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원은 멍해졌다.“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우지원은 움찔 놀라더니 속으로 강현우가 여색에 빠져 친구를 경시한다고 욕했다.그리고 헤헤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가서 확인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곧장 회관으로 돌아갔고 십여 분 후, 강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큰일 났어요. 누군가 하경 씨를 데려갔어요.”“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차 번호판이랑 차 행방을 알아보라고 했으니 조금 있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침대에 누운 강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알아보는 대로 전화해.”“네.”우지원은 전화를 끊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CCTV 확인하길 잘했네.”그는 CCTV를 돌아보고 윤하경을 데려간 차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대체 왜 우리 대표님 심기를 건드린 거야.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차의 행방을 알아냈다.링거를 맞고 있는 강현우도 주소를 보았고 손에 있는 주사바늘을 빼버렸다.줄곧 침대 옆에서 그를 돌보고 있던 민진혁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대표님 아직 다 안 나으셨어요. 아가씨 일은 우지원에게 맡기시죠.”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훑어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매서운 눈매는 무시할 수 없었다.민진혁은 한숨을 쉬며 자신이 강현우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내려가서 차 대기 시키겠습니다.”다행히 강현우의 몸은 낮 동안 거의 다 나았다....윤하경은 깨어났을 때 자신이 어두운 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방에는 침대 헤드라이트 하나만 켜져 있었다.그녀는 막 깨어나서 눈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방안에 반드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애써 진정하고 공기에 대고 말했다.“대체 누구야? 원하는 게 뭐야? 돈이라면 말만 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까.”윤하경은 이런 납치의 목적이 돈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었다.“하. 윤하경도 두려워할 때
“그런데 하경아, 난 정말 널 사랑해. 어떻게 하면 다시 널 얻을 수 있을까 매일 생각하고 있어.”“어쩌면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사이가 좋아질 거야.”윤하경은 그의 손길에 진저리가 났다.손을 들어 뿌리치고 싶었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대체 나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곧 알게 될 거야.”구지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손가락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 위로 미끄러져 내려와 윤하경의 부드러운 피부를 만졌다.그는 만족스럽게 한숨을 쉬었다.윤하경은 너무 징그러워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구지호. 그만해.”“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서로 각자의 삶을 잘 사면 되는 거야.”구지호는 듣자마자 무슨 대역무도한 말을 들은 듯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끝났다고? 네가 끝났다고 하면 끝난 거야? 분명 네가 먼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네가 뭔데 우리 사이를 끝내?”그는 윤하경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움켜쥐고 두 눈이 벌겋게 변했다.“윤하경, 난 절대 못 끝내.”윤하경은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소리를 내려고 했다.“구지호, 네가... 먼저... 배신했어...”“닥쳐!”구지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난 단지 세상 남자들이 다 저지르는 실수를 했을 뿐인데 넌 왜 날 용서 못 하는 거야. 대체 왜!”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걸 갈망하는 법이다.예전에 구지호는 자신이 윤하경과 사귀는 이유가 윤하경의 얼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윤하경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자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그는 점점 더 그녀를 갖고 싶었다.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망가뜨려야 했다.마치 원래 자기 소유이던 희귀한 보물이 실수로 남의 것이 된 기분이었다.그렇게 점점 마음에 병이 들었다.윤하경은 숨이 차오르지 않아 구지호와 말다툼할 힘도 없었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구지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순간 공기를 얻은 윤하경은 황급히 숨을 빨아들였다.그녀는 실크 나시만 입고 있었는데 심호흡을 할 때 상체 부위가 위아
