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경은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뜨고 임수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평소에 하던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아줌마, 아버지가 이렇게 잘해 주셨는데 아버지를 이렇게 배신할 수 있어요?” 임수연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옆에 있던 윤하연은 이를 악물고 윤하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지! 네가 꾸민 짓이지! 우리 엄마를 모함하려고!” 윤하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윤씨 가문에서 쫓겨나기 싫은 건 이해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가진 걸 지키려고 아무에게나 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옳지 않지 않겠어? 이건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수철을 바라보았고 일부러 안타까운 듯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윤수철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묘했다. 마치 자신의 죽은 아내를 떠올리는 듯한 착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윤하경의 눈빛에 담긴 묘한 동정과 실망이 그를 더욱 자극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고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윤하경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곧 심장병 발작...’ “유 집사님, 빨리 심장약 가져와요!” 쇼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윤수철이 이렇게 빨리 쓰러지면 너무 싱겁다. 유 집사는 허둥지둥 약을 가져왔고 윤하경은 직접 물을 따라 건넸다. “아버지, 약부터 드세요. 이런 일로 건강까지 해치시면 안 되죠.” 윤수철은 그녀의 손에서 약을 받아들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무릎 꿇고 울며 매달리던 건 임수연이었고 위로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윤하경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 의외로 재미있는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임수연을 바라보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임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지금은 윤하경을 상대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였고 다시 들었을 때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여보...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임수연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흥미로운 눈길로 임수연을 바라보았고 임수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이건 이유가 있어요. 여보, 저를 믿어 주세요. 정말로 당신을 배신한 게 아니에요.”윤수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 위에 있던 물컵을 바닥에 힘껏 내던졌고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그는 이를 악물며 임수연을 노려보았다.“이 사진이 진짜라고 인정해 놓고도 그딴 소리를 해? 날 뭐로 보는 거야? 감히 날 이렇게 우습게 만들어?”“아니에요! 저 정말 그런 게 아니에요!”임수연은 당황한 듯 몸을 바로 세우더니 고개를 들고 윤수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말 좀 들어봐요. 아이들 앞에서는 이야기하기 곤란해요. 그러니까 아이들 먼저 내보내요.”윤수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야? 난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이혼이야.”그는 원래부터 강한 남성우월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그런데 이런 사진까지 공개되었으니 그에게는 굴욕 그 자체였다.자존심이 짓밟힌 지금, 그는 더 이상 임수연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적어도 당분간은 절대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임수연은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윤하경과 윤하연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녀는 한숨을 깊이 내쉰 뒤,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여보, 내가 이렇게 한 건 다 당신을 위한 거예요.”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실 한쪽에서 윤하경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런 황당무계한 변명을 대놓고 하는 사람은 아마 임수연이 유일할 것이다.윤하경은 거실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미안해요,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네요. 계속하세요. 저는 없는 셈 칠게요.”그녀는 종이 냅킨을 집어 들고 입가를 닦으며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임수연은 눈에 독을 품고 윤하경을 노려보았다. 오늘 이 일이 윤하경과 무관할
