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는 그녀를 싫어하지만 백하린처럼 나쁘지도 않고 그녀와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이 정도도 도와주지 않는 건 몰인정했다.“그래요. 타세요.”정안이 부드럽게 말하자 지윤이 트렁크를 열었다.짐을 놓고 차에 오른 유미는 기분이 조금 들뜬 것 같았다.“하준아. 너도 있었네?”유미가 다정하게 인사했고 남하준이 덤덤하게 답했다.“응.”차량은 군전 그룹을 떠나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고, 넓은 도로 양쪽에는 끝없는 육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기복이 심한 언덕이 있어 풍경이 아름다웠다.정안은 하늘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다보며 서글퍼졌다.뒷좌석의 유미는 국가 대사에서 민간 대사에 이르기까지, 실험 실패에서 재해 후 복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남하준은 간간이 대꾸했다.“다인 씨에게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 줄 몰랐잖아!”유미는 갑자기 정안을 언급하더니 호기심에 물었다.“다인 씨 전에 무슨 일 했었어요?”정안은 뜨끔하더니 입을 열었다.“직장 경험은 없어요. 대학교 때 화학을 전공해서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에요.”유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청유액을 생산하는 기기를 자체 제작하고 또 청유액을 제작하는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군전 그룹의 과학자들도 전부 다인 씨를 칭찬하고 숭배하고 존경하던데요? 요 며칠 동안 제일 많이 들은 얘기가 다인 씨 얘기에요.”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을 잇지 않았고 유미는 아무런 미끼도 잡지 못하자 말머리를 돌렸다.“하준아.”그녀의 목소리가 금세 부드러워졌다.남하준은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왜?”“몇 년 전에 우리 야전훈련에 참여했던 거 기억나?”유미는 감개무량해서 말을 이었다.“그때 내가 발을 다쳐서 걸을 수 없었잖아. 그런데 네가 죽어도 나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나 업고 무려 20km를 걸었지. 네가 임무에 실패하더라도 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거야.”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어떤 전우라도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인데 그녀가 왜 이 일을 언급하
정안이 백미러로 남하준을 보니 그는 지금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왠지 모르게 시큰둥하고 화가 났지만 가장 많이 화가 난 것은 남하준의 태도였다.예전에 그녀의 신분을 몰랐을 때는 그녀를 10년 넘게 짝사랑했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그녀에게 거절당한 후 복수라도 하는 걸까?유미는 여전히 남하준에게 지난 일들을 쉴 새 없이 속닥거리고 있었다.“나 생일날에 하준이가 직접 국수를 삶아 줬는데 글쎄 전혀 끊어지지 않고 국수 한 줄이 한 그릇이었다니까요. 얼마나 고마웠는지.”정안은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녀는 미소 지으며 남하준을 향해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말했다.“하준 오빠.”남하준은 살짝 넋을 잃고 눈을 뜨고 그녀를 마주 보더니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응?”유미는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엄숙한 시선은 정안과 남하준을 바라보며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나도 오빠가 해준 국수 먹고 싶어요. 나도 한번 해줘요.”남하준은 입술을 실룩였다.“그래.”“언제 시간 돼요?”남하준의 눈에는 따듯함이 가득했고 봄바람이 비를 녹이는 듯 부드럽고 섬세한 목소리로 말했다.“국수 한 그릇이야 뭐. 너만 시간 된다면 언제든 가능하지.”“그럼 오늘 밤 어때요?”“좋아.”“나도 안 끊어지는 국수 먹고 싶어요.”정안이 시무룩하게 말하자 남하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알겠어.”지윤은 씩 웃었고 유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안색이 어두워지고 두 손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차량은 세 시간 동안 달려 휴게소에 멈춰서 휴식을 취했다.정안은 가게에 들어가 간판 음식을 올려다보며 무엇을 먹을지 망설였다.그때 유미의 나긋한 말투가 들려왔다.“하준아, 나 소고기면 먹고 싶은데 양이 너무 많아. 나 요즘 다이어트 중이거든. 나랑 나눠 먹자.”정안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같은 가격으로 소자로 달라고 해.”유미는 어깨로 그의 팔을 툭 쳤다.“바보야. 그럼
