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방안은 애매한 분위기가 극에 달해 어색해졌다.이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류청이 들어와 서다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사모님 혹시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A형인데 왜 그러세요?”“제 동료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수혈해야 하는데 병원에 A형 혈액이 부족해요. 헌혈 좀 해 주시겠어요?”서다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류청에게 다가갔다. “좋아요. 어서 가죠.”류청은 서다인을 데리고 병실을 떠났다순간 남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졌고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과거의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에 떠올랐다.그는 서다인이 완자라는 사실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모든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고 DNA 결과를 내심이 기다리면 된다.10분 후.병실로 돌아온 서다인은 중얼거렸다.“난 건강하고 아무런 지병도 없는데 왜 피를 이렇게 조금만 뽑지?”그녀가 병상으로 돌아왔을 때 남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뺨을 괴고 다소 창백해진 남하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남자의 이목구비는 깊고 아름다운데 지금 약간 창백해져 더욱 야성적이고 매혹적이었다.하지만 그의 상처를 생각하면 서다인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이제야 남하준의 일이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그는 많은 위험한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외부에 떠도는 그 소문들은 모두 헛소리였다.남하준이 살육에 눈 하나 깜짝하지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해서 아무도 감히 그의 미움을 사지 못한다고 했다.사실 그는 범죄자에게만 단호하고 가차 없는 사람이었다.‘고마워요. 무사히 돌아와 줘서.’서다인은 그에게 이불을 살며시 당겨서 잘 덮어 주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편안하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1박 2일 동안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서다인은 이미 지쳐서 곧 잠이 들었다.얼마가 지났는지 서다인은 배고픔에 잠에서 깼다.눈을 떴을 때, 창문 밖은 캄캄했다.그리고 그녀는 지금 병상에 누워 남하준의 팔을 머리에
서다인은 남하준을 일으켜 앉히고 병상 위의 식판을 놓고 음식을 차려 놓았다.이 정도 부상은 남하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서다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건 단지 서다인에게 보살핌받는 기분을 즐기려고 허약한 척했을 뿐이다.서다인은 음식을 차려 놓고 국을 떠주며 물었다.“아주버님은 왜 J국에 있어요? 가족분들은 5년 전에 집을 나갔다고 하던데 설마 마약 밀매범?”남자는 느릿느릿 말했다.“형이 그런 불법 장사를 하지 않아도 가문 재산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어.”“보니까 마약 밀매 두목이랑 거래하는 것 같던데 왜 같이 오지 않았어요?”남하준은 젓가락을 들어 서다인에게 건넸다.“너도 같이 먹어.”“먼저 먹어요.”서다인은 침대 끝에 앉아 찌개를 앞에 놓았다.“같이 먹어.”“네.”서다인은 그가 건네준 젓가락을 받아 음식을 먹으며 잠시 조용해지더니 또 물었다.“당신 형 설마 나쁜 사람은 아니겠죠?”남하준은 움찔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형 경찰대 졸업했어.”서다인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고 곧바로 남태준의 정체를 짐작했다.부정당한 사업으로 돈 벌 필요가 없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잣집 아들.그렇다면 그의 정체는 마약 단속 경찰일 가능성이 높다. 5년 동안 집에 오지 않은 건 마약 단속 경찰에게 가장 위험한 업무인 잠입 수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그래서 돌아올 수 없는 것.“가족분들은 알아요?”“몰라. 알아서도 안 되고.”서다인은 무슨 뜻인지 알아챘고 또 마약 단속 경찰의 위험도 잘 알고 있어 마음이 착잡하고 괴로웠다.남하준은 눈을 들어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보았다.“왜 갑자기 우리 넷째 형한테 관심 가지는 거야?”만약 남태준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분명 참혹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생명의 은인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의 형님이라면 더더욱.서다인은 나지막한 말투로 중얼거리더니 계속 고개를 숙여 밥을 먹었다.남자도 더이상 말없이 묵묵히
“어디 가려고요? 내가 부축해 줄게요.”그녀는 남자의 몸이 허약해서 쓰러질까 봐 걱정했다.남하준은 고슴도치처럼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화장실 가는데 그것도 같이 갈래?”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지더니 수줍게 손을 움츠리며 어색해했고 또 남자의 갑작스러운 화에 놀랐다.‘설마 시아주버님이랑 사이가 안 좋나? 넷째 형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네?’“아니요. 가세요.”서다인은 손을 움츠리고 침대로 돌아가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었다.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식사 후 서다인은 깨끗이 정리하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고 남하준은 노트북을 들고 업무를 보고 있었다.조용한 병실에서 누구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밝고 따뜻하며 찬란했다.서다인은 시도 때도 없이 남하준을 훔쳐보았고 그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아무런 소통도 스킨십도 없이, 그저 옆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서다인은 안심이 되고 만족하고 행복했다.휴대폰이 울리자 서다인이 화면을 보니 약을 먹으라는 알람이었다.서다인은 책을 내려놓고 걸어갔다. “하준 씨, 약 먹을 시간이에요.”남하준은 컴퓨터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너 돌아가 쉬어. 여긴 간호사가 있으니 네가 지키지 않아도 돼.”물을 따르던 서다인의 손이 경직되었다.마음이 좀 불편했다.그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싫을까?서다인은 계속해서 물을 따라 약을 건네주었다.“어차피 나 한가해요. 여기서 당신 돌보고 싶어요.”남하준이 입원한 곳은 VIP 병동으로 병상이 하나뿐이고 간호용 침대가 좁고 딱딱해 휴식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그는 서다인이 여기에서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컴퓨터를 덮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안색이 많이 창백하고 기운이 없는 것이 딱 봐도 잘 쉬지 못한 얼굴이었다.남하준은 그녀가 건네준 약을 받았다.“말 들어. 기숙사 가서 쉬어.”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옷자락을 꼬며 침울한 침묵을 지켰다.“돌아
