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은 이해가 가지 않아 오래 참았지만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언니 지금 도련님 아이도 임신했고 도련님도 아직 언니에게 미련이 남았는데 왜 쟁취하지 않는 거예요?”“언니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도련님은 바로 넘어올 거예요.”정안은 진지한 얼굴로 지윤을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하준 오빠는 유미가 자기 좋아하는 거 알아.”“그게 왜요?”정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지윤의 둔한 머리를 두드렸다.“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일한다는 건, 그 사람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예비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지윤은 어느 정도 알아들은 셈이었다.유미가 남하준의 곁에 있는 한 정안은 그 혼잡한 물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언니 앞으로 그룹에서 일하게 되면 도련님과 자주 마주칠 거고 계속 피할 수만은 없어요. 그리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숨길래요?”정안은 불룩한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며 긴 한숨을 내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비행기가 착륙한 후 정안은 지윤과 함께 택시를 타고 군전 그룹으로 갔다.두 사람은 아무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행동했고, 출입문 경비원에게 증명서를 제출하고, 신원 정보를 입력하고, 지문 등을 확인했다.마지막으로 보안 검사를 통과하고 군전 그룹에 들어갔다.정안은 많이 와봐서 이곳에 익숙했다.그녀는 일부러 남하준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기숙사 아파트를 골라 입주했다.지윤이 짐을 챙겨주고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자 정안이 책을 내려놓고 문을 열러 갔다.“지윤아 나 신경 쓰지 마. 남은 건 내가 정리...”문이 반쯤 열리고 말도 다 하지 못했는데 정안은 문 앞에 있는 남자를 보자마자 굳어버렸다.남하준이 벌써 그녀가 온 걸 알았을까?정안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만 짐짓 덤덤하게 물었다.“도련님, 무슨 일이시죠?”남하준은 그
남하준이 소파에 앉았고 정안이 옆 의자를 그의 맞은편으로 끌어당겨 앉았다.두 사람은 유리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지만 정안의 잔잔한 물결 같은 태도로 인해 간극이 벌어졌다.남하준이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언제 돌아왔어?”정안은 움찔하더니 말했다.“우리 집안일에 대해 얘기한다면서요?”남하준이 불쾌해하며 물었다.“그러니까 지금 우리 관계는 이렇게 간단한 안부 인사조차 할 수 없다는 거야?”정안은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으로 외투의 단추를 만지며 침묵을 지켰다.남하준은 그녀의 눈매가 처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히 마음이 아팠지만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바꾸었다.“한이서가 네 할아버지의 모든 사업을 인수한 후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가총액이 10조 원 이상 증가했어. 지난 반년 동안 한이서는 기업과 자산을 차근차근 해외로 이전했어.”“대부분 산업을 해외로 이전했지만, 그 자산들은 아직 한이서 명의로 되어 있지 않아 네 할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면 전부 네 할아버지 소유로 돌아갈 거야.”“자산은 일단 통제 가능한 범위에 있어.”“그동안 백인호는 인간 세상에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어. 그래서 네 가족 소식도 전혀 없고.”말을 마친 남하준은 조용히 정안을 지켜보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정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얼굴색은 어두웠고 외투의 단추는 거의 헐렁해졌다.남하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마음이 초조했다.“내가 계속 추적하고...”남하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안이 끼어들어 그의 이전 질문에 답했다.“나 돌아온 지 일주일 됐어요.”남하준은 움찔하더니 그대로 굳어졌다.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그녀가 마침내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 기뻤지만 또 그녀가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 슬펐다.정안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애써 평온한 척 고개를 들어 남하준을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웃음을 지
