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서다인은 그녀가 좋아하는 소설을 손에 들고 남하준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소설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할까? 아니면 병세에 대해 물어야 할까?어떤 핑계를 대야 그 사람 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서다인은 병실 앞에 도착했다.문이 닫히지 않아 그녀의 발걸음이 좀 빨랐고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추었다.병실에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가 눈에 띄었다.힐끗 훑어보았을 뿐이지만 그녀는 화들짝 놀라 바로 몸을 움츠리고 벽으로 숨었다.그녀는 두 손으로 책을 꼭 껴안고 자신도 모르게 책을 힘껏 쫒았다.순간 코가 찡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그녀는 고개를 젖혀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했지만 심장의 통증에 못 이겨 울고 싶었다.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백하린이 남하준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확실히 보았다.남하준이 아프다는 것을 그녀가 벌써 알고 아침부터 달려왔다니.귓가에 백하린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빠가 어젯밤에 전화해서 나더러 오라고 해서 오늘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이렇게 부상을 입었을 줄이야. 정말 마음 아파.”“나 괜찮아.”“오빠, 나 너무 슬퍼요. 흑흑... 많이 아프죠?”입구 쪽에서 서다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고 멈추지 않던 눈물이 눈가로 흘러내려 그녀의 희끗희끗한 얼굴을 지나 턱에 떨어졌다.뼈에 파고드는 싸늘한 한기가 몸을 파고들었고 가슴 깊은 곳은 칼에 베인 듯 피가 뚝뚝 떨어져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몰려왔다.이 결혼에서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끝없는 고통만 느꼈다.그녀는 두 손을 힘없이 아래로 늘어뜨리고 책이 탁하고 땅에 떨어졌다.숨통이 막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아 심호흡을 했다.영혼이 빠진 듯 초점 없는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울음을 참으며 앞으로 걸어갔다.그녀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닦았다.뺨의 눈물을 아무리 닦아내도 눈물샘은 무너진 둑처럼 자꾸 눈물이 차올라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병실
서다인은 왜 아직도 안 올까? 오기 싫은 걸까?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남하준은 즉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옷깃을 잡아당기고 등을 단정히 하고 앉았다.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기대 섞인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바라보았다.순간, 기대하던 천국에서 캄캄한 골짜기로 떨어진 기분이었다.서다인이 아닌 류청이었다.“도련님, 백하린은 왜 부르신 거죠?”남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시킨 일을 네가 아직도 끝내지 못했잖아.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어느 세월까지 기다려야겠어?”류청은 비로소 깨닫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남하준은 일어나 천천히 현관으로 가서 긴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았다.그의 마음은 점차 가라앉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느낌은 너무 괴로웠다.류청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죠?”“하린이가 쓰던 칫솔, 휴지, 머리카락 혹은 손이 벨 기회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DNA를 얻어야지.”“네, 알겠습니다.”남하준은 여전히 현관에 서서 텅 빈 복도를 바라보고 있었다.류청은 잠시 그의 곁에 서서 그의 어두운 안색을 신기한 듯 살폈고, 다시 그의 시선을 따라 긴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뭐 보고 계세요?”남하준은 기분이 다운되어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혹시 사모님 기다리십니까?”그는 시선을 거두며 잠자코 병실로 들어갔고 류청이 뒤를 따랐다.남하준은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기다란 손을 소파 등에 걸치고 손가락을 리듬감 있게 두드리며 창밖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그의 안색은 어둡고 눈동자가 흐릿하고 옅은 슬픔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의 괴로움이 병실 전체에 퍼졌다.류청도 마음이 무거워졌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기숙사로 가서 사모님 모셔올까요?”“됐어.”그의 말투는 조금의 온기도 없이 차가웠다.류청이 식탁을 훑어보니 남하준은 점심밥에 손대지도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다.류청은 그가 지금 서다인을 기다리고