서다인은 두 손으로 머쓱하게 다리를 두드리며 말했다.“당신도요.”그녀는 아쉬운 듯 남자를 몇 번 더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긴 복도를 나온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젖히고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사람은 아프거나 힘들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남하준이 가장 보살핌이 필요한 상황에서 그녀를 쫓아낸 건 그의 마음을 충분히 말해주었다고 생각했다.남하준은 그녀가 필요하지 않다.병원을 나온 서다인은 태양을 마주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추웠다.류청이 다가와 서다인을 보며 초조하게 말했다.“사모님 오빠분 오셨어요.”“우리 오빠가요?”류청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무실 건물 응접실에 있어요. 도련님을 만나겠다고 하네요.”서다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사무실 건물로 뛰어갔다.무례한 인간은 많이 봤지만 그녀는 서지석 같은 뻔뻔한 놈은 본 적이 없었다.그가 군전 그룹에 찾아온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화가 난 그녀는 사무실 건물 응접실로 가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지석이 다리를 꼬고 나른하고 건달스럽게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만한 눈빛으로 사무실을 훑어보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다인아, 왔어?”서지석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섰다.“여긴 왜 왔어?”그는 간사하게 웃었다.“나 앞으로 직장도 다니면서 열심히 살려고. 그래서 군전 그룹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매제에게 부탁하러 왔지. 앞으로 매제를 위해 일할 거야.”서다인은 차갑게 비웃으며 들어갔다.“네가 국방대를 졸업했어? 아니면 직업 군인 출신이야?”서지석은 어색하게 미소를 짓더니 뻔뻔하게 말했다.“나 네 친 오빠야. 매제만 동의한다면 나에게 아무 일자리나 주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야?”“낙하산으로 들어오시겠다?”서다인은 이 남자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했다. 전에는 친오빠인 줄 알고 감옥에 보내지 않았다.서지석은 양손을 비비며 서다인에게 다가가 눈짓했다.“다인아, 전에는 이 오빠가 잘못했어. 마음 넓
서다인은 그의 무례함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류청 씨!”밖에서 기다리던 류청이 들어와 공손히 말했다.“사모님, 부르셨습니까?”“이 사람 군전 그룹에서 쫓아내고 앞으로 한 발자국도 들이지 말아요. 만약 감히 억지로 들이닥치거나 입구에서 소란 피운다면 법대로 처리하세요.”“네.”류청이 명을 받고 서지석 곁으로 다가갔다.“가시죠.”서지석은 서다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로 가서 나른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발을 흔들며 눈썹을 찡그리며 건방지게 입을 열었다.“나 안 가. 너희들 수장 불러와. 남하준 아내의 오빠가 찾아왔으니 나 보러오라고 해.”자기 주제도 모르고 얼마나 천연덕스럽고 큰 배짱인가?서다인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조용히 있던 류청은 천천히 권총을 꺼내 범퍼를 당겼다.이 동작에 서지석은 놀라서 얼굴색이 하얗게 굳고 침을 꿀꺽 삼켰다.“사모님 가족이셔서 들여보낸 겁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시고 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하시네요. 혹시 군전 그룹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그룹에 몰래 침입해 소란을 피우면 어떻게 될까요?”서지석은 놀라서 몸을 가늘게 떨었고 단정히 앉더니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난 그저 내 매부를 보고 싶은 것뿐이네. 소란 피우지 않았어.”“우리 M국 법에 의하면 군전 그룹에 침입하는 자는 상황에 따라 현장에서 총살할 수 있습니다.”류청의 총은 서지석을 겨누고 있었다.놀란 서지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두 손을 쳐들었다.“바... 바로 갈게요. 총... 쏘지 마요.”서지석은 놀라서 숨도 쉬지 못하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서다인의 곁을 지나갈 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서다인의 귀에 이를 갈며 독설을 퍼부었다.“기다려, 나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아.”말을 마친 후, 그는 류청에 의해 군전 그룹을 떠났다.서다인은 화가 잔뜩 치밀어 주먹 쥔 손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은 잠시도 진정되지 않았다.그녀는 서씨 가문에 대
병원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서다인은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을 손에 들고 남하준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소설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까? 아니면 병세에 대해 물어야 할까?어떤 핑계를 대야 그 사람 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다인은 병실 앞에 도착했다.문이 닫히지 않아 그녀의 발걸음이 좀 빨랐고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추었다.병실에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눈에 띄었다.힐끗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녀는 화들짝 놀라 바로 몸을 움츠리고 벽으로 숨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책을 꼭 껴안고 자신도 모르게 책을 힘껏 쫒았다.순간 코가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고개를 젖혀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했지만 심장의 통증에 못 이겨 울고 싶었다.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백하린이 남하준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았다.