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준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피곤함 속에도 따뜻한 미소가 묻어나는 듯했다.안다혜는 손을 멈추고 컴퓨터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시간을 확인했다.“오늘 안 바빠요? 어떻게 데리러 올 생각을 했어요?”그녀는 마우스로 다른 문서를 열고 빠르게 내용을 훑어보았다. “진작부터 계획했던 거지.”윤해준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요즘 세상이 워낙 험해서 혼자 밤길 가는 게 영 걱정되잖아.”안다혜의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귓불을 만지작거렸고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저 야근 좀 해야 해요. 기다려요. 이 기획안 내일 써야 하거든요.”“그럼 내가 올라갈게.”윤해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아니...”안다혜는 다급하게 말렸지만 이미 수화기에서는 뚜뚜 소리만 들려왔다.그녀는 휴대폰을 든 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비록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 몇몇 동료들은 자리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윤해준이 이 시간에 올라오면 분명 주목을 받을 터였다.곧 동료들이 보낼 놀라움과 묘한 시선을 떠올리자 안다혜의 귀가 살짝 달아올랐다.이런 사적인 감정이 동료들에게 드러나는 게 그녀는 늘 불편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곧 닥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빠르게 생각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야 사무실의 유리문이 조용히 열렸다.윤해준의 큰 키가 문에 나타났다. 그는 짙은 회색 맞춤 정장을 입고 있었고 넥타이는 살짝 풀어져 쇄골이 드러나 보였다.손에는 커피와 빵 냄새가 나는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안다혜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사무실 조명과 석양이 어우러져 그의 잘생긴 옆얼굴에 비치며 완벽한 윤곽을 그려냈다.윤해준은 그녀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뭘 그렇게 열심히 해?” 그는 컴퓨터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순간, 따뜻한 숨결이 안다혜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
안다혜는 빵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빵 냄새와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야근의 피로를 녹였다.부드러운 눈빛으로 안다혜를 바라보는 윤해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석양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그의 또렷한 이목구비를 비추자, 윤해준의 얼굴은 마치 금빛 후광이 비치는 듯 더욱 잘생겨 보였다. 그에게서는 은은한 향수 냄새와 커피 향이 섞여 풍겨 나왔고 넓은 어깨와 훤칠한 키는 성숙한 남성의 매력을 물씬 풍겼다.“아래층에서 사 왔어요?”안다혜는 빵을 삼키고 윤해준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였다.윤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눈빛에는 다정함이 어렸다.“바로 올라오려다가 아직 야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네가 불편해할까 봐 먼저 내려가서 커피랑 빵 좀 샀지. 배고플까 봐.”그는 종이봉투에서 커피 한 잔을 꺼내 안다혜 앞에 내밀었다.“식기 전에 마셔.”“고마워요.”말을 마치고 안다혜는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그녀는 풍산의 역대 프로젝트 자료를 띄워 디자인 콘셉트, 타깃 고객, 운영 방식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기존 데이터와 비교 분석하며 기획안을 조금씩 완성해 나갔다.시간은 흘러 드디어 기획안의 마지막 데이터까지 입력했다.안다혜는 크게 숨을 내쉬고 컴퓨터를 끄고 윤해준을 깨우려 했다.그녀가 몸을 돌리자 윤해준은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그의 고개는 살짝 뒤로 젖혀져 매끄러운 턱선이 드러나 있었다. 안다혜는 잠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윤해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그의 짙은 속눈썹이 눈꺼풀 아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오뚝한 콧날과 살짝 다문 입술에서는 성숙한 남자의 매력이 흘러나왔다. 안다혜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지려 했다.하지만 손끝이 그의 피부에 닿으려는 순간, 윤해준이 눈을 떴다.그는 안다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을 감싸며
