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우영은 이다은의 가는 허리를 잡고 눈살을 찌푸리며 참았고 호흡이 가빠졌다.이 여자는, 그녀의 영롱하고 풍만한 몸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혹적인지 모르고 있었다.감히 그의 품 안에서 꿈틀대다니.정말 미칠 것 같았다.남우영은 손에 든 디저트를 놓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녀의 동작을 힘껏 억누르며 은근슬쩍 거리를 두었다.그는 잠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었다.“무슨 일이 그렇게 즐거웠는데요?”이다은은 꽃처럼 활짝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어떤 대기업에서 먼저 전화 와서 나더러 내일 면접 보러 오래요.”남우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작 이 일을 알고 있었다.“어떤 회사인데요?”남우영은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그러자 이다은은 두 손을 남우영의 목에 걸고 진심으로 감격하며 천천히 말했다.“에이스타 그룹이요.”“나쁘지 않네요.”남우영이 담담하게 답하자 이다은은 불쾌하게 중얼거렸다.“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죠. 에이스타 그룹은 지금 인터넷 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대기업이에요.”남우영은 이다은이 진심으로 이 일을 원하고 있으며, 그의 회사를 매우 존경한다는 것을 알았다.“면접 꼭 통과하길 바랄게요.”남우영은 부드럽게 말하며 눈 밑에는 감출 수 없는 온정이 가득했다.이다은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뜨거운 눈을 마주치더니 갑자기 자신의 행동이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방종하다는 것을 발견했다.아마도 아침의 깊은 키스 때문인지, 그녀는 남우영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어색하지 않고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다.만약 이혼하지 않기로 했다면 반드시 남우영이 여자를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이다은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부드럽게 말했다.“저녁 준비 끝났으니까 얼른 손 씻고 먹어요.”남우영은 급히 탁자 위의 디저트를 그녀에게 주었다.“이거 사 왔어요.”이다은은 포장 봉지를 보고 경악해서 말했다.“이 원조맛 가게는 웨이팅 시간이 길고 수량도 제한해서 팔고 있잖아요?”남우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지난
그러나 남우영의 반응에 이다은은 자존심이 상했다.그녀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덤덤한 척 말했다.“농담한 거니까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남우영은 목을 축이고는 설명했다.“다은 씨, 난 같이 자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괜찮아요. 설명할 필요 없어요.”이다은은 가슴이 답답했지만 일부러 침착한 척했다.“알아요. 우리 천천히 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우걱우걱 밥을 먹었다.남우영은 그녀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안절부절못했다.“다은 씨...”남우영이 말을 하려는데 이다은이 황급히 끊었다.“밥 먹어요. 이 얘기는 그만 해요.”남우영은 어쩔 수 없이 숨을 내쉬고 밥을 먹었다.식사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다.식사 후 이다은은 남우영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혼자 방에 숨어 울분을 토했다.남우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혼자 멍하니 생각에 잠겨 헤어나오지 못했다.시간은 1분 1초가 지나갔고 밤이 깊었다.이다은이 방 불을 껐다.그러자 남우영은 갑자기 일어나 방으로 돌아갔다. 30분 후 그는 깨끗이 씻고 잠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그는 이다은의 방문 밖에서 배회했다.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들었다가 또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손을 내려놓았다.그는 돌아서려다가 참지 못하고 돌아왔다.그렇게 끝없이 고민했다.그때, 문이 열리자 이다은이 빈 컵을 들고 안에서 나왔는데 그녀는 남우영이 문 앞에서 손을 드는 동작을 보고 어리둥절했다.남우영은 황급히 손을 내려놓고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아직 안 잤어요?”“잤는데 목이 말라서요...”이다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우영이 그녀가 들고 있던 컵을 뺏어갔다.“내가 물 따라줄게요.”“아니...”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그녀의 컵을 들고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고마워요.”이다은이 손을 내밀며 말하자 남우영은 컵을 그녀에게 주지 않고 그녀 옆을 비집고 방에 들어갔다.“내가 안으로 갖다 줄게요.”이다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컵을 들고 방에 들어가 그녀의