윤하경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고 방금 전까지도 잔뜩 부풀어 있던 기대가 한순간에 꺼져버린 느낌이었다.모든 증거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수철이 끝내 임수연을 믿기로 한 것이다.‘사랑이라는 게, 참 감동적이네.’임수연은 이미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윤하경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단단히 다문 입술을 깨물었다. 임수연이 전화를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임 감독님?”30분 후. 거실은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임수연은 고개를 들어 윤수철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말했다.“여보, 들으셨죠? 정말 단순한 촬영이었을 뿐이에요.”윤수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때, 임수연이 고개를 살짝 돌려 윤하연에게 눈짓을 보냈다.윤하연은 눈빛을 읽고 곧바로 앞으로 나와 윤수철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아빠, 이젠 다 밝혀졌잖아요. 엄마 용서해 주세요, 네? 제발요.”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전 같았으면 윤수철은 벌써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그는 무거운 눈빛으로 윤하연을 내려다보았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윤하경은, 소파 팔걸이에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이걸로 끝내버릴까...? 아니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이렇게 쉽게 끝나선 안 되지.’임수연이 이런 정도로 쉽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었다.그녀는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윤하경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듯, 무심하게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오늘부터, 네가 ‘서해당’ 아파트로 이사 가.”그런데 바로 그때 윤수철의 차가운 목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렀다. 계단을 오르려던 윤하경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고 그녀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내가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마. 만약 네가 날 속였다면 다시는 이 집
윤하연은 갑작스러운 따귀에 얼이 빠져 멍하니 있었지만 윤하경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아!”짜증 나는 비명이 귓가를 울렸다. 윤하경은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번엔 반대쪽 뺨까지 한 대 더 후려쳤다.이제야 좌우가 균형이 맞아 보였다.“닥쳐.”윤하경의 목소리는 서늘했다.“다시는 내 엄마에 대해 입에 올리지 마.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될 거야.”강현우와 오래 엮이다 보니 그의 차가운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흉내 내게 된 것 같았다. 심지어 지금 표정도 강현우가 분노할 때와 똑 닮아 있었다.그 차가운 기운에 눌린 윤하연은 순간적으로 반격하는 것도 잊고 주춤했다.윤하경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더 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돌아섰다.그날 저녁, 저택에서 식사를 한 사람은 윤하경 혼자였다.윤수철은 서재에 틀어박혔고 윤하연은 기가 죽었는지 방으로 숨어버렸고 임수연은 이미 집에서 쫓겨났다.집안의 공기가 한결 상쾌했다. 그래서인지 저녁도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한편, 윤하연은 집을 나오자마자 구지호와 자주 만나던 호텔로 곧장 향했다.오늘도 원래 만나기로 했던 날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늦어져 버렸다.도착했을 때, 구지호는 이미 방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구지호를 본 윤하연은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냈다.“지호 오빠...”구지호는 담배를 물고 있다가 그녀의 부어오른 뺨을 보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일이야.”윤하연은 입술을 앙다물고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언니를 화나게 했더니... 그래서...”그러자 구지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그는 곧 그 감정을 감추고 손을 뻗어 윤하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칠고 뜨거운 손가락이 붉게 부어오른 뺨을 부드럽게 훑었다. 윤하연은 몸을 부르르 떨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지호 오빠, 아파...”그녀는 의도적으로 마치 침대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목소리를 가늘고 부드럽게 내밀
