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떨던 그녀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흥분되고 안심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백인호는 괴로워하며 고개를 젖히고 남하준의 마귀처럼 무서운 얼굴을 보자마자 공포에 질렸다.남하준의 강력한 주먹이 그의 복부에 계속 부딪혔고 연거푸 몇 대 때리자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그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백인호의 멱살을 잡고 뺨을 세게 때렸다. 그는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땅에 엎드려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백인호가 해결되자 남하준은 정안의 코트를 재빨리 주워 그녀에게 덮으러 갔다.비록 그녀는 비교적 보수적인 속옷을 입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 모욕당하는 것을 보니 마음 아팠다.만약 그가 조금 더 늦게 왔다면 그녀는 이 쓰레기에게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다.남하준은 생각할수록 괴롭고 화가 났고 이불로 정안을 꽁꽁 감쌌다.그는 정안을 안아 들고 또 백인호를 세게 걷어차고는 그의 몸 위로 걸어갔다.정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그녀는 나른하고 힘이 없어 말소리도 매우 약했다.남하준이 흠칫 놀라더니 부드럽게 물었다.“완아. 뭐라고?”“가지... 말라고요.”“집에 데려다줄게.”남하준이 가볍게 속삭이자 정안은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힘을 모아 말했다.“여기... 수색해요.”남하준은 땅바닥에서 거의 죽어가는 백인호를 보고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그는 정안을 침대에 놓고 곧바로 방 전체를 샅샅이 수색했다.하지만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지 못해 다시 서재로 뛰쳐나가 계속 찾았다.그는 여기저기 뒤졌지만 유용한 단서를 찾지 못했고 3년 전 Z국에서 M국으로 오는 크루즈 티켓 4장을 발견했다.남하준은 곧 정안을 안고 별장을 나왔고 그녀를 차에 태운 뒤 이불이 흘러내려 민망할까 봐 꼭 껴안았다.남자의 품속에서 정안은 전에 없던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는 더 이상 의지력으로 체내의 약성을 지탱할 필요가 없어져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잤을까.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지윤은 그제야 깨닫고 활짝 웃었다.“그러니까 백인호는 도련님을 고발할 수 없는 거네요?”“맞아.”정안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어디 가려고요?”“하준 오빠한테.”정안이 옷을 잡아당기고 거울 앞에 가서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언니 깨어나면 부르라고 하셨어요. 언니 서재에 갈 필요 없어요. 내가 가서 불러올게요.”“괜찮아. 너무 자서 온몸이 불편해. 좀 걷고 싶어.”말을 마친 정안이 방을 나섰고 지윤이 뒤를 따랐다.2층으로 내려가 정안이 서재로 향하는데 지윤이 여전히 뒤를 따랐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손을 내저었다.“나 따라오지 말고 가서 일 봐.”지윤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엄숙하게 말했다.“3년 전에 한 번 실종되고 어제 또 실종됐어요. 나 진짜 너무 걱정돼요. 앞으로 언니가 어디 가든 반드시 24시간 밀착 경호할 거예요.”정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악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고 지윤이 진지하게 말했다.“화장실 가는 것 빼고 다 따라갈 거예요. 앞으로 저녁에도 같이 자요.”정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더니 손을 뻗어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감동하여 부드럽게 속삭였다.“그래. 앞으로 나랑 같이 자자. 다 네 맘대로 해. 하지만 여기는 금원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금원이 뭐요?”지윤은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고개를 쳐들고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내가 언니를 금원에서 얼마나 쉽게 납치해갔는데요?”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어 정안은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서재에 가면 네 시선 범위에는 없지만 하준 오빠 눈앞에는 있는 거잖아. 하준 오빠는 나 다치게 안 해.”정안이 부드럽게 지윤을 위로했고 지윤이 그녀의 뒤를 가리켰지만 정안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그냥 하준 오빠랑 따로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 하고 싶어서 그래. 금방 나올 거니까 따라올 필요 없어.”“고맙긴.”중후하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정안의 뒤에서 들려왔다.정안은 멍해졌고 심장 박동이 빨라져 홱 돌아서서 뒤에 있는 남자를