“그 여자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 여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난 몰라.”“하지만 분명 내 마음을 알면서도 자꾸 들리는 헛소문만 믿고 내가 다른 여자와 잘 어울린다며 내 상처를 짓밟고 있어.”남하준은 불쾌한 감정을 단숨에 쏟아낸 뒤 한마디 더 보탰다.“내가 본 최악의 여자야.”말을 마친 그는 일어나서 굳은 얼굴로 문 쪽으로 걸어갔다.정안은 그의 꾸지람을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서러운 마음이 풀렸다.적어도, 그는 유미와 사귀고 있지 않았다.그런데 그녀가 정말 나쁜 것일까?아니면 남하준이 선을 지키지 못하는 걸까?정안이 몸을 돌려 급히 물었다.“어디 가요?”남하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문고리를 잡은 손도 멈춰 2초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군무기 팀 회의가 있어.”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정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남하준이 떠나는 뒷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배를 만졌고 마음이 쓰라렸다.‘아가야, 네 아빠는 여전히 우리 거인가 봐. 아빠에게 네 존재를 알려야 할까? 만약 알려주면 유미 이모도 알게 될 텐데... 애초에 백하린처럼 독하게 나와 우리를 괴롭힐까 봐 걱정이야.’정안은 아기가 뱃속에서 두 번 걷어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온화하고 자상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배를 문지르며 속삭였다.“착하지. 널 위해서라도 엄마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거야. 일단 조용히 지켜보자. 응?”아기가 또 두 번 움직였고 정안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튿날 아침.정안은 서류를 챙겨 입사하러 그룹 본사에 왔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건물 1층 로비에 막 발을 들여놓았는데 공교롭게도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유미를 만났다.정안을 보는 순간 유미는 마치 혈 자리가 눌린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얼굴빛이 흐려지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안이 대범하게 걸어 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유 비서님.”유미는 화를 억누르고 입을
지윤이 곧바로 반응하고 사과했다.“미안해요, 언니. 다음부터 주의할게요.”정안의 배가 크지 않은 데다 두꺼운 코트 안에 숨겨져 있어 지윤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잊기 쉽상이었다.정안이 나지막이 말했다.“반드시 화목하게 지내야 해.”“알겠어요.”입사 절차는 순조롭게 끝났다.지윤은 군전 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정안의 개인 비서로 전향해 급여도 정안 개인이 지급했다.과학 연구부서에서 정안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교수들을 만났다.유주헌, 하영진과 같은 나이든 과학자들은 일찍이 정안의 실력을 직접 본 적이 있어 정안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마치 최고의 보물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그러나 해외파 연구원들은 젊고 예쁜 외모와 연약한 모습을 가진 젊은 여성을 보고 또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무시했다.모두가 정안을 둘러싸고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새로운 2팀의 팀장 류강우가 보다 못해 정안을 사무실로 불러 그녀에게 자료 뭉치를 던져주었다.“백완자 씨라고 했죠?”류강우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016 프로젝트 맡아서 진행하세요. 거기 있는 핵연료를 분석하면 돼요.”정안이 자료를 집어 들고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라듐 원료에는 방사선이 있었다.비록 연구 수치가 작고 방사선 방호복을 입어 안전성이 높았지만 임산부에게는 너무 위험했다.그녀는 견딜 수 있지만 아기는 견딜 수 없었다.정안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죄송하지만 팀장님. 이 프로젝트는 제가 맡을 수 없으니 바꿔주세요.”류강우는 신입사원이 출근 첫날부터 상사에게 기세등등하게 위세를 부릴 줄은 정말 몰랐다.그는 노기를 띠며 물었다.“프로젝트는 못 바꿔요. 그럼 팀을 바꾸든지. 가서 1팀에 불어봐요. 그쪽 같은 신입사원 받는지.”“전 어딜 가든 다 괜찮아요.”정안이 덤덤하게 말하자 류강우가 코웃음을 쳤다.“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1팀이 그쪽이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줄 알아요?”정안이 심호흡을 하고 화를 참으며