“외도와 기만.”기만이라는 말에 남우영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키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다은은 그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말했다.“너무 무리하지 말고 당신 속마음을 따라요. 세상의 시선 때문에 결혼하지 말고, 대를 잇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평생 얽매여있지 말아요.”남우영은 멍해졌다.“그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뜻이죠?”이다은은 그가 정말 능청 맞는다고 생각해서 솔직하게 물었다.“당신 동성애자죠? 남자 좋아하잖아요. 여자 안 좋아하죠?”남우영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두 손으로 문짝을 짚고 그녀를 가둔 채 또박또박 말했다.“내가 어떻게 동성애자예요? 난 여자 좋아해요. 그것도 엄청.”정말 미칠 지경이었다.그가 동성애자라고 말한 건 이다은이 처음이 아니었다.그의 어머니와 사촌 여동생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다만 어머니와 사촌 여동생에게는 증명해 보일 수 없지만 이다은에게는 증명할 수 있었다.그는 화가 나서 입을 벌리고 숨을 쉬며 정중하게 다시 말했다. “나 정말 여자 좋아해요.”이다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못 믿겠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대꾸했다.“아.”“못 믿겠어요?”그녀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이다은은 그의 뜻에 따라 계속 물었다. “만약 당신이 여자를 좋아한다면, 설마 성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아무 문제 없어요.”남우영은 억울함을 토로할 곳이 없었다. 그는 이다은의 오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방면의 오해라니.이다은은 마음이 착잡하고 무기력하게 중얼거렸다. “아. 그럼 동성애자도 아니고 몸도 문제없는데 왜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내 몸에 손대지 않는 거예요? 그럼 단순히 내게 관심이 없어서 손대기 싫은 거예요?”“혼자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요!”남우영은 마음이 지쳐 황급히 설명했다.“난 당신을 좋아해요. 아주 많이 좋아한다고요. 첫눈에 반했어요.”“그럼 대체 이유가 뭐냐고요?”이다은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응시하며 얼굴이 점
그녀는 긴장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어쨌든 그녀는 처음이었다.내일 또 아주 중요한 면접이 있었으니 그녀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다.이다은은 급히 머리를 흔들어 남자의 입에서 입과 혀를 빼내고 숨을 헐떡이며 힘없이 몸부림쳤다.“제발 그만해!”남우영의 키스는 그녀의 목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고 그녀의 잠옷 단추가 하나씩 풀렸다.이다은의 몸은 이미 그의 손에 함락되었고 이성은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었다.“안 돼. 그만!”“아!”이다은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남자의 키스가 그녀의 가슴으로 옮겨지자 그녀는 고개를 약간 젖히고 눈을 감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민감한 피부는 그의 키스에 나른해졌고 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냈다.남우영은 동작을 멈추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그녀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 위에 엎드렸다. 이렇게 급정거를 해야 하는 고통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그는 참느라 미칠 것 같았다.전에 없던 열정과 욕망이 남우영을 괴롭히고 있었다.“나 당신을 갖고 싶어요.”남우영은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난 싫어요.”이다은은 수줍게 대답했다.남우영은 자신이 경험이 없어서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그는 이다은의 입가에 천천히 키스하고 속삭였다.“조심해서 할게요. 어디가 맘에 안 드는지 알려줘요.”“시간이 이미 늦었어요. 내일 아주 중요한 면접이 있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내일을 맞이하고 싶어요.”이다은이 설명했다.“내일 면접은 분명 통과할 거예요.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이다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그렇게 위로하지 말아요. 모르는 일이니까.”남우영은 미칠 것 같은 욕망을 참으며 괴롭게 심호흡했다. 천천히 그녀의 옷을 잡아당겨 단추를 채웠다.그는 이다은의 부드러운 몸에서 일어나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응시하며 단추를 채워주고 이불을 끌어다가 덮어주었다.부끄러운 이다은은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채로 눈을 감았다.“내일 저녁.”그는 목이 쉬었고 목
