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오후, 온혁진이 돌아왔다.최신애는 온혁진이 돌아온 걸 모르고 집안에서 끙끙 앓고만 있었다.그리고 온혁진이 집 안으로 들어오자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 있다가 달려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온혁진은 그 울음소리에 기분이 잡쳤다.“울긴 왜 울어? 돌아왔잖아.”그리고 최신애를 슬쩍 밀어냈다.최신애는 서둘러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어떻게 돌아온 거예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아요? 다들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난 변호사를 시켜...”“강지찬이 날 도왔어.”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는 자리에 얼어붙었다.“지, 지찬이가요? 강지찬이 어떻게 우리를 도울 수 있죠? 우린 강씨 가문과 이미 관계를 끊었고 지찬이랑 지 아는우리 유한이를...”“그 입 다물어!”온혁진은 최신애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똑바로 말하는데 당신이 찾은 변호사는 엉터리였어. 내가 이렇게 나올 수 있었던 건 모두 강지찬의 도움 덕분이고 지금 내 담당 변호사는 경은우야.”최신애는 정말 넋이 나갔다.“그, 그럴 리가? 그 사람들이 왜 우리를?”최신애가 믿지 않자 온혁진도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아졌다.그래서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내가 알고 있는 건 그뿐이야.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난 임씨 가문 절대 용서 못 해. 그리고 당신도 우리 유한이를 강요해 임유희와 결혼하라고 하지 마!”“절대 그럴 리 없죠.”최신애는 심장이 철렁했다. 온혁진의 표정이 싸늘할수록 최신애는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임씨 가문은 우리를 몰아붙이려고 작정했어요. 그런 가문에 어떻게 내 아들을 넘겨주겠어요?”“내 아들?”온혁진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왔다.“당신은 내 아들을 망쳤고 온씨 가문도 아예 무너뜨리고 말았어. 그런데 지금 내 아들이라는 말이 나와?”온혁진은 교도소에서 지내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으며 잘 씻지 못해 수염이 거칠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살이 빠져 볼살이 푹 꺼졌으며 몇 년이나 늙은 것 같았다.온혁진은 과거에는 최신애의 행동을 크게 마음에 담아둔 적이 없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이 되었다.최금성과 온유한은 거의 동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눈치껏 파트너는 함께 하지 않았다.한 사람은 초대를 받아온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었다.술을 몇 모금 들이켠 최금성은 카드 한 장을 온유한에게 건넸다.온유한은 카드를 슬쩍 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나한테 줄 필요 없어. 그냥 저 사람들 줘.”최금성은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이번 일을 계기로 고모님도 무슨 상황인지 잘 알게 되었을 거야. 어차피 온씨 가문은 네 것인데 왜 굳이 고집을 피우는 거야?”“그러는 형은 왜 고집 피우고 있는 건데?”최금성은 온유한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몰라 잠시 뜸을 들였다.“난 고집 피운 적 없어.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이야.”“...”온유한은 최금성이 화령을 만나는 이유가 가족에 반항하고 결혼을 강요받기 싫어 그런 줄만 알았다.“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네.”“뭐,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야. 사람들이 자꾸 물어보는 것도 지겹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그 사람들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 아무도 날 강요할 수는 없어.”최금성은 온유한을 보며 말을 이었다.“넌 지금 너무 극단적이야.”그러나 온유한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형이 그 사람을 잘 몰라서 그래. 그 사람은 영원히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고 영원히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할 거야. 그 사람은 절대 잘못을 저지를 리가 없거든.”말끝마다 최신애를 향한 원한이 묻어났다.최금성은 오늘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최신애의 성격을 떠올리며 괜스레 온유한이 딱하게 느껴졌다.그래서 더 이상 온유한에게 건의를 하지 않았다.다른 한편, 경은우가 온씨 가문을 돕고 있는다고 해도, 온혁진은 회사 일로 한시도 숨을 돌릴 수가 없었다.집을 두 채나 팔고 손에 쥔 대부분 주식을 팔았으며, 최금성이 넘겨준 돈까지 받아 겨우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그리고 온혁진은 그 뒤에 있을 문제