다른 하나는 서다인과 백진.이 두 보고서는 모두 그룹 내 병원에서 나온 것으로 100%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두 보고서를 뒤적거리더니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깊은 두 눈동자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조금씩 어둠에 삼켜졌다.두 보고서를 모두 읽은 후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온몸에 살기가 감돌았다. 목에 핏줄이 솟아올랐고 숨결이 어지럽고 거칠었으며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터질 것 같았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탁자 위에 퍽하고 던졌고 그의 섬뜩한 기운에 류청은 몸을 떨었다.남하준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화를 애써 억눌렀다.방 전체가 빙하시대로 접어들 만큼 춥고 무서웠다. 류청이 겁에 질려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남하준은 숨이 막히고 괴롭고 분해서 뒤로 젖혀 소파에 기대어 천장을 쳐다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축축한 것을 본 류청은 더욱 놀랐다.남하준과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그가 이 정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슬퍼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살벌한 목소리로 피 묻힌 한을 말하듯 또박또박 말했다.“백인호!”류청은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남하준은 주먹을 움켜쥐고 소파에 세게 내리치고는 재빨리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류청이 즉시 따라나섰다.“어디 가십니까?”“안성.”“차 준비할까요? 아니면 비행기로 가시겠어요?”“비행기.”“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안성, 남씨 가문.서다인은 요즘 줄곧 지우의 집에서 지냈다.오늘 그녀의 시어머니 허윤미가 특별히 그녀에게 집에 오라고 했다.그녀가 서둘러 남씨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부인이 앉아 있었다.그녀는 남하준의 할머니보다 젊고 강인해 보이며 기품 있고 백발이 가득했지만 우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서다인은 그 노부인을 본 순간, 이유 없이 심장박동이 빨라졌고 매우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이 마음
서다인은 여은수가 내민 수표를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했다“어르신, 저 돈 필요 없어요. 그러니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여은수는 언짢은 듯 말했다.“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 하린이가 나한테 이미 충분히 말했어. 더군다나 하준이는 어릴 적부터 우리 하린이를 좋아했어. 자네는 하린이에 대한 하준이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전혀 몰라.”“내 손녀는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성적도 좋고 총명했어. 하준이는 내 손녀에게 걸맞은 상대가 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공부했어. M국 최고의 국방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였지.”“하준이가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전부 우리 하린이 덕이야.”“하린이가 그랬거든. 자기는 로켓과 대포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남자가 좋다고. 하린이가 하준이를 더 멋있고 훌륭하게 만들었는데 자네가 더러운 수단으로 내 손자사위를 빼앗았어!”여은수는 말을 할수록 격앙되어 주먹을 불끈 쥐며 약간 목소리가 떨렸다.“자네가 두 선남선녀의 인연을 망쳤어. 내가 자네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아?”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손톱을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손톱이 비뚤어져도 멈출 수가 없었다.억울하고 괴로운 기운이 가슴에서 솟구치고, 코가 찡하고, 목구멍에 숨이 차고, 눈시울이 흠뻑 젖었다.가슴 끝이 살살 아팠다.너무너무 괴로웠다.너무 괴로워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여은수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이보게. 착하게 살게나. 평생 하준이 마음을 얻지 못하면 자네도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나? 하준이한테서 얼마나 받을 수 있나? 나한테 말하면 내가 일시불로 주겠네.”서다인은 한숨을 내쉬고 여은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어르신, 사실 오늘 저를 찾아와 돈을 주지 않으셔도 이미 하준 씨와 이혼하려고 했어요. 이미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고 가정 법원에 가기만 하면 돼요.”여은수는 순간 환하게 웃으며 서다인을 쳐다보았다.“그게 사실인가?”어르신이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고 서다인은 뜻밖에도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그 충동
남하준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여은수는 서둘러 수표를 집어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도둑 제 발 저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남하준은 억울한 표정을 짓는 서다인의 모습을 보며 왜 여은수가 서다인을 찾아가 독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서다인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하준아, 며칠 전에 우리 하린이를 군전 그룹으로 불렀잖아. 오늘 같이 안 왔어?”남자는 덤덤하게 대답했다.“아니요.”“왜 같이 오지 않고? 네가 없는 국경지대에서 하린이 혼자 얼마나 위험하겠어?”남하준은 침묵했고 여은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혹시 이혼하러 온 거니? 바로 돌아갈 거라 우리 손녀 힘들까 봐 같이 안 온 거야?”“할머니.”남하준은 말투가 무거워졌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그녀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역시 우리 하준이는 생각이 깊어. 그럼 이만 방해 안 하마. 좋은 소식 기다릴게.”말을 마친 그녀는 은근히 기뻐하며 소파에서 나와 문 쪽으로 걸어갔다.