다음 날 아침.이다은은 엄청 일찍 일어났다.그녀는 오늘의 면접을 매우 중시했다. 특별히 연한 화장까지 하고 치장을 한 후 30분 일찍 외출했다.길이 막힐까 봐 그녀는 일부러 지하철을 타러 갔다. 그녀가 막 지하철 입구 밖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한 그림자가 그녀를 공격했다.녹색 물감이 든 작은 통의 물이 그녀에게 쏟아졌다.이다은은 갑자기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고 비명을 질렀다.“아!”추위가 두피에서 아래로 내려오자 그녀는 온몸이 흠뻑 젖었고 충격적인 얼굴로 그녀에게 물을 끼얹은 사람을 바라보았다.임신한 소이현이었다.지하철 입구를 오가는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고 어리둥절해져서 호기심에 멈춰 서서 구경하고 이것저것 떠들어댔다.이다은은 어금니를 꽉 깨물어 참고는 천천히 손을 들어 눈 속의 액체를 닦아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옷을 한 번 본 후, 다시 소이현을 바라보았다.만약 그녀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분명 싸대기를 몇 대 때리고 소이현을 땅바닥에 눌러 때려주고 있었을 것이다.이다은은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했고 입을 살짝 벌리고 숨을 내쉬더니 물었다.“소이현, 너 미쳤어?”소이현은 일부러 몸에 꼭 끼는 옷을 입고 임신한 배를 들어 올렸다. 그녀는 피해자인 척 눈물을 흘리며 이다은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이다은, 감히 내 남편을 꼬드겨? 넌 정말 사람도 아니야.”구경꾼들이 점점 많아지자 모두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했다.이다은은 재빨리 마스크를 꺼내 쓰고 화를 냈다.“어디서 생사람 잡고 있어?”소이현은 억울해하며 울먹였다.“나 두 사람 채팅 기록 봤어. 그런데도 시치미를 떼고 있어?”채팅 기록.이다은은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봤으니 너도 잘 알겠네. 네 남편이 내게 매달렸고 네 남편이 내게 고백했어. 난 이미 분명하게 거절했고 차단까지 했어.”소이현은 배를 움켜쥐고 울먹였다.“네가 희망을 주며 꼬드기지 않았다면 왜 계속 너를 잊지 못하고 매달리겠어?”이다은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이건 그녀가 들어본 것 중 가장 황
소이현은 각종 검사를 받고 있었다.이다은은 병원 벤치에 앉아 휴대폰의 시간과 그녀가 보낸 사과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좋아했던 남자를 소이현에게 빼앗겼다.그리고 지금 그녀가 꿈꾸던 일이 또다시 소이현에 의해 망가졌다.어쩌면 전생에 소이현에게 빚을 진 것 같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정하늘이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했다. 그는 이다은을 보는 순간 멈칫하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다은아, 네가 왜 여기 있어? 이현이는? 근데 너 머리와 옷이 왜 다 젖었어?”이다은은 성난 눈으로 아무 말 없이 그를 노려보았다.그녀 눈 밑의 분노에 정하늘은 어리둥절했고 긴장하여 침을 삼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아이가 다쳤다고 이현이가 말하던데. 대체 무슨 일이야?”이다은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아이가 다친 게 아니라 소이현이 그녀를 괴롭히는 수단일 뿐이었다.병원에 와서 머리부터 끝까지 검사를 받았다. 심지어 간 기능 5종, 혈연병, 유전병 등등...그녀를 호구로 여기고 검사비 200만 원을 넘게 내게 했다.이다은은 액땜하고픈 마음에 소이현과 따지지 않았다.그때, 소이현이 검사 보고서를 들고 의사 사무실에서 나왔다.“이현아, 아이는 괜찮아?”정하늘은 소이현을 보자마자 달려가 그녀를 부축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소이현은 배를 잡고 차가운 눈으로 이다은을 째려보며 괴로운 척했다.“여보, 나 배가 너무 아파. 흑흑... 다은이가 날 밀어서 내가 넘어졌어.”정하늘은 화가 나서 이다은을 향해 소리쳤다. “이다은, 화풀이하려거든 나한테 덤벼. 어떻게 임산부인 이현이를 밀 수 있어?”이다은은 짜증이 밀려와 한마디도 하기 싫었다.그녀는 노인과 임산부의 미움을 사는 것이 가장 번거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백 마디로 변명할 수 없었다.이다은은 일어나서 차가운 얼굴로 소이현과 정하늘에게 다가가 쌀쌀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입원할 필요 없다면 아이는 분명 문제없는 거네. 근데 넌 이 기회를 틈타 내 돈으로 전신 신체검사까지
