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등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고 점차 두피가 저렸다.이때 이어폰에서 AI의 첫마디가 들려왔다.“안막주름 인식 성공. 정안의 개인 정보시스템에 로그인한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그녀의 이름이 정안일까? 이 이름은 남하준이 몇 번 언급하는 걸 들었지만 그 상대가 자신일 줄은 몰랐다.그 아래 더 충격적인 내용이 펼쳐졌고 서다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내가 누구죠?”“당신 이름은 정안, 본명 백완자. 한때 이름은 백하린, 올해 25세, 아버지 M국인, 어머니 Z국인. 당신은 M국에서 태어났고, 14세에 Z국에 귀화하여 Z국 국방대학을 더블 박사 학위로 졸업했습니다.”“당신은 화학 연구 과학자이자 1급 군무기 엔지니어이며 Z국의 주요 기밀 유지 대상입니다.”서다인은 떨리는 손으로 이어폰을 벗고 창백한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눈시울은 이미 붉어졌고 아랫입술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이렇게 충격적이고 무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저 가족에게 버림받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그녀가 전 세계가 갖고 싶어 하는 정안일 수 있을까?순간 서다인은 일어나서 넋을 잃은 채로 지윤에게 다가가 태블릿을 건네주었다.“언니,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아요.”서다인은 숨쉬기가 힘들고 심장이 돌처럼 굳어지며 넋을 잃고 겨우 말했다.“집에 돌아갈래요.”“당장 티켓 예매할게요.”지윤은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서다인은 긴장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나 금원으로 갈래요. 내 남편 집에. 사람 잘못 찾았어요. 난 당신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에요.”지윤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언니, 이건 모두 국가 기밀이에요. 언니가 열어볼 수 있다는 건 언니가 바로 우리가 찾는 사람이란 뜻이고요. 틀림없어요.”“난 언니가 16살 때부터 언니 곁에 파견됐어요. 22살 언니가 실종되기 전까지 6년을 봐왔는데 절대 언니를 잘못 볼 리가 없어요.”서다인은 여전히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지윤의 손을 밀쳤다
금원의 등불이 밝았고 거실 벽에 걸린 시계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서다인은 소파에 앉아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고 그 옆에는 남하준과 유동진 남매가 앉아 있었다.정호와 류청도 옆에 서서 지키고 있었는데 모두 굳은 표정이었고 긴장되고 초조한 눈빛으로 서다인이 마음을 추스른 후 어쩌다 갑자기 실종됐는지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서다인은 마지막 우유 한 모금을 마신 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더니 마지막에는 남하준의 얼굴에 시선이 떨어졌다.그의 눈빛은 어둡고 무거웠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약간의 뜨거움이 깃들었고 휴지를 들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서다인은 슬쩍 피해 직접 휴지를 잡았다.“내가 할게요.”남하준이 인내심 있게 물었다.“괜찮아? 말해 봐. 어쩌다 실종됐고 어디로 갔던 거야? 또 무슨 일을 당했고.”서다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돌려 베란다 밖을 가리켰다. “뒷마당에 아주 큰 반얀나무가 있잖아요? 그 아래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밧줄이 나무에서 떨어져 고개를 들었더니 어떤 여자가 밧줄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어요.”“누구였는데?”남하준이 묻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요.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도 전에 전 기절했어요. 깨어나 보니 교외의 외진 습지 공원에 나 혼자 누워 있었어요.”류청은 즉시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통해 CCTV를 검색하기 시작했다.“그 사람이 무슨 목적으로 너 데려간 건데? 해치진 않았고?”서다인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눈빛이 좀 흔들렸다.“모르겠어요. 제가 눈을 떴을 때 이미 보이지 않았어요.”방 안의 몇몇 사람들은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았고 유미가 참지 못하고 코웃음을 쳤다.“그 말을 누가 믿어요?”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모두 똑똑한 사람이고, 그녀는 거짓말을 잘 못 하니 이 논리 없는 말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지윤에 의해 밧줄을 타고 금원을 나갔고 차에 실려 갔다.다만 지윤의 존재를 자백하지 않았을 뿐이다.유동진은 위엄 있는 자태로 물었다.