소파 위의 핸드백을 본 서다인은 급히 들고 몇 걸음 뒤쫓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 여기 가방이요.” 여은수는 갑자기 움찔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경악하며 돌아서 놀란 눈으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갑작스런 반응에 놀란 서다인은 그녀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해서 할머니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줄 몰랐다.“자네... 방금 한 말 다시 한번 해봐.”여은수의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이상하게 생각한 서다인은 그녀에게 가방을 건네주며 말했다.“여기 가방이요.”여은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할머니라고 다시 한번 불러보라고.”서다인은 그제야 급한 마음에 호칭을 잘못 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죄송해요. 어르신. 제가 방금 너무 급해서요.”여은수는 방금 그 익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녀와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고, 쉬는 동안에만 1년에 두세 번 통화했다.그래서 음성 식별이 정확하지 않지만 방금 서다인이 할머니
서재로 들어선 남하준은 여은수를 소파에 앉히고 엄숙하게 물었다.“할머니, 완자가 출국한 10년 동안 만난 적 있으세요?”“아니, 하린이 학업이 너무 바빠서 귀국할 시간도 없었어. 하지만 통화는 자주 했어.”“영상 통화요?”“영상 통화도 했지만 극히 드물었지.”“언제부터 완자 모습이 많이 달라진 걸 발견하셨죠?”여은수는 수상쩍은 표정으로 남하준에게 다가앉았다.“그건 왜 묻는데?”남하준은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대답해주세요. 완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그래요.”여은수는 그가 손녀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아낌없이 말했다.“아마 3년 전이었지? 그때 하린이랑 1~2년 만에 영상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통통하던 얼굴이 뾰족해서 우리가 얼마나 안쓰러워 했다고.”“하지만 하린이는 너무 앳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성형했어. 그리고 일이 너무 바빠 살이 빠진 것도 있고.”“그때 아드님 내외도 같이 영상에 나왔나요?”“그래,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 그리고 양아들 백인호까지 함께 설을 쇠면서 우리에게 새해 인사도 했어.”남하준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마침내 백진과 여은수가 왜 백하린의 정체를 의심한 적이 없는지 깨달았다.짝퉁 완자가 완자의 부모님과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다.“당시 아드님과 며느리분 반응은 어땠어요? 이상한 점은요? 긴장하거나 불안하다거나... 혹은 기쁘지 않다거나?”여은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오래돼서 까먹었어.”“그런 영상 통화를 몇 번이나 하셨어요?”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은수는 목이 메었다.“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예감했는지 그달에는 우리에게 자주 영상 통화를 걸었어. 우리 손녀가 앞으로 귀국해 나랑 영감에게 잘 효도할 거라고 하더군.”“그런데 한 달도 안 돼 아들과 며느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우리가 M국에 도착했을 때는 묘비만 봤지.”여은수는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당황한 남하준은 급히 휴지를 꺼내 여은수에게 건넸고 차마 그녀
만약 짝퉁과 백인호가 잡히기 전에 완자의 신분을 회복하고 그녀를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 만든다면 완자의 처지는 더 위험해질 것이다.남하준은 완자의 직업이 대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다.국적을 몰래 Z국으로 옮겨야 하고, 1년에 열 달씩 일하면서 가족과 연락도 못 하고, 10년 동안 귀국도 못 했다.“할머니, 완자 그때 무슨 일 했어요?”“너 요즘 하린이랑 자주 만나잖아? 직접 물어보면 되지?”남하준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저한테 말하려 하지 않아요.”여은수는 가볍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나뿐만 아니라, 하린이 삼촌 그리고 부모조차 하린이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어. 월급은 많지 않은데 아주 고되게 일했지. 하지만 확실한 건 분명 Z국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었어.”정부를 돕는 일에 보안이 이 정도로 철저하다면, 남하준이 추측할 수 있는 건 그의 넷째 형과 같은 직업, 바로 스파이었다.하지만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없는 듯했다.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남하준은 여은수를 데리고 서재에서 나왔다.두 사람이 거실을 지나갈 때, 서다인은 이미 소파에 없었다.남하준은 조급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여은수를 배웅하고 나서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류청에게 물었다.류청은 서다인이 외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남하준은 부랴부랴 거실로 뛰어들어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그는 아주 급했다.방 안의 서다인은 놀라서 멍하니 책더미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그의 안색을 살폈다.“이... 책들을 사놓고 미처 보지 못해서 몇 권 가져가 보려고요.”남하준은 심장이 욱신거리고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띠며 눈시울을 붉혔다.그가 사랑하는 완자는 지금까지 변한 적이 없었다.여전히 어렸을 때처럼 참하고 똑똑하고 강인하며 공부와 독서를 좋아했다.대체 왜 전에는 몰랐을까?그녀가 이렇게 많은 억울함과 고난을 겪고 있는지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남하준은 문을 닫고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보고 싶으면 그냥 집에서 봐.”이 말