안다혜는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려고요?”“친구가 산에 레이싱 서킷을 하나 만들었는데, 한번 가 볼래?”윤해준은 핸들을 돌렸다.“거기 야경이 끝내주거든.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안다혜는 잠시 놀란 듯하더니 눈빛이 반짝였다.“레이싱이요? 정말요?”그녀는 자세를 바로 했다.“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레이싱 자주 했었는데, 일이 바빠지면서 통 못 갔네요.”“잘됐네. 그럼 오늘 옛날 생각 좀 해 보지.”윤해준은 속도를 높였다. 차는 산길을 따라 레이싱 서킷으로 향했다.열린 창문으로 산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은 두 사람의 하루 피로를 씻어 주는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마이바흐는 산 정상에 있는 레이싱 서킷 주차장에 멈춰 섰다.윤해준은 먼저 차에서 내린 후 안다혜가 앉아 있는 조수석으로 걸어가 젠틀하게 문을 열어 주었다.검은색 캐주얼 옷을 입은 남자가 그들을 맞이했다.그는 뚜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에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부드럽고 차분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전체적으로 점잖고 댄디한 모습에 알 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다.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웬일이야! 오늘은 드디어 형수님까지 모시고 놀러 오셨네?”그는 안다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듣던 대로군.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우시네.”안다혜는 영문을 몰라 윤해준을 바라보며 물어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윤해준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눈가에 미소를 가득 담았다.“이쪽은 백준명, 내 친구야. 준명아, 내 아내 안다혜야.”윤해준은 넌지시 자랑하는 듯한 어조로 두 사람을 소개했다. 백준명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형수님, 처음 뵙겠습니다. 해준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직접 뵈니 과연 소문대로군요.”안다혜는 예의 바르게 그와 악수했다.“처음 뵙겠습니다, 백준명 씨.”백준명은 손을 거두고 안다혜를 잠시 탐색하듯 바라보았다.“해준이가 이렇
안다혜는 몽롱한 상태로 윤해준에게 기대었고 따뜻한 숨결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숨결에는 옅은 술 냄새가 섞여 있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윤해준의 가슴을 부드럽게 쿡쿡 찌르며 손가락으로 그의 셔츠 위를 맴돌았다.“해준 오빠는... 왜 이렇게 키가 커요?”윤해준의 눈빛이 짙어졌고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취했어.” “안 취했어요!”안다혜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며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온몸을 그의 품에 기댔다.“나 정신 말짱해요! 그냥... 그냥 오빠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들고 윤해준을 바라보았다. 촉촉한 눈망울은 붉게 물들어 익은 복숭아처럼 보였고 술기운에 살짝 취해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윤해준은 가슴이 뜨거워지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그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하고 안으로 들어가자.”윤해준은 안다혜를 안아 올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품에 안긴 안다혜를 내려다보았다.안다혜는 마치 온순한 고양이처럼 그의 품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볼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긴 속눈썹은 살며시 떨리고 있었으며 숨결은 고르고 포근했다.집 안으로 들어선 윤해준은 안다혜를 소파에 부드럽게 눕히고 주방으로 향했다.안다혜는 소파에 누워 잠결에 몇 번 몸을 뒤척였다.곧이어 윤해준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해장국을 한 그릇 들고 안다혜에게 다가왔다.“다정아, 잠깐만 일어나 봐. 해장국 좀 마셔.”안다혜는 잠결에 눈을 뜨고 윤해준과 그가 들고 있는 해장국 그릇을 번갈아 바라보며 코를 찡그렸다.“으... 이게 뭐예요?”“해장국이야. 마시면 속이 좀 편해질 거야.”윤해준은 숟가락으로 해장국을 떠서 안다혜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안다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입을 벌려 해장국을 삼켰다.따뜻한 해장국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은은한 단맛과 함께 속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몇 숟가락 더 마시자 위장이 따뜻해지면서 한결 편안해졌
다음 날 아침, 안다혜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빈 공간만 만져졌다.윤해준은 어젯밤 돌아오지 않았다.안다혜의 눈빛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쳤다.그녀는 이불을 젖히고 맨발로 바닥을 디뎌 옷장 앞으로 다가가 베이지색 니트와 검은색 와이드 팬츠를 아무렇게나 골라 입었다.세수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그녀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회사에 도착한 안다혜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했다.하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윤해준이 어젯밤 전화를 받을 때 보였던 차가운 표정과 급히 떠나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던 것이다.안다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고 다시 업무에 몰두했다.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안다혜의 휴대폰 화면이 켜지며 문자 알림이 떴다. 안소현에게서 온 문자였다.[다혜야, 엄마 생신이 다음 주 토요일인 거 알지? 잊지 말고 꼭 그 ‘미스터리' 남편이랑 같이 와. 