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경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 비꼬듯 그녀를 힐끗 훑어보았다.고개를 돌려 윤하연을 보며 말했다.“윤하연, 이 두 사람을 불러 내 성질을 긁을 생각이었어? 너무 저급한 수법이네.”윤하연은 학교 다닐 때처럼 윤하경에게 잘 보이려고 설설 기며 일어섰다.“언니, 그런 거 아니야. 오늘 마침 내 생일이잖아. 청하도 해외에서 돌아왔고 해서 같이 한번 모이려고 부른 거야.”“그래도 그때는 우리 사이가 좋았잖아.”그녀는 웃으며 진다은과 임청하를 쳐다본 다음 윤하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학교 때 우정이 가장 순수하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윤하경은 코웃음을 쳤다.“난 그때 우정이 순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임청하와 진다은을 쓸어보더니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역겨울 뿐이지.”“윤하경, 너 그게 무슨 말이야?”윤하경은 임청하를 멍하니 쳐다보고는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국어를 낙제하던 애들이야. 그 이해 능력으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도 당연하지.”임청하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그녀의 흑역사였다.윤하경이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거론하니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옆에 있던 진다은이 이를 보고 급히 임청하를 잡아당기고 웃으며 말했다.“옛 동창들끼리 왜 그렇게 흥분해.”그리고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보며 말했다.“하경아, 오랜만이다. 어서 앉아.”윤하경은 오히려 약간 의아한 듯 진다은을 쳐다보았다.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진다은은 오히려 철이 든 것 같았다.“그래 언니. 어서 앉아.”윤하연은 급히 다가가서 윤하경을 끌어 앉히고 직접 술을 따라 주었다.“언니,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오늘 이 술을 마시고 과거는 없던 일로 하면 안 될까? 응?”그녀는 조심스럽게 윤하경을 바라보았다.겉으로 보기에는 사과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말투는 분명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웃었다.“좋아. 기왕 사과하겠다면 태도를 보여야지.
임청하는 움찔하더니 기어 나오는 소리로 말했다.“마시면 마시는 거지.”윤하연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임청하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임청하가 다섯 번째 잔을 비우고 나서야 그녀는 손을 들어 임청하를 막았다.“청하야, 그만해.”윤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건 나와 언니 사이 일이야. 너희와 아무 상관없어.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언니의 부성애를 빼앗았으니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야.”술 몇 잔을 마시자 임청하의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술 트림을 하고 윤하연의 어깨를 두드렸다.“윤하연, 넌 절대 윤하경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집간 건 어른들의 일이야.”“널 괴롭힌 건 윤하경이 잘못한 거야. 이건 전혀 다른 문제야.”임청하는 호기롭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보았다.“앞으로 또 하경이가 널 괴롭히면 나를 찾아와.”임청하처럼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을 보며 윤하경은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그녀는 냉소를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윤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윤하경을 돌아보고 말했다.“언니, 남은 술은 내가 다 마실게. 언니가 나 용서해줬으면 좋겠어.”그녀는 자신의 입에 술 다섯 잔을 콸콸 부었다.그리고 깨끗한 컵에 술을 가득 따라 윤하경에게 건넸다.“이제 언니 차례야.”“이 술을 마시고 나면 우리 전에 맺혔던 감정을 모두 푸는 거야. 응?”윤하경은 윤하연이 건넨 술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언니?”윤하연이 그녀를 다시 부르더니 겁에 질려 물었다.“그래도 나 용서해주기 싫어?”윤하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윤하연이 오늘 이렇게 큰 판을 벌인 것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 정말 궁금했다.지난 몇 년 동안 구지호의 일을 빼고 윤하연은 그녀에게서 이득을 취한 적이 없었다.심지어 구지호는 쓰레기였다. 그녀는 쓰레기마저 주워간 것이다.대체 무슨 용기로 윤하연은 지금 그녀에게 도발하고 있을까?두 사람은 그렇게 대치하고 있었다.꼬박 몇 분 후에
윤하연이 기뻐하지 않자 윤하경은 실망한 투로 물었다.“왜? 맘에 안 들어? 내가 정성껏 고른 선물인데 설마 맘에 안 드는 건 아니지?”윤하연은 억지웃음을 지었다.“아니야. 아주 맘에 들어.”‘윤하경, 지금 무슨 속셈이야? 엄마의 외도를 조롱하는 거야? 아니면 날 비웃는 거야?’윤하연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현장에 보는 사람이 많아 여전히 착하고 선량한 이미지를 유지했다.속으로 아무리 불편해도 이를 악물고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그녀를 위해 입을 열었다.“윤하경, 대체 왜 이런 선물을 하는 거야? 무슨 속셈이야?”임청하는 미간을 찌푸리고 윤하경을 보며 계속 윤하연을 위해 나서줬다.윤하경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너 귀먹었어? 하연이가 맘에 든다잖아?”“하연이는 네 체면을 봐서 그렇게 말한 거지.”임청하는 다시 일어섰다.“윤하경!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가 있어.”“응?”윤하경은 입꼬리를 올리고 씩 미소를 지었다.윤하연은 그녀의 웃음을 보고 심장이 움찔했다.급히 임청하를 끌어당기며 말렸다.“청하야, 나 괜찮아. 나 정말 이 세트가 맘에 들어.”