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하나는 서다인과 백진.이 두 보고서는 모두 그룹 내 병원에서 나온 것으로 100%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두 보고서를 뒤적거리더니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깊은 두 눈동자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조금씩 어둠에 삼켜졌다.두 보고서를 모두 읽은 후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온몸에 살기가 감돌았다. 목에 핏줄이 솟아올랐고 숨결이 어지럽고 거칠었으며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터질 것 같았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퍽하고 던졌고 그의 섬뜩한 기운에 류청은 몸을 떨었다.남하준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화를 애써 억눌렀다.방 전체가 빙하시대로 접어들 만큼 춥고 무서웠다. 류청이 겁에 질려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남하준은 숨이 막히고 괴롭고 분해서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축축한 것을 본 류청은 더욱 놀랐다.남하준과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가 이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슬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살벌한 목소리로 피 묻힌 한을 말하듯 또박또박 말했다.“백인호!”류청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남하준은 주먹을 움켜쥐고 소파에 세게 내리치고는 재빨리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류청이 즉시 따라나섰다.“어디 가십니까?”“안성.”“차 준비할까요? 아니면 비행기로 가시겠어요?”“비행기.”“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안성, 남씨 가문.서다인은 요즘 줄곧 지우의 집에서 지냈다.오늘 그녀의 시어머니 허윤미가 특별히 그녀에게 집에 오라고 했다.그녀가 서둘러 남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남하준의 할머니보다 젊고 강인해 보이며 기품 있고 백발이 가득했지만 우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서다인은 그 노부인을 본 순간, 이유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매우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이 마음
서다인은 여은수가 내민 수표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어르신, 저 돈 필요 없어요. 그러니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여은수는 언짢은 듯 말했다.“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하린이가 나한테 이미 충분히 말했어. 더군다나 하준이는 어릴 적부터 우리 하린이를 좋아했어. 자네는 하린이에 대한 하준이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전혀 몰라.”“내 손녀는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성적도 좋고 총명했어. 하준이는 내 손녀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공부했어. M국 최고의 국방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였지.”“하준이가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전부 우리 하린이 덕이야.”“하린이가 그랬거든. 자기는 로켓과 대포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남자가 좋다고. 하린이가 하준이를 더 멋있고 훌륭하게 만들었는데 자네가 더러운 수단으로 내 손자사위를 빼앗았어!”여은수는 말을 할수록 격앙되어 주먹을 불끈 쥐며 약간 목소리가 떨렸다.“자네가 두 선남선녀의 인연을 망쳤어. 내가 자네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아?”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손톱을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손톱이 비뚤어져도 멈출 수가 없었다.억울하고 괴로운 기운이 가슴에서 솟구치고, 코가 찡하고, 목구멍에 숨이 차고, 눈시울이 흠뻑 젖었다.가슴 끝이 살살 아팠다.너무너무 괴로웠다.너무 괴로워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여은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이보게. 착하게 살게나. 평생 하준이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자네도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나? 하준이한테서 얼마나 받을 수 있나? 나한테 말하면 내가 일시불로 주겠네.”서다인은 한숨을 내쉬고 여은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어르신, 사실 오늘 저를 찾아와 돈을 주지 않으셔도 이미 하준 씨와 이혼하려고 했어요. 이미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고 가정 법원에 가기만 하면 돼요.”여은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서다인을 쳐다보았다.“그게 사실인가?”어르신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고 서다인은 뜻밖에도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 충동
