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이란 혼자서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이제야 서다인은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움에 목이 메면서도 마음속에서 수없이 그를 바라보면서도 쳐다보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 아프고 원망스러우며 심지어 미워하면서도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남하준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마음은 긴장과 설렘으로 가득 찼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해야 했다. 그의 시선을 피하려 노력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남하준이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백하린은 환호하며 달려가 “하준 오빠!”라고 외쳤다. 남하준은 피할 새도 없이 그녀의 품에 안겼다.그녀의 손이 그의 허리를 꼭 감싸자 불쾌함이 밀려왔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의 손을 뒤로 돌려 잡아떼어냈지만 백하린은 놓아주지 않았다. “하준 오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허윤미는 따뜻한 미소로 맞았다. “준아, 왔니? 미리 연락도 없이 와서 깜짝 놀랐어.”남하준은 차분하게 인사를 나누며 모든 사람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러나 서다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실을 둘러보다가 멀리서 밥을 먹고 있는 서다인을 발견했다. 서다인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국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그와 눈이 마주칠 텐데,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남하준은 그녀의 무관심에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는 백하린을 밀쳐내며 한숨을 쉬었다.백하린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의 목에 손을 감고 다가가려 했다. 그때, 류청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냈다. “백하린 씨, 제발 도련님한테 매달리지 마세요. 도련님께서 다치셨어요.”남하준이 다쳤다는 말을 듣자 모두 놀라서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 준아. 어디를 다쳤니? 많이 다쳤어? 응?” 현장은 아주 시끄러웠다.서다인도 남하준이 다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멈칫했다. 마음이 아파왔고 긴장되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그쪽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백하린이 그렁그렁한 눈
서다인은 저녁을 먹다 말고 서재와 안방에 어지럽혀진 책들이 떠올라 급히 정리하러 갔다. 정리를 마치고 다시 내려와 저녁을 먹기 시작했지만, 남하준이 비서를 데리고 올라간 이후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의아해졌다. 혹시 백하린과 같은 방에 있기 싫어 객실에 간 걸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서다인이 식탁에 돌아왔을 때 이미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난 후였다. 그녀는 풀이 죽어 남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울적해 무슨 맛인지도 몰랐다.거실에서 백하린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아까 전화로 정호 씨에게 물어봤는데, 하준 오빠가 어젯밤 어깨에 총을 맞았대요. 막 총알을 뺏는데 병원에 입원하기 싫어서 무리하게 돌아왔대요.”허윤미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어젯밤에? 총을 맞았다니?” “우리 아들...”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급히 계단을 오르며 울먹였고, 백하린도 그녀 뒤를 따라 올라갔다.서다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젓가락을 든 손이 덜덜 떨렸고 몸은 마치 미라처럼 굳어버렸다. 두려움과 불안이 밀려왔고, 갑자기 남하준의 상처가 얼마나 심한지 궁금해졌다.저녁을 마친 후 서다인은 바로 방으로 가지 않았다. 남하준과 백하린의 다정한 모습을 보는 게 두려워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에서 꽃과 달빛, 밤하늘을 감상하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방으로 돌아갔다.방문을 여니 불은 켜져 있었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곤한 걸음으로 침대에 다가가 앉자마자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침대에 기대었다. 이 시간에도 남하준이 여기에 없다면, 분명 백하린의 방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일처다부제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그때 갑자기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다인은 놀라 눈을 뜨고 발코니를 바라보았다. 남하준이 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유리문을 닫고 커튼을 치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서다인은 긴장해 몸이 굳었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남하준는 커튼을 치고 나서
남하준은 천천히 다가와 침대 저편에 앉았다. 서로 등진 채 말이다.남자는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분위기는 너무 무거웠고, 그의 마음은 이유 없이 지쳐 있었다.서다인은 단 한 마디만 물었고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남하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백하린이 왜 들어와 살고 있지?”서다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벌써 한 달 넘었어요.”“막지 않았어?”“난 막을 자격이 없어요.”남하준은 침묵했다가 또 물었다. “자격증 준비해?”“아뇨.”“여기서 사는 거 불편하지 않아?”“괜찮아요.”“백하린이 너 괴롭히진 않았어?”“네.”그들은 또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남하준은 계속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서다인은 단답형으로 대답해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고, 분위기는 점점 더 어색해졌다.“나 씻고 올게요.”서다인은 이 말을 남기고 침대를 떠나 옷장에 가서 잠옷을 가지고는 샤워를 하러 갔다.남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저녁에 집에 돌아온 이후로 눈을 붙이지 않았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의 대화는 점점 더 서먹해졌고, 그녀는 그와 말을 섞는 것조차 꺼려하는 듯했다.반 시간 후, 서다인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남하준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몸을 구부린 채로 말이다. 그의 모습은 고독하고 무거운 슬픔을 내뿜고 있었다.‘회사 일 때문에 이렇게 지쳐있는 거야?’서다인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준 씨, 어제 수술 받고 왔잖아요. 누워서 쉬어야 해요.”남하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깊고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서다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이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느꼈다.그는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서다인은 긴장하며 말했다.