경찰은 빠르게 단서를 손에 쥐었고 온혁진은 너무 기쁜 마음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술을 한 병 땄다.보름 동안 얼굴 한번 보이지 않던 온유한도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고 온혁진은 술이나 한잔하자며 온유한을 불렀다.온유한은 거절하지 않았고 방으로 돌아가 옷만 갈아입고 다시 돌아왔다.온유한이 혼자 돌아오자 최신애는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유한아, 그 여자랑은 헤어진 거니?”온유한은 덤덤하게 최신애를 바라봤다.최신애는 아들이 드디어 생각 정리를 했다고 생각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잘 헤어졌어. 그딴 여자가 너한테 가당키나 해?”“그리고 유희랑 유희 어머니가 며칠 전 집에 다녀갔어. 임씨 가문은 이번 일이 모두 오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우리가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다면 공장 쪽 손실 모두 그쪽에서 책임을 질 거라고 했어.”“아들, 유희 그 아이는 정말 널 좋아하고 있어. 임씨 가문은...”퍽.온혁진이 힘껏 테이블을 내리쳤다.“그 입 다물어!”“최신애, 내가 당신한테 뭐라고 했는지 벌써 다 잊었어?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거야?”식사 시간이 다 되어가 거실과 주방에는 도우미들이 가득했다.그리고 그 많은 도우미 앞에서 온혁진이 언성을 높이자 최신애는 당황해 버렸다.온혁진은 여전히 손가락질하고 있었고 화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회사와 유한이 혼사에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한 말 잊었어?”“당신이 말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뻔했는데 그날 임씨 가문 모녀는 왜 집으로 들여보낸 거야? 내가 모르게 또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건 아니지?”최신애는 잔뜩 당황해 버렸고, 도우미 앞에서 체면을 잃은 건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서둘러 변명했다.“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어요.”“난 그저 임씨 가문과 사이가 결렬되고 모든 걸 잃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임씨 가문은 여전히 우리 가문과 혼인을 맺고 싶어 해요.”온혁진이 호통을 쳤다.“그러니 아직도 유한이더러 임씨 가문 그 딸과 결혼하라는 말이야?”“그럼 내가 그동안 감옥에
지방 언론사가 보도한 영상 속, 임씨 부자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얼굴에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온혁진은 영상을 보다가 온유한의 휴대폰을 집어 던질 뻔했고 최신애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누가 임씨 가문이랑 결혼한다고? 당신이 약속한 거야?”“저 그런 적 없어요!”최신애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자신이 정말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음을 떠올렸다.사실 그녀도 감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임씨 가문 모녀가 달콤한 말로 자신을 설득했을 때, 속으로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온혁진과 온유한을 설득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임씨 가문의 부자들은 언론을 통해 이미 결혼을 발표해 버렸다니!“그래? 그런데 저쪽에서는 이미 당신이 임씨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보물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잖아! 아직도 아니라고 할 거야?”온혁진은 다시 한번 식탁을 세게 내려쳤다.“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돌려줘!”최신애는 온혁진의 호통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자존심이 무너졌다. 그리고 속으로는 임씨 가문 모녀를 향한 원망이 끓어올랐다.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임씨 가문 모녀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함정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단순히 달콤한 말에 현혹되어 스스로 그 함정에 빠져버렸던 것이다.그때 온유한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이 상황에서도 저보고 임유희랑 결혼하라고 하다니. 도대체 저는 어머니의 아들인가요, 아니면 그냥 도구인가요?”온유한의 차가운 질문에 최신애는 말문이 막혔다.“그, 그게 아니야. 난 그런 게 아니고…”온유한은 고개를 들어 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비우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은우야, 지찬이랑 규진이에게 말해. 온가 사건에서 손 떼라고.”온혁진과 최신애는 서로를 쳐다보며 놀란 얼굴로 동시에 온유한에게 달려들었다.“온유한, 미쳤어?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유한아, 그러지 마!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정말 잘못했어!”최신애는 진심으로 당황한 모습이었다. 경은우가 마음에