나랑 엄마 둘 다 너무 기대하고 있으니까.] [도대체 제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종혁 씨는 요즘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드레스 고르는 것도 도와달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야.]안다혜는 문자를 읽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안소현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결국 허종혁 자랑에 덤으로 안다혜를 비웃고 싶은 심산일 터였다.안다혜는 코웃음을 치며 답장을 보냈다.[언니는 좋겠네. 허종혁 대표 같은 능력 있는 남자 만나서. 부럽다.][내 남편은 허종혁 대표만큼 바쁜 사람은 아니지만... 가족들 만나는 걸 굉장히 기대하고 있더라. 언니가 우리 남편 좀 잘 봐줘.]안다혜는 답장을 보낸 후 휴대폰을 내려놓고 피곤한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윤해준과의 결혼은 애초에 계획에도 없던 뜻밖의 사건이었다.그런데 이제 윤해준을 데리고 김미진의 생일 파티에 가야 한다니.안소현의 비아냥거림을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하지만 안다혜는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안소현이 쇼를 원한다면 제대로 된 쇼를
안다혜의 얼굴은 서진우의 말에 싸늘하게 굳어졌다.그녀는 서진우를 똑바로 쏘아보며 날카롭게 말했다.“서진우, 말조심해. 내 일은 너와 아무 상관없어. 내가 어떻게 살든 네가 참견할 일 아니야.”서진우는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거만한 태도를 되찾았다.“잘났네? 안다혜, 뭘 잘난 척 하는 거야?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나를 떠난 너는 그냥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물일 뿐이라고!”안다혜는 그가 내뱉는 독설에도 동요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서진우의 위선과 자만심을 꿰뚫어 보았다.한때 그녀는 그가 자신의 구원이자 빛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그녀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장난감으로 여겼을 뿐이었다.“서진우.”안다혜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3년 전, 내가 너를 좋아했던 건 눈이 멀었기 때문이야. 이제 난 깨달았어. 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네가 함부로 모욕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고.”안다혜의 단호한 눈빛에 서진우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그는 안다혜의 팔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재빠르게 피했다.“만지지 마.”안다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안다혜, 네가 뭔데 잘난 척하는 거야!”서진우는 성큼성큼 안다혜에게 다가가 거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다.그는 안다혜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듯한 시선으로 쏘아보고는 그녀의 차를 흘끗 쳐다보았다.그의 눈빛에는 깊은 악의와 조롱이 담겨 있었다.“차가 꽤 고급스러운데? 새로운 스폰서라도 잡았나? 아니면 또 네가 잘 쓰는 그 추잡한 수법으로 돈 많은 남자를 꼬신 거야?”서진우의 모욕적인 말에 안다혜는 눈살을 찌푸렸다.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서진우와의 거리를 벌리고 나서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서진우, 네 생각이 더러우니까 모든 게 다 더럽게 보이는 거겠지. 이 차, 내가 내 돈 주고 산 거야. 너처럼 추악한 생각으로 남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서진우는 안다혜의 말을
“놔! 서진우, 너 정말 역겨워!”안다혜는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서진우의 힘이 너무 세서 손목이 아플 뿐이었다.그때,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이훈이 나타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어질 장면을 촬영하려는 속셈이었다.사실 서진우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그는 일찌감치 이훈에게 연락해 안다혜를 망칠 증거가 될 영상을 찍도록 시킨 것이다. 그는 안다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잘난 척 할 수 있는지 두고 보려는 듯했다.“태안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네 음탕한 모습을 보여주겠어. 안다혜, 이게 바로 감히 날 건드린 대가야!”서진우는 미친 듯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 찢으려 했다.그러나 안다혜의 옷을 잡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발차기를 당했다.그리고 곧이어 넓은 재킷이 안다혜의 어깨를 감쌌고 놀라서 얼떨떨해 있던 그녀는 어느새 윤해준의 품에 안겨 있었다.“괜찮아?”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안다혜는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서진우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 듯했다.서진우는 바닥에 나뒹굴었다가 겨우 일어섰다. 그제야 그는 윤해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서진우는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안다혜가 자신을 떠난 후에는 좋은 남자를 만나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눈앞의 윤해준은 고급스러운 슈트를 입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만으로도 수많은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했다.