서다인이 위층으로 올라갈 때 남하준이 유동진 남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을 들었고, 유미가 오늘 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다.그녀는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지난 일들을 떠올렸다.남하준의 할머니가 그녀를 첫눈에 알아본 이후로 늘 자신의 신분과 가까이 지냈다.무엇보다 그녀를 오싹하게 만든 건 백인호였다. 분명 삼촌인데 외부인과 결탁하여 그녀의 신분을 훔치고 또 그녀의 전 남자친구로 가장하고 있었다.그녀가 백하린인 건 그래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녀는 또 정안이라니.그 이름이 짊어진 무게는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백완자, 일명 정안, Z국인, 화학 과학자, 1급 군무기 엔지니어.그녀는 눈 밑에 눈물을 글썽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온갖 번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이 순간 그녀는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남하준의 아내, 아주 평범하고 나약한 M국 여자로 살고 싶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남하준의 목소리가 들렸다.“완아, 잤어?”정안은 대답 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방문을 바라보았다.문을 두 번 두드리더니 곧 조용해졌고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나 이제 어떡해요?”그녀는 발을 움츠리고 이불을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고는 울먹였다.이튿날 아침.정안은 깨끗이 씻고 방문을 열고 내려가 아침을 먹으려는데 문을 여는 순간 그녀는 멍해졌다.남하준이 그녀의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똑바로 서 있었는데 강한 기운이 감돌았다.천성적으로 카리스마를 타고 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강한 압박감을 주었다.“굿모닝.”남하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하자 정안은 목을 축이고는 웃으며 인사했다.“굿모닝.”남하준은 그녀가 어젯밤에 이미 잠든 것이 아니라 그를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우리 얘기 좀 해.”정안은 뒤로 물러서 문짝에 기대어 말했다.“들어와요.”그는 두 손을
정안은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실망한 듯 피식 웃었다.“아직 좋아하든 아니든 어차피 우리 결혼은 무효예요.”“좋아해.”남하준은 조바심 나는 말투로 또박또박 진심으로 말했다.“너 많이 좋아하고 많이 사랑해.”정안이 다시 올려다보니 그의 잘생긴 얼굴이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고 귀밑부터 목까지 빨개졌다.순간 자신이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맨틱이라곤 모르는 이 강직한 남자에게 이런 말을 강요하다니.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그에게는 몇십 킬로그램을 메고 몇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았을까?정안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촉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가슴이 마구 설렜다.그녀는 이번 한 번만 물을 것이고, 다시는 묻지 않을 것이다. 남하준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그것도 아주 많이 사랑하고 무려 십여 년을 사랑했다.심지어 그녀가 서다인이 된 후에도, 보이지 않는 흡인력 때문에 그는 가짜 백하린을 포기하고 그녀를 선택했다.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도 깊은 감정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기억은 없지만 그에게 첫눈에 반한 걸 보면.정안은 입술을 깨물고 더는 그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꾹 참으며 덤덤하게 대꾸했다.“아, 고마워요.”남하준의 눈 밑에 언뜻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그녀의 대답이 못마땅했고 또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해 눈동자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는 손을 천천히 등 뒤로 하고 숨을 골랐다.몇 초 만에 정안이 또 입을 열었다.“우리 시간 내서 이 무효 결혼부터 해결하죠.”남자는 심호흡을 하더니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이제 당신 결혼 두 번 하게 됐네요?”“몇 번 결혼하든 상관없어. 앞으로도 널 아내로 삼을 수 있을지가 중요하지.”정안은 움찔했고 손목 동맥이 살살 아프고 두근거리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지금 그녀는 남하준과의 어린 시절을 너무 기억하고 싶었다.분명 낭만적이고, 행복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이렇게 깊은 사랑을 할 수
난 당신만 좋아한다는 말이 마치 각성제처럼 남하준의 불안한 마음 구석을 때렸다.그는 흥분되고 기쁘고 긴장하면서도 또 방황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온갖 기분이 뒤섞인 가운데 그는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마음속의 모든 사랑을 이 키스에 쏟았다.정안은 갑작스러운 키스에 무의식적으로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거리를 뒀다.남자는 그녀가 도망갈까 봐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힘껏 끌어안고 품에 안았다.그녀의 몸이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달라붙자 그녀는 놀라서 짤막한 소리를 내더니 입술과 혀가 부풀어 오르고 머리가 어지럽고 곧 호흡이 막힐 것 같았다.뜨거운 남자의 숨결이 정안의 피부에 뿌려져 그녀의 온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정안은 그의 품에서 녹초가 되어 남자가 자신을 끌어안고 충분히 키스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그의 키스는 깊으면서도 또 절제하고 있었다.항상 통제 불능이 될 때, 그는 욕망을 억누르고 그녀를 놓아주고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가서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켰다.아침 식사 후 두 사람은 과감하게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했다.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이나 서운함도 없었다.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안은 한참을 생각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남하준에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남하준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그녀가 백인호와 마주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정호를 시켜 백진과 여은수를 모셔오라고 했다.금원.정안은 이혼합의서를 잘 챙겨두고 다과를 준비하여 거실에서 기다렸다. 마음이 불안한 것이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더 컸다.그녀는 기억이 없어져서 자신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몰랐다. 두 사람은 이 세상에 남은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니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어르신, 사모님, 안으로 드시죠.”정호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고 정안은 긴장된 얼굴로 등을 꼿꼿이 세우고 입구를 두리번거렸다.남하준은 그녀의 옆에 앉아 가볍게
