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속마음이 너무 훤히 보인다니까?”지윤은 정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상하게 여긴 지윤이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에는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불길한 예감이 든 지윤은 황급히 방을 뛰쳐나와 1층 도우미에게 물었다.“제 친구가 언제 나갔는지 아세요?”“아마 7시쯤이었죠?”지윤은 더욱 불안해서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긴장해서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린 후에야 남하준이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도련님, 혹시 지금 언니랑 같이 있어요?”“완이가 날 찾아와요?”“언니 지금 금원에 없어요?”“없는데요?”“그럼 어디 간 거죠?”지윤은 점점 더 조급해 났고 남하준이 긴장해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요.”지윤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사실 오늘 언니가 도련님한테 가기로 했었어요. 도우미 말로는 7시에 집을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 8시예요. 아직 금원에 도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요?”“당장 찾아요.”남하준은 조급한 말투로 카리스마 있게 명령했다.“네!”지윤은 전화를 받으면서 백씨 저택의 CCTV 관찰실로 향했다.“만약 언니가 금원에 도착하면 저한테 전화 주세요.”“그러죠.”다급한 남하준은 곧장 전화를 끊었고 지윤은 관찰실로 가서 CCTV 영상을 얻었다.7시경 정안은 캐리어를 끌고 나가 백씨네 별장을 나온 뒤 CCTV가 없는 구역으로 들어간 후로 사라졌다.지윤이 한참이나 영상을 돌려보니 정안의 실종과 관련된 단서는 검은색 고급 차 한 대뿐이었다.그녀는 고급 차를 가리키며 경비원에게 물었다.“이거 누구 차죠?”“둘째 도련님 차입니다.”백인호?지윤은 심장이 멎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관찰실을 벗어나 마음이 무겁고 당황스럽고 두려워서 손을 떨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정안이 그녀의 부모님처럼 살해당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이내 남하준의 급하고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찾았어요? 어디 있어요?”지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언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부드러운 미소와 서늘한 눈빛을 띠고 있는 그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정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얼음장같이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백인호는 그녀 앞에 가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졌다.그녀의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하얀 목으로, 또 천천히 어깨를 만지고 가슴에 거의 접근했다.정안은 위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고 너무 역겨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그녀의 차가움에 상처받은 백인호는 그녀의 쇄골 아래에 손을 멈추더니 눈 밑에는 매서움이 스쳐 지나갔다.“내가 안 무서워?”수건으로 입이 틀어막힌 정안은 말도 못 하고 아무런 반응도 주지 않았다.이런 변태는 그녀가 반항할수록 더욱 흥분할 것이다.백인호가 천천히 속삭였다.“내가 왜 널 구금했는지 알아?”구금?정안은 이 두 글자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납치인 줄 알았는데 구금이라니.백인호는 그녀가 계속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의 입안에 있는 수건을 뽑았다.입이 풀리는 순간 정안은 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울지도 떠들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살려달라고 외쳐봐.”정안은 절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리 없었고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왜 날 구금한 거야?”백인호는 그녀의 쇄골에서 손을 올려 그녀의 희고 고운 핑크빛 얼굴을 만지며 속삭였다.“그러게 내가 프러포즈하는데 왜 거절했어?”“난 기억을 잃었어. 우리 사이 과거는 이미 잊었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나한테 낯선 사람이야. 어떻게 나더러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거야?”백인호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살짝 끼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갑게 웃었다.“진짜 기억 잃은 거 맞아?”“맞아.”정안은 긴장해서 두피가 저렸다.그녀는 백인호의 무서운 수단을 직접 보았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를 진정시키고