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혹시 다른 부잣집 여자 품에서 본 제비인가?서진우는 비웃으며 더욱 거만하게 말했다.“흥, 돈 많은 남자한테 붙어먹는 줄 알았더니, 제비를 키우고 있었네? 안다혜, 네 스폰서는 네가 이렇게 노는 거 알고 있나?”서진우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윤해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는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라도 하듯 윤해준의 강렬한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만한 태도로 안다혜에게 다가갔다.“제비인
안다혜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말리려 했지만 윤해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의 뜨거운 체온이 전해지자 안다혜는 안심이 되었다.서진우는 전화를 걸어 방금 자신이 당한 일을 과장되게 설명했지만 자신의 추악한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그는 바닥에 앉아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았다.“경찰이 곧 올 거야. 안다혜, 제비 키우는 게 취미인가 보지? 오늘 네가 어떻게 제비를 지켜주나 보자. 네가 경찰까지 매수하진 못하겠지!”그는 소름 끼치도록 섬뜩하게 웃었다.하지만 윤해준은 태연하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낸 후 경찰을 기다렸다.경찰은 금방 도착했다.제복을 입은 경찰을 본 서진우는 재빨리 일어나 자신이 당한 일을 호소했다. 그는 멍투성이가 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저 여자가 시켰어요! 주범은 저 여자고 옆에 있는 제비는 공범이에요! 경찰관님, 빨리 저것들 잡아가서 조사하고 며칠 가둬 놓으세요! 너무 악질적이잖아요!”경찰은 이야기를 다 듣고 안다혜를 흘끗 보더니 수갑을 꺼냈다.안다혜가 해명하려는 순간, 경찰은 서진우에게 수갑을 채웠다.“당신,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신고자라고!”서진우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뭐가 잘못됐는지는 경찰서 가서 차근차근 이야기하시죠.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빨리 따라오세요!”경찰관은 단호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서진우를 밖으로 밀어내면서 다짜고짜 현장을 떠났다.안다혜는 너무나도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상식대로라면 윤해준과 자신이 조사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경찰이 떠나자 윤해준은 그제야 돌아서서 안다혜의 손목을 잡고 차에 태웠다.“일단 집에 가자.”그는 나지막이 말하고 자연스럽게 안전벨트를 매 줬다. 돌아가는 길에서 차 안에서 안다혜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윤해준을 쳐다보았다.“저기...”무언가 망설이며 물어보려는 순간, 차가 급정거하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왜?”윤해준의 목소리
윤해준이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오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태안 그룹 지하 주차장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찾아봐. 안다혜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야 해.”오정우는 전화를 끊자마자 컴퓨터로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윤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노트북을 켜고는 위치추적기로 안다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몇 분 후, 오정우가 전화를 걸어왔다.“대표님, 찾았어요. 누군가가 안다혜 씨를 납치해서...”“서쪽 창고로 데려갔을 거야. 경찰에 신고하고 오 비서도 서쪽 창고로 와. 나는 지금 바로 출발할 거야.”윤해준은 엄숙한 어조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정우는 윤해준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것을 눈치챘다.그동안 윤해준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더 독한 남자였다.오정우는 안다혜를 납치한 사람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윤해준이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그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서 서쪽 창고로 향했다. 신호등에 걸려도 멈추지 않고 엑셀을 있는 힘껏 밟았다.윤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운전대를 잡고는 생각에 잠겼다.‘다정아, 곧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진작에 눈치채지 못해서 미안해.’한편, 서쪽 창고.안다혜는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훈은 임유정의 옆에 서서 피식 웃더니 휴대폰을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서진우는 무언가를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는 악마 같은 남자였다. 그는 이훈한테 안다혜를 괴롭히는 영상을 잘 찍어서 전송하라고 지시했었다.건달은 손발이 묶여서 꼼짝하지 못하는 안다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온몸을 덜덜 떨며 건달을 노려보았다.“나한테 손대지 마!”안다혜는 저도 모르게 윤해준을 떠올리면서 울먹였다. 그가 곁에 있어 주면 늘 든든했고 하늘이 준 선물처럼 소중한 사람이었다.그녀는 윤해준이 자신을 구해주러 오기를 바랐다.“성격도 화끈하니까 가지고 놀 맛이 있네.”“반항해도 소용없어. 소리 지르지 말고 우리랑 재밌게 놀자.”이훈이 옆에 서서 다급
