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낼 겨를이 없었어요.”류강우가 코웃음을 쳤다.“휴가 낼 겨를이 없다니. 이런 핑계는 또 처음이네.”정안이 심호흡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진짜 겨를이 없었어요. 저녁에 결혼을 결정하고 이튿날 아침에 비행기 타고 안성으로 가서 혼인신고 했어요.”류강우의 얼굴색이 전혀 좋아지지 않고 차갑게 소리쳤다.“언제 혼인신고를 했든 미리 휴가 신청하지 않으면 일주일 결근이에요. 이번 달 월급 절반 차감할 거고 올해 상금과 연말 성과급은 받을 생각도 하지 말아요.”정안은 볼이 불룩해질 정도로 화가 났다.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서러워서였다.그렇게 급하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혼인신고를 한 사람은 남하준인데, 그는 그룹의 수령으로서 왜 사전에 휴가를 신청하지 않아 그녀가 무단결근하게 만들었을까?정안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그러자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들어왔다.“잠깐만요. 남편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볼게요.”정안이 담담하게 말하자 류강우가 의문스러워 물었다.“그걸 왜 남편한테 물어?”“제 휴가를 승인했는지 물어보려고요.”“휴가 승인을 왜 남편한테 묻냐고? 당신 남편이 인사팀 팀장이야?”정안은 화를 꾹 참고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남하준의 조금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완아, 너...”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안이 벌컥 화를 냈다.“안성에 돌아가 결혼하는 요 며칠 동안 나 휴가 처리 안 했어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유미한테 시켜서 한 달 휴가 신청했는데?”다만 한 달 동안의 결혼휴가를 일주일만 쉬고 출근할 줄은 몰랐다.정안은 눈을 감고 심호흡했다.또 유미였다.그녀는 지금 남하준의 입에서 유미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유 없이 화가 났다.그렇다. 또 유미에게 한바탕 당했다.그녀는 돈이 부족하지 않지만 기분이 불쾌했다.“완아. 왜 그래?”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바로 통화를 끊고 전원을 꺼서 휴대폰을 책상에 휙 던지고 류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씁쓸한 미
류강우는 화가 나서 얼굴이 잿빛이 되고 표정이 험상궂더니 이를 악물고 당장이라도 정안을 잡아먹을 듯 눈을 부릅떴다.그러나 임신부인 정안을 아무리 화가 나도 때리거나 욕할 수 없었다.“감히 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해?”류강우는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정안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잘 들어. 백완자. 직속 상사를 욕한 것만으로도 넌 군전 그룹에서 일할 자격이 없고 우리 2팀에 들어올 자격은 더더욱 없어.”정안은 분노를 금치 못하는 그의 검은 얼굴을 침착하게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그가 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류강우가 자료를 챙겨 다른 교수에게 건네며 말했다.“다들 보세요. 이 여자가 대체 뭘 했는지 알아볼 만한 사람 있어요? 이 엉망진창인 데이터를 보라고요.”정안은 류강우가 기밀문서를 건네려는 것을 보고 분노해서 경고했다.“보지 말아야 할 건 보지 않는 게 좋아요.”류강우가 냉소를 지었다.“이젠 부끄러워 화도 내나? 저 엉망진창인 데이터를 보고 다들 그쪽이 놀고먹기만 했다는 걸 알게 될까 봐 두려워?”정안은 두 손으로 배를 짚고 심호흡을 했다.곧 팀원들이 모두 함께 둘러싸여 서류를 확인했다.대부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서류를 본 유주헌과 하영진 두 교수는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다가 다시 정안을 쳐다보았다.즉시 서류를 류강우에 반환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류 팀장. 이 자료를 어서 완자 씨에게 돌려주게.”“두 분 이게 무슨 연구인지 아세요?”경분자를 연구해 본 두 노교수는 감히 말을 하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못 알아보겠어요.”“어떤 물질을 연구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본 적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어요.”“신기하지만 접해보지 못한 물질이에요.”류강우가 조롱하며 웃더니 서류를 쥐고 손바닥을 두드리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백완자. 그동안 쓸모없는 연구를 하고, 상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것도 모자라 일주일 동안 무단결근을 했어. 이것만으로 난 널 해고하기에 충분해.”“누