지금 그녀는 정말 임청하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아주 미련한 년이었다.만약 윤하경이 화가 나서 그녀의 어머니가 바람피운 일을 모두에게 털어놓으면 그녀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임청하는 윤하연의 속도 모르고 그녀의 손을 잡고 호기롭게 말했다. “우리가 있는 한 윤하경을 두려워할 필요 없어.”“평소에 집에서 널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밖에서까지 괴롭혀? 어제도 하경이가 널 때렸다며?”윤하연은 이를 악물었다.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진작 임청하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이다.윤하경은 더 이상 윤하연의 연기를 보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너희들 재밌게 놀아.”“진작 갔어야 했어.”임청하가 코웃음을 치며 빈정댔다.윤하경이 그녀를 돌아보았는데 눈빛이 좀 차가웠다.임청하는 그녀의 눈빛에 조금 넋이 나갔다.고등학교 때 윤하경의 성
윤하경은 문을 나서 차에 오른 후 바로 떠나지 않았다.차 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오늘 일로 인해 그녀는 학교 다닐 때 기억이 떠올랐다.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당시 임청하와 진다은의 배신으로 그녀는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었다.구지호도 그때 그녀의 마음을 차지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구지호에게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지금의 모든 것은 당시 윤하연이 그녀의 삶에 들어왔을 때 복선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착하지 않았다면.자신이 그렇게 나약하지 않았다면 지금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그녀는 자동차 뒷좌석에 기대어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연기가 네온사인 아래서 낭만적으로 보였고 그녀의 정교한 작은 얼굴에 아련한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그녀가 막 떠나려고 할 때,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그녀의 차 앞에 멈췄다.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리고 경적을 울렸다.그러나 그 차는 전혀 자리를 옮길 의사가 없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내밀어 앞차의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가야 해서 길 좀 비켜주시죠.”하지만 상대방 운전자는 귀가 먹은 듯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윤하경은 버럭 화가 났다.하이힐을 신고 차에서 내려 자동차 유리창을 두드렸다.“이보세요. 제가 가야 하니 길 좀 비켜주세요.”마침내 운전자는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향해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은 정말 기괴해 보였다.어둠이 깔린 지금, 담이 작은 편이 아닌 윤하경도 깜짝 놀랐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다시 한번 좋게 말했다. “길 좀 비켜주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승합차의 뒷문이 갑자기 열렸다.윤하경이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차로 끌고 갔다.윤하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오늘 뭔 일이 생길 줄 알았어.’어쩌면 윤하연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빠져
우지원은 멍해졌다.“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우지원은 움찔 놀라더니 속으로 강현우가 여색에 빠져 친구를 경시한다고 욕했다.그리고 헤헤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가서 확인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곧장 회관으로 돌아갔고 십여 분 후, 강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큰일 났어요. 누군가 하경 씨를 데려갔어요.”“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차 번호판이랑 차 행방을 알아보라고 했으니 조금 있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침대에 누운 강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알아보는 대로 전화해.”“네.”우지원은 전화를 끊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CCTV 확인하길 잘했네.”그는 CCTV를 돌아보고 윤하경을 데려간 차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대체 왜 우리 대표님 심기를 건드린 거야.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차의 행방을 알아냈다.링거를 맞고 있는 강현우도 주소를 보았고 손에 있는 주사바늘을 빼버렸다.줄곧 침대 옆에서 그를 돌보고 있던 민진혁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대표님 아직 다 안 나으셨어요. 아가씨 일은 우지원에게 맡기시죠.”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훑어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매서운 눈매는 무시할 수 없었다.민진혁은 한숨을 쉬며 자신이 강현우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내려가서 차 대기 시키겠습니다.”다행히 강현우의 몸은 낮 동안 거의 다 나았다....윤하경은 깨어났을 때 자신이 어두운 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방에는 침대 헤드라이트 하나만 켜져 있었다.그녀는 막 깨어나서 눈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방안에 반드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애써 진정하고 공기에 대고 말했다.“대체 누구야? 원하는 게 뭐야? 돈이라면 말만 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까.”윤하경은 이런 납치의 목적이 돈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었다.“하. 윤하경도 두려워할 때
