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랑하지 않아요?”정안은 화난 척 입술을 삐죽 내밀고 눈살을 찌푸렸다.남하준이 무의식중에 내뱉었다.“사랑해.”“그럼 애교스럽게 여보라고 한 번 부르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차라리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하고 말지.”정안은 웃음이 더욱 짙어져 그의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그럼 만 번 사랑한다고 말해줘요.”남하준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가로로 안았다.정안이 그의 목을 두르고 긴장한 채 물었다.“왜 또 안아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그렇게 길 안 보고 걷다가 넘어지면 속상한 건 나야.”정안은 가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더욱 환하게 웃었다.몸과 마음이 모두 따뜻해져서 구름 위를 밟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꿈만 같은 현실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했다....금원으로 돌아간 후, 정안이 소파에 앉자마자 지우의 전화가 걸려왔다.그녀는 귓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지우야, 무슨 일이야?”지우가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왜 벌써 갔어? 우리 아직 제대로 얘기도 못 했잖아.”정안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태준 오빠한테 안 잡혔어?”“아니. 아직 나 못 잡아. 지금 샤워하러 갔어.”지우가 조곤조곤 말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실의에 빠진 듯 말했다.“사실 이미 거의 회복했어. 지난 반년 동안 나와 싸우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의사도 만나고 재활 치료에 전념했어. 만약 정말 나아진다면 나도 이제 슬슬 떠나야지. 매달 수백만 원의 월급이 적은 돈도 아니고.”“그 정도 돈은 남씨 가문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부담 갖지 마. 오빠가 회복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네 덕이야.”“난 그저 돈 받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지우야, 오빠 눈 회복할 때까지 있어줘.”“사실 이제 내가 돌봐줄 필요가 없어. 눈은 안 보이지만 일상생활에 별로 지장이 없어. 심지어 정상인보다 더 잘한다니까? 밥하고 채소를 써는 것도 손으로 더듬으면서 해.”지우는 감탄하면서 말투에는 존경심과 숭배감이 흘러넘쳤다.“의지력이 아주 강해서 뭐든 잘
재혼이라는 두 글자에 정안은 웃음이 터졌다.두 사람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정안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남하준 쪽으로 몸을 기울인 뒤 귓가에 속삭였다.“내 손 재밌어요?”남하준이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주 재밌어.”정안이 손을 빼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손은 오빠도 있잖아요.”“다르단 말이야.”남하준이 속삭이더니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당황한 정안이 그의 가슴을 밀며 그의 입술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말했다.“오빠.”남하준은 그녀가 말을 마치기 전에 조용히 명령했다. “가만히 있어.”정안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그는 정안을 안아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놓고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머리를 감싼 뒤 미친 듯이 키스했다.마치 과거의 잘못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그의 키스는 뜨겁고 애틋했지만 한 점의 욕망도 없었다. 손도 규칙적으로 놓아두어 조금도 선을 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정안은 그가 아주 인내하고 절제하며 키스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전에는 이 남자가 성적으로 무능해 자제한다고 생각했지만 임신 사실이 그녀에게 말해주듯 그는 아주 훌륭했다. 단지 그의 자제력이 아주 강했을 뿐이었다.지금 그녀가 임신했으니 남하준은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녀 몸에 손대지도 않았다.밤에는 같은 방에서 따로 잤다.다만 남하준이 말한 신혼여행은 뜻밖에도 두 사람이 함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붙어 지내는 것이었다.그녀는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풍경을 보거나, 심지어 멍을 때릴 수 있지만 다만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손을 잡고 쇼핑은 하는데 장거리 여행은 가지 않았다.그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지만 영양가 없고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심지어 비서에게 업무를 모두 맡기고,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전환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모두 무시했다.그의 눈에는 임신한 아내 백완자만 보였다.겨울 아침, 따스한 햇볕이 나뭇가지 끝을 통