윤하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구지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구지호는 그녀의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다. 매서운 기운이 스치는 듯,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차가워졌다. 그 변화에 윤하연도 움찔하며 살짝 긴장했다. “오빠, 설마 아직도 포기 못 했어?” 윤하연은 눈을 아래로 깔며 애처롭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손끝으로 가볍게 눈가를 훔쳤다. “난 그저 오빠를 위해서야. 언니가 오빠를 그렇게 차갑게 내쳤는데... 오빠가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게 말이 돼? 오빠, 나 언니를 진짜 해칠 생각은 없어. 단지, 오빠를 배신한 대가가 뭔지 알게 해주고 싶을 뿐이야.” 그녀는 팔을 뻗어 구지호의 목을 감싸안으며 살짝 몸을 기대어 애교스럽게 속삭였다. 구지호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잠시 침묵한 후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좋아. 네 말대로 해.” 윤하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역시 오빠뿐이야.”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들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막 닿으려던 순간, 구지호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오빠?” 윤하연은 당황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구지호는 벌써 몸을 일으켜 외투를 걸치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얼굴 다친 상태잖아. 이런 건 급해할 거 없어.”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내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천천히 하면 돼. 앞으로도 기회는 많잖아?” 윤하연은 얼굴을 굳히며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했다. ‘뺨 맞은 게 무슨 상관이람? 설마 또 내가 못생겨 보이는 건가?’ 그녀가 뭔가 말하려 하자, 구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따가 의사 부를 테니까 치료받아.” 그는 그녀 앞으로 다가와 손가락 끝으로 살짝 그녀의 뺨을 스쳤다. “여자 얼굴은 중요하니까.” 그 말에 윤하연의 표정이 풀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오빠, 고마워.” 역시, 아직도 자신을 신경 써 주는 것 같아 윤하연은 내심 만족하며 그를 올
윤하경은 입술을 오므렸다.휴대전화를 쥐고 있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고 관절이 하얗게 변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소지연은 그녀가 계속 답장을 안 하자 또 메시지를 보냈다.[너와 강현우는 끝났어?]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각자 필요에 의해 엮인 관계니 끝났다고 할 것도 없어.][그럼 다행이야. 강현우 같은 바람둥이와는 그냥 잠자리만 가지면 돼.]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한 가지 요점을 소홀히 한 것을 발견했다.[근데 넌 어쩌다 강현우를 만났어?]소지연과 강현우는 절대 어울릴 수 있는 교점이 없으니 같은 공간에 있을 리가 없었다.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 소지연도 이 방에 있는 것 같았다.소지연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했다.[시간 나면 다시 얘기해. 너 일단 쉬어.]윤하경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다시 소식을 보내도 소지연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윤하경은 신경 쓰기가 귀찮아서 다시 강현우의 사진을 클릭해 보았다.그녀는 자신과 강현우의 관계가 침대 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두 사람은 침대 위의 사이일 뿐 감정적인 문제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광경을 보면 마음이 다소 답답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그래. 실컷 놀아 강현우. 놀다가 큰 코 다치지.”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나와서 잘 준비를 하는데 뜻밖에도 휴대폰에 메시지가 하나 더 있는 것을 보았다.확인해보니 강현우의 메시지였다.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간단명료했는데 두 글자밖에 없었다.“어디?”윤하경은 입술을 오므리고 화가 난 듯 답장하지 않았다.그러나 침대에 누워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머릿속은 아까 소지연이 보낸 사진이 아니라 강현우와 함께 한 순간들이 가득했다.족히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얼굴을 두드렸다.“윤하경!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와 그 사람은 절대 불가
