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넌?”“너에 대한 나의 호의를 십 년의 그리움으로 갚았어. 이젠 내가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더 재미를 주고 내 남은 생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려는 거야?”정안은 고개를 천천히 숙이고 아랫입술을 깨물어 몰래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무너질 듯 아팠다.그녀는 기억을 되찾지 못한 서다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눈과 마음속에 오직 남하준으로 가득 찬 그저 그의 평범한 아내로 살고 싶었다.그렇게 많은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그저 머리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남하준과 평범하게 이번 생을 마치고 싶었다.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그녀에게는 사명이 있고 책임이 있었다.그녀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남하준의 곁을 스쳐 지나가 금원을 나왔다.그녀가 간 지 30분도 되지 않아, 남하준이 다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멀리서 정안이 이미 앞뜰의 큰길까지 간 것을 보았다.그는 쏜살같이 쫓아가 그녀의 손을 홱 잡아당겼다.밤의 장막이 드리우고 따사로운 불빛 아래서 정안은 눈물을 닦고 그를 올려다보았다.남하준은 숨을 가쁘게 쉬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말투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시간이 늦었어. 위험해. 데려다줄게.”정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기서 기다려.”남하준은 말을 마치고 차고를 향해 돌았고 곧 그는 차를 몰고 나왔다.정안은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전벨트를 맸고 차량은 천천히 금원을 벗어나 번화한 대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번화한 대로는 불빛이 눈부시고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차량으로 가득했다.차 안 불이 꺼지고 가로등이 한 프레임씩 차 안으로 비쳐들며 그들의 몸에 한 줄의 빛 그림자를 그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저기압에 휩싸여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정안은 고개를 돌려 창밖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멍하니 있었다.남하준의 운전 속도가 좀 느려서 곁에 있던 차들이 한 대 한 대 추월했다.곧 백씨 가문에 도착했고 정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침묵을 깼다
지금의 정안은 의기소침한 모습이 폐인 같았다.모든 가족이 납치되었지만 그녀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랐고,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과학 연구소로부터 국제 전화가 하나둘씩 걸려와 그녀에게 빨리 복귀하라고 권했다.지금의 그녀는 전처럼 일에만 몰두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걱정도 많고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정안은 나른하게 책을 내려놓고 손을 뻗어 침대의 휴대전화를 만져보니 지우의 전화였다.그녀는 급히 연결하고 귓가에 댔다.“지우야, 무슨 일이야?”“완자야. 네 친구 이미 몸이 회복해서 퇴원했다고 들었는데 우리 언제 출국해?”정안은 미안해하며 말했다.“그게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남았어.”“네 할아버지라, 할머니? 아직도 못 찾았어?”정안은 시무룩해서 말했다.“백인호가 숨겼으니 찾기 쉽지 않을 거야.”“소고집을 부리던 태준 도련님께서 이제 치료에 협조할 의향이 있으니 빨리 출국해서 최고의 의사를 찾아줬으면 좋겠어. 빨리 이 사람 눈과 다리를 치료해야겠어. 안 그럼 매일 저 더러운 인상과 마주해야 하잖아. 800만 원 벌기 정말 쉽지 않다니까.”정안은 피식 웃었다.“옆에 태준 오빠 있지? 들으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지우도 따라 웃었다.“역시 넌 똑똑해.”“너랑 태준 오빠 먼저 출국해도 돼. 나 기다릴 필요 없어.”“우린 말도 안 통하고 거기 아는 사람도 없잖아. 나 혼자 장애인을 데리고 타국으로 달려가 치료받으라고? 너무 어려워.”“그렇긴 하지.”그때 남태준의 말소리가 들렸다.“누가 그래? 내가 Z국 언어를 모른다고?”지우가 경악했다.“설마 알아요?”남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알아.”지우가 웃으며 말했다.“매일 인상 쓰면서 걸핏하면 물건이나 집어 던지고 나한테 화만 낼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Z국 언어를 안다고 하니 정말 놀랍네요!”“좀 닥쳐줄래?”“싫은데요? 못하겠는데요?”“막돼먹은
유미의 비슷한 수단을 이미 겪어본 정안이었다.“우리 정식으로 만난 적도 없는데 헤어졌다는 표현은 올바르지 않죠.”“그런데 왜 여긴 찾아왔어요?”정안이 승기를 잡고 말을 이었다.“저번에는 나한테 두 사람 사귄 지 한 달 됐다며 찾아오지 말라고 허풍을 떨더니 오늘은 또 무슨 말로 나 쫓아낼 생각이죠?”유미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문이 막혔다.“어젯밤 두 사람 만난 적도 없죠?”정안이 여유롭게 말했다.“오늘도 일 때문에 찾아온 거죠?”유미는 이를 악물고 여전히 침묵했고 정안은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 동작을 하며 말했다.“햇살이 너무 강하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미 곁을 스쳐 지나가려는데 유미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백완자. 거기 서.”이건 유미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대놓고 반말을 한 것이다. 이젠 연기하기도 싫은 걸까?정안은 그늘진 곳에 가서 뒤돌아서서 물었다.“아직 할 말이 남았나요?”유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정안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또박또박 말했다.