“그런데 하경아, 난 정말 널 사랑해. 어떻게 하면 다시 널 얻을 수 있을까 매일 생각하고 있어.”“어쩌면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사이가 좋아질 거야.”윤하경은 그의 손길에 진저리가 났다.손을 들어 뿌리치고 싶었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대체 나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곧 알게 될 거야.”구지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손가락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 위로 미끄러져 내려와 윤하경의 부드러운 피부를 만졌다.그는 만족스럽게 한숨을 쉬었다.윤하경은 너무 징그러워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구지호. 그만해.”“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서로 각자의 삶을 잘 사면 되는 거야.”구지호는 듣자마자 무슨 대역무도한 말을 들은 듯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끝났다고? 네가 끝났다고 하면 끝난 거야? 분명 네가 먼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네가 뭔데 우리 사이를 끝내?”그는 윤하경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움켜쥐고 두 눈이 벌겋게 변했다.“윤하경, 난 절대 못 끝내.”윤하경은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소리를 내려고 했다.“구지호, 네가... 먼저... 배신했어...”“닥쳐!”구지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난 단지 세상 남자들이 다 저지르는 실수를 했을 뿐인데 넌 왜 날 용서 못 하는 거야. 대체 왜!”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걸 갈망하는 법이다.예전에 구지호는 자신이 윤하경과 사귀는 이유가 윤하경의 얼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윤하경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자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그는 점점 더 그녀를 갖고 싶었다.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망가뜨려야 했다.마치 원래 자기 소유이던 희귀한 보물이 실수로 남의 것이 된 기분이었다.그렇게 점점 마음에 병이 들었다.윤하경은 숨이 차오르지 않아 구지호와 말다툼할 힘도 없었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구지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순간 공기를 얻은 윤하경은 황급히 숨을 빨아들였다.그녀는 실크 나시만 입고 있었는데 심호흡을 할 때 상체 부위가 위아
구지호는 옷을 벗어 던지고 꽤 건장한 상반신을 드러내며 윤하경에게 다가갔다.윤하경은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며 뒤로 피했다.“네가 강현우와 침대에 올라간 걸 알지만 괜찮아. 난 아주 궁금하거든. 강현우처럼 오만한 사람이 네가 나와 잤다는 걸 알면 그때도 널 원할까?”그렇다. 강현우처럼 오만한 사람이 만약 오늘 그녀가 구지호와 잤다는 걸 알면 반드시 그녀를 버릴 것이다.그는 절대 자기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지호야, 나 좀 놓아줘.”그녀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신체의 정상적인 반응과 약물의 반응이 그녀의 행동과 말이 반대 방향으로 가도록 했다.그녀는 심지어 손을 뻗어 구지호를 만지고 싶었다.하지만 그 전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널 놓아달라고?”구지호는 웃으며 말했다.“난 이미 충분히 널 배려했어. 그거 알아? 윤하연은 네가 여러 명에게 성폭행당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협박하라고 했어.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구지호는 웃으며 손을 뻗어 윤하경을 얼굴을 만졌다.윤하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혀를 이빨 사이에 대고 마지막 힘을 다해 깨물었다.그녀는 구지호의 말에 분노했다.오늘 윤하연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윤하연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구지호를 향해 웃었다.“이리 와봐.”구지호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그러자 윤하경이 그의 어깨를 물었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깨물었다.구지호는 아파서 그녀를 확 당겨 침대에 내동댕이쳤다.“윤하경! 난 할 만큼 했어!”“구지호, 넌 참 역겨워.”윤하경은 냉소를 지으며 구지호를 보는 눈빛에 경멸이 가득했다.구지호는 그런 시선을 받으며 피식 웃었다.“그래! 아주 좋아.”그는 약효가 완전히 발작했을 때 윤하경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지 보려 했다.아마 그때가 되면 그에게 더 힘을 주라고 애원할 것이다.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고개를