남하준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여은수는 서둘러 수표를 집어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도둑 제 발 저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남하준은 억울한 표정을 짓는 서다인의 모습을 보며 왜 여은수가 서다인을 찾아가 독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서다인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하준아, 며칠 전에 우리 하린이를 군전 그룹으로 불렀잖아. 오늘 같이 안 왔어?”남자는 덤덤하게 대답했다.“아니요.”“왜 같이 오지 않고? 네가 없는 국경지대에서 하린이 혼자 얼마나 위험하겠어?”남하준은 침묵했고 여은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혹시 이혼하러 온 거니? 바로 돌아갈 거라 우리 손녀 힘들까 봐 같이 안 온 거야?”“할머니.”남하준은 말투가 무거워졌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녀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역시 우리 하준이는 생각이 깊어. 그럼 이만 방해 안 하마. 좋은 소식 기다릴게.”말을 마친 그녀는 은근히 기뻐하며 소파에서 나와 문 쪽으로 걸어갔다.소파 위의 핸드백을 본 서다인은 급히 들고 몇 걸음 뒤쫓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여기 가방이요.” 여은수는 갑자기 움찔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경악하며 돌아서 놀란 눈으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갑작스런 반응에 놀란 서다인은 그녀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해서 할머니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줄 몰랐다.“자네... 방금 한 말 다시 한번 해봐.”여은수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이상하게 생각한 서다인은 그녀에게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여기 가방이요.”여은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할머니라고 다시 한번 불러보라고.”서다인은 그제야 급한 마음에 호칭을 잘못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죄송해요. 어르신. 제가 방금 너무 급해서요.”여은수는 방금 그 익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녀와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고, 쉬는 동안에만 1년에 두세 번 통화했다.그래서 음성 식별이 정확하지 않지만 방금 서다인이 할머니
서재로 들어선 남하준은 여은수를 소파에 앉히고 엄숙하게 물었다.“할머니, 완자가 출국한 10년 동안 만난 적 있으세요?”“아니, 하린이 학업이 너무 바빠서 귀국할 시간도 없었어. 하지만 통화는 자주 했어.”“영상 통화요?”“영상 통화도 했지만 극히 드물었지.”“언제부터 완자 모습이 많이 달라진 걸 발견하셨죠?”여은수는 수상쩍은 표정으로 남하준에게 다가앉았다.“그건 왜 묻는데?”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대답해주세요. 완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그래요.”여은수는 그가 손녀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아낌없이 말했다.“아마 3년 전이었지? 그때 하린이랑 1~2년 만에 영상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통통하던 얼굴이 뾰족해서 우리가 얼마나 안쓰러워 했다고.”“하지만 하린이는 너무 앳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했어. 그리고 일이 너무 바빠 살이 빠진 것도 있고.”“그때 아드님 내외도 같이 영상에 나왔나요?”“그래,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 그리고 양아들 백인호까지 함께 설을 쇠면서 우리에게 새해 인사도 했어.”남하준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마침내 백진과 여은수가 왜 백하린의 정체를 의심한 적이 없는지 깨달았다.짝퉁 완자가 완자의 부모님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다.“당시 아드님과 며느리분 반응은 어땠어요? 이상한 점은요? 긴장하거나 불안하다거나... 혹은 기쁘지 않다거나?”여은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오래돼서 까먹었어.”“그런 영상 통화를 몇 번이나 하셨어요?”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은수는 목이 메었다.“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예감했는지 그달에는 우리에게 자주 영상 통화를 걸었어. 우리 손녀가 앞으로 귀국해 나랑 영감에게 잘 효도할 거라고 하더군.”“그런데 한 달도 안 돼 아들과 며느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리가 M국에 도착했을 때는 묘비만 봤지.”여은수는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당황한 남하준은 급히 휴지를 꺼내 여은수에게 건넸고 차마 그녀