“왜?”“이혼하러 가야죠.”남하준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온몸의 냉기가 점차 강해지더니 서다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그가 너무 가까이 오자 서다인은 긴장해서 뒤로 걸음을 옮겼다.“다른 일은 네가 말만 하면 시간 낼 수 있는데 이혼할 시간은 없어.”서다인은 화가 나서 코웃음을 쳤고 불쾌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당신 원래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어요? 지난번에 정호 씨가 사고 안 났으면 우리 진작 이혼했어요. 겨우 며칠 사이에 또 마음이 변한 거예요?”남하준은 붉어진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일렁이는 사랑을 억누르며 덤덤하게 말했다.“응, 생각이 바뀌었어. 이혼하고 싶으면 기억부터 회복해.”“기억을 회복하고도 나랑 부부로 살기 싫다면 이혼하자.”“만약 기억을 되찾고 나랑 부부로 살고 싶다면...”그래도 이혼해야 한다는 말을 남하준은 끝내 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다가 중얼거렸다.“계속 부부로 살자.”서다인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화가 나서 온몸을 가늘게 떨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하준, 당신 미쳤어요? 불륜이 그렇게 좋아요? 정정당당하게 백하린이랑 만날 기회를 주는데도 굳이 나랑 결혼생활을 유지해야겠어요? 내가 두 사람 사이에서 쩔쩔매는 제삼자가 돼야 더 자극적인가요?”남하준은 얼굴이 어두워지고 멍해졌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쓰레기 같은 인간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애써 참았다.“이혼하지 않겠다면 법정에서 보죠.”서다인은 분한 듯 그 말을 내팽개치고 그 옆을 스쳐 문으로 향했다.남하준은 황급히 몸을 돌려 서다인의 팔을 홱 잡아당겼다.“다인아, 이러지 마.”그녀는 상처 입은 고슴도치처럼 몸에 있는 모든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남하준의 손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며 울먹였다.“남하준, 이거 놔... 미워... 당신이 너무 미워!”남하준은 뻣뻣하게 서서 움직일 수 없었고, 심장에 큰 구멍이 뚫린 듯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사지가 저렸다.그는 눈시울이 붉어
남서연은 빠른 걸음으로 뛰어내려 계단 모퉁이에 서서 백건의 뒷모습을 보며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했다.떠들썩한 거실이 폭탄을 떨어뜨린 듯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딱 벌린 채 남서연을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온 집안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드러난 충격이 그에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그는 미친 듯이 심장이 뛰었다.돌아서서 남서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반달 눈을 한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세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 같았다.백건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면 남서연은 그에게 다가갈 용기가 있었다.남서연은 다시 한번 외쳤다.“오빠, 우리 결혼해요.”백건은 눈가가 흠뻑 젖어 그녀를 향해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소리로 대답했다.“좋아!”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남우영이 일어나서 말했다.“난 반대야. 내 삼촌이 내 사촌 동생과 결혼한다니. 이게 말이나 돼?”남창민이 남우영의 손을 덥석 잡아당겨 소파에 앉히고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넌 네 결혼이나 신경 써. 네 삼촌과 서연이 일은 걱정할 필요 없어.”남우영은 고민 끝에 남서연의 아래에 뛰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서연아, 지금 두 사람 농담하는 거지? 두 사람.. 두 사람 늘 차갑고 낯선 사이였잖아? 갑자기 결혼이라니? 너 진우석이랑 결혼하려던 거 아니었어?”백건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걸어가서 남우영의 목을 조르고 소파로 끌고 갔다.장면이 좀 난처하게 되었다.백건은 어른들께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오늘 급하게 왔어요.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다음에는 정식으로 혼수 예물을 갖고 찾아뵙겠습니다.”허윤미가 서둘러 말했다.“그래. 어서 돌아가. 우리도 서연이와 잘 얘기해볼게. 너무 오냐오냐 키
“왜 내 방에 들어왔어요?”남서연은 긴장해서 그를 내쫓으려 했다.“얼른 나가요. 오빠가 몰래 내 방에 들어온 거 가족들이 알면 큰일 나요.”백건은 이미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오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더라도 결과를 얻어야 했다.“가족들에게 우리 결혼에 대해 직접 말하겠다고 시간을 달라며?”백건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눈 밑에 슬픔이 가득했다.“방금 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눠보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던데?”“그게...”남서연은 말문이 막혔다.백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호흡이 남서연의 피부에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백건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나와 결혼하기 싫어?”