금원.지윤이 가져온 CCTV 영상을 본 남하준은 어두운 얼굴로 사색에 잠겼다.CCTV 상으로는 백인호가 정안을 납치해 어디론가 데려갔다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지윤은 다급해서 말했다.“도련님, 어서 사람을 보내 찾아주세요. 더 늦으면 언니 목숨이 위험해요.”남하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백인호도 완이를 사랑하니까 해치진 않을 거예요.”“사랑은 개뿔. 그 미친놈이 언니 부모님을 해치고 몰래 수술까지 해서 언니가 기억을 잃었잖아요. 언니가 그런 놈 손에 납치당했으니 얼마나 위험해요. 좀 어떻게 해보세요.”남하준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어두운 시선으로 지윤을 바라보고 냉정한 말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이미 사람 보내 찾고 있어요. 근데 완이는 왜 짐을 챙겨 금원으로 오기로 했던 거죠?”다급해진 지윤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제가 어젯밤이 백하린의 음모를 들었거든요. 도련님께 시집가기 위해 혼전 임신을 계획하고 있었어요.”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연실색했다.지윤은 안절부절못하며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정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실마리를 찾지 못했으니 무턱대고 나간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었다.남하준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눈에는 기대가 찼다.“백하린이 혼전임신을 계획하는데 완이가 나 직접 보호하겠다고 나섰다고요?”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이없어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렇다면 나한테 직접 말해도 되잖아요? 주변에 믿을만한 부하가 없는 것도 아니고.”“언니는 아무도 안 믿고 저랑 자신만 믿어요. 원래는 나더러 도련님을 밀착 경호하라고 했지만...”지윤은 어색해서 몇 초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건 좀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거절했어요. 그래서 언니가 도련님 직접 보호하겠다고 나섰고요. 그런데 언니가 그렇게 일찍 외출할 줄은 몰랐어요.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이런 일은
“연구원이요.”“어느 연구원?”“그냥 평범한 연구원이요. 전 언니 생활 비서이지 업무 비서가 아니에요.”남하준은 들으면 들을수록 떨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그럼 업무 비서는 누구죠?”“돌아가셨어요.”“그 업무 비서가 아주 덕망 있는 노교수죠?”지윤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리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대답하지 않았고 남하준은 그녀의 표정에서 뜻을 읽었다.그녀가 대답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감히 믿을 수 없었다.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류청이 문을 열고 들어와 조급하게 말했다.“도련님, 찾았어요.”남하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서랍을 열어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재빨리 뛰쳐나갔다.지윤은 그가 권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즉각 알아 채고 남하준의 발걸음을 쫓아 떠났다....웅장한 군용 전차가 호화로운 개인 별장 앞에 주차되었다.경비원은 늠름한 사내들이 다가오자 막으려 했지만 그들이 권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이에 놀란 경비원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큰 철문을 열었다.남하준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가 으리으리한 거실에 서서 사방을 둘러봤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누구세요?”한 여자 도우미가 나와 노기에 차서 물었다.“왜 함부로 민가에 침입하는 겁니까?”류청이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말했다.“백인호 불러.”도우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백인호는 이미 2층 복도 난간에 서서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태연자약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남하준을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준이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치니 불빛이 사방으로 번지고 암류가 용솟음쳤다.“하준아,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어?”백인호는 의혹스러운 듯 웃으며 물었다.“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거야?”남하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날카롭게 말했다.“서다인 어디 있어?”“서다인이 내 전 여친이고
