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지윤은 류청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류청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며 허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다시 돌아섰을 때 지윤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남하준의 사무실.정안은 사무실 휴게실에 들어가 소파에 앉아 차분하게 남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라 그녀 곁에 다가와 앉더니 물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물 마시고 화 좀 풀어.”정안은 그가 건네주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신 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설명을 기다렸다.남하준은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을 잡아 허벅지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놀았다.정안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훤칠한 얼굴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는 동작을 보며 물었다.“내 손이 그렇게 재밌어요?”남하준이 허탈한 말투로 서러운 듯 말했다.“신혼부부인데 아내는 안아주지 않고 뽀뽀도 안 해주고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든데 이젠 손 만지는 것도 안 돼?”정안은 그가 서러움을 털어놓자 갑자기 자신이 매우 지나쳤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유미를 질투해 그에게 화가 났었다.정안은 좀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만지려면 만져요. 근데 방금 일에 대해 합리한 설명이 필요해요.”남하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기분이 별로야. 기분 좀 나아지면 다 설명해줄게.”정안은 한숨을 내쉬었다.기분 안 좋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남편은 도와주기는커녕 남의 비위를 맞추며 그녀가 출근 시간에 게으름을 피운다고 했다.하지만 남하준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모를 모르고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정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내밀어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기분 좀 풀렸어요?”정안이 묻자 남하준이 부드럽게 웃었다.“조금. 아직 부족해.”정안은 그의 뜻을 알아채고 그의 허벅지에 앉아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싼 후 부드럽게 키스했다.남하준은 멈칫하더니 이내
정안은 전에 남하준에게 연구팀에 스파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호기심에 불탄 정안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내 연구 자료를 미끼로 어떤 대어를 낚으려는 거예요?”“누군가 미끼를 물면 바로 낚는 거지.”남하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했다.정안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그의 몸 위로 더 기어올랐다.“계획을 공유해 주면 안 돼요?”“안돼.”남하준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넌 태교에만 전념하면서 잘 휴식해야 해.”“계획만 알고 참여하진 않을게요. 네?”“안돼.”정안이 그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렸다.“오빠. 알려줘요. 네?”남하준은 그녀의 간드러진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약해졌다.다만, 그녀와 아기의 안전을 위해 그는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넌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어.”남하준은 따뜻한 눈매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올려 귀 뒤에 올린 뒤 부드럽게 말했다.“일이 잘 해결되면 네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거야.”정안은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고 그리움이 밀려왔다.그녀는 남하준의 목을 껴안아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고 괴로운 마음을 달랬다.그때, 사무실 문이 예고도 없이 열렸다.“하준아 이따가 회의가 있는데...”유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사무실로 들어왔고 소파 위의 장면을 보고 소리가 딱 멈추었다.정안은 당황해서 남하준의 허벅지에서 일어났다.유미가 노크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그녀는 화가 나고 어이없기도 했다.남하준은 정안이 크게 움직이다 다칠까 봐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꼭 잡았다.“조심해.”정안은 유미에게 들켜서가 아니라 여기는 사무실이었으니 부부간에 애정 표현하는 장소가 아니었다.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남하준에게도 좋지 않았다.유미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덤덤하게 말했다.“백완자 씨, 여기는 사무실이에요.”정안이 말을 하려는데 남하준이 위엄있는 말투로 불쾌감을 드러냈다.“사무실인 거 알면 다음