“아내?”유미가 주먹을 불끈 쥔 채 꾹 참고 거실로 들어가더니 죄를 묻는 기세로 말했다.“하준아, 너 결혼했어?”남하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응. 결혼했어.”유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정안의 배를 가리키며 이를 악물고 남하준에게 따져 물었다.“저 뱃속에 있는 아이를 받아들였단 거야?”남하준이 그녀에게 다가서며 말했다.“내 아이를 왜 안 받아들여?”유미가 코웃음을 치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았다.남하준이 물었다.“아침 먹을래?”“아침이나 먹으려고 찾아온 게 아니란 거 알잖아!”남하준이 여유롭게 말했다.“나도 너 주려고 만든 거 아니야. 근데 많이 준비해서 너 먹으려면 남고 먹기 싫으면 가서 일이나 해.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하준아, 결혼은 큰일인데 너무 경솔한 거 아니야?”“아니.”정안은 바로 옆에서 그들이 잡담하는 것을 보며 심장이 큰 손에 의해 심하게 쥐어짜는 것 같았고 서럽고 괴로웠다.남하준이 비밀 결혼을 지키지 못한 건 괜찮지만 그는 유미와 역사가 유구한 친구라 아무리 봐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처럼 보였다.정안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든 말든 변하지 않는 사실 같았다.어쨌든, 그녀는 질투가 타올라 괴로웠다.정안은 배를 잡고 문 쪽으로 걸어가며 두 사람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남하준이 긴장해서 얼른 뒤쫓아갔다.“완아, 어디 가?”입구에서 정안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차가운 얼굴로 남하준과 유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문 도어락을 초기화했다.그녀는 비밀번호와 지문을 다시 입력했다.그러자 유미가 언짢아하며 미간을 찌푸렸다.“비밀번호는 왜 재설정해?”정안은 비밀번호를 고치고 들어오면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유 비서님. 앞으로 우리 집에 들어올 때 노크 부탁드릴게요.”남하준이 의혹스러워 물었다.“내 지문도 입력하지 않았는데 그럼 난?”정안은 그를 힐끗 보고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빠도 마찬가지예요. 집에 돌아오면 노크부터 해요. 만약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냥 들어오지 말고.”남
유미가 아무리 분노하더라도 남하준과 백완자가 다시 결혼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방 안, 정안은 문을 잠그고 핸드폰을 꺼내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다.결혼 당일 정안은 지윤에게 자신이 남하준과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했다.그때 지윤은 잔뜩 흥분해서 진심으로 축복하며 남하준과 신혼여행을 잘 즐기라고 했다.결국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유미의 등장으로 인해 정안은 화가 나서 온몸이 아팠다.지윤이 전화를 받자 정안이 서러워하며 말했다.“지윤아. 나 비행기 티켓 예매해줘. 돌아가 출근할 거야.”“왜요? 도련님이 언니 괴롭혔어요?”“그래. 나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유 비서랑 합세해서 나 화나게 했어.”지윤이 울분에 차서 말했다.“또 유미에요? 도련님은 왜 계속 그 여자랑 얽히는 거예요?”정안이 시무룩해서 울먹였다.“몰라. 왜 늘 저러는지. 나 괜히 결혼했나 봐.”지윤이 급하게 달랬다.“언니,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 말아요. 도련님이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정안은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올라 눈물을 글썽인 채 말했다.“이젠 못 믿겠어. 유 비서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마음대로 드나들어. 내가 보는 앞에서 오빠 아이가 아니라고 의심하고 오빠보고 결혼을 경솔하게 했다고 말하는데 화나 죽을 뻔했어. 근데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더라?”지윤이 경악하더니 단번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뭐요? 도련님이 그랬다고요? 언니 가족이 곁에 없으니 내가 바로 언니 친정 식구예요. 기다려요. 내가 당장 데리러 갈게요.”그때, 문 앞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고 곧 남하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아. 문 열어.”정안은 휴대전화 마이크를 잡고 문 앞에 있는 남하준을 향해 소리쳤다.“나 아침 먹기 싫으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가서 친구랑 먹어요!”문밖이 조용해졌다.정안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지윤과 계속 전화 통화를 했다.임신한 여자는 쉽게 우울해지고 통제력을 잃기 쉽다.정안은 남하준이 어쩌면 다른 뜻은 없었다는 걸 알
