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아가 짐싸고 있을 때, 온유한은 그녀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계란프라이, 샌드위치, 우유 등.그런데 짐 싸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침먹을 새도 없었다.“비행기에서 간단히 먹으면 돼. 오빠, 올 때 선물 사 가지고 올게!”쿵!그대로 문이 닫히고, 온유한은 할 말을 잃었다.갑자기 집을 지키는 강아지가 된 것만 같았다.그 일이 있은 뒤로 강지아는 감정 기복이 없었다. 사실 이건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온유한은 차라리 그녀가 대뜸 화를 냈으면 했지만 전혀 그러지 않았다.한잠 자고 일어난 온유한은 부재중 전화가 열몇 통이나 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신자는 다름아닌 온혁진이었다.최신애가 온유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고혈압이 도진 것이다.온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마침 마당에서 가을이랑 놀고 있던 온미정이 온유한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온유한은 가을이를 번쩍 들어 올렸고, 가을이는 까르륵 웃고 있었다.“지아는 또 서원준이랑 간 거야?”온미정이 묻자 가을이랑 놀고 있던 온유한이 대답했다.“어떻게 아셨어요?”온미정이 핸드폰을 보여주었다.강지아가 환승하면서 서원준이랑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이다.셀카를 찍고 있는 강지아의 뒤에는 의자에 기대어 강지아를 바라보고 있는 서원준이 앉아있었다.마치 남자친구 몰카를 찍은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온미정이 핸드폰을 거두면서 말했다.“왜 왔어? 너희 엄마 병을 몰라서 그래? 나도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온미정은 가을이를 가져가 안더니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두 번의 충격으로 온유한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고모, 먼저 들어가 볼게요.”그러면서 가을이 볼을 꼬집었다.가을이는 포동포동한 것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온유한을 좋아하는 녀석은 안아달라고 팔을 벌렸다.온미정은 가을이의 볼을 쓰다듬으면서 싫증난 표정으로 말했다.“왜 우리 딸 얼굴에 손대고 그래.”거실에는 최신애도, 최금혁도, 그리고 황은숙도 있었다.“외숙모.”온유한이 인사를 건넸다.“어머니, 괜찮으세요?”“유한이 왔구
최금혁 모자한테 새 차를 줘보내고 온유한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다음날은 휴식일이라 같이 나가서 바람 쐬자는 최의현의 부탁에도 거절했다.강지아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연락 한 통도, 무사하다는 문자 한 통도 없었다.온유한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도착했어?]하지만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그래서 핸드폰을 내팽개치고 1층으로 내려가 온혁진과 함께 바둑을 두기로 했다.점심 식사는 세 식구가 같이 먹었고, 자기 주방이 있는 온미정은 최신애랑 사이가 안 좋아서 따로 먹곤 했다.식사 도중에 강씨 가문이 언급되었다.최신애는 점점 더 강씨 가문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그 집안에는 정말 믿을만한 사람이 없어. 엄마라는 사람은 남편이 죽자마자 친아들을 버리고 도망치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온혁진은 모자 둘이 또 싸울까 봐 온유한의 눈치를 보았다.“밥 먹어. 그 집안 사정은 우리랑 상관없어.”“왜 상관이 없다고 그래요? 한 집안에 한 사람만 문제 있으면 그 사람만 문제 있다고 생각하겠는데 온 가족이 문제 있으면 온 집안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최신애가 진지하게 말했다.“강씨 가문은 위에 어르신부터 풍기가 문란했어요. 나이가 얼만데 밖에서 또 아들을 하나 낳아서 오고. 자식들은 더 하잖아요. 밖에서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아세요?’온유한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저는 다 먹었어요. 천천히 드세요.”온유한이 떠나고, 온혁진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이제 만족해? 유한이 오랜만에 왔는데 조용히 밥 좀 먹으면 안 돼?”최신애는 순간 입맛이 뚝 떨어졌다.“밥이 그렇게 중요해요? 어제 아침 강지아가 유한이 침대에 누워있는 걸 봤다고요. 저희가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 손자를 안을지 모른다고요!”“좋은 일 아니야?’온혁진은 최신애가 너무 많이 간섭한다고 생각했다.‘유한이가 알아서 하겠지. 뭘 그렇게 간섭해.’온혁진은 최신애가 화를 낼까 봐 후다닥 일어섰다.“오후에 골프 약속이 있어.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올게.”부자가 모두 가
