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심호흡을 하고 속으로 최면을 걸었다.‘그래. 내 할머니야. 할머니는 지금 나쁜 여자에게 속았을 뿐이야. 할머니 탓하지 말자.’백진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여은수를 죽어라 노려보았다.“너...”집안의 늑대 두 마리에게 잡아먹혀 죽기 전에 조만간 이 어리석은 노파에 의해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어쩐지 손녀가 할머니에게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더라니. 이렇게 멍청한데 어떻게 말해줄까?여은수는 정안을 가리키며 경고했다.“이 영감이든 내 아들이든 절대 헛된 생각 품지 마. 당신 같은 여자를 우리 집에 들인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참고 있으니까.”정안은 어쩔 수 없이 웃었다.“할머니. 진정하세요.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어서 식사하세요.”여은수는 코웃음을 치더니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백하린은 눈살을 찌푸리고 정안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야, 너 진짜 하준 오빠랑 깨끗이 끝난 거 맞아?”“깨끗하게 정리했어.” “근데 왜 오빠가 나랑 결혼을 약속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꾼 건데? 너 때문이 아니면 뭐겠어?”지윤은 밥 먹으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렸다.“돈 많은 것 빼면 시체잖아. 도련님이 눈이 먼 것도 아니고 왜 너랑 결혼하겠냐고.”이 말이 나오자 백하린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숟가락을 들고 지윤을 내리쳤다.순간 지윤은 홱 피하더니 던져진 숟가락을 쉽게 피했다.그녀의 민첩한 반응과 솜씨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지윤이 밥상을 탁 치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백하린을 치려고 하자, 백하린은 그녀의 기세에 지레 겁을 먹었다.정안이 그만하라는 식으로 지윤의 손을 꾹 눌렀다.여태 한마디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백인호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정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정안은 백인호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느낄 수 있었다.그때 백진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밥상 앞에서 소란 그만 피우고 다들 밥 먹어.”아슬아슬한 저녁 식사가 가까스로 끝이 났고 밤이 깊어 조용한 밤이 되었다.지윤은 어둠
“그럼 더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응.”“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요. 백하린이 도련님께 덫을 놓으려고 해요.”“무슨 덫?”“두 달 안에 도련님께 시집가고 심지어 임신할 생각이에요.”정안은 움찔했고 눈에는 분노로 가득했다.“혼전임신을 계획하려나 봐요. 아마 조만간 도련님께 약을 먹이고 강제로...”정안은 긴장하며 심호흡을 하더니 시트를 잡고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하준 오빠 백하린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사람이야. 그렇게 쉽게 오빠에게 접근할 수 없을 거야.”“하지만 언니 할머니에게도 경계심이 강한 건 아니잖아요. 자기 부하나 집안의 도우미 심지어 도련님 가족분들에게 손을 쓸 수도 있잖아요.”지윤이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백하린은 차고 넘치는 게 돈인데 사람을 매수하는 건 일도 아니죠. 지금으로선 어떤 수단을 쓰는지 모르지만 약을 타려는 게 틀림없어요.”정안은 생각할수록 더욱 불안했다.“언니, 어서 도련님께 전화해서 조심하라고 말하세요.”정안이 긴장해서 물었다.“오빠가 신도 아니고 주위 사람이 누가 포섭됐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경계하며 아무도 안 만날 수는 없잖아?”“그럼 어떡해요?”지윤은 종아리를 세우고 두 손으로 뺨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정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지윤아, 네가 오빠 곁에 가서 24시간 밀착 경호하면 안 될까?”충격을 받은 지윤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고 불쾌하게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언니! 나 여자예요! 어떻게 남자를 24시간 밀착 경호해요? 게다가 내가 원한다고 해도 도련님이 원하지 않죠!”“그럼 어떡하지?”정안은 급해서 시트를 두드리며 마음이 착잡했다.“도련님 옆에 믿음직한 부하 두 명 있잖아요?”정안은 분노한 듯 이를 악물고 물었다.“만약 백하린이 포섭한 사람이 그 두 사람이라면?”지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럼 도련님은 무조건 백하린의 손에 놀아나는 거죠.”정안은 급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벌게진 눈으로 침대에