깜짝 놀란 윤하경은 황급히 그를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남자의 힘이 더 컸다.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윤하경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그녀는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려 별장 쪽을 돌아보았다.이제 겨우 분풀이를 한 셈인데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약점을 잡혀 전쟁의 불길이 자신에게로 옮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왜? 무서워?”강현우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윤하경이 말을 하기도 전에 강현우는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을 끌어당겼다.거리가 가까워지자 윤하경은 강현우에게서 약간 코를 찌르는 와인 냄새를 맡았다.그리고 어렴풋한 향수 냄새도 났다.강현우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 그녀는 이 향기가 강현우의 것도 아니고 자신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갑자기 머릿속에서 아까 강현우의 품에 엎드린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바쁘신 강 대표님께서 저는 왜 찾아오셨죠? 시간이 이미 늦었어요. 대표님 몸에 상처도 다 안 나았으니 얼른 돌아가 쉬세요.”그녀가 울적하게 말하자 강현우는 코웃음을 쳤다.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차 문을 열고 윤하경을 차에 밀어 넣은 다음 몸을 숙여 들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지금 나 쫓아내는 거야? 내 허리가 고장 났어? 아니면 네가 겁이 없어진 거야?”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영리한 눈에서 날카로운 빛이 스쳤다.윤하경은 그를 올려다보면서 강현우가 정말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난 좋은 맘으로 한 말이니 대표님께서 듣기 싫으면 그냥 못 들은 거로 하세요.”이곳은 윤씨 저택이라 그녀는 감히 강현우에게 맞서지 못했다.강현우 같은 미치광이가 무슨 일을 할지 전혀 통제할 수 없으니 절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말투가 바로 누그러졌다.강현우는 그녀의 가슴에 있는 잔머리를 쓸어넘기고 손을 들어 차 문을 두드렸다.밖에 서 있던 민진혁이 즉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떠났다.윤하경은 어리둥절했다.“나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강현우는 아예 온몸으로 그녀의 몸을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눈을 떴을 때, 강현우가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을 보고 약간 의아해했다.강현우의 뒤로 민진혁의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대표님, 아가씨,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네?”윤하경은 어리둥절했고 서둘러 강현우의 얼굴을 툭툭 쳤다.“대표님, 일어나세요.”강현우의 얼굴을 만지자마자 그가 열이 심하게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이 사람 열나고 있어요. 어떻게 좀 해봐요.”민진혁은 움찔 놀랐다. 강현우의 곁을 지키면서 그는 작은 질병도 겪지 않는 아주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민진혁은 급히 차 문을 열어 강현우를 윤하경에게서 일으켜 세웠다.“아마 상처 감염으로 인한 발열일 거예요. 어서 의사를 부르세요.”“하지만 사모님께서 이미 별장까지 거의 다 오셨어요. 만약 대표님께서 여기 계신 걸 알면 따져 물으실 거예요.”민진혁은 윤하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움이 필요하다는 의사가 확실했다.윤하경은 떨떠름하다가 강현우의 한쪽 팔을 부축했다.두 사람이 강현우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누군가 문을 열었다.“현우야, 왜 아직도 안 일어났어?”윤하경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한선아가 들어오는 순간 바로 강현우의 침대 밑으로 도망갔다.민진혁이 넋을 잃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그리고 민진혁은 한선아를 보며 답했다.“대표님께서 열이 있는 것 같습니다.”한선아는 그제야 주절주절하던 입을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일이야?”민진혁은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며칠 전에 대표님께서 부상을 입으셨어요. 아마 상처 감염 때문인 것 같습니다.”한선아는 깜짝 놀라더니 서둘러 말했다.“그럼 빨리 의사를 불러야지 뭐 하고 있어?”“네.”민진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밑의 위치를 보았다.윤하경에게 행운을 빈다는 눈빛을 보내고 돌아섰다.침대 밑에 숨어 있는 윤하경은 감히 숨도 쉬지 못하고 한선아가 절대 자신을 발견하지 않기를 빌었다.강씨 가문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다. 윤하경은
