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 임무는 끝났지만 한 무리의 사람들을 붙잡고 심문해야 하거든. 방금 집에 가서 샤워하고 옷만 갈아입고 서둘러 가봐야 해.”지우는 다정하게 말했다.“그렇게 바쁘면 직접 오지 않아도 돼요. 전화로 알려줘도 되는데.”남태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중얼거렸다.“내 임무에 대해 알려주려고 너 보러 온 거 아니야.”“그럼 다른 일로 나 찾아왔어요?”지우가 의혹스러운 눈빛으로 큰 눈을 깜빡였다.그러자 남태준이 진지하게 설명했다.“응. 너 보고 싶어서. 무엇보다 키스하려고 왔지.”순간 지우의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더니 홍조를 띠었다.그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돌려 말을 잇지 못하고 대꾸하기도 무안했다.‘이 사람 왜 못 하는 말이 없어?’지우가 아직 부끄러움에 젖어 있을 때, 남태준이 서서히 그녀의 입술에 다가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지우야. 조금만 더 키스하자.”지우는 심장이 두근두근하며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벌리며 그의 진한 키스를 받았다.이번에 남태준은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은 채 품에 꼭 껴안아 두 사람의 몸을 더욱 가깝게 만들며 갈증을 풀었다.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목을 감싸더니 얌전함과 수줍음을 떨쳐버리고 그의 진한 키스에 화답했다.두 사람은 차 안에서 십여 분 동안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마지막에 지우는 그의 일을 방해하기 싫어 억지로 차에서 내려 냉큼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빨리 올라갔다.계단을 올라가는 지우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눈매에 수줍음이 가득한 것이 영락없는 연애에 빠져 행복한 여자의 모습이었다.저녁이 되어 그녀가 잠들기 직전 남태준의 메시지가 왔다.[지우야. 자? 네 목소리 듣고 싶어.]지우가 급히 타자했다.[자려고요. 집이 작아서 방음이 안 좋아요.][나 내일 휴식하는데 데이트할까?]지우는 그의 메시지를 보면서 몇 초 동안 망설였다. 그와의 데이트가 기대되면서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그녀는
가족, 동료, 친구, 그리고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연애할 때 이런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야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다.지우가 갑자기 전 여자친구에 관해 물었다.“두 사람 어떻게 헤어졌어요?”남태준이 생각해보더니 말했다.“다희가 막 주목을 받을 때라 회사에서 연애를 반대해서 헤어졌어.”“그러니까 차인 거네요?”지우는 살짝 당황했다.첫사랑은 잊을 수 없는 법이고 게다가 남태준은 일방적으로 이별을 당했으니 아직 감정과 아쉬움이 남아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맞아.”지우가 긴장하며 물었다.“이제 잊은 거예요?”남태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더니 그녀의 어깨를 덥석 잡아 품에 끌어안고 웃으며 말했다.“만약 못 잊었으면 다시 다희를 찾아가면 되지 왜 너랑 만나겠어?”“나도 당신이 나랑 왜 만나는지 궁금해요.”지우는 그의 품에 안겨 맑고 깨끗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남태준은 깊고 검은 눈동자를 드리운 채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민도 없이 툭 내뱉었다.“널 좋아하니까. 한 번도 이렇게 한 여자를 좋아한 적 없어.”지우가 자신 없이 물었다.“혹시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거 아니에요? 내가 태준 씨 돌볼 때 계속 사납게 대하면서 독설도 퍼붓고 자주 괴롭혀서 나를 좋아하게 된 거 아니에요?”남태준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이마에 뽀뽀한 후 사랑스럽게 말했다.“네가 온 첫날부터 그게 너만의 자극법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그럼...”지우가 무슨 말을 더하려는데 앞이 술렁였다.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촬영 장비를 나르며 걸어왔다.남태준은 지우의 어깨를 껴안고 옆으로 비켜서 앞사람에게 길을 비켜섰고 사진작가와 스태프가 두 사람 앞을 지나갔다.뒤에 임다희와 그녀의 매니저가 걸어오고 있었다.두 사람을 본 임다희는 눈빛이 어두워졌고 지우를 안고 있는 남태준의 손을 보고 몸이 굳어버렸다.임다희의 매니저는 40대의 뚱뚱한 여자였는데 그녀도 남태준을 알아봤다.“태준 씨, 여기서 이렇게 만날