서다인은 거즈를 싸고 있는 그의 어깨만 뚫어지라 쳐다보며 눈길을 함부로 돌리지 못했고 온몸이 약간 뜨겁고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방이 너무 조용해서 그녀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남자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불처럼 뜨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고 그의 가슴은 기복이 심하고 호흡은 거칠었다.그는 너무 아픈 탓인지 허리를 곧게 펴고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남하준이 앉아 있었기에 서다인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가슴을 향하고 있어 위치가 애매했고 서다인은 옆으로 좀 옮겼다.“거즈를 뗄 테니 아프면 말해요.”서다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응.”남하준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녀가 거즈를 조심스럽게 걷었지만 너무 팽팽하게 붙인 탓에 피부가 당겨질 정도였다.서다인은 그가 아플까 봐 두 손을 함께 쓰며 조심스럽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젖히고 있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고 찢으면서 거즈에 가볍게 바람을 불어넣었다.하지만 그녀는 거즈를 젖히는 이 정도의 고통이 남하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녀의 입김은 오히려 남자의 마음을 간지럽히고 괴롭게 만들었다.서다인의 몸에서는 은은하고 매혹적인 향기가 풍겼다. 부드럽고 까만 긴 생머리 몇 가닥이 무심코 그의 뺨과 어깨 위로 흘러내려 가볍게 스쳤다.남하준의 마음에는 거친 파도가 일었고 횃불처럼 뜨거웠다. 허벅지에 올려놓은 두 손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서다인은 겨우 거즈를 젖히고 피가 배어 있는 상처를 보았다. 이미 꿰맸지만 섬뜩한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아팠다.총알이 조금만 더 아래로 떨어지면 남하준의 심장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괴로웠다.그녀는 요오드를 들고 남하준의 상처를 소독하고 살균한 후 약을 바르고 새로운 거즈를 감싸주었다.남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서다인은 황
서다인은 놀랍고 어리둥절하고 경악했다.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는 팔꿈치로 몸의 무게를 반쯤 받아내고 나머지는 서다인의 몸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의 빼어난 얼굴은 지척에서 떨어져 상대의 숨결이 감도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서다인은 피가 솟구치는 긴장을 처음 느꼈고 호흡이 가빠졌고 목소리가 떨렸다.“뭐... 하는 거예요?”남자의 깊은 눈동자는 흐릿하고 호흡은 뜨겁고 가슴은 단단하고 이목구비는 그렇게 가깝고도 아름다웠다.서다인은 넋을 잃었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눌려서 그녀는 도덕과 감정에 대해 더 많은 문제를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그녀의 의식은 지배당했고 부끄러움과 긴장 심지어 기대까지 했다.남하준의 관능적인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고 쉰 목소리는 끝이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그녀의 부드러운 앵두 같은 입술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갔다.남자의 얇은 입술이 가까워질수록 서다인은 더욱 긴장하여 두 손으로 시트를 꼭 꼬집고 눈을 감았다.마음이 심란하면서도 남하준의 매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남하준에게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두 사람의 결혼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녀는 천박하게도 이 남자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짧은 결혼생활이었지만 그녀는 소중히 여겼다.만약 남하준만 개의치 않는다면, 그녀와 입맞춤하고 잠자리를 갖길 원한다면 그녀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남자의 넓은 손바닥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지고 손끝이 그녀의 귀밑머리에 들어가 옆머리에 걸려 머리를 고정해 그녀가 피할 수 없게 했다.서다인은 긴장하여 눈꺼풀이 떨리고 입술을 다스며 기대했다.남자의 숨결이 그녀의 피부에 닿고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 판을 덮는 순간까지.전광석화처럼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부드러운 온도, 단 1초의 터치로 서다인의 심장은 이미 견딜 수 없이 뛰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서졌다.“하준 오빠, 자요?”남하준이 입술을 열고 깊게 키스하려 할 때 뜻밖에도 방해