호텔에 도착한 온유한은 주유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만약 일이 있으면 주유정은 그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심심해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데 강지아한테서 문자가 왔다.그저 무미건조한 한마디뿐이었다.[도착했어.]SNS를 들어가보았더니 역시나 또 드레스를 입고 예쁘게 메이크업하고 찍은 사진을 올린 것이다.여느 여자 연예인보다도 더 예뻤다. 분위기가 넘치는 것이 우아하기 그지없었다.서원준은 매너 있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최신애한테는 아무 가치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온유한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그렇게 두 사람 사이는 왠지 모르게 멀어지고 있었다.VIP룸.한 중년의 남성이 주유정에게 박스 하나를 건넸다.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메추리알만 한 파란 보석이 들어있었다.그 와중에 아직 완제품으로 세팅되어 있지 않은 보석이었다. 컷팅한 흔적도 없는 본연의 보석 말이다.마음이 흔들린 주유정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이게 무슨 뜻이죠?”방현호가 보석을 건네면서 주유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선물이에요.”“선물이요?’주유정은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내 표정 관리를 하면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에요. 너무 과분한 선물이라 저는 받지 못할 것 같아요.”방현호가 손을 흔들었다.“보석은 미인이 가지고 있어야 그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거예요. 유정 씨가 직접 설계해서 아름다운 목선이 보이게 착용하고 있으면 얼마나 아름답겠어요.”주유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방현호가 외국에 금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통이 클 줄 몰랐다.“사장님 같은 애처가가 있으셔서 사모님은 참 행복하시겠어요. 쥬얼리 세트를 선물하시면 엄청나게 좋아하실 거예요.”방현호는 또 한 번 주유정에게 박스를 건네더니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유정 씨도 이 보석의 가치를 알고 있잖아요. 사실 세계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분한테 맡기려고 했거든요. 그분의 손을 거치면 가치가
주유정은 방현호를 보내고 온유한의 곁으로 다가갔다.“미안해. 유한 씨, 오래 기다렸지.”“별일 없으면 됐어.”온유한은 별일 없는것 같아 굳이 더 묻지 않았다.이때 주유정이 주동적으로 말했다.“저분이 빨간 보석을 갖고 계시는데 결혼기념일 10주년이라 사모님한테 선물하려고 나한테 디자인을 맡겼거든.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어. 그런데 사모님 너무 부럽네.”온유한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무표정으로 주유정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주유정 집 앞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주유정은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독립해서 온유한이 한번도 집 안으로 들어온 적 없기 때문이다.다음날, 온유한은 출근하자마자 다들 무슨 문제를 토론하고 있는지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전성호한테 다가가 환자의 상황을 물었다.전성호도 이들의 토론을 엿듣고 있었다.“선, 선생님!”그러다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온유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의 핸드폰을 주워줬다.다름아닌 서원준과 강지아와 관련된 스캔들인 것이다. 쇼에서 찍힌 사진 말고도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 사진도 찍혔다.서원준이 워낙 잘생겨서 기자들이 연예인처럼 따라다니면서 찍은 것이다.그러는 바람에 강지아와의 스캔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기 검색어에까지 올랐다.“회진은 끝내고 여기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거야?”온유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전성호에게 핸드폰을 던져주고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밖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위기를 모면한 전성호는 뒤늦게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정말 깜짝 놀랐잖아요. 강지아 씨와 더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요? 서원준 씨랑은 그저 쇼를 보러 간 것 같고요.”“그런데 세상일은 모르는 거잖아요.”온유한은 커피를 들고 문에 기대어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시간을 확인해보니 시차 때문에 강지아가 있는 곳은 아직 야심한 밤이었다.온유한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강지아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강지아는 세날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오자마자 화령을 만나 명품백을 선물했다.“저번에 나 때문에 새로 산 핸드폰이 박살 났잖아. 보상의 의미로 이 명품백을 선물하는 거야.”화령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어머, 정말이야? 이건...”“오랫동안 탐냈던 거지?”친구가 좋아하니 강지아도 따라서 기분이 좋아졌다.“좋으면 됐어.”“너무 좋아! 너무 비싸서 차마 못 샀거든. 고마워. 사랑해. 지아야.”마음에 드는 명품백을 선물 받은 의미로 커피 갚은 화령이 내기로 했다.“내가 밥 사줄게. 한우 어때?”