹고 있는 거고.”지우는 엄숙한 남자의 눈빛을 올려다보며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그의 직업은 아마 다른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쉽게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럼 앞으로 난 이 사람 손바닥 안이라는 거야? 연기도 못 해? 어쩌지? 어쩜 좋아?’지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사이 남태준이 또 말을 이었다.“앞으로 여긴 네 집이야. 자기 집에 오면서 방문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그리고 나를 태준이 아니면 오빠, 자기야, 심지어 여보라고 해도 좋으니 대장이라고는 부르지 마.”지우는 여보라는 호칭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얼굴이 붉어졌다.남태준은 여자의 맑고 예쁜 큰 눈을 마주치다가 그녀가 가볍게 입술을 깨무는 순간, 당황스럽고 목이 타서 그녀의 분홍빛 입술을 잠시 쳐다보았다. 여자는 수줍고 얼굴이 빨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가능할 것 같았다.남태준은 한 발 앞으로 가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지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완전히 멍청해졌다.눈이 휘둥그레져서 희미하게 확대된 볼을 바라보며 심장병을 의심할 정도로 폭격하듯 펄쩍펄쩍 뛰었다.그의 촉촉한 얇은 입술은 온기를 머금고 그녀의 입술과 혀끝을 빨며 산해진미를 맛보듯 눈을 감고 즐겼다.지우는 낯선 감각에 자극받아 온몸이 나른하고 뜨거워지며 전에 없던 짜릿한 감촉으로 심금을 울리며 단숨에 그의 키스에 반하게 되었다.이것은 그녀의 첫 키스였다.아직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키스를 한다면 안에 들어간 후에 그녀는 온전한 몸으로 나올 수 있을까?이 속도면 다음 달에 배에 혼수를 갖고 결혼하는 건 아닐까?‘안돼!’지우는 더 이상 그의 깊은 키스에 빠져들지 않고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힘껏 밀었다.
“나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집에 갈래요.”지우는 아무래도 감히 그의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고 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돌려보냈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나중에 연락하기 쉽도록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지우는 차에서 내린 후 도둑질하듯 남태준의 차를 재빨리 빠져나와 계단으로 뛰어들어 위층으로 뛰어갔다.남태준은 차에서 내린 지우가 허둥지둥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있고 그녀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이제 막 시작했으니 너무 서두르면 안 되었다.지우의 집은 5층 높이의 구식 상업용 주택이었는데 지은 지 50~60년은 된 것 같다.남태준은 집 주위를 돌아다니며 소화장치가 정상인지, 벽에 붙은 전기박스가 얼마나 낡았는지 확인하며 그 주변을 살폈다.그는 집 옆 골목에서 여러 개의 미용실을 발견했다.겉모습과 가게 인테리어를 보면 마치 영업 중인 미용실과 흡사했지만 캐비닛에 도구가 없고 바닥에 머리카락도 없으며 더군다나 깊은 골목에 있었다.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어 다른 부서 동료에게 보냈다.“시간 나면 여기 한번 청소해.”그 후 남태준은 주변 치안과 안전에 대해 계속 순찰했다.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이상한 작은 가게들이 나왔다. 심지어 어떤 여자가 입구 벤치에 앉아 눈짓했다.“잘생긴 오빠. 우리 친구 할까?”남태준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오래된 아파트의 깊은 골목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매우 은폐되어 있어 어두운 산업이 자리 잡기 쉬웠다.이런 곳에 호색하는 변태 남자가 가장 많은 법이었으니 남태준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시동을 걸고 떠났다.지우는 집에 돌아와 방에 숨어 이불 속으로 들어가니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웠다.단지 친구와 커피 한잔하며 글을 쓰려고 나갔을 뿐인데 왜 돌아오니 뜻밖에도 남자친구가 생긴 걸까?그리고 그 상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남태준이었다.방금 그 키스를 생각하니 지우는 또 수줍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즐겁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싫어!”지우가 발끈하며 말하더니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힘껏 씹었다.“같이 가보자. 혹시 알아? 내가 단역이라도 따낼지?”지성은 잘 다듬은 헤어스타일을 만지작거리며 금방이라도 대스타가 될 것 같은 기대에 가득 찼다.지우가 그를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안 간다고! 사람 말 못 알아들어?”“누나 갱년기야? 아니면 뭐 잘못 먹었어?”지성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지우가 손에 든 사과를 그에게 던지기 전에 재빨리 집을 뛰쳐나갔다.지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번호를 보며 생각했다.‘난 절대 수동적인 여자가 아니야. 당신이 날 찾지 않으면 내가 먼저 연락하면 되지!’그녀가 막 전화를 걸려는데 갑자기 벨 소리가 울려 그녀는 깜짝 놀랐다.‘태준’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그녀는 갑자기 긴장했다.그녀는 사과를 내려놓고 목을 축이고 단정히 앉아 천천히 그의 전화를 연결했다.“태준 씨.”지우가 조용히 입을 열자 남태준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렸다.“지우야. 나 지금 너희 집 아래야. 잠깐 내려올래? 차에서 기다릴게.”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만나서 얘기해.”지우는 좋다고 대답하고는 재빨리 문 열쇠를 집어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아래층으로 뛰어갔다.계단을 내려간 지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남태준의 차로 급히 달려가 조수석에 들어섰다.지우가 머리를 돌릴 때 남태준은 이미 몸을 기울여 그녀에게 의자를 낮춰 주었다.“왜 그래요?”지우가 궁금한 듯 뒤의 의자 등받이를 돌아보고 또 그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했다.의자 등받이를 아주 낮게 조절한 남태준은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뒤로 살짝 눌러 그녀를 의자 등받이에 눌렀다.“태준 씨...”지우는 이 남자가 의자 등받이를 이렇게 낮춰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곧 그 목적을 알게 되었다.남태준은 바로 달려들어 의자를 짚고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남자의 키스는 격렬하고 끈적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