“그런데 하경아, 난 정말 널 사랑해. 어떻게 하면 다시 널 얻을 수 있을까 매일 생각하고 있어.”“어쩌면 오늘 밤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사이가 좋아질 거야.”윤하경은 그의 손길에 진저리가 났다.손을 들어 뿌리치고 싶었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대체 나한테 무슨 약을 먹인 거야?”“곧 알게 될 거야.”구지호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손가락이 천천히 그녀의 얼굴 위로 미끄러져 내려와 윤하경의 부드러운 피부를 만졌다.그는 만족스럽게 한숨을 쉬었다.윤하경은 너무 징그러워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구지호. 그만해.”“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서로 각자의 삶을 잘 사면 되는 거야.”구지호는 듣자마자 무슨 대역무도한 말을 들은 듯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끝났다고? 네가 끝났다고 하면 끝난 거야? 분명 네가 먼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네가 뭔데 우리 사이를 끝내?”그는 윤하경의 부드러운 목덜미를 움켜쥐고 두 눈이 벌겋게 변했다.“윤하경, 난 절대 못 끝내.”윤하경은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소리를 내려고 했다.“구지호, 네가... 먼저... 배신했어...”“닥쳐!”구지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난 단지 세상 남자들이 다 저지르는 실수를 했을 뿐인데 넌 왜 날 용서 못 하는 거야. 대체 왜!”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걸 갈망하는 법이다.예전에 구지호는 자신이 윤하경과 사귀는 이유가 윤하경의 얼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윤하경이 먼저 헤어지자고 하자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그는 점점 더 그녀를 갖고 싶었다.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망가뜨려야 했다.마치 원래 자기 소유이던 희귀한 보물이 실수로 남의 것이 된 기분이었다.그렇게 점점 마음에 병이 들었다.윤하경은 숨이 차오르지 않아 구지호와 말다툼할 힘도 없었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구지호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순간 공기를 얻은 윤하경은 황급히 숨을 빨아들였다.그녀는 실크 나시만 입고 있었는데 심호흡을 할 때 상체 부위가 위아
우지원은 멍해졌다.“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우지원은 움찔 놀라더니 속으로 강현우가 여색에 빠져 친구를 경시한다고 욕했다.그리고 헤헤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가서 확인할게요.”말을 마친 그는 곧장 회관으로 돌아갔고 십여 분 후, 강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큰일 났어요. 누군가 하경 씨를 데려갔어요.”“내가 이미 사람을 시켜 차 번호판이랑 차 행방을 알아보라고 했으니 조금 있으면 알 수 있을 거예요.”침대에 누운 강현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알아보는 대로 전화해.”“네.”우지원은 전화를 끊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CCTV 확인하길 잘했네.”그는 CCTV를 돌아보고 윤하경을 데려간 차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대체 왜 우리 대표님 심기를 건드린 거야.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차의 행방을 알아냈다.링거를 맞고 있는 강현우도 주소를 보았고 손에 있는 주사바늘을 빼버렸다.줄곧 침대 옆에서 그를 돌보고 있던 민진혁은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대표님 아직 다 안 나으셨어요. 아가씨 일은 우지원에게 맡기시죠.”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훑어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매서운 눈매는 무시할 수 없었다.민진혁은 한숨을 쉬며 자신이 강현우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내려가서 차 대기 시키겠습니다.”다행히 강현우의 몸은 낮 동안 거의 다 나았다....윤하경은 깨어났을 때 자신이 어두운 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방에는 침대 헤드라이트 하나만 켜져 있었다.그녀는 막 깨어나서 눈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방안에 반드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애써 진정하고 공기에 대고 말했다.“대체 누구야? 원하는 게 뭐야? 돈이라면 말만 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까.”윤하경은 이런 납치의 목적이 돈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었다.“하. 윤하경도 두려워할 때