유미가 작은 그릇을 가져와 남하준과 소고기면을 나눌 때 정안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지윤을 밀쳤다.“나랑 자리 바꿔.”남하준은 눈빛이 흐려지고 허탈한 시선이 정안의 모습을 따라가며 자리를 옮기는 모습을 지켜봤다.정안은 그에게서 좀 더 멀리 떨어졌다.치킨을 시킨 지윤은 정안이 준 매실 주스를 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언니, 차라리 콜라를 주지 웬 매실 주스에요?”정안은 말없이 뚜껑을 열고 고개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맛있네. 네 치킨이랑 잘 어울리겠어.”주스를 내려놓고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먹기 시작했다.유미는 국수를 좀 덜고 나머지는 남하준에게 밀었다.“하준아, 먹어.”남하준은 자신의 그릇에는 소고기가 가득하고 유미의 작은 그릇에는 맑은 국수가 조금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미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그녀가 소고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알았지만 오늘은 좀 이상했다.그는 자신의 면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고기도 먹어.”유미는 고개를 젓고 침을 흘리며 그의 그릇에 담긴 소고기 응시했다.“너 요즘 힘들어서 살이 빠진 것 같은데 네가 많이 먹어. 난 안 먹어도 돼.”남하준이 그녀의 표정을 보니 분명 먹고 싶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기를 집어 그녀에게 건넸고 유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고마워. 역시 나 챙겨주는 건 하준이밖에 없다니까.”정안은 입에 들어간 쌀국수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목구멍을 베고 막는 것 같았다.치킨을 베어 문 지윤이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둘이 왜 한 그릇 먹어요? 돈 없어요?”유미가 설명했다.“나 다이어트해서 많이 못 먹어요.”“그럼 소자로 시키면 되잖아요. 그렇게 가져가면 도련님도 배불리 못 드시잖아요?”유미는 애꿎은 얼굴로 남하준에게 물었다.“하준아, 너 모자라?”“괜찮아.”지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듯 유미를 바라보다가 다시 남하준을 보았다.그는 성격이 강직하니 나쁜 마음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여자의 여우 같은 행동을 왜
차량이 도로 옆에 멈춰 섰고 남하준은 유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세우고는 차에서 내려 지윤과 위치를 바꿨다.지윤은 뒤에 앉아 안전벨트를 당겨 매고 고개를 돌려 자는 척하는 유미를 보았다.‘생긴 것도 멀쩡하고 번듯한 직장 다니는 거 보면 나쁜 여자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여우야? 에휴. 대쪽같은 도련님이 이걸 알 리가 있겠냐고. 어쩐지 언니 기분이 안 좋더라니!’지윤은 코웃음을 치고는 창문을 내리고 창가에 엎드려 길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차량이 넓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정안은 서서히 자세를 가다듬고 몸이 바짝 조이며 앞길을 바라보니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잠시 후 유미는 눈을 뜨고 찡그린 얼굴로 운전석 앞에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다시 눈을 감은 채 자는 척했다.안성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차량이 금원 입구에 주차되었고 바로 맞은편이 유미의 집이었다.유미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차에서 내려 떠났고 남하준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국수 먹을래?”그 말을 들은 지윤은 얼른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 눈치껏 길가에 서서 기다렸다.정안은 갈등에 쌓여 그를 볼 용기조차 없었다.그녀는 먹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그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남하준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매우 바쁠 것이다.“다음에요.”정안이 자신 없게 중얼거렸다.그녀의 인사치레 말에 남하준은 허탈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다음에 언제?”정안은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켰다.남하준은 묵묵히 기다렸다. 오랫동안 기다리면서 그의 뜨거운 마음이 조금씩 식어갔고 결국 그녀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라면 국수가 아니라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 것이다.하지만 정안은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그녀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란 생각에 그는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고 심지어 숨을 쉴