화령은 무안하기만 했다.“커피 한잔으로 되겠어? 밥도 사고 싶은데.”하지만 강지아가 거절했다.“다음에. 조카를 오랫동안 못봐서 보고 싶어서 그래.”연우는 개학해서 이미 어엿한 초등학생이었다. 강지아는 연우를 위해 예쁜 머리핀을 한 아름 사 왔다.연우는 물론, 정유진, 그리고 강지찬 선물도 있었다.강지찬의 선물은 브로치였고 정유진의 선물은 목걸이였다. 커플용이었다.정유진이 말했다.“아가씨 선물만 사면 될 걸. 왜 우리 선물까지 샀어.”“쇼핑에 재미를 붙여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강지아는 저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아직 선물 많아요. 고모랑 가을이 선물도 있어요.”정유진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온씨 가문 선물이 다 있는 거야 아니면 고모랑 가을이 선물만 있는 거야?”“당연히 고모랑 가을이 선물만 있는 거죠.”강지아는 정유진과 똑같은 커피를 마시면서 입을 삐쭉거렸다.“올케언니, 제가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어차피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을 텐데 뭐 하러 돈 낭비해요.”정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만 좋으면 됐어. 아무튼 나랑 오빠는 아가씨 편이니까.”이 말에 감동한 강지아는 정유진을 꽉 끌어안았다.다음날, 강지아는 온미정 집으로 찾아갔다.온씨 가문은 일 있을 때만 갔고 평소에는 밖에서 지내고 있었다.도착했을 때, 검은색 차량 한 대가 온미정의 마당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검
강지아가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매번 귀국하기 전이면 강지찬, 최의현, 그리고 온유한에게 미리 연락했었고 누가 시간 있으면 공항으로 픽업 갔었다.강지찬과 최의현은 늘 바빴기 때문에 제일 많이 데리러 간 사람은 온유한이였다.매번 가다 보니 아예 바로 온유한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할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강지아가 귀국한다면 온유한이 제일 먼저 알았다.그런데 이제는 집에 돌아왔는데 언제 돌아왔는지도 몰랐다.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최의현이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우리 지아 안목 높은데? 이 브로치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았더니 보석이 박힌 전갈 모양의 브로치였다.[지아 언제 돌아왔는데?][어제 돌아왔잖아. 아, 맞다. 너한테는 무슨 선물을 했는데? 보여줘 봐.]온유한은 또 술을 한 모금 마셨다.‘어제 돌아왔다니...’이때 최의현이 또 문자를 보내왔다.[빨리. 지아는 늘 너를 더 좋아했잖아요. 너한테 한 선물은 무조건 제일 좋고, 제일 비싸고 제일 특별한 걸 거야. 이미 물어봤는데 지찬이도 똑같이 브로치였어. 형수님이랑 고모는 목걸이였고. 애들은 머리핀.]온유한은 나머지 술을 꿀꺽 다 마셔버렸다.‘돌아온 사실을 제일 늦게 안 것도 나고, 유일하게 선물을 받지 못한 것도 나네?’다음날 온유한은 아침을 들고 강지아를 찾아갔다.한참 동안 벨을 눌러서야 하품하면서 나오는 것이다.“오빠,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야?”온유한이 아침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돌아왔다길래 보러왔지.”강지아가 소파를 짚으면서 말했다.“마침 잘 왔어. 오빠 것만 남았어. 알아서 가져가.”온유한은 눈이 번쩍 떠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뭔데?”“나가서 놀면서 선물 사봤어.”그러고는 방으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온유한은 식탁 위에 아침밥을 내려놓고는 선물 박스를 뜯었다.사실 특별한 포장이 없어 뜯어볼 필요도 없었다.온유한은 열어보고서 입꼬리가 내려가고 말았다.선물은 다름아닌 나뭇잎 모양
강지아의 작업실은 이미 준비가 마무리된 상태였다.온유한과 함께 먼저 도착해서 아래위층을 둘러보았는데 나름대로 완벽해 보였다.뒤늦게 온 서원준은 품에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바보 멍청이 씨, 작업실 오픈한 거 축하해.”강지아가 째려보면서 말했다.“바보 멍청이라고 부르지 마.”“우리 지아.”“내가 나이가 몇인데.”“그러면... 강 선생?”강지아는 새로운 호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온 선생님도 계셨네요. 다 둘러보았어요?”온유한은 꽃다발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마침 오늘 쉬는 날이라 지아랑 함께 보러왔어요. 인테리어 잘된 것 같아요.”“그러게요. 강 선생 안목이 괜찮긴 하죠.”서원준이 시간을 체크하면서 말했다.“점심 식사 시간인데 제가 점심 살게요. 마침 강 선생한테 할 말도 있고. 온 선생님도 함께 봐주세요.”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일식집으로 향했다.“우리 회사가 라는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했거든. 에이미 누나한테 연락해 봤는데 쇼 녹화에 참여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강 선생, 도전해 볼 생각 있어?”“예능프로그램?”강지아는 본능적으로 온유한을 쳐다보았다.늘 그랬듯이 일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강지찬이 아니라 온유한이였다.온유한은 그나마 위안을 받게 되었다.서원준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시그널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온유한이 말했다.강지아가 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서원준과 교류가 더 많아질 것이 뻔했지만 온유한은 속 좁은 남자가 되기 싫었다. 강지아가 일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하는데 뒤에서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 주기로 했다.강지아가 조금 망설이면서 말했다.“잘 못했다간 국민 앞에서 망신만 당하는 거 아니야?”서원준이 피식 웃었다.“라이브도 아닌데 뭐가 두려워. 그리고 우리 회사가 투자한 프로그램이라 많이 도와줄 거야. 강 선생, 자신감 가져. 이건 이름을 날릴 좋은 기회야. 인기 많은 연예인도 출연할 거니까 이