윤하경은 문을 나서 차에 오른 후 바로 떠나지 않았다.차 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오늘 일로 인해 그녀는 학교 다닐 때 기억이 떠올랐다.어렸을 때 겪었던 상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생각할 때마다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당시 임청하와 진다은의 배신으로 그녀는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었다.구지호도 그때 그녀의 마음을 차지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구지호에게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지금의 모든 것은 당시 윤하연이 그녀의 삶에 들어왔을 때 복선을 깔아놓은 것 같았다.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착하지 않았다면.자신이 그렇게 나약하지 않았다면 지금 모든 것이 달라졌을까?그녀는 자동차 뒷좌석에 기대어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연기가 네온사인 아래서 낭만적으로 보였고 그녀의 정교한 작은 얼굴에 아련한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담배 한 대를 다 피우고 그녀가 막 떠나려고 할 때,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갑자기 그녀의 차 앞에 멈췄다.윤하경은 미간을 찌푸리고 경적을 울렸다.그러나 그 차는 전혀 자리를 옮길 의사가 없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내밀어 앞차의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가야 해서 길 좀 비켜주시죠.”하지만 상대방 운전자는 귀가 먹은 듯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윤하경은 버럭 화가 났다.하이힐을 신고 차에서 내려 자동차 유리창을 두드렸다.“이보세요. 제가 가야 하니 길 좀 비켜주세요.”마침내 운전자는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향해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은 정말 기괴해 보였다.어둠이 깔린 지금, 담이 작은 편이 아닌 윤하경도 깜짝 놀랐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고 다시 한번 좋게 말했다. “길 좀 비켜주세요.”말을 마치자마자 승합차의 뒷문이 갑자기 열렸다.윤하경이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차로 끌고 갔다.윤하경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오늘 뭔 일이 생길 줄 알았어.’어쩌면 윤하연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빠져
윤하연이 기뻐하지 않자 윤하경은 실망한 투로 물었다.“왜? 맘에 안 들어? 내가 정성껏 고른 선물인데 설마 맘에 안 드는 건 아니지?”윤하연은 억지웃음을 지었다.“아니야. 아주 맘에 들어.”‘윤하경, 지금 무슨 속셈이야? 엄마의 외도를 조롱하는 거야? 아니면 날 비웃는 거야?’윤하연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지만 현장에 보는 사람이 많아 여전히 착하고 선량한 이미지를 유지했다.속으로 아무리 불편해도 이를 악물고 삼킬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그녀를 위해 입을 열었다.“윤하경, 대체 왜 이런 선물을 하는 거야? 무슨 속셈이야?”임청하는 미간을 찌푸리고 윤하경을 보며 계속 윤하연을 위해 나서줬다.윤하경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너 귀먹었어? 하연이가 맘에 든다잖아?”“하연이는 네 체면을 봐서 그렇게 말한 거지.”임청하는 다시 일어섰다.“윤하경!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가 있어.”“응?”윤하경은 입꼬리를 올리고 씩 미소를 지었다.윤하연은 그녀의 웃음을 보고 심장이 움찔했다.급히 임청하를 끌어당기며 말렸다.“청하야, 나 괜찮아. 나 정말 이 세트가 맘에 들어.”지금 그녀는 정말 임청하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아주 미련한 년이었다.만약 윤하경이 화가 나서 그녀의 어머니가 바람피운 일을 모두에게 털어놓으면 그녀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임청하는 윤하연의 속도 모르고 그녀의 손을 잡고 호기롭게 말했다. “우리가 있는 한 윤하경을 두려워할 필요 없어.”“평소에 집에서 널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밖에서까지 괴롭혀? 어제도 하경이가 널 때렸다며?”윤하연은 이를 악물었다.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진작 임청하의 입을 틀어막았을 것이다.윤하경은 더 이상 윤하연의 연기를 보기 싫어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너희들 재밌게 놀아.”“진작 갔어야 했어.”임청하가 코웃음을 치며 빈정댔다.윤하경이 그녀를 돌아보았는데 눈빛이 좀 차가웠다.임청하는 그녀의 눈빛에 조금 넋이 나갔다.고등학교 때 윤하경의 성
임청하는 움찔하더니 기어 나오는 소리로 말했다.“마시면 마시는 거지.”윤하연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임청하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임청하가 다섯 번째 잔을 비우고 나서야 그녀는 손을 들어 임청하를 막았다.“청하야, 그만해.”윤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건 나와 언니 사이 일이야. 너희와 아무 상관없어.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언니의 부성애를 빼앗았으니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야.”술 몇 잔을 마시자 임청하의 얼굴이 빨개졌다.그녀는 술 트림을 하고 윤하연의 어깨를 두드렸다.“윤하연, 넌 절대 윤하경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집간 건 어른들의 일이야.”“널 괴롭힌 건 윤하경이 잘못한 거야. 이건 전혀 다른 문제야.”임청하는 호기롭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보았다.“앞으로 또 하경이가 널 괴롭히면 나를 찾아와.”