“하준이가 너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우쭐대지 마. 넌 Z국 사람이니 Z국으로 돌아가 살아야 해.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고. 하지만 난 하준이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고 평생 동료가 될 수 있어. 우리에게는 평생이 존재하지만 너랑 하준이는 없다고.”현실은 언제나 잔인한 법. 그녀의 말은 마치 부드러운 칼처럼 천천히 정안의 가슴에 꽂혔다.정안은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고 은근히 찢어지는 것 같아 아프고 괴로웠다.이건 엄연한 사실이라 반박할 힘이 없었다.유미는 마치 승자가 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어. 하지만 난 믿어. 오래 옆에 있다 보면 언젠가 사랑이 싹트겠지. 난 하준이 옆에서 그 순간을 기다릴 거야.”말을 마친 유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돌아섰다.유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정안은 그녀가 정말 남하준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런 여자가 남하준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정안은 불안하고 무섭고
정안은 반달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짜 별일 없어요. 나 아직 Z국에 가지 않았고 오빠도 마침 안성에 있으니 더 오래 같이 있으려고 온 거지.”남하준이 진지하게 물었다.“나랑 정이라도 붙일 생각이야?”정안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정들면 그래도 갈 거야?”“가야죠.”남하준은 눈빛이 흐려지더니 정안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애가 배불러 할 짓이 없네.”정안은 그의 뒤를 따라갔고 두 사람은 거실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배불러 할 짓이 없다니요?”남하준은 앉은 뒤 티테이블의 귤을 들어 껍질을 벗기며 말했다.“꼭 가야 한다면서 왜 굳이 고통을 자초하는 건데?”정안은 더 이상 그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싶지 않아 옆으로 앉아 그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방금 유미 씨 왜 왔어요?”남하준은 까놓은 귤을 정안의 손에 놓았다.정안은 살짝 넋을 잃고 손에 든 귤을 보고 있자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남하준이 느릿느릿 설명했다.“서류도 가져오고 업무도 얘기할 겸.”“무슨 업무요?”정안이 궁금해서 묻고는 귤을 쪼개 한 조각 입에 넣으니 달콤한 식감과 특별한 과일 향이 섞여 아주 맛있었다.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그녀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그러자 정안이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비밀이에요?”남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하는 일은 너한테 전부 비밀 사안이야.”정안은 흠칫 놀라더니 얼굴빛이 가라앉았다.한바탕 얻어맞은 것 같아 좀 허탈했다.그녀는 느릿느릿 귤을 씹었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다.문득 유미가 방금 한 말이 떠올랐다. 유미와 남하준은 평생의 친구, 평생의 동료, 업무 파트너 또는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난처한 신분은 남하준의 일을 묻는 것조차 군정을 염탐하는 것이 된다.남하준은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가라앉고 천천히 씹는 것을 바라보며 눈빛이 뜨거워지고 덩달아 마음이 가라앉았다.그녀가 곁에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세월이 고요해
정안은 기회를 틈타 그에게 기대어 한쪽 발을 그의 허벅지 위로 건너뛰어 그의 허벅지 안에 앉았다.남하준의 몸이 뻣뻣해지고 그녀에게 키스하는 동작을 멈추었다.정안은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고 그의 민감한 위치에 닿을 때까지 엉덩이를 천천히 그의 허리와 복부로 이동했다.순간 벼락이 치듯, 한 기류의 전류가 남하준의 사지를 관통했고 그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굳어지며 어딘가에서 순간적인 반응이 일어났다.남하준은 속으로 질주하는 욕망을 억누르며 그녀의 얼굴을 밀어내고 고통스럽게 인상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유혹 안 한다며?”정안은 얼굴이 새빨개지고 부끄러워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 그런 적 없는데요?”남하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힘껏 내리누르자 두 사람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다.“그럼 이건 뭔데?”눌려 약간의 통증을 느낀 정안은 수줍고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조심하지 않아 부딪힌 거예요.”남하준은 심호흡을 했다. 이대로 참다가는 그녀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미치겠네.”남하준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는데 지키고 있던 선은 이미 끓어오르는 욕망에 무너져 꿈틀거린 지 오래였다.정안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고 입술을 오므렸다.남하준은 그녀의 분홍색 입술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느꼈다. 그녀의 거친 호흡과 심장 기복 그리고 뜨거운 욕망이 불처럼 남하준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그녀가 너무 주동적이어서 남하준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아무리 강한 신념이라도 지금 이 순간 모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정안은 부끄러운 눈을 들어 남자의 뜨거운 시선을 마주 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오빠. 정말 원하지 않아요?”남하준의 목구멍으로 두 글자가 흘러넘쳤다. “원해.”그는 미친 듯이 원하고 있었다. 모든 정력과 욕망을 모두 그녀의 몸에 쏟아내고 싶은심정이었다.얼마나 많은 외로운 밤을 그녀의 생각으로 잠 못 이뤘을까.정안은 거의 다 된 것 같아 두 손으로 천천히 그의 목을 졸랐다. 경험