‘저 인간, 고자질 한 번 빠르네.’정안은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웃음을 꾹 참고 담담한 척 목을 축이고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정안을 바라보며 류강우에게 물었다.“완자가 류 팀장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했다고?”류강우가 악에 받쳐 말했다.“네. 2팀 전체가 들었어요.”“그래.”“근무 태만에 상사에게 욕설할 뿐만 아니라 일주일 동안 무단결근을 했어요. 무책임한 업무 태도를 보아 도련님께서 해고 해주시기 바랍니다.”남하준이 고개를 돌려 유미에게 물었다.“한 달 휴가 내라고 했는데 처리 안 했어?”모두가 경악하며 남하준을 바라보았다.유미가 난처해하며 말했다.“너무 바빠서 깜빡했어요.”정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가식적인 유미의 변명을 들으며 마음이 언짢았다.‘너무 바빠서 까먹었다고? 말도 안 돼!’남하준이 류강우에게 되물었다.“들었지? 유 비서 업무 과실이야. 까먹었다잖아.”류강우는 의혹스러워 물었다.“백완자의 휴가를 왜 유 비서님이 처리하죠?”“내 일은 당연히 유 비서가 처리하는 게 맞잖아?”“도련님 비서니까 그거야 당연하죠.”“그럼 내 아내 일은 내 일이 아닐까?”류강우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대답했다.“그거야 당연히 도련님 일이라고 할 수 있죠.”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남하준의 뜻을 알아듣고 놀란 눈으로 정안을 바라보았다.정안도 깜짝 놀라 화가 나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그룹 전체에 결혼 사실을 소문내려는 거야?’류강우가 뒤늦게 반응을 보이더니 덜컥 긴장해서 급히 물었다.“도련님 결혼하셨습니까?”남하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맞아.”모두 열정적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고 정안은 어쩔 줄 몰라 했다.류강우는 활짝 웃으며 축하 인사를 한 후 더욱 긴장하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럼 댁 사모님이 바로...”남하준은 행복한 눈망울로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맞아. 류 팀장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한 사람이 바로 나 남하준의 아내야.”그가 의기양양
일 처리 방식이 돌변한 것이 평소의 남하준 같지 않았다.정안은 그의 손에 끌려나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류강우에게 손을 내밀었다.“내 자료...”남하준이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을 누르며 말했다.“저딴 허무맹랑한 물건 챙기지 않아도 돼.”“허무맹랑?”정안이 의아한 눈으로 남하준을 바라보고 있자니 구름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의아하고 기분이 착잡했다.그녀는 억지로 남하준에 이끌려 과학 연구동에서 나왔다.유미와 류청이 나란히 두 사람의 뒤를 따랐고 유미가 류청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이제 보니 백완자 진짜 졸업장만 있는 허수아비인가 봐요. 하준이도 그걸 잘 알면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억지로 백완자를 연구소에 출근시켜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게 하면서 듣기 그럴듯한 직장을 준 거네요.”류청은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사모님이 그동안 보여준 재능으로는 절대 연구소에 놀고먹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에요.”유미가 차갑게 웃었다.“방금 직접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류청이 의문스러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뭔가 이상해요.”“뭐가요?”“도련님의 태도만 봐도 아주 이상하잖아요.”“하준이가 왜요?”“예전 같으면 누가 감히 사모님을 괴롭히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어요. 오늘처럼 외부인을 도와 사모님이 근무시간에 놀았다는 걸 인정했을 리도 없고요.”유미가 득의양양해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류강우는 내 동창이에요. 하준이가 강우에게 예의를 차린 건 당연히 내 체면을 봐서죠.”류청은 코웃음을 치며 말문이 막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무심코 그는 지윤이 손에 긴 막대사탕 몇 개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류청!”지윤이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류청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져 뜨거운 눈빛으로 지윤을 바라보았다.유미가 손을 뻗어 류청의 어깨에 걸치더니 방금 화제를 이어갔다.“뭐죠? 하준이가 강우에게 예의를 차린 게 나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류청은 그녀와