구지호는 옷을 벗어 던지고 꽤 건장한 상반신을 드러내며 윤하경에게 다가갔다.윤하경은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며 뒤로 피했다.“네가 강현우와 침대에 올라간 걸 알지만 괜찮아. 난 아주 궁금하거든. 강현우처럼 오만한 사람이 네가 나와 잤다는 걸 알면 그때도 널 원할까?”그렇다. 강현우처럼 오만한 사람이 만약 오늘 그녀가 구지호와 잤다는 걸 알면 반드시 그녀를 버릴 것이다.그는 절대 자기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더럽혀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지호야, 나 좀 놓아줘.”그녀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신체의 정상적인 반응과 약물의 반응이 그녀의 행동과 말이 반대 방향으로 가도록 했다.그녀는 심지어 손을 뻗어 구지호를 만지고 싶었다.하지만 그 전에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널 놓아달라고?”구지호는 웃으며 말했다.“난 이미 충분히 널 배려했어. 그거 알아? 윤하연은 네가 여러 명에게 성폭행당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서 협박하라고 했어.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구지호는 웃으며 손을 뻗어 윤하경을 얼굴을 만졌다.윤하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혀를 이빨 사이에 대고 마지막 힘을 다해 깨물었다.그녀는 구지호의 말에 분노했다.오늘 윤하연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윤하연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구지호를 향해 웃었다.“이리 와봐.”구지호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그러자 윤하경이 그의 어깨를 물었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깨물었다.구지호는 아파서 그녀를 확 당겨 침대에 내동댕이쳤다.“윤하경! 난 할 만큼 했어!”“구지호, 넌 참 역겨워.”윤하경은 냉소를 지으며 구지호를 보는 눈빛에 경멸이 가득했다.구지호는 그런 시선을 받으며 피식 웃었다.“그래! 아주 좋아.”그는 약효가 완전히 발작했을 때 윤하경이 이렇게 나올 수 있는지 보려 했다.아마 그때가 되면 그에게 더 힘을 주라고 애원할 것이다.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고개를
말을 마친 후 다시 강현우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처리할까요?”강현우는 차가운 눈으로 구지호를 힐끗 쳐다보았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구지호가 먼저 울부짖었다.“강현우, 내가 널 무서워할 것 같아? 우리 가문은 절대 강씨 가문에 의지하지 않아. 감히 날 건드린다면...”“닥쳐!”우지원은 시끄러운 것 같아 테이블에서 더러운 천 조각을 가져와 구지호의 입에 쑤셔 넣었다.구지호는 화가 치밀어 꽥꽥 소리를 질렀다.호강하며 자란 그는 우지원처럼 더러운 일에 익숙한 사람과 전혀 비교할 수 없었다.우지원은 강현우를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강현우는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윤하경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녀는 이불 속으로 움츠러들었지만 이불이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그는 실눈을 뜨고 다가가 윤하경의 이불을 들추었다.“왜? 일어나기가 아쉬워? 진짜 내가 오지 말았어야 했나?”윤하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에요.”윤하경은 울고 싶어졌다.강현우 앞에서 긴장을 푸니 목소리도 애교가 넘쳤다.강현우는 코웃음을 쳤다.“둘이 아주 잘 놀고 있네.”윤하경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난... 음... 의사 좀 불러 줄래요?”그러자 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그제야 그녀가 무섭게 뜨겁다는 것을 알았다.구지호가 약을 쓴 것 같았다. 그의 눈 밑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매서움이 스쳐 지나갔다.“의사를 부르면 늦을 거야.”그는 윤하경에게 바짝 다가갔다.“이런 일은 내가 전문이야.”윤하경의 얼굴이 순간 달아올랐다.남자의 뜻이 무엇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강현우는 몸에 상처가 있고 열도 났으니 몸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비록 그녀의 몸이 불타오르고 강현우가 무언가를 하길 바랐지만 약간의 이성이 남아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괜찮아요. 대표님, 의사 좀 불러 주세요.”강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그녀를 바라봤다.그리고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장난처럼 윤하
하지만 다운된 뇌는 그녀가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 말을 듣고 억울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싫어요. 나 무섭단 말이에요.”그녀는 입을 오므리고 강현우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결국 말을 마치자마자 몸에서 억눌려 있던 약효가 다시 밀려왔다.“음...”그녀는 괴로운 듯 소리를 내고 돌아서서 다시 샤워기를 켜려 했다.그러나 강현우가 제지했다.“원해?”강현우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윤하경은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온몸이 점점 더 건조해지고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강현우의 말을 들은 그녀는 손을 뻗어 강현우의 목을 걸고 그에게 키스하려고 했다.그러나 남자는 잽싸게 피했다.윤하경은 멍해졌고 얼굴에는 속상한 기색이 역력했다.“나한테 빌어.”강현우는 윤하경의 귀에 대고 말했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따뜻한 기운과 함께 윤하경의 귀를 때렸다.너무 가려웠다.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윤하경은 차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또 수도꼭지를 주우러 갔다.강현우는 약간 화가 났다. ‘내가 샤워기 하나를 못 이긴다고?’그는 샤워기를 홱 던지고 윤하경을 품으로 끌어당겼다.큰 손은 거리낌 없이 윤하경의 은밀한 영역을 덮었고 손끝으로 그 부드러운 살을 살짝 비틀었다.이 방면에서 윤하경은 결코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약 기운까지 더해진 윤하경은 완전히 함락되어 강현우를 꼭 껴안았고 작은 몸은 약간 전율하고 있었다.애써 입술을 깨물고 나서야 낯 뜨거운 숨소리를 내지 않았다.강현우는 자신의 걸작에 만족한 듯 그녀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빌어.”말하는 동안 그의 손은 점점 더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했고 윤하경은 사막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그저 빗물의 촉촉함을 더 느끼고 싶었다.이 정도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그녀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결국 완전히 이성을 잃고 강현우의 품에서 떨면서 말했다.“내가 빌게요.”그녀는