이튿날 아침.정안은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싸고 있었다. 입으로는 남하준 곁으로 가기 싫다고 하면서 누구보다 빨리 움직였다.반면 지윤은 아직도 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짐을 챙긴 정안은 백진의 방으로 가 작별인사를 했다.백진은 듣는 이가 있을까 봐 별말 못하고 몸조심하라고 한 뒤 블랙카드를 건넸다.정안은 백진의 카드를 받지 않고 인사를 마친 뒤 그의 방을 나왔다.백씨 저택을 나올 때 마침 백인호를 만났다.그는 정안의 길을 가로막으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혼자 짐 챙겨서 어디 가려고? 네 친구는 어쩌고?”정안은 안색이 확 굳어지더니 차갑고 냉랭하게 백인호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원한이 점점 짙어졌다.그녀는 꾹 참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오려고요.”“내가 데려다줄게”“괜찮아요.”“내 부모님한테 나 때문에 이 집에 들어왔다고 했잖아? 근데 왜 나한테 이렇게 차가운 거지?”백인호가 추궁하자 정안은 답이 없었다.“다른 목적이 있는 거지?”“미안하지만 제가 시간이 급해서요.”정안은 말을 마치고 캐리어를 끌고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백인호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다시 시작하자.”정안은 갑자기 멍해졌고 이 말에 놀라 입을 딱 벌리고 그를 돌아보았다.백인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정안을 바라보던 그는 뜨거운 눈가에 사악한 기색을 띠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진심이야. 서다인. 우리 다시 만나.”“이거 놔요.”정안은 그의 고백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고 조금 화가 났다.“그쪽이랑 농담할 시간 없어요.”“나랑 결혼해.”백인호는 더욱 진지하게 말했고 눈빛은 한껏 이글거리고 있었다.정안은 등골이 서늘하고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전에는 백인호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를 사칭한 것이 그녀의 기억 회복 여부를 테스트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는 완전 미치광이였다.어떻게 자기 삼촌과 결혼하라고 말할까?아무리 혈연관계가 없다고는 하
“언니 속마음이 너무 훤히 보인다니까?”지윤은 정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이상하게 여긴 지윤이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에는 휴대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불길한 예감이 든 지윤은 황급히 방을 뛰쳐나와 1층 도우미에게 물었다.“제 친구가 언제 나갔는지 아세요?”“아마 7시쯤이었죠?”지윤은 더욱 불안해서 거실을 서성거리다가 긴장해서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린 후에야 남하준이 덤덤하게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죠?”“도련님, 혹시 지금 언니랑 같이 있어요?”“완이가 날 찾아와요?”“언니 지금 금원에 없어요?”“없는데요?”“그럼 어디 간 거죠?”지윤은 점점 더 조급해 났고 남하준이 긴장해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봐요.”지윤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사실 오늘 언니가 도련님한테 가기로 했었어요. 도우미 말로는 7시에 집을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 8시예요. 아직 금원에 도착하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요?”“당장 찾아요.”남하준은 조급한 말투로 카리스마 있게 명령했다.“네!”지윤은 전화를 받으면서 백씨 저택의 CCTV 관찰실로 향했다.“만약 언니가 금원에 도착하면 저한테 전화 주세요.”“그러죠.”다급한 남하준은 곧장 전화를 끊었고 지윤은 관찰실로 가서 CCTV 영상을 얻었다.7시경 정안은 캐리어를 끌고 나가 백씨네 별장을 나온 뒤 CCTV가 없는 구역으로 들어간 후로 사라졌다.지윤이 한참이나 영상을 돌려보니 정안의 실종과 관련된 단서는 검은색 고급 차 한 대뿐이었다.그녀는 고급 차를 가리키며 경비원에게 물었다.“이거 누구 차죠?”“둘째 도련님 차입니다.”백인호?지윤은 심장이 멎은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관찰실을 벗어나 마음이 무겁고 당황스럽고 두려워서 손을 떨며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의 번호를 눌렀다.정안이 그녀의 부모님처럼 살해당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이내 남하준의 급하고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찾았어요? 어디 있어요?”지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언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부드러운 미소와 서늘한 눈빛을 띠고 있는 그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졌다.정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얼음장같이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백인호는 그녀 앞에 가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졌다.그녀의 얼굴에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하얀 목으로, 또 천천히 어깨를 만지고 가슴에 거의 접근했다.정안은 위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고 너무 역겨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그녀의 차가움에 상처받은 백인호는 그녀의 쇄골 아래에 손을 멈추더니 눈 밑에는 매서움이 스쳐 지나갔다.“내가 안 무서워?”수건으로 입이 틀어막힌 정안은 말도 못 하고 아무런 반응도 주지 않았다.이런 변태는 그녀가 반항할수록 더욱 흥분할 것이다.백인호가 천천히 속삭였다.“내가 왜 널 구금했는지 알아?”구금?정안은 이 두 글자를 들으니 덜컥 겁이 났다.납치인 줄 알았는데 구금이라니.백인호는 그녀가 계속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의 입안에 있는 수건을 뽑았다.입이 풀리는 순간 정안은 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울지도 떠들지도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살려달라고 외쳐봐.”정안은 절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리 없었고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왜 날 구금한 거야?”백인호는 그녀의 쇄골에서 손을 올려 그녀의 희고 고운 핑크빛 얼굴을 만지며 속삭였다.“그러게 내가 프러포즈하는데 왜 거절했어?”“난 기억을 잃었어. 우리 사이 과거는 이미 잊었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나한테 낯선 사람이야. 어떻게 나더러 낯선 사람을 받아들이라는 거야?”백인호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살짝 끼워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갑게 웃었다.“진짜 기억 잃은 거 맞아?”“맞아.”정안은 긴장해서 두피가 저렸다.그녀는 백인호의 무서운 수단을 직접 보았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를 진정시키고