이다은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얼음장 같은 눈으로 억제할 수 없는 한을 품고 있었다.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떠났다.정하늘은 눈 밑에 눈물이 맺힌 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이 마치 넋이 나간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소이현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끼고 안쓰러운 듯 속삭였다.“여보, 우리 아이와 나를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집착하지 마. 다은이는 이미 결혼했어.”정하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뺨을 가리고 벽에 몸을 던져 펑펑 울기 시작했다.소이현은 그의 뒤에 서서 바라보며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주먹을 쥐고 가늘게 떨었다....이다은은 병원을 떠나 택시를 탔다.그녀는 기분이 가라앉아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한 번 보았다.에이스타 그룹 인사팀 팀장의 메시지였다.[이다은 씨, 오늘 일이 생겨서 못 오시면 내일이나 모레로 미룰 수 있어요. 평일 아무 때나 면접 보러 오셔도 돼요.]이다은은 메시지를 보며 실감이 나지 않았다.세상에 이렇게 좋은 회사가 다 있을까?정말 사기꾼이 아닐까?그녀는 유명하지도 않고 학력도 미달한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왜 에이스타 그룹의 인사팀 팀장이 이렇게 그녀를 존중하고 있을까?정말 이상했다. 이런 비현실적인 겸손과 공손함에 이다은은 크게 의심하기 시작했고 마음이 복잡했다.집에 돌아온 이다은은 머리와 몸을 깨끗이 씻고 물감 든 옷을 모두 버렸다.그녀는 기분이 우울해서 머리를 말리고 큰 침대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깊이 잠들었다.이다은은 점심을 먹지 않고 저녁까지 잤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창턱 밖에는 노을이 가득했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커튼이 가볍게 휘날리고 있었다.문밖에서 거실 대문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이다은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풀이 죽어 방을 나섰다.그녀는 거실에서 남우영을 볼 수 없었고 주방에서 소리가 났다.나른한 몸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질질 끌며 부엌으로 들어갔다.발소리가 들리자 남우영이 뒤돌아보았다.갑자기 작은 몸이
남우영은 당황하더니 급히 핑계를 댔다.“당신 기분이 안 좋으니 아마 면접 때문일 것 같아서요.”이다은은 그의 허술한 설명을 믿지 않고 되물었다.“면접을 통과하지 못해서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왜 내가 면접에 안 갔다고 생각해요?”남우영은 할 말을 잃었고 이다은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곧 남우영은 화제를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아직 밥 안 먹었죠. 내가 저녁 준비할게요.”“남우 씨...”이다은이 그를 따라가며 불렀지만 남우영은 여전히 질문을 회피했다.“뭐 먹고 싶어요? 소고기 괜찮아요?”“정말 해명하지 않을 거예요?”“그냥 추측한 거예요.”이다은은 긴 한숨을 내쉬며 할 말이 없었다.질문을 피하려고 남우영은 저녁 내내 서재에 숨어 바쁘게 일했고 밤이 깊어서야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이튿날 아침.이다은은 원하는 대로 에이스타 그룹 인사팀에 왔다. 1차 면접만 보고 바로 합격했다.이 간단한 절차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면접이었고 그저 형식처럼 보였다. 회사는 그녀를 채용하는 데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노동 계약서를 받고 자신의 이름을 서명할 때까지 이다은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만약 에이스타 그룹처럼 큰 기업이 여기에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녀가 항공연구개발부서 직원이라니.이다은은 면접부터 입사, 그녀의 사원증을 받기까지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비현실적인 꿈을 꾼 느낌이었다.입사 후 그녀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사팀 팀장이 그녀를 옆의 매우 넓은 건물로 데리고 갔다.내부에는 대부분 기계류 장식과 연구개발 부서의 작업실이 있었다.연구개발부서 사무실에서 모두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인사부 팀장은 그녀의 자료를 연구개발부서 이사에게 건네주며 은근히 한마디 던졌다.“유 선생님, 특별 채용한 신입사원이니 잘 챙겨주세요.”연구개발부서 이사는 머리카락이 적고 배가 불룩한 50대 중년 남자로 두꺼운 안경을 쓰고 심각한 얼굴로 이다은을 훑어보았다.특채라는 말에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