온유한이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멀리 떨어져 자신을 지켜보는 강지아였다.그는 강지아를 본 지 꽤 오래되었다. 오늘 그녀는 반짝이는 핑크색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고 마치 동화 속에 사는 공주 같았다.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경계심과 거리감이 가득했고 눈빛에는 온유한을 향한 강한 거부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온유한이 시선을 거두기도 전에, 서원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서원준의 태도는 강지아를 보호하려는 듯 단호해 보였다.온유한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서원준에게 말했다.“죄송하지만 간단하게 상처만 좀 처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서원준은 그의 머리를 가리키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상처가 꽤 깊은데 병원에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정말 병원에 안 가실 거예요?”“네.”온유한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어지럼증을 가라앉히려 했다.“TV 아래 서랍에 약 상자가 있어요. 거기에 필요한 게 다 있을 거예요.”서원준은 서랍을 열어 약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확인해 보니 약들은 모두 유효 기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약 상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지아가 귀국한 후 여기에 거의 머물지 않았으니 이 약을 정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군.’“피가 멈춘 것 같네요. 다만 머리카락이... 이대로는 상처 처리가 어려워요.”온유한은 약 상자에서 바리깡을 꺼내 서원준에게 건넸다.“바리깡으로 주변만 밀어 주세요.”서원준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하지만 제가 잘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그는 바리깡을 들고 조심스럽게 상처 주변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걱정하지 마세요.”상처를 깔끔하게 소독하고 붕대로 감싼 뒤, 온유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방 쪽을 힐끗 본 그는 짧게 인사를 건넸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가볼게요.”서원준은 그의 상처를 다시 한번 살피며 말했다.“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서원준은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강지아를 따라 어머니의 집까지 갈 수 없었다. 어머니의 집에 갔다 오려면 하루가 꼬박 걸릴 테니, 그는 강지아와 함께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결국 화령에게 그녀와 동행해 달라고 부탁했다.화령은 집에서 출발했고 강지아는 다른 길로 이동했기에 두 사람은 각자 차를 몰고 서연희의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강지아는 도중에 꽃밭을 지나게 되었고 그곳에 활짝 핀 다양한 장미꽃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서연희에게 줄 꽃을 고르기 위해 차를 멈추고 꽃을 구입하기로 했다.꽃을 골라 값을 지불한 후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두 명의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들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으며 근처를 배회하던 백수처럼 보였다. 강지아가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접근한 듯했다.“길 좀 비켜주세요. 전 당신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강지아는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한 남자가 몸으로 문을 가로막았다.“예쁜이, 왜 그렇게 급히 가시나? 우리랑 한잔하러 가는 게 어때요?”그는 손을 뻗어 강지아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이 강지아에게 닿기도 전에 갑자기 한 남자의 주먹에 얻어맞고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이 자식이 누구야!” 다른 남자가 손가락질하며 으르렁거렸다.쾅! 그의 손목에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온유한이 그의 손목을 비틀어버린 것이다“이 자식아, 네가 누구길래 우리 일에 참견이야? 죽고 싶냐?”“이놈을 끝장내자!”두 남자는 화가 나서 달려들었다.온유한은 외투를 벗어 차 보닛 위에 던지고는 침착하게 두 남자와 맞섰다. 그의 날렵한 동작에 두 남자는 금세 제압당했고 결국 도망치고 말았다.강지아는 온유한의 싸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의 등장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온유한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숨을 고르려 했다. 머리 뒤쪽에 약간의 뇌진탕 증세가 있었던 그는 방금의 격투로 인해 다시 어지러움을 느꼈다.강지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
온유한은 병원에도 가지 않고 명도 빌딩에도 머물지 않았다. 그는 연성으로 돌아가자마자 아무 호텔이나 찾아 들어가, 그곳에서 3일 동안 아무런 연락도 받지 않고 잠만 잤다.이 3일 동안 그는 휴대폰을 꺼둔 채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3일 만에 일어나 거울을 본 온유한은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머리는 엉망이었고 수염은 덥수룩했으며 눈가가 깊이 패여 있어 마치 유령 같았다.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아 배가 고프면 술이나 물로 대신했고 이미 위가 심하게 아파지고 있었다.온유한은 호텔에 전화해 죽을 주문한 뒤 욕실로 향했다.머리에 아직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편안하게 샤워했다. 샤워를 하던 중 머리에 감았던 붕대가 물에 젖어 떨어졌다.