온유한은 강지아와 서원준이 떠나고 나서야 차에 올라탔다.이때 최신애가 전화 와서 쉬는 날인데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했다.그런데 꼭 싸울 것만 같아 안 가겠다고 거절했다.“강지아가 돌아왔다며? 그래서 바로 만나러 간 거야? 인기 검색어를 못 봤어?”최신애는 전화기 너머에서 화를 내고 있었다.“걔랑 호텔로 들어간 남자가 누군데. 연예인이야? 정말 눈 뜨고 볼 수가 없네.”온유한이 태양혈을 문지르면서 말했다.“어머니,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는 다 믿으면 안 돼요. 서원준은 성유 엔터테인먼트 대표에요. 쇼 보러 간 건데 당연히 호텔에서 지내겠죠. 그리고 다른 연예인들도 있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이슈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은 모자이크 처리한 것뿐이에요. 잘 모르시면 함부로 단정 짓지 마세요. 지아가 너무 억울하잖아요.”최신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온유한은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데 강지아는 매니저는 물론 스타일리스트도 알아보기로 했다.스타일리스트는 다름아닌 정유진의 스타일을 맡았었던 송민욱이었다.송민욱은 자기만의 숍이 있었고 일찍 이름을 날려 제자만 해도 열몇 명이 되었다.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안 송민욱이 강지아의 스타일을 맡기로 했다.강지아는 한동안 바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작업실에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일손이었다.그래도 정유진과 조우민 덕분에 점차 직원이 모이기 시작했다.추호와 양수아가 결혼하던 날, 강지찬은 외국에 출장을 가 있어서 대신 강지아, 정유진과 연우가 참석했다.추씨 가문과 강씨 가문은 서로 겹치는 사람이 많아 결혼식장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다들 강지아를 넘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강씨 가문과 사돈을 맺는 것보다 더 솔깃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예쁘기도 하고 털털해 보이는 강지아의 모습에 부잣집 사모님들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정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다들 아시겠지만 지찬 씨 유일한 여동생이라 어릴때부터 무척 아꼈어요. 아가씨가 일찍 철들고 똑똑하긴 해도 아직 어려서
공항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서원준의 행동은 단번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내려줘.”강지아는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었다.“보는 눈이 너무 많아.”“볼 테면 보라 그래. 내 여자 친구를 내가 안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어?”서원준은 말을 마친 뒤 턱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동하민에게 말했다.“짐은 뒤에 있어요.”말을 마친 뒤 그대로 강지아를 안고 자리를 떴다.오늘 유난히 들떠 보이는데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서원준은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강지아를 데리고 예약해 둔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갔다.그리고 두 사람만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특별히 동하민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뒀다.동하민은 어쩌다 먹어보는 호화로운 저녁에 주스를 마시다가 참지 못하고 SNS에 사진을 올려 자랑했다.[사장님과 맛있는 식사. 회사 복지가 아주 굿굿.]그리고 아홉 장을 꽉 채워서 음식과 아름다운 야경 사진까지 올렸다.멀지 않은 창가 자리에서 서원준은 눈앞에 앉은 여자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그 눈빛은 너무 강렬했고 그의 눈에는 강지아, 오직 그녀만 보였다.그러다가 문득 네모반듯 한 케이스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자 강지아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서원준은 케이스를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반지가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케이스 안에는 예쁜 다이아몬드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었고 강지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뻐?”“응.”마침 강지아는 오늘 귀걸이를 안 하고 나왔는데 서원준은 재빨리 귀걸이를 가지고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그의 손끝이 너무 뜨거웠는지 강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움직이지 마.”“나 처음으로 여자한테 이런 걸 해줘서 자칫하면 찌를 수 있어.”그의 말에 강지아는 그제야 얌전히 앉아서 서원준의 손길을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두 사람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는지 서원준의 향수 냄새가 빠르게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는데 참으로 사람에게 안전감을 주는 동시에 남자 매력이 흠씬 풍기는 냄새였다.그러나 여전히
