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다인은 남하준을 일으켜 앉히고 병상 위의 식판을 놓고 음식을 차려 놓았다.이 정도 부상은 남하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서다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건 단지 서다인에게 보살핌받는 기분을 즐기려고 허약한 척했을 뿐이다.서다인은 음식을 차려 놓고 국을 떠주며 물었다.“아주버님은 왜 J국에 있어요? 가족분들은 5년 전에 집을 나갔다고 하던데 설마 마약 밀매범?”남자는 느릿느릿 말했다.“형이 그런 불법 장사를 하지 않아도 가문 재산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보니까 마약 밀매 두목이랑 거래하는 것 같던데 왜 같이 오지 않았어요?”남하준은 젓가락을 들어 서다인에게 건넸다.“너도 같이 먹어.”“먼저 먹어요.”서다인은 침대 끝에 앉아 찌개를 앞에 놓았다.“같이 먹어.”“네.”서다인은 그가 건네준 젓가락을 받아 음식을 먹으며 잠시 조용해지더니 또 물었다.“당신 형 설마 나쁜 사람은 아니겠죠?”남하준은 움찔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형 경찰대 졸업했어.”서다인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고 곧바로 남태준의 정체를 짐작했다.부정당한 사업으로 돈 벌 필요가 없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잣집 아들.그렇다면 그의 정체는 마약 단속 경찰일 가능성이 높다. 5년 동안 집에 오지 않은 건 마약 단속 경찰에게 가장 위험한 업무인 잠입 수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그래서 돌아올 수 없는 것.“가족분들은 알아요?”“몰라. 알아서도 안 되고.”서다인은 무슨 뜻인지 알아챘고 또 마약 단속 경찰의 위험도 잘 알고 있어 마음이 착잡하고 괴로웠다.남하준은 눈을 들어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보았다.“왜 갑자기 우리 넷째 형한테 관심 가지는 거야?”만약 남태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분명 참혹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생명의 은인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의 형님이라면 더더욱.서다인은 나지막한 말투로 중얼거리더니 계속 고개를 숙여 밥을 먹었다.남자도 더이상 말없이 묵묵히
“어디 가려고요? 내가 부축해 줄게요.”그녀는 남자의 몸이 허약해서 쓰러질까 봐 걱정했다.남하준은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화장실 가는데 그것도 같이 갈래?”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지더니 수줍게 손을 움츠리며 어색해했고 또 남자의 갑작스러운 화에 놀랐다.‘설마 시아주버님이랑 사이가 안 좋나? 넷째 형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네?’“아니요. 가세요.”서다인은 손을 움츠리고 침대로 돌아가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었다.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식사 후 서다인은 깨끗이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고 남하준은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조용한 병실에서 누구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밝고 따뜻하며 찬란했다.서다인은 시도 때도 없이 남하준을 훔쳐보았고 그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아무런 소통도 스킨십도 없이, 그저 옆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서다인은 안심이 되고 만족하고 행복했다.휴대폰이 울리자 서다인이 화면을 보니 약을 먹으라는 알람이었다.서다인은 책을 내려놓고 걸어갔다. “하준 씨, 약 먹을 시간이에요.”남하준은 컴퓨터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너 돌아가 쉬어. 여긴 간호사가 있으니 네가 지키지 않아도 돼.”물을 따르던 서다인의 손이 경직되었다.마음이 좀 불편했다.그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싫을까?서다인은 계속해서 물을 따라 약을 건네주었다.“어차피 나 한가해요. 여기서 당신 돌보고 싶어요.”남하준이 입원한 곳은 VIP 병동으로 병상이 하나뿐이고 간호용 침대가 좁고 딱딱해 휴식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그는 서다인이 여기에서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컴퓨터를 덮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안색이 많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것이 딱 봐도 잘 쉬지 못한 얼굴이었다.남하준은 그녀가 건네준 약을 받았다.“말 들어. 기숙사 가서 쉬어.”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옷자락을 꼬며 침울한 침묵을 지켰다.“돌아
서다인은 두 손으로 머쓱하게 다리를 두드리며 말했다.“당신도요.”그녀는 아쉬운 듯 남자를 몇 번 더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긴 복도를 나온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젖히고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사람은 아프거나 힘들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남하준이 가장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녀를 쫓아낸 건 그의 마음을 충분히 말해주었다고 생각했다.남하준은 그녀가 필요하지 않다.병원을 나온 서다인은 태양을 마주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추웠다.류청이 다가와 서다인을 보며 초조하게 말했다.“사모님 오빠분 오셨어요.”“우리 오빠가요?”류청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무실 건물 응접실에 있어요. 도련님을 만나겠다고 하네요.”서다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사무실 건물로 뛰어갔다.무례한 인간은 많이 봤지만 그녀는 서지석 같은 뻔뻔한 놈은 본 적이 없었다.그가 군전 그룹에 찾아온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화가 난 그녀는 사무실 건물 응접실로 가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지석이 다리를 꼬고 나른하고 건달스럽게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만한 눈빛으로 사무실을 훑어보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다인아, 왔어?”서지석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섰다.“여긴 왜 왔어?”그는 간사하게 웃었다.“나 앞으로 직장도 다니면서 열심히 살려고. 그래서 군전 그룹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매제에게 부탁하러 왔지. 앞으로 매제를 위해 일할 거야.”서다인은 차갑게 비웃으며 들어갔다.“네가 국방대를 졸업했어? 아니면 직업 군인 출신이야?”서지석은 어색하게 미소를 짓더니 뻔뻔하게 말했다.“나 네 친 오빠야. 매제만 동의한다면 나에게 아무 일자리나 주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야?”“낙하산으로 들어오시겠다?”서다인은 이 남자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다. 전에는 친오빠인 줄 알고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서지석은 양손을 비비며 서다인에게 다가가 눈짓했다.“다인아, 전에는 이 오빠가 잘못했어. 마음 넓
