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인호는 음흉한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가장자리에 서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다음 날 아침.남하준은 공무에 바빠 일찍 집을 나갔고 정안은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서다인 씨, 저는 백진 어르신 비서입니다. 어르신께서 다인 씨를 한번 뵙고자 회사로 한번 오라고 하시네요.”“할아버지께서 저를요?”“네, 제가 차로 모시러 가겠습니다.”만약을 대비해 정안은 상대방이 차를 보내는 걸 거절했다.“주소가 어디죠? 제가 직접 갈게요.”“네, 그럼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정안은 주소를 받은 후 즉시 준비하고 외출했다.그리고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승용차가 넓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정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할아버지가 그녀를 사무실로 따로 불러들인 건 분명 무슨 중요한 일이 있을 것 같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사모님, 따로 백진 어르신을 뵈러 간다고 도련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정안은 휴대전화를 꺼내 다이얼을 돌렸다.이때 운전하던 경호원이 긴장하며 말했다.“사모님, 뒤에 차량 두 대가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정안은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뒤에 있는 차 두 대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당장이라도 부딪칠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다.“사모님, 꽉 잡으세요.”경호원이 소리를 지르며 액셀을 세게 밟았다.정안은 관성으로 앞으로 부딪혔고 휴대전화는 차 밑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차량은 이미 대로에서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었다.이 순간, 정안은 그녀의 처지가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나가도 그녀를 해치려는 신비한 세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경호원은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남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차량은 큰길에서 빠른 속도로 질주했고 매 순간 짜릿하고 위험했다.“도련님
앞길이 점점 더 외지고 있었다.정안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삼촌, 길 잘못 들어선 거 아니에요?”“아니.”백인호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긴... 어디죠?”정안은 부모님을 돌아보니 언제부터인지 그들은 이미 기절해 있었다.“아빠, 엄마... 일어나 봐요.”“삼촌...”차량이 멈추고 백인호는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밖으로 끌어냈다.온몸에 힘이 빠져 저항할 수 없었던 정안은 백인호에게 안겨 떠나고 있었다.그녀가 온 힘을 다해 차량의 방향을 돌아보니 어느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몇 명이 나타나 의식을 잃은 부모님을 차량에서 끌고 나와 외진 정글을 향해 메고 가고 있었다.“아빠, 엄마...”정안은 눈꺼풀이 무거워 감았다가 다시 뜨려고 노력했을 때 몇 줄기 강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바로 병원 수술대의 강렬한 빛이었다.귓가에는 백인호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완자야, 넌 곧 모든 걸 잊게 될 거야.”정안은 다시 눈을 감았고 이번에는 천만 개의 바늘이 그녀의 머리에 꽂힌 것처럼 온몸에 통증을 느꼈다.“완아, 내 말 들려? 조금만 더 버텨. 완아...”남하준의 목소리였다.이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술실 문이 닫히는 듯했고 간호사의 은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호자는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 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발자국 소리, 호흡 소리, 기기 소리, 다양한 미묘한 소리가 정안의 귀에 겹쳤다.너무 아프고 괴로웠다.몸과 영혼이 분리된 것처럼 아프고 또 아팠다.오랜 잠에서 깨어나자 귓가에 다시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남하준의 목소리였다.그녀는 눈을 뜨고 그를 보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빠져 눈꺼풀조차 뜰 수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아침 햇살이 따사로운 이른 아침.정안은 서서히 눈을 뜨고 베란다의 눈 부신 빛을 보며 빛에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그녀는 몸이 무겁게 느껴졌고 고개를 살짝 돌리자 소파 상단에 앉아 잠든 남자가 보였다.그의 뺨은 온통