말을 마친 지윤은 류청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류청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며 허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다시 돌아섰을 때 지윤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남하준의 사무실.정안은 사무실 휴게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아 차분하게 남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라 그녀 곁에 다가와 앉더니 물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물 마시고 화 좀 풀어.”정안은 그가 건네주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신 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설명을 기다렸다.남하준은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을 잡아 허벅지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놀았다.정안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훤칠한 얼굴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는 동작을 보며 물었다.“내 손이 그렇게 재밌어요?”남하준이 허탈한 말투로 서러운 듯 말했다.“신혼부부인데 아내는 안아주지 않고 뽀뽀도 안 해주고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데 이젠 손 만지는 것도 안 돼?”정안은 그가 서러움을 털어놓자 갑자기 자신이 매우 지나쳤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유미를 질투해 그에게 화가 났었다.정안은 좀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만지려면 만져요. 근데 방금 일에 대해 합리한 설명이 필요해요.”남하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기분이 별로야. 기분 좀 나아지면 다 설명해줄게.”정안은 한숨을 내쉬었다.기분 안 좋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남편은 도와주기는커녕 남의 비위를 맞추며 그녀가 출근 시간에 게으름을 피운다고 했다.하지만 남하준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모를 모르고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정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내밀어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기분 좀 풀렸어요?”정안이 묻자 남하준이 부드럽게 웃었다.“조금. 아직 부족해.”정안은 그의 뜻을 알아채고 그의 허벅지에 앉아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싼 후 부드럽게 키스했다.남하준은 멈칫하더니 이내
정안은 전에 남하준에게 연구팀에 스파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호기심에 불탄 정안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내 연구 자료를 미끼로 어떤 대어를 낚으려는 거예요?”“누군가 미끼를 물면 바로 낚는 거지.”남하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정안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그의 몸 위로 더 기어올랐다.“계획을 공유해 주면 안 돼요?”“안돼.”남하준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넌 태교에만 전념하면서 잘 휴식해야 해.”“계획만 알고 참여하진 않을게요. 네?”“안돼.”정안이 그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오빠. 알려줘요. 네?”남하준은 그녀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약해졌다.다만, 그녀와 아기의 안전을 위해 그는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넌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남하준은 따뜻한 눈매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올려 귀 뒤에 올린 뒤 부드럽게 말했다.“일이 잘 해결되면 네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야.”정안은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고 그리움이 밀려왔다.그녀는 남하준의 목을 껴안아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고 괴로운 마음을 달랬다.그때, 사무실 문이 예고도 없이 열렸다.“하준아 이따가 회의가 있는데...”유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사무실로 들어왔고 소파 위의 장면을 보고 소리가 딱 멈추었다.정안은 당황해서 남하준의 허벅지에서 일어났다.유미가 노크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그녀는 화가 나고 어이없기도 했다.남하준은 정안이 크게 움직이다 다칠까 봐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꼭 잡았다.“조심해.”정안은 유미에게 들켜서가 아니라 여기는 사무실이었으니 부부간에 애정 표현하는 장소가 아니었다.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남하준에게도 좋지 않았다.유미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덤덤하게 말했다.“백완자 씨, 여기는 사무실이에요.”정안이 말을 하려는데 남하준이 위엄있는 말투로 불쾌감을 드러냈다.“사무실인 거 알면 다음