민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데리고 갔습니다.”강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윤하경의 방 쪽을 돌아보았다.“여기서 지키고 있다가 깨어나면 알려줘.”민진혁은 움찔 놀랐다.“가시려고요? 의사를 불러 대표님의 상처를 보라고 할까요?”방금 안에서 그렇게 큰 움직임이 있었으니 그는 정말 강현우의 상처가 터질까 봐 두려웠다.강현우가 그를 힐끗 바라보자 그는 멋쩍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알겠습니다.”강현우의 옆에 오랫동안 있은 그는 항상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강현우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강현우가 말했다.“약상자나 가져와.”민진혁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뒤에서 약상자를 꺼내 강현우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방금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예상하고 사람을 시켜 약상자를 준비했다.강현우는 코웃음을 치더니 돌아서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민진혁은 강현우의 등 뒤에 난 상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마셨다.상처가 찢어졌으니 방금 강현우가 얼마나 힘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윤하경을 노려보고 싶었지만 못 볼 것을 볼까 봐 감히 시선을돌리지 못했다.그저 묵묵히 강현우에게 약을 발라줄 수밖에 없었다.“윤하경 잘 지켜보고 있어.”“네.”민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밖에 똑바로 서서 강현우를 배웅했다.이번 잠자리로 윤하경은 완전히 기운이 없어졌고 다음 날 아침까지 잠을 자다가 겨우 깨어났다.깨어났을 때 머릿속은 온통 어젯밤의 화면뿐이었다.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었다.강현우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하느님, 차라리 이 침대에서 죽게 해주세요.”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고 다시 이불 속에 머리를 파묻었다.“똑똑.”그녀는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누구세요?”“아가씨, 접니다.”민진혁의 목소리에 윤하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일어나 가운을 몸에 두르고 방문을
강현우는 입이 짧은 사람이었다.그녀는 요리할 줄 모르지만 성의는 표시할 수 있었다.어제 강현우가 그렇게 큰 도움을 주었으니 잘 보답해야 했다.그녀는 포레스트에 가서 강현우가 좋아하는 요리 몇 가지와 위장에 좋은 죽을 주문하고 나왔다.민진혁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포레스트에 전화해서 보내 달라고 하셔도 돼요.”윤하경은 가볍게 웃었다.“그럼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잖아요?”“그건 그렇죠.”‘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아니 대표님이 좋아하시지.’그는 속으로 강현우가 부드러운 여자의 매력에 빠졌다고 탄식하며 윤하경에게 차 문을 열어줬다.차는 헤븐에 도착해서야 멈췄다.윤하경은 차에서 내려 입구에 서서 눈앞에 있는 별장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처음 왔을 때 겪었던 일로 인해 그녀는 헤븐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저도 모르게 겁이 났다.민진혁은 그녀의 두려움을 알아차린 듯 걸어갔다.“안심하세요. 오늘은 아무도 감히 아가씨를 건드리지 못해요.”윤하경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고개를 끄덕였다.“들어가죠.”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윤하경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민진혁을 바라보았다.“혹시 포레스트도 강현우의 산업이에요?”민진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윤하경을 향해 웃었다.“이제 아셨어요?”“왜 진작 말하지 않으셨어요?”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이 들고 있는 도시락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강현우의 물건을 들고 강현우의 비위를 맞추는 꼴이었다.그녀는 이마를 짚었다.띵동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민진혁이 말했다.“가시죠.”윤하경은 대답하고는 그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교훈으로 그녀는 헤븐에서 감히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민진혁의 안내가 있으니 비로소 안정감을 느꼈다.그런데 민진혁이 방에 데려다줬을 때 강현우는 없었다.“잠시만요. 대표님은 옆 방에서 바쁘실 겁니다.”“네.”그녀는 능숙하게 접시를 식탁에 놓고 민진혁이 강현우를 데려올 때까지 기다렸다.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현우가 들어왔다.