만약 짝퉁과 백인호가 잡히기 전에 완자의 신분을 회복하고 그녀를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 만든다면 완자의 처지는 더 위험해질 것이다.남하준은 완자의 직업이 대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국적을 몰래 Z국으로 옮겨야 하고, 1년에 열 달씩 일하면서 가족과 연락도 못 하고, 10년 동안 귀국도 못 했다.“할머니, 완자 그때 무슨 일 했어요?”“너 요즘 하린이랑 자주 만나잖아? 직접 물어보면 되지?”남하준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저한테 말하려 하지 않아요.”여은수는 가볍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나뿐만 아니라, 하린이 삼촌 그리고 부모조차 하린이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어. 월급은 많지 않은데 아주 고되게 일했지. 하지만 확실한 건 분명 Z국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었어.”정부를 돕는 일에 보안이 이 정도로 철저하다면, 남하준이 추측할 수 있는 건 그의 넷째 형과 같은 직업, 바로 스파이었다.하지만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없는 듯했다.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남하준은 여은수를 데리고 서재에서 나왔다.두 사람이 거실을 지나갈 때, 서다인은 이미 소파에 없었다.남하준은 조급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여은수를 배웅하고 나서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류청에게 물었다.류청은 서다인이 외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남하준은 부랴부랴 거실로 뛰어들어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그는 아주 급했다.방 안의 서다인은 놀라서 멍하니 책더미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의 안색을 살폈다.“이... 책들을 사놓고 미처 보지 못해서 몇 권 가져가 보려고요.”남하준은 심장이 욱신거리고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띠며 눈시울을 붉혔다.그가 사랑하는 완자는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었다.여전히 어렸을 때처럼 참하고 똑똑하고 강인하며 공부와 독서를 좋아했다.대체 왜 전에는 몰랐을까?그녀가 이렇게 많은 억울함과 고난을 겪고 있는지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남하준은 문을 닫고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보고 싶으면 그냥 집에서 봐.”이 말
“왜?”“이혼하러 가야죠.”남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온몸의 냉기가 점차 강해지더니 서다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그가 너무 가까이 오자 서다인은 긴장해서 뒤로 걸음을 옮겼다.“다른 일은 네가 말만 하면 시간 낼 수 있는데 이혼할 시간은 없어.”서다인은 화가 나서 코웃음을 쳤고 불쾌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당신 원래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어요? 지난번에 정호 씨가 사고 안 났으면 우리 진작 이혼했어요. 겨우 며칠 사이에 또 마음이 변한 거예요?”남하준은 붉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일렁이는 사랑을 억누르며 덤덤하게 말했다.“응, 생각이 바뀌었어. 이혼하고 싶으면 기억부터 회복해.”“기억을 회복하고도 나랑 부부로 살기 싫다면 이혼하자.”“만약 기억을 되찾고 나랑 부부로 살고 싶다면...”그래도 이혼해야 한다는 말을 남하준은 끝내 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다가 중얼거렸다.“계속 부부로 살자.”서다인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화가 나서 온몸을 가늘게 떨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하준, 당신 미쳤어요? 불륜이 그렇게 좋아요? 정정당당하게 백하린이랑 만날 기회를 주는데도 굳이 나랑 결혼생활을 유지해야겠어요? 내가 두 사람 사이에서 쩔쩔매는 제삼자가 돼야 더 자극적인가요?”남하준은 얼굴이 어두워지고 멍해졌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쓰레기 같은 인간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애써 참았다.“이혼하지 않겠다면 법정에서 보죠.”서다인은 분한 듯 그 말을 내팽개치고 그 옆을 스쳐 문으로 향했다.남하준은 황급히 몸을 돌려 서다인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다인아, 이러지 마.”그녀는 상처 입은 고슴도치처럼 몸에 있는 모든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남하준의 손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며 울먹였다.“남하준, 이거 놔... 미워... 당신이 너무 미워!”남하준은 뻣뻣하게 서서 움직일 수 없었고, 심장에 큰 구멍이 뚫린 듯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사지가 저렸다.그는 눈시울이 붉어
