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은 문밖으로 빠르게 나가며 환한 미소로 외쳤다.“여보!”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은 중후한 매력과 강렬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중년 남성이었다. 큰 키와 조각 같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았지만, 강렬한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하는 아우라가 있었다.그는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정안을 품에 안았다.“놀랐지?”그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정안은 웃으며 그의 품에서 살짝 벗어나며 말했다.“오늘은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기대가 없어야 서프라이즈가 더 반가운 법이지.”그는 다시 그녀를 끌어안으며 이번에는 진하게 키스하려 했다.거실에 있던 이다은은 순간 당황하여 고개를 숙였고 정안은 황급히 그의 가슴을 밀며 작게 속삭였다.“여보, 이러지 마요. 집에 손님이 와 있어요.”남성은 멈칫하며 놀란 눈으로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손님?”“네...”정안은 남편에게 슬리퍼를 챙겨 주며 말했다.“신발부터 갈아 신고 들어와요.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누군데 이렇게 직접 소개까지 해?”그는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내가 아끼는 후배예요. 우주항공청에서 로켓 프로그램 문제를 해결해 줬던 친구인데, 정말 유능한 후배예요.”정안은 재능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했고 나이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남하준은 정안의 손을 잡고 거실로 들어오며 그제야 이다은과 인사를 나눴다.정안은 활짝 웃으며 소개를 시작했다.“다은 씨, 제 남편 남...”그녀는 남편의 성을 말하다 멈추고 잠시 의미심장한 미소 지었다.이다은은 긴장한 탓에 전혀 이상한 점을 못 느꼈고 그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압도적인 체격과 단정한 외모, 그리고 사람을 단숨에 제압할 듯한 강렬한 눈빛... 남성의 분위기는 너무도 강렬했고 어딘가 남우영과 닮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정안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아저씨라고 부르면 돼요.”이다은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처음 뵙겠습니다.”정안은
남하준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아들의 연애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려 하지만, 아버지로서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그때 정안이 뒤쪽 식탁을 확인하며 이다은에게 다가와 말했다.“다은 씨, 식사 준비됐어요. 같이 먹으러 가요.”이다은은 공손히 대답했다.“교수님, 감사합니다.”식탁에서 정안은 매우 따뜻한 태도로 음식을 권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이다은은 조용히 식사를 하면서도 정안의 남편인 남하준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는 말수가 적고 엄격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정안을 바라볼 때는 눈빛에 진심 어린 애정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풋풋한 연애를 시작한 젊은 커플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이다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교수님, 두 분 사이가 너무 좋아 보이세요. 결혼하신 지 오래됐다고는 전혀 안 느껴질 만큼요.”정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결혼한 지 오래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지?”이다은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부모님을 떠올리며 말했다.“대부분 경우엔 서로를 보기만 해도 지겨워하시던데요. 감정도 많이 식고요.”정안과 남하준은 눈을 마주치며 살짝 웃었다.“우리도 처음처럼 뜨겁진 않죠. 많이 잦아들었어요.”정안이 담담히 대답하자, 이다은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닙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두 분 정말 다정해 보이세요.”정안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건 남편이 국경 근처에서 근무하느라 자주 못 만나서 그래요.”이다은은 놀라며 물었다.“아저씨께서 국경 지대에서 일하세요?”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맞아요.”남하준은 아무 말 없이 고기를 집어 정안의 접시에 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고기 좀 많이 먹어. 한동안 못 봤더니 살 빠진 것 같아.”정안은 장난스러운 투로 말했다.“밤새워 일하느라 그래요. 테스트가 계속 실패하는 바람에 데이터를 다시 확인했거든요.”남하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아무리 바빠도 몸부터 챙겨야지.”정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앞
정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여기가 금원이에요.”이다은은 다시 전화기를 들어 남우영에게 말했다.“맞아. 여기 정안 교수님 댁이야.”“정안 교수님? 정안 교수님이라고?”이다은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왜? 아시는 분이야?”남우영은 급하게 말했다.“다은아, 거기 있어. 금방 갈게.”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다은은 어리둥절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정안이 다정하게 물었다.“남편분이세요?”“네... 제 남편이에요.”이다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러자 정안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말했다.“소개로 만나서 결혼했다면서요? 속도위반 결혼인가요?”이다은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아이를 가진 건 아니지만, 또 다른 속도위반인 셈이네요.”“결혼 생활은 어때요?”이다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결혼 전에 잘 몰랐던 사람이라, 이제 알아가는 중이긴 한데요... 사실은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아요. 이혼하려고 생각 중이에요.”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표정은 어두워졌다.정안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왜요? 이제 막 결혼했는데 왜 벌써 그런 생각을 해요?”이다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우리 집은 몹시 가난해요. 아버지는 장애인이시고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로 일하세요. 그런데 제 남편은 집안도 훌륭하고 본인도 대기업 대표인 데다가... 저희는 너무 다른 세계 사람 같아요. 