정안이 그룹으로 돌아온 며칠 동안 우유, 과일, 간식, 새 옷 등등이 끊임없이 배달되었다.그녀는 진작 습관 되었는데 오늘 이상하게 류청이 다섯 번이나 찾아왔다.과일 두 번, 간식 두 번, 마지막으로 책 몇 권을 보냈다.정안은 오늘 유별난 사람이 남하준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류청이었다.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정안이 문을 열자 류청은 손에 책을 들고 눈은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지윤이 있어요?”정안이 참지 못하고 웃었다.“안에 있어요. 들어오실래요?”류청이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정안에게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아니에요. 제 연락처 차단한 거 해제하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정안은 재밌다는 듯 작은 소리로 물었다.“왜요? 언제 지윤이 화나게 했어요?”류청이 수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아마 아침인 것 같아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기껏해야 하루 화내다가 내일이면 차단 해제할 거예요.”“알겠어요. 감사합니다.”정안은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는 지윤에게 물었다.“너 류청 씨랑 연애해?”지윤은 놀라서 얼굴이 빨개지고 입에 있던 물건에 하마터면 사레들 뻔해 갑자기 입을 막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정안의 충격적이고 예기치 못한 질문에 지윤은 한참 후에야 연신 부인했다.“우리 둘이 어떻게 연애를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요.”정안은 소파에 앉아 책을 들춰보며 덤덤하게 물었다.“류청 씨 싫어?”지윤은 긴장했지만 짐짓 평온한 척 말했다.“싫어요.”“근데 류청 씨는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엄청 티나.”지윤은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워서 말했다.“류청이 누굴 좋아하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에요. 아무튼 난 그 대쪽같은 남자 싫어요.”정안이 열심히 책을 읽다가 무심코 물었다.“류청 씨가 뭐 어쨌는데?”지윤이 분노하며 말했다.“다가오는 여자 안 막더라고요. 유 비서랑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얼마나 친밀해 보였는데요
정안은 옷을 챙기면서 분노에 차서 말했다.“유 비서는 하준 오빠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있어. 집, 사무실, 기숙사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노크도 안 해.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에도 관여하고 있어. 이렇게 차근차근 오빠 생활에 침입하다 보면 언젠가 일이 터질지 몰라. 내가 잘 감시해야겠어.”지윤이 크게 동의했다....밤이 되고, 기숙사 건물은 불빛이 환했다.남하준은 걸으면서 고개 숙이고 정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보고 싶어. 오늘 밤 내 방에서 자면 안 돼?]정안이 그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자 그는 또 한 통을 보냈다.[내가 네 방으로 갈까?]여전히 답장이 없었다.남하준은 마음이 허전하여 핸드폰을 움켜쥐고 걸어갔다.그의 뒤를 따라오던 유미가 남하준이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자 물었다.“또 싸웠어?”남하준은 그녀에게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유미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일 군무기팀에 가서 진도 확인해야 하니 오늘은 일찍 자. 자꾸 사사로운 일 때문에 대업을 그르치지 말고.”남하준이 담담하게 말했다.“퇴근해.”“아직 일러. 내가 가서 네 방 청소해줄게.”유미가 느릿느릿 말했다.“너 평소에 바빠서 방 청소할 시간도 없잖아. 난 네 아내처럼 천성 공주라 집안일도 할 줄 모르고 일상생활도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야.”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심호흡을 했다.유미의 말이 사실이지만 듣기에 기분이 언짢았다.그는 꾹 참고 엄숙한 말투로 설명했다.“내 아내가 집안일에 서툰 건 맞지만 잘하는 분야가 있어. 완자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고 완자가 하지 못하는 일은 내가 해.”유미가 화가 나서 말했다.“너 눈에 콩깍지 제대로 씌웠어.”남하준은 유미를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신호가 분명 강했는데 정안은 답장이 없었다.그때 유미가 호기심에 물었다.“네 방에 왜 불이 켜져 있어?”남하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숙사에 빛이 비치고 있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