정안은 어이없게 웃었다.“진짜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진짜 몰라.”정안이 설명했다.“전문지식이나 업무적인 능력으로 난 절대 누구에게 뒤지지 않아요. 하지만 계략과 수단에 관해서 난 초짜라고요.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어요.”남하준은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녀의 몸을 살며시 돌려 그녀의 얼굴을 들고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내가 있는 이상 누구도 너 이길 수 없어.”정안은 남하준의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서며 노기등등해서 말했다.“미안하지만 난 방금 오빠 때문에 유 비서한테 졌어요.”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이해가 안 되는 얼굴이었다.정안은 남자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을 보고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그녀는 남하준의 가슴을 힘껏 때리며 경고하는 투로 말했다.“만약 배 속의 아기가 오빠로 인해 다치게 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이혼 각오해요.”말을 마친 정안은 돌아서서 떠나갔다.이혼이라는 두 글자에 남하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소파 위의 외투를 빠르게 챙겨 성큼성큼 쫓아나갔다.남하준이 쫓아 나왔을 때 정안은 마침 지윤이 몰고 온 차에 올라탔다.지윤이 문을 닫고 고개를 돌려 남하준에게 인사했다.“걱정 마세요. 언니 안전하게 그룹으로 데리고 갈게요.”“같이 가죠.”남하준이 차 문을 당겨 안으로 들어갔고 지윤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차를 몰았다.정안은 뒤돌아 남하준을 등지고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량이 큰길을 달리는 내내 정안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남하준은 여자의 마음을 달랠 줄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그는 정안의 손을 살며시 잡으려다가 정안에게 무자비하게 뿌리쳐져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그는 기분이 이상하리만치 우울했다.비행기에 올라 그룹에 돌아갈 때까지 정안은 그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결국 두 사람은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밤에 정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계속 울리며 전화와 문자가 끊임없이 왔지만 그녀는 보지도 않고 전원을 꺼버렸다
“휴가 낼 겨를이 없었어요.”류강우가 코웃음을 쳤다.“휴가 낼 겨를이 없다니. 이런 핑계는 또 처음이네.”정안이 심호흡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진짜 겨를이 없었어요. 저녁에 결혼을 결정하고 이튿날 아침에 비행기 타고 안성으로 가서 혼인신고 했어요.”류강우의 얼굴색이 전혀 좋아지지 않고 차갑게 소리쳤다.“언제 혼인신고를 했든 미리 휴가 신청하지 않으면 일주일 결근이에요. 이번 달 월급 절반 차감할 거고 올해 상금과 연말 성과급은 받을 생각도 하지 말아요.”정안은 볼이 불룩해질 정도로 화가 났다.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서러워서였다.그렇게 급하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혼인신고를 한 사람은 남하준인데, 그는 그룹의 수령으로서 왜 사전에 휴가를 신청하지 않아 그녀가 무단결근하게 만들었을까?정안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그러자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들어왔다.“잠깐만요. 남편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게요.”정안이 담담하게 말하자 류강우가 의문스러워 물었다.“그걸 왜 남편한테 물어?”“제 휴가를 승인했는지 물어보려고요.”“휴가 승인을 왜 남편한테 묻냐고? 당신 남편이 인사팀 팀장이야?”정안은 화를 꾹 참고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남하준의 조금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아, 너...”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안이 벌컥 화를 냈다.“안성에 돌아가 결혼하는 요 며칠 동안 나 휴가 처리 안 했어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유미한테 시켜서 한 달 휴가 신청했는데?”다만 한 달 동안의 결혼휴가를 일주일만 쉬고 출근할 줄은 몰랐다.정안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또 유미였다.그녀는 지금 남하준의 입에서 유미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유 없이 화가 났다.그렇다. 또 유미에게 한바탕 당했다.그녀는 돈이 부족하지 않지만 기분이 불쾌했다.“완아. 왜 그래?”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바로 통화를 끊고 전원을 꺼서 휴대폰을 책상에 휙 던지고 류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씁쓸한 미