윤하경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그래?” 강현우는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여자가 자기한테 이렇게까지 친절할 때는 항상 뭔가 속셈이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부러 음식을 챙겨서 찾아왔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온 거라고?’윤하경도 그제야 깨달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혹시... 변명하러 온 거야?”“뭘요?”강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손등에 묻은 핏자국을 문질렀다. “이 피가 누구 건지 맞혀볼래?” 윤하경은 그의 손을 흘끗 보았지만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그럼 직접 가서 확인할래?” 강현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잡아끌었다. 그의 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에 닿자, 윤하경은 간지러운 듯 몸을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다.하지만 강현우는 오히려 더 힘을 주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녀는 이끌려 복도 끝 방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단방향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바깥에서는 안이 훤히 보였지만 안에서는 바깥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바닥에는 몇몇 남자들이 손발이 묶인 채 널브러져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익숙한 실루엣을 본 순간 윤하경의 눈이 본능적으로 흔들렸다. 그 미세한 변화를 강현우가 놓칠 리 없었고 그는 비웃듯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무서워?”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전혀요.” 입술을 힘줘 올렸지만 마음은 복잡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아침에 민진혁이 말했던 게... 이거였구나.’ 천장에 매달린 사람은 바로 구지호였다. 강현우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옛 남자 친구가 이렇게 당하는 걸 보니까 마음이 좀 안 좋지?” 그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이 자리에서 그녀가 단 한 마디라도 구지호
“너 대체 우리 윤씨 가문을 온 경성의 웃음거리로 만들 셈이냐?”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손이 허공을 가르며 윤하경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윤하경은 이미 익숙한 듯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고 대신 그녀의 손이 뻗어 윤하연을 거칠게 끌어당겼고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크게 휘둘렀다. “아버지가 묻고 계셔. 넌 윤씨 가문이 경성의 화제가 되길 바라는 거야?” 윤하연은 손바닥이 얼굴에 닿는 순간 충격에 얼어붙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윤수철 또한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화를 터뜨렸다. “내가 너한테 말한 거야!” 그러나 윤하경은 콧방귀를 뀌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아니 참 이상하네요? 집안이 창피해지는 게 싫다면 몸을 이렇게 만든 딸이 창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그에 대해 따지고 드는 저를 창피해하시는 거 보면 혹시라도 아빠 머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신 건 아니겠죠?”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윤수철의 얼굴을 훑었다. “확실히 검사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겠어요.” 그녀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윤수철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지만 윤하경의 말에는 반박할 틈이 없었어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유 집사, 당장 이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그동안 조용히 지켜보던 유 집사가 황급히 나섰다. “하경 씨, 이제 그만 올라가서 쉬세요. 밤이 늦었잖아요.” 윤하경은 굳이 더 붙잡고 싸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가볍게 혀를 차며 뒤돌아서는 순간, 뭔가 미련이 남은 듯 되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싸워볼 의지가 가득했다. 그러나 유 집사의 강한 손길에 이끌려 억지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윤수철과 윤하연만 남았다. 윤하연은 뺨이 화끈거렸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윤수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빠...” 윤수철은 길게 숨을 내쉬며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한참을 침묵한 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밤 이 일에 대해 누구든 밖에 나가 입을 놀리면 그땐 봐주지 않겠다.” 그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강압적이었고 잠시나마 ‘집안의 가장’다운 위엄이 느껴졌다. 그러나 윤하경은 속으로 비웃었다. “하연이를 방으로 데려가.” 그리고 다시 윤하경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너는 따라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 윤하경은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빠, 여기서 말하면 안 돼요? 한밤중에 굳이 서재까지 갈 필요 있나요? 내일 회사 출근해야 해서 피곤하거든요.” 그러나 윤수철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서재로 와.”