자꾸만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정안은 그녀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녀가 느끼고 있을 자격지심과 무력감이 충분히 이해되었다.“다은 씨, 남편분이 괜찮다면 부모님 반대가 무슨 상관이에요? 결국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이잖아요.”“그리고 저는... 아직도 시부모님을 뵙지 못했어요.”정안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정말요? 왜요?”이다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글쎄요... 아마 제가 이런 사람이라서 부모님께 소개하기 어려운 거겠죠.”정안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안이 남우영 쪽으로 다가가며 부드럽게 물었다.“아까는 바빠서 못 온다더니, 갑자기 웬일이야? 엄마도 네가 오늘 안 올 줄 알았는데. 이리 와봐, 엄마가 너한테 소개할 사람이 있어.”남우영은 복잡한 마음으로 정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이다은이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 후에야 부모님께 정식으로 소개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이다은 역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녀는 남우영의 아버지가 장군이고 어머니가 저명한 화학 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정안 교수가 그의 어머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럼... 아까 그 위엄 넘치던 남 아저씨가 M국 장군, 남하준?’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고일 만큼 긴장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남하준을 한 번, 정안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정안은 남우영을 이다은 앞으로 끌고 오며 밝게 웃었다.“다은 씨, 내 아들을 소개할게요. 내 아들 남우영이에요.”이다은은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자 정안이 말을 이었다.“우영아, 이쪽은 이다은 씨...”남우영이 정안의 말을 끊으며 단호히 말했다.“알아요.”정안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두 사람 아는 사이야?”남우영은 고개를 돌려 이다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잔뜩 당황한 얼굴로 눈을 피하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때 남하준이 소파에 앉으며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남우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 사실 저 결혼했습니다.”남하준과 정안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정안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미소를 터뜨리며 말했다.“진짜야? 이거 농담 아니지? 상대가 누군데? 언제 데려와서 보여줄 거니?”남하준도 진중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네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존중하지만, 가족이 된 이상 우리도 알아야 하지 않겠니? 다음엔 꼭 데리고 와라.”이다은은 손이 떨릴 정도로
남우영은 정안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맞아요. 다 제 잘못이에요.”정안은 이다은의 손을 다정하게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일단 앉아요. 천천히 얘기하죠.”이다은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정안과 남하준을 ‘어머님’, ‘아버님’라고 부르기엔 아직 너무 어색했고 마음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정안은 처음에는 충격과 놀라움으로 말을 잃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과 안도감이 그녀의 마음을 채워나갔다. 그녀가 걱정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꼈다.‘아들한테 별 다른 문제는 없었어. 성 정체성도, 건강에도 이상 없었던 거야. 게다가 결혼까지 했으니... 아주 마음에 드는 며느리를 데려올 줄이야...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 보이고 예의도 바르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새로운 걱정이 자리 잡았다.‘본의 아니게 며느리가 이혼을 고민 중인 걸 알게 된 게 문제라면 문제네!’정안은 깊은 한숨을 삼키며 아들의 결혼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남우영이 그동안 결혼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던 이유가 확실해졌다. 아들이 부모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숨겼던 것이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꼭 잡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엄마, 아빠... 정식으로 소개해 드릴게요. 제 아내, 이다은입니다. 올해 27살, 저와 동갑입니다.”그는 이다은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덧붙였다.“다은아, 여기 계신 분들이 우리 부모님이셔. 아버지는 남하준 장군이시고 어머니는 네가 잘 아는 정안 교수님이셔.”정안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다은 씨가 내 며느리였을 줄이야! 하하하!”정안은 호탕하게 웃더니 남하준의 다리를 슬쩍 밀며 그의 반응을 유도했다.남하준은 잠시 머뭇거리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묵직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보니 더 반갑네요.”이다은은 두 사람의 환대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살짝 숙여 공손히 답했다.“다시 인사드립니다... 아버
남하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기와 너무 다르다고 느낀다는 건 무슨 말이야?”정안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다은 씨 아버지는 장애를 가지고 계시고,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대요. 다은 씨는 전문대를 졸업해서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다가 우영이와 결혼 후 우영이네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대요.”남하준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말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 건 맞네. 그런데 우영이는 어떻게 그런 환경의 여자를 알게 된 거지?”정안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나도 모르겠어요. 도대체 어디서 만난 건지...”남하준은 소파에 앉으며 정안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그래도 우리 아들이 선택한 사람이잖아. 그걸 존중해 줘야지. 