온유한과 현채영이 떠나간 뒤 최의현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표정이 최신애와 다를 바 없었다.“그냥 이렇게 끝나는 거야?”결과가 너무 허탈하고 온유한의 태도에 놀랐다.한규진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이런 상황을 보고도 설마...”강지찬도 한껏 어두운 얼굴로 자리를 뜨면서 속으로 생각했다.‘겨우 이거야? 지아랑 비교하면 저건 아무것도 아닌데.’최신애는 화병으로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바짝 독이 올라와 있었고 깨어나서도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또 한차례의 검사를 받게 되었다.집안일에는 여태껏 신경조차 쓰지 않던 온혁진도 어젯밤 이야기를 듣고 불같은 화를 냈다. 그러다가 최신애의 행동을 먼저 꾸짖었다.“아직도 모르겠어? 유한이는 지금 일부러 당신 말을 안 듣는 거야. 당신이 강지아랑 그 애를 갈라놓는 바람에 지금 일부러 저런 수준의 여자를 데려와서 심기를 건드리는 거라고.”“예전에 지아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지? 그 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지금 그나마 유명해지고 온씨 가문에서도 많이 도와줘서 이 바닥에서는 지금 우리 가문이랑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는데 괜히 당신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 바람에 우리도 마음 편히 살지 못하고 있잖아.”최신애는 이마를 짚고 그에게 반박했다.“지금 제 탓을 하는 거예요? 그럼 그때 당신은 뭐 하고 있었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봐요. 3년 전에 당신도 강지아를 엄청 싫어했잖아요.”정곡을 찔린 온혁진은 최신애의 말을 인정하기 싫어 버럭 화를 냈다.“여태껏 집안일은 항상 당신이 결정했고 분명 자기 실수로 집안일이랑 회사까지 말아먹게 만들고는 지금 남 탓만 하고 있잖아. 임씨 가문의 일은 무조건 빨리 해결해야 해. 만약 그 사람들이 손잡고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 거로 결론이 나면 우리 쪽에서 준비한 새 프로젝트는 망하는 건 물론이고 손실도 어마어마할 테니까.”최신애는 그의 입에서 임씨 가문이라는 단어를 듣
최신애는 반평생 살면서 오늘 처음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고고한 이미지를 다 내려놓은 채 마치 미친 사람처럼 싸워봤다.그리고 온유한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더욱 흥분해서 그에게 물었다.“봐봐, 네가 좋아한다던 여자가 지금 어떤 꼴인지. 더 할 말이 있어?”온유한은 그저 말없이 주위를 둘러봤는데 침대는 이미 엉망진창으로 된 채 바닥에는 뜯긴 콘돔이 널려져 있었다.그러나 그는 아주 덤덤하게 현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샤워 가운을 다시 입혀준 뒤 머리도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 없어요?”현채영은 재빨리 답했다.“아니요.”“그럼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요.”온유한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최신애는 자기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는 온유한의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끄, 끝이야?”그리고 온유한을 잡고 헝클어진 침대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저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안 보이냐고! 현장까지 잡은 마당에 넌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나 온유한은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이건 저랑 채영 씨 사이의 문제니까 상관하지 마세요.”“온유한!”최신애는 복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렇게 변했어?”온유한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답했다.“지태주 씨와의 일은 채영 씨가 나중에 해명할 겁니다. 저는 저 사람을 믿거든요.”“아직도 믿는다고?”최신애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두 눈으로 직접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군 꼴을 보고도 믿을 수 있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죠.”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주는 히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온 대표님은 정말 좋은 남자의 표본인 것 같네요.”