말을 마친 후 다시 강현우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처리할까요?”강현우는 차가운 눈으로 구지호를 힐끗 쳐다보았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구지호가 먼저 울부짖었다.“강현우, 내가 널 무서워할 것 같아? 우리 가문은 절대 강씨 가문에 의지하지 않아. 감히 날 건드린다면...”“닥쳐!”우지원은 시끄러운 것 같아 테이블에서 더러운 천 조각을 가져와 구지호의 입에 쑤셔 넣었다.구지호는 화가 치밀어 꽥꽥 소리를 질렀다.호강하며 자란 그는 우지원처럼 더러운 일에 익숙한 사람과 전혀 비교할 수 없었다.우지원은 강현우를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강현우는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윤하경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녀는 이불 속으로 움츠러들었지만 이불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그는 실눈을 뜨고 다가가 윤하경의 이불을 들추었다.“왜? 일어나기가 아쉬워? 진짜 내가 오지 말았어야 했나?”윤하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윤하경은 울고 싶어졌다.강현우 앞에서 긴장을 푸니 목소리도 애교가 넘쳤다.강현우는 코웃음을 쳤다.“둘이 아주 잘 놀고 있네.”윤하경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난... 음... 의사 좀 불러 줄래요?”그러자 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그제야 그녀가 무섭게 뜨겁다는 것을 알았다.구지호가 약을 쓴 것 같았다. 그의 눈 밑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매서움이 스쳐 지나갔다.“의사를 부르면 늦을 거야.”그는 윤하경에게 바짝 다가갔다.“이런 일은 내가 전문이야.”윤하경의 얼굴이 순간 달아올랐다.남자의 뜻이 무엇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강현우는 몸에 상처가 있고 열도 났으니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비록 그녀의 몸이 불타오르고 강현우가 무언가를 하길 바랐지만 약간의 이성이 남아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괜찮아요. 대표님, 의사 좀 불러 주세요.”강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장난처럼 윤하
“너 대체 우리 윤씨 가문을 온 경성의 웃음거리로 만들 셈이냐?”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손이 허공을 가르며 윤하경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윤하경은 이미 익숙한 듯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고 대신 그녀의 손이 뻗어 윤하연을 거칠게 끌어당겼고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크게 휘둘렀다. “아버지가 묻고 계셔. 넌 윤씨 가문이 경성의 화제가 되길 바라는 거야?” 윤하연은 손바닥이 얼굴에 닿는 순간 충격에 얼어붙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윤수철 또한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화를 터뜨렸다. “내가 너한테 말한 거야!” 그러나 윤하경은 콧방귀를 뀌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아니 참 이상하네요? 집안이 창피해지는 게 싫다면 몸을 이렇게 만든 딸이 창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그에 대해 따지고 드는 저를 창피해하시는 거 보면 혹시라도 아빠 머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신 건 아니겠죠?”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윤수철의 얼굴을 훑었다. “확실히 검사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겠어요.” 그녀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윤수철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윤하경의 말에는 반박할 틈이 없었어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유 집사, 당장 이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그동안 조용히 지켜보던 유 집사가 황급히 나섰다. “하경 씨, 이제 그만 올라가서 쉬세요. 밤이 늦었잖아요.” 윤하경은 굳이 더 붙잡고 싸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가볍게 혀를 차며 뒤돌아서는 순간, 뭔가 미련이 남은 듯 되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싸워볼 의지가 가득했다. 그러나 유 집사의 강한 손길에 이끌려 억지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윤수철과 윤하연만 남았다. 윤하연은 뺨이 화끈거렸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윤수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빠...” 윤수철은 길게 숨을 내쉬며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한참을 침묵한 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밤 이 일에 대해 누구든 밖에 나가 입을 놀리면 그땐 봐주지 않겠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강압적이었고 잠시나마 ‘집안의 가장’다운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나 윤하경은 속으로 비웃었다. “하연이를 방으로 데려가.” 그리고 다시 윤하경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너는 따라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 윤하경은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빠, 여기서 말하면 안 돼요? 한밤중에 굳이 서재까지 갈 필요 있나요? 내일 회사 출근해야 해서 피곤하거든요.” 그러나 윤수철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서재로 와.”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고 윤하경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서재 문을 열었더니 윤수철은 이미 걸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어둑한 조명 아래서 더욱 깊어진 주름과 어두운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윤하경은 별로 개의치 않고 소파에 털썩 앉았고 강현우와의 일로 지친 그녀는 다시 하품을 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빠, 무슨 이야기든 빨리 해요. 저 지금 너무 피곤하거든요.” 그녀가 말하는 태도에 윤수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하연이가 오늘 이런 꼴을 당한 거, 너랑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어?” 윤하경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 저녁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발짝도 밖에 나간 적이 없어요. 하연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저도 궁금하네요. 아까 그녀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이 모든 건 원래 네가 당해야 할 일이었다’라고 하더라고요.” 윤하경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끝에 묻어나는 차가운 기운은 숨길 수 없었다. “아빠, 저한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 좀 해주실래요?” 그녀의 말에 윤수철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 역시 윤하연이 어리석고 경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술을 굳게