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갔고 윤하경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서재 문을 열었더니 윤수철은 이미 걸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어둑한 조명 아래서 더욱 깊어진 주름과 어두운 표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윤하경은 별로 개의치 않고 소파에 털썩 앉았고 강현우와의 일로 지친 그녀는 다시 하품을 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빠, 무슨 이야기든 빨리 해요. 저 지금 너무 피곤하거든요.” 그녀가 말하는 태도에 윤수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하연이가 오늘 이런 꼴을 당한 거, 너랑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겠어?” 윤하경은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 저녁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발짝도 밖에 나간 적이 없어요. 하연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저도 궁금하네요. 아까 그녀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이 모든 건 원래 네가 당해야 할 일이었다’라고 하더라고요.” 윤하경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끝에 묻어나는 차가운 기운은 숨길 수 없었다. “아빠, 저한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 좀 해주실래요?” 그녀의 말에 윤수철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 역시 윤하연이 어리석고 경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입술을 굳게
윤하경은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오며 계단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입을 가리며 일부러 하품을 하곤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 한밤중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사람이 자야 살지.” 갓 잠에서 깬 듯한 살짝 갈라진 목소리. 그러나 계단을 내려오며 거실을 본 순간, 윤하경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거실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유 집사와 다른 가정부들도 다 깨서 거실에 모여 있었고 윤수철 역시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에 서는 완전히 망가진 윤하연 있었다. 옷은 찢겨 제대로 몸을 가리지도 못했고 여기저기 남은 상처들이 말해주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대로만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강현우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걸어 내려가며 일부러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연아,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들어오는 것도 이상한데 대체 무슨 꼴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적당한 놀라움과 당혹감을 담고 있었지만 그런 태도가 윤하연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그녀는 힘없이 서 있었지만 눈빛만은 증오로 이글거렸다. “윤하경... 너지? 이거 다 네가 한 짓이지?” 윤하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천진난만하게 되물었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또 시치미 떼네!” 윤하연은 미칠 듯이 화가 나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떠올릴수록, 윤하경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이거 전부 원래 네가 당해야 할 일이었어!” 그 말에 윤하경은 일부러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슬쩍 윤수철 쪽을 힐끔 보며 코끝을 찡긋했다. “하연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네가 겪은 일은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다고 나한테 함부로 원망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그녀의 연기
윤하연은 순간 멍해졌다가 곧바로 소리쳤다. “거짓말이야! 말도 안 돼!” 하지만 남자는 목을 곧추세우며 끝까지 버텼다. “전부 증거가 있어요. 당신이 보낸 계좌 이체 내역도 있고 문자도 남아 있다고.” 그 말에 윤하연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강현우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전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그러나 이미 우지원이 그녀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냉소를 머금으며 강현우에게 폰을 내밀었다. “대표님, 여기 보세요. 이게 윤하연 씨가 보낸 메시지입니다.” 윤하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삭제하려고 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들켜버렸다.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던 그녀는 이내 결심한 듯 강현우에게 달려가 그의 다리를 붙잡았다. “대표님, 저... 저를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뭐든 다 할게요. 원하시는 대로요.”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강현우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문득 비교했다. ‘똑같이 윤씨 집안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클까? 윤하경이 눈물을 흘릴 때는 그 모습조차 매혹적이었는데...’그러다 불현듯 윤하경이 지난번 침대 위에서 흐느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그야말로 유혹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윤하연의 울음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윤하연은 강현우의 반응을 보고 그가 넘어왔다고 착각하고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 맞아요! 뭐든지 할게요.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그 말을 듣자 강현우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방 한쪽에 묶여 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윤씨 가문에서 이미 돈도 지불했으니 약속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남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러면... 우리가 윤하경 씨를 찾아서...” 짝! 우지원이 손을 들어 그중 한 남자의