정안은 민망하게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남하준에게 했던 독한 말들을 떠올렸다.다시 만나지 말자고, 다시는 엮이지 말자고 정중히 거절하고는 이제 와서 뻔뻔하게 그에게 접근하다니. 비록 그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그는 정말 믿을까?남하준은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더 할 말 있어?”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니요. 없어요.”남하준은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난 남은 일 처리할게.”“네.”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당황해서 말했다.“그럼... 나 먼저 나가 볼게요.”남하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안은 뒤돌아서서 몇 걸음 가더니 고개를 돌려 남하준을 보았다.“나 지윤이랑 위층에 있는 손님방에서 지내고 싶어요.”남하준은 그윽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대답했다.“그래 그럼.”정안은 싱긋 웃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서재를 나온 그녀는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뜨거웠다.예전에 남하준을 짝사랑할 때는 조금의 긴장감과 수줍음만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남하준이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짝사랑했고, 지금도 그녀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니 매번 그를 만날 때마다 긴장감과 수줍음 외에도 심장이 뜨겁고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그를 보면 마음이 들쑤시는 게 너무 이상했다.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이렇게도 가슴 벅찬 일일까?그걸 느끼고 나니 곧 뼈아픈 고통이 뒤따랐다.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으니 고통스러웠다.그녀의 신분은 절대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감히 남하준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그저 지금처럼 그의 평안을 바랄 뿐이었다.정안은 거실 소파에 가서 앉아 책 한 권을 들고 몇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서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서재 밖에서 남하준을 지키고 있었다.정안은 남하준이 이렇게까지 바쁜 줄 몰랐다.밤이 깊어 조용한 밤, 지윤이 거실로 와서 그녀를
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려 해도 웃을 수가 없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나 야식 안 먹어. 그러니까 돌아가 쉬어.”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몰래 하품을 하며 어렴풋이 말했다.“오빠도 밤새워 일하지 말고 얼른 가서 쉬어요.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제일 먼저 전화하고요. 내가 바로 오빠 방으로 갈게요.”순간 남하준은 그녀의 발상이 아주 재밌다고 생각했다.남하준이 이렇게 연약한 여자의 보호를 받는다고?“그래.”“내 번호 원터치 다이얼 버튼으로 설정해 줘요.”정안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남하준은 여유롭게 핸드폰을 꺼내 정안의 번호를 원터치로 다이얼로 설정했다.“됐지?”남하준은 휴대폰 설정을 보여주며 조용히 달랬다.“이제 가서 쉴래?”정안은 여전히 불안해서 계속 당부했다.“다른 사람이 준 음식은 절대 먹지 말아요. 앞으로 오빠 밥은 나랑 지윤이가 책임질게요. 지윤이 웬만한 요리사만큼 음식 잘해요.”“그래. 네 말대로 할게.”남하준은 그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줄 몰랐고 마음이 따듯했다.“그럼 난 이만 자러 갈게요. 잘 자요.”정안은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돌아서서 거실을 나와 계단을 올라갔다.남하준은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지금까지 백하린이 그에게 약을 탈까 봐 걱정한 적이 없었고 아이 때문에 결혼하는 황당한 일은 절대 그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그가 이 일을 중시하는 것은 단지 기회를 틈타 그녀를 곁에 두면 더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이튿날 아침.정안은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나 지윤을 따라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지윤이 아무리 설득해도 그녀는 주방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여태껏 정안은 집안일을 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가 있다며 그녀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니 이 일에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고 했다.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배우고 있었다.지윤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언니. 그냥 나가서 언니가 좋아하는 일