정안이 그룹으로 돌아온 며칠 동안 우유, 과일, 간식, 새 옷 등등이 끊임없이 배달되었다.그녀는 진작 습관 되었는데 오늘 이상하게 류청이 다섯 번이나 찾아왔다.과일 두 번, 간식 두 번, 마지막으로 책 몇 권을 보냈다.정안은 오늘 유별난 사람이 남하준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류청이었다.마지막으로 찾아왔을 때, 정안이 문을 열자 류청은 손에 책을 들고 눈은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지윤이 있어요?”정안이 참지 못하고 웃었다.“안에 있어요. 들어오실래요?”류청이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정안에게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아니에요. 제 연락처 차단한 거 해제하라고 전해주세요. 제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정안은 재밌다는 듯 작은 소리로 물었다.“왜요? 언제 지윤이 화나게 했어요?”류청이 수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아마 아침인 것 같아요.”정안이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기껏해야 하루 화내다가 내일이면 차단 해제할 거예요.”“알겠어요. 감사합니다.”정안은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는 지윤에게 물었다.“너 류청 씨랑 연애해?”지윤은 놀라서 얼굴이 빨개지고 입에 있던 물건에 하마터면 사레들 뻔해 갑자기 입을 막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정안의 충격적이고 예기치 못한 질문에 지윤은 한참 후에야 연신 부인했다.“우리 둘이 어떻게 연애를 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요.”정안은 소파에 앉아 책을 들춰보며 덤덤하게 물었다.“류청 씨 싫어?”지윤은 긴장했지만 짐짓 평온한 척 말했다.“싫어요.”“근데 류청 씨는 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엄청 티나.”지윤은 얼굴이 붉어지며 부끄러워서 말했다.“류청이 누굴 좋아하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에요. 아무튼 난 그 대쪽같은 남자 싫어요.”정안이 열심히 책을 읽다가 무심코 물었다.“류청 씨가 뭐 어쨌는데?”지윤이 분노하며 말했다.“다가오는 여자 안 막더라고요. 유 비서랑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얼마나 친밀해 보였는데요
정안은 옷을 챙기면서 분노에 차서 말했다.“유 비서는 하준 오빠 집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있어. 집, 사무실, 기숙사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노크도 안 해. 공적인 일뿐만 아니라 사적인 일에도 관여하고 있어. 이렇게 차근차근 오빠 생활에 침입하다 보면 언젠가 일이 터질지 몰라. 내가 잘 감시해야겠어.”지윤이 크게 동의했다....밤이 되고, 기숙사 건물은 불빛이 환했다.남하준은 걸으면서 고개 숙이고 정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보고 싶어. 오늘 밤 내 방에서 자면 안 돼?]정안이 그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자 그는 또 한 통을 보냈다.[내가 네 방으로 갈까?]여전히 답장이 없었다.남하준은 마음이 허전하여 핸드폰을 움켜쥐고 걸어갔다.그의 뒤를 따라오던 유미가 남하준이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자 물었다.“또 싸웠어?”남하준은 그녀에게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유미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내일 군무기팀에 가서 진도 확인해야 하니 오늘은 일찍 자. 자꾸 사사로운 일 때문에 대업을 그르치지 말고.”남하준이 담담하게 말했다.“퇴근해.”“아직 일러. 내가 가서 네 방 청소해줄게.”유미가 느릿느릿 말했다.“너 평소에 바빠서 방 청소할 시간도 없잖아. 난 네 아내처럼 천성 공주라 집안일도 할 줄 모르고 일상생활도 돌봐줘야 하는 사람이 아니야.”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심호흡을 했다.유미의 말이 사실이지만 듣기에 기분이 언짢았다.그는 꾹 참고 엄숙한 말투로 설명했다.“내 아내가 집안일에 서툰 건 맞지만 잘하는 분야가 있어. 완자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없고 완자가 하지 못하는 일은 내가 해.”유미가 화가 나서 말했다.“너 눈에 콩깍지 제대로 씌웠어.”남하준은 유미를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신호가 분명 강했는데 정안은 답장이 없었다.그때 유미가 호기심에 물었다.“네 방에 왜 불이 켜져 있어?”남하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기숙사에 빛이 비치고 있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