남하준이 아프다는 것을 그녀가 벌써 알고 아침부터 달려왔다니.귓가에 백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가 어젯밤에 전화해서 나더러 오라고 해서 오늘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이렇게 부상을 입었을 줄이야. 정말 마음 아파.”“나 괜찮아.”“오빠, 나 너무 슬퍼요. 흑흑... 많이 아프죠?”입구 쪽에서 서다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고 멈추지 않던 눈물이 눈가로 흘러내려 그녀의 희끗희끗한 얼굴을 지나 턱에 떨어졌다.뼈에 파고드는 싸늘한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고 가슴 깊은 곳은 칼에 베인 듯 피가 뚝뚝 떨어져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이 결혼에서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끝없는 고통만 느꼈다.그녀는 두 손을 힘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책이 탁하고 땅에 떨어졌다.숨통이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심호흡을 했다.영혼이 빠진 듯 초점 없는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울음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뺨의 눈물을 아무리 닦아내도 눈물샘은 무너진 둑처럼 자꾸 눈물이 차올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병실
서다인은 왜 아직도 안 올까? 오기 싫은 걸까?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남하준은 즉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옷깃을 잡아당기고 등을 단정히 하고 앉았다.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기대 섞인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순간, 기대하던 천국에서 캄캄한 골짜기로 떨어진 기분이었다.서다인이 아닌 류청이었다.“도련님, 백하린은 왜 부르신 거죠?”남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시킨 일을 네가 아직도 끝내지 못했잖아.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어느 세월까지 기다려야겠어?”류청은 비로소 깨닫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남하준은 일어나 천천히 현관으로 가서 긴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았다.그의 마음은 점차 가라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은 너무 괴로웠다.류청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죠?”“하린이가 쓰던 칫솔, 휴지, 머리카락 혹은 손이 벨 기회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DNA를 얻어야지.”“네, 알겠습니다.”남하준은 여전히 현관에 서서 텅 빈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류청은 잠시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어두운 안색을 신기한 듯 살폈고, 다시 그의 시선을 따라 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뭐 보고 계세요?”남하준은 기분이 다운되어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혹시 사모님 기다리십니까?”그는 시선을 거두며 잠자코 병실로 들어갔고 류청이 뒤를 따랐다.남하준은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기다란 손을 소파 등에 걸치고 손가락을 리듬감 있게 두드리며 창밖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그의 안색은 어둡고 눈동자가 흐릿하고 옅은 슬픔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의 괴로움이 병실 전체에 퍼졌다.류청도 마음이 무거워졌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기숙사로 가서 사모님 모셔올까요?”“됐어.”그의 말투는 조금의 온기도 없이 차가웠다.류청이 식탁을 훑어보니 남하준은 점심밥에 손대지도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다.류청은 그가 지금 서다인을 기다리고
다른 하나는 서다인과 백진.이 두 보고서는 모두 그룹 내 병원에서 나온 것으로 100%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두 보고서를 뒤적거리더니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깊은 두 눈동자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조금씩 어둠에 삼켜졌다.두 보고서를 모두 읽은 후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온몸에 살기가 감돌았다. 목에 핏줄이 솟아올랐고 숨결이 어지럽고 거칠었으며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터질 것 같았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퍽하고 던졌고 그의 섬뜩한 기운에 류청은 몸을 떨었다.남하준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화를 애써 억눌렀다.방 전체가 빙하시대로 접어들 만큼 춥고 무서웠다. 류청이 겁에 질려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남하준은 숨이 막히고 괴롭고 분해서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축축한 것을 본 류청은 더욱 놀랐다.남하준과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가 이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슬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살벌한 목소리로 피 묻힌 한을 말하듯 또박또박 말했다.“백인호!”류청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남하준은 주먹을 움켜쥐고 소파에 세게 내리치고는 재빨리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류청이 즉시 따라나섰다.“어디 가십니까?”“안성.”“차 준비할까요? 아니면 비행기로 가시겠어요?”“비행기.”“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안성, 남씨 가문.서다인은 요즘 줄곧 지우의 집에서 지냈다.오늘 그녀의 시어머니 허윤미가 특별히 그녀에게 집에 오라고 했다.그녀가 서둘러 남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남하준의 할머니보다 젊고 강인해 보이며 기품 있고 백발이 가득했지만 우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서다인은 그 노부인을 본 순간, 이유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매우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이 마음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