남태준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지우의 손을 잡고 두 사람의 옆을 스쳐 지났다.임다희는 화를 꾹 참으며 주먹을 불끈 쥔 채 돌아서서 남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외쳤다.“태준아! 그때 연락한 브로커가 누군지 알고 싶다고 했지?”남태준이 발걸음을 멈추자 지우도 따라서 멈추었고 남태준의 엄숙한 기색을 살피고 또 임다희를 돌아보았다.“알려줄게.”임다희가 말하자 매니저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다희야. 함부로 말하지 마.”질투심에 눈이 먼 임다희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남태준은 지우의 손을 잡고 돌아가 여유롭게 물었다.“누군데?”임다희의 시선이 두 사람의 손에 꽂히더니 차가운 눈빛과 강한 어조로 말했다.“지금 당장 나랑 만나러 가!”말을 마친 임다희는 한마디 보태는 것도 잊지 않았다.“너 혼자 가야 해.”지우는 남태준의 직업 특성을 이해하며 그의 팔에 살며시 다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였다.“나 괜찮으니까 가서 일 봐요. 우리 다음에 다시 데이트하면 되죠.”남태준은 지우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이해심이 많은 지우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임다희를 따라간다면 그는 남태준이 아니었다.다시 임다희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걷히고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수사는 우리 경찰의 업무고 수사에 협조하는 건 시민의 의무야. 오늘 나 휴가니까 나 출근하면 다시 찾아와.”그러자 임다희가 협박했다.“지금이 아니면 나 절대 너 데리고 그 사람 만나러 안 가.”“그러니까, 진실을 알 수 없는 그 단서를 위해 내가 여자친구와의 약속을 어길 거로 생각해?”임다희의 안색이 굳어지며 달갑지 않은 눈으로 남태준을 바라보았다.남태준이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너의 그 정도 여우 짓은 나에게 아무 소용 없으니까 돌아가 씻고 잠이나 자.”말을 마친 남태준은 멍해 있는 지우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임다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두 눈이
남태준은 내친김에 지우의 허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떨구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어쩐지...”지우가 중얼거리자 남태준이 호기심에 물었다.“뭐?”“어쩐지 완자가 어릴 때부터 당신을 그렇게 존경하고 롤모델로 삼았더라니. 그 이유를 알겠어요.”남태준이 가볍게 웃으며 섹시한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침을 삼켰다.여자의 몸은 부드럽고 풍만했다. 이런 자세로 그에게 안기니 그는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가슴이 벅차오르고 피가 들끓었다.“지우야. 안 더워?”남태준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비록 그녀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섹시한 몸매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고 이렇게 그를 안고 있으니 남자는 일순간에 욕정이 일면서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지우가 황급히 그의 품을 떠나며 물었다.“난 괜찮은데 더워요?”남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내쉬고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가자.”남태준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고 두 사람은 계속 앞으로 갔다.지우가 힘들어하자 남태준은 그녀를 업으려고 쪼그려 앉았다.처음에 지우는 거절했다. 두 사람 모두 힘든 상황에서 남태준 혼자 고생하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의 강한 요구에 못 이겨 결국 그의 등에 엎드렸다.남태준은 그녀를 오래도록 업었다.“안 힘들어요?”그러자 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아니. 너 가벼워.”“나 혼자 갈 수 있어요.”“나 군대에서 훈련할 때는 100근을 메고 수십㎞를 달려도 버틸 수 있었어. 너 100근 안 되지?”“마른 여자가 좋아요? 아니면 뚱뚱한 여자가 좋아요?”지우가 긴장해서 묻자 남태준이 생각도 않고 툭 내뱉었다.“난 네가 좋아. 뚱뚱하든 말든.”지우는 수줍게 그의 어깨에 엎드렸고 마음은 꿀을 먹은 듯 달콤해 얼굴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그와 함께 있으면 시시각각 설레는 것 같았다.전에는 그가 이렇게 애정표현을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내가 당신 집에서 일할 때부터 나 좋아했다면서 그때는 왜 고백 안 했어요?”“다리도 잘 못 쓰