윤하경은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오며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입을 가리며 일부러 하품을 하곤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 한밤중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사람이 자야 살지.” 갓 잠에서 깬 듯한 살짝 갈라진 목소리. 그러나 계단을 내려오며 거실을 본 순간, 윤하경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거실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유 집사와 다른 가정부들도 다 깨서 거실에 모여 있었고 윤수철 역시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 서는 완전히 망가진 윤하연 있었다. 옷은 찢겨 제대로 몸을 가리지도 못했고 여기저기 남은 상처들이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대로만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강현우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걸어 내려가며 일부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연아,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들어오는 것도 이상한데 대체 무슨 꼴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적당한 놀라움과 당혹감을 담고 있었지만 그런 태도가 윤하연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그녀는 힘없이 서 있었지만 눈빛만은 증오로 이글거렸다. “윤하경... 너지? 이거 다 네가 한 짓이지?” 윤하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천진난만하게 되물었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또 시치미 떼네!” 윤하연은 미칠 듯이 화가 나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올릴수록, 윤하경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이거 전부 원래 네가 당해야 할 일이었어!” 그 말에 윤하경은 일부러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슬쩍 윤수철 쪽을 힐끔 보며 코끝을 찡긋했다. “하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네가 겪은 일은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다고 나한테 함부로 원망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그녀의 연기
윤하연은 순간 멍해졌다가 곧바로 소리쳤다. “거짓말이야! 말도 안 돼!” 하지만 남자는 목을 곧추세우며 끝까지 버텼다. “전부 증거가 있어요. 당신이 보낸 계좌 이체 내역도 있고 문자도 남아 있다고.” 그 말에 윤하연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강현우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전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그러나 이미 우지원이 그녀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냉소를 머금으며 강현우에게 폰을 내밀었다. “대표님, 여기 보세요. 이게 윤하연 씨가 보낸 메시지입니다.” 윤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삭제하려고 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들켜버렸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던 그녀는 이내 결심한 듯 강현우에게 달려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대표님, 저... 저를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뭐든 다 할게요. 원하시는 대로요.”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강현우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문득 비교했다. ‘똑같이 윤씨 집안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클까? 윤하경이 눈물을 흘릴 때는 그 모습조차 매혹적이었는데...’그러다 불현듯 윤하경이 지난번 침대 위에서 흐느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그야말로 유혹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윤하연의 울음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윤하연은 강현우의 반응을 보고 그가 넘어왔다고 착각하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 맞아요! 뭐든지 할게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그 말을 듣자 강현우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방 한쪽에 묶여 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윤씨 가문에서 이미 돈도 지불했으니 약속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남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러면... 우리가 윤하경 씨를 찾아서...” 짝! 우지원이 손을 들어 그중 한 남자의