우선 우영이가 다은 씨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 적어도 우리는 출신 같은 걸 따지고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걸 꼭 알려줘야겠어.”정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맞아요. 우영이한테도 잘 얘기해서 다은 씨가 부담 없이 우리 가족이 되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야겠어요. 지금은 다은 씨가 너무 스스로를 안 좋게 만 보는 것 같아요.”남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다은의 상황을 이해하는 듯 말했다.“그럴 만도 하지. 다은 씨 입장에선 우리 집이 너무 이상적으로 느껴지겠지. 자기 부모님도 우리 앞에서 늘 고개 숙여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그 순간 정안이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남하준의 팔을 툭 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큰일났어요!”남하준은 팔을 잡으며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뭐가 그렇게 큰일이야? 아이고 아파라!”정안은 금세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팔을 쓰다듬었다.“미안... 미안해요. 근데 별로 안 아프죠? 정말 심각한 일이라서 그래요.”남하준은 차분히 물었다.“뭔가 그렇게 심각한 건데?”정안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우영이 요즘 스캔들 났었잖아요.”“누구랑?”“공혁재 회장 손녀랑요. 게다가 그 아이는 아주 유명
이다은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물었다.“정말로 가족 배경이 결혼에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해?”남우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난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아.”이다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너는 정말...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 몰라서 하는 말일 거야.”남우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답했다.“그건 네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거일 수도 있잖아.”“하지만 나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던 터라... 자격지심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난 상대의 조건을 무시할 수 없어.”남우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다은, 나 싸우고 싶지 않아. 우리 가족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자.”이다은은 입술을 꼭 다물고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맴돌고 있었고 달리는 차 안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잠시 후 이다은이 또 다른 화제를 꺼냈다.“가족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으니까... 그러면 친구들 이야기를 해볼까?”남우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었고 대답하는 순간 또다시 불편한 대화가 이어질 게 뻔했다.이다은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나는 네 친구들 사이에서 절대 어울리지 못할 거야. 나는 패션도 모르고 경제도 모르고, 너나 네 친구들이 살아온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안성시였고 나는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는 우물 안의 개구리야. 하지만 네 친구들은 세계를 여행하며 넓은 세상을 봤겠지... 이처럼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너무나 달라...”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반대로 네가 내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고작 몇천 원 할인받으려고 새벽 시간대의 영화 티켓을 사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몸에 안 좋은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품위없게 큰 소리로 웃고 떠들 수 있어? 우리에겐 비싼 와인 대신 콜라 한 캔이면 충분해. 넌 그런 생활을 상상이라도 해본 적 있어?”그녀의 말이 끝나자, 차 안은 무거
‘이렇게 평범한 내가 어쩌다 이렇게 완벽한 남자의 사랑을 받게 된 걸까?’이다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결심한 듯 남우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우영아, 우리 다시 한번 노력해 보자.”남우영은 순간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기쁨과 감격이 번져 있었고 눈빛은 떨릴 정도로 반짝였다.그는 이다은의 맑고 따뜻한 눈빛과 마주친 순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이다은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잠시 굳어 있었지만, 그의 품 안에서 차츰 긴장을 풀었다.남우영은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은아, 정말 고마워. 내가 꼭 행복하게 만들어줄게.”이다은은 천천히 손을 올려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더 노력할게. 더 나은 사람이 돼서 남우영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남우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바보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네가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있어주면 돼.”그들은 한참 동안 차 안에서 서로를 꼭 안고 있었다.집에 도착하자, 남우영은 처음으로 당당하게 이다은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이 순간은 그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었다. 바로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간절히 원했던 순간이 현실이 됐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그녀는 단지 ‘다시 한번 노력해 보자’라고 말했을 뿐, 이 결혼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각자 방으로 들어간 뒤, 이다은은 씻고 침대에 누울 준비를 했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문 너머에 있을 남우영을 떠올리며 긴장했다.“우영아, 나 오늘 너무 피곤해서 먼저 잘게. 무슨 일 있으면 내일 얘기하자.”그녀의 말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리며 남우영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이다은은 약간 짜증 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왜 문을 그냥 열어?”남우영은 대답 대신 침대 위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