“근데 콘돔은 왜 안 사용해?”“안전기에요.”“한층 더 보호하면 좋은 거 아니야?”정안은 어쩔 수 없이 창피하지만 계속 핑계를 댔다.“그게... 막이 있어서 불편해요.”남하준은 어리둥절했고 온몸이 경직되어 눈빛 속에 충격을 숨길 수 없었다.정안은 지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궁색하고 난처해 죽을 지경이었다.“이건 네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야.”남하준은 놀라서 손을 떼고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단발머리를 늘어뜨리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숙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말투가 약간 굳어졌다.“설마 내 아이를 임신하고 싶은 건 아니지?”마음을 들킨 정안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눈빛이 반짝이고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감추어야 할지 몰랐다.그녀의 반응은 남하준의 추측을 완전히 확인시켜 주었다.남하준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여 꾹 참고 뒤로 물러난 뒤 고개를 들고 심호흡을 하며 착잡한 심정이었다.정안이 나지막이 설명했다.“사실 나...”남하준은 화가 나서 온몸이 괴로워 그녀의 말을 바로 끊었다.“요즘 이상하게 자꾸 나 유혹하는 이유가 그거였어? 백완자, 너 참 독하다.”당황한 정안은 긴장하며 연신 사과했다.“미안해요, 오빠.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요. 오빠가 동의하지 않을 걸 아니까 내가 다른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남하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분노에 눈시울을 붉히고 목소리를 낮추어 화를 냈다.“내가 동의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랬다고?”정안은 주먹을 천천히 쥐며 사실대로 말했다.남하준은 이 아이러니한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그녀를 보는 눈빛에 증오가 깃들었다.“백완자. 난 이미 충분히 비참하다는 생각 안 해? 근데 내 아이를 임신하고 Z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혈육의 이별까지 겪게 해? 내가 더 많은 그리움과 더 많은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어?”정안은 남하준이 그렇게 큰 고통을 느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 눈물
남하준은 마음을 추스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기대하는 말투로 물었다.“완아. 너 나 사랑해서 내 아이를 임신하고 싶고 M국에 머물고 싶은 거야?”정안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 끝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남하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너만 남고 싶다면 난 목숨을 걸고 너 보호할 거야. Z국이 아무리 강해도, 내가 있는 한 넌 무조건 안전해. 모든 일은 내가 책임질게.”정안은 눈물을 참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난 오빠가 목숨 거는 것도, Z국과 적이 되는 것도, 오빠 몸이 부서지는 것도 전부 원하지 않아요.’남하준은 점점 뒷걸음질 치는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정안의 어깨를 잡고 허리를 굽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완아, 너도 나 사랑하지?”정안은 눈물을 참고 코를 훌쩍이며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요. 나 Z국으로 돌아가면 일하느라 결혼할 생각 없어요. 그냥 오빠 유전자가 탐나서 아이를 낳고 싶었을 뿐이에요.”남하준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려갔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는데 눈가에 눈물이 가득했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정안의 그 말은 수백 개의 화살처럼 그의 심장을 찌르고, 피와 살을 헤집어 피가 뚝뚝 떨어져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그는 웃었다. 우는 것보다 더 못생기게 웃는 그의 눈 밑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분노에 차서 나지막이 화를 냈다.“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근데 왜 그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나 괴롭히려는 거야?”정안은 눈물범벅이 되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남하준이 소파 가장자리에 가서 방금 떨어뜨린 핸드폰을 주워 정안을 등지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그는 얼음처럼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난 널 만난 적도, 사랑한 적도 없는 거야. 앞으로 남은 인생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익숙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정안은 마음을 가다듬고 무릎에서 고개를 들어 두 손으로 눈물을 닦고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지윤의 전화인 것을 보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귓가에 연결했다.“지윤아.”정안이 부드럽게 입을 열자 지윤이 긴장한 말투로 물었다.“언니 지금 어디예요?”정안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 바지의 먼지를 툭툭 털며 말했다.“금원이야.”“내가 주소 하나 보낼 테니까 지금 당장 와요.”지윤은 다급해 보였고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었다.