그의 말에 온유한이 그를 힐끔 쳐다보자 지태주도 같이 매섭게 쏘아보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최신애는 이 상황이 그저 답답해서 당장에라도 기절할 것 같았고 입으로는 끊임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쳤어, 진짜 미쳤어.”계획대로라면 오늘 밤 현채영을 바로 쫒아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안에서 나왔다.제일 앞에 서 있던 강지찬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뒤따라오던 최의현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저 사람 현채영 아니야? 저 남자는 누가야? 낯이 익네.”한규진은 호텔 로비에 막 들어선 최신애를 보고 한마디 했다.“쯧쯧, 볼거리가 생겼네.”현채영은 그 남자와 반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최신애가 뒤따라가자 최의현 일행도 따라갔다.“미친, 생각났어.”최의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저 자식, 그 지씨 가문 셋째 아니야? 추호와 친하던 애 있잖아. 지씨 가문에서 꽤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지씨 가문 셋째?”한규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에서 지씨 가문은 명성이 높은 집안은 아니지만 구설수는 꽤 많다.예전에 지씨 집안의 막내아들이 밖에서 데려왔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사생아이지만 정실 마누라가 낳은 아들보다 더 총애를 받고 있다고 했다.틀림없이 지씨 가문 셋째 아들 지태주일 것이다.지태주와 현채영이 만난다고?생각보다 재미있는 관계가 될 것 같다.최의현은 당당한 모습으로 최신애의 뒤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스위트룸 방문 앞에 멈춰선 최신애는 노크를 하는 대신 손목시계만 계속 들여다봤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20여 분 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온유한은 강지찬 일행과 마주쳤다.온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지찬을 슬쩍 쳐다봤다.강지찬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온유한을 시크하게 흘겨보았다. 화가 난 건지 짜증 난 건지 알 수 없었다.옆에 있던 최의현이 온유한 앞에 다가가더니 턱으로 스위트룸 방향을 가리켰다.“어떻게 된 일이야? 현채영이 왜 지태주와...”온유한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온유한의 말에 강지찬 일행은 온유한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남자와 여자가 한밤중에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가서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설마 철학 토론이라도 하겠는가?하지만 온유한은 그들의 생각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본인
“지찬아, 유한이가 미친 거 아닐까? 임유희를 집에서 쫓아내고 현채영을 온씨 저택에 데려갔어. 최신애가 엄청 화를 낼 것 같은데?”최의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현채영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몰랐네... 그때 지아를 신경 쓰는 것보다 더...”강지찬이 힐끗 바라보자 최의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임유희 때문에 온씨 가문과 임씨 가문 사이도 안 좋아졌어. 임씨 가문이 체면을 완전히 구겼잖아. 아마 이번 기회에 단단히 복수하려 할 거야. 그 임씨 부부도 생각이 있는 어른들은 아닌 것 같아. 온유한이 임유희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딸을 이용해 온씨 가문에 바싹 달라붙어 가문의 지위를 올리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최신애만 그걸 모르고 어떻게든 유한이와 임유희를 엮어주느라 골머리를 앓았지. 온유한은 임씨 가문의 속셈을 알았을까?”한규진이 다리를 꼬고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그 자식 계속 약속 펑크내서 이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을 것 같아.”경은우가 말했다.“유한이 형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 거야. 유한이 형이 절대 함부로 누구를 대하는 사람이 아닌데 요즘 하는 행동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니까.”최의현이 말했다.“며칠 전 만났을 때 임씨 가문 얘기를 몇 마디 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몇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강지찬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밤 10시가 넘은 시각. 하루 종일 잠을 잔 현채영은 가방을 들고 외출 준비에 나섰다.“잠깐!”거실에 앉아 있던 최신애는 현채영의 화려한 차림을 보고 화를 냈다.온유한이 석식이 있어 집을 비우니 현채영은 한밤중에 외출을 하려 했다.현채영이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무슨 일 있으세요?”“어디 가는 거야?”“친한 여자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어 오늘 밤엔 안 들어올 거예요.”그 말에 최신애는 바로 화를 냈다. “친한 여자친구들? 부잣집에 시집갈 생각밖에 안 하는 날라리 여자들?”현