“지우 씨, 내일 서류 챙겨서 구청에서 볼까요?”남태준이 간곡히 말하자 지우는 즐겁게 오므리고 웃으며 눈에는 온통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남태준의 귓가에 수줍게 속삭였다.“싫은데요?”“나와 결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가 원하는 프러포즈와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릴 거고 따뜻한 우리 집을 마련할 거야.”“난 당신이 무사하기만 하면 돼요.”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가닥 근심이 담겨 있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지우를 옆 언덕의 풀밭에 내려놓았다.지우가 내려와서 풀밭에 앉자 남태준도 따라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비벼대며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지우야. 가끔은 내가 너와 결혼하는 게 널 해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지우는 그 뜻을 알아채고 그의 품에 와락 안겨 꼭 껴안고 말했다.“어떤 임무에 나가든 꼭 몸조심해요. 만약 우리가 결혼한 후에 나 과부로 만든다면 평생 당신 미워할 거예요.”남태준은 지우의 몸을 끌어안고 천천히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그에게 처음으로 걱정이 생긴 것이다.그의 집에는 형제가 많았기에 한 번도 자신이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너를 위해서라도 난 꼭 안전할 거야.”남태준이 서약하듯 약속했지만 마음이 무겁고 애틋한 감정이 더욱 강렬해졌다.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장애를 얻고 또 중상을 입었던 지난 어두운 날의 고통이 아직도 생생했다.지우가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까지 버텼을 리 없고 건강을 회복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그가 요양하던 시절, 지우와 함께라면 우울하고 무거운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매일 활기차고 즐겁고 생기 있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설레는 삶을 살았다.그때야 그는 자신이 불구의 몸이 아니라 인간처럼 느껴졌다.산들바람이 불어오니 숲속의 나뭇가지 끝이 바스락거렸다.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얼룩덜룩한 그림자가 조각된 꽃처럼 두 사람의 몸에 비쳤다.남태준은 가볍게 지우의 어깨를 밀치고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려 그녀를
그들은 평범한 연인들처럼 행복하게 알콩달콩 연애했다. 가끔 차를 몰고 시내에 가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커플 사진도 많이 찍었다.같은 밀크티를 마시기도 하고 커플룩을 입기도 하고 스릴 넘치는 기동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지우가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남태준은 주저하지 않고 그녀에게 선물했다.남태준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거나 지각하지 않았고 지우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지우에게 자주 사랑한다, 좋아한다고 말해줬다.그의 감정은 열정적이고 직설적이었으며 절대 마음을 숨기지도 감추지도 않았다.지우가 조금이라도 섹시한 치마를 입고 데이트하러 나가면 가까운 가게에서 얇은 코트를 사 입혀줬다.지우가 그를 가장부적이고 보수적인 사상을 가졌다고 놀려주면 그는 지우의 귓가에 숨김없이 말했다.“너의 옷 입는 자유를 제한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이렇게 섹시하게 입고 나와 단둘이 있으면 내가 생리적인 반응이 와서 그래.”남태준이 일로 바쁠 때면 지우는 종래로 방해하지 않았다.캐묻지도, 따져 묻지도 않고 생트집을 잡아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고 더욱이 끈질기게 그와 붙어 있으려 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남태준이 그녀를 찾을 때만 그에게 응답했다.지우는 이것이 좋은 여자친구의 덕목인 줄 알았는데 남태준은 오히려 기분 나빠했다.“너 아직도 나 안 좋아해?”“왜 그렇게 물어요?”“넌 한 번도 먼저 나를 찾아오지 않고 먼저 전화하지도 않고 내 스케줄에 대해서도 무관심하잖아.”“난 당신의 집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당신이 집에만 돌아오면 난 언제든지 문 앞에서 당신을 맞이할 거예요. 싫어요?”“난 그냥 네가 나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그동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네 미래의 남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해?”남태준의 감정표현은 언제나 직접적이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두 달이 지나갔다.옆 동네에서 촬영하던 드라마가 종영을 맞이해 모든 배우와 거물들이 찾아왔다.송수빈은 아침부터 지우네 집으로 달려가 이불 속에서 그녀를 끄집