정안은 그녀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봐서 금원을 뛰쳐나가며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이야?”“언니 할머니 찾았어요.”정안은 마음이 급해져 더 빨리 뛰었다.“어디야? 할머니 어디 계셔? 주소 보내.”“보낼게요. 근데 마음 단단히 먹어요.”순간 정안은 머릿속이 하얘지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지윤이 보낸 주소를 따라 외진 교외로 나가 낡은 건물 공사장에 멈춰 섰다.그녀가 공사장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이미 경찰차 여러 대가 주차돼 있었고 주변은 폴리스라인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폴리스라인 밖에서 두 명의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이를 본 정안은 더욱 당황했고 공포와 불안이 점점 더 심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언니!”지윤이 멀리서 그녀를 보고 무거운 표정으로 달려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정안의 손은 차갑고 몸은 가늘게 떨고 있었고 목소리마저 떨리며 긴장해서 물었다.“할머니는?”지윤이 하늘을 가리키자 정안이 고개를 들었다.순간 정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깊이 타들어 가는 공포가 온몸에 번져 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허공에 매달린 할머니를 바라보니 가슴이 칼로 에는 듯 아팠고 너무 아파 미쳐버릴 것 같았다.포승줄에 묶인 할머니는 몸에 폭탄 같은 것을 가지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할머니를 들어 올린 건 대형 크레인이었다.정안은 경찰 앞에 달려들어 그들의 손을 덥석 잡으며 다급하
“그건 지난번에 이미 설명했잖아.”“그 사람 내가 만나야겠어. 주소와 연락처 줘.”“없어.”임다희는 냉정한 얼굴로 어금니를 깨물며 악에 받쳐 말했다.“내가 그렇게 큰 단서를 줘서 네가 공을 세웠는데 넌 내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이 이런 태도로 날 심문해?”“네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가 너 경찰서로 데려가 어떻게 해서 그 단서를 얻었는지 조사할 거야. 너 절대 쉽게 못 벗어나.”임다희는 피식 웃더니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렸다.“정말 어이가 없어.”남태준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그 술을 마신 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알코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따뜻함이 점차 뜨거움으로 번지고 일부 기능은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며 의식이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컵을 보더니 와인을 바라보았다.컵은 닦았으니 틀림없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문제는 아마 개봉하지 않은 것 같은 와인에 있을 것이다그가 방심했다.남태준은 더 이상 임다희를 캐묻지 않고 벌떡 일어나 두말없이 성큼성큼 돌아서서 가버렸다.“태준아!”임다희가 급히 뒤쫓아가 남태준을 뒤에서 덥석 끌어안고 두 손을 놓지 않았다.“가지 마. 태준아. 사랑해.”임다희는 와인에 매우 강한 약을 넣었다. 소 열 마리라도 이 약효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남태준의 경계하고 신중한 성격을 알고 일부러 와인에 약을 넣은 다음 개봉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했다.“이거 놔.”남태준은 화를 꾹 참고 나지막이 명령했지만 임다희는 한사코 놓지 않았다.그의 몸을 더 꽉 껴안고 자기 몸을 그의 몸에 문지르며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남태준의 눈빛이 가라앉더니 임다희의 손목을 힘껏 잡아당겨 어깨너머로 세게 넘어뜨렸다.펑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임다희의 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고통스럽게 땅바닥에 뒹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은 초라했다.“내일 다시 봐.”남태준은 매섭게 말하고는 방에서 사라졌다.그는 걸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
며칠 후.남태준은 임다희가 제공한 단서에 따라 미리 깊은 산에 잠복해 마약 밀매업자들을 잡았고 몇 킬로그램의 물품도 압수했다.모두가 기뻐하고 공적을 세운 것을 감격스러워하며 축하하고 있을 때, 남태준만 걱정이 가득했다.그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임다희가 이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그녀의 신분이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이 사건은 곧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공식 웹사이트는 물론 뉴스에도 게재되었다.뉴스를 본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태준아. 네가 마약상을 잡고 물건까지 손에 넣은 건 내 공도 있지 않아? 나 밥 한 끼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남태준은 그녀의 입에서 단서를 더 찾고 싶어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저녁, 퇴근 후 남태준은 임다희가 준 장소로 차를 몰고 갔다.장소에 도착해서야 개인 클럽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은 VIP 예약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준 초대 코드로 그 클럽에 들어갔다.긴 복도를 지나 웨이터가 룸의 문을 열었다.남태준이 들어가서 보니 범상치 않은 방이었다. 커다란 방에는 침대, 소파, 식탁, 옷장에 화장실까지 있었다.식탁에서 임다희는 섹시하고 우아한 튜브톱 스커트를 입고 요염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식탁 위에 촛불을 켜 놓은 저녁 식사는 매우 낭만적이었다.“태준아 왔어?”임다희는 일어나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어서 앉아.”남태준은 조금 경계하며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앞에 있는 양식을 보고 옆에 있는 몇 병의 술을 보며 말했다.“오늘 식사를 위해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야.”“마음에 들어?”임다희가 웃으며 묻자 남태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아니. 싫어.”임다희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남태준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덤덤하게 말했다.“네가 준 정보 아주 정확하더라. 고마워. 만약 필요하다면 경찰서에 와서 상금 받아 가.”임다희는 어이없이 웃으며 옆에 이미 열린 술을 들고 남태준에게