남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가 가슴에 끓어올랐다.유미는 지금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한 걸까? 만약 방에 완자가 있다면 다 들었을 것이다.완자는 임신 중이라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한데 유미의 말을 들었다면 또 엉뚱한 생각을 하고 질투할 것이다.남하준은 어떻게 하면 유미의 집착을 끊을 수 있을지 몰랐다.그리운 여자가 방 안에 있으니 그는 유미를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그의 손가락이 도어락에 닿자마자 문이 열렸다.정안은 눈이 반달 모양이 되어 활짝 웃었고 눈동자에서는 부드러운 빛이 넘쳤다.남하준은 입꼬리를 올리고 가볍게 웃었고 눈동자가 뜨거워졌다.그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정안을 가로로 안아 방으로 걸어갔다.정안은 양손으로 그의 목을 조르며 투정 부리듯 말했다.“방금 유 비서가 고백하는 거 들었어요.”남하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거절했으니 신경 쓰지 마.”“내 남편을 눈독 들이는 여자가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어요?”남하준은 그녀를 안고 소파에 앉아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화제를 돌렸다.“언제 왔어?”정안은 그가 유미를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점심 먹고 와서 도면 좀 봤어요.”“무슨 도면?”정안은 캐비닛 위의 두꺼운 도첩을 가리켰다.“최신형 전투기 도면이요.”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뺨을 잡고 다가가 입을 맞추려고 했다.그러나 정안이 그의 가슴팍을 밀며 뒤로 움츠렸다.“나만 보면 자꾸 뽀뽀하려 하지 마요.”남하준이 쓸쓸하게 웃었다.“내가 너 한 번 만나기가 어디 쉬워? 뽀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몰래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남하준이 다시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그녀는 눈을 감고 그가 깊은 키스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밤은 길고 방안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남하준은 몸이 뜨거워질 때까지 키스하고 외투를 벗더니 더 이상 못 견디고 정
정안은 경악했다.“사직했다고?”“응. 그래서 돈...”정안이 불쾌해서 말했다.“나랑 돈 얘기 좀 그만하면 안돼? 내가 그 돈 신경 쓰지 않는 거 알잖아. 네가 안 갚아도 그만이야.”지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알아. 너 돈 부족하지 않은 거. 하지만 완자야. 친구는 친구고 빚을 졌으면 갚는 건 당연한 일이야. 빚을 갚아도 우리 사이의 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게 내 원칙이야.”정안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자신이 견지하는 원칙이 있고 그녀는 지우를 존중했다.“그래. 천천히 갚아. 안 급하니까.”“고마워.”“근데 왜 갑자기 그만뒀어? 태준 오빠 눈 좋아진 거야?”지우가 시무룩해서 말했다.“눈은 안 보이지만 정신력은 아주 좋아. 그 집에 도우미도 여러 명 있으니까 내가 있든 없든 똑같아.”“그럼 태준 오빠가 너 해고했어?”“아니. 내가 사모님께 사직하겠다고 말씀드렸어. 그 사람한테는 알리지 않았어.”“왜?”정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도 쉽고 지우에게는 월급도 높은 편인데 왜 갑자기 그만뒀을까?“나 이제 26살이야. 심지어 모태솔로. 집에서 너무 재촉해서 읍내에 작은 공장 사장이랑 맞선 보러 가.”정안이 경악했다.“맞선?”“그래 맞선. 그 남자 서른 넘었고 같은 마을 사람이야. 의류 공장 운영하고 있는데 집도 있고 차도 있고 공장도 있고 조건은 나름 괜찮은 것 같아. 가서 한 번 만나보고 괜찮으면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려고. 이제 나이도 있으니 언제까지 지금처럼 지낼 순 없어.”“너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야. 한창 나이야.”“내 동창은 스물여섯에 벌써 애가 둘이야.”정안이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물었다.“지우야. 너 태준 오빠에게 전혀 마음이 없는 거야?”“말도 안 돼!”지우가 격하게 반응하더니 목소리가 몇 데시벨 높아졌다.“지금까지 나 목 졸라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디야? 나 집 간다고 하면 아마 노래를 부를걸.”정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더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아쉽네.”“뭐가 아
정안이 전화를 끊자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그러자 남하준의 큰 손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그녀는 남자의 넓고 튼튼한 가슴 속에 안겨 따뜻함에 둘러싸여 웅크리고 있었다. 얇은 옷을 입은 남자의 옷감을 통해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듣기 좋은 남하준의 허스키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중얼거렸다.“누구랑 통화했어?”정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그의 가슴에 기대며 말했다.“지우요. 사직했대요.”남하준은 움찔 놀라더니 물었다.“형이 동의했대?”“태준 오빠에게 말하지 않았대요. 어차피 월급 주는 분은 아버님 어머님이시니.”남하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뺨에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중얼거렸다.“냄새 좋다. 샤워했어?”정안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네. 뭐 하려고요?”남하준이 엷게 웃더니 팔을 더 조였다.“아무것도 못 해. 나랑 얘기 좀 해.”