남하준은 그들을 거실로 모셨고 네 사람은 소파에 빙 둘러앉았다.도우미가 다과를 내오자 여은수는 딱딱한 태도를 보이며 천천히 차를 마셨다.“이번엔 무슨 일로 우리 두 사람을 모두 부른 거지?”정안은 지금 이 순간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앞에 계신 두 어르신은 분명 그녀의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그리고 그들도 그녀를 못 알아보고 있었다.정안이 고개를 드니 백진의 시선이 여전히 깊고 어두웠으며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마음이 복잡했다.“두 분 어르신, 죄송합니다.”여은수는 냉소를 지었다.“우리한테 죄송할 건 없어. 사과는 내 손녀에게 해야지.”정안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지만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여은수는 그런 정안을 흘겨보더니 또 코웃음을 쳤다.“두 분 건강은 괜찮으세요?”정안이 또 묻자 여은수가 못마땅해하며 말했다.“용건이나 말하게. 우리가 서로 안부나 물을 정도로 친한 사이인가?”정안은 고개를 숙이고 옷자락을 두 손으로 휘저으며 친할머니의 미운털에 울적하고 서러워하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남하준은 천천히 손을 뻗어 정안의 손가락을 잡고 손바닥에 비비며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백진은 줄곧 말 한마디 없이 정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우리 이혼했어요.”정안이 한껏 가라앉은 기분으로 말했다.여은수는 화들짝 놀라더니 정안을 보고 또 남하준을 바라봤다.“그게 정말인가?”남하준은 애써 화를 꾹꾹 누르며 대답하지 않았다.그는 완자가 이렇게 비천하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었다.결국, 이 사람은 그녀의 가장 친한 가족이었다. 가족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건 잘못이 아니었다.여은수는 환하게 웃으며 손뼉까지 쳤다.“진작 이렇게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말을 마치고는 백진을 슬쩍 밀쳤다.“영감, 말씀 좀 해봐요. 대체 왜 그러고 있어요? 귀신에 홀린 것 마
남하준은 백진의 눈 밑에 솟구치는 감정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을 깨달았다.예리한 백진은 한눈에 자기 손녀를 알아본 것이다.이어 백진은 남하준을 바라보며 정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준아, 잘 돌보거라.”남하준은 진심을 담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여은수는 여전히 언짢아하며 말했다.“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하준이는 우리 하린이랑 결혼할 건데 대체 누구를 잘 돌보라는 거예요?”백진은 여은수를 무시하고 일어서서 말했다.“오늘은 이만 가지. 나중에 시간 나면 다시 모이자고.”여은수는 어리둥절했고 남하준과 정안이 일어나서 공손히 배웅했다.차에 오를 때 백진은 참지 못하고 정안을 다시 한번 돌아봤다.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온정이 가득했지만 허탈함이 묻어났다.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떠나고 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 만나는 게 아니었어.”정안도 후회스럽기는 마찬가지였고 괴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가 나 알아보실 줄 몰랐어요.”“할아버지는 예지가 투철한 분이셔. 늘 자신의 눈과 감각을 더 믿는 분이시지.”남하준은 씁쓸하게 웃었다.“하지만 숨겨진 음모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시니까 소문내진 않을 거야.”“네.”“절대 네 할머니께서 알아선 안 돼. 할머니 성격으로는 바로 들통날 거야.”“맞아요, 할머니는 손녀를 정말 아끼는 분이시죠. 다만 IQ가 좀 부족할 뿐이니 원망하지 않아요.”남하준은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그녀가 괴롭다는 것을 알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정안은 남자의 따듯한 품에 기대 천천히 눈을 감았고 은은한 고통이 점차 가라앉는 것 같았다....백씨 저택.백하린은 소파에 틀어박혀 육포를 뜯으며 하하호호 예능을 재밌게 보고 있었다.천금 같은 재벌가 아가씨로 지내는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즐거웠다.그녀의 모습에 백인호는 문득 화가 치밀어 올라 계단을 내려가 백하린의 손에 쥐어진 쇠고기 육포를 잡아채서 냅다 던지더니 낮은 소리로 꾸짖었다.“
백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인호는 음흉한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다음 날 아침.남하준은 공무에 바빠 일찍 집을 나갔고 정안은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서다인 씨, 저는 백진 어르신 비서입니다. 어르신께서 다인 씨를 한번 뵙고자 회사로 한번 오라고 하시네요.”“할아버지께서 저를요?”“네, 제가 차로 모시러 가겠습니다.”만약을 대비해 정안은 상대방이 차를 보내는 걸 거절했다.“주소가 어디죠? 제가 직접 갈게요.”“네, 그럼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정안은 주소를 받은 후 즉시 준비하고 외출했다.그리고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승용차가 넓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정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그녀를 사무실로 따로 불러들인 건 분명 무슨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사모님, 따로 백진 어르신을 뵈러 간다고 도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정안은 휴대전화를 꺼내 다이얼을 돌렸다.이때 운전하던 경호원이 긴장하며 말했다.“사모님, 뒤에 차량 두 대가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정안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뒤에 있는 차 두 대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당장이라도 부딪칠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다.“사모님, 꽉 잡으세요.”경호원이 소리를 지르며 액셀을 세게 밟았다.정안은 관성으로 앞으로 부딪혔고 휴대전화는 차 밑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차량은 이미 대로에서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이 순간, 정안은 그녀의 처지가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나가도 그녀를 해치려는 신비한 세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경호원은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차량은 큰길에서 빠른 속도로 질주했고 매 순간 짜릿하고 위험했다.“도련님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