안다혜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납치당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를 납치하려고 계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안다혜가 밉보인 사람은 그 몇 명뿐이었던 것이다.이훈이 당당하게 걸어오자 안다혜는 덤덤한 표정을 짓고 쳐다보았다. 그는 안다혜의 턱을 거칠게 잡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눈 깔지 못해?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순순히 풀어줄 것 같았어? 얼른 대답해 봐.”안다혜는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떼어달라고 눈짓했다. 임유정이 테이프를 뜯으면서 득의양양하게 말했다.“회의실에서 나를 바닥에 내팽개치다가 납치당해 보니 기분이 어때? 정말 짜릿하지 않아? 울면서 나한테 빌면 기분이 좋아서 너를 풀어줄 수도 있어.”임유정은 안다혜의 볼을 매만지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안다혜가 침을 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를 납치해도 태안 그룹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경고하는데...”안다혜가 이훈을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지금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좋은 말로 할 때 풀어.”이훈은 안다혜가 협박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안다혜의 몸매를 훑어보면서 침을 삼켰다.이훈과 눈이 마주친 안다혜는 속이 울렁거려서 고개를 돌렸다.그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나를 탓할 게 아니라 너를 원망해. 네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납치당한 거야.”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훈은 그녀의 턱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더니 밖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이때 건달이 4명 정도 들어오자 안다혜는 깜짝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임유정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어때? 무서워서 꼼짝도 못 하겠지? 개 같은 년, 내가 기회를 주었을 때 나한테 빌었어야지.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어.”건달들은 의자에 묶인 안다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예쁜 얼굴과 굴곡진 몸매를 쳐다보면서 여유롭게 웃었다.“오늘 정말 운이 좋네.”“우리한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마침 서진우도 안다혜를 끌어내리기 위해 기회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이훈은 서진우의 힘을 빌려서 안다혜를 상대할 생각이었다.그는 울고 있는 임유정을 달래주고는 창가로 가서 서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유정은 눈물을 그치고 이훈의 뒷모습을 지그시 쳐다보았다.이훈이 회사에서 거만하게 굴었던 건 안씨 가문 첫째 아가씨뿐만 아니라 서씨 가문 도련님이 뒷배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그가 서진우의 도움을 받게 되면 안다혜를 망가뜨리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한편, 발신자를 확인한 서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훈의 이름만 보면 그동안 안씨 가문 둘째 아가씨를 찾느라고 고생했던 것이 떠올랐다.카운터에서 마주친 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무능한 이훈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서진우가 전화를 받고는 차갑게 말했다.“쓰레기 같은 놈, 무슨 일로 연락한 거야? 안다혜가 허튼짓하지 못하게 감시하랬더니 풍산 그룹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 내 일을 망치게 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여자 하나 감시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내쫓기다니...”이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서진우는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쩔쩔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진우 도련님, 일단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세요. 다른 방법을 토론해 보려고 연락한 거예요.”“다른 방법이라니?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거야?”서진우는 지난번에 연회에서 안다혜한테 한 방 먹은 후로 갖은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는 여러 사람을 보내서 안다혜한테 복수하려 했지만 누군가가 그녀를 계속 보호해 주어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제일 믿었던 이훈마저 회사에서 해임당했기에 점점 화가 났다. 이훈이 임유정한테 일어난 일을 말하면서 제안했다.“서진우 도련님, 이번이야말로 안다혜한테 복수할 기회예요. 임유정을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의 여자 친구잖아요. 여자 친구가 괴롭힘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서진우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 네 여자 친