임청하처럼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을 보며 윤하경은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그녀는 냉소를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윤하연은 쓴웃음을 지으며 윤하경을 돌아보고 말했다.“언니, 남은 술은 내가 다 마실게. 언니가 나 용서해줬으면 좋겠어.”그녀는 자신의 입에 술 다섯 잔을 콸콸 부었다.그리고 깨끗한 컵에 술을 가득 따라 윤하경에게 건넸다.“이제 언니 차례야.”“이 술을 마시고 나면 우리 전에 맺혔던 감정을 모두 푸는 거야. 응?”윤하경은 윤하연이 건넨 술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언니?”윤하연이 그녀를 다시 부르더니 겁에 질려 물었다.“그래도 나 용서해주기 싫어?”윤하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윤하연이 오늘 이렇게 큰 판을 벌인 것이 대체 무엇 때문인지 정말 궁금했다.지난 몇 년 동안 구지호의 일을 빼고 윤하연은 그녀에게서 이득을 취한 적이 없었다.심지어 구지호는 쓰레기였다. 그녀는 쓰레기마저 주워간 것이다.대체 무슨 용기로 윤하연은 지금 그녀에게 도발하고 있을까?두 사람은 그렇게 대치하고 있었다.꼬박 몇 분 후에
윤하경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 비꼬듯 그녀를 힐끗 훑어보았다.고개를 돌려 윤하연을 보며 말했다.“윤하연, 이 두 사람을 불러 내 성질을 긁을 생각이었어? 너무 저급한 수법이네.”윤하연은 학교 다닐 때처럼 윤하경에게 잘 보이려고 설설 기며 일어섰다.“언니, 그런 거 아니야. 오늘 마침 내 생일이잖아. 청하도 해외에서 돌아왔고 해서 같이 한번 모이려고 부른 거야.”“그래도 그때는 우리 사이가 좋았잖아.”그녀는 웃으며 진다은과 임청하를 쳐다본 다음 윤하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학교 때 우정이 가장 순수하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윤하경은 코웃음을 쳤다.“난 그때 우정이 순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임청하와 진다은을 쓸어보더니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역겨울 뿐이지.”“윤하경, 너 그게 무슨 말이야?”윤하경은 임청하를 멍하니 쳐다보고는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국어를 낙제하던 애들이야. 그 이해 능력으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도 당연하지.”임청하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그녀의 흑역사였다.윤하경이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거론하니 너무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옆에 있던 진다은이 이를 보고 급히 임청하를 잡아당기고 웃으며 말했다.“옛 동창들끼리 왜 그렇게 흥분해.”그리고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보며 말했다.“하경아, 오랜만이다. 어서 앉아.”윤하경은 오히려 약간 의아한 듯 진다은을 쳐다보았다.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진다은은 오히려 철이 든 것 같았다.“그래 언니. 어서 앉아.”윤하연은 급히 다가가서 윤하경을 끌어 앉히고 직접 술을 따라 주었다.“언니,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오늘 이 술을 마시고 과거는 없던 일로 하면 안 될까? 응?”그녀는 조심스럽게 윤하경을 바라보았다.겉으로 보기에는 사과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말투는 분명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웃었다.“좋아. 기왕 사과하겠다면 태도를 보여야지.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한 온지우는 조금 실망했지만 고개를 숙였다.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온지우는 조금까지 축 처져 있던 얼굴이 확 펴졌다.그는 젓가락을 놓고 윤하경에게 말했다.“내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여신이 드디어 오늘 밤 만나자고 해. 나 간다.”그는 손을 내저으며 쏜살같이 가버렸고 윤하경은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이것이 온지우의 성격이었다. 방탕한 그의 성격에 이미 익숙해진 윤하경이었다.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젓가락을 놓고 일단 쇼핑몰에 들렀다가 윤하연이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이곳은 개인 회관이었다.규격은 헤븐만큼 크지 않았지만 이곳도 젊은 재벌 2세들의 집결지였다.윤하경은 회관 입구에 서서 고개를 들고 눈썹을 찡그렸다.“통은 크네.”이곳의 소비는 헤븐만큼 높지 않지만 파티를 열려면 적어도 2억은 들 것이다.‘윤하연 진짜 사치스러워졌어.’그녀는 잠시 머뭇거린 후에야 대문에 들어섰다.들어가자 종업원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사람 찾으러 왔어요. 606룸에 있는 윤하연 씨요.”“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종업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윤하경이 룸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다.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하지만 모두 윤하경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그녀와 윤하연은 결이 다른 사람이었기에 겹치는 친구가 없었지만 익숙한 얼굴이 있기는 했다.예를 들어 고등학교 여동창 두 명.윤하경이 들어오는 것을 본 두 사람은 넋을 잃고 윤하연을 돌아보며 왜 윤하경을 초대했는지 눈빛으로 묻는 듯했다.윤하경은 그들의 작은 행동을 모두 눈여겨보고 저도 모르게 고등학교 시절 일을 떠올렸다.그때 윤하경의 어머니는 임하연이라고 부르는 윤하연을 불쌍하게 여겨 그녀와 같은 학교로 전학 가는 걸 도와줬다.그때의 윤하경도 어리석고 선량했다. 윤하연이 막 전학 왔을 때 그녀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시시각각 그녀와 함께 다녔다.그러나 윤하연은 은혜를 원수로 갚