임유희도 온유한에게 쫓겨난 후 몸져누워 열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임유희는 이제 주위에서 웃음거리가 됐다.이 때문에 임씨 부부와 임유희 오빠는 온씨 가문에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바쁜 일과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한 온유한은 문 앞에서 온혁진과 최신애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그때 임유희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온유한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병실에서 최신애가 병상을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쳤다.“그럼 내 탓이란 말이에요? 당신 하나뿐인 아들이 현채영 그 여자와 엮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잖아? 강지아가 어때서? 본인 마음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 최신애, 우리 온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한 거야?”온혁진의 말을 들은 최신애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평생 사랑한 이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내가 그런 거라고요? 다 유한이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온혁진은 더 이상 이 일로 최신애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처음부터 얘기했잖아. 유한이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당신이 기어코 유한이와 지아를 갈라놓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강씨 가문과 원수가 되었고 임씨 가문의 미움도 샀어. 만약 임씨 가문이 그때 강지찬처럼 작정하고 우리를 괴롭힌다면 이번에는 누구에게 부탁해서 도와달라고 할 거야?”집안 사업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온혁진의 말에 최신애도 바짝 긴장했다.“투자자들도 돈을 더 벌기 위해 투자하는데 임씨 가문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당신이 뭘 알아?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우리보다 우수한 의료 회사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경쟁업체에서 얼마 전에 외국에서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했다고 들었어. 우리가 올해 주력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는데...”온혁진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이런 얘기를 당신에게 해봤자 당신이 뭘 알겠어. 어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씨 가
강지아도 명성 빌딩에 오래 묵을 생각이 없었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서원준과 함께 집을 나섰다.현관문 너머로 서원준의 목소리를 들은 온유한은 그제야 어젯밤에 서원준도 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알고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벽을 내리쳤다.한편 기분이 좋아진 서원준은 일부러 온유한을 도발하기 위해 한마디 했다.“지아야, 이 집 어차피 비어 있는데 우리가 이사 오는 게 어때?”강지아는 서원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꿈 깨.”서원준이 일부러 다가가서 강지아를 품에 꽉 껴안자 강지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뭐 하는 거야?”서원준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에게 뭘 하겠어? 어젯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요한 걸 못했네.”강지아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며 말했다.“함부로 행동하기만 해 봐!”강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무언가를 기대하던 서원준은 순간 주눅이 들었다.이런 상황에 사랑하는 남녀들이라면 분명 저도 모르게 끌려서 그다음 진도로 넘어갔을 것이다.놀라움만 가득한 눈빛으로 서원준을 바라보는 순수한 강지아에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하긴 강지아가 왜 고백을 받았는지 서원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온유한을 속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서원준은 아쉬운 마음에 강지아의 볼을 꼬집은 뒤 말했다.“내일 나 출장 가. 저녁 비행기인데 같이 갈래? 꽤 재미있는 곳인데.”서원준은 연예계 활동 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강지아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에 거기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안 가. 요즘 작업실에서 현지 수주를 받은 게 있어서 자리 비우면 안 돼.”“알았어. 그럼 빨리 갔다 올게.”두 사람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만날 수는 없었다.오늘 서원준은 석식 약속이 있었고 내일도 바쁘기에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야 강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차에 타기 전에 서원준은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여기