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훤칠한 큰 손을 만지며 놀았다.“무슨 얘기요?”남하준이 나지막이 속삭였다.“너 Z국으로 돌아간 얘기, 임신한 얘기, 지금 네 기분,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하는 말이라면 다 듣고 싶어.”정안은 그를 올려다보며 따뜻한 눈빛으로 말했다.“한번 만져볼래요?”남하준은 순간 멍해졌다.그리고 그의 큰 손이 정안의 손에 이끌려 옷으로 들어갔다.남자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가빠지며 침을 꾹 삼키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나 방금 샤워했어. 유혹하지 마.”“어딜 만지라는 줄 알고요?”정안이 피식 웃더니 그의 손을 그녀의 불룩한 배에 올려놓았다.남하준은 자신이 오해한 걸 깨닫고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매끄러운 배를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7개월이 다 돼가는데 배가 정말 작네.”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더니 큰 성취감을 느꼈다.“우리 아가가 너무 착해서 그래요. 뒤에 위치하면 임신 기간에 거동도 편리하고 허리도 덜 아프고 편한 편이래요.”남하준은 그녀의 임신 초기 단계에 그녀를 돌
남하준은 한 손으로 그녀의 배를 쓰다듬고,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감개무량해서 속삭였다.“네가 만약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우리 평생 다시 만나지 못했을 테고 그럼 우리 결혼하지 못했을 거야.”“완아. 어릴 때부터 계산하면 내가 아마 너 20년은 사랑했지?”“완아?”남하준이 가슴에 안겨 있는 아내를 힐끗 바라보니 그녀가 이미 잠든 것을 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입가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깊은 밤, 누군가 방문을 갑자기 두드렸다.깜깜한 방에서 갑자기 희미한 불빛이 들어왔고 남하준이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를 쳐다보니 깨지 않은 걸 보고 재빨리 이불을 젖히고 문을 열러 나갔다.그는 문밖의 류청을 밖으로 밀어낸 후 방 안의 아내를 깨우지 않도록 문을 닫았다.류청이 긴장하며 말했다.“도련님, 대어가 미끼를 물었어요.”남하준의 눈빛이 번쩍이며 엄숙하게 물었다.“지금?”“네, 미끼를 물고 지금 둥지로 끌고 가는 것을 감지했어요.”남하준은 약간 설레는 기색이 역력했다.“둥지가 어딘지 알아냈어?”“네. 백씨 저택입니다.”남하준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제일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법이지. 용감하네.”류청이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저희가 이미 백씨 저택에 많은 사람을 꽂아 한이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는데 왜 지난 반년 동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한이서는 별다른 움직임 없어?”남하준이 묻자 류청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별다른 움직임은 없어요. 매일 그룹에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가끔 중요한 파티에도 참여하고. 다만...”“말해.”“한 달 전에 큰 오빠라는 사람이 백씨 저택에 들어왔어요.”남하준이 의심하며 물었다.“한이서에게 오빠가 있었어?”류청이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 없이 말했다.“조사해봤더니 확실히 어릴 때 유학 간 오빠가 있긴 한데 그 오빠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어요.”남하준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명령했다.“갑자기 나타난 오빠에 대해 계속 지켜봐.”“네. 알겠습니다.”류청이
남태준은 병실을 나와 진효연과 함께 내려가서 병원 문을 나섰다.두 사람이 나란히 차량에 도착했을 때, 진효연은 갑자기 남태준에게 다가가더니 두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남태준은 놀라서 황급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매우 긴장하고 불안했다.“뭐 하세요?”남태준이 진효연을 잡아당길수록 그녀는 더욱 발버둥 치며 무릎을 꿇었다.진효연은 목놓아 울었다.“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미안해. 흑흑... 제발 우리 지우 좀 놔줘. 내가 무릎 꿇고 부탁할게. 난 더 이상 내 딸을 잃을 수 없어. 지우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남태준은 심장이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사지가 아파 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무슨 부탁이든 제발 일어나서 말씀하세요.”진효연은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았다. “난 정말 네가 마음에 들지만 우리 지우와 만나는 건 도저히 지켜볼 수 없어. 두 사람이 사귄 후로 난 매일 지우가 네 일에 연루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어. 하지만 결국 내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 이번엔 지우가 운 좋게 살았지만 다음은? 그다음은?”남태준은 서서히 그녀의 손을 놓으며 가슴이 아파 질식할 것 같았다.진효연은 눈물을 닦고 울먹였다.