유승아가 멀리 가자 남서연은 휴대전화를 들고 커피 두 잔 값을 내고 떠났다.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날짜를 보았다.백씨 가문이 계획한 유승아와 백건의 결혼식은 아직 20여 일 남았다.보아하니 유승아가 급했던 것 같다.남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없는 이상 오빠만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난 아무 걱정 없이 사랑에 눈이 먼 여자가 될 수 있어. 그 누구의 방해도 소용없다고!’물론 유일하게 용납할 수 없는 건 남자의 배신이었다....저녁 무렵.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남서연은 남우영의 메시지를 받았다.[서연아, 삼촌 명령으로 오늘부터 내가 아니라 삼촌이 네 출퇴근을 책임질 거야.][하지만 건이 오빠는 나와 같은 방향이 아니잖아요.][길은 같은 방향이 아니지만 마음은 같은 방향이잖니?]남서연은 곧장 백건에게 전화를 걸었다.벨이 두 번 울리고 곧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연아.”“오빠, 나 출퇴근 도와줄 필요 없어요. 우영 오빠가 도와주는 게 훨씬 편하죠.”백건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우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해. 네 일도 바쁘고 나도 바쁜데...”남서연이 곧장 말을 끊었다.“오빠 시간은 소중하잖아요. 일부러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에게는 앞으로 평생의 시간이 있잖아요.”백건은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어 정이 깊지 못하여 두 사람의 혼사에 또 변고가 생길까 봐 이렇게 긴장한 것이다.“서연아.”백건이 속삭였다.“네?”“어디야?”“사무실이요.”“우영이가 계속 네 출퇴근을 도와주라고 할게. 하지만 지금은 내가 너 보고 싶어.”남서연이 긴장되어 핸드폰을 보니 오후 5시였다. 그리고 사무실 전체를 둘러보았다.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고 결혼 사탕까지 받은 상황에서 만약 백건이 이 시간에 그녀를 찾는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들통날 것이다.“내려오지 말아요.”남서연은 부랴부랴 일어나 사무실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문으로 향했다.“내가 갈게요.
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유승아는 사탕을 집어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휴, 이건 모두 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준비한 건데. 건이는 자기 편하려고 이걸 바로 네게 갖다 줬네.”남서연 얼굴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유승아는 뒤늦게 반응한 듯 미안한 척 말했다.“미안해, 서연아. 난 그냥 한 말인데. 기분 나쁜 건 아니지?”남서연은 웃음을 짜내어 고개를 가로저었다.“두 사람 백년해로하길 바랄게.”“고마워요.”유승아는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시며 테이블 위의 사탕을 흘끗 쳐다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오늘은 백건에 대해 얘기하려고 찾아 왔어.”“네. 말씀하세요.”“건이가 왜 너와 결혼하려는지 알아?”“아니요.”“건이가 말 안 해줬어?”“물어본 적 없어요.”“알고 싶지 않아?”남서연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승아 언니, 나 뭐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당연하지. 말해봐.”“절대 내게 그 이유를 알려주지 마세요.”유승아는 멍해졌다.그녀가 밤새도록 생각한 도발적인 말들이 남서연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궁금하지 않아?”“너무 궁금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빠 입에서 직접 듣고 싶어요.”“건이가 널 속일까 봐 두렵지 않아?”“오빠가 나를 왜 속여요?”남서연이 되묻자 유승아는 기회를 잡고 서둘러 말했다.“왜냐하면...”“잠시만요.”남서연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맑고 순수한 눈동자로 웃으며 말했다.“난 그래도 오빠가 알려주는 버전을 듣고 싶어요. 나를 속인다고 해도 난 오빠만 믿을래요.”유승아는 차갑게 콧방귀를 꼈다.“사랑에 제대로 눈이 멀었네.”“그게 뭐 나쁜가요? 만약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이라면 그건 사랑이 아니죠.”유승아는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정말 건이가 너를 속일까 봐 두렵지 않아?”남서연도 똑같이 몸을 기울여 목소리를 낮추었다.“설마 오빠가 제 돈을 사기 치려고 해요?”유승아는 안색이 확 굳어졌고 남