“네?”지우가 멍하니 아직 반응하지 못했을 때 남태준이 바로 키스를 했다.남자의 패기 넘치고 강한 딥키스에 지우는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그의 부드럽고 끈적거리는 몸 아래에서 넋을 잃었다.함께 있는 시간은 늘 뜨겁고 끈적끈적했으며 아늑하고 행복했다.진한 키스를 나눈 후, 지우는 몸이 나른하고 숨이 가빠졌지만 남태준은 오히려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심지어 욕망이 자극되어 발산되지 않으니 더욱 흥분했다.그는 지우를 거실에 남겨두고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달려가 목욕을 했다.다시 나왔을 때 지우는 거실에서 소설을 쓰고 있었다.남태준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 옆에 앉아 그녀의 컴퓨터 내용을 들여다봤다.그러자 지우는 노트북을 덥석 덮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집에 가야겠어요.”남태준이 고개를 들어 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그는 지우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며 그녀가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다.“열 시에 가.”남태준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용히 달랬다.“열 시에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지우는 고개를 흔들었다.남태준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그녀에게 키스해 그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을까 봐 조금 두려웠다.그가 매번 자신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또 고통스럽게 억누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그런 남자를 보며 지우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아니요. 지금 가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안 돼요.”남태준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래.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지우는 즉시 물건을 챙기고 가방을 든 뒤 남태준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가요.”남태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좀 서운했다.지우는 정말 그와 더 있고 싶지 않은 걸까?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미어졌다.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승용차는 마당에서 천천히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가 쏜살같이 달려갔다.길가에는 오랫동안 주차된 승합차 한 대가 줄곧
적어도 지우가 그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니 말이다.남태준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다희는 언제나 자신이 훌륭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야. 자기가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가를 치러서라도 손에 넣으려 하지.”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그 여자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네요.”남태준이 거침없이 말했다.“그래도 한 때 만났던 사이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그럼 태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지우가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다시 만나고 싶어요?”남태준이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나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묻는 거야?”“그럼 아까 왜 그렇게 긴장하며 끌고 나갔어요. 그건...”남태준의 바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그건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거 들키기 싫어서지. 지성이가 이미 육건우에게 한 방 먹었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지우는 순간 그의 뜻을 알아챘다.전에 남태준은 임다희가 아직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몰라서 대범하게 지우를 소개해줬었다.하지만 지금은 임다희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 알았으니 지우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연애를 잘 숨겨야 했다. 아니면 임다희가 또 무슨 수단을 써서 두 사람을 이간질할지 모른다.마음이 따뜻해진 지우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남 대장님도 무서울 때가 있었네요?”남태준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지우가 날쌔게 손을 피했다.“지우야. 이리 와.”남태준이 화난 척 말했지만 지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고개를 저었다.“싫은데요?”남태준이 몸을 기울이고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지우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식탁을 나섰다.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직 밥 다 안 먹었는데 어디 가?”“안 먹을래요.”지우는 방긋 웃으며 남태준의 행동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잡고 혼내주려 하는 것 같았다.남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우는 급하게 돌아서서 거실로 뛰어갔다.“이리 오라고.”남태준이 부드러운 명