경비원들이 임유정을 회사 밖으로 쫓아냈다. 카운터 직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밖을 내다보며 수군거렸다.태안 그룹에서 사원을 내쫓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이때 한 경비원이 임유정의 물건이 담긴 상자를 던지면서 말했다.“앞으로 회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요. 당장 꺼지지 않으면 신고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경비원이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면서 뒤돌아 갔다. 그는 팀장의 지시에 따라 임유정의 물건을 전부 상자에 넣어서 던졌다.임유정은 팀장이 이 업계에 발을 들이고부터 지금까지 봤던 사람 중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이었다.카운터 여직원들이 바닥에 내팽개쳐진 임유정을 힐끗 쳐다보면서 깔깔 웃어댔다.임유정은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오늘 당한 치욕을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몇 배로 갚아줄 테니 두고 봐.’카운터 여직원이 임유정을 쳐다보면서 다른 직원을 향해 말했다.“회사에서 내쫓긴 주제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나 봐요. 살벌한 표정을 짓는 걸 봤어요?”다른 직원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겉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여자 같아도 늘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조금 전에 회사 단톡방에서 얘기하는 걸 보니 동료의 기획안을 표절했대요. 그리고 이훈과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고 했어요.”“회사에서 내쫓을 만하네요.”두 사람은 임유정이 어떤 표정을 짓든지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임유정은 더 이상 이 회사의 사원이 아니기에 카운터 직원한테 따질 수도 없었다.카운터 여직원들이 손가락질해도 임유정은 반격할 수 없었다. 예전의 임유정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그녀는 상자를 들고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길 한복판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안다혜한테 몇백 배 돌려줄 거야.’임유정은 택시를 타고 이훈이 지내는 곳으로 향했다. 이훈은 해임당한 뒤로 취직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가끔 서진우와 연락하면서 안다혜를
“안다혜 씨, 다음부터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 테니 제발...”“다음이란 게 있을 것 같아요?”안다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임유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진작에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임유정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을 수도 있었다.안다혜가 아니라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턴이었다면 임유정한테 당해도 반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안다혜는 차가운 두 눈으로 임유정을 쳐다보았다. 임유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안다혜 씨, 이번에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하라는 대로 하고 죽은 듯이 지낼게요.”임유정이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지만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평소에 인성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기에 모두 멀리하고 싶어 했다.이지영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환하게 웃었다.아까 안다혜가 나서지 말라고 할 때 속이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안다혜가 현명하게 처리해서 임유정의 만행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다.안다혜는 임유정의 손을 내치고는 팀장을 향해 말했다.“임유정 씨가 제대로 반성한 것 같으니 기회를 주는 건 어떨까요?”임유정이 기뻐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회사에서 내보내고 이 업계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하는 거예요.”안다혜가 또박또박 말했다. 임유정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눈물만 흘렸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기에 해임당하면 이 업계에서 취직할 수 없을 것이다. 팀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좋은 생각이에요. 안다혜 씨 말대로 해요.”안다혜는 임유정을 스쳐 지나가서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이때 임유정이 벌떡 일어서더니 안다혜의 얼굴을 잡아 뜯으려고 덤볐다.“안다혜, 이 개 같은 년!