2분간의 깊은 키스에 남서연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백건은 아쉬운 듯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떠났고 이마를 맞대고 있는 두 사람의 숨결이 거칠고 어지러웠다.방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남서연은 눈을 내리뜨고 수줍어서 남자의 따스한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나 갈게.”백건이 속삭이자 남서연의 목구멍에서 겨우 단음이 새어 나왔다.“네.”“시간 나면 자주 나 찾아와.”백건이 조곤조곤 말하자 남서연은 조금 멍해졌다.왜 그녀가 찾아가야 할까?“오빠가 나 찾으러 오면 안 돼요?”남서연이 나지막이 묻자 백건이 입술을 오므리고 엷게 웃었다.“안 될 건 없지. 하지만 너희 집에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네 사무실에는 사람이 더 많고.”남서연은 그제야 남자의 뜻을 알아챘다.단둘이 만나자는 뜻이었다. 그의 사무실로 가든 아니면 그의 집으로 가든.남서연은 부드럽게 응답했다.“네.”백건은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고 문을 열고 나간 후 문을 닫아주었다.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두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린 채 기분 좋게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끌어안고 한 바퀴 돌았다.그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다. 백건은 그녀를 좋아한다는 의사를 보인 적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도 없는데, 왜 이렇게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할까?‘너와 결혼하고 싶어 미치겠어’라는 백건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튿날 아침.남서연은 사탕과 과자를 잔뜩 챙겨와서 사무실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모두 그녀가 나눠준 사탕과 과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서연아, 너희 집 재벌이야? 이렇게 비싼 사탕을 회사 사람들에게 나눠줘?”“이건 사탕 계의 에르메스잖아. 한 알에 몇만 원이야. 그리고 이 견과류 초콜릿 비스킷은 작은 박스에 몇십만 원이야.”“그러게 말이야. 오늘 나눠준 것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되겠어.”남서연은 모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든 사탕을 보며 어리둥절했다.“우리 집
남씨 가문은 늘 남서연의 요구를 들어줬다.그녀가 이렇게 얘기하니 다들 웃으며 말했다.“그래. 두 사람이 알아서 해.”“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 아주머니. 감사드려요.”백건은 미간에 웃음을 머금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남서연은 남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백건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부주의한 틈을 타서 가볍게 주물렀다.백건은 남씨 본가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너무 기뻐 집안 어른들과 술을 몇 잔 더 마시고 술자리에서 어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남서연은 방에 가서 씻고 쉬려고 했다.“술을 마셨으니 운전하지 말고 우리 집에서 묵고 가.”남창민이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말했다.백건이 승낙하려는데 허윤미가 그의 손을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당신 취한 거 아니에요? 건이는 운전기사와 함께 왔어요.”“그래. 내가 깜빡했네.”백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저도 모르게 남서연의 방을 돌아보았다.술을 몇 잔 마신 남우영이 옆에서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삼촌, 서연이가 잠시 떠난 사이에 지금 몇 번째 보고 있는 거예요? 방에 돌아갔으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예요.”백건은 그렇게 호명되니 모든 어른들 앞에서 민망하여 어색하게 웃었다.이에 어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백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의 바르게 말했다.“늦었으니 이만 가볼게요. 모두 일찍 쉬세요.”“내가 바래다주마.”남태준이 따라 일어서자 백건이 서둘러 말했다.“괜찮아요. 아저씨.”남태준이 엷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일찍 돌아가서 쉬어.”백건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설 때 참지 못하고 남서연의 방을 쳐다보았다.남태준이 그의 마음을 간파하고 물었다.“위에 올라가서 서연이랑 인사하고 갈래?”백건의 눈에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설렘이 스치더니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잘 자라고 인사만 하고 내려올게요.”남태준은 손을 내저었다.“어서 가봐.”백건은 성큼성큼 부엌을 나와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