오늘 기분이 좋은 서원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강지아는 진수혁의 도움을 받아 서원준을 명성 빌딩에 데려다줬다. 그나마 여기가 가장 가깝기 때문이었다.진수혁은 이미 자신의 물건을 모두 옮겨갔기에 집은 예전 상태로 되었으며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두 사람은 서원준을 게스트 룸, 즉 진수혁이 묵었던 방에 데려다 눕혔다.이불을 끌어안은 서원준은 계속 웃고 있었다.“지아야... 나 너무 좋아... 정말 기뻐...”강지아는 진수혁에게 말했다.“이 집 어차피 비워둘 건데 그냥 있어도 되는데.”“여태까지 묵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마워.”진수혁은 부엌을 가리키며 말했다.“전기와 가스 카드는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놓아뒀어.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말을 마친 진수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이내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진수혁은 온유한에게 명성 빌딩에서 이사를 했기에 더는 가지 않을 거라고 메시지를 보냈다.온유한은 휴대전화를 힐끗 본 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병상에 누워있는 최신애는 최씨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이 자식 머릿속에 온통 그 여자 생각뿐이야. 우리 온씨 가문과 이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니까!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그러나 봐. 내가 죽어야 본인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내 팔자야! 힘들게 키운 아들이 얼마 전까지 멀쩡했는데 지금은 원수나 다름없게 되었어. 하느님, 제가 살아서 뭘 하겠습니까?”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얘기하고 계세요. 야식 좀 사 올게요.”황은숙도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한밤중이고 최신애의 하소연을 한참 동안이나 들으니 지칠 대로 지쳤다.“됐어. 나도 금성이 집에 가봐야 해. 유한아, 엄마 화나게 하지 말고 잘 모셔.”황은숙과 최금성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병실에는 온씨 모자만 남아 있었다.최신애의 얼굴에 있던 슬픔이 어느새 원망으로 변했다.“왜, 나와 같이 있기도 싫은 거야?”온유한이 말했다.“채영이 집
강지아의 인터뷰는 아주 재미있었다. 사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화령이 차를 우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서 강지아의 다도 실력도 선보이게 되었다.녹화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화령이 강지아에게 점심을 사주기로 했다.“얼마 전에 온씨 집안이 떠들썩했던 거 알아?”강지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화령이 말을 이었다.“나도 금성 씨한테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외부로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국물을 한 모금 마신 강지아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화령이 말하는 것을 제지하지도 않았다.“두 가지 일이 일어났어. 첫 번째는 최신애가 온씨 가문에서 며느리에게 물려줄 가보를 현채영이 훔쳤다면서 누명을 씌웠지. 그래서 경찰까지 불렀대. 온유한이 최신애와 싸우고 나서 경찰이 갔고 현채영은 별일 없었대. 두 번째 일은 어젯밤 온유한이 현채영을 위해 최신애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임유희를 온씨 저택에서 쫓아냈고 최신애는 한밤중에 화를 내며 병원에 입원했대.”강지아는 국물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잘됐네. 두 사람 다 힘든 것보다 낫네. 적어도 현채영 씨는 힘들지는 않으니까.”강지아가 별 반응이 없자 화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온유한이 많이 변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강지아가 말했다.“좋은 사람을 만났나 보지 뭐. 현채영 씨, 괜찮잖아.”화령은 온유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작업실로 돌아온 강지아는 커피 한 잔을 끓였다.서랍을 열어보니 서원준에게 선물할 넥타이를 아직 전달하지 않아 그대로 있었다.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휴대폰이 울려서 수신자를 보니 진수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새집을 찾았기에 명성 빌딩에서 묵지 않겠다고 했다.월세도 내지 않고 강지아의 집에 산 것에 대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남자친구 데려가도 돼?”“당연하지. 단골 술집에서 만나. 사장님더러 십몇 년 동안 간직해온 술을 오픈하라고 해야겠네.”“그래.”강지아