윤하경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윤수철은 그녀의 말을 듣고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이전에도 윤하연이 밤마다 몰래 남자를 만났던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표정이 어두워진 그를 뒤로하고 윤하경은 가볍게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올라갔다.휴대폰을 확인하니 강현우가 보낸 새 메시지가 여러 개 도착해 있었다.[아이고 배짱이 제법 커졌네.]‘???’윤하경은 황당한 얼굴로 귀여운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며 답장을 했다.그러자 곧바로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내가 네 비서야? 어떤 쓰레기든 다 나한테 보내서 처리해달라는 거야?]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역시 강현우는 머리가 비상했고 어떤 일이든 다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그녀는 생각을 정리한 후, 침대에 앉아 차분히 메시지를 입력했다.[그럼 수고 좀 해주세요. 굳이 제 체면을 봐서 살살해줄 필요는 없어요.]이번엔 정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젯밤 그녀를 끔찍한 일에 말려들게 하려 했던 윤하연을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어떻게 응징할까 고민하던 차에, 그녀가 스스로 구지호의 행방을 물으러 온 덕분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강현우를 이용하면 확실하고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니 정말 일거양득이었다.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아주 독하네.]메시지 뒤에 덧붙은 웃는 이모티콘이 묘하게 위압적이었다. 강현우는 짧게 웃으며 꽤 흥미롭다는 듯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지만 곧 방 안을 가득 메운 신음이 그의 기분을 흐트러뜨렸다.“대표님! 제발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윤하연이 잔뜩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그녀는 처음엔 구지호를 찾으러 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납치당해 끌려오더니 눈앞엔 피투성이가 된 구지호가 정신을 잃은 채 매달려 있었다.공포에 질린 그녀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문 앞에 서 있던 강현우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켜서지 않았다.강현우는 윤하연이 너무 시끄
“정신이 나갔으면 정신병원에 가. 여기서 미친 짓 하지 말고. 구지호가 어디 갔는지 나한테 묻지 마. 난 몰라.” 윤하경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오히려 윤하연을 더욱 화나게 했다. “분명히 네가 먼저 그 얘길 꺼냈잖아! 너 분명히 알고 있지? 어젯밤 너 또 지호 오빠랑 있었던 거 아니야? 집에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씹고 있는데 네가 꾸민 짓이지?” 윤하경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 ‘진짜 대단하다. 남을 의심하는 능력 하나는 끝내주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알고 있어. 궁금해?” 윤하연은 이를 악물며 다그쳤다. “장난치지 말고 당장 말해! 지호 오빠 어디 있어?!” 윤하경은 천천히 고개를 갸웃하며 손으로 턱을 괴었다. “아, 근데 말이야. 내가 굳이 네가 원하는 걸 그냥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나?” 그녀의 느릿한 말투가 윤하연을 더욱 열받게 했다. “그럼 뭘 원해?” 윤하경은 손톱을 매만지며 여유롭게 말했다. “뭘 받을까 고민 중인데... 네가 무릎 꿇고 정중히 부탁하면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윤하경! 적당히 해!” 윤하연이 소리쳤다. 하지만 윤하경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알고 싶으면 무릎 꿇으라고 했잖아. 싫으면 말고. 아, 그리고 가기 전에 내 노트북값부터 보내. 총 600만 원. 계좌 여기야.” 그녀는 계좌 번호를 보여주며 태연하게 말했다. “...” 윤하연은 치를 떨며 그녀를 노려봤다. 한참을 참았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 조건이 뭐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지호 오빠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건데?” 윤하경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너한테 받을 만한 게 뭐가 있겠어. 네 물건은 죄다 더러워서 필요 없고.” 그녀는 일부러 한숨을 쉬며 말을 덧붙였다. “됐어, 그래도 한집에 사는 정이 있으니까 특별히 알려줄게. 어젯밤 지호 오빠가
윤하경은 윤하연을 비웃듯이 쳐다봤다. 역시 상대가 악랄하게 나오면 그에 맞서야 속이 풀리는 법이다.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그녀는 배가 고프다는 걸 깨닫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유 집사에게 간단한 반찬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윤하연도 거실로 내려왔고 윤하경의 독이 잔뜩 서린 눈빛을 보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윤하경, 내 얼굴에 흉터라도 생기면 너 절대 가만 안 둬. 기다려 봐.”말투만 보면 마치 지금까진 자신이 참아준 것처럼 들렸다.윤하경은 가볍게 눈을 굴리며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그녀가 반응조차 하지 않자, 윤하연은 발을 쾅 내디디며 밖으로 나가버렸다.