의사와 간호사가 방으로 우르르 들어가 정안의 병상 앞으로 재빨리 달려가더니 남하준을 밀어내고 서둘러 그녀를 진찰했다.동공을 확인하고, 혈압과 심전도를 측정하고, 손발 반응을 테스트하고, 다양한 증상을 물었다.정안은 의사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고 어디가 아픈지 사실대로 알려줬다.일련의 검사 후에 정안은 남하준이 이미 병실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의사는 병실을 나갔고 간호사가 남아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입구에서 의사가 남하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환자 상태는 이미 호전되었고 신체 기능도 아주 좋아요. 비록 머리를 심하게 다쳤지만 사고능력이 정상인 것으로 보아 아마 후유증은 없을 겁니다.”“기억을 회복한 것 같은데 이것도 정상인가요?”의사는 흐뭇해서 말했다.“외력에 의한 뇌 신경 편향이 인위적인 손상을 복구해 기억을 회복한 건 좋은 일이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네, 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난 후 남하준은 벽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고는 천천히 눈을 감고 잠깐 눈을 붙였다.완자가 깨어난 건 아주 기쁘고 형언할 수 없이 감격스러웠다.하지만 그녀가 기억을 되찾은 후에도 여전히 그와 결혼하고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잠시 후, 병실에 있던 마지막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뒤에야 남하준이 천천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그는 문을 닫고 병상의 정안을 바라보았다.지금의 정안은 이미 베개에 기대어 앉아 얼굴에 혈기가 돌고 맑은 눈으로 차분하게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여자의 눈빛은 깨끗하고 온화하지만 단순했다. 이전의 비천함과 나약함보다는 자신감과 침착함이 더 해졌다.남하준은 가슴이 떨렸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며 천천히 걸어가 의자를 끌어와 그녀 앞에 앉았다.정안은 반달웃음을 짓고 입꼬리를 올려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하준이 목청을 가다듬고 나지막이 물었다.“어디 아픈 데는 없어?”정안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냥 온몸에 힘이 좀 없어요.”남하준은
남하준이 긴장하며 물었다.“그럼 네가 했던 말도 유효한 거야?”정안은 죄책감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이 몇 초는 남하준에게 그야말로 몇 세기처럼 괴로웠다.그의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 쓸쓸하고 무거워 보였고 깊은 두 눈동자가 점차 핏빛을 띠기 시작했다.그는 가슴이 살살 아파서 이미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좋은 일이었다. 그러면 그는 일말의 기대라도 갖게 되니 말이다.한참 후 정안이 덤덤하게 세 글자를 내뱉었다.“아니요.”남하준은 억지로 한 줄기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붉어진 눈 밑에는 이미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그는 애써 침착한 척했다.정안은 남자의 빨갛고 촉촉한 눈과 초췌하고 피곤한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오빠, 피곤해 보이는데 집에 가서 푹 쉬어요.”남하준은 목구멍에 걸린 울컥거림을 가라앉힌 다음 나지막이 물었다.“이제 막 일어났는데 벌써 나 쫓아내는 거야?”“그런 뜻 아니에요.”남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알겠어. 너도 푹 쉬어.”말을 마친 그는 곧장 병실을 떠났다.정안은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자의 피곤함보다는 실망감이 더 느껴졌다.남하준이 떠난 후, 병실에는 두 명의 여자 간병인이 왔고 병실 입구에는 경호원 몇 명이 지키고 있었다.간병인은 정안을 보더니 감개무량해서 말했다.“사모님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하마터면 그 튼튼한 도련님도 쓰러질 뻔했어요.”정안이 긴장해서 물었다.“그 사람이 왜요?”“요 며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병실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으셨어요. 계속 사모님만 쳐다보시면서 잘 드시지도 주무시지도 못하고 살이 많이 빠져 부쩍 수척해지셨죠.”정안은 이불을 꽉 잡고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고 7일 밤낮으로 그녀를 지켰으니 그녀가 깨어난 지금 그는 집에 가서 푹 잘 수 있을 것이다.정안이 마음을 추스르고 물었다.“아주머니, 휴대전화 좀 빌려 주시겠어요?”간병인