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쯤 호텔 직원이 죽을 가져왔고 직원은 온유한의 뒷머리에 난 대머리 부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잘생긴 남자가 갑자기 대머리가 되다니! 하지만 이내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손님, 의사를 불러드릴까요?”“아니요, 괜찮습니다.”온유한은 죽을 먹었지만 위는 여전히 아팠다. 그는 다시 욕실로 들어가 수염을 깎고 자신을 정돈한 뒤, 호텔을 퇴실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를 본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모두가 웅성거리며 속삭였다.그때, 제자인 전성호가 어디선가 나타나 눈가가 붉어진 채 그에게 달려왔다.“선생님, 대체 어디에 계셨던 거예요? 다들 선생님 찾느라 난리가 났었어요.”“경찰에 신고했어?” 온유한이 물었다.“네? 아니요... 병원장님이 말리셨어요. 선생님은 분명 돌아오실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 큰일 났어요. 병원장님 부인이 누구랑 싸우셨는데 지금도 병원에 계세요.”온유한은 대답 없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선생님, 머리를... 다치셨어요?” 전성호는 그의 머리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그의 반응에 온유한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조용히 해.”전성호는 온유한을 따라 사무실로 갔고 그의 머리 상처를 간단히 치료해 주었다
온혁진은 한숨을 쉬며 감정적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너희 엄마가 입원했다. 이번엔 꽤 위험했어. 거의 회복하지 못할 뻔했지.”온유한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최신애는 고혈압에 성격도 급해 건강에 좋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온혁진은 손을 뒤로 모은 채 아들을 한 번 바라보며 말했다.“한번 가서 봐.”온유한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표정한 모습이었다.“네 친엄마야!” 온혁진은 그의 태도에 화가 나 목소리를 높였다. “예전에 잘못한 게 있다 하더라도 네 엄마가 너를 해치려던 건 아니었잖아.”온유한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나지막이 말했다.“공장에서 주문 취소가 났나요?”온혁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임씨 가문의 뻔뻔함도 문제였지만 현재 가장 심각한 건 매일 쏟아지는 주문 취소였다. 게다가 병원을 찾는 환자 수도 50%나 줄어들었다.사건이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온씨 가문은 이번에는 정말 버티지 못할 상황이었다.온유한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안경을 고쳐 쓰며 온혁진을 똑바로 바라봤다.“강씨 가문에서 계속 도와주기를 원하나요?”온혁진은 즉시 대답했다.“지금으로선 강지찬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어.”온유한은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싫어요!”온혁진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지찬이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네가 뭔데 싫다는 거야? 넌 우리 집 식구 아니야? 넌 온씨 가문 사람 아니냐고?”온유한은 차갑게 대답했다.“제가 부탁하지 않으면 지찬이는 우리를 돕지 않을 겁니다.”온혁진은 화가 치밀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이 자식아! 난 지금 명령하는 거야. 당장 경은우에게 연락해!”온유한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정말 온씨 가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으신가요?”그의 안경 뒤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냉혹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지찬이에게 부탁해 볼게요. 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지아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문을 지키고 싶으면 사과하세요. 저는
식탁 위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색했다.최신애는 강지아에게 많이 먹으라고 말하며 계속 반찬을 얹어 주었다.앞에 있는 접시는 가득 찼지만 강지아는 최신애가 짚어 준 반찬을 한 입도 먹지 않은 채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집어 먹었다.최신애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온혁진이 기침을 하며 강지찬과 강씨 가문으로 말머리를 돌렸다.“오빠 회사 일은 잘 몰라요. 제가 관여할 일도 없고요.”강지아는 온혁진의 물음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거절했다.“궁금한 게 있으면 직접 오빠한테 물어보세요.”식사를 마친 뒤 강지아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그녀는 온유한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고 직접 운전해서 갔다.밖에서 차 떠나는 소리가 들리자 최신애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아들아, 지아는 대체 무슨 뜻이야?”핸드폰을 들고 흉부외과 팀의 온라인 수술 토론을 보고 있던 온유한은 최신애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지아가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묻지도 마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마시고요.”