남서연은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 날 것이니 사기 결혼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죄책감을 안고 말했다.“미안해요 오빠. 나 임신하지 않았어요.”백건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남서연은 고개를 푹 숙였다.“미안해요.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었어요. 생리가 늦어져서 약국에 가서 유통기한이 지난 테스트기를 샀더니 이런 오해가 생겼어요.”“내가 임신하지 않았으니 오빠도 저 책임질 필요 없고 우리도 결혼할 필요 없어요.”남서연이 한마디 덧붙이자 백건은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무력감은 그를 쓸쓸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그는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남서연은 축 늘어진 그의 머리를 보며 긴장한 채 물었다.“오빠, 왜 그래요?”“남서연, 천국에서 지옥까지 떨어진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아?”백건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남서연은 그가 너무 안쓰러웠다.대체 얼마나 아이를 원했으면 이렇게 슬퍼할까?“미안해요.”남서연이 나지막이 사과했다.백건은 깊은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남서연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비분이 교차하는 눈빛에 남서연은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위로했다.“오빠, 너무 슬
[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냥 내가 말씀드릴게.][싫어요. 안 돼요. 그냥 제가 말할게요.]사흘째 되던 날, 남서연이 어렵게 용기를 내어 가족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피가 흘렀다.그녀는 유산인 줄 알고 놀라서 혼자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갔다.근데 알고 보니 생리였다.의사는 테스트기가 틀릴 가능성도 있으니 임신을 확정하려면 반드시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알고 보니 이 모든 건 오해였다.그녀가 임신하지 않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녀는 한없이 서글프고 괴로웠다.슬프게도 백건에게 시집가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아이를 빌미로 그와 결혼할 가망이 없어졌다.그녀는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백건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물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일주일 뒤.기업 디자인 부서에서.하현우는 직접 디자인 부서에 와서 남서연을 찾았고 공손히 말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찾으세요.”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배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미안해요. 집에 일이 좀 생겨서 시간이 없다고 전해주세요.”남서연은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그녀는 아직 백건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하지 못했다.백건을 속이고 두 사람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 그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다.그런데 가짜 임신으로 속여서 결혼해야 백건에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대표 사무실.백건은 인터넷에서 임신 기간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어떻게 임산부를 보살피는지, 산전 검사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간호해야 하는지 등등...그때 하현우가 노크했다.남서연인 줄 알았던 백건은 순간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 온 하현우를 보며 물었다.“서연이는?”“아가씨는 먼저 집에 돌아가셨어요.”백건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천천히 눈을 감고는 마음의 답답함을 달랬다.남서연은 대체 무슨 뜻일까?이미 일주일 동안 그를 피했다.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대표님, 어디 가세요?”백건은 성
유승아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짓더니 남서연이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즉시 화제를 돌렸다. “서연아, 촌수로 따지면 네가 건이를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 만나게 되면 양쪽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네 작은 엄마가 어떻게 그런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겠어?”남서연은 멍해졌다.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백건이 버럭 화를 냈다.“지금 내 앞에서 시비를 거는 거야?”유승아는 서둘러 해명했다.“네 친구로서 서연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을 뿐인데 왜 시비를 건다고 말해?”“이건 나와 서연이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너 할 말 끝났으면 돌아가.”유승아는 얼굴의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태도가 진지해졌다. “백건, 비록 우리 연인 사이는 가짜였지만 오랜 우정은 가짜 아니지?”“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친구로서 충고 한마디 하고 싶어. 너와 서연이는 절대 불가능해. 양쪽 어른들께서 동의하지 않을 거야. 괜히 어린 서연이 상처 주지 마.”