“지윤아, 나 너희 집에 가서 묵을게.”“나 계속 호텔에 묵었는데요?”정안은 미간을 찌푸리고 멍해졌다.지윤은 슬쩍 웃더니 천천히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언니 집에 묵으면 안 돼요?”“서다인이란 가짜 신분은 이미 이혼했어. 그래서 우린 부부가 아니야. 나 이제 집 없어.”지윤은 눈을 깜박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언니 돈 많잖아요. 하나 사요.”정안은 어쩔 수 없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여긴 M국이지 Z국이 아니야.”지윤은 자신의 머리를 툭 치며 웃었다.“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언니 자산은 모두 Z국에 있죠. 지금은 서다인의 신분으로 살고 있으니 그렇게 많은 돈을 M국으로 이체하려고 하면 반드시 조사받을 거예요.”정안은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나 1억 2천만 원의 빚이 있어.”“누구한테요?”“남하준.”“언니 전남편?”“응.”“빚은 왜 졌어요?”“친구 아버지 병원비로 빌려줬거든. 난 돈이 없으니까 그 사람 카드에서 빌렸지.”지윤은 고개를 흔들며 긴 한숨을 내쉬더니 정안 옆에 앉아 말했다.“언니도 참. 친구 아버지가 아프시면 바로 언니 남편한테 빌려달라고 하면 되지 언니가 왜 중간에 끼어요? 너무 착해서 탈이야. 기억을 잃고도 그렇게 착했던 거예요?”정안은 눈빛이 어두워져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가라앉은 말투로 중얼거렸다.“나 안 착해. 심지어 죄악이 아주 깊어.”“또 또 시작이네...”지윤은 그녀의 팔짱을 끼고 일어섰다.“가요, 일단 호텔에 묵어요.”두 사람이 방금 병실 입구를 나서자 남하준이 마침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뒤에는 류청과 정호가 따라왔고 그 기세가 위엄했다.정안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했고 지윤은 남하준의 준수하고 위엄 있는 모습에 겁을 먹고 따라서 어리둥절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애틋함이 흘러 넘쳤다.남하준이 다가와 물었다.“좀 괜찮아?”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너 데리러 왔어. 집에 가자.”“아니요. 친구랑 호텔에 묵을 거
“미안해요.”정안이 속삭였고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정호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분개해서 말했다.“반년 동안 저희 도련님이 다인 씨를 얼마나 생각하고...”“닥쳐.”남하준이 낮은 명령으로 정호의 말을 끊었고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걸음 물러서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Z국으로 돌아가려고?”“일단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있는 늑대 두 마리부터 해결하고 돌아가려고요.”남하준은 그녀를 머무르게 하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은 없는 거야?”“아니요.”“네가 좋아하는 남자도 M국으로 데려오면 되잖아. 넌 M국에 남아 가업을 잇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끝까지 모실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정안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그는 눈빛이 흐려지더니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행복해라.”말을 마친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나갔다.류청이 부랴부랴 따라갔지만 화가 난 정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따라가지 못하고 정안 앞에서 노발대발했다.“당신처럼 양심 없는 여자는 본 적이 없어요.”“도련님은 그쪽을 십 년 넘게 사랑했어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목숨 바쳐 열심히 일해서 지금 자리까지 오르신 거고. 다인 씨에게 매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언제나 모든 걸 제쳐두고 목숨 걸고 구했죠. 그리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지난 며칠간 밤새 돌봤고...”옆에 있던 지윤이 분노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그만 해요.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했어요? 자기가 원해서 한 일을 지금 우리 언니한테 보답하라고 강요하는 건 불합리하죠.”정호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지윤을 노려보았다.“그쪽 도련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우리 언니에게 행복하게 지내라고 축복까지 하고 떠났어요. 본인도 보답을 바라지 않는데 그쪽이 왜 여기서 계속 나불거려요?”정호는 화가 나서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말했다.“내가... 못 봐주겠어요.”“아, 그러니까