진효연이 그녀를 올려다보며 차가운 눈빛에 노기를 띠고 또박또박 물었다.“너 연애하니?”지우는 긴장하여 옷자락을 꼬집고 있었고 진효연이 말을 이었다.“안성 사람이라며. 게다가 마약 단속 형사?”“엄마 나...”진효연은 순간 펄쩍 뛰며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컴퓨터를 세게 내리쳤고 굉음과 함께 바닥은 온통 산산 조각 난 컴퓨터 잔해로 가득했다.지우는 놀라서 멍해졌고 밖에 있던 송수빈도 놀라서 급히 뛰어 들어와서 지우를 잡고 뒷걸음질 쳤다.“아주머니. 말로 하시죠.”“내가 한 말 전부 잊은 거냐?”지우는 고개를 숙였고 호흡이 약간 어지럽고 가슴 끝이 살짝 아프고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슬픔에 잠겨 대답했다. “안 잊었어요.”“그럼 당장 헤어져.”진효연이 분노하여 두 손을 허리에 짚고 가슴을 출렁이며 이를 악물고 훈계했다. “어쩐지! 요즘 이상하게 자주 놀러 간다 했어. 어디 한 번 가면 종일 있고 어떤 때는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고 말이야.”“나 몰래 연애한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왜 하필 마약 형사냐고? 나 화병 걸려 죽는 거 보고 싶어?”송수빈이 다급히 설명했다.“아주머니. 지우 남자친구 저도 만난 적 있어요. 키도 크고 잘생기고 사람도 좋고 집도 부자였어요.”진효연이 송수빈을 향해 소리쳤다.“돈이 많으면 뭐하나? 명줄이 길어야지. 절대 경찰은 안 돼!”지우는 몰래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진효연을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얘기했다.“엄마 논리대로라면 전국 경찰들 전부 결혼하지 말아야겠네?”“경찰에게 시집가고 싶은 여자는 가라 그래. 아무튼 내 딸은 절대 안 돼.”얼굴이 잿빛이 된 진효연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운 눈으로 억지를 부렸다.지우는 마음이 불에 타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혔다.“엄마.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어.”“그럼 넌 내 딸 아니다. 모녀 관계를 끊고 당장 집에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날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힘없이 주저앉아 무릎을 껴안고 울었다.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지우는 송수빈의 스쿠터 뒤에 앉아 무거운 마음으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송수빈은 어쩔 수 없어 하며 물었다.“너 진짜 남 대장님이랑 헤어질 거야?”지우는 힘없이 송수빈의 등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헤어지고 싶지 않아.”“너희 엄마 태도가 만만치 않던데? 엄마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려고?”“아니. 사랑을 위해 가족을 포기하진 않을 거야. 엄마가 그 사람 받아들이게 할 거고 둘 다 포기하지 않아.”“차라리 이 일을 남 대장님께 말씀드리고 두 사람이 함께 해결 방법을 찾는 건 어때? 너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아.”“그 사람 바빠. 그리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괜히 고민거리만 만들어서 그 사람 일에 지장 주고 싶지 않아.”지우는 남태준이 자기처럼 괴로워하는 것이 싫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절대 알게 해서는 안 돼.”반 시간 후, 스쿠터가 마을의 공원 광장에 멈추었다.벤치에 서 있는 사람도 있고, 나무에 오르는 사람도 있고, 산비탈에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여기저기 사람이 붐볐다.송수빈은 지우의 손을 잡고 인파를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옆 사람의 성난 눈초리를 받으며 송수빈은 기어코 가장 앞으로 달려들었다.그녀에게 질질 끌려간 지우는 다른 사람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광장 중간에는 수십 대의 카메라와 한 무리의 사진작가들이 있고 그 위에는 다양한 음식과 꽃이 있는 직사각형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십여 명의 배우들, 그리고 한 무리의 스태프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이 사람 중 몇 명은 인기 스타여서 많은 구경꾼이 몰려들었다.지우는 구석 가장자리에 있는 임다희가 한눈에 보였다. 그녀의 위치로 보아 비중이 작은 조연 같았다.송수빈은 부러워하며 감격에 겨워 말했다.“지우야. 여배우들 좀 봐. 다 너무 예쁘고 날씬해!”“그래.”지우가 담담하게 대꾸하자 송수빈이 말을 이었다.“대체 무슨 드라마지? 이미 마을에서 몇 달이나 촬영했어.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