백건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유승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나 할 말 끝났으니까 돌아갈게. 두 사람 잘 생각해봐.”두 사람 모두 일어나서 유승아를 배웅하지 않았다.문이 심하게 닫혔고 거실이 조용해졌다.남서연과 백건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어색한 듯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승아 언니 말이 맞아요. 양쪽 집안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 옆에 있겠다고, 나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하면 돼.”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침묵을 삼키더니 물었다.“서연아, 키스해도 돼?”남서연은 이런 문제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머리가 텅 비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멍해 있을 때, 남자는 그녀를 소파에 눕히고 키스를 했다.기습적인 키스에 남서연은 당황스러웠다.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키스를 나눴다.저녁 무렵.집
유승아는 조금 경악했다.“서연이도 있었네?”그러자 백건이 물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다음 달 결혼에 대해 아주머니가 너무 재촉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와 의논하려고 왔어.”남서연은 괜히 애태우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유승아는 남서연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서연아, 나 건이랑 단둘이 얘기하고 싶은데 너...”남서연은 급히 말했다.“두 분 말씀 나누세요. 전 먼저 가볼게요.”그녀가 말을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백건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너 갈 필요 없어. 여기서 들어.”남서연은 경악했고 유승아는 얼굴이 굳어지며 난처한 태도로 말했다. “건아, 그건 좀 아니지. 우리 두 사람 얘기야. 서연이는 외부인이고.”백건은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외부인이 아니라 내 아내야.”남서연은 깜짝 놀랐고 유승아는 더욱 경악했다.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백건을 바라보았다.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벌써 그의 아내가 되는 건가?유승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두 사람... 만나기로 한 거야?”남서연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그러자 백건이 또박또박 대답했다.“응. 몇 분 전에 결혼까지 약속했어.”유승아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며 짐짓 대범한 척 말했다.“축하해.”“소파에 가서 앉아서 말해.”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유승아도 따라가 앉더니 침울하게 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집 쪽 친척들은 이미 청첩장을 받았어. 다들 축하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 오늘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나를 찾아오셔서 결혼식은 반드시 거행될 거라고 하셨어. 어떻게든 너를 잡아서 교회에 묶어둘 테니까 안심하고 너의 신부가 되라고 하셨어.”백건이 되물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유승아는 남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생각해? 오랫동안 네 여자친구였으니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잖아.”백건은 서둘러 남서연을 바라보며 나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은 무엇일까?여자 사진?남서연은 기분이 가라앉아 말했다.“나 먼저 돌아갈게요.”그러자 백건이 그녀에게 다가갔다.“나랑 같이 집에 가서 어른들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안돼요.”남서연은 긴장감에 못 이겨 안절부절했다.“일단 아직은 안돼요. 내가 먼저 가서 가족들 생각을 알아보고 다시 결정해요.”“어떤 상황이든, 어떤 결과든, 나 혼자 감당할 거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서두르지 말고 우리 천천히 얘기해요. 내가 우리 가족들 설득하고 오빠는 오빠 가족들 설득해요. 네?”백건은 여전히 변수가 있을까 봐 걱정했다.그러나 너무 성급하게 행동해 남서연을 놀라게 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그래. 네 말대로 해.”남서연은 그가 덮은 앨범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누구 사진이에요?”백건은 고개를 돌려 협탁을 보더니 마음이 찔려 말했다.“내 사진이야.”그건 백건이 전에 몰래 찍었던 남서연의 사진이었다.결혼 후에만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한 모든 것들이 오랫동안 계획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어머니의 강력한 방해를 무릅쓰고 그는 강력한 권한을 동원하여 인사팀을 통해 남서연의 면접을 합격시키고 그녀를 ND에 무사히 입사하게 했다.또 직권을 이용하여 남서연을 데리고 해외 출장을 갔다. 그 목적은 바로 남서연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만든 다음 그 기회를 빌려 잠자리를 갖고 그녀를 임신시키는 것이었다.두 차례의 성관계에도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그녀를 임신시키기 위함이었다.그는 감히 남서연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남서연이 그를 비열하다고, 수단이 더럽다고, 파렴치하다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결혼하고 나서 다시 그녀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천천히 용서를 빌어야 했다.