남하준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너.”“나요?”서다인은 경악했다. 방금 폭발했던 분노가 남자의 대답에 순간 사그라지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잘못 듣거나 잘못 이해한 걸까?남하준은 진지한 태도로 붉게 물든 눈동자를 뜨겁게 달구며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이혼 안 하는 이유는 단 하나야. 난 널 원해.”서다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심박 수가 순간 200으로 치솟은 것 같았고 호흡이 흐트러졌다. 놀라움보다는 믿기지 않음이 더 컸다.그녀는 마음이 심란하고 얼굴이 덩달아 뜨거워지며 말조차 더듬었다.“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그 말을 백하린 앞에서도 할 수 있어요? 얼마나 우스운지 아냐고요?”남하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투가 약간 엄숙해졌다.“누구 앞에서든 너랑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어. 난 너랑 함께하고 싶어. 이게 왜 우스운 거야?”서다인은 남자의 직설적인 화법에 잠시 정신이 팔려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다.남하준이 자신을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백하린을 여전히 사랑하는 건 사실일 것이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속의 격동을 억누르고는 평온하게 비꼬았다.“나랑 이혼하고 싶진 않지만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백하린이라 인연을 끊을 수 없다? 당신 원래 이렇게 쓰레기였어요?”남하준은 그녀의 손을 놓아주고 짜증 나고 고통스러워 자신의 짧은 머리를 쥐어짜더니 침대로 돌아서서 허리를 굽혀 이마를 짚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그의 넓은 두 어깨는 매우 무겁고 쓸쓸하며 온몸에 희미한 슬픔이 감돌고 있었다.너무 힘들었다. 그는 연애 경험도 없고, 여자의 마음도 몰랐다. 게다가 상대는 기억을 잃은 여자였다.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여전히 의심을 받다니.서다인은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그는 지금 결혼과 백하린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걸까?“그만 고민해요. 백하린을 포기할 필요도 없어요. 난 애초부터 이런 결혼 원하지 않았어요.”말을 마친 서다인이 문으로 가서 막 문고리를 잡아당겼는데 남하
남하준의 분노를 일으켜 그녀를 때리게 하라고?그건 죽음을 자초하는 격이었다.서다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그건 안 되죠. 그 사람 주먹 한 방이면 난 바로 저세상 갈지도 몰라요.”“만약 남편에게 외도, 가정 폭력, 마약 흡입 행위가 없다면 다인 씨는 이혼을 제기할 권리가 없어요. 법원에 가도 반환될 것이고 재판도 열리지 않을 거예요.”“하지만 전에는 제가 이혼소송을 걸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그건 다인 씨가 남편분에게 여자가 있다고 해서 증거가 있는 줄 알았죠.”서다인은 자신의 태도가 무례했다는 것을 깨닫고 연신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네요. 바로 증거 수집하겠습니다.”“조심해요.”“감사합니다.”서다인은 전화를 끊고 차 안에 머리를 기대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차에서 내려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다.30분 후, 서다인은 다시 남씨 별장으로 돌아갔다.그녀가 별장에 막 발을 들여놓았을 때, 셋째 내외가 집으로 이사 와서 시부님이 기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들을 거실에 앉혀 놓고 안부를 묻고 있었다.서다인은 현관에 서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셋째 내외는 줄곧 그녀를 못마땅하게 보고 무시하며 그녀를 매우 배척했다.이번에도 그녀 때문에 이사를 가지 않을까?서다인이 고민하는 사이, 유가영이 유유자적하게 그녀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형님.”“무슨 생각해?”유가영이 웃는 듯 마는 듯 물었다.서다인은 씁쓸하게 입술을 오므리고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물었다.“왜 셋째 아주버님은 저를 싫어할까요?”유가영은 눈웃음을 짓더니 서다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셋째 도련님은 집안에서 발언권이 없기로 유명해. 추측건대 도련님은 너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어. 다만 모든 게 아내 중심인 사람이라 자기 아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도련님도 싫은 거지. 별다른 이유는 없어.”“그럼 셋째 형님은 왜 저를 싫어할까요 제 신분과 과거 때문에?”유가영은 서다인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