금원.지윤이 가져온 CCTV 영상을 본 남하준은 어두운 얼굴로 사색에 잠겼다.CCTV 상으로는 백인호가 정안을 납치해 어디론가 데려갔다는 증거가 전혀 없었다.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지윤은 다급해서 말했다.“도련님, 어서 사람을 보내 찾아주세요. 더 늦으면 언니 목숨이 위험해요.”남하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백인호도 완이를 사랑하니까 해치진 않을 거예요.”“사랑은 개뿔. 그 미친놈이 언니 부모님을 해치고 몰래 수술까지 해서 언니가 기억을 잃었잖아요. 언니가 그런 놈 손에 납치당했으니 얼마나 위험해요. 좀 어떻게 해보세요.”남하준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어두운 시선으로 지윤을 바라보고 냉정한 말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이미 사람 보내 찾고 있어요. 근데 완이는 왜 짐을 챙겨 금원으로 오기로 했던 거죠?”다급해진 지윤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제가 어젯밤이 백하린의 음모를 들었거든요. 도련님께 시집가기 위해 혼전 임신을 계획하고 있었어요.”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고 아연실색했다.지윤은 안절부절못하며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정안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실마리를 찾지 못했으니 무턱대고 나간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뿐이었다.남하준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눈에는 기대가 찼다.“백하린이 혼전임신을 계획하는데 완이가 나 직접 보호하겠다고 나섰다고요?”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남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이없어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렇다면 나한테 직접 말해도 되잖아요? 주변에 믿을만한 부하가 없는 것도 아니고.”“언니는 아무도 안 믿고 저랑 자신만 믿어요. 원래는 나더러 도련님을 밀착 경호하라고 했지만...”지윤은 어색해서 몇 초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건 좀 경우가 아닌 것 같아서 거절했어요. 그래서 언니가 도련님 직접 보호하겠다고 나섰고요. 그런데 언니가 그렇게 일찍 외출할 줄은 몰랐어요.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이런 일은
“연구원이요.”“어느 연구원?”“그냥 평범한 연구원이요. 전 언니 생활 비서이지 업무 비서가 아니에요.”남하준은 들으면 들을수록 떨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그럼 업무 비서는 누구죠?”“돌아가셨어요.”“그 업무 비서가 아주 덕망 있는 노교수죠?”지윤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리고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으로 남하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이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대답하지 않았고 남하준은 그녀의 표정에서 뜻을 읽었다.그녀가 대답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감히 믿을 수 없었다.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류청이 문을 열고 들어와 조급하게 말했다.“도련님, 찾았어요.”남하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서랍을 열어 권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재빨리 뛰쳐나갔다.지윤은 그가 권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즉각 알아 채고 남하준의 발걸음을 쫓아 떠났다....웅장한 군용 전차가 호화로운 개인 별장 앞에 주차되었다.경비원은 늠름한 사내들이 다가오자 막으려 했지만 그들이 권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이에 놀란 경비원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큰 철문을 열었다.남하준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가 으리으리한 거실에 서서 사방을 둘러봤고 지윤이 그 뒤를 따랐다.“누구세요?”한 여자 도우미가 나와 노기에 차서 물었다.“왜 함부로 민가에 침입하는 겁니까?”류청이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말했다.“백인호 불러.”도우미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백인호는 이미 2층 복도 난간에 서서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태연자약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남하준을 침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남하준이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치니 불빛이 사방으로 번지고 암류가 용솟음쳤다.“하준아,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어?”백인호는 의혹스러운 듯 웃으며 물었다.“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거야?”남하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날카롭게 말했다.“서다인 어디 있어?”“서다인이 내 전 여친이고