하지만 윤하경은 그녀가 나가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그저 얇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며 마지막으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조금 더 서둘러. 여긴 상황이 바뀌었어.]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유 집사가 음식을 가져왔다.“하경 씨, 식사하세요.”“고마워요.”윤하경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식사에 집중했다. 사실 아침에 강현우의 집에서 뭘 좀 먹고 싶었지만 그 남자가 또 이상하게 굴어서 제대로 식사할 기회를 놓쳤다.게다가 어젯밤의 ‘운동’에 이어 아침부터 긴장과 감정 소모가 심했으니 속이 비어 있는 게 당연했다.유 집사는 그녀가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표정이 어두워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경 씨, 방금 전에 하신 일... 혹시라도 회장님이 아시면 어쩌시려고요?”“아시면 뭐요?”윤하경은 고개를 들어 유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걸 알기에 그 따뜻한 마음은 감사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착한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만약 매번 참고 넘어갔다면 지금쯤 그녀의 존재조차 지워졌을 것이다.“그게 아니라, 이따가 하연 씨가 이 일을 회장님께 말하면... 회장님이 또 하경 씨를 나무라실까 봐요.”“그럴 여유가 있을까요?”윤하경은 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며
윤하경이 윤하연의 방에 도착했을 때, 윤하연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아마도 전날 밤 술을 마시고 온갖 난리를 치느라 지쳤는지, 침대 위에서 돼지처럼 늘어져 자고 있었다.윤하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침묵을 지키다가, 손에 들고 있던 국을 그대로 윤하연의 침대 위로 쏟아버렸다.“아!”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뜨겁진 않지만 식은 국이라도 몸에 닿으면 충분히 따가운 법이다.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의 고통에 윤하연은 침대에서 벌떡 뛰쳐나왔다.몸을 일으킨 그녀는 곧 윤하경이 창가에 서서 태연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고 두 눈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윤하경! 너 미쳤어?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거야?”윤하경은 윤하연이 평소 흘리는 눈물 연기를 그대로 따라 하듯,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누가 보면 또 나한테 억울한 일 당한 줄 알겠네. 아버지가 우리 보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고 하셨잖아. 오래 자면 배고플까 봐 직접 국까지 떠서 가져왔는데 아차! 내가 그만 손을 미끄러뜨렸지 뭐야. 실수야, 그런데 네가 왜 이렇게 날 오해하는 거야?”윤하경은 억울한 듯 두 손을 들어 보였지만 윤하연은 이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들으며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몸이 따갑고 욱신거리는 고통도 신경 쓸 겨를 없이, 그녀는 그대로 침대에서 뛰쳐나와 윤하경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전날 있었던 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고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 덤볐다가 오히려 윤하경에게 쉽게 제압당했다.윤하경은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내어, 무릎으로 그녀의 등을 눌러 바닥에 깔아버렸다.“윤하경! 당장 놔! 너 죽여버릴 거야!”윤하연은 온몸을 비틀며 반항했지만 힘이 빠져버린 몸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녀는 피부가 얼얼하게 따가운 데다, 혹여나 얼굴에 흉터라도 남게 되면 인생이 망한다는 생각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반드시 윤하경을 없애야 했다.하지만 윤하경은 태연한 얼굴로 그녀의 팔을 뒤로 꺾어 고정한
“상처가 더 심해진 것 같네요.”“그렇지. 그래서 네가 책임져야지.”강현우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젯밤에 네가 너무 날뛰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까진 안 됐을 거야.”윤하경은 말없이 입술을 다물었다.‘꼭 그런 말만 골라서 하네, 진짜.’그녀는 어젯밤의 장면들을 일부러 기억에서 밀어내고 있었는데 강현우가 한마디 꺼내는 순간 그 장면들이 우르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했다.“상처 제대로 안 처리돼서 그런 거예요. 제가 다시 치료해 드릴게요.”강현우는 별다른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고 윤하경은 조용히 구급상자를 꺼내 들었다.상처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피부는 벌어져 있었고 붉게 부어오른 자국들이 보였다. 오랫동안 방치한 흔적이 역력했고 예전부터 있던 흉터들까지 더해져 그의 등이 보는 사람조차 아찔할 정도였다.윤하경은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상처를 닦아내고 약을 바른 뒤, 다시 붕대로 감아 마무리했다. 마치 습관처럼 마지막에 가슴팍에 리본을 묶었는데 그 커다란 가슴 근육 위에 작고 정성스러운 리본이 묘하게도 시선을 끌었다.강현우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귀찮은 기색이 스쳤지만 윤하경이 열심히 리본을 묶는 모습을 보고는 그 불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됐어요.”윤하경은 손을 털며 미소를 지었다.강현우는 말없이 셔츠를 입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윤하경은 재빨리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복도를 걷던 중, 끝 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비명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은 구지호가 갇혀 있는 방이었다.그 순간, 강현우의 목소리가 문가 쪽에서 들려왔다.“마음이 쓰이면 말해. 네가 한마디 하면 내가 자비 좀 베풀 수도 있지.”고개를 돌린 윤하경은 문가에 기대 서 있는 강현우를 마주했다. 셔츠 단추를 다 채운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