백인호가 의사이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약물로 기절시킬 수 있었다.백인호는 안경을 부축하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하준아. 늘 침착하고 이성적이던 애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무모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우리 집에 들이닥쳤으니 나 주거침입죄로 너 고소할 수 있어.”남하준이 다가가 소파에 단정히 앉더니 굳은 눈빛으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하나 더 추가해서 고소해.”백인호는 의혹스러웠다.“그게 무슨 말이야?”남하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카리스마 있게 명령했다.“수색해!”모두 재빨리 흩어져 사방을 뒤졌고 지윤은 방 안으로 뛰어갔다.백인호는 벌떡 일어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남하준, 지금 범법행위를 저지르겠다는 거야?”“아니. 법을 집행하고 있는데?”남하준은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래. 꼭 찾아내야 할 거야. 만약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내가 너 끝까지 고소한다.”남하준은 침울한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백인호는 소파에 두 손을 얹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여자 하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까지 막 나올 줄이야. 진짜 사랑하나 봐?”남하준은 차가운 얼굴로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전에는 네가 하린이한테 일편단심인 걸 보고 아주 존경할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거였어.”“근데 그렇게 사랑하면서 대체 왜 이혼했니?”백인호가 묻자 남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상대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지. 강제로 차지하는 게 아니라.”백인호는 그녀의 말에 문득 깨닫더니 흥분해서 말했다.“그 말은 서다인이 널 사랑하지 않아서 둘이 이혼했다는 거네?”남하준의 눈빛이 암울해지더니 천천히 2층을 바라보며 경멸하는 그의 눈빛을 피했다.‘역시 내 추측이 맞았어!’백인호는 진실을 간파하고는 활짝 웃었다.그러자 한참을 뒤지던 부하직원들이 하나둘씩 내려와 남하준에게 보고했다.“도
백인호는 서재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더니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그가 책을 밀치자 책장 안에 버튼이 나타났고 그는 손을 뻗어 눌렀다.곧 책장이 가운데에서 양쪽으로 밀리면서 구멍이 뚫린 내부 방이 드러났다.그가 들어가자 책장이 천천히 닫혔고 큰 방안의 불빛은 환했다.정안은 온몸에 힘이 없고 허약하게 혼돈에 빠져 필사적으로 벌리려던 눈을 걷잡을 수 없이 천천히 감았다.그녀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약물로 인해 흐리멍덩한 의식 속에서 반쯤 깨어 있는 상태가 되었다.백인호가 침대 가장자리로 가서 그녀의 손목을 묶은 끈을 느릿느릿 풀며 말했다.“다 들었지?”정안은 말할 힘도 없이 온몸이 나른했다.“하준이가 너 찾으러 왔더라고. 안타깝게도 그 머리로는 아마 평생 너 못 찾을 거야.”백인호는 말하면서 차갑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정말 생각도 못 했어. 늘 현명하고 침착하던 남하준이 네 일이라면 이렇게 감정적으로 변할 줄이야.”“앞으로 널 길들이는 것 외에도 난 남하준을 고소할 거야. 지금 위치에서 끌어내려 패가망신시켜야지.”백인호는 정안의 사지를 풀어주고 여유롭게 그녀의 옷을 풀기 시작했다.정안은 의식이 또렷했지만 말할 힘도 발버둥 칠 힘도 없었다.눈가가 촉촉이 젖은 그녀는 긴장하고 두려운 눈빛으로 백인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벌리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비로소 허약한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안... 돼...”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두려움에 떠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백인호는 가슴이 아파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살며시 닦으며 위로했다.“무서워하지 마. 넌 앞으로 점점 날 좋아하게 될 거고 나랑 몸을 섞는 것도 좋아하게 될 거야.”정안은 그의 손길이 닿은 피부가 황산에 덴 것처럼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공포와 강렬한 통증이 동반되었다.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가득 넘쳐 눈가에 조용히 떨어졌다.백인호가 그녀의 겉옷을 풀었을 때, 시선은 그녀의 흰 핑크빛 팔에 닿았고