강지아는 화령과 술을 마시러 나갔다.화령의 기분이 좋지 않아 두 사람은 오늘 에이프릴 홀에서 방 하나를 빌려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미안해, 온씨 저택으로 들어간 첫날 밤인데 내가 불러냈네. 온 대표님이 화내겠다?”“그 사람 기분 따위 상관 안 해.”강지아가 소파에 편안히 누우며 말했다.“무슨 일인데? 최금성이 왜 또?”“별거 아니야.”화령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최금성의 소울메이트가 돌아왔어. 지금 밖에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거야.”“소울메이트?”강지아는 깜짝 놀랐다.“유주?”화령이 물었다.“너도 알아?”강지아가 일어나 앉으며 혀를 찼다.“골치 아프게 됐네.”그 말에 화령의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왜 골치 아픈데, 정확히 얘기해봐.”술을 마실 마음이 싹 사라진 강지아는 화령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왜 돌아왔대?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가 뭐야?”화령은 더욱 초조해졌다.“대체 왜 그러는 건데? 유주라는 여자, 대체
온혁진과 최신애는 마당에 서서 강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아에게 최고의 대접을 해주는 것이었다.최신애의 미소는 눈으로 보기에도 어색했다.가장인 온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지아야, 필요한 게 있으면 네 아주... 네 어머니에게 말해.”최신애도 말했다.“그래, 그래. 얼른 방에 가서 마음에 드는지 봐봐.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바꿔줄게.”고개를 끄덕인 강지아는 열려 있는 문을 바라보며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최신애가 유난히 열정적으로 말했다.“지아야, 먼저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 조금 이따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하라고 했어.”강지아는 깜짝 놀랐다.“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세요?”“당연히 기억하지.”최신애가 약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키웠는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니? 너는 매운 걸 싫어했어, 어릴 때 실수로 고추를 먹으면 한참을 울었어. 네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었지, 그 매운맛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그걸 기억하시네요.”강지아가 말했다.간단한 몇 마디였고 특별히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최신애는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다.문을 들어서자 강지아는 긴장을 풀었다.이곳에 결국 들어오게 되다니... 평생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 옛말대로 매듭은 매듭을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나는 게스트 룸에 있을게요.”강지아의 말에 최신애와 온혁진은 깜짝 놀랐다.“아, 아니. 네가 게스트 룸에 있으면 안 되지...”온유한이 말했다.“2층 방 좀 정리해 주세요.”게스트 룸이 2층에 있었기에 온유한은 당연히 그녀와 한 층에 있고 싶었다.강지아도 별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 2층에 있던 온유한 방 옆의 방을 강지아의 취향에 맞게 정리했다. 창고에 물건이 많았지만 하인들이 함께 움직여 30분 만에 강지아에게 아름답고 아늑한 방을 만들어줬다.강지아가 세수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
연우의 생일 파티에는 강씨 가문의 친지들이 많이 참석했기에 강지아는 낯이 익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한동안 응대를 해야 했다.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친 뒤 손을 씻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누구야, 놔!”깜짝 놀란 강지아가 발로 그 사람을 밟으려 했다.이것은 장형준에게 배운 호신술이었다. 하이힐로 상대방의 발을 밟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호신술이었다.하지만 하이힐로 밟기 전에 강지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귀에 대고 말했다.“나야.”온유한이였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온유한의 품과 몸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익숙했다.그에게 꽉 안겨 귀에서 들리는 그의 숨소리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의 심장을 강타했다.이제는 그가 두렵지 않다.하지만 완전히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으며 몸은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예전처럼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것은 아니었다.“내 생각 안 했어? 지아야?”온유한의 물음에 강지아는 매우 평온하게 말했다.“생각했어.”그 대답에 온유한이 오히려 놀랐다.강지아가 놓아달라는 듯 온유한을 밀어내자 온유한도 그녀의 뜻대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지아가 말했다.