남서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백건은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발이 미끄러질까 봐 보호했다. 남서연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호하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서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그녀는 초롱초롱한 큰 눈으로 물끄러미 백건을 바라보며 머리가 하얘졌다.결혼이라는 두 글자가 백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큰 유혹이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을 때, 백건은 갑자기 몸을 기울여 왼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놀란 그녀는 소파에 붙으며 경악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뜨거운 눈빛으로 부드럽게 말했는데 매우 절실해 보였다.“서연아, 나와 결혼해줘. 응?”‘지금 아이를 위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한 거야?’남서연은 아주 기뻤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괴롭고 불안했다.“두 집안 어른들 모두 찬성하지 않을 거예요.”“너만 원한다면 그런 것들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해.”남서연은 차마 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없었다. 가족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현실 생활에서 많은 부부가 선을 보고 결혼하니 먼저 결혼하고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결혼 후에 그녀가 잘 보인다면 백건도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남서연은 멋진 미래를 상상하며 참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백건은 감격에 겨워 붉어진 눈시울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어지러운 숨결로 소파에 앉더니 남서연을 덥석 품에 끌어안았다.남자의 동작은 절박했고 강렬한 포옹에 그녀는 몸이 아팠다.남서연은 그의 등 뒤에 두 손을 널어놓고 턱을 그의 어깨에 괴고는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귓가에 남자의 무거운 호흡과 함께 약간 울먹이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고마워. 서연아. 정말 고마워. 반드시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될게. 절대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해서 네게 가장 행복한 미래를 줄게.”남서연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다만, 앞으로 어떻게 가족을 대해야 할까?아이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백건은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까?
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슬픈 듯 중얼거렸다.“나 임신했어요.”백건은 심장이 움찔했고 온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거의 뛰기라도 하듯 벌떡 일어났다. 가슴의 흥분을 터뜨리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서연이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나 아빠가 되는 거야? 서연이 아이의 아빠? 이거 지금 꿈 아니지?’그는 갑작스러운 행복을 애써 눌렀다.남서연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니 남자는 주먹을 불끈 쥐고 그녀를 등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이 남자가 대체 어떤 마음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그녀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그녀처럼 망연자실할까?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남서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책임지라고 찾아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다만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에 오빠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만약 수술하게 되면 나와 함께 가줘요.”백건은 무거운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순식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는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얼굴빛은 굳어졌고 말투는 엄숙했다.“뭐? 수술한다고?”남서연은 주눅이 들어 쳐다보며 말했다.“네. 혼전 임신은 안 돼요.”가족들이 만약 그녀가 혼전임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반드시 백건을 때려죽일 것이다.숨이 가빠진 백건은 두 손을 꼭 잡았고 엄숙한 말투에 약간의 온기를 더해 부드럽게 달랬다.“서연아,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내게 책임질 기회를 줄 수 없어? 나 좋은 아빠가 될게.”남서연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백건을 바라보며 멍해졌다.그녀의 생각과 달랐다.그녀는 백건이 그녀보다 더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이의 존재가 그를 위험하게 만들 테니까.백건은 긴장된 듯 입술을 오므리고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나... 좋은 남편이 될 수도 있어.”남자는 주먹을 문지르며 가늘게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남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시주를 기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