윤하경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윤수철은 그녀의 말을 듣고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이전에도 윤하연이 밤마다 몰래 남자를 만났던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표정이 어두워진 그를 뒤로하고 윤하경은 가볍게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올라갔다.휴대폰을 확인하니 강현우가 보낸 새 메시지가 여러 개 도착해 있었다.[아이고 배짱이 제법 커졌네.]‘???’윤하경은 황당한 얼굴로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며 답장을 했다.그러자 곧바로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내가 네 비서야? 어떤 쓰레기든 다 나한테 보내서 처리해달라는 거야?]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역시 강현우는 머리가 비상했고 어떤 일이든 다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그녀는 생각을 정리한 후, 침대에 앉아 차분히 메시지를 입력했다.[그럼 수고 좀 해주세요. 굳이 제 체면을 봐서 살살해줄 필요는 없어요.]이번엔 정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젯밤 그녀를 끔찍한 일에 말려들게 하려 했던 윤하연을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어떻게 응징할까 고민하던 차에, 그녀가 스스로 구지호의 행방을 물으러 온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강현우를 이용하면 확실하고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니 정말 일거양득이었다.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아주 독하네.]메시지 뒤에 덧붙은 웃는 이모티콘이 묘하게 위압적이었다. 강현우는 짧게 웃으며 꽤 흥미롭다는 듯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지만 곧 방 안을 가득 메운 신음이 그의 기분을 흐트러뜨렸다.“대표님! 제발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윤하연이 잔뜩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그녀는 처음엔 구지호를 찾으러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납치당해 끌려오더니 눈앞엔 피투성이가 된 구지호가 정신을 잃은 채 매달려 있었다.공포에 질린 그녀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문 앞에 서 있던 강현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켜서지 않았다.강현우는 윤하연이 너무 시끄
“정신이 나갔으면 정신병원에 가. 여기서 미친 짓 하지 말고. 구지호가 어디 갔는지 나한테 묻지 마. 난 몰라.” 윤하경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오히려 윤하연을 더욱 화나게 했다. “분명히 네가 먼저 그 얘길 꺼냈잖아! 너 분명히 알고 있지? 어젯밤 너 또 지호 오빠랑 있었던 거 아니야? 집에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씹고 있는데 네가 꾸민 짓이지?” 윤하경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진짜 대단하다. 남을 의심하는 능력 하나는 끝내주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알고 있어. 궁금해?” 윤하연은 이를 악물며 다그쳤다. “장난치지 말고 당장 말해! 지호 오빠 어디 있어?!” 윤하경은 천천히 고개를 갸웃하며 손으로 턱을 괴었다. “아, 근데 말이야. 내가 굳이 네가 원하는 걸 그냥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녀의 느릿한 말투가 윤하연을 더욱 열받게 했다. “그럼 뭘 원해?” 윤하경은 손톱을 매만지며 여유롭게 말했다. “뭘 받을까 고민 중인데... 네가 무릎 꿇고 정중히 부탁하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윤하경! 적당히 해!” 윤하연이 소리쳤다. 하지만 윤하경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무릎 꿇으라고 했잖아. 싫으면 말고. 아, 그리고 가기 전에 내 노트북값부터 보내. 총 600만 원. 계좌 여기야.” 그녀는 계좌 번호를 보여주며 태연하게 말했다. “...” 윤하연은 치를 떨며 그녀를 노려봤다. 한참을 참았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 조건이 뭐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지호 오빠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건데?” 윤하경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너한테 받을 만한 게 뭐가 있겠어. 네 물건은 죄다 더러워서 필요 없고.” 그녀는 일부러 한숨을 쉬며 말을 덧붙였다. “됐어, 그래도 한집에 사는 정이 있으니까 특별히 알려줄게. 어젯밤 지호 오빠가
윤하경은 윤하연을 비웃듯이 쳐다봤다. 역시 상대가 악랄하게 나오면 그에 맞서야 속이 풀리는 법이다.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녀는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닫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유 집사에게 간단한 반찬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하연도 거실로 내려왔고 윤하경의 독이 잔뜩 서린 눈빛을 보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윤하경, 내 얼굴에 흉터라도 생기면 너 절대 가만 안 둬. 기다려 봐.”말투만 보면 마치 지금까진 자신이 참아준 것처럼 들렸다.윤하경은 가볍게 눈을 굴리며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그녀가 반응조차 하지 않자, 윤하연은 발을 쾅 내디디며 밖으로 나가버렸다.하지만 윤하경은 그녀가 나가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얇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며 마지막으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조금 더 서둘러. 여긴 상황이 바뀌었어.]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유 집사가 음식을 가져왔다.“하경 씨, 식사하세요.”“고마워요.”