서다인은 그의 무례함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류청 씨!”밖에서 기다리던 류청이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사모님, 부르셨습니까?”“이 사람 군전 그룹에서 쫓아내고 앞으로 한 발자국도 들이지 말아요. 만약 감히 억지로 들이닥치거나 입구에서 소란 피운다면 법대로 처리하세요.”“네.”류청이 명을 받고 서지석 곁으로 다가갔다.“가시죠.”서지석은 서다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로 가서 나른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발을 흔들며 눈썹을 찡그리며 건방지게 입을 열었다.“나 안 가. 너희들 수장 불러와. 남하준 아내의 오빠가 찾아왔으니 나 보러오라고 해.”자기 주제도 모르고 얼마나 천연덕스럽고 큰 배짱인가?서다인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조용히 있던 류청은 천천히 권총을 꺼내 범퍼를 당겼다.이 동작에 서지석은 놀라서 얼굴색이 하얗게 굳고 침을 꿀꺽 삼켰다.“사모님 가족이셔서 들여보낸 겁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고 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하시네요. 혹시 군전 그룹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그룹에 몰래 침입해 소란을 피우면 어떻게 될까요?”서지석은 놀라서 몸을 가늘게 떨었고 단정히 앉더니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난 그저 내 매부를 보고 싶은 것뿐이네. 소란 피우지 않았어.”“우리 M국 법에 의하면 군전 그룹에 침입하는 자는 상황에 따라 현장에서 총살할 수 있습니다.”류청의 총은 서지석을 겨누고 있었다.놀란 서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두 손을 쳐들었다.“바... 바로 갈게요. 총... 쏘지 마요.”서지석은 놀라서 숨도 쉬지 못하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서다인의 곁을 지나갈 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서다인의 귀에 이를 갈며 독설을 퍼부었다.“기다려, 나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아.”말을 마친 후, 그는 류청에 의해 군전 그룹을 떠났다.서다인은 화가 잔뜩 치밀어 주먹 쥔 손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은 잠시도 진정되지 않았다.그녀는 서씨 가문에 대
병원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서다인은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을 손에 들고 남하준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소설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까? 아니면 병세에 대해 물어야 할까?어떤 핑계를 대야 그 사람 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다인은 병실 앞에 도착했다.문이 닫히지 않아 그녀의 발걸음이 좀 빨랐고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추었다.병실에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눈에 띄었다.힐끗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녀는 화들짝 놀라 바로 몸을 움츠리고 벽으로 숨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책을 꼭 껴안고 자신도 모르게 책을 힘껏 쫒았다.순간 코가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고개를 젖혀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했지만 심장의 통증에 못 이겨 울고 싶었다.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백하린이 남하준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았다.남하준이 아프다는 것을 그녀가 벌써 알고 아침부터 달려왔다니.귓가에 백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가 어젯밤에 전화해서 나더러 오라고 해서 오늘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이렇게 부상을 입었을 줄이야. 정말 마음 아파.”“나 괜찮아.”“오빠, 나 너무 슬퍼요. 흑흑... 많이 아프죠?”입구 쪽에서 서다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고 멈추지 않던 눈물이 눈가로 흘러내려 그녀의 희끗희끗한 얼굴을 지나 턱에 떨어졌다.뼈에 파고드는 싸늘한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고 가슴 깊은 곳은 칼에 베인 듯 피가 뚝뚝 떨어져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이 결혼에서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끝없는 고통만 느꼈다.그녀는 두 손을 힘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책이 탁하고 땅에 떨어졌다.숨통이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심호흡을 했다.영혼이 빠진 듯 초점 없는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울음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뺨의 눈물을 아무리 닦아내도 눈물샘은 무너진 둑처럼 자꾸 눈물이 차올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병실
서다인은 왜 아직도 안 올까? 오기 싫은 걸까?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남하준은 즉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옷깃을 잡아당기고 등을 단정히 하고 앉았다.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기대 섞인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순간, 기대하던 천국에서 캄캄한 골짜기로 떨어진 기분이었다.서다인이 아닌 류청이었다.“도련님, 백하린은 왜 부르신 거죠?”남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시킨 일을 네가 아직도 끝내지 못했잖아.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어느 세월까지 기다려야겠어?”류청은 비로소 깨닫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남하준은 일어나 천천히 현관으로 가서 긴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았다.그의 마음은 점차 가라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은 너무 괴로웠다.류청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죠?”