남하준의 시선이 천천히 감으로 향했다.밝은 주황색의 감은 크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하나 같이 아주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었다.남하준이 그녀를 수상쩍게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땄어?”“네. 가지 하나가 아래로 늘어 뜰어져서 땄어요.”남하준은 가슴이 뭉클했지만 정안의 상투적인 수법을 생각하니 순식간에 감동이 사라졌다.“말해봐. 내가 뭘 도와줄까?”남하준은 그녀가 이유 없이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언제나 그녀에게 백기를 들고 도와줄 수밖에 없는 그였다.정안은 생글생글 웃으며 남하준에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 1팀에 가고 싶어요.”남하준의 눈빛이 흐려지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안 돼. 1팀은 전부 최전선에 있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 프로젝트가 어렵고 주기도 길고 스트레스도 많고 위험해. 넌 2팀에서 네가 잘하는 분야를 열심히 하면 돼. 게다가 2팀에 있는 몇몇 교수들과 전에 몇 번 일했으니 그분들도 너 좋아하실 거야.”정안은 순간 막막해졌다.1팀은 최전선 업무를 책임지고 있었다니.만약 2팀이 곡식을 쫓는 맷돌이라면 1팀은 그 맷돌을 끄는 당나귀였다.그에 비하면 2팀 팀장이 그리 무서운 것도 아니었다.남하준은 그녀가 오랫동안 사색에 잠겨 깨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왜? 2팀이 싫어?”정안은 곧 정신을 차리고 급히 웃어 보였다.“아니요. 2팀 좋죠. 괜찮아요. 그럼 일 보세요.”말을 마친 그녀는 두 손으로 바구니를 들고 떠나려 했다.눈치 빠른 남하준이 바구니의 한쪽을 잡더니 다급하게 물었다.“왜 이래?”정안이 진지하게 답했다.“돌아가야죠!”남하준은 피식 웃더니 따뜻한 눈동자에 어이 없는 기색이 스치며 물었다.“이런 경우가 어딨어? 방금 준 선물을 도로 가져가?”정안이 기억하는 남하준은 감을 좋아하지 않았다.다만 그녀는 방금 그를 만날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했고, 추운 날 위험을 무릅쓰고 과일을 사러 나가고 싶지 않아 직접 감을 몇 개 따왔다.이 감은 원래
남하준은 정안에게 외투를 잘 여며주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그의 싸늘한 눈빛은 노기를 띠고 약간의 의혹이 섞여 있었다.마치 유미에게 이게 지금 무슨 태도냐고 묻는 것 같았다.유미는 자신의 당돌함과 추태를 의식한 듯 방금의 기세를 꺾고 남하준 앞으로 다가갔다.“하준아, 너 야근한다며? 내가 너 저녁밥 챙겨왔어.”유미의 시선이 천천히 정안에게로 옮겨졌고 가식적인 미소는 매우 온화했다.“완자 씨도 계신 줄 모르고 따로 준비하지 못했네요. 미안해요.”정안에게 지금은 특수 상황이었다.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상냥하게 대하고 그저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했다.“괜찮아요. 저 돌아가 먹으면 돼요.”정안은 웃으며 말하더니 외투 단추를 풀고 남하준이 말리기도 전에 옷을 벗어 남하준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번거롭게 바래다주지 않으셔도 돼요.”남하준의 안색이 가라앉고 침울해졌다.“두 분 식사하세요. 전 이만 가볼게요.”정안은 경직된 미소를 지으며 가슴이 아릿아릿하면서도 애써 괜찮은 척 말했다.그녀는 유미에게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남하준이 따라가고 싶어 하자 유미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어디 가려고?”남하준이 차가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홱 뿌리치고 성큼성큼 뒤쫓아갔지만 한 발짝 느려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그가 힘껏 문 열기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조금의 기척도 없었다.초조해 난 그는 몇 번이나 화를 내며 버튼을 누르다가 재빨리 비상계단으로 성큼성큼 뛰어 내려갔다.정안은 1층 로비 유리문 앞에 서서 지윤을 기다리며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목을 움츠린 채 어두컴컴한 바깥 하늘을 바라보았다.길가의 따스한 노란색 불빛에 흩날리는 눈송이가 천천히 떨어져 쓸쓸하고 처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녀는 몸도 춥고 마음도 추웠다.임신 중에 울지 말고 최대한 유쾌한 기분을 유지해 아기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웠다