백인호가 의사이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약물로 기절시킬 수 있었다.백인호는 안경을 부축하며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하준아. 늘 침착하고 이성적이던 애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무모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우리 집에 들이닥쳤으니 나 주거침입죄로 너 고소할 수 있어.”남하준이 다가가 소파에 단정히 앉더니 굳은 눈빛으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하나 더 추가해서 고소해.”백인호는 의혹스러웠다.“그게 무슨 말이야?”남하준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카리스마 있게 명령했다.“수색해!”모두 재빨리 흩어져 사방을 뒤졌고 지윤은 방 안으로 뛰어갔다.백인호는 벌떡 일어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남하준, 지금 범법행위를 저지르겠다는 거야?”“아니. 법을 집행하고 있는데?”남하준은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래. 꼭 찾아내야 할 거야. 만약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내가 너 끝까지 고소한다.”남하준은 침울한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백인호는 소파에 두 손을 얹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여자 하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까지 막 나올 줄이야. 진짜 사랑하나 봐?”남하준은 차가운 얼굴로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전에는 네가 하린이한테 일편단심인 걸 보고 아주 존경할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거였어.”“근데 그렇게 사랑하면서 대체 왜 이혼했니?”백인호가 묻자 남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상대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지. 강제로 차지하는 게 아니라.”백인호는 그녀의 말에 문득 깨닫더니 흥분해서 말했다.“그 말은 서다인이 널 사랑하지 않아서 둘이 이혼했다는 거네?”남하준의 눈빛이 암울해지더니 천천히 2층을 바라보며 경멸하는 그의 눈빛을 피했다.‘역시 내 추측이 맞았어!’백인호는 진실을 간파하고는 활짝 웃었다.그러자 한참을 뒤지던 부하직원들이 하나둘씩 내려와 남하준에게 보고했다.“도
사람은 기쁜 일이 생기면 기분이 상쾌한 법이다. 하루 종일 바빠도 지우와의 관계를 회복한 생각만 하면 속으로 은근히 기뻐 났다.남태준이 막 차 옆으로 다가갔을 때 임다희가 차 뒤에서 걸어왔다.“태준아.”남태준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여유롭게 물었다.“임다희? 무슨 일이야?”“할 얘기가 있어. 아주 중요한 얘기야.”임다희는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타.”남태준이 쿨하게 대답하자 임다희는 그의 차에 올라탔고 남태준이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 안에서 남태준이 물었다.“어디서 얘기할래?”“너희 집.”남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그건 안돼.”“아주 중요한 일이야. 반드시 사람 없는 곳에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래.”임다희는 남자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내뿜으며 엄숙하게 말했다.“마약 거래에 관한 얘기야.”“그럼 지금 얘기해.”남태준은 차를 길가에 세웠다.“차 안에는 우리 둘만 있으니까 안전해.”임다희가 앞뒤를 돌아보니 이 길은 행인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뜸했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태준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려 하자 마지못해 핸드백을 열어 그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이 시간에 거래가 있을 거야.”그의 다년간 사건 처리 경험으로 볼 때, 이렇게 명확한 거래 장소와 시간은 임다희가 절대 알 수 없었다.이 정보가 가짜이거나, 누군가가 그녀에게 준 것이 틀림 없었다.“어디서 났어?”남태준이 묻자 임다희는 조금 켕긴 듯 대답했다.“건달인 친구가 알아낸 정보인데 내가 샀어.”남태준은 입꼬리를 꼬며 그녀의 거짓말이 좀 억지스러워서 계속 물었다. “네가 마약 형사도 아니고 이 정보를 왜 사는데?”“너 주려고.”남태준은 움찔하더니 침묵했다.임다희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남태준을 지그시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태준아, 우리 다시 만나자.”남태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뭐라고?”임다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였다.“전에는 내가 미안했어. 네
지하 카지노 사무실.육건우는 자료를 책상에 던지고는 화가 나서 일어나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임다희를 노려봤다.“너 혹시 남태준 스파이야?”임다희가 미소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요? 우리는 같은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내가 남태준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게 뭔데요? 난 단지 애매한 단서만 줬지 실질적인 증거를 준 적은 없어요.”“요즘 사복 경찰이 계속 우리 촬영장 밖을 배회하고 가끔 항공사진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고 또...”육건우는 책상으로 가서 서류뭉치를 집어던졌다.“이건 전부 최근 경찰들에게 적발된 물건이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젠장!”임다희는 긴장해서 침을 삼키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육건우는 분노하여 임다희를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네 신분을 잊지 마. 