“지우는 세상에 매일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했어. 사고로 죽고 병으로 죽고. 이런 재앙은 피할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지우가 네 곁에 있지 않은 이상 범죄자의 복수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는 건 피할 수 있어.”“태준아,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우리 지우와 헤어져 줘.”진효연은 말하다가 다시 소리 내어 통곡했다.“흑흑... 지우가 하도 내가 자기 행복을 짓밟았다고 해서 두 사람 만나는 거 동의했는데 난 지우를 잃을까 봐 너무 두려워. 나쁜 엄마가 되어도 좋고 딸의 행복을 앗아갔다고 해도 좋으니 제발 지우가 안전했으면 좋겠어.”남태준은 입을 약간 벌리고 호흡하며 고개를 들어 암흙같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타는 것 같고 목이 뜨겁고 팽팽해지며 눈가가 흠뻑 젖었다.그는 진효연을 이해하지만
그 남자들은 지우의 몸을 탐했지만 모두 쫓아온 준영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지우는 얼굴을 남태준의 품에 묻었다. 오늘 일어난 재앙에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지우는 남태준에게 안겨 경찰차에 올랐다.그녀는 앞의 폭발 현장이 매우 처참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많은 경찰과 법의관들이 그곳에서 현장을 처리하고 있었다.남태준은 차에 올라 직접 그녀를 병원에 데려다주었다.가는 내내 지우는 계속 오늘 일어난 일을 생각했다.“태준 씨, 그 준영이라는 사람은 날 죽이지도 않았고 당신을 상대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체 목적이 뭐죠?”“아마 육건우를 죽이려 했을 거야.”“육건우요?”지우는 경악하며 생각해 보니 아마 육건우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경찰 손에 넘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입을 막아야 했을 것이다.“그래. 만약 육건우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널 죽였을 거야. 그래서 난 육건우를 데리고 왔어. 유도탄 하나가 날아왔고 우리 동료는 다행히 빨리 피해서 목숨을 건졌지만 차에 갇혀 있던 육건우는 도망가지 못하고 폭사 당했어.”지우는 의자 등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도무지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병원에 도착하자 남태준은 지우를 안고 응급실에 들어갔다.그녀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느꼈지만 남태준은 안심이 되지 않아 그녀를 데리고 가서 전신 검사를 받았다.결국 몸에 몇 군데 외상과 머리에도 상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가장 큰 부상은 복부인데 납치범들에게 세게 차인 상처였다.밤새 어떻게 될지 몰라 의사는 지우에게 하룻밤 입원하고 관찰하도록 요청했다.지우가 병실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진효연과 지성이 도착했다.당황한 기색의 진효연은 지우를 본 순간 병실에서 지우를 끌어안고 오열했다.“엄마, 나 괜찮아요. 너무 걱정 마요.”지우는 진효연을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지성도 나서서 위로했다.“엄마, 누나 괜찮아요. 의사도 단순한 외상일 뿐이니 하루만 지켜보고 별다른 문제 없으면 퇴원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진효
지우는 필사적으로 반항하고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호되게 얻어맞았다.이 짐승들에게 먹힐 줄 알았을 때, 갑자기 총소리가 울렸다.연속 십여 발의 총성이 고막을 찢을 것 같았다.그러자 공기는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고 세상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부드러운 두 손이 그녀의 옷을 조심스럽게 입혀주고 그녀의 옷 단추를 채워줬다.지우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동작이 매우 부드럽다고만 느껴졌다.그는 따뜻한 손으로 지우의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고 음성 변조 기기를 통해 이상한 소리를 냈다.“겁내지 말아요. 이 늑대 같은 남자들은 이미 죽었어요. 조금 있다가 소리를 내면 당신 남자친구가 구하러 올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남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우는 남태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가 매복 당할까 봐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결국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가 뜯겼고 상대방이 지우의 맞아 멍든 몸을 세게 누르자 지우는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지우는 남태준이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자신이 죽는 것도 두렵지만 남태준이 죽는 게 더 두려웠다.지금 지우는 숨 막힐 듯한 두려움에 휩싸여 허우적댔다.테이프가 찢긴 후, 따뜻한 손 하나가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만지고 그녀의 입술을 이리저리 쓰다듬었는데 그 동작이 아주 애틋했다.그 손에서는 매우 독특한 향기가 전해져왔다.“예쁘게 생겼네요. 어쩐지 남태준이 당신을 그렇게 좋아하더라니.”“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방금 저 늑대 같은 인간들에게 짓밟혀 죽었으면 남태준은 아마 미치겠죠?”“겁내지 말아요. 난 당신을 죽이지 않아요.”지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그때 음성을 변조하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영이 형. 경찰 왔어요.”지우는 자신의 얼굴이 만지던 손이 떠나는 느낌이 들었고 뒤이어 발소리가 나기 시작했다.경찰의 경적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지우는 온몸이 팽팽해지고 남태준에게 제발 사고가 나지 않기를 기도했다.지