“하린이가 쓰던 칫솔, 휴지, 머리카락 혹은 손이 벨 기회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DNA를 얻어야지.”“네, 알겠습니다.”남하준은 여전히 현관에 서서 텅 빈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류청은 잠시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어두운 안색을 신기한 듯 살폈고, 다시 그의 시선을 따라 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뭐 보고 계세요?”남하준은 기분이 다운되어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혹시 사모님 기다리십니까?”그는 시선을 거두며 잠자코 병실로 들어갔고 류청이 뒤를 따랐다.남하준은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기다란 손을 소파 등에 걸치고 손가락을 리듬감 있게 두드리며 창밖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그의 안색은 어둡고 눈동자가 흐릿하고 옅은 슬픔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의 괴로움이 병실 전체에 퍼졌다.류청도 마음이 무거워졌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기숙사로 가서 사모님 모셔올까요?”“됐어.”그의 말투는 조금의 온기도 없이 차가웠다.류청이 식탁을 훑어보니 남하준은 점심밥에 손대지도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다.류청은 그가 지금 서다인을 기다리고
다른 하나는 서다인과 백진.이 두 보고서는 모두 그룹 내 병원에서 나온 것으로 100%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두 보고서를 뒤적거리더니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깊은 두 눈동자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조금씩 어둠에 삼켜졌다.두 보고서를 모두 읽은 후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온몸에 살기가 감돌았다. 목에 핏줄이 솟아올랐고 숨결이 어지럽고 거칠었으며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터질 것 같았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퍽하고 던졌고 그의 섬뜩한 기운에 류청은 몸을 떨었다.남하준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화를 애써 억눌렀다.방 전체가 빙하시대로 접어들 만큼 춥고 무서웠다. 류청이 겁에 질려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남하준은 숨이 막히고 괴롭고 분해서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축축한 것을 본 류청은 더욱 놀랐다.남하준과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가 이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슬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살벌한 목소리로 피 묻힌 한을 말하듯 또박또박 말했다.“백인호!”류청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남하준은 주먹을 움켜쥐고 소파에 세게 내리치고는 재빨리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류청이 즉시 따라나섰다.“어디 가십니까?”“안성.”“차 준비할까요? 아니면 비행기로 가시겠어요?”“비행기.”“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안성, 남씨 가문.서다인은 요즘 줄곧 지우의 집에서 지냈다.오늘 그녀의 시어머니 허윤미가 특별히 그녀에게 집에 오라고 했다.그녀가 서둘러 남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남하준의 할머니보다 젊고 강인해 보이며 기품 있고 백발이 가득했지만 우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서다인은 그 노부인을 본 순간, 이유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매우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이 마음
서다인은 여은수가 내민 수표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어르신, 저 돈 필요 없어요. 그러니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여은수는 언짢은 듯 말했다.“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하린이가 나한테 이미 충분히 말했어. 더군다나 하준이는 어릴 적부터 우리 하린이를 좋아했어. 자네는 하린이에 대한 하준이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전혀 몰라.”“내 손녀는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성적도 좋고 총명했어. 하준이는 내 손녀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공부했어. M국 최고의 국방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였지.”“하준이가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전부 우리 하린이 덕이야.”“하린이가 그랬거든. 자기는 로켓과 대포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남자가 좋다고. 하린이가 하준이를 더 멋있고 훌륭하게 만들었는데 자네가 더러운 수단으로 내 손자사위를 빼앗았어!”여은수는 말을 할수록 격앙되어 주먹을 불끈 쥐며 약간 목소리가 떨렸다.“자네가 두 선남선녀의 인연을 망쳤어. 내가 자네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아?”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손톱을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손톱이 비뚤어져도 멈출 수가 없었다.억울하고 괴로운 기운이 가슴에서 솟구치고, 코가 찡하고, 목구멍에 숨이 차고, 눈시울이 흠뻑 젖었다.가슴 끝이 살살 아팠다.너무너무 괴로웠다.너무 괴로워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여은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이보게. 착하게 살게나. 평생 하준이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자네도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나? 하준이한테서 얼마나 받을 수 있나? 나한테 말하면 내가 일시불로 주겠네.”서다인은 한숨을 내쉬고 여은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어르신, 사실 오늘 저를 찾아와 돈을 주지 않으셔도 이미 하준 씨와 이혼하려고 했어요. 이미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고 가정 법원에 가기만 하면 돼요.”여은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서다인을 쳐다보았다.“그게 사실인가?”어르신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고 서다인은 뜻밖에도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 충동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