“오늘 저녁에는 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 내일 오후에 데리러 와. 같이 온씨 저택으로 가자.”온유한은 또 한 번 놀랐다.“지아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니?”“알아, 우리 결혼했잖아. 같이 온씨 저택에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쉽게 한 말 같지만 당연하지 않다...온유한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는 온씨 저택에 갈 필요 없어. 우리 그냥 서울 캐슬에 살자. 그 집은 너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야. 거기서 살면 편할 거야.”“아니, 온씨 저택으로 들어갈 거야.”강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강지아가 집에 들어와 살 거라는 소식을 들은 최신애는 마음속으로 거부감을 느꼈다.이제 강지아와 그녀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
“온씨 가문이 정말 예전 같지 않아, 작년에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태안 그룹의 평판도 영향을 받았지.”“그건 다 최신애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아부하려고 하지만 강지아가 어디 쳐다보기라도 해?”“강 대표가 냉정하다고들 하지만 온씨 가문에게는 정말 잘해주네. 최신애가 예전에 강지아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끔 귀에 들려오자 얼굴이 빨개진 최신애는 화가 나면서도 당황스러웠다.강지아도 몇 마디 들었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조카딸 생일 때문에 잠깐 돌아온 거야? 아니면 더는 안 나가는 거야?”화령의 물음에 강지아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마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네.”“그래, 넌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피하러 다니는 거지.”서원준이 다가오자 화령이 웃으며 말했다.“한 번 나가면 두 명 다 피할 수 있구나.”서원준은 여전히 건들거리는 모습이었다.“돌아왔어?”“응, 돌아왔어.”강지아가 동하민을 향해 손을 내젓자 동하민이 그녀의 가방을 가져왔다.화령이 농담으로 한마디 던졌다.“우리 강씨 가문의 아가씨가 선물 주는 버릇은 고치지 못했나 봐.”서원준도 웃었다.“나한테도 줄 선물이 있나 보네.”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없었다. 이미 마음을 놓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가볍게 보이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강지아는 이번에 브로치 선물을 준비했다. 남자 것과 여자 것은 당연히 달랐지만 모두 예뻤고 값비싼 것들이었다.“또 도매한 거야? 정성이 없네.”화령은 겉으로는 비난했지만 이미 브로치를 들고 가슴에 대어 보고 있었다.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게 특징인가 보다.강지아가 말했다.“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너도 알잖아.”화령이 콧방귀를 뀌었다.“바쁘겠지, 펀과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얼마나 바빴겠어. 그래도 브로치가 내 미모와 잘 어울리니까 마음에 드네, 고마워.”말을 마친 화령은 선물과 잔을 들고 알아서 자리
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강홍식과 고세연은 초대받지 못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본가로 돌아오자 강홍식이 마당에 서서 강지찬과 강지아를 불효자식이라고 욕했지만 둘 다 아버지를 무시했다.강지아는 바로 자기 집 마당으로 돌아갔다.정유진은 강지아가 결혼식 날 왜 모른 척했는지 물어볼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내내 강지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지아가 걱정돼.”강지찬은 아내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 본인도 속으로 알고 있을 거야. 서원준과 결혼하는 것보다 온유한과 결혼하는 게 낫다는 걸.”사실 강지아는 지금 서원준과 결혼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그날 밤, 강지아는 화령과 동하민을 데리고 해외로 패션쇼를 보러 떠났다.에이프릴 홀.술을 좀 많이 마신 최의현은 옆에 있는 온유한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친구야, 우리랑 술 마신 지 얼마나 됐지? 너 벌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온유한이 미소를 지으며 앞에 있는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한 잔을 따라 강지찬을 향해 들었다.“지찬아, 내 잔도 받아줘.”강지찬은 온유한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나서야 잔을 들고 멀리서 살짝 부딪혔다.강씨 가문과 온씨 가문은 이렇게 화해했다.온씨 집안.최신애가 매우 불쾌해하며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자 신문을 보던 온혁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졸리면 자러 들어가, 아들이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기다릴 필요 없어.”최신애는 또 한숨을 쉰 후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남들은 며느리를 들이면 기뻐서 날뛰는데 우리 집은 왜 이럴까요? 며느리에게 차 한 잔도 못 얻어 마시고 조상님보다 더 조상님 대접을 해줘야 하잖아요.”온혁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를 탓하겠어? 당신이 불평할 자격이 있어? 경고하는데 이런 말 아들 앞에서 하지 마. 지아가 온씨 가문의 문턱도 안 들어오겠다고 해도, 평생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 말도 할 자격이