내가 너를 도와 남태준과 그 여자를 갈라놓겠다고 약속했고 그 동생까지 함정에 빠뜨렸어. 그런데 그 여자가 지금 나를 고소했다고. 젠장.”임다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사장님의 큰 은혜를 잊겠어요? 다만... 저는 다시 전 남자친구와 재결합하고 싶어요. 그런데 하필 태준이가 마약 경찰이잖아요. 그래서 저... 이 일에서 손 떼고 싶은데 보스에게 사정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육건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임다희가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그해 남태준과 요트에서 탈출한 뒤 남태준은 그녀 때문에 다시 잡혀가 바다에 빠져 하마터면 숨질 뻔했지만 그녀는 사실 안전하게 귀국할 방법이 없었다.배후의 빅보스가 바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지만 육건우가 빅보스에게 사정을 해서 그녀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그녀의 연예인 신분을 이용하여 마약을 갖고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그녀는 마지못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십여 킬로그램의 마약을 촬영장 카메라 기둥에 숨긴 후 요트를 타고 귀국했다.그 이후로 그녀는 마약밀매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매번 물건을 가져오거나 몸을 헌신해야 했다.임
꽃가게 앞을 지날 때 남태준이 걸음을 멈추었다.“지우야. 나...”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는 재빨리 그를 끌고 나가 그의 팔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부질 없는 곳에 돈 낭비하지 말아요.”“여자들은 다 꽃을 좋아하지 않아?”지우에 의해 팔이 단단히 조여진 남태준은 아주 편안했고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번졌다.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안 좋아해요. 굳이 사주고 싶다면 차라리 다육식물을 줘요. 기르기도 쉽고 번식도 할 수 있잖아요.”“가방의 품질, 브랜드, 가격 중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가격이죠.”남태준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소비 관념과 가치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또 물었다.“다이아몬드와 금 중에 뭐가 좋아?”“금이요.”지우가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남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좋아. 알겠어.”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을 때 흥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우야!”지우가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를 부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바로 그녀에게 맞선 상대를 소개해 준 중매인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남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놀라움과 설렘이 가득해 말했다.“어쩐지 내가 그렇게 좋은 남자들을 소개해줘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눈이 이렇게 높았었네? 남편 어디 사람이야? 누가 소개해줬어?”지우는 어색하고 난처해하며 웃어 보였다.“친구가 소개해줬어요.”말하자면 백완자가 그들을 소개해 준 셈이었다.“외모도 빼어나고 큰 기에 몸매도 좋네. 어디 사람이야? 무슨 일 해?”역시 가십에 관심이 많은 중매인이었다.남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않았지만 지우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안성 사람이에요. 아주머니, 제가 얼른 가서 밥해야 해서요. 다음에 얘기 나눠요.”“안성 좋지! 큰 도시 사람이네!”지우는 남태준의 손을 잡고 서둘러 떠났다.그녀는 매우 급하게 걸었지만 남태준의 얼굴에는
지우는 긴장되어 귀가 빨개졌다.“싫어?”남태준은 그녀의 진심을 떠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와 재결합하고 싶은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 몸을 기울여 앉았는데 긴장해서 등이 약간 뻣뻣했다.남태준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덥석 끌어안고 뒤로 기댔다.지우는 그의 튼실한 가슴에 완전히 엎드렸고 몸이 나른해졌다. 수줍고 난처해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그의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아주 편안하고 심장이 왠지 모르게 떨리면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만약 네가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남태준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지우는 조바심이 났다.그녀는 남태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그의 깊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나 불편하지 않아요. 거부감도 들지 않고요.”“그러니까 너 지금...”남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우가 갑자기 입을 맞추었다.그러자 남자는 움찔했다.지우는 눈을 감고 두 손을 천천히 남자의 어깨에서 뒤로 걸어 목을 감은 뒤 수줍고 서툴게 그의 따뜻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그녀는 심장이 천둥처럼 뛰었다.남태준은 몇 초 동안 멍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음은 더없이 흥분되었다.그는 지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옅은 키스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입술과 혀는 그녀의 어금니를 비틀어 열고 곧장 달려들어 여자의 혀와 한데 엉켰다.“음!”지우는 그의 공세에 못 이겨 수줍은 소리를 냈다.그동안의 갈망과 그리움을 남태준은 한숨에 모두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우를 꽉 껴안고 격렬하고 난폭한 키스를 계속 퍼부었다.긴 키스가 이어지고 지우는 입술이 다 아프고 호흡이 가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을 밀면서 고개를 뒤로 뺐다.남태준은 아쉬운 듯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 이마를 맞댔고 거친 호흡을 나누며 뜨거운 기운이 감돌