정안이 젓가락을 들고 남하준을 바라보니 그는 이미 아침 식사 마쳤다.그는 냅킨을 들고 입을 닦으며 부드러운 눈매로 나지막이 말했다.“아주 향긋하고 달콤하고 맛있었어.”높은 후기에 정안은 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해 브로콜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순간 달콤한 맛에 브로콜리 향기가 미뢰를 가득 메우더니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맛없지도 맛있지도 않은 그냥 브로콜리 디저트 느낌이었다.그녀는 설탕을 소금으로 알고 잘못 넣었고 또 많이 넣었다.아니나 다를까 육전도 달고 계란 프라이도 달았다.정안은 먹을수록 민망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진짜 맛있었어. 난 좋아.”남자의 말에 위로를 얻었지만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아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민망함에 화제를 돌렸다.“오빠 오늘 뭐 해요?”남하준의 안색이 서서히 어두워졌다.“별다른 일은 없고 태준이 형이 퇴원해서 본가에 가 보려고.”정안은 순간 긴장하더니 테이블에 두 손을 얹고 물었다.“태준 오빠 깨어나서 나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지금 몸은 좀 어때요? 회복은 잘 됐어요?”남하준은 다급하고 절박한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같이 가 볼래?”남하준이 묻자 정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당연하죠.”그녀는 남하준을 보호하러 왔으니 당연히 그의 곁을 잘 지켜야 했다.“아침 먹고 바로 출발하자.”정안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만지고 캐주얼한 옷을 힐끗 쳐다보고는 급히 앞치마를 풀었다.“오빠 잠깐만 기다려요. 나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위층으로 뛰어올랐다.남하준은 눈을 늘어뜨리고 침울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초점 없는 시선은 테이블을 응시하고 있었다.‘태준이 형 만나러 간다고 하니 아주 기쁘고 흥분한 것 같네...’10분 후, 남하준은 계단 밑에 서서 기다렸고 정안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그가 고개를 들자 정안은 당고머리를 묶고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씩씩한 소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그녀는 계단을 뛰어 내려오며 황급히 말했
그들이 별원에 도착했을 때, 도우미가 보이지 않아 남하준은 문을 두드리고 천천히 열었다.방안이 온통 캄캄하고 서늘했으며 조금의 생기도 없었다.정안과 지윤은 집 밖의 경치에 놀라고 또 집 안의 음산함에 놀랐다.“나가!”남자의 허스키한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란 정안은 긴장하여 남하준에게 기대어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남하준은 고개를 숙여 정안의 손을 보더니 꼭 잡아주었다.입구를 통해 들어간 빛에 의해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고 남하준은 정안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형, 나야. 하준이.”정안은 용기 내어 캄캄한 거실을 바라보며 말했다.“태준 오빠. 나 왔어요.”곧이어 펑 하는 굉음이 들렸고 지윤은 놀라서 귀를 막았다.정안은 남하준을 와락 껴안고 긴장한 듯 심호흡을 하며 현관에 서서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그러자 남하준은 정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놀란 그녀를 달래고는 남태준을 향해 말했다.“형, 나 완이랑 같이 왔어요. 다른 뜻은 없으니까 우리 들어가게 해줘요.”“나가라고!”마치 정신을 잃은 짐승이 초원에서 울부짖는 것 같았다.곧 물건을 부수는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귀청을 찢는 듯한 식기 깨지는 소리, 가구 넘어지는 소리.이윽고 유리잔이 문밖으로 던져져 정안이ㅢ 앞에 떨어지자 남하준은 그녀를 안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입구를 떠났다.지윤은 어안이 벙벙하여 깜깜한 방안을 놀라서 바라보았다.‘이 안에 설마 무서운 짐승 한 마리를 키우나?’남태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형. 일단 진정해요. 형 기분 좋아지면 우리 다시 올게요.”그는 말하면서 문을 닫았고 돌아서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녀를 보고 멍해졌다.정안이 마음 아파하며 물었다.“태준 오빠 왜 저래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별원을 떠나 정원 밖의 정자로 가서 앉았다.지윤이 그 뒤를 따랐고 정안 옆에 앉아서 두 손으로 뺨을 괴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굳은 얼굴의 남하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슬픈 기색을 띠며 말했다.“형