강지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온유한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은 싸늘하기만 했다.온유한은 쟁반을 둥근 테이블 위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지금 먹기 딱 좋으니까 얼른 와서 먹어.”온유한의 모습은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던 3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강지아는 배가 고팠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알았어.”온유한은 항복하는 듯 말했다.“와서 밥 먹어, 나는 잘게.”말을 마친 온유한은 옆방 침실로 들어갔다.강지아는 여전히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집이 완전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다면 충전기도 그녀가 평소에 두던 곳에 있을 것이다.테이블 아래 서랍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충전기가 그 안에 있었다.밥을 먹은 뒤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한 강지아는 옷장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옷장 안의 옷마저 그녀의 옷장에 있는 것들과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강지아는 잠들지 못할 줄 알았으나 새벽까지 깊이 잠들었다.천장을 바라본 강지아는 무력감이 들면서도 이런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는 온유한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조금이나마 덜 위험한 모습을 보이면 강지아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지게 될 것이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신문을 가지런히 접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침 식사 준비됐어, 어서 와서 먹자.”말을 마친 뒤 주방으로 가서 밥과 반찬을 차렸다.집안일을 하는 온유한은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아마도 잘생긴 남자는 무슨 일을 해도 멋져 보이는 법인가 보다.“얼른 와, 맛이 괜찮을 거야.”온유한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순간 깨달았다. 이 집에 하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제 저녁 식사와 오늘 아침 식사도 온유한이 준비한 것일까?마음이 너무 닫힌 탓인지 이에 대해서도 전혀 감동을 하지 못했다.감동은커녕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안 먹을 거야, 좀 이따
결혼식 연회는 계속되었지만 결혼식이 아니라 친지 친구들 간의 대형 모임으로 변했다.강지찬은 받은 축의금은 모두 돌려줄 것이며 오늘 이 자리에 온 하객들은 맘 편히 먹고 마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강지찬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장형준이 와서 보고했다.“대표님, 서원준 씨가 돌아왔습니다.”밖에 있는 서원준은 손에 있던 외투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입고 있던 셔츠도 헐렁해졌다.입구의 테이블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들고는 바닥에 쏟으며 안으로 걸어 들어온 그는 강지찬 앞에 다가와 술병을 위로 집어 들었다.장형준은 서원준이 혹시라도 폭력을 쓸까 봐 재빨리 강지찬 앞을 가로막았다.강지찬은 장형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비키라고 했다.“왜?”강지찬이 술병을 바라보며 묻자 서원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진작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날만 기다린 거예요?”강지찬은 솔직하게 말했다.“응, 예상했어.”“그래요, 그렇군요.”서원준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하지만 강지찬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술병의 술을 다 마신 후, 그는 서연희를 데리고 호텔을 떠났다.성대한 결혼식이었지만 남자 측의 친지와 회사 동료들을 합쳐도 두 테이블밖에 되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두 모자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준은 서연희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마당은 강지아가 전에 개조해 조금 변화가 있었다. 풀들이 제각각 자라던 마당이 강지아 덕분에 많이 질서정연해졌다.가을이 되었음에도 꽃들이 여전히 만발해 있었다.“지아가... 이제는 오지 않겠지?”서원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어머니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다.서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들아, 지아의 오빠를 원망하지 마라. 오늘 이런 상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 지아의 마음속에 네가 없다는 것을.”한참 후, 서원준이 말했다.“알아.”주위 인테리어가 너무 익숙했던