류강우는 화가 나서 얼굴이 잿빛이 되고 표정이 험상궂더니 이를 악물고 당장이라도 정안을 잡아먹을 듯 눈을 부릅떴다.그러나 임신부인 정안을 아무리 화가 나도 때리거나 욕할 수 없었다.“감히 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해?”류강우는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정안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잘 들어. 백완자. 직속 상사를 욕한 것만으로도 넌 군전 그룹에서 일할 자격이 없고 우리 2팀에 들어올 자격은 더더욱 없어.”정안은 분노를 금치 못하는 그의 검은 얼굴을 침착하게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그가 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류강우가 자료를 챙겨 다른 교수에게 건네며 말했다.“다들 보세요. 이 여자가 대체 뭘 했는지 알아볼 만한 사람 있어요? 이 엉망진창인 데이터를 보라고요.”정안은 류강우가 기밀문서를 건네려는 것을 보고 분노해서 경고했다.“보지 말아야 할 건 보지 않는 게 좋아요.”류강우가 냉소를 지었다.“이젠 부끄러워 화도 내나? 저 엉망진창인 데이터를 보고 다들 그쪽이 놀고먹기만 했다는 걸 알게 될까 봐 두려워?”정안은 두 손으로 배를 짚고 심호흡을 했다.곧 팀원들이 모두 함께 둘러싸여 서류를 확인했다.대부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서류를 본 유주헌과 하영진 두 교수는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다가 다시 정안을 쳐다보았다.즉시 서류를 류강우에 반환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류 팀장. 이 자료를 어서 완자 씨에게 돌려주게.”“두 분 이게 무슨 연구인지 아세요?”경분자를 연구해 본 두 노교수는 감히 말을 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못 알아보겠어요.”“어떤 물질을 연구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본 적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어요.”“신기하지만 접해보지 못한 물질이에요.”류강우가 조롱하며 웃더니 서류를 쥐고 손바닥을 두드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백완자. 그동안 쓸모없는 연구를 하고, 상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것도 모자라 일주일 동안 무단결근을 했어. 이것만으로 난 널 해고하기에 충분해.”“누
‘저 인간, 고자질 한 번 빠르네.’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웃음을 꾹 참고 담담한 척 목을 축이고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안을 바라보며 류강우에게 물었다.“완자가 류 팀장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했다고?”류강우가 악에 받쳐 말했다.“네. 2팀 전체가 들었어요.”“그래.”“근무 태만에 상사에게 욕설할 뿐만 아니라 일주일 동안 무단결근을 했어요. 무책임한 업무 태도를 보아 도련님께서 해고 해주시기 바랍니다.”남하준이 고개를 돌려 유미에게 물었다.“한 달 휴가 내라고 했는데 처리 안 했어?”모두가 경악하며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유미가 난처해하며 말했다.“너무 바빠서 깜빡했어요.”정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가식적인 유미의 변명을 들으며 마음이 언짢았다.‘너무 바빠서 까먹었다고? 말도 안 돼!’남하준이 류강우에게 되물었다.“들었지? 유 비서 업무 과실이야. 까먹었다잖아.”류강우는 의혹스러워 물었다.“백완자의 휴가를 왜 유 비서님이 처리하죠?”“내 일은 당연히 유 비서가 처리하는 게 맞잖아?”“도련님 비서니까 그거야 당연하죠.”“그럼 내 아내 일은 내 일이 아닐까?”류강우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대답했다.“그거야 당연히 도련님 일이라고 할 수 있죠.”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남하준의 뜻을 알아듣고 놀란 눈으로 정안을 바라보았다.정안도 깜짝 놀라 화가 나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그룹 전체에 결혼 사실을 소문내려는 거야?’류강우가 뒤늦게 반응을 보이더니 덜컥 긴장해서 급히 물었다.“도련님 결혼하셨습니까?”남하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맞아.”모두 열정적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고 정안은 어쩔 줄 몰라 했다.류강우는 활짝 웃으며 축하 인사를 한 후 더욱 긴장하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럼 댁 사모님이 바로...”남하준은 행복한 눈망울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맞아. 류 팀장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한 사람이 바로 나 남하준의 아내야.”그가 의기양양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