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이렇게 혼자 죽을 수는 없어. 죽으려면 다 같이 죽어야 해!”안다혜가 재빨리 옆으로 비키자 임유정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임유정이 씩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말만 하지 말고 증거를 보여줘. 네가 그렇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 것 같아?”안다혜는 임유정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PPT를 한 장씩 넘겼다. 임유정이 발표한 것과 완전히 다른 기획안이 눈앞에 나타났다.이미 협업할 연예인을 섭외했고 구체적인 대안을 정리해서 적어두었다.안다혜의 차가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임유정 씨가 발표한 기획안은 저의 초안이에요.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린 건 최근에 완성한 기획안이에요. 온천 휴양지는 럭셔리한 이미지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그녀가 말을 이었다.“지금 보시는 화면은 초안의 단점을 보완해서 최종적으로 확정한 내용이에요. 유명한 브랜드 회사 담당자와 미팅을 진행했어요. 저의 기획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요.”그 자리에 있던 사원들이 전부 일어나서 손뼉을 쳤다. 조금 전에 임유정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훌륭했다.안다혜는 사원들의 인정을 받았다. 두 사람의 기획안을 비교해 보면 누가 더 유능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임유정이 안다혜의 기획안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임유정 씨가 이런 짓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평소에 얌전한 척하더니 아무도 모르게 이익을 챙기려고 했네요.”“저런 사람과 가까이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요. 앞으로 조심해야겠어요.”“표절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곧 해임당하지 않을까요? 오늘 밤에 회사의 상업 기밀을 유출할지도 모르잖아요. 회사 차원에서 놓고 보면 위험한 인물이에요.”그 말을 들은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다혜를 향해 말했다.“안다혜 씨, 정말 훌륭한 기획안이네요. 표절할 생각밖에 없는 사람과는 다르게 무척 애썼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팀장님,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처음부터 진행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였거든요.”안다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리고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찾아냈고요. 임유정 씨를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안다혜는 임유정을 내팽개치고는 티슈로 손가락을 닦았다. 임유정은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는 안다혜를 노려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다혜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안다혜, 네까짓 게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당장 무릎 꿇고 나한테 빌란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더한 짓도 벌일 수 있어.”임유정은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안다혜의 기획안을 훔쳐서 발표한 사람은 임유정이었지만 오히려 피해자처럼 굴었다.이때 팀장이 나서서 임유정을 말리며 진지하게 말했다.“임유정 씨, 동료끼리 싸우지 마세요. 안다혜 씨가 이러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렇죠?”팀장의 말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안다혜가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맞아요. 임유정 씨는 저의 기획안을 표절했어요.”“웃기는 소리! 내가 언제 표절했다고 그래? 내 기획안이 욕심나서 일부러 나를 모함하는 거잖아.”임유정은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스러워서 언성을 높였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네가 팀장의 침대에서 뒹굴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지 않고서야 팀장이 너를 감싸고 돌 리가 없잖아.”“임유정 씨의 말을 들어보니 문뜩 궁금해지네요.”안다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훈 씨랑 무슨 사이였어요? 아주 특별한 사이인 것 같던데요.”“뭐, 뭐라고?”그 말을 들은 임유정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안다혜가 그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임유정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사원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팀장과 안다혜가 아니라 임유정과 이훈이 특별한 사이였던 것이다. 안다혜가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했다.“임유정 씨,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그리고 임유정 씨가 이 기획안을 어떻게 완성했는지 다시 설명해 볼래요?”안다혜의 말에 팀원들이 깜짝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때 이지영이 피식 웃으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다혜 씨의 말대로라면 임유정이