윤하경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사에 집중했다. 사실 아침에 강현우의 집에서 뭘 좀 먹고 싶었지만 그 남자가 또 이상하게 굴어서 제대로 식사할 기회를 놓쳤다.게다가 어젯밤의 ‘운동’에 이어 아침부터 긴장과 감정 소모가 심했으니 속이 비어 있는 게 당연했다.유 집사는 그녀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표정이 어두워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경 씨, 방금 전에 하신 일... 혹시라도 회장님이 아시면 어쩌시려고요?”“아시면 뭐요?”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유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걸 알기에 그 따뜻한 마음은 감사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착한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만약 매번 참고 넘어갔다면 지금쯤 그녀의 존재조차 지워졌을 것이다.“그게 아니라, 이따가 하연 씨가 이 일을 회장님께 말하면... 회장님이 또 하경 씨를 나무라실까 봐요.”“그럴 여유가 있을까요?”윤하경은 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며
윤하경이 윤하연의 방에 도착했을 때, 윤하연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아마도 전날 밤 술을 마시고 온갖 난리를 치느라 지쳤는지, 침대 위에서 돼지처럼 늘어져 자고 있었다.윤하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침묵을 지키다가, 손에 들고 있던 국을 그대로 윤하연의 침대 위로 쏟아버렸다.“아!”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뜨겁진 않지만 식은 국이라도 몸에 닿으면 충분히 따가운 법이다.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고통에 윤하연은 침대에서 벌떡 뛰쳐나왔다.몸을 일으킨 그녀는 곧 윤하경이 창가에 서서 태연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두 눈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윤하경! 너 미쳤어?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거야?”윤하경은 윤하연이 평소 흘리는 눈물 연기를 그대로 따라 하듯,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누가 보면 또 나한테 억울한 일 당한 줄 알겠네. 아버지가 우리 보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고 하셨잖아. 오래 자면 배고플까 봐 직접 국까지 떠서 가져왔는데 아차! 내가 그만 손을 미끄러뜨렸지 뭐야. 실수야, 그런데 네가 왜 이렇게 날 오해하는 거야?”윤하경은 억울한 듯 두 손을 들어 보였지만 윤하연은 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들으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몸이 따갑고 욱신거리는 고통도 신경 쓸 겨를 없이, 그녀는 그대로 침대에서 뛰쳐나와 윤하경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전날 있었던 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고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덤볐다가 오히려 윤하경에게 쉽게 제압당했다.윤하경은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무릎으로 그녀의 등을 눌러 바닥에 깔아버렸다.“윤하경! 당장 놔! 너 죽여버릴 거야!”윤하연은 온몸을 비틀며 반항했지만 힘이 빠져버린 몸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녀는 피부가 얼얼하게 따가운 데다, 혹여나 얼굴에 흉터라도 남게 되면 인생이 망한다는 생각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반드시 윤하경을 없애야 했다.하지만 윤하경은 태연한 얼굴로 그녀의 팔을 뒤로 꺾어 고정한
“상처가 더 심해진 것 같네요.”“그렇지. 그래서 네가 책임져야지.”강현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젯밤에 네가 너무 날뛰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까진 안 됐을 거야.”윤하경은 말없이 입술을 다물었다.‘꼭 그런 말만 골라서 하네, 진짜.’그녀는 어젯밤의 장면들을 일부러 기억에서 밀어내고 있었는데 강현우가 한마디 꺼내는 순간 그 장면들이 우르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했다.“상처 제대로 안 처리돼서 그런 거예요. 제가 다시 치료해 드릴게요.”강현우는 별다른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고 윤하경은 조용히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상처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피부는 벌어져 있었고 붉게 부어오른 자국들이 보였다. 오랫동안 방치한 흔적이 역력했고 예전부터 있던 흉터들까지 더해져 그의 등이 보는 사람조차 아찔할 정도였다.윤하경은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상처를 닦아내고 약을 바른 뒤, 다시 붕대로 감아 마무리했다. 마치 습관처럼 마지막에 가슴팍에 리본을 묶었는데 그 커다란 가슴 근육 위에 작고 정성스러운 리본이 묘하게도 시선을 끌었다.강현우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귀찮은 기색이 스쳤지만 윤하경이 열심히 리본을 묶는 모습을 보고는 그 불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됐어요.”윤하경은 손을 털며 미소를 지었다.강현우는 말없이 셔츠를 입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윤하경은 재빨리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복도를 걷던 중, 끝 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비명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은 구지호가 갇혀 있는 방이었다.그 순간, 강현우의 목소리가 문가 쪽에서 들려왔다.“마음이 쓰이면 말해. 네가 한마디 하면 내가 자비 좀 베풀 수도 있지.”고개를 돌린 윤하경은 문가에 기대 서 있는 강현우를 마주했다. 셔츠 단추를 다 채운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