“그래 그럼.”남태준은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무리 쓸쓸하고 힘들어도 그녀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었다.지우가 그의 곁에 있는 한 그는 반드시 그녀의 마음, 그녀의 사랑, 그녀의 모든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그때, 입구의 벨이 울렸다.지우는 궁금한 얼굴로 남태준을 보았고 남태준도 입구를 보았다.“이 시간에 누구죠?”지우가 묻자 남태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아마 신우일 거야.”“먼저 먹고 있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볼게.”말하면서 그는 거실로 나와 문을 열었다.순간 남태준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바로 임다희였다.방금 차에서 내린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지만 이대로 남태준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다시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다.“태준아 난...”남태준은 바로 나가서 문을 닫고 임다희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집에 지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는 것을 임다희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임다희가 알면 지우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고 불필요한 문제만 일으킬 수 있었다.그는 임다희가 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임다희가 지우와 재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여긴 왜 왔어?”남태준은 불쾌한 듯 묻더니 그녀의 팔을 끌고 마당으로 향했다.임다희는 남태준의 언짢음과 난폭함을 느끼고 말했다.“너랑 다시 잘 얘기하려고 찾아왔어. 방금 너 쓰레기라고 욕한 거 사과할게. 너무 슬퍼서 홧김에 내뱉은 말이지 진심이 아니었어.”“나 쓰레기 맞아.”남태준은 그녀를 마당 밖으로 끌고 나가 철제 난간을 나와 철문을 걸어 잠그고 마당 바깥 입구에 서 있었다.“우리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으로는 얘기가 이미 끝났어.”“우리 앉아서 얘기 좀 해. 우리 다시 시작하자.”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의 덤덤한 눈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나 많이 변했어. 더 이상 이전의 임다희가 아니라고. 나 너를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남태준은 몇 초 동안 어이없어 하더니 엄숙하게 말
지우는 예전에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다.그녀는 남태준 같은 유형의 남자를 좋아했다.이런 성격 때문에 그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좋아함으로써 그의 성격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지우는 부끄러운 듯 그의 목을 감싸고 나지막이 속삭였다.“아니요. 난 당신 같은 돌직구가 좋아요.”남태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맑고 큰 눈과 촉촉한 입술을 보니 저도 모르게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마음이 심란했다.그는 목젖을 위아래로 굴리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일어서더니 매력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가자.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일에 주의력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널 잡아 먹을 것 같아.”지우는 부끄러워하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푹 묻었다.남태준은 그녀를 안고 식탁 앞에 놓아주었고 식탁 위의 반찬 세 가지와 국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너 정말 요리를 잘하는구나. 먹기도 전에 군침이 돌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해.”지우는 기분 좋게 앉아 그에게 국을 떠 주었다.남태준도 따라 앉아서 젓가락을 들어 한 입 맛보더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맛있어. 지우가 한 음식이 이렇게 맛있다니.”지우는 그가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뿌듯해졌다.그녀가 만든 건 그저 일상적인 가정식 음식이었고 평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조리 방법도 단순했다.갈비찜, 토마토 달걀 볶음, 청경채, 그리고 어두 무찌개였다.그러나 남태준은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는 듯 싱글벙글했다.“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면서 그래도 나 음식 못하게 할 거예요?”지우가 궁금해서 묻자 남태준이 피식 웃더니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목을 축이고 말했다.“만약 네가 음식 만드는 거 좋아하고 취미라면 그리고 힘들지 않다면 해도 돼.”