정안은 심호흡을 하고 속으로 최면을 걸었다.‘그래. 내 할머니야. 할머니는 지금 나쁜 여자에게 속았을 뿐이야. 할머니 탓하지 말자.’백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여은수를 죽어라 노려보았다.“너...”집안의 늑대 두 마리에게 잡아먹혀 죽기 전에 조만간 이 어리석은 노파에 의해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어쩐지 손녀가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더라니. 이렇게 멍청한데 어떻게 말해줄까?여은수는 정안을 가리키며 경고했다.“이 영감이든 내 아들이든 절대 헛된 생각 품지 마. 당신 같은 여자를 우리 집에 들인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참고 있으니까.”정안은 어쩔 수 없이 웃었다.“할머니. 진정하세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어서 식사하세요.”여은수는 코웃음을 치더니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백하린은 눈살을 찌푸리고 정안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야, 너 진짜 하준 오빠랑 깨끗이 끝난 거 맞아?”“깨끗하게 정리했어.” “근데 왜 오빠가 나랑 결혼을 약속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꾼 건데? 너 때문이 아니면 뭐겠어?”지윤은 밥 먹으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렸다.“돈 많은 것 빼면 시체잖아. 도련님이 눈이 먼 것도 아니고 왜 너랑 결혼하겠냐고.”이 말이 나오자 백하린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숟가락을 들고 지윤을 내리쳤다.순간 지윤은 홱 피하더니 던져진 숟가락을 쉽게 피했다.그녀의 민첩한 반응과 솜씨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지윤이 밥상을 탁 치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백하린을 치려고 하자, 백하린은 그녀의 기세에 지레 겁을 먹었다.정안이 그만하라는 식으로 지윤의 손을 꾹 눌렀다.여태 한마디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백인호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정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정안은 백인호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느낄 수 있었다.그때 백진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밥상 앞에서 소란 그만 피우고 다들 밥 먹어.”아슬아슬한 저녁 식사가 가까스로 끝이 났고 밤이 깊어 조용한 밤이 되었다.지윤은 어둠
“그럼 더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응.”“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요. 백하린이 도련님께 덫을 놓으려고 해요.”“무슨 덫?”“두 달 안에 도련님께 시집가고 심지어 임신할 생각이에요.”정안은 움찔했고 눈에는 분노로 가득했다.“혼전임신을 계획하려나 봐요. 아마 조만간 도련님께 약을 먹이고 강제로...”정안은 긴장하며 심호흡을 하더니 시트를 잡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하준 오빠 백하린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렇게 쉽게 오빠에게 접근할 수 없을 거야.”“하지만 언니 할머니에게도 경계심이 강한 건 아니잖아요. 자기 부하나 집안의 도우미 심지어 도련님 가족분들에게 손을 쓸 수도 있잖아요.”지윤이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백하린은 차고 넘치는 게 돈인데 사람을 매수하는 건 일도 아니죠. 지금으로선 어떤 수단을 쓰는지 모르지만 약을 타려는 게 틀림없어요.”정안은 생각할수록 더욱 불안했다.“언니, 어서 도련님께 전화해서 조심하라고 말하세요.”정안이 긴장해서 물었다.“오빠가 신도 아니고 주위 사람이 누가 포섭됐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경계하며 아무도 안 만날 수는 없잖아?”“그럼 어떡해요?”지윤은 종아리를 세우고 두 손으로 뺨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정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지윤아, 네가 오빠 곁에 가서 24시간 밀착 경호하면 안 될까?”충격을 받은 지윤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고 불쾌하게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언니! 나 여자예요! 어떻게 남자를 24시간 밀착 경호해요? 게다가 내가 원한다고 해도 도련님이 원하지 않죠!”“그럼 어떡하지?”정안은 급해서 시트를 두드리며 마음이 착잡했다.“도련님 옆에 믿음직한 부하 두 명 있잖아요?”정안은 분노한 듯 이를 악물고 물었다.“만약 백하린이 포섭한 사람이 그 두 사람이라면?”지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럼 도련님은 무조건 백하린의 손에 놀아나는 거죠.”정안은 급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벌게진 눈으로 침대에