두려움에 떨던 그녀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흥분되고 안심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백인호는 괴로워하며 고개를 젖히고 남하준의 마귀처럼 무서운 얼굴을 보자마자 공포에 질렸다.남하준의 강력한 주먹이 그의 복부에 계속 부딪혔고 연거푸 몇 대 때리자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그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백인호의 멱살을 잡고 뺨을 세게 때렸다. 그는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땅에 엎드려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백인호가 해결되자 남하준은 정안의 코트를 재빨리 주워 그녀에게 덮으러 갔다.비록 그녀는 비교적 보수적인 속옷을 입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 모욕당하는 것을 보니 마음 아팠다.만약 그가 조금 더 늦게 왔다면 그녀는 이 쓰레기에게 몹쓸 짓을 당했을 것이다.남하준은 생각할수록 괴롭고 화가 났고 이불로 정안을 꽁꽁 감쌌다.그는 정안을 안아 들고 또 백인호를 세게 걷어차고는 그의 몸 위로 걸어갔다.정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그녀는 나른하고 힘이 없어 말소리도 매우 약했다.남하준이 흠칫 놀라더니 부드럽게 물었다.“완아. 뭐라고?”“가지... 말라고요.”“집에 데려다줄게.”남하준이 가볍게 속삭이자 정안은 고개를 흔들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더니 힘을 모아 말했다.“여기... 수색해요.”남하준은 땅바닥에서 거의 죽어가는 백인호를 보고 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그는 정안을 침대에 놓고 곧바로 방 전체를 샅샅이 수색했다.하지만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지 못해 다시 서재로 뛰쳐나가 계속 찾았다.그는 여기저기 뒤졌지만 유용한 단서를 찾지 못했고 3년 전 Z국에서 M국으로 오는 크루즈 티켓 4장을 발견했다.남하준은 곧 정안을 안고 별장을 나왔고 그녀를 차에 태운 뒤 이불이 흘러내려 민망할까 봐 꼭 껴안았다.남자의 품속에서 정안은 전에 없던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는 더 이상 의지력으로 체내의 약성을 지탱할 필요가 없어져 깊은 잠에 빠졌다.얼마나 잤을까.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지윤은 그제야 깨닫고 활짝 웃었다.“그러니까 백인호는 도련님을 고발할 수 없는 거네요?”“맞아.”정안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어디 가려고요?”“하준 오빠한테.”정안이 옷을 잡아당기고 거울 앞에 가서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언니 깨어나면 부르라고 하셨어요. 언니 서재에 갈 필요 없어요. 내가 가서 불러올게요.”“괜찮아. 너무 자서 온몸이 불편해. 좀 걷고 싶어.”말을 마친 정안이 방을 나섰고 지윤이 뒤를 따랐다.2층으로 내려가 정안이 서재로 향하는데 지윤이 여전히 뒤를 따랐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손을 내저었다.“나 따라오지 말고 가서 일 봐.”지윤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엄숙하게 말했다.“3년 전에 한 번 실종되고 어제 또 실종됐어요. 나 진짜 너무 걱정돼요. 앞으로 언니가 어디 가든 반드시 24시간 밀착 경호할 거예요.”정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악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고 지윤이 진지하게 말했다.“화장실 가는 것 빼고 다 따라갈 거예요. 앞으로 저녁에도 같이 자요.”정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더니 손을 뻗어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감동하여 부드럽게 속삭였다.“그래. 앞으로 나랑 같이 자자. 다 네 맘대로 해. 하지만 여기는 금원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금원이 뭐요?”지윤은 코웃음을 치더니 두 손으로 가슴을 두르고 고개를 쳐들고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내가 언니를 금원에서 얼마나 쉽게 납치해갔는데요?”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어 정안은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서재에 가면 네 시선 범위에는 없지만 하준 오빠 눈앞에는 있는 거잖아. 하준 오빠는 나 다치게 안 해.”정안이 부드럽게 지윤을 위로했고 지윤이 그녀의 뒤를 가리켰지만 정안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다.“그냥 하준 오빠랑 따로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 하고 싶어서 그래. 금방 나올 거니까 따라올 필요 없어.”“고맙긴.”중후하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정안의 뒤에서 들려왔다.정안은 멍해졌고 심장 박동이 빨라져 홱 돌아서서 뒤에 있는 남자를