서다인은 남하준을 등지고 잠든 척 손끝으로 키스한 입술을 남몰래 만지작거렸다.마음이 허전한 것이 이미 설렘인지 슬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그녀는 밤새도록 생각해도 남하준이 왜 자신에게 키스했는지 이해가 안 갔다.단순 심란함일까? 아니면 욕정 발산일까?전자는 불가능하고 후자는 좀 억지였다. 남하준은 그런 남자가 아니었고 또 몸에 상처까지 입은 상태였다.남하준은 더 이상 그녀의 몸에 손대지 않고 불을 끄고 침대 반대편에 누워 조용히 잠이 들었다.서다인은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이튿날 아침.노크 소리에 눈을 뜬 서다인은 희미하게 남하준의 뒷모습을 보았다.그가 문을 열었다.백하린이 아침 먹으라고 부르자 그가 따라 나갔다.잠이 다 깨버린 서다인은 느릿느릿 일어나 시무룩해서 씻고 양치질을 했다.그녀는 여느 때처럼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러나 그녀가 계단 입구에 내려서자마자 그녀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식탁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그중에는 고모 남연희, 고모의 수양딸인 온가윤, 게다가 백하린과 그녀의 삼촌 백인호도 있었다.분위기는 화목해 보이지만 사실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서다인은 총알받이가 되기 싫어 아침도 먹지 않고 대문 쪽으로 돌아섰다.그녀가 계단을 내려갈 때 남하준은 여광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그녀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순간, 그의 눈빛은 어두워지더니 문 입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그릇 속의 아침 식사가 순식간에 맛이 없어졌다.이 사람들은 모두 다친 남하준을 방문한다는 핑계로 여기에 있지만 사실은 모두 각자의 목적이 있었다.별장 뒤뜰.햇볕이 따스하여 화원의 구석구석에 쏟아졌다.서다인은 정자의 돌 탁자에 나른하게 엎드려 꽃이 만발한 정원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맡으며 봄바람의 부드러움을 느꼈다.배가 고프지만 모든 것이 평온했다.얼마나 지났을까, 귓가에 갑자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침은 왜 안 먹어
서다인은 남자의 진심이 드러난 말에 충격을 받았다.그의 눈물은 연기가 아니었다.대체 어떤 감정이 이 점잖은 남자를 갑자기 눈물짓게 했을까?너무 가슴 깊이 사랑하는 고통 때문일까?서다인은 당황했지만 백인호의 미세한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진실한 감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그의 심리를 추측했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백인호가 갑자기 그녀를 자기 품으로 와락 끌어안았다.서다인은 깜짝 놀라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놔요!”백인호는 그녀를 꼭 껴안고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는 목이 잠긴 채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나한테 왜 이래? 대체 왜? 기억을 잃기 전의 너도, 잃은 후의 너도 어쩜 나한테 이렇게 잔인해?”남자는 천성적으로 여자보다 강하고 힘이 세서 서다인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그녀가 도망칠수록 남자는 그녀를 더 꽉 껴안고 심지어 그녀를 목 졸라 죽일 만큼 세게 끌어안았다.그녀는 어깨가 짓밟혀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결국 그녀는 저항을 포기하고 허수아비처럼 서서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화를 냈다. “백 선생님, 계속 놓지 않으면 소리 지를 거예요.”“다인아, 사랑해. 정말 너무 많이 사랑해. 나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서다인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심지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남하준이랑 이혼해. 내가 너 꼭 행복하게 해줄게. 평생 목숨 걸고 사랑해줄게. 우리...”백인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강한 힘에 의해 심하게 당겨졌다.그는 중심을 잃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비틀거리며 땅에 주저앉았다.서다인도 이 강한 힘에 충격을 받아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그들 사이에 서 있었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마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고드름처럼 만물을 관통했다.백인호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엉덩이의 먼지를 툭툭 털며 은근히 노기를 띠었다. “난 그