“임유정 씨의 기획안을 제출하면 회사의 명예에 먹칠하게 될 거예요.”안다혜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 단상에 서서 시끄럽게 떠드는 임유정을 지켜보다가 더는 들어줄 수 없어서 나섰던 것이다.임유정이 주먹을 꽉 쥔 채 반문했다.“안다혜 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임유정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설마 제가 안다혜 씨보다 먼저 승진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건가요? 안다혜 씨는 보기보다 속 좁은 사람이었네요. 동료를 시기 질투할 시간에 더 노력하지 그래요?”임유정은 안다혜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불안했다. 하지만 그날 밤에 안다혜의 컴퓨터에 있던 파일을 전부 복사한 뒤에 삭제했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안다혜가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임유정이 먼저 발표했기에 이 기획안은 임유정의 것이 되었다.팀장이 안다혜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안다혜 씨, 설마 이 기획안을...”“팀장님!”임유정이 팀장의 말을 끊으면서 소리를 질렀다.“안다혜 씨는 아무 근거도 없이 동료를 모함하고 있어요. 그런데 팀장님은 왜 안다혜 씨의 편을 드는 건가요? 설마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니겠죠? 어쩐지 저번부터 분위기가 미묘한 것 같았어요.”임유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모두 팀장과 안다혜를 번갈아 보면서 귓속말했다.팀장은 임유정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임유정 씨,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그런 사이 아니니까 모두 조용히 하세요.”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팀장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안다혜와 특별한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팀장이 아무리 부정해도 임유정의 말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이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하려고 했지만 안다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다혜는 피식 웃더니 임유정 쪽으로 다가가서 노려보았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안다혜와 달리 임유정은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임유정과 안다혜가 나란히 서 있으니 비교가 되었다. 짙은 화장을 한 임유정은 안
안다혜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는 것처럼 편하게 앉아서 임유정을 쳐다보았다.안다혜가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자 임유정은 화가 솟구쳐 올라서 주먹을 꽉 쥐었다.‘멍청한 년,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거야? 조금 있다가 너를 처참히 짓밟아줄 테니 기다려. 언제까지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지 지켜볼 거야. 이 기획안이 나의 것이 되면 너는 팀장한테 버림받겠지.’임유정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단상으로 올라갔다. 안다혜는 그 모습을 보고 팔짱을 끼더니 피식 웃었다.임유정은 USB를 컴퓨터에 꽂고는 준비한 기획안 파일을 클릭했다. 안다혜가 예상했던 대로 컴퓨터에 손을 댄 사람은 임유정이었다.임유정이 여유롭게 웃으면서 도발했지만 안다혜는 보는 체도 하지 않고 스크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 모습을 본 임유정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안다혜, 내가 준비한 기획안을 보고도 웃음이 나와? 곧 울면서 나한테 빌겠지.’임유정이 차분하게 말했다.“며칠 동안 준비한 기획안을 발표할게요. 풍산 그룹의 고급 온천 프로젝트는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와 컬래버하는 게 좋아요. 혹은 요즘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을 홍보대사로 초빙하면 더 좋고요. 그리고 풍산 그룹의 온천 휴양지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거예요.”임유정이 스크린에 PPT를 띄워놓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프로젝트의 내용을 귀담아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발표가 끝난 후, 팀원들은 임유정이 이토록 훌륭한 기획안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팀장이 감탄하면서 말했다.“임유정 씨, 정말 혼자 생각해 낸 기획안인가요?”임유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팀장님, 제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가 아니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을 거예요. 팀장님이 저를 미덥지 않아 하는 건 알지만 이건 오로지 저의 힘으로 완성한 거라고요.”팀장은 조금 전에 임유정이 자신만만하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어디에서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이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