지우가 부랴부랴 그를 불렀다. “아니요. 나 안 더워요.”남태준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놓았다.그녀의 영롱한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고 깨끗했으며 매력적이었다.지우는 잔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한 후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준 씨가 임다희와 사귀는지 물어보려고 왔어요.”남태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지우는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여 남태준에게 건넸다.순간, 지우는 자신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이미 헤어진 이상 그와 다른 여자에 관해 물어볼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는 참지 못했다.확실히 묻지 않으면 그녀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비록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다만 이때 그 이야기를 거론하는 것은 그녀의 목적이 단순하지 않아 보일 수 있었다.모두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저지른 일이지만 그녀는 동생의 취업을 위해 목적을 갖고 남태준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그렇게 생각한 지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뉴스를 본 남태준의 안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긴장하며 설명했다.“지우야. 나와 다희 그런 사이 아니야. 나 믿어줘.”현재 임다희는 그의 정보원이기 때문에 보안 및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임다희의 신분과 작업을 기밀로 유지해야 했으므로 지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지우가 자신을 믿지 못할까 봐 초조하게 이마를 짚고 죽을상이 된 얼굴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고 또 불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지우를 바라봤다.지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 여자가 먹여준 음식 먹었어요?”“그저 보통 친구와 밥 한 끼 먹은 거야. 나와 다희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니야.”“안 먹었어요?”“응. 거절했어.”“아.”지우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둘 다 침묵에 빠졌다.남태준이 지우를 바라보니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스쿠터를 타고 남태준의 집에 도착한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한낮의 햇살을 올려다보았다. 이 시간에 그는 아마 출근 중이겠지?너무 일찍 온 것 같아서 그녀는 입구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차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그녀가 막 떠나려던 참에 남태준이 문을 열고 나왔고 그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성큼성큼 앞으로 쫓아가며 불렀다.“지우야!”지우는 차를 세우고 그를 뒤 돌아봤다.마음이 격해진 남태준은 몇 걸음 만에 지우 곁으로 달려가 뜨거운 시선을 내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방금까지만 해도 용기가 넘치던 지우는 그를 만난 순간 맥이 풀리며 긴장해서 물었다.“출근 안 했어요?”“오늘 휴식이야.”남태준은 둘 곳 없는 손을 주머니에 천천히 찔러 넣었다지우는 부끄러워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마음속에 번져 그녀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었다.“어디 나가요?”지우가 묻자 남태준은 고민 없이 말했다.“아니. 나 아무 일도 없어. 들어가 앉을래?”지우가 고개를 돌려 집을 보니 또 긴장감이 감돌았다.머릿속에 지난번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뭐 물어보려고 왔어요. 물어만 보고 갈 거예요.”묻기만 하고 바로 간다?남태준은 너무 아쉬웠다.헤어진 후 지우가 먼저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태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여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서 너무 더워.”지우도 고개를 들어 눈 부신 햇살을 보며 생각했다.‘이 남자가 햇볕에 약하다고?’그리고 남자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보니 평소에도 햇볕을 많이 쬐는 것 같았다.지우는 몇 초 동안 고민하다가 차를 옆으로 몰고 가서 멈추고 가방을 들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그러자 남태준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오신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임다희가 육건우의 범죄 증거를 입수했으니 네가 가서 가져와. 난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겼으니 방해하지 마