임수연은 움찔하더니 윤수철 앞에서 하던 불쌍한 모습을 취했다.그녀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두 어르신, 전 그냥 연약한 여자일 뿐이에요. 1000억이 작은 돈도 아니고 제가 어디 가서 그 큰돈을 마련하겠어요?”“그건 우리와 상관없어. 이틀 시간을 줄 테니 그 안에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끝장인 줄 알아.”남자는 차갑게 말하고는 일어나 자리를 떴다.임수연의 가엾게 우는 모습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그녀의 이 방법은 윤수철에게 통할지는 모르지만 다른 남자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임수연은 이를 악물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지금 그녀는 윤수철 앞에서 증인이 될 사람을 매수하고 있었다.만약 이 사진들과 그 영상들이 다시 유포되고 윤수철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그녀의 인생은 끝이었다.빛나는 사모님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다시 돌아가 꼬치를 팔아도 무시당할 것 같았다.그녀는 두 손을 꼭 잡고 무슨 결심이 선 듯 몸을 일으켜 떠났다.옆방 손님이 떠났다는 말을 들은 윤하경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자기 앞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가방에서 두툼한 현금 뭉치를 꺼내고 웃으며 말했다.“두 분 잘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걸로 술이라도 드세요.”“아니에요. 괜찮습니다.”방금 임수연과 대치한 남자가 황급히 거절했다.“지우 도련님 친구면 저희 친구이기도 합니다. 친구 사이에 이정도 작은 일을 도와주는데 뭘 그렇게 예의를 차리세요.”윤하경은 웃더니 현금을 다시 앞으로 밀며 일어섰다.“오늘은 이정도로 끝내시고 앞으로 며칠간은 매일 임수연에게 사진 한 장씩 보내세요.”“네. 알겠습니다.”남자는 헤헤 웃으며 꽤 두꺼워 보이는 현금 뭉치를 보았다.온지우는 손을 들어 휙 흔들었다. “됐어. 하경이가 준 돈으로 가서 차나 마셔.”남자와 일행은 서로를 쳐다보고 나서야 손을 뻗어 돈을 가져갔다.그리고 윤하경과 온지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온지우는 윤하경을 돌아보며 말했다.“네가 이렇게 독한 마음을 품을 줄은 몰랐어. 천억이면 꽤 오랫동
남자는 서류봉투에서 사진 두 장을 꺼내 임수연에게 건넸다.“이거 당신 맞죠?”임수연은 받아보더니 영리한 눈을 희미하게 떴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모르겠다고요?”남자가 냉소를 지었다.“당신이 모르겠다면 우리는 이걸 윤 회장님께 보내서 사진 속의 여자가 당신인지 확인시킬 수밖에 없어요.”임수연은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테이블을 탁 치며 소리쳤다.“대체 원하는 게 뭐죠?”“우리 요구는 간단해요. 이거면 돼요.”남자는 임수연을 향해 차갑게 웃고는 검지를 들어 보였다.“10억?”임수연이 떠보듯 물었다. 만약 10억이라면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숫자였고 그녀에게 큰 금액도 아니었다.그러나 남자의 이어진 말에 그녀는 심연 속으로 빠졌다.“우리를 너무 무시하시네. 내가 원하는 금액은 그 열 배예요.”“윤 회장 사모님의 신분이 10억 가치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임수연은 상대방이 요구한 거액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멍해졌다.“뭐? 차라리 은행을 털어!”임수연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무턱대고 1000억을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하하 웃기 시작했다.“우리는 문명한 시민이에요. 은행을 터는 건 체면이 서지 않죠.”그녀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눈앞의 두 남자와 억지로 부딪히는 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그녀는 눈을 감고 마음속의 화를 억눌렀다.잠시 생각하다가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두 분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차근차근 얘기를 나눠봐요.”그녀는 일어나 두 사람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고 웃으며 말했다.“말씀하신 금액은 제가 도저히 준비할 수 없어요. 현실적인 금액을 제시하세요. 그럼 최대한 빨리 마련해드리죠.”한편 윤하경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임수연이 만만치 않은 여자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전에 그녀를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상황을 이렇게까지 수습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했다.그녀는 속으로 임수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