온유한이 강지아를 거실 한가운데에 앉히자 강지아는 순간 멍해졌다.이 집은 온유한이 현채영에게 사 준 집이 아니었던가? 왜...“강지아 씨가 이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낄 거라고 유한 씨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모든 물건들도 유한 씨가 직접 하나하나 주문 제작한 거고요. 어떤 물건들은 해외에서 들여온 거예요. 강지아 씨가 산 것과 같은 제품이에요. 온유한 씨가 겨우 찾아낸 거예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지아 씨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나는 그냥 온유한 씨가 고용한 연기자일 뿐이에요. 오늘이 내 마지막 출연이 될 거예요.”강지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두 사람, 그런 사이 아니었어요...?”“아니에요.”현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온유한 씨의 마음속에 여자는 항상 강지아 씨뿐이에요. 이건 의심할 필요 없어요.”현채영은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났다.집이 아주 넓었지만 강지아는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지아야, 마음에 들어?”온유한이 다시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강지아는 그 손을 뿌리쳤다.“내가 감동할 거라고 생각해? 감동하고 그다음에 같이 잘 살 거라고 생각해? 온유한, 인생이 장난이야?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모든 일이 쉽게 넘어갈 것 같아?”강지아는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자리에 서 있는 온유한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눌렀다. 이내 열려 있던 대문이 서서히 닫혔다.“뭐 하는 거야? 나를 가두려고? 이것도 우리 오빠에게서 배운 거야?”강지아가 비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은 다시 문을 열더니 그녀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가리켰다.“정말 그런 차림으로 강씨 본가에 돌아갈 거야? 그리고 지찬이와 형수님은 아직 호텔에 있어. 지아야, 일단 위층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한 다음 우리 다시 이야기하자.”강지아는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오빠와 형수를 만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위층이라고 해도 저택의 집과 똑같았기에 강지
“알았어! 그래! 내가 꺼질게! 강지아, 분명 나를 찾아와서 울 날이 있을 거야.”분노에 가득 찬 서원준은 외투를 벗고 흐트러진 머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초라한 얼굴로 옷을 들고 사라졌다.강지아가 이제 막 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를 방어하는 건 내가 혹시라도 서원준에게 해를 끼칠까 봐서야?”온유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강지아는 더 이상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지아야, 네 마음속에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네.”강지아는 냉정한 얼굴로 온유한을 바라보았다.“그렇지 않아?”그러고는 온유한의 손을 뿌리치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걸어 나갔다.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온유한, 뭐 하는 거야?”온유한은 그녀를 차 안에 앉혔다.차는 다시 출발했고 이번만큼은 온유한도 신호위반을 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하지만 차는 명도 빌딩이나 강씨 혹은 온씨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어디로 가는 거야?”“우리의 새집으로.”새집.만약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였다면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분명히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다.하지만 강지아는 그저 눈을 감았다.“강씨 본가로 돌아갈 거야.”온유한이 아무 말 없이 계속 운전하자 강지아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소용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차는 마침내 고급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강지아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온유한이 여기에 수십억 원짜리 집을 현채영에게 사줬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화령은 너무 부러워했다.“여기로 와서 뭐 하려고?”“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차는 한 대형 빌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마당에 현채영이 서 있는 것을 본 강지아는 말문이 막혔다.온유한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옛 애인과 새 애인을 양손에 끼고 노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지아야, 내려.”온유한이 차 문을 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지아는 그저 황당하다는 생각뿐이었다.“내려가서 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