이튿날 아침.정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있었다. 입으로는 남하준 곁으로 가기 싫다고 하면서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반면 지윤은 아직도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짐을 챙긴 정안은 백진의 방으로 가 작별인사를 했다.백진은 듣는 이가 있을까 봐 별말 못하고 몸조심하라고 한 뒤 블랙카드를 건넸다.정안은 백진의 카드를 받지 않고 인사를 마친 뒤 그의 방을 나왔다.백씨 저택을 나올 때 마침 백인호를 만났다.그는 정안의 길을 가로막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혼자 짐 챙겨서 어디 가려고? 네 친구는 어쩌고?”정안은 안색이 확 굳어지더니 차갑고 냉랭하게 백인호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원한이 점점 짙어졌다.그녀는 꾹 참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려고요.”“내가 데려다줄게”“괜찮아요.”“내 부모님한테 나 때문에 이 집에 들어왔다고 했잖아? 근데 왜 나한테 이렇게 차가운 거지?”백인호가 추궁하자 정안은 답이 없었다.“다른 목적이 있는 거지?”“미안하지만 제가 시간이 급해서요.”정안은 말을 마치고 캐리어를 끌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백인호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다시 시작하자.”정안은 갑자기 멍해졌고 이 말에 놀라 입을 딱 벌리고 그를 돌아보았다.백인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정안을 바라보던 그는 뜨거운 눈가에 사악한 기색을 띠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진심이야. 서다인. 우리 다시 만나.”“이거 놔요.”정안은 그의 고백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고 조금 화가 났다.“그쪽이랑 농담할 시간 없어요.”“나랑 결혼해.”백인호는 더욱 진지하게 말했고 눈빛은 한껏 이글거리고 있었다.정안은 등골이 서늘하고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전에는 백인호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를 사칭한 것이 그녀의 기억 회복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는 완전 미치광이였다.어떻게 자기 삼촌과 결혼하라고 말할까?아무리 혈연관계가 없다고는 하
“언니 속마음이 너무 훤히 보인다니까?”지윤은 정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상하게 여긴 지윤이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에는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불길한 예감이 든 지윤은 황급히 방을 뛰쳐나와 1층 도우미에게 물었다.“제 친구가 언제 나갔는지 아세요?”“아마 7시쯤이었죠?”지윤은 더욱 불안해서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긴장해서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린 후에야 남하준이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도련님, 혹시 지금 언니랑 같이 있어요?”“완이가 날 찾아와요?”“언니 지금 금원에 없어요?”“없는데요?”“그럼 어디 간 거죠?”지윤은 점점 더 조급해 났고 남하준이 긴장해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요.”지윤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사실 오늘 언니가 도련님한테 가기로 했었어요. 도우미 말로는 7시에 집을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 8시예요. 아직 금원에 도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요?”“당장 찾아요.”남하준은 조급한 말투로 카리스마 있게 명령했다.“네!”지윤은 전화를 받으면서 백씨 저택의 CCTV 관찰실로 향했다.“만약 언니가 금원에 도착하면 저한테 전화 주세요.”“그러죠.”다급한 남하준은 곧장 전화를 끊었고 지윤은 관찰실로 가서 CCTV 영상을 얻었다.7시경 정안은 캐리어를 끌고 나가 백씨네 별장을 나온 뒤 CCTV가 없는 구역으로 들어간 후로 사라졌다.지윤이 한참이나 영상을 돌려보니 정안의 실종과 관련된 단서는 검은색 고급 차 한 대뿐이었다.그녀는 고급 차를 가리키며 경비원에게 물었다.“이거 누구 차죠?”“둘째 도련님 차입니다.”백인호?지윤은 심장이 멎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관찰실을 벗어나 마음이 무겁고 당황스럽고 두려워서 손을 떨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정안이 그녀의 부모님처럼 살해당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이내 남하준의 급하고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찾았어요? 어디 있어요?”지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언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