그녀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너무 서러워 눈물이 핑 돌았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아내고는 촉촉한 눈빛에 약간의 분노를 머금고 남하준을 마주 보았다.정안은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살짝 울먹이며 말했다.“내가 뭐 어쨌다고요?”남하준은 핏발 선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나 좋아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다른 여자에게 갖다 붙이지 마.”정안은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잡은 위치가 조금 아픈 것을 느꼈다. 그녀의 손은 천천히 그의 가슴에서 떠나갔고 힘없이 비꼬았다.“두 사람 매일 붙어 있으니 내가 억지로 붙일 필요도 없잖아요?”남하준의 숨결이 점점 무거워지고 눈 밑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는 피를 머금은 듯한 통증을 참아내며 또박또박 말했다.“왜 돌아왔어? 왜 내 눈앞에 나타나서 나 괴롭혀? 왜?”남자의 힘이 점점 더 세져 그녀의 두 팔을 매우 아프게 잡았다.정안은 무서워 몰래 배를 움켜쥐고 그를 올려다보고 눈물을 반짝이며 차가운 말투로 속삭였다.“왜 그런지 알고 싶어요? 그럼 유미 씨 다른 곳으로 발령 내요. 멀면 멀수록 좋아요. 평생 못 만나면 더 좋고.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전부 말해줄게요.”“유미는 상부에서 파견된 직원이라 난 간섭할 권리 없어.”남하준의 상부라면 바로 정통 어르신이었다.정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매우 허탈했다.“이거 놓으시죠. 손이 너무 아파요.”남하준은 그제야 자신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손을 놓았다.정안은 오른손을 들어 왼팔을 만져보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몰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괴로운 감정을 추슬렀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정안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무리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도 애써 침착한 척했다.“서로 사랑하는 것만 사랑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짝사랑도 일종 사랑이에요. 유미 씨가 당신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그 여자의 보살핌을 받고 늘 함께 있는 건 무한한 희망을 주는 거예요. 그 여자의 동등한 사랑에 응답하지 않았지만 예비 여
남하준은 여전히 꿋꿋하게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서서히 주먹을 움켜쥐며 마음속 깊은 곳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정안은 지윤이 아직 안 온 걸 보고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저 먼저 가볼게요.”그녀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유리문을 열고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 나갔다.추위가 순식간에 몰려와 정안은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그녀는 작은 걸음으로 땅 위의 얇은 눈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침착하게 앞으로 걸어갔다.남하준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쫓아갔다.가로등 아래 자욱한 따뜻한 불빛 속에서 남하준이 정안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정안은 심장이 다시 조여왔고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정말 이 남자에게 소리치고 싶었다.‘자꾸 뒤에서 갑자기 끌어당기지 말아줄래요? 이렇게 거친 행동은 나와 아이에게 모두 안 좋아요.”남하준의 눈 밑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원망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왜 나 속였어?”정안은 순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내가 뭘 속여요?”남하준은 쓴웃음을 짓더니 얼굴이 잿빛이 되었고 슬픔이 가슴에 가득 차서 말소리조차 가늘게 떨렸다.“다시 M국으로 돌아온다면 나랑 계속 부부로 살기로 했잖아.”정안은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남하준은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입으로 숨을 가볍게 내쉬며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내 유전자가 맘에 든다며 내 아이도 낳고 싶어 했잖아.”“근데 나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지금 내 부하로 들어와 계속 눈앞에 어슬렁거리면서 나에게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는 거야?”“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왜 날 속였어?”남하준은 거의 울분을 토했고 주먹 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눈시울이 젖었다.정안은 그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약해졌다.20년 동안 알고 지내고, 10년 넘게 짝사랑한 그 마음이 너무 깊어 그는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정안은 그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