이 말은 매서운 칼날이 되어 서다인의 마음을 후벼 팠다. 마치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묵직한 고통이 간간이 느껴졌다.그녀는 숨조차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못난 눈물이 눈에 가득 고였지만 그녀는 한사코 참았다. 남하준 때문에 더 이상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 이를 갈았다.남하준과 백하린의 감정으로는 포옹 같은 친밀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침대에서 키스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그녀가 계속 모른 척하고 신경 쓰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나니 여전히 쓰라리고 견디기 힘들었다.남하준은 부인하지 않았다.당시 투신 소란을 피우던 백하린을 의사가 안아 주라고 해서 남하준은 인도적 차원에서 그녀를 안아줬을 뿐이다.감정과 상관없는 포옹은 부도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아내에게 미안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백인호가 이렇게 얘기하니 성격이 변했다.남하준은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크게 소리쳤다.“백하린과 한 가족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어쩜 똑같네.”백인호는 흠칫 놀랐다.남하준은 그의 옷깃을 뿌리치고 돌아서서 서다인의 손목을 잡아당기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서다인은 눈을 늘어뜨리고 별장으로 질질 끌려갔다. 남자의 힘이 너무 세서 손목에서 통증이 전해졌다.거실로 들어가니 백하린이 눈치도 없이 남하준에게 달려와 물었다.“하준 오빠, 방금 어디 갔었어요? 나 한참 찾았잖아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 손으로 남자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닿기도 전에 남자에 의해 밀쳐지고 말았다.강한 힘에 의해 밀려난 그녀는 뒤로 몇 발짝 물러서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모두 깜짝 놀라 부축해 주며 남하준의 무례함과 엉뚱한 화를 꾸짖었다.그러나 남하준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백하린은 쳐다보지도 않고 서다인을 단숨에 끌고 올라갔다.모두 남하준의 분노를 알아차렸다.걱정스러운 듯 서다인을 바라보니 야생 독수리에게 잡혀가는 병아리처럼 목숨이 위태로워 보였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세게 닫히고 문이 잠
남태준은 당연히 진효연의 뜻을 알았다.그도 이해할 수 있었다. 진효연은 자기 자식을 너무 사랑했고 딸은 결국 시집갈 것이고 평생 그녀와 함께할 수 없으므로 아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 것이다.가난한 사람 중에는 가식적인 사람이 많았다.하지만 본심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진효연이 남태준은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이든 마음에 숨겨두지 않고 바로 표현할 줄 알았으니.남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아주머니, 지성이가 공무원이 되려면 반드시 공무원 시험을 쳐야 해요. 통과해야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어요.”진효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말했다.“공무원 시험이 어디 쉽나.”“만약 공무원이 되기 싫으면 안성에 가도 돼요. 제가 가족들한테 회사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할게요.”진효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남태준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고마워 태준아.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지성도 기뻐했다.“고마워요 형.”지우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밥 먹을 기분이 없어 수저를 놓았다.그녀는 아직 남태준의 여자친구가 아닌데 그녀의 가족은 흡혈귀처럼 그에게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관계가 더 가까워지면 앞으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지 모른다.지우는 지성을 가리키며 경고했다.“너 못 가.”진효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지우를 쳐다보며 불쾌하게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지성도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내가 왜 못 가? 누나도 내가 나가서 돈 벌기를 바라잖아.”지우는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면접 보고 들어가는 건 되는데 낙하산은 절대 안 돼.”“왜?”지우는 제대로 된 신분으로 자존감을 갖고 남태준과 만나고 싶었다. 그의 도움을 받으며 난처한 위치에 처 하고 싶지 않았다.“그냥.”“내가 언제 누나더러 도와 달래? 난 태준이 형에게 부탁했어. 게다가 형도 흔쾌히 수락했고.”“너 바보니? 일자리도 혼자 못 찾아?”“내가 졸업한 대학교가 평범하잖아. 취업이 어려운 요즘 세상에 대기업 들어가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그래도 넌...