정안은 마음이 무거워 별원의 대문을 돌아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태준 오빠 눈도 안 보이고 두 발도 못 움직이고 성격은 또 저렇게 괴팍한데 누가 오빠를 돌보죠?”남하준은 깊은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계속 술만 마셔. 취해서 잠들면 도우미가 와서 방 청소하고 의사도 그때 들어가 영양제를 주입하고 재활 치료도 하고 있어.”정안은 남태준의 자살에 맞먹는 행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나 들어가 봐야겠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벌떡 일어나 별원 대문으로 향했다.“완아.”남하준이 긴장된 얼굴로 일어나 그녀를 부르려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을 슬럼프에서 구해내고 싶어 하니 그는 기뻐해야 마땅하다.남하준은 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르게 의기소침하고 마음이 복잡해졌다.남태준을 향한 그녀의 관심과 사랑은 아주 진실하고 확실했다.지윤은 그의 안색이 복잡하고 보기 흉한 것을 발견했다.“도련님, 언니는 늘 착하잖아요. 그래서...”“설명할 필요 없어요.”남하준이 지윤의 말을 끊었다.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형이 나아지길 바라고 있었다.그는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공무를 처리하며 그녀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가고 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정안은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뚜뚜 지윤의 휴대전화에서 벨이 두 번 울렸고 지윤이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언니가 죽 끓여오라고 메시지 보냈어요!”남하준이 급히 일어나 재빨리 몸을 돌리며 말했다.“내가 끓여올게요.”지윤이 그 뒤를 따랐고 30분 후, 남씨 별장의 주방 밖에서 남하준이 지윤에게 죽을 건넸다.“지윤 씨가 갖다 줘요. 형이 완이는 배척하지 않은 것 같으니 완이더러 형 옆에 더 있어 주라고 해요.”“하지만...”남하준은 씁쓸하게 웃었다.“난 괜찮아요. 나보다 형이 더 완이가 필요해요.”“네.”지윤은 죽을 가지고 떠났고 남하준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가라앉고 말할 수
“그게 무슨 말이야?”“남자에게 약을 탄다면 당연히 두 번째 경우겠죠.”정안은 뒤돌아서서 지윤을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지윤이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언니 지금 도련님 안위를 너무 걱정해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었어요. 냉정하게 생각해봐요. 백하린이 자기에게 덫을 놓으려 하는걸 알고 있으니 도련님은 분명 대비하고 있을 거예요.”정안은 묵묵히 지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우선, 도련님의 왼팔과 오른팔은 절대 도련님 배신 못 해요. 일단 발각되는 즉시 머리가 잘리겠죠?”“그리고 반드시 남자가 혼미하고 흥분한 상태에서만 남녀 간의 일을 할 수 있어요. 도련님이 진정제를 휴대하고 다니시면 그런 발정 약을 먹어도 두려워할 필요 없겠죠.”“마지막으로 무엇보다 백하린은 절대 도련님 상대가 안 돼요. 언니가 너무 긴장하고 있어요.”정안은 진정하고 생각에 잠긴 듯 남씨 별장을 나섰고 지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혹시 내가 이번에 오빠 보호하겠다고 나선 게 오빠는 우습고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언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정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길가에 서서 차를 불렀다.“내가 전에 우린 친구도 할 수 없고 심지어 영원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거든. 근데 지금 나 뭐 하는 거니?”“언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잖아요? 그리고 도련님도 언니 원망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정안은 너무 씁쓸한 마음에 택시가 그 앞에 서 있는데도 올라가지 않고 머뭇머뭇 물었다.“네 말이 맞아. 하준 오빠는 내 보호 없이도 충분히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어. 그럼 나 지금 금원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까?”“난 지금 언니가 금원에 사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요.”지윤은 택시 문을 열고 그녀를 밀었다.“일단 차에 타서 말해요.”정안이 차에 탔고 지윤이 따라올라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백인호는 도련님에게 거의 죽을 듯이 맞았지만 죽은 건 아니잖아요? 만약 백씨 저택에 돌아간다면 분명 언니를 가만두지 않을 거고 도련님도 동의하지 않겠죠.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