“하지만 네 취미도 아니고 임무를 완성하는 것처럼 한다면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며 네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어. 그러면 너도 힘들잖아.”남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만지며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손으로 지우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빛은 뜨거웠다.“내 침대에서 좀 더 오래 자지 그랬어?”“네?”지우가 의혹스러운 듯 맑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어리둥절했다.“내가 돌아오면 같이 잘 수 있게.”지우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졌고 그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줍게 중얼거렸다.“누구 좋으라고요!”“앞으로 나 밥해주지 마.”남태준은 그녀의 하얀 작은 손을 만지고 입가에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왜요?”지우는 자신의 요리 솜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늘 그녀가 요리했으니.“내가 돌아와서 하면 돼. 내가 바쁘면 요리사 부르면 되고.”남태준은 그녀의 손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하며 바라보았다.“내 여자친구는 요리나 집안일 같은 거 할 필요 없어.”그 말을 들은 지우는 호기심에 물었다.“그럼 여자친구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요?”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 나에게 네 일을 공유하고 내 일을 경청하고 각자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시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뭐가 시시한 일인데요?”“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하고 쇼핑하고...”남태준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수줍은 소리가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그의 키스는 뜨거웠고 큰 손은 천천히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끌어안아 그녀의 엉덩이를 안으로 오므렸다.진한 키스가 뜨거워질수록 지우는 그의 몸 반응이 점점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앉은 위치가 애매해 커다란 것이 몸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그녀의 온몸은 저도 모르게 나른해지고 팔다리에는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고 아랫배가 공허해졌다.떨림, 수줍음 그리고 왠지 모를 두려움이 그녀를 도망치게 했다.그녀가 옮기려고 할수록 남태준이 그녀를 껴안고 더 바싹 달라붙었다.진한 키스가 불러온 욕망에 두 사람의 숨결은 가빠졌다.남태준은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서 떠나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제 목소리를 잃은 듯 쉰 목소리로 가볍게 중
“그럼...”임다희는 믿기 싫은 듯 눈물이 핑 돌았다.“내가 목숨 걸고 널 구한 건 내가 경찰이기 때문이야.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어.”“그럴 리 없어.”임다희는 분노하여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울먹였다.“나 절대 못 믿어. 나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날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어?”남태준은 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임다희, 난 널 위해 목숨을 버린 적 없어.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무슨 논리?”임다희가 눈물을 쓱 닦았다.“넌 그래도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니까 측은한 마음에 그 요트를 떠나라는 것을 상기시켰을 뿐인데 네가 내 신분을 폭로한 거야.”남태준은 그녀를 구하려던 동기를 차근차근 분석해줬다.“네가 내 스파이 신분을 폭로하면서 우리 둘 다 위험에 빠졌어. 도망가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 난 절대 자기 살길만 도모하고 다른 사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어. 경찰의 책임감으로 너 데리고 도망친 거야.”임다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남태준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죽을 뻔한 건 너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야.”지금 남태준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은 그의 관대함 때문이었다.“너 지우 때문에 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임다희가 눈물이 흐릿해져서 묻자 남태준이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맞아.”“하지만 지우가 너를 차버렸어.”임다희는 눈물을 닦고 고상한 자태를 뽐내며 조롱하듯 물었다.“이번에도 흔쾌히 승낙하고 깨끗이 잊은 거야?”남태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질투가 많은 여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했다.“맞아. 깨끗이 잊었어. 이미 끝난 인연이고 지나간 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어? 이 세상에 여자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한 나무에만 매달릴 필요 없잖아?”임다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매섭게 말했다.“쓰레기!”그리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더니 문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