네모난 식탁에는 여섯 가지 요리에 국 하나, 그리고 디저트와 과일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새우, 게, 생선, 닭, 쇠고기, 야채, 수입산 인삼 비둘기 찜이 있었다.이러한 음식은 그다지 비싸지 않지만 남태준은 명절이나 중요한 날이 아니면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던 남태준이 시선을 돌려 지성의 어두운 얼굴을 보니 이 맛있는 음식들이 지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성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엄마, 의사가 상처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담백하고 잘 소화되는 음식을 많이 먹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했어요. 아직 이런 음식은 벅차요.”진효연은 야채를 집어 지성의 그릇에 놓았다.“넌 야채 많이 먹어. 이건 충분히 담백해.”지성은 게를 보며 침을 흘렸다. 평소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는 그의 집에서 하필 그가 다쳤을 때 해산물을 준비하다니.밥을 먹기도 전에 화가 잔뜩 불렀다.진효연은 집게로 가장 큰 게를 집어 남태준 앞에 놓인 작은 접시에 놓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태준아. 넌 이거 많이 먹어.”“감사합니다.”남태준은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지우를 쳐다봤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국을 먹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태준은 진효연이 너무 열정적인 것 같았다.설마 그를 수양아들로 삼아 지우의 오빠로 만들고 싶은 걸까?“혹시 게 뜯는 도구 있어요?”남태준이 식탁을 보며 묻자 진효연은 어리둥절했다.게를 자주 먹지 않으니 게를 먹을 때 전문적인 도구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지우는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달려가 깨끗한 작은 가위와 커피용 작은 숟가락을 꺼내 남태준에게 건넸다.“대충 이거라도 써요. 우리 집은 게를 먹을 때 그냥 입으로 뜯었어요.”지우가 부드럽게 말하자 남태준은 엷게 웃으며 도구를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우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진효연은 남태준에게 해산물을 집어주고 지성에게 닭고기를 집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다들 열심히
지우가 물건을 들고 지성의 방으로 가져갔다.남태준은 신발을 갈아신고 들어가서 그녀의 집안을 둘러봤다.확실히 좀 좁고 낡긴 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부엌 맞은 편에 바로 식탁이 있고 식탁 옆에는 거실이 있고 거실 소파도 짧아서 세 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텔레비전은 구식이고 냉장고도 작아서 거실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비좁아 보였다.“태준이 왔어?”진효연은 음식을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활짝 웃으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앉아. 어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나가.”너무 친절하고 다정한 태준이라는 호칭에 남태준은 조금 어리둥절했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제가 뭐 도와드릴까요?”“없어. 없어. 그저 앉아서 차나 마시고 지우와 얘기나 나누면 돼. 부엌일 정도는 나 혼자로 충분하지.”남태준은 또 움찔했다.지우와 얘기를 나누라니. 조금 어리둥절했다.너무 갑작스러운 열정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지성은 부랴부랴 남태준에게 거실 소파에 앉으라고 청한 뒤 녹차 한 잔을 우려낸 뒤 리모컨을 건넸다.“TV 볼래요?”남태준이 다급하게 거절했다.“괜찮아.”지성은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스포츠 채널을 누르면서 말했다.“누나는 로맨스 드라마만 좋아해요. 누나가 집에 있으면 내가 리모컨을 차지한 적이 없어요.”남태준이 따뜻하게 웃었다.“그건 직업 때문에 그런 거잖아.”“형도 누나 글 쓰는 거 알아요?”“누나가 경찰의 사랑 이야기를 쓴 적 있는데 아쉽지만 결말은 비극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책을 출판했어요.”남태준은 방금 찻잔을 들자마자 흠칫 놀라더니 동작이 뻣뻣해져서 차마 차를 마실 수 없었다.방 안에서 지성의 옷을 챙겨주던 지우가 그의 말을 듣고 노기등등하게 뛰쳐나왔다.“야. 너 그 부질 없는 입 다물어!”남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뾰로통한 그녀의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하지만 지성에게는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지성은 긴장한 채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TV를 계속
지우가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일어서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래. 그럼 나 간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의 옆을 지나갔다.남태준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그녀가 병실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벼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지우는 그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저번에 강제로 그녀의 몸을 가지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한 것 같았다.요 며칠 동안 그는 끝없는 번뇌와 후회 속에 살았다.그때 지성이 가방을 들고 남태준 앞으로 다가왔다.“형. 가요.”남태준은 정신을 차리고 그의 가방을 받아들며 말했다.“내가 들게.”지성은 크게 기뻐했고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고마워요. 형.”차에 오른 남태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출발했다.잠시 후 지우가 뒤에서 따라오자 남태준은 속도를 줄이고 백미러로 지우가 스쿠터를 타는 모습을 보며 약간 멍해졌다.지성이 그런 남태준의 상태를 눈치채고 말했다.“누나 기다릴 필요 없어요. 매일 다니는 길이라 아주 익숙해요. 조금 있다가 앞쪽 길목에 도착해서 오솔길로 빠지면 누나가 우리보다 훨씬 빨라요.”남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지성은 힐끔 남태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사실 우리 누나가 가끔 사납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착하고 어질어요.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사람 잘 챙길 줄 알고 성실하고 선량한 편이에요.”남태준이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웃었다.“알아.”“아주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을 때, 난 대학생이었고 누나 혼자 힘으로 이 집안을 지켰어요. 병원비며 빚이며 모두 누나 혼자 짊어졌어요.”남태준이 계속 응대했다.“알아. 지우 좋은 사람인 거.”지성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리 누나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 왜 헤어졌어요?”남태준은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네 누나가 나 안 좋아해. 별로 느낌이 없대.”지성은 입을 떠벌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누나 사람 보는 눈은 개나 줘버렸나? 난 또 엄마가 두 사람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