종일 걱정 안 하다가 이웃이 알려줘서야 경찰에 신고하다니.남태준은 깊은숨을 내쉬고는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오늘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역시 낯선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었다.그는 휴대전화를 동료에게 건네며 말했다.“이 번호 감청해줘.”동료가 의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납치범이 확실해요?”“몰라. 일단 시도해봐.”지우가 실종된 지 하루가 지나도록 납치범은 지성과 진효연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남태준을 노린 납치일 것이다.경찰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들고 감청실 안으로 들어갔고 남태준은 지성을 데리고 함께 갔다.경찰이 휴대폰을 장치에 연결했다. 지성은 앞에 놓인 크고 복잡한 기기들을 보며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몰라 긴장하며 기다렸다.경찰은 숨을 죽이고 남태준의 다이얼을 관찰했지만 벨이 십여 차례 울리고 자동으로 꺼질 때까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모두가 상심하고 있을 때 그 번호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남태준은 움찔 놀라더니 긴장된 눈으로 몇 명의 동료를 보았다.그들은 감청 장비의 데이터가 달리고 있으니 남태준에게 연결하라고 눈짓했다.남태준은 핸즈프리를 켜고 연결한 뒤 여유롭게 물었다.“여보세요? 누구시죠?”휴대전화를 연결한 순간부터 컴퓨터 화면에 위치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상대방 쪽에서 음성 변조한 소리가 들렸다.“남태준, 여자친구 살리고 싶으면 지금 당장 육건우 풀어줘.”지성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긴장하여 입을 틀어막았다.위치를 파악한 경찰은 곧바로 몸을 돌려 감청실을 빠져나와 분초를 다퉈 구조하러 나갔다.남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여유롭게 말했다.“지금 장난해? 내 여자친구는 지금 집에 있어.”그러자 휴대전화 너머로 침묵이 흐르더니 지우의 고통스러운 고함이 들려왔다.“악!”지우의 소리를 듣는 순간 남태준은 만 개의 화살이 가슴을 뚫은 듯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얼굴빛은 잿빛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꽉 쥔 큰 손에도 핏줄이 솟아올랐다.그는 이미 호흡이 흐트러졌지만 말투는 이상하리만큼 차
경찰이 한 달간 배치한 작전이 오늘로 끝이 났다.산에서 거대한 독극물 재배 기지와 원자재가 발견되었고 2t의 현물도 압수되었다.남태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촬영기지의 투자자 육건우는 체포되어 입건되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그의 변호사가 와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 없었다.취조실.남태준은 쇠 옥에 갇힌 육건우를 향해 말했다.“침묵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에요. 당신이 말을 하든 안 하든 증거가 확실하다면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할 수 있어요.”육건우는 피식 웃더니 조금의 당황함도 없이 여유작작한 모습이었다.경찰이 아무리 검문해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대장님, 잠깐 나와보셔야겠어요.”취조실 문이 열리면서 오신우가 그를 불렀다.남태준이 일어나서 떠나려고 할 때, 육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남태준, 난 그저 평범한 영화 투자자일 뿐이야. 마약 같은 거에 손댄 적 없으니까 나 풀어줘.”남태준은 얼굴이 어두워져서 육건우를 돌아보니 그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눈가에 냉기가 돌았다.남태준이 나가 문을 닫는 순간 오신우가 긴장해서 말했다.“대장님. 지성이가 신고하러 왔어요.”“지성이가?”남태준이 긴장하며 얼굴을 찡그리자 오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남태준은 밖으로 나가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무슨 일이야?”“누나가 실종됐대요.”오신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태준은 황급히 달려나갔다.그는 달려가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종일 꺼둔 전원을 켰다.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고 그중에 지성도 있었다.남태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찰 프런트 데스크에서 뛰쳐나왔고 표정은 엄숙하고 무거웠다.지성은 남태준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더욱 초조해서 말했다.“형...”남태준이 다급히 물었다.“지우가 왜?”지성은 눈시울이 흠뻑 젖은 채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나가 아침에 장 보러 간다고 나갔다가 계속 집에 안 돌아왔어요. 누나 스쿠터는 길바닥에 쓰러져있는데 사람은 안 보여요.”그때 옆에