“육건우가 지금 나랑 같이 거물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데 네가 찾는 그 신비로운 사람인지 모르겠어. 와볼래?”남태준은 생각지도 않고 말했다.“주소 보내.”“좋아.”전화를 끊은 남태준은 지우의 메시지를 잊고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이 밤.지우는 휴대전화를 안고 남자의 답장을 기다렸지만 밤새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벌써 두 번째였다. 남태준이 그녀에게 두 번이나 답장하지 않았다.지우는 마음이 완전히 뒤숭숭해져서 남태준이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다.그에게 재결합을 청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이틀이 지났다.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았고 지우는 평생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남태준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고 그와 임다희가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계속 생각했다.송수빈이 자주 가던 커피숍으로 지우를 불렀고 지우는 일할 마음이 없어 컴퓨터를 보며 멍하니 있었다.송수빈은 한창 일하다가 다시 휴대전화를 들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문득 송수빈이 소리쳤다.“지우야. 네 전 남자친구 연예 뉴스에 나왔어!”지우는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서 고개를 내빼고 기웃거렸다.송수빈이 핸드폰 액정을 그녀 앞에 널어놓은 채 허탈한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지우는 그 안의 사진과 글을 보고 움찔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남태준과 임다희가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고 임다희가 남태준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다정한 장면이 찍힌 것이었다.제목은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임다희, 다정하게 음식을 먹여주다.’였다.송수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무랐다.“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어. 남 대장님 너랑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전 여자친구랑 만나고 있어? 이거 환승 연애 아니야? 쓰레기!”지우는 가뜩이나 마음이 아팠는데 송수빈이 남태준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더욱 괴로워하며 감싸기 시작했다.“그냥 밥 한 끼 먹은 것뿐이잖아? 그게 뭐? 요즘 기자들 직업정신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도 아
지우는 눈물을 흐릿하게 머금은 채 일어나서 버럭 소리쳤다.“다른 사람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지 말고 독립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서 이익을 얻을 궁리만 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욕을 먹은 지성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진효연은 아들이 아까워 남태준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우를 야단쳤다.“지금 그게 동생에게 할 소리야? 지성이가 왜 남자답지 못하고 왜 독립적이지 않은데? 지성이는 그저 좋은 직장 찾고 싶은 거잖아. 게다가 태준이가 남이야? 지성이 미래의 매형인데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잖아?”남태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지우는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라 화를 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야!”“밥 안 먹어!”지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하고는 식탁을 빠져나와 방으로 가더니 쾅 하고 방문을 닫았다.진효연은 그제야 반응하고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남태준을 보았다.남태준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두 사람 아직 화해 안 했어?”진효연이 조심스럽게 묻자 남태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제 저희 반대 안 하시는 거예요?”진효연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나 반대 안 해. 내가 허락해서 두 사람 이미 다시 만나는 줄 알았어.”진효연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문득 쑥스러웠다.남태준이 지우의 남자친구가 아니라면 방금 그녀의 부탁은 확실히 좀 지나쳤다.지금 남태준은 마음속에 돌이 박힌 듯 숨이 막혔다.이따금 전해지는 괴로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차라리 지우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그와 헤어졌길 바라고 있었다.지금 보니 지우의 어머니는 두 사람을 동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지우는 정말 자신의 이유 때문에 헤어지자고 했을까?단순히 그를 사랑하지 않고 그에게 아무 느낌이 없어서?남태준은 맛을 느낄 수 없는 식사를 했다.그가 떠날 때까지 지우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는 차를 몰고 넓은 거리를 무작정 누볐고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뚜뚜.메시지 벨이 울렸다.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