지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백건을 바라보았다.백건은 긴장하며 침을 삼키고 지우가 청혼서를 돌려줄까 봐 두려웠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슬쩍 바지를 만졌다.지우가 청혼서를 들더니 말했다.“건아, 사실은...”지우의 말이 나오기도 전에 백건은 긴장감에 허리를 굽혔다.“제가 아주머니보다 더 서연이를 아껴줄게요. 부디 허락해주세요.”지우는 어리둥절했고 남태준은 싱긋 웃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건이가 아주 놀랐나봐.”지우는 서둘러 해명했다.“난 이런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던 거야. 우리 가족들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백건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어서 앉아.”지우는 자리에 앉아 손을 뻗어 백건도 앉으라고 했다.자리에 앉은 백건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눈에 띄게 긴장한 백건의 모습에 집안 어른들은 모두 기뻐했다.특히 몇몇 큰아버지들은 집안에서 가장 아끼는 공주님이 M국의 갑부와 결혼할 수 있고, 심지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만족스러웠다.모두들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남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와. 웬 선물이 이렇게 많아요? 이거...”말을 반쯤 마친 그녀는 이미 남우영을 따라 거실로 갔다.백건을 보자마자 그녀는 얌전하게 변했다. 장난기 많고 발랄하던 모습의 그녀는 곧 부끄러움에 휩싸여 긴장한 채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빛은 뜨거웠다.“이거 건이가 가져온 예물이야.”허윤미가 말했다.예물이라는 말을 들은 남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리고 더욱 부끄럽고 긴장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웃으며 남자의 시선을 피했다.지우는 딸의 반응을 보고 또 백건을 보더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 같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수줍음이 감돌고 있었는데 마치 썸을 타는 시기 같았다.허윤미가 또 입을 열었다.“서연아, 며칠 후에 너도 선물을 갖고 정식으로 건이 부모님께 인사드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양쪽 가족
백건은 모든 예물을 갖고 차에 올라 별장을 떠났다.유승아는 서윤아를 부축한 채 별장 문에 서서 떠나가는 차를 보며 안색이 극히 어두웠다.서윤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유승아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지만 꾹 참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주머니, 서연이는 곱게 자란 공주님이고 건이와 어울리지 않지만 건이가 좋아하니 허락해주세요. 정말 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전 괜찮아요.”유승아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면 서윤아가 안쓰럽게 여겨 더욱 열심히 도울 줄 알았다.그런데 서윤아는 가볍게 탄식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건이와 결혼하기에는 서연이가 아깝지.”유승아는 어리둥절해 하며 서윤아를 바라보았다.곧 서윤아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서연이는 온실에서 작은 화초라 백지장처럼 단순해. 내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단순한 남자를 만나야 해.”그 말인 즉, 백건에게는 단순하지 않은 여자가 어울린다는 뜻인가?예를 들면 신분, 성격이나 능력 같은 것...유승아는 마침내 서윤아가 남서연을 좋아하지만 왜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그녀는 아들을 내조할 수 있는 사업적 파트너를 찾아주고 싶어 했다. 듣기 싫은 말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자였다.유승아는 조금 당황스러웠다.서윤아처럼 똑똑한 사람은 유승아가 단순하지 않고 수단이 있고 정치적 힘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그녀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그녀가 의심하고 있을 때,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너희 둘 결혼식을 책임질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유승아는 막막한 척 말했다.“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서윤아는 그녀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이 미소는 또렷하게 말해주고 있었다.“넌 똑똑한 애니까 알고 있잖아.”서윤아는 말없이 천천히 별장을 떠났고 유승아가 서둘러 쫓아갔다.그녀는 당연히 이해했다.결혼식은 이미 준비되었고 그녀는 백건과 남서연의 혼사를 망치고 그들의 감정을 깨뜨리기만 하면 순조롭게 백건의 아내가 될 수 있었다.유승