“정안 언니. 기다려요.”지윤이 다급하게 외치며 헐레벌떡 정안의 곁으로 쫓아와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고개를 숙여 숨을 몰아쉬었다.정호도 쫓아왔다.정안은 할 말을 잃고 남하준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미안하고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원하는 답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없었다.미안하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남하준은 지윤을 힐끗 보더니 정안에게 물었다.“정안? 다른 이름이 있었어?”정안은 얼떨떨해서 자신의 부업들을 생각하며 긴장해서 설명했다.“책을 냈었는데 필명이에요.”책을 냈다니. 그녀는 금기서화에 모두 능통했다.남하준은 그녀를 한참이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역시 넌 변하지 않았네. 여전히 어렸을 때처럼 훌륭해.”말을 마친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문을 열고 차에 올랐고 정호와 류청이 앞 좌석에 올라 차를 몰고 떠났다.멀어져 가는 차량을 바라보는 정안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숨을 고른 지윤이 정안 곁에 다가서며 속삭였다.“언니 설마 저 사람 좋아해요? 저 사람 M국 군전 그룹 수장이자 M국 국방 장군이잖아요.”정안이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맘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안 좋아해.”“그럼 다행이고요. 어휴, 깜짝 놀랐네. 언니가 정말 저 사람 좋아하면 어쩌나 했어요.”“가자.”정안은 성큼성큼 걸어갔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넓은 큰길에서 차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분명 초여름이었는데도 차 안은 한기가 엄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이 감돌았다.칙칙한 얼굴의 남하준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정호는 여전히 분노에 가득 찬 채 운전을 하면서 옆에 있는 류청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정말 너무 화가 나. 도련님은 목숨 걸고 J국에 가서 다인 씨를 구했어. 매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도련님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다인 씨만 돌봤고. 그런데 이게 뭐야? 기억을 회복하더니 제
남하준이 손을 내려 손목시계를 보더니 류청에게 말했다.“백인호 지난 십 년간 행적을 조사해.”“네, 도련님.”“정호, 넌 백하린에게 사람 붙여서 블랙 섀도우랑 어떻게 연락을 취하는지 조사하고.”정호는 내키지 않았다.“도련님...”남하준이 말을 이었다.“백진 어르신 부부에게도 사람 붙여서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게 잘 지키고.”정호는 화가 나서 온몸이 괴로웠다.“도련님, 회사 일로도 이미 충분히 바쁘십니다. 그룹 일만 해도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데 왜 남 집안일까지 간섭하세요? 다인 씨가 도련님을 어떻게 대했는데, 그럴만한 가치 없어요.”남하준은 정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금원으로 향했고 정호와 류청도 차에서 내려 그 뒤를 따랐다.남하준은 거실로 들어가 곧장 서재로 향했다.류청과 정호가 걱정스럽게 따라갔고 정호가 조급해서 외쳤다.“제발 방에 가서 좀 주무세요. 제발요.”“안 피곤해.”그는 피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침대에 눕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눈만 감으면 걷잡을 수 없이 그녀 생각이 나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마음이 아팠다.남하준은 책상에 앉아 자료를 펼치며 말했다.“가서 일 봐.”“도련님!”정호는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고 얼굴이 굳어진 류청은 차마 남하준을 바라볼 수 없었다.남하준은 엄숙하지만 무기력하게 말했다.“나가.”류청과 정호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명령을 받고 고개를 숙이고 떠났다.금원을 나선 정호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 차를 세게 펑 쳤고 소리를 들은 류청이 화들짝 놀라 그를 노려보았다.“뭐야? 차 망가지면 네가 배상할 거야?”정호는 두 손을 허리에 짚고 노기등등해서 말했다.“넌 이 상황에서도 차 걱정이 되니? 도련님은 신이 아니야.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라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한다고. 지금 저 모양이 됐는데 넌 안쓰럽지도 않아?”류청은 한숨을 내쉬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괴로우면 뭐? 술도 안 마시고 자지도 않고 일만 하는데. 미친 듯이 일해야 괴로운 걸 잊을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