남태준은 경찰서로 돌아와 밤새 배치하고 새벽 4시에 많은 경찰 병력을 이끌고 이웃 마을 산꼭대기의 영화기지를 공격했다.산꼭대기에 가까운 사람들은 늦은 밤 총소리에 잠이 깼다.날이 밝자 많은 경찰차가 정적을 울렸고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다.지우가 한창 단잠에 빠져있는데 송수빈의 전화에 잠이 깼다.지우가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송수빈의 전화를 받자 송수빈은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지우야. 지우야. 얼른 인터넷 확인해봐. 세상에. 우리 마을에서 큰 뉴스가 났어. 어젯밤 얼마나 짜릿했는 줄 알아?”“우리 마을에서?”지우는 일어나 게슴츠레한 눈을 비볐고 송수빈이 황급히 수정했다.“아니. 우리 마을 아니고 옆 마을. 산에 있는 촬영기지 있잖아. 새벽 4~5시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경찰차가 잔뜩 오가고 난리가 났대.”새벽 4~5시? 지우는 남태준 생각이 나서 군말 없이 송수빈의 전화를 끊고 남태준의 휴대전화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지우는 그가 임무를 나갈 때 전원을 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마음이 조마조마해진 그녀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인근의 기사를 검색했다.지우는 아침 내내 걱정하며 전화도 여러 번 했다.정오가 되자 지성이 밖에서 돌아와 득의만면한 얼굴로 물을 따라 마시더니 흥분해서 말했다.“누나! 육건우가 잡혔대. 하늘도 양심이 있지.”“육건우가 잡혔다고?”지우가 긴장하며 물었다.“마약 형사한테 잡혔대? 태준 씨는 괜찮아?”“누나 남자친구 괜찮던데? 내가 방금 육건우가 묵고 있는 호텔 입구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태준이 형이 경찰 몇 명과 함께 육건우를 경찰차에 태우는 걸 봤어.”아침 내내 근심하던 지우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육건우는 잡히면 사형 아니면 종신형이야. 네가 진 빚도 갚지 않아도 돼.”지성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러니까 말이야. 죽어도 싸지 뭐.”“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얻어서 다시는 도박 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아.”지성은 테이블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소
남태준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가 내게 선물한 반지 같아서 질투하고 기분 나빴던 거야?”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이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흥분하며 지우의 몸을 덥석 껴안고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너도 나 좋아하지? 그래서 신경 쓰고 있는 거지?”“맞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그 반지 돌려주면 안 돼요? 더 이상 갖고 있지 말아요. 네?”“지우야.”남태준은 흥분하는 말투로 달랬다.“다시 한번 말해주면 안 될까?”지우는 순순히 중복했다.“그 반지 돌려주라고요.”남태준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긴장해서 말했다.“그거 말고 첫 마디.”지우는 얼굴이 화끈거려 그의 가슴팍에 묻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게 말했다.“좋아해요. 태준 씨.”“나도 너 좋아해.”남태준은 크게 흥분하여 매력적인 목소리로 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사랑해. 지우야.”“그럼 그 반지는...”남태준이 바로 말을 끊었다.“그거 임다희가 준 반지 아니야.”지우가 호기심에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럼 누구 거예요?”“그때 큰 마약 조직을 잡으면서 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물건도 압수했지만 배후의 보스만 잡지 못했어. 그 신비로운 배후의 보스는 다들 준영이 형이라고 부르는데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어.”“그 반지는 그 사람이 잠자리에 들 왕비로 선택받은 중요한 증거야. 그것만 있으면 그 사람 배에 탈 수 있거든.”지우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남태준을 밀어내고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남색을 팔아 접근했던 거예요?”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난 선택받았지만 그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신분이 폭로됐어.”“만약 폭로되지 않았다면...”지우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용기가 없었고 남태준은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쯤 아마 감옥에 갇혔겠지.”지우가 호기심에 물었다.“그 사람은 잠자리에서 어떤 역할인데요?”남태준은 미간을 잔