여자는 크면 집에 묶어둘 수 없는 법.남서연은 기쁨에 젖어 있었지만 가족들이 모두 자신의 혼사에 대해 걱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왜냐하면 백건과 결혼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반드시 그의 부모님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으니....다음날 백건은 이미 푸짐한 예물을 준비했다.모두 직접 준비한 것으로 성의를 다했다.거실에서 하현우는 열심히 예물을 체크하고 있었다.그때 거실문이 열리고 유승아가 서윤아를 부축해 들어왔다.하현우는 들어온 사람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사모님, 승아 씨 오셨어요?”서윤아는 온화하게 웃었다.“이거 승아에게 주는 예물인가?”하현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실 쪽을 돌아보았다. 백건이 빨리 나오기만을 기도했다.서윤아는 하현우 앞에 다가가 강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물었다.“내가 묻잖아?”하현우는 바짝 긴장해 대답했다.“서연 아가씨에게 주는 예물입니다.”유승아의 얼굴빛이 약간 어두워졌다.그러나 서윤아는 피식 웃더니 덤덤하게 말했다.“승아네 집에 갖다 주게.”“하지만...”하현우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보았다.서윤아는 소파에 앉아 차갑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볼 필요 없어. 내가 갖다 주라면 갖다 주면 돼. 그 녀석 허락받을 필요 없어.”말을 마친 서윤아는 유승아에게 손을 내밀었다.“승아야, 앉아.”유승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서윤아의 곁에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아주머니, 이건 건이가 남씨 가문에 주려고 준비한 예물이잖아요. 하 비서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건이와 결혼하는 여자는 너이니 당연히 이 예물도 네 것이지. 나도 서연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직은 건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사업적으로 건이를 도울 수 없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건이가 서연이를 돌봐줘야 해. 너만큼 성숙하지도, 능력이 강하지도 않아. 게다가 우리 두 가문은 친척 관계잖아.”백건은 방문을 나서서 양복의 커프스를 정리하면서 침착하게 계단을 내려갔다.그의 싸늘한 말투는 얼음처럼 차가워 뼛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서연이는 나를 행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백건은 차에 올랐고 차량은 서서히 남씨 본가를 떠났다.뒷좌석에서 백건은 한마디 말도 없이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하현우도 기뻐하며 말했다.“축하합니다. 대표님.”“고마워.”한 번도 이렇게 대답한 적 없었는데 보아하니 기분이 아주 좋은 것 같았다.하현우는 찬물을 끼얹어야만 했다.“대표님, 근데 사모님 고비는 어떻게 넘기실 거예요?”백건의 안색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그리고 차 안은 말이 없었다....남씨 본가 거실.모든 사람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남태준과 지우는 딸이 가족들 앞에서 백건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듣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남서연은 가족에게 둘러싸여 불심 검문을 당했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언제부터 만났어? 진도가 왜 이렇게 빨라? 갑자기 결혼 얘기까지 나오다니?”이러한 문제에 대해 남서연은 모두 털어놓았다.“우리는 정식으로 만난 적 없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오빠를 짝사랑했어요.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그럼 건이는 어떤 생각인데?”“오빠도 저와 결혼하고 싶대요.”남태준은 주먹을 쥐며 격분했다.“넌 단순하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애야. 분명 백건 그 자식이 오랫동안 음모를 꾸민 게 틀림없어.”지우가 나서서 말렸다.“당신 화부터 내지 말아요. 건이가 음모를 꾸몄든 아니든 인품은 좋은 애잖아요. 가짜 약혼녀 유승아를 빼고 다른 스캔들도 없었고.”남태준은 딸이 아까워 격노하며 물었다.“건이는 차갑고 예민해서 말도 잘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서연이와 어울려?”지우가 답했다.“난 두 사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서연이는 어릴 때부터 단순하고 걱정 없이 잘 웃으니 예민하고 차가운 건이 성격과 딱 상보적이잖아요.”허윤미는 시무룩해서 말했다.“하지만 서연이는 아직 너무 어려. 이렇게 일찍 결혼할 필요 없어.”“맞아요. 저도 동의해요.”“맞아요. 너무 어려요.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요.”남우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