지우는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다른 서랍을 잽싸게 뒤지고 양말과 팬티를 챙긴 다음 옷장 문을 닫고 황급히 남태준의 집을 떠났다.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그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지만 그럴수록 바늘에 가슴이 찔리는 듯 아파졌다.지우가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 남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짐가방을 가볍게 내려놓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옆을 지켰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을 보고 또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보며 마음속으로 서글퍼졌다.‘임다희는 몇 번이나 당신을 해쳤는데 왜 그 여자가 준 반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전에는 당신을 죽일 뻔했고 지금은 당신을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데 왜 계속 마음속에 그 여자 자리가 있냐고요.’지우는 생각할수록 슬퍼져서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그의 큰 손 옆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손은 저도 모르게 천천히 남태준의 따뜻한 큰 손을 만졌고 천천히 그와 손깍지를 꼈다.지금의 지우는 너무 불안하고 조금의 안정감도 느끼지 못했다.남태준이 아직도 임다희를 사랑할까 봐 두려웠다.남태준은 은은히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천천히 눈을 떴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하자 지우의 거뭇거뭇한 머리가 그의 곁에 엎드려 자는 것이 보였다.여자의 손이 그와 맞닿았다.남태준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가 금방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다.남태준은 달콤한 행복에 마음이 꽉 채워진 것 같았고 손바닥을 천천히 조여 여자의 부드럽고 작은 손과 더 단단하게 밀착시킨 후 다시 눈을 감았다.조용한 병실에서 지우의 존재가 가져다준 따뜻한 행복에 남태준은 그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그날 밤, 남태준은 몸 안의 약효가 빠지자 서둘러 퇴원절차를 마쳤다.지우는 그에게 하루 더 병원에 머물며 지켜보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새벽 네 시에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 지금 서둘러 경찰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남태준은 지우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그녀의
지우는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병원에 병 보러 오지 왜 왔겠어? 갑자기 왜 태준 씨를 물어?”임다희는 지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재차 확인했다.“태준이가 당신 안 찾았어?”“아니.”지우가 고개를 젓자 임다희는 가볍게 웃었다.“그쪽이 아니라면 대체 누굴 찾아갔을까?”“그게 무슨 말이야?”지우가 일부러 이해가 안 가는 척 묻자 임다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두 사람 재결합한 거 맞지?”지우는 침묵했다.임다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조롱했다.“거짓말할 필요 없어. 두 사람 다시 만나는 거 아니까. 태준이가 당신을 찾지 않은 건 아마 약효가 너무 강해 당신 같은 여린 몸을 망쳐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여자를 찾아 해결했나 보네.”“약효가 너무 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지우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며 그녀를 만족시켜줬다.임다희는 속이 편안해지며 여유롭게 말했다.“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고. 이 시간에 당신 남자친구는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지우의 안색이 확 가라앉았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앞의 이 악랄한 여자를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남태준을 그렇게 괴롭게 만들고 무슨 염치로 지금 까불고 있을까?만약 남태준이 그녀가 임다희와 정면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지우는 절대 임다희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남태준의 뜻에 따라 얌전하고 철든 여자친구가 되어야 했다.지우는 괴로운 척 연기하며 겨우 눈물 한 방울을 짜냈다.임다희는 그녀의 괴로운 모습을 보고 마음속의 분한 감정을 잠재우고는 실소를 터뜨렸다.“이게 당신들 사랑이야? 하하. 우습네!”그녀의 비아냥거림과 함께 차 문이 닫히고 차량이 서서히 빠져나갔다.지우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택시를 잡아타고 난 뒤에도 여전히 남태준을 걱정했다. 그의 옷이 흠뻑 젖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지